
전자레인지 도입기 디자인문화적 맥락의 대중화 실천들
초록
연구배경 도입 초기에 전자레인지는 낯선 기능과 형태로 인해 대중화 속도가 더뎠으나, 제품 확산을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본 연구는 한국 최초의 전자레인지가 출현한 1979년부터 본격적인 보급 확대가 시작되기 직전인 1989년까지, 전자레인지 대중화를 위해 어떤 실천들이 디자인문화의 맥락에서 전개되었는지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방법 홍보와 디자인 차원에서의 전자레인지 대중화 실천을 확인하기 위해 주요 일간지의 광고와 기사, 관련 문헌을 비평적으로 분석하였다. 분석은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에 기반하여 디자인과 광고를 다양한 행위자들의 얽힘 속에서 형성된 물질 기호적 결절점으로 보고, 이를 구성하는 행위자들 간의 관계를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수행되었다.
연구결과 제품 도입기 전자레인지 대중화를 위한 ‘홍보의 차원’의 실천으로는 속도, 편리, 경제성, 위생 등의 근대적 가치를 실현하는 매체로서 전자레인지를 번역하는 움직임과 가정 내 성역할을 반영하거나 변화를 추동하는 행위자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디자인 차원’에서는 전자레인지의 기능적, 형태적 이질감과 낯섦을 완화하기 위해 가구 스타일을 활용한 디자인이 채택되었고,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는 첨단을 시각화하고 물질화하려는 디자인 실천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결론 제품 도입기 전자레인지 대중화를 위한 ‘홍보의 차원’과 ‘디자인 차원’의 실천들은 당시 디자인문화와 공명하며 전개되었다.
Abstract
Background In the early phase of their introduction, microwave ovens were slow to gain widespread acceptance due to their unfamiliar functions and unconventional forms. Nevertheless, efforts to promote their diffusion continued. This study aims to identify the practices that were undertaken within the design-cultural context to popularize microwave ovens in South Korea, focusing on the period from 1979, when the first South Korean microwave oven emerged, to 1989, just before their widespread adoption began in earnest.
Methods To examine the practices of popularizing microwave ovens in terms of promotion and design, this study critically analyzes advertisements and articles from major daily newspapers, along with relevant literature. Drawing on Bruno Latour’s actor-network theory, the analysis approaches design and advertising as material-semiotic nodes formed through the entanglements of diverse actors, and traces the relationships among these actors by reconstructing the networks that constitute them.
Results In the introductory stage, promotional practices for popularizing microwave ovens involved translating the microwave oven into medium embodying modern values such as speed, convenience, efficiency, and hygiene, as well as mobilizing actors that reflected or reshaped gender roles within the household. In terms of design, furniture-style forms were adopted to mitigate the functional and formal unfamiliarity of microwave ovens, and from the mid-1980s onward, design practices that sought to visualize and materialize “high-tech” aesthetics became increasingly prominent.
Conclusions The practices at both the promotional and design levels are aimed at popularizing microwave ovens during the product introduction period developed in resonance with the design culture of the time.
Keywords:
Microwave Oven, Design Culture, Korean Design History, Popularization, 전자레인지, 디자인문화, 한국디자인사, 대중화1. 서론
한국 최초의 전자레인지는 1979년에 출시된 ‘삼성 전자레인지 RE-700D’ 모델이다(Chosun Ilbo, 2015). 이 모델이 출시되고 2년이 지난 1981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도 ‘금성 전자레인지 RE-5000’을 출시하며 전자레인지 시장에 뛰어들었다(Maeil Business Newspaper, 1981). 그로부터 3년 후인 1984년에는 대우전자가 ‘대우 전자레인지 DM-5631WR’ 모델을 생산하며 경쟁에 합류했다(Dong-A Ilbo, 1984). 그렇게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전자레인지 시장에서의 가전 3사 경쟁 체제가 구축되었다.
도입 초기 제조사들의 분주한 생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가정 내 전자레인지 보급 속도는 느렸다. 전자레인지가 처음 출시된 1979년 국내에는 약 400대의 전자레인지가 보급된 상태였는데, 주된 사용 장소는 가정이 아니라 대도시 제과점이나 경양식집이었다(Kwon, 1979). 금성사가 시장에 뛰어든 1981년에도 가구당 전자레인지 보급률은 0.01%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당시 가구당 1대꼴이었던 일본의 전자레인지 보급률과 비교할 때 크게 떨어지는 수치였다(Baek, 1981). 통계청 자료(Statistics Korea, n.d.)에 따르면 국내 전자레인지 보급률은 1980년대 내내 한 자리 숫자에 머물다가 서울올림픽이 있던 1988년에 12%를 기록하며 겨우 10%를 넘어섰다.1)
초기에 전자레인지가 대중화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해당 시기에 음식을 익히기 위해 사용되던 기구나 장치, 다시 말해 전자레인지의 경쟁 상대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함한희(Ham, 2005, p. 64)에 따르면 1980년대 도시 가정에서는 연탄 화덕과 석유풍로를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입식 부엌이 확대되면서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는 가정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여기에는 가스레인지에 부과되던 특별소비세가 1979년에 사라지면서 경제적 부담이 줄어든 것도 큰 역할을 했다(“Exemption from special consumption tax,” 1978). 하지만 도시 가정과 달리 농촌과 산간벽지에는 아궁이에서 나무나 짚을 태워 조리에 필요한 열을 얻는 집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게 당시에는 다양한 형태의 취사 기구와 장치들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주목해야 할 점은 그 기구와 장치들이 모두 연료를 태워 발생하는 열을 식품에 가해 음식을 조리했다는 사실이다.
새롭게 등장한 전자레인지의 조리 방식은 그것들과 달랐다. 전자레인지는 마그네트론에서 발생한 전자파가 식품 안에 있는 물 분자를 빠르게 진동시킬 때 발생하는 마찰열로 음식을 익혔다. 당시에는 외부에서 열을 가하여 음식을 만드는 가열 조리 방식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열을 가하지 않고 음식을 익히는 전자레인지의 방식은 낯선 것이었고, 따라서 소비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화구(火口)가 없는 상자 모양의 전자레인지 외관도 당시 소비자들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이러한 전자레인지의 특성과 모습은 기존 조리도구들이 오랜 기간 형성해온 사물의 질서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대중화를 어렵게 했다. 무엇보다 전자레인지는 밥, 국, 찌개, 구이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 음식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한동안 내놓지 못했다.2) 1990년 전후에 유행한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한국 음식과의 관계성을 설정한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는 1990년대 전자레인지 보급률 증가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Oh, 2023a).
