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대 잡지 『구성교육(構成敎育)』의 디자인교육 담론에서 보는 일본적 내셔널리즘의 탐색
초록
연구배경 1930년대는 일본 디자인교육에 있어 중대한 전환기였다. 유럽 근대 디자인의 정점이었던 독일 바우하우스(Bauhaus)의 기초조형 교육이 해체되기 직전, 그 이념은 일본 지식인들과 교육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었고, ‘구성(構成)’이라는 번역 개념을 통해 새로운 교육 모델로 재구성되었다. 그 중심에 자리한 것이 바로 1932년 창간된 디자인교육 전문 잡지 『구성교육(構成教育)』이다. 잡지에 드러난 ‘일본적 것’의 담론을 분석하여 근대적 디자인교육에 반영된 근대국가의 번성에 대한 이념이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방법 본 연구는 1932년부터 1935년까지 발간된 『구성교육』 잡지의 발행 경위와 일본식 바우하우스 교육의 국가주의를 살피며, 잡지 전권에 수록된 주요 기고문, 이론 해설, 교육 실기 안내, 편집자의 논평, 이미지 자료 등을 포괄적으로 수집·정리하여 ‘일본적인 것’과 관련된 담론의 양상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했다. 첫째, 『구성교육』 잡지에 나타난 근대 일본의 국가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구성하고자 한 국가주의적 교육 담론의 형성 과정을 밝히고자 했다. 둘째, 잡지 『구성교육』에서 1932년 8월에 발간된 조선과 만주 관련 특집호 <향토공예>의 기고문들을 분석함으로써, 구성교육이 제국주의적 문화정치의 일환으로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문화 위계를 재편하려 했던 시각문화 전략으로서 작동했음을 규명하고자 했다.
연구결과 본 연구는 1930년대 초 일본에서 발간된 디자인교육 잡지 『구성교육』에 수록된 다양한 논고와 시각자료를 중심으로, 그 안에 담긴 교육적 실천과 문화정체성 담론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일본이 유럽의 근대 디자인 이념, 특히 독일의 바우하우스의 기초조형교육을 수용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일본 고유의 미의식, 전통 감수성, 동양적 조형 개념을 결합하여 일본식 바우하우스 교육이라는 독자적인 근대적 디자인교육을 ‘구성교육’이라는 새로운 명칭 아래 구축해내고자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일본이 근대 디자인이라는 보편적 언어 속에서 어떻게 자국의 정체성을 시각화할 수 있는가를 탐색하는 사유의 장으로 기능하는 한편 조선과 만주 지역에서의 디자인교육에 대한 기획 특집을 다루며, 구성교육이 제국 내 시각문화의 중심을 재편하고자 하는 문화정치적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결론 이 연구는 1930년대 일본의 디자인교육 잡지 『구성교육』에 기고된 글의 담론분석을 통해 일본의 근대적 디자인교육을 형성하는 문화적·담론적 장으로서 고찰하였다. 이는 디자인교육이 문화 정체성을 내면화하는 도구이자 국가의 문화 정치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살펴보는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잡지 『구성교육』에서 홍보된 ‘동광회’의 강습에 참여하고 수료한, 『도화과지도세목』을 집필한 교사 최유련의 활동에 대한 기록은 일제강점기 일본과의 교육 네트워크와의 관계에서 한국의 근대 디자인교육을 재검토해볼 수 있는 연구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잡지 『구성교육』에 대한 분석은 단순히 일본의 근대적 디자인교육의 양상을 살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 디자인사, 디자인교육사의 형성 맥락을 일본 제국의 교육 네트워크와 식민지 시각문화 구조 속에서 재고찰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Abstract
Background The 1930s marked a significant turning point in Japanese design education. Just before the disbandment of the foundational form-giving education of the German Bauhaus, which was the pinnacle of European modern design, its ideology was actively embraced by Japanese intellectuals and educators. Through the translated concept of ‘Kosei’ (Gestaltung), it was restructured into a new educational model. At the center of this was the design education magazine Kosei Kyoiku, first published in 1932. By analyzing the discourse of the ‘Japanese essence’ presented in the magazine, this study aims to explore how the ideology reflecting the prosperity of the modern nation-state was projected onto modern design education.
Methods This study examines the publication background of the magazine Kosei Kyoiku, which was published from 1932 to 1935, and explores the nationalism embedded in the Japanese-style Bauhaus education. By comprehensively collecting and organizing major contributions, theoretical explanations, practical educational guides, editorial commentaries, and visual materials included throughout the entire run of the magazine, the study analyzes the discourse related to the ‘Japanese identity’ from two main perspectives. First, the study aims to clarify the formation process of nationalist educational discourse that sought to visually construct modern Japanese national identity as reflected in Kosei Kyoiku. Second, by analyzing special feature articles related to Korea and Manchuria published in the August 1932 issue, the study seeks to demonstrate how ‘Kosei Kyoiku-Japanaese style Bauhaus education’ functioned as a visual cultural strategy to reorganize the East Asian cultural hierarchy centered on Japan, operating as part of imperialist cultural politics.
Results This study aimes to analyze the educational practices and cultural identity discourses contained within various essays and visual materials featured in the design education magazine Kosei Kyoiku, published in Japan in the early 1930s. Japan at the time embraced the modern European design ideals, particularly the foundational form education of German Bauhaus, rather than merely imitate them. Instead, Japan sought to establish a unique modern design education under the new term ‘Kosei Kyoiku’, combining indigenous Japanese aesthetics, traditional sensibilities, and East Asian formal concepts to create a distinctly Japanese-style Bauhaus education. Furthermore, Kosei Kyoiku functioned as a platform for exploring how Japan could visualize its national identity within the universal language of modern design. By featuring special issues on design education in Korea and Manchuria, Kosei Kyoiku also revealed a cultural-political intent to reorganize the visual culture center within the empire.
Conclusions This study examines Kosei Kyoiku as a cultural and political space shaping Japanese modern design education through discourse analysis of articles published in the 1930s. This case illustrates how design education operated as a tool for internalizing cultural identity and reinforcing the national cultural politics. Records of Korean teacher Yu-reon Choi, who participated in and completed the ‘Tokokai’ training promoted in Kosei Kyoiku and authored the Dowakajidosemok(Drawing Course Guide), suggest a research direction for reexamining Korean modern design education in relation to the educational networks with Japan during the colonial period. In this regard, the analysis of Kosei Kyoiku goes beyond merely examining the characteristics of Japanese modern design education but provides crucial insights for reconsidering the formation context of Korean design history and design education history within the Japanese imperial educational networks and colonial visual culture structures.