도입 초기 전자레인지를 에워싸고 있던 것은 의심과 두려움, 그리고 불안 같은 부정적인 정서였다. 이러한 정서는 전자레인지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따라서 제조사들은 전자레인지를 둘러싼 부정적인 정서와 경계심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실천을 펼쳐나갔다. 실천은 크게 기술의 차원, 디자인의 차원, 홍보 차원에서 전개되었는데, 본 연구에서는 디자인과 홍보 차원을 주목하고 있다. 디자인과 홍보 차원의 실천들은 특성상 당시의 디자인문화3)와 밀접한 관련성 속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에 본 연구는 제품 도입기 전자레인지에 대한 부정적 정서와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실천들이 디자인문화의 맥락에서 펼쳐졌는지를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동안 이루어진 선행 연구들을 살펴보면, 주로 소비자 선호도 조사와 사용자의 행동 패턴분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Jang et al., 2013; Kim & Lee, 2000). 물론 디자인문화의 맥락에서 전자레인지 역사를 다룬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금성사의 한국형 가전제품 개발 사례를 통해 소비자의 요구와 문화가 어떻게 전자레인지 디자인에 반영되었는지를 다룬 박해천의 연구(Park, 2023), 제품 확산기에 들어설 무렵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지를 밝힌 오창섭의 연구(Oh, 2023a), 그리고 1990년대 초중반에 전자레인지가 어떻게 발전하고 쇠락했는지를 다룬 동일 연구자의 연구(Oh, 2023b)가 그것들이다. 그러나 이들 연구는 제품 확산기, 혹은 성숙기의 현상에 집중함으로써 전자레인지라는 낯선 제품이 디자인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수용 가능성을 높여 갔는지에 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본 연구는 국내에 전자레인지가 처음 등장한 1979년부터 급격한 보급률 증가가 나타나기 직전인 1989년까지 약 10년의 기간을 시간적 범위로 취하였다. 제품 도입기4)라고 할 수 있는 이 시기에 가장 두드러진 움직임을 나타낸 기업은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는 1979년 국내 최초로 전자레인지를 생산했을 뿐 아니라, 1983년 국내 최초로 마그네트론 공장을 준공함으로써 초기 전자레인지 생산과 유통을 주도하였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초기부터 제품 보급을 위한 캠페인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삼성전자의 제품과 활동을 중심으로 분석을 진행하면서, 필요한 경우 다른 기업의 사례를 함께 다루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해당 시기에 삼성전자는 10여 종의 전자레인지 모델을 생산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 가운데 디자인문화의 맥락에서 전자레인지 대중화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제품과 광고(Table 1)를 분석 대상으로 선정하여, 그것들의 물질 기호적 얽힘의 양상을 규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인간과 동등한 행위성을 비인간 행위자에게서 찾은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에 기반하여, 제품과 광고를 개별적 기표가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의 관계망 속에서 형성된 물질 기호적 결절점으로 파악하였다. 즉, 제품과 광고를 다양한 행위자들의 네트워크 흐름이 일시적으로 안정화된 상태로 보고, 그것을 구성한 행위자들과 그것들의 얽힘을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Blok & Jensen, 2017; Latour, 2009).
2. 근대적 가치 실현의 매체
국내 최초의 전자레인지가 출시된 직후인 1979년 8월 21일부터 3일간 삼성전자는 전자레인지 보급 확대를 위한 소비자 대면 캠페인을 벌였다. 백화점과 요리학원 등에서 펼쳐진 이 캠페인에서 삼성전자는 전자레인지의 원리와 특징, 그리고 사용법 등을 소개했다. 매일경제(Maeil Business Newspaper, 1979)에 따르면 행사에는 총 3,000여 명의 주부가 참석했다. 1982년 4월 27일부터 5월 11일 사이에도 삼성전자는 ‘삼성 전자레인지 무료 요리 강습회’를 개최하였는데, 행사 참가자들에게는 요리 체험 기회뿐만 아니라 <전자레인지 요리 가이드>라는 책자가 제공되었다(Samsung Electronics, 1982a). 삼성전자가 이러한 행사를 개최한 것은 전자레인지의 작동원리와 기능에 대한 이해를 도와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제품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전자레인지의 원리와 사용 방식을 알리는 모습은 초기 전자레인지 광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79년 8월 8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삼성 전자레인지 RE-700D’ 모델 광고(Figure 1)는 그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광고는 “식품에 초고주파를 투사하면 식품의 분자가 순식간에 마찰을 일으켜 식품 자체에서 열이 발생하게 되고 이 열이 식품을 익게 합니다”라고 작동원리를 제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불이나 열 대신 전자파로 음식을 조리한다는 점 역시 강조하고 있다. 이는 물 분자를 진동시키는 고주파의 행위성을 조리 기기로 번역한 전자레인지를 매개로 기존 화구 중심의 주방 질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국산 전자레인지 판매를 알리는 광고였기 때문에 ‘국내 최초 신개발’을 강조하고 있지만, 동시에 광고는 전자레인지가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장점은 무엇인지를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일상적 네트워크 안에 전자레인지가 자리할 수 있도록 또 다른 번역 작용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1981년부터 전자레인지를 생산하기 시작한 금성사의 광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81년 8월 24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금성 전자레인지 RE-5000’ 모델 광고(Figure 2)는 구조와 버튼의 기능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석유곤로나 가스레인지, 전기용품 등 종래의 조리기구와는 달리, 식품 자체 발열에 의한 새로운 가열방식”을 이용한 제품으로 전자레인지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제품의 작동원리, 다시 말해 열이 아닌 전자파를 이용해 조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전자레인지를 구매하는 것은 아니었다. 판매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존 조리기구나 방법과의 차이를 알리는 것을 넘어 전자레인지만의 분명한 장점과 매력을 증명해야 했다. 광고를 통한 번역의 움직임이 단순히 작동원리를 이해시키는 데 머물지 않고 조리기구로서 전자레인지의 장점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전자레인지는 구체적으로 어떤 장점이 있는 제품으로 홍보되었을까? 다시 말해, 전자레인지라는 낯선 비인간 행위자를 주부들의 일상적 네트워크 속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제조사들은 어떤 기호적 번역 전략을 구사했을까?