Keywords:
Kosei Kyoiku, Bauhaus Reception, Modern Design Education, Japanese Cultural Identity, Nationalism, 구성교육, 바우하우스 수용, 근대적 디자인교육, 일본적 문화정체성, 국가주의1. 들어가며
본 연구의 목적은 1930년대 초 일본에서 발간된 디자인교육 잡지 『구성교육(構成敎育)』을 분석하여, 이 잡지에 담긴 디자인교육 담론 속 ‘일본적인 것’의 의미와 이를 통해 형성해 보고자 한 일본의 근대적 디자인과 국가적 정체성의 탐구 양상을 살피는 데 있다. 1932년부터 1935년까지 4년간 발간된 잡지 『구성교육』은 이러한 실험적 교육이념을 매개하는 핵심적인 장(場)이자 담론의 공간이었다. 이 잡지는 1930년대 중반 일본에 소개되기 시작한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 디자인교육을 탐색하며 일본식 근대적 디자인교육으로 새롭게 구축하기 시작한 ‘구성교육’의 기초조형·색채 이론·시각적 감각 훈련 등을 중심으로 연구해간 근대적 디자인교육 현장의 교육자들이 기고한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 잡지는 교육 이론서인 동시에 시각문화의 국가 정체성의 구축을 텍스트로 생산해낸 문화담론지의 역할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에서 『구성교육』에 기고된 글의 담론을 검토, 분석하기에 앞서 근대적 디자인교육과 연계된 이 잡지가 발간되었던 1932년경에는 아직 ‘디자인’이라고 하는 용어가 일본에 등장하고 있지 않음을 주지하고자 한다. 즉 『구성교육』에서는 근대사회에 등장한 물건을 고안하여 만드는 모든 행위를 포괄하여 논하면서 ‘도화교육(圖畫敎育)’, ‘수공교육(手工敎育)’, ‘신공예(新工藝)’, ‘구성(構成)’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디자인’이라고 하는 개념의 시원으로 언급된 것이라 먼저 언급해두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구체적으로는 다음 두 측면에서 잡지 『구성교육』의 담론을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 잡지 『구성교육』이 일본의 전통 조형 감각을 디자인교육의 내용으로 어떻게 통합하고, 근대 일본의 국가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구성하고자 했는지 국가주의적 교육 담론의 형성 과정을 밝힐 것이다. 둘째, 1932년 8월에 발행된 잡지 『구성교육』의 특집호 <향토공예(鄕土工藝)>에 실린 조선과 만주 관련 특집 기고문들을 분석함으로써, 이와 같은 내셔널리즘이 식민지·제국주의 확장의 논리와 어떻게 연결되어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문화 위계를 재편하려 했는지 시각문화 전략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일본적 내셔널리즘’이란 국민국가의 내부 결속을 도모하는 국가주의, ‘일본적인 것’을 우위에 두는 민족주의, 조선·만주 등 주변 식민지를 하위문화로 위치시키는 제국주의적 시각을 함께 포괄하여 지칭하도록 하겠다. 그리하여 이러한 분석을 통해 바우하우스 수용 이후 일본의 ‘구성교육’이 단순한 기술적 교육에 그치지 않고, 근대 일본의 정체성과 시각적 질서를 구성하는 문화적 기획이었음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1930년대는 일본의 디자인교육에 있어 중대한 전환기였다. 유럽 근대 디자인교육의 정점이었던 독일 바우하우스가 폐교되기 직전, 그 이념은 일본 지식인들과 교육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구성(構成)’은 1926년부터 1929년까지 일본 최초로 바우하우스에서 유학을 다녀온 미주타니 타케히코(水谷武彦, 1898~1969)가 독일어 ‘Gestaltung’이라는 단어를 일본어로 처음 번역한 것으로, 1930년 11월에 전국 중등학교 도화교원 강습회에서 <구성이란(構成とは)>이라는 제목하에 독일의 바우하우스 기초조형교육 체계를 강연했다(Katsumura, 1980). 이후 신건축공예학원(新建築工藝學院)을 설립하기 1년 전인 1931년에 신건축공예학원의 설립자인 가와키타 렌시치로(川喜田連七郎,1902~1975)와 <생활구성전람회(生活構成展覽會)>를 개최하면서 ‘구성교육’이라는 일본어 번역이 본격적으로 일본 사회에 소개되기 시작했다(Tsunemi, 2002). 일본식 바우하우스 교육인 ‘구성교육(構成敎育)’은 독일의 바우하우스 교육을 토대로 근대화되어가는 일본 사회에 실질적으로 대응하여 사용할 수 있는 실천적 의미의 일본화된 바우하우스식 교육이었다.