광고를 통해 제시된 전자레인지의 첫 번째 장점은 속도였다. Figure 1의 광고에서 삼성전자는 전자레인지가 전기오븐보다 조리 시간이 7배나 빠르다고 주장했다. 1980년 1월 27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삼성 전자레인지 RE-700W’ 모델 광고(Samsung Electronics, 1980)에도 같은 주장을 폈다. 금성사도 Figure 2의 광고에서 종래의 조리기구보다 조리 속도가 평균 3~7.5배 빠르다는 주장을 폈다. 근대적 시공간, 특히 근대적 생산의 영역에서 속도는 생산성 증대를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근대 가정에서도 속도는 여유로움이나 휴식과 관계된 것으로 여겨졌다. 물론 빠른 속도로 성취된 자유로운 시간이 반드시 여유로움이나 휴식으로 연결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루쓰 코완(Cowan, 1997, pp. 231-240)이 주장했듯이 전자레인지와 같은 근대적 장치가 만들어낸 시간적 여유는 다른 요리를 준비하거나 또 다른 가사노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도 새롭게 등장하는 제품들은 속도가 여유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적으로 폈다.
두 번째 장점은 편리함, 다시 말해 사용하기 쉽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방식, 다시 말해 가열해 조리하는 경우에 집중하지 않으면 자칫 음식물을 태울 수 있는데, 전자레인지는 특성상 그럴 가능성이 없었다. Figure 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제조사들은 음식물이 타거나 눌어붙지 않는 점을 전자레인지의 장점으로 홍보했다. 게다가 전자레인지는 그릇째 조리할 수 있었는데, 이 역시 장점으로 다루어졌다.
전자레인지의 세 번째 장점은 연료비가 적게 든다는 것이었다. 금성사는 1981년 8월 24일 자 ‘금성 전자레인지 RE-5000’ 모델 광고(Figure 2)에서 “종래보다 1.3~5.7배 연료비가 적게 들어 경제적”이라고 주장했고, 삼성전자는 1983년 ‘삼성 전자레인지 RE-700W’ 모델 광고에서 “평균 연료비가 석유풍로의 1/2, 가스 기구의 1/3 정도”라고 연료비가 적게 든다는 점을 강조했다(Samsung Electronics, 1983b). 전자레인지가 등장하던 시기인 1980년 전후는 2차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에너지 절약이 사회적 이슈였던 때였다. 따라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1980년대 초·중반에 출시된 가전제품들이 적은 연료비나 에너지 효율, 경제성 등을 유독 강조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전자레인지의 네 번째 장점은 위생적이라는 것이었다. “전파에 의한 강력한 살균 작용으로 항상 위생적인 식탁을 마련해 줄 뿐만 아니라, 비타민류 등 영양도 파괴되지 않습니다.”라고 한 1981년 8월 24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금성 전자레인지 RE-5000’ 모델 광고(Figure 2)가 바로 그런 내용을 포함한 사례였다. 삼성전자도 1983년 ‘삼성 전자레인지 RE-700W’ 모델 광고(Samsung Electronics, 1983c)에서 “음식물 찌꺼기가 끼지 않아 아주 위생적입니다”라고 위생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이처럼 광고는 속도, 편리, 경제성, 위생 등과 같은 근대적 가치를 전자레인지의 장점으로 내세웠다. 이는 전자레인지의 물리적 특성을 속도, 편리, 경제성, 위생 등과 같은 기호적 가치로 번역해 일상의 관계망 속에 안착시키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1981년 8월 24일 자 광고에서 금성사가 제시했던 “금성 전자레인지는 적은 연료비로 신속하게 위생적이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줍니다.”라는 문장은 당시 제조사들이 소비자에게 전하고자 했던 전자레인지의 장점이 무엇이었는지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 한국 사회에는 근대화가 화두였던 1970년대의 자장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속도, 편리, 경제성, 위생 등의 근대적 가치를 환기하는 것은 전자레인지에 대한 우려와 경계를 상쇄하고 대중화를 앞당기는 데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었다. 근대적 가치를 환기하는 이러한 움직임은 1980년대 후반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출현하기 이전까지 계속되었다.
3. 가정 내 성역할과 그것의 변화를 반영
전자레인지가 판매되기 시작한 1980년대 초 가정 내 성역할은 어떻게 규정되고 있었을까? 1982년 9월 22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삼성 전자레인지 RE-525W’ 모델 광고(Figure 3)는 그 내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광고의 구성을 보면, 화면 왼쪽에 “주방의 필수품 삼성 전자레인지, 많은 손님이 한꺼번에 오셔도 걱정이 없습니다”라는 표제 아래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면서 주방 생활이 얼마나 편리해졌는지를 소개하는 글이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서 화자는 글과 함께 배치된 원형 사진 속 여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품 사용 상황을 보여주는 오른쪽 사진에서는 전자레인지에서 음식을 꺼내는 주부로 등장하고 있다. 그 사진을 통해 광고 속 가정이 부부와 자녀 한 명으로 구성된 핵가족임을 알 수 있다. 문이 반쯤 열린 전자레인지를 배경에 두고 가족은 푸짐하게 음식이 차려진 식탁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어린 딸은 아빠 입에 음식을 넣어주고 있고, 아빠는 그 음식을 미소를 지으며 받아먹고 있다. 엄마는 전자레인지에서 막 꺼낸 음식을 들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광고 속 부부의 모습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남편은 앉아 있는데, 부인은 서 있다. 남편은 차려놓은 음식을 먹고 있는 반면, 부인은 음식을 차리고 있다. 남편은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이지만, 부인은 두건과 레이스 달린 흰 앞치마를 착용하고 있다. 이 대조적인 모습은 1980년대 초 한국 가정의 성역할과 그것에 대한 이해를 반영한 것이다. 행위자 네트워크의 맥락에서 볼 때, 이 광고는 가정이라는 네트워크 속에 전자레인지를 안착시키려는 단순한 번역을 넘어 전자레인지를 가부장적 성역할 모델을 지속시키고 강화하는 행위자로 번역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근대 사회의 성역할에 대한 이해와 믿음은 산업화와의 관계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루쓰 코완(Cowan, 1997, p. 29)은 “산업화의 가장 큰 영향 중의 하나는 일터(work)와 가정(home)의 분리”라고 주장했다. 공장으로 대표되는 근대 산업 사회의 일터는 남성의 공간으로 규정되었다. 그것은 가정이 여성의 공간이라는 의미였다. 일터의 남성들에게는 상품 생산을 위한 노동이 요구되었고, 가정의 여성들에게는 산업 사회의 노동력을 재충전하고 재생산하는 역할이 부여되었다. 그에 따라 여성은 가족의 건강을 챙기고, 아이를 돌보며, 가정을 보다 안락한 곳으로 꾸미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분명 노동이었다. 하지만 가정에서 여성의 노동은 화폐로 환산되는 생산적인 노동이 아니었고, 따라서 부수적이고 하찮은 일로 받아들여졌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노동이 가족 사랑의 이름으로 강제되고 제도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가정에서 여성의 노동은 가족 사랑의 정도를 나타내는 리트머스지 역할을 했다. 그에 따라 가사노동을 충실히 잘 해내는 여성은 가족을 사랑하는 것으로 간주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이해는 가정에서 여성을 분주하게 움직이도록 강제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조선일보>에 실린 ‘삼성 전자레인지 RE-525W’ 모델 광고(Figure 3)는 근대 산업 사회의 성역할 모델을 충실히 반영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런 전략이 가능했던 것은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러한 성역할 모델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신세대를 중심으로 성역할에 대한 이해가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전자레인지 홍보 전략도 수정되었다. 