이러한 ‘구성교육’의 중심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1932년 창간된 디자인교육 전문 잡지 『구성교육』이다. 이 잡지는 단지 조형교육의 방법론에 대한 기술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이 서구의 근대적 디자인교육을 수용하여 어떻게 자국의 정체성을 시각화할 수 있는가를 탐색하는 사유의 장으로도 기능하였다. 나아가 1932년 8월 특집호에서는 조선과 만주 지역에서의 디자인교육에 대한 기획 특집들이 실려, ‘구성교육’이 제국 내 시각문화의 중심을 재편하고자 하는 문화정치적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본 연구는 1932년부터 1935년까지 4년간 발간된 『구성교육』 잡지 전권을 대상으로, 해당 잡지에 수록된 주요 기고문, 이론 해설, 교육 실기 안내, 편집자의 논평, 이미지 자료 등을 포괄적으로 수집·정리하였다. 이러한 1차 자료를 토대로 일본 고유의 미감과 전통을 기반으로 서구 근대 디자인 이념과 차별화된 ‘일본적인 근대 디자인교육’을 주제로 발표된 기고문을 발췌하여 그 논의를 검토, 분석할 것이다. 이를 통해 『구성교육』이라는 특정 잡지를 중심으로, 바우하우스의 국제적 이념이 일본의 문화정치적 욕망과 만나 어떻게 ‘일본적인 것’이라는 교육 담론으로 드러나게 되었는지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한국 디자인사·디자인교육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일본의 근대디자인교육의 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서구에서 직접 수입된 디자인교육 이론을 살펴보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다. 본 연구의 본문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잡지 『구성교육』에는 어떻게 디자인 교육을 통해 ‘일본적인 것’을 만들어내고자 했는지에 대한 국가주의적 교육이념이 구축되어 있는 한편, 1932년 8월에 발행된 <향토공예> 특집에서는 조선과 만주를 ‘향토적·원시적’ 대상으로 호명하며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도 하였다. 또한 잡지 『구성교육』에서 홍보되던 ‘동광회(桐光会, 일본식 발음으로 토우코카이)’의 여름 단기 도화과 강습회에는 조선인 교사인 최유련이 참여하여 수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잡지 『구성교육』에서 이론화된 일본식 바우하우스 교육이 조선의 도화과 지도와 수업 실천으로 전이되는 구체적 경로를 확인해 볼 수 있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잡지 『구성교육』에 대한 분석은 단순히 일본의 근대적 디자인교육의 양상을 살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 디자인사, 디자인교육사의 맥락을 일본 제국의 교육 네트워크와 식민지 시각문화 구조 속에서 재고찰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2. 일본의 근대디자인 교육잡지 『구성교육(構成敎育)』 발행경위
잡지 『구성교육』은 도쿄고등사범학교(東京高等師範學校)1) [Fig.1] 교수였던 아베 시메키치(安部七五三吉, 1875~1941)를 중심으로 도쿄고등사범학교 도화수공전문 졸업생들에 의해 결성된 ‘동광회’에서 발간한 도화교육관련 교육자들의 기고문으로 구성된 교과전문잡지였다. ‘동광회’는 사범학교의 수공과(手工科)와 도화과(圖畫科)의 교원, 중학교 및 고등여자학교의 도화과(圖畫科) 교원을 양성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교원양성기관이었다. ‘동광회’의 중심 인물이었던 아베는 1875년에 오이타현에서 태어나, 오이타현 사범학교(大分県師範学校)를 거쳐 1902년에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같은 해 사가현사범학교(佐賀県師範学校) 교사로 재직한 후 1906년에 도쿄고등사범학교 조교수로 전임하면서, 일본수공연구회(日本手工研究会) 회장, 창작공예회(創作工芸会) 회장을 역임하며 일본의 근대적 디자인교육을 이끌어갔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아베는 ‘동광회’의 도화교과전문잡지인 『구성교육』뿐만 아니라 『고등소학교 수공과 새지도(高等小学校手工科新指導)』, 『소학교 수공작업 교수법 실제 (小学校手工作方教方の実際)』 등 디자인교육에 관한 다수의 교재를 발간했다.2)
잡지 『구성교육』은 ‘도화, 수공, 수예, 공업, 작업 교육’에 관한 내용으로 1932년 1월 1일 창간호부터 1935년 12월 1일 폐간까지 4년간 매월 발간하여 총 48권이 발간되었다. 잡지의 제목인 ‘구성교육’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식 바우하우스교육인 ‘구성교육’을 계승하고 있다. 잡지 『구성교육』에 실린 도쿄고등사범학교 학생들의 작품[Fig.2]을 보면 사진 속 가구(의자, 소파, 탁자)는 복잡한 장식 없이 심플한 직선과 직각, 기하학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핵심인 장식적 요소 배제와 기능에 충실한 단순한 디자인으로 제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의 글은 1932년 1월 창간호에 실린 ‘동광회’의 선언문으로 일본의 ‘구성교육’이 국가사회의 번성을 위해 실시하는 새로운 교육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 ‘구성교육’이 단순한 디자인교육이 아닌 일본 근대시각문화의 이념적 기반으로 한 문화정치적 실천을 위한 야심에서 시작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나라의 운명의 목적지까지 위대하고 공고한 기초를 쌓는 데에는 실로 우리와 관계된 도화, 수공, 공업교육의 진흥, 그리고 작업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 세계 각국은 모두 체험적인 실제 교육을 진흥시키고자 경쟁하고 있다. 개인과 함께 국가사회의 번성을 기하기 위해서 견실하고 신선한 교육을 발전시키고자 본 모임은 관련 기관지를 간행하고 도화, 수공, 수예, 공업, 작업교육의 전부에 걸친 문제를 다루며 철저하게 연구를 수행하고 그 목표와 관계있다면 서로 같은 연구기관으로서 변함없이 그 사상에 매진하고 탐구하고자 한다.3)