1989년 10월 31일 자 <경향신문>에 게재된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07GMW’ 모델 광고(Figure 4)는 달라진 성역할의 내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광고 속 부부는 주방이 아니라 복도식 아파트의 현관 앞에 서 있다. 두 사람 모두 정장 차림인 것으로 보아 맞벌이 부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가위바위보로 식사 당번을 정하고 있는데, 그들 사이에는 “누가 식사 당번이 되든 상관있나요?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있는데…”라는 문구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식사 준비가 당연히 여성의 몫인 것처럼 표현되었던 7년 전 광고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전자레인지는 더 이상 여성의 가정 내 노동을 강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부부 관계의 평등을 매개하는 행위자로 재번역되고 있다. 다시 말해 전자레인지라는 비인간 행위자가 신세대라는 담론적 행위자와 결합하여 기존 가부장적 가정 네트워크를 해체하고 평등한 부부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듯이 1980년대 말 가정의 변화를 주도한 것은 신세대 부부들이었다. <한겨레>는 1989년 5월 4일부터 5월 28일까지 ‘젊은 가정, 사회를 바꾼다’라는 제목의 시리즈 기사를 10회에 걸쳐 게재했다. 기사는 당시 신세대 부부들의 가정 내 민주화 움직임을 다루었다. 가정의 민주화란 이전과 달라진 부부 관계, 그리고 그로 인해 변화된 가정의 풍경을 지칭하는 개념이었다. 신세대 부부들은 서로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며 전통적인 성역할을 거부했다. 그들은 일터를 남성들만의 영역으로 이해하지 않았고, 가정 역시 여성들만의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해는 맞벌이 부부 증가의 원인이자 결과였다.
그렇다고 당시에 이러한 움직임이 사회 전반에 걸쳐 완전히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07GMW’ 모델 광고(Figure 4)와 같은 시기에 등장한 두 개의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688BR’ 모델 광고를 보면, 갑자기 방문한 시부모님의 음식을 준비하는 것(Samsung Electronics, 1989a)도, 초대된 외국인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Samsung Electronics, 1989b)도 주부의 일로 표현되고 있다. 이를 통해 1980년대 말 가정 내 성역할이 변화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경우에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일로 여겨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맞벌이 부부는 계속 늘고 있지만,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취업 주부의 70% 이상이 가사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라는 1991년 6월 20일 자 <매일경제> 기사 내용은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Maeil Business Newspaper, 199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렵에 신세대 부부를 중심으로 가정의 풍경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만은 분명하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신세대가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주은우에 따르면 1990년대 신세대는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나 “87년 민주화 투쟁과 그 여파가 어느 정도 지나간 후에 대학진학 연령에 도달한 집단”으로, “독재체제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지 않아도 되었던, 상당한 자유와 민주주의,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집단”을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1980년대 말 압구정 오렌지족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 신세대 담론이 실체로서 신세대를 출현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신세대 담론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 담론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그러한 움직임이 결과적으로 신세대를 명확한 실체로 만들어갔다. 그렇게 신세대의 존재가 구체화되자 ‘신세대’는 하나의 수식어처럼 유통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개성을 추구하는 합리적인’이라는 의미를 환기하는 용어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신세대 주부’라는 용어 역시 이 과정에 출현했다(Joo, 1994).
그런데 엄밀히 말해 1990년대 초중반의 신세대 주부는 정확한 의미에서의 신세대라고 보기 어렵다. 연령상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86세대에 속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민주화에 대한 열기가 가득했던 1980년대 대학가에서 페미니즘까지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유사한 문제의식을 접하며 20대 초중반을 보냈다. 사실 그들이 신세대였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신세대 담론이 자신을 그 담론과 동일시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면서 실체로서 신세대를 등장시켰던 것처럼, 신세대 주부에 대한 담론과 담론적 실천들 역시 실체를 가진 주체로서 신세대 주부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담론적 실천이 언어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 맥락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서울올림픽 개최를 전후로 이미지와 영상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는 사실이다.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07GMW’ 모델 광고(Figure 4)에서 모델로 등장한 최진실의 모습은 80년대 말, 90년대 초 신세대 주부의 전형적인 이미지였다. 전자레인지뿐만 아니라 VCR, 냉장고 등의 광고에서도 그녀는 남녀평등, 똑 부러지는 성격, 효율 중시, 탈 형식 등을 수행하면서 당시 막 결혼한 여성들이 자신을 신세대 주부로 동일시할 수 있는 문화적 좌표를 제공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체제가 무너지면서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났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대되면서 맞벌이 부부의 비율도 증가했다. 전자레인지는 가정에서 요리하는 여성이라는 전통적 이미지를 빠르게 해체하며 성역할의 변화 과정에 동참했다. 형식보다는 간편함과 효율을 중시하는 신세대 문화 속에서 전자레인지는 맞벌이 부부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갔다. 맞벌이의 증가 현상은 일터를 남성의 전유물로 간주하는 이해를 흔들었을 뿐 아니라, 가사가 여성의 것이라는 이해 역시 해체해 나갔다. 1980년대 말 전자레인지가 필수 혼수품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변화와 공명하는 현상이었다.
4. 가구 스타일을 활용한 디자인
가정에서 새로운 제품이 쉽게 수용되지 않는 것은 기존 사물들과 사용자 사이의 관계가 안정되어 있어, 새로운 제품이 그 네트워크에 쉽게 편입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자레인지 제조사들은 이러한 점을 초기부터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자파를 사용하는 전자레인지의 이질성을 완화하기 위해 계몽적 실천과 다양한 홍보 전략을 펼쳤던 것은 그런 인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런데 초기 제조사들이 인식한 이질성은 개념적 이해의 어려움이나 사용 방식이 기존 조리기구들과 다르다는 사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전자레인지가 가정 내에 배치될 때 기존 사물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가능성, 다시 말해 디자인에서 파생되는 이질성 또한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었다.6) 그렇다면 이러한 디자인적 이질성과 그것에 대한 생산 주체의 인식은 어떠한 실천들을 촉발했을까?
디자인 역사가 에이드리언 포티(Forty, 2004, pp. 16-17)는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에서 “어떤 제품이든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을 넘어서야만 판매에 성공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제품의 확산을 위해서는 그 “제품이 스스로 초래한 변화를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고 밝히면서, 디자인 역사에서 새로운 기술 제품을 수용하도록 하는 데 활용되었던 3가지 디자인 전략을 제시했다. 에이드리언 포티가 이야기한 3가지 디자인 전략은 첫째 “옛 가구 스타일을 본딴 캐비닛 안에 집어넣는 것”, 둘째 소파와 같이 전혀 상관없지만 익숙한 사물 안에 숨기는 것, 셋째 “보다 나은 미래를 상징하는 듯한 캐비닛에 넣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이질적인 비인간 행위자를 기존 행위자들의 네트워크 안에 충돌 없이 결합시키기 위한 물질 기호적 번역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첫째와 둘째 전략은 익숙함에 기대 새로운 제품의 수용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특히 첫째 전략은 존재를 숨기는 둘째 전략과 달리, 제품의 존재를 드러내면서도 낯섦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널리 활용되었다. 에이드리언 포티는 그 사례로 초기 라디오 제품들이 목제 가구 형상을 취했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물론 이러한 전략은 라디오에만 국한되어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이후 등장한 텔레비전 역시 그러한 전략을 취했다. 1970년대 국내에서 유행한 목제 콘솔형 TV는 같은 맥락에 자리하는 제품이었다. 당시에 일부 콘솔형 TV는 가구처럼 서랍을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주름 문을 갖춘 제품도 있었다. 이는 사용하지 않을 때 드러나는 회색 브라운관을 가려 제품을 가구처럼 인식되도록 하기 위한 물질 기호적 조치였다(Oh, 2021, pp. 127-128).
가구 형태로 만들어진 기술 제품의 외관 재료가 나무였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나무는 가정에서 사용되는 가구뿐만 아니라 실내 공간의 내장재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익숙하다는 느낌을 사용자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이에 기반해 나무는 신기술 제품의 이질감을 완화하는 효과를 실제로 발휘했다. 동시에 나무는 제작 비용과 생산 공정의 측면에서도 효율적이고 유용했다. 초기에는 금형 제작과 플라스틱 사출을 통한 외관 형성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공이 상대적으로 쉬운 나무가 그 대안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나무를 사용하면 외형의 변화를 쉽게 줄 수 있어 어렵지 않게 신제품을 개발한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1980년대에도 목재로 된 가구 스타일을 매개로 기술적 이질감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무렵에 이르러 실제 나무를 재료로 사용하는 움직임은 점차 나무무늬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갔고, 그에 따라 가구 스타일 적용의 엄격성 또한 완화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컬러 TV 방송이 시작된 1980년에 생산 판매되었던 삼성전자의 ‘이코노 칼라TV CT-2030D’ 모델은 여전히 목제 가구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유사한 시기에 출시된 ‘금성 칼라TV CR-402K’ 모델(Figure 5)의 경우는 제품의 측면에만 나무무늬를 적용해 가구 스타일 적용의 엄격함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나무무늬의 적용은 단순한 외장 마감이 아니라, 이질적인 비인간 행위자를 기존의 생활 세계 속에 결합시키는 물질 기호적 번역 행위다. 따라서 나무무늬는 생경한 기술적 존재를 가구라는 익숙한 네트워크와 연결하는 행위자로 이해할 수 있다(Latour, 2009).
전자레인지의 경우도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1979년에 출시된 삼성전자 ‘삼성 전자레인지 RE-700D’ 모델(Figure 6)을 보면 나무무늬가 측면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84년 광고(GoldStar, 1984b)에 등장하는 ‘금성 전자레인지 ER-7010B’ 모델의 경우도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두 모델처럼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1981년 금성사가 출시한 ‘금성 전자레인지 RE-5000’ 모델(Figure 2)의 경우도 전면부 가장자리에 목재를 연상시키는 갈색으로 마감 처리가 되어 있었다. 이는 라디오나 TV가 그랬던 것처럼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가구 스타일과 목재라는 소재를 매개로 신기술 제품의 낯섦과 이질감을 극복하려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행위자 네트워크의 맥락에서 볼 때 이는 사물의 물질적 이질성이 인간의 문화적 관습과 충돌하여 발생하는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자레인지가 익숙함의 기호로 스스로를 변화시킨 미시적 번역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구의 형상이나 나무무늬를 통해 전자레인지의 기술적 낯섦과 이질감을 상쇄하는 모습은 잠시의 현상으로 끝났다.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전자레인지의 디자인은 에이드리언 포티(Forty, 2004, pp. 16-17)가 이야기한 세 번째 전략, 즉 “보다 나은 미래를 상징하는 듯한 캐비닛에 넣는” 방향으로 빠르게 변해갔다. 가구 스타일을 통해 새로운 기술 사물의 낯섦과 이질성을 없애거나 완화하려는 움직임은 제품 보급이 확대되어 그것이 일상화되면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전자레인지 디자인에서 그러한 움직임이 사라진 것은 제품 보급이 확대되어 전자레인지가 익숙해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변화는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
5. 첨단의 시각화와 물질화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공업화가 추진된 것은 박정희 집권 이후의 일이다. 1960년대에 시작된 공업화의 움직임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양적으로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고도화되었다. 1977년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은 한국 공업화의 진전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국가기록원 자료(National Archives of Korea, n.d.)에 따르면 당시 수출상품 구성은 의류(9.9%), 전기기기(9.2%), 직물(6.1%), 신발(4.9%), 섬유사(2.5%), 강판(1.7%)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경공업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았지만, 1970년대 초부터 추진된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의 결실도 점차 나타나고 있었다. 전기기기의 비중이 9.2%였던 것은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당시 전기기기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전자제품이었다. 이 시기 전자제품은 섬유류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출상품이었다(Maeil Business Newspaper, 1978). 전자산업은 이후 한국 경제의 핵심 산업 영역으로 자리하게 되는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어선다.