특히 동광회는 교원 대상의 여름 단기 도화과 강습회를 매년 8월초 10일간 개최했는데, 『구성교육』에 매년 5월부터 7월까지 학습자 모집공고[Fig.5]를 게재하였다. 여름 단기 도화과 강습회의 학생 모집공고를 보면 당시 동광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던 일본인 담당 교원들이 구성교육과 관련된 도화의 근대적 기초과목을 가르쳤다. 예를 들어 강습회 모집공고[Fig.5]를 보면 이타쿠라 산지(板倉賛治)가 도화교수법(図画教授法)을, 스즈카와 신이치(鈴川信一)가 용기화(用器画)를 가르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광회가 개최한 여름단기 도화과 강습회와 관련하여 일제강점기 대구사범학교부속소학교에서 조선인 교사로 근무하던 최유련(崔有鍊, 1917~1985)이 1938년 ‘동광회’의 여름단기 도화과 강습회에 참여한 기록[Fig.6]이 남아 있다. 최유련의 수료증에 표기된 내용을 보면, 이타쿠라 산지의 도화교수법, 스즈카와 신이치의 용기화 등 당시 ‘동광회’를 중심으로 가르치던 일본의 주요 근대적 디자인교육 내용을 학습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유련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식 바우하우스 교육을 기반으로 대구사범학교부속소학교에서 교사연구에 의한 실험적인 교육프로그램 『도화과지도세목(圖畫科指導細目)』을 1938년 7월에 발행하였다. 그리고 지도세목을 발행한 지 1달 후인 같은 해 8월에 교원연수로 동광회의 여름단기 도화과 강습회에 다녀온 것으로 보인다(Suh, 2025). 잡지 『구성교육』의 전권은 일본의 이바라키현(茨城県) 쓰쿠바시(つくば市)에 있는 쓰쿠바대학(筑波大学), 도쿄도(東京都) 마치다시(町田市)에 있는 타마가와대학(玉川大学), 군마현(群馬県) 마에바시시(前橋市)에 있는 군마대학(群馬大学)에 흩어져 소장되어 있으나 지금까지는 48권의 전권이 전부 존재하는지, 어느 대학의 도서관에 몇 권 몇 호가 소장되어 있는지는 온라인으로는 명확하게 검색되거나 그 소장처가 정확히 표로 정리된 적이 없었다. 본 연구에서는 현지 연구조사를 통해 잡지 『구성교육』이 소장되어 있다고 알려진 세 개의 대학 도서관을 방문하고 흩어져 있는 잡지의 소장처와 권수를 조사하여 <Table 1>과 같이 정리했다. <Table 1>을 보면 1933년 10월호 1권을 제외한 47권을 모두 소장되어 있으며, 이는 근대 일본의 바우하우스교육에 대한 자료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
Announcement for Learner Recruitment for the 4th Summer Drawing Course Hosted by Tokokai, Kosei Kyoiku, 1935, June.
Certificate of Completion for Yu-reon Choi issued by Tokokai, October 1938. Source: Yu-reon Choi’s family.
3. 잡지 『구성교육』 분석: ‘일본적인 것’의 교육내용과 담론
3. 1. 일본의 ‘구성교육(構成敎育)’과 내셔널리즘
<Table 2>와 [Fig.7], [Fig.8]은 1932년부터 1935년까지 발행된 잡지 『구성교육』에서 기고된 글 중에 서구의 기술과 조형 이론을 받아들이면서도 구성교육이라는 새로운 교육 담론을 통해 ‘일본적인 것’을 재정의하고 이를 국가 교육체제에 어떻게 편입시킬 것인가를 검토한 기고문이다. 게재된 글들이 다루고 있는 제목을 보더라도 바우하우스식 근대 조형 교육의 일본적 수용을 실험하는 동시에 단순한 미술, 디자인 훈련의 장을 넘어 ‘일본’이라는 국민적 자아 형성과 내셔널리즘적 가치를 살피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Articles published in the journal Kosei Kyoiku dealing with Japanese-style modern design education, arranged and translated by Heejung Suh
잡지 『구성교육』의 발행 초기부터 꾸준히 언급되고 있는 주제는 일본의 전통과 향토적 감각을 어떻게 근대적 디자인교육에 통합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예를 들어 마쿠 마사오의 「일본의 새공예」(1932년 2월), 히가시모토 사다하루의 「새로운 도화교과서 개정에 즈음해 새로운 일본의 도안을 구상하다」(1932년 7월), 후루야 마사토요시의 「민족전통과 일본화」(1932년 9월), 사이토 긴조의 「일본 정신의 강조와 구성교육」(1933년 12월), 나스다 스게루의 「수공교육에 있어서 일본적 취미의 동향」(1934년 6월)과 같은 기고문은 근대적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서구화된 형태의 가구나 공예가 등장하는 가운데 일본의 전통적 미의식을 되살려 학생들에게 민족적 정체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쿠(Miku, 1932)는 「일본의 새공예」에서 다음과 같이 서구적 디자인 형태의 수용 과정에서도 일본의 기후·풍토·민족성·생활 욕구에 맞추어 ‘민족성’에 기초하여 그것을 변형·발전시켜야 하며, 민족성에 뿌리를 둔 독자적 조형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를 강조하고 있다.