한국 전자산업의 시작은 1959년 금성사의 A-501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들어서 금성사는 라디오뿐만 아니라 한국 최초의 TV, 한국 최초의 냉장고 등을 출시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Korean Economic Daily, 2008). 1967년에는 대한전선도 이 분야에 진출하여 냉장고, TV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69년에는 삼성전자도 가세했다. 1970년대에 이들 가전제품 생산업체들은 당시 성장하고 있던 TV 시장을 중심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정부도 1971년 구미에 전자산업단지를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관련 산업 발전을 독려했다. 1974년 시인 박목월은 ‘구미공단’이라는 시에서 전자산업단지를 “80년대로 행하는 하나의 디딤돌”, “꿈의 실현”이라고 노래했다(Lee, 2013). 당시 전자산업은 단순히 여러 산업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래 그 자체였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한국 사회는 전자산업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로 인기를 얻었던 임정규 감독이 1977년에 <전자인간 337>이라는 작품을 내놓은 것도 그러한 분위기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이름이 337인 것은 극 중에서 전자인간 337을 제작하는 데 33억 7천만 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Kim, 2004). 오늘날 고가 아파트 1채 가격에 해당하는 33억 7천만 원은 당시에 상상할 수 있는 많은 돈의 한계치였을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전자인간 337은 전자 눈과 전자 귀로 인간의 지각 능력을 훨씬 상회하는 능력을 소유한 초능력자로 그려진다. 그렇게 당시 ‘전자’로 수식되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강하고, 비싸고, 미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80년대로 이어졌다.
1980년대 초 고등학생들의 전자공학과에 대한 선호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1982년 1월 8일 <경향신문>이 전국 30개 고등학교 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대의 경우 전자공학과를 선호한다는 응답자가 22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두 번째 선호학과였던 건축학과의 3배가 넘는 수치였다(Kyunghyang Shinmun, 1982). 이러한 분위기는 1980년대 내내 이어졌다. 1980년대는 ‘전자의 시대’였다. 그런 사회 분위기를 이끈 것은 단연 컴퓨터였다. 1980년대 초부터 사무자동화, 홈오토메이션, 컴퓨터 학습 등 컴퓨터가 만들어갈 일상과 업무 공간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가 매체를 장식했다. 삼성전자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산업의 본격적 진출을 선언한 ‘도쿄 선언’ 역시 그러한 분위기가 무르익던 1983년에 나왔다.
컴퓨터는 전자 시대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제품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첨단 기술이 적용된 최신의 효율적이고 똑똑하며 경제적인’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는 형용사이기도 했다. 당시 제품들이 ‘컴퓨터’라는 표현을 수식어로 달고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7) 컴퓨터 선풍기, 컴퓨터 VTR, 컴퓨터 오디오 등이 그것이었는데, 전자레인지도 이러한 흐름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전자레인지는 ‘전자’라는 명칭이 갖는 컴퓨터와의 친연성 때문에 미래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훨씬 수월한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전자레인지가 가구 스타일을 활용한 디자인 전략을 빠르게 정리하고 첨단을 시각화하고 물질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뿐만 아니라 그러한 제품 자체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다.
1983년 삼성전자는 ‘삼성 컴퓨터 전자레인지 RE-750TC’ 모델을 출시하면서 “컴퓨터 전자레인지”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전자레인지가 ‘컴퓨터’라는 수식어를 채택한 것은 컴퓨터라는 행위자가 가진 지능이나 첨단, 정밀함의 네트워크를 전자레인지라는 사물로 번역하여 그 가치를 전이시키려고 한 움직임의 결과였다. 이는 당시 컴퓨터가 지니고 있던 긍정적 의미에 전자레인지가 어떻게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라는 명칭이 수사적 표현에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원하는 시간에 맞춰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예약 기능의 탑재는 그 표현이 수사에만 머물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약 조리 기능은 시간을 관리하고 판단하는 인간 행위자의 행위성을 전자적 알고리즘에 위임함으로써 전자레인지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똑똑한 협력자라는 네트워크 결절점으로 안정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품 광고는 이러한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아주머니 안심하고 외출하세요. 요리는 저 혼자 끝내 놓을게요.”라고 말하는 전자레인지를 오른편에, 그 말에 웃는 얼굴로 가방을 들고 외출하려는 주부의 모습을 왼편에 배치한 광고(Figure 7)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형태적으로도 ‘삼성 컴퓨터 전자레인지 RE-750TC’ 모델은 새로운 특징들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제품의 오른쪽 상단의 전자식 시간 표시 장치는 시간의 흐름을 수치로 시각화함으로써 가사노동의 정밀한 조절과 통제를 환기하고 있으며, 터치식 조작 스위치는 기계적 마찰을 제거하여 사용자와 사물간의 관계를 한층 매끄러운 기호적 교감으로 번역해내고 있다.8) 특히 조리할 때 내용물을 볼 수 있도록 만든 투명창의 가로줄 무늬는 제품 내부의 물질적 작용을 외부의 기호적 질서와 결합하는 시각적 장치로서, 당시 전자레인지가 첨단의 시각화와 물질화를 통해 네트워크의 고유한 결절점으로서 형태를 구축해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삼성전자만 그러한 방향으로 제품 디자인이 변화했던 것은 아니다. 1984년에 금성사가 출시한 ‘금성 오븐 전자레인지 ER-610HB’ 모델(GoldStar, 1984a)에서도 옵아트적인 반복되는 선들이 투명창에 자리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모델은 오븐 기능을 갖추었다는 게 큰 특징이었다. 사실 요리를 전자레인지가 한다고 광고는 했지만, 엄밀히 말해 이전까지 전자레인지들은 음식을 데우거나 단순히 익히는 데 그 기능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제품은 오븐 기능이 있어서 음식을 노릇하게 조리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조리 경험을 더욱 긍정적으로 강화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제품은 이전까지 오른편에 자리하던 조작부를 하단에 배치함으로써 형태적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것 역시 당시 전자레인지가 고유한 형태를 갖춘 제품으로 발전해 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기술경쟁을 통해 브랜드의 변별성을 획득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는데, 그러한 움직임은 디자인으로 표현되었다. 1983년 금성사는 ‘금성 전자레인지 ER-5000’ 모델을 국내 유일의 회전테이블 방식이라고 광고했다(GoldStar, 1983). 이 모델은 음식을 골고루 빨리 익도록 음식을 올려놓는 판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회전하도록 디자인했다. 이에 반응해 삼성전자는 스터러 팬(Stirrer Fan)을 고속 회전시켜 음식물을 회전시키지 않고도 빠르고 균일하게 익도록 디자인했다(Samsung Electronics, 1983b). 같은 해 7월에는 그것을 전자샤워 방식이라는 이름으로 홍보했다(Samsung Electronics, 1983c). 1984년에 금성사가 출시한 ‘금성 오븐 전자레인지 ER-610HB’ 모델(GoldStar, 1984a)과 삼성전자의 ‘삼성 그릴 오븐 레인지 RE-600GMW’ 모델(Samsung Electronics, 1984a)은 오븐 기능을 장착해 음식물을 단순히 데우거나 익히는 것이 아니라 노릇하게 조리할 수 있도록 했다.