새 시대의 형태가 가지고 있는 무릇 구성적(構成的)인 표현파의 형태이다. 이 형태 아직 안정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생략)...지금까지 발달해온 공예미술을 보면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큰 특색을 가지고 있는데, 그 특성의 일본 문화는 우리나라의 기후풍토, 민족의 관습과 생활 욕구가 점차 만들어내 온 것이다. 조형의 특색을 만들어내는 제1의 조건은 바로 ‘민족성’이라고 생각한다...(생략)...외국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그것을 개조하고 변화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우리나라의 풍토와 ‘우리의 민족이 가지고 있던 생활 욕구’에 상응해야 하는 것이다. 정신문화와 함께 조형 문화도 다른 나라의 정복을 용서할 수 없다....(생략)...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더라도 그 나라보다 더 우수한 조형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은 우리 ‘일본 민족’이다...(생략)...세계적인 일본의 조형 문화를 알리는 것은 현대 일본인의 임무이다. 우리들에게는 선조의 붉은 피가 선명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Miku, 1932)
미쿠의 글에서 조형의 특색을 규정하는 제1의 조건을 ‘민족성’으로 제시하는 대목은 근대 디자인 담론이 형식·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혈통화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긴밀히 결합해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외국 문화를 수용하되 자국의 기후·풍토·생활 욕구에 맞게 ‘개조·변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서구 수용을 매개로 일본 문화의 우위성과 독자성을 정당화하는 내셔널리즘적 자기서사를 형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후루야(Furuya, 1932) 역시 「민족전통과 일본화」에서 서구로부터 수용된 근대적 도화교육은 ‘일본 국민의 민족성을 근간으로 한 민족미술교육’으로서의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다음의 후루야의 글을 통해 일본의 구성교육의 근간이 민족주의적 내셔널리즘을 기반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도화교육도 민족의 미술교육이라고 하는 점에 주목 받고 있으며, 국민의 도화교육은 민족의 미술교육이어야만 한다. 민족미술교육은 민족전통을 토대로 세우는 것이며 민족미술의 근간, 시대적 사상과 사회적 요구에 의해 발전해야만 한다. 지도자는 민족의 미술교육이라는 점에 중요한 의미를 두어야 하는 것이다. (Furuya, 1932)
후루야가 도화교육을 ‘민족의 미술교육’으로 한정하고 그 토대를 민족전통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을 보면, 미술·도화교육의 목표가 개별 감수성의 계발이 아니라 국민 정체성 형성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시대적 사상과 사회적 요구에 부합하는 민족미술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구성교육이 당시 일본의 국가주의적 요구와 긴밀히 호응하는 정책적·이념적 프로젝트였다는 점을 시사하며 이를 가르치는 교사는 내셔널리즘을 생산하는 이데올로기적 중개자로 설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스다(Nasuda, 1934)의 「수공교육에 있어서 일본적 취미의 동향」에서도 “이 향토적 색채의 풍부한 일본적 미술, 일본적 공예, 일본적 공업이 발전하고 세계적인 영향과 정신이 도입되는 가운데 새로운 일본적 물건, 일본 민족적 물건으로 발전하면 그것은 세계의 여러 민족을 향해 일본 미술, 일본 공예, 일본 공업에 대해 향토적이고 동양적인 특색을 뽐낼 수 있다.”라고 결론을 이끌고 있어, 한결같이 새로운 서구문화의 도입과 함께 일본적 취미를 일본 국민 전체가 지식으로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근대적 수공제작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히가시모토(Higasimoto, 1932) 역시 「새로운 도화교과서 개정에 즈음해 새로운 일본의 도안을 구상하다」에서 “현대 일본에 서양식 의복, 서양식 머리스타일, 서양풍의 생활이 수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생략)...새로운 일본에 새로운 일본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일본정신의 근원이 되는 고전정신에 입각하여 진정한 일본인으로서의 감각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라고 제안했다. 