디자인의 맥락에서 첨단을 시각화하고 물질화하는 움직임, 그리고 그것을 부각하는 움직임이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강화되었다는 것은 당시 가정이 다른 성격의 두 세계로 분화되어가는 움직임과 공명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두 세계란 ‘일로부터 자유로운 위로와 안식을 제공하는 세계’와 ‘일터와 같이 기능과 효율이 지배하는 세계’를 말한다. 애초에 이 두 세계는 가정과 일터에 각각 대응되는 것이었다.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일터에서의 기계적 생산과 관료적 합리성은 더욱 확대되었고, 그에 따라 가정은 그 대척점에서 그에 상응하는 사랑, 안락, 편안함과 같은 기호들의 공간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9)
그런데 효율이 지배하는 냉혹한 세계의 대척점에서 사랑과 안락함으로 채워진 따뜻한 세계이길 요구받았던 가정이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또다시 분화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것은 기능과 효율 같은 일터의 논리가 이 시기에 사회적으로 강화되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콜린 캠벨(Campbell, 2010)과 미카엘 뢰비(Löwy, 2017)가 이야기한 저항으로서 낭만주의10)의 맥락에서 볼 때, 이러한 변화는 일터와 가정 사이에 놓여있던 저항선이 후퇴해 가정과 가정 사이에 자리하게 된 것이라고 이해될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었든 전자레인지 디자인의 맥락에서 가정은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성격이 다른 두 가정으로 분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중요한 점은 두 가정을 지배하는 정서가 달랐고, 그에 따라 사물의 질서와 내용도 달랐다는 사실이다. 전자의 가정이 스위트 홈을 추구하며 ‘위로와 안식’을 지향하는 사물의 질서를 형성했다면, 후자의 가정은 ‘기능과 효율’을 지향하는 사물의 질서를 구축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그에 따라 후자의 가정에 자리한 사물들은 가사노동의 주체를 일종의 경영자로 호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영자로서 가사노동의 주체가 관리하는 가정에는 새로운 기술 제품들이 비교적 쉽게 자리 잡을 수 있었는데, 첨단을 시각화하고 물질화한 전자레인지는 그러한 가능성에 기대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물질 기호적 차원에서 작동했다. 이는 전자레인지가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조리도구를 넘어 첨단의 생활방식을 환기하는 기호가 되기를 욕망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욕망과 그에 따른 실천은 앞선 장들에서 살펴본 내용들과 함께 초기 전자레인지의 대중화를 위한 실천들의 성좌를 형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6. 결론
본 연구는 제품 도입 초기에 전자레인지에 대한 부정적 정서와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제조사가 펼친 디자인과 홍보 차원의 실천들이 어떤 디자인문화적 맥락 속에서 전개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연구 결과 홍보 차원에서의 실천으로는 근대적 가치 실현의 매체로 전자레인지를 번역하려는 움직임과 가정 내 성역할과 그것의 변화를 반영해 제품의 성격을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디자인 차원에서는 가구 스타일을 활용한 디자인 실천과 첨단을 시각화하고 물질화하려는 실천이 있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Table 2에 제시된 바와 같다.
Table 2 내용을 정리하면 첫째, 근대적 가치 실현의 매개로 전자레인지를 번역하는 움직임은 초기 제품 홍보의 주된 방향이었다. 구체적으로 소비자 대면 캠페인과 광고를 통해 전자레인지의 작동원리와 기능을 교육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의심과 불안을 해소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작동원리와 기능을 알게 되면 의심을 풀 것이라는 계몽주의적 믿음이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에 기반한 실천만으로는 의심과 불안을 없앨 수 없었다. 그로 인해 근대적 가치를 실현해 줄 수 있는 제품으로 전자레인지를 의미화하는 실천이 나타났는데, 이는 당시에 진보의 서사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 속도, 편리, 경제성, 위생 등과 같은 근대적 가치들이 ‘좋은 것’이자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둘째, 초기 전자레인지는 변화하는 성역할을 적절히 반영하는 홍보 전략을 채택했다.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일터는 남성의 영역이고 가정은 여성의 영역이라는 이해가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초기 전자레인지는 이러한 이해에 토대를 두고 홍보되었는데, 그 속에서 전자레인지는 가족의 건강을 챙기고 가정을 안락한 곳으로 만드는 가정주부의 파트너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신세대 가정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성역할이 해체되기 시작했고, 맞벌이 부부의 증가는 이러한 움직임을 가속화했다. 이 과정에서 전자레인지는 부부 관계의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행위자로 규정되었다.
셋째, 초기 전자레인지 제조사는 가구 스타일을 활용한 디자인 전략을 펼쳤다. 이는 새로운 기술 사물을 익숙한 스타일로 번역해 기존 네트워크에 연결시키려는 디자인 실천으로 이해할 수 있다. 라디오나 TV 등과 같은 다른 기술 사물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이러한 디자인 실천은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급속한 근대화의 흐름 속에서 첨단을 향한 사회적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넷째, 첨단을 시각화하고 물질화하는 디자인 실천이 이어서 나타났다.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빠르게 발전해 가고 있던 전자산업은 당시에 미래 산업으로 받아들여졌다. 그에 따라 전자공학과에 대한 뚜렷한 선호 현상이나 ‘전자’와 ‘컴퓨터’를 긍정적 기호로 사용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는 ‘전자’와 ‘컴퓨터’가 첨단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전자레인지를 미래와 첨단과 관계된 것으로 번역하려는 디자인 실천은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 번역 과정은 가정을 기능과 효율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정의하려는 움직임과 공명하며 전개되었다.
본 연구는 제품 도입기 한국에서 전자레인지를 대중화하려는 실천이 디자인문화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펼쳐졌는지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비록 범위가 한국 사례에 국한되었다는 점에서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 연구를 통해 향후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국가와의 비교 연구를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은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연구에서 확인된 한국에서의 구체적인 번역의 양상들은 새로운 기술 제품의 수용이 전 지구적으로 동일한 속도와 궤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의 디자인문화적 네트워크에 따라 서로 다를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향후 다른 나라의 대중화 실천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의 사례와의 비교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국가별 고유성과 보편성의 내용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디자인을 매개로 한 사물과 문화의 얽힘에 대한 앎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Glossary
1) 국내 전자레인지 보급률은 1985년 4%, 1986년 6%, 1987년 8%, 1988년 12%, 1989년 15%, 1990년 24%, 1991년 32%, 1992년 39%, 1993년 45%, 1994년 51%, 1995년 53%, 1996년 60%, 1997년 67%를 나타냈다(Statistics Korea, n.d.). 흥미로운 사실은 1990년을 기점으로 보급률이 매년 6% 이상 상승하는 추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1995년에는 전년 대비 2% 증가율에 머물며 상승세가 둔화되었다. 하지만 이는 직전에 발생한 전자파 유해 논란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일시적 현상이었다(Oh, 2023b). 실제로 1995년에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나타내기는 했지만, 1990년부터 시작된 보급률의 가파른 상승세는 꾸준히 이어져 1997년에는 67%의 보급률을 기록했다.
2) 1990년 전후에 유행한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한국 음식과의 관계성을 설정한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는 1990년대 전자레인지 보급률 증가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Oh, 2023a).
3) 본 연구에서 이야기하는 ‘디자인문화’란 디자인이 사용의 영역에서 다양한 인간·비인간 행위자들(Latour, 2009)과 물질적으로는 물론이고 기호적으로 관계하며 만들어내는 삶의 양태와 변화를 뜻한다. 존 에이 워커(Walker, 1995)는 <디자인의 역사>에서 디자인이 디자인하는 행위나 그 행위의 결과에만 자리하는 게 아니라, 사용의 영역에도 자리한다는 주장을 폈다. 사용의 영역은 인간 행위자인 소비자가 비인간 행위자들인 다양한 사물, 제도, 이데올로기 등과 서로 얽히고 관계하는 장이다. <디자인의 역사> 6장과 7장에서 워커는 라이프스타일, 소비, 수용, 취미 등의 주제를 통해 사용의 영역에서 디자인을 매개로 한 행위자들의 얽힘을 다루었다.
4) 1980년대 중반 이후 전자레인지 보급률은 매년 2~4%의 완만한 증가를 보이다가, 1990년(전년 대비 9% 증가)을 기점으로 급격한 상승세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에서는 1979년부터 1989년까지를 전자레인지 제품 도입기로 규정하고 있다.
5) Table 1은 1979년부터 1989년 사이에 삼성전자가 생산한 전자레인지 모델들과 그것들의 일간지 광고 목록이다. 이 목록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에 게재된 광고를 대상으로 작성되었다. 해당 시기의 광고라 하더라도 다수의 제품을 동시에 소개하는 광고, 사은 행사 광고, 관련 공장의 설립을 알리는 광고는 목록에서 제외하였고, 동일한 광고가 반복 게재된 경우는 가장 이른 시점의 사례를 수록하였다. 음영 처리한 것은 본 논문에 이미지가 수록된 광고들이다.
6) 여기서 떠올려야 하는 것은 최초의 국산 제품이 생산되기 이전에 이미 전자레인지의 전형적인 구조와 형태가 만들어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처음 전자레인지가 만들어졌을 때는 300kg이 넘었지만, 1960년대 일본 샤프(Sharp)사 등의 노력으로 무게와 크기가 혁신적으로 줄어들면서 지금 우리가 접하는 전자레인지의 기본 형태가 만들어졌다(Conover, 2015). 최초의 국산 전자레인지는 그 형식을 따라 제조되었기 때문에 당시 제조사는 생산 이전에 이미 그것이 어떤 디자인문화적 저항에 직면할지 예상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7) 이러한 움직임은 1980년대 초 서구와 일본에서 전개된 가전의 디지털화 및 초기 홈오토메이션 담론과 궤를 같이하는 보편적인 흐름이었다. 한국에서는 ‘도쿄 선언’으로 대표되는 반도체 육성 정책과 맞물려 컴퓨터가 미래 지향적 상징성을 획득해감에 따라 ‘컴퓨터’를 중심으로 그 흐름이 전개되었다.
8) 1984년에 출시된 ‘삼성 컴퓨터 전자레인지 RE-850TC’ 모델(Samsung Electronics, 1984b)의 경우도 “소프트터치 작동방식”을 채택하며 그러한 번역의 움직임을 이어갔다.
9) 여기서 안락과 편안함은 익숙함에 기반한 정서적 경험인데, 미학적 차원에서 익숙함은 키치의 핵심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화로 인해 일터와 가정이 분리되고, 냉혹한 일터의 대척점에 자리한 가정이 안락과 편안함의 기호들로 채워졌다는 것은 미학적 차원에서의 키치가 가정을 채우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로 인해 냉혹한 일터가 따뜻한 가정과 대립하며 함께 존재했던 것처럼, 이성적 근대는 감성적 키치와 대립하며 함께 존재하게 되었다. “키치와 경제발전의 관계는 너무나 밀접한 것이어서 우리는 제 2세계나 제 3세계 나라에서 키치가 존재하는 것을 근대화의 의심할 바 없는 징표로 간주할 수 있다”라는 칼리니스쿠(Calinescu, 1996, p. 284)의 명제는 이 지점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10) 콜린 캠벨(Campbell, 2010, p. 336)은 낭만주의적인 것을 “합리주의 문화와 그것이 창출한 경험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대항하는 것”이고, “감성과 상상력이 이성을 지배하는 마음의 상태”라고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낭만주의는 합리주의의 문제를 감성과 상상력으로 극복하려는 움직임인 것이다. 미카엘 뢰비(Löwy, 2017, p. 21)가 벤야민을 이야기하면서 제시한 낭만주의의 정의, 즉 “근대 자본주의 문명을 전근대적인 가치를 내걸고 문화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라는 정의도 콜린 캠벨의 정의와 공명한다.
Acknowledgments
This work was done by 2024 Konkuk University Research Fund.
Notes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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