이와 같이 『구성교육』의 기고문들은 새로운 근대적 교육 담론을 통해 ‘일본적인 것’을 재정의하고 이를 국가 교육체계의 기초로 두고자 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예술적 이론과 표현방식을 일본화하여 개념을 수용하고자 한 기고문도 눈에 띄는데, 카와구치 시로의 「일본인의 색채 관념과 색채의 분류사고」(1932년 3월), 이시카와 야스오의 「일본예술과 몽타주」(1932년 4월)와 같은 기고문이다. 이들은 서구의 이론을 차용하면서도 일본적 맥락에서 이를 재해석하고 과학적인 개념정리를 제안했다. 예를 들어 카와구치(Kawaguchi, 1932)는 「일본인의 색채 관념과 색채의 분류사고」에서 “Green이라고 하는 영어는 일본어로 녹색(綠色)이지만, Green Leave를 일본어로 푸른 잎(靑葉)이라고 번역했을 때 스스로 이것이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영문인 Green이 녹(綠)색이라 일본어로 번역되는 반면, Green Leave는 청(靑)색의 이라는 일본어로 번역되어 Green이라고 하는 하나의 색채 단어가 어떨 때는 녹(綠)으로 어떨 때는 청(靑)으로 번역되는 등 과학적인 근거하에 통일이 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카와구치는 근대화되는 일본 사회에서 색채에 대한 분류와 용어의 통일이 필요함을 언급하며 서구로부터 소개된 먼셀의 색채개념과 분류, 그리고 발트의 색채개념과 분류를 검토하여 색채의 명칭을 과학적으로 통일해야 함을 제안했다.
서구이론을 수용하는 데 있어서 일본성에 대한 검토는 한결같이 논의되는데 이시카와(Ishikawa,1932)의 「일본예술과 몽타주」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발견된다. 이시가와는 근대적 영화미학으로 등장한 에이젠슈타인(Eisenstein, Sergei Mikhailovich)의 ‘몽타주(Montage)’이론에 주목하며, 영화의 개별적인 쇼트(shot)간의 이종결합, 비약적인 편집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의미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서구의 근대적 미학으로 등장한 몽타주에 대해 이미 일본의 전통적인 문화에도 그러한 미적 개념이 존재했음을 논증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이시카와는 에도시대(江戸時代) 후기의 우키요에 (浮世絵) 화가인 도슈사이 샤라쿠(東洲斎写楽, 생몰 불명확)가 그린 부조화적인 비율의 초상화, 각 장면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되지 않고 연계성 없이 구성된 가부키(歌舞伎) 연극의 구성, 서로 다른 문자가 합쳐서 제3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한자의 상형문자 구성법 등은 서구의 최신 몽타주 이론보다 앞서 일본의 전통문화에 이미 있는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일본 문화의 전반적인 부분은 영화의 새로운 수법이라고 하는 몽타주적 표현수법을 다분히 포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수법을 이해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고전을 깊게 음미하는 것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와 같이 『구성교육』의 기고문들을 통해 근대적 디자인과 예술 이론을 도입하면서도, 일본 고유의 전통과 민족성을 교육의 핵심 가치로 꾸준히 강조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근대적 디자인교육으로서의 일본의 구성교육은 내셔널리즘을 그 근간으로 하면서, 근대화와 서구화의 흐름 속에서도 전통과 문화적 정체성을 교육의 중심에 두고, 일본 국민의 민족적 단결을 도모하는 동시에 ‘일본적인 것’의 우위와 독자성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구성교육』의 내셔널리즘 담론이 일본 내부의 전통과 민족성을 교육을 통해 조직하고 있었다면,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일본적인 것’의 우위 담론이 제국 바깥, 곧 조선·타이완·만주를 향해 어떻게 시각적 위계를 구축하는 논리로 확장되었는가 하는 지점이다. 이어서 다음 장에서는 그렇게 만들어진 일본성이 식민지를 어떻게 ‘낙후된 타자’로 구성했는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3. 2. 제국주의 맥락에서의 디자인교육과 문화정체성
지금까지 ‘구성교육’의 내셔널리즘적 담론은 1930년대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성교육』의 1932년 8월 특집호 <향토공예>에서 일본의 각 지방의 향토공예에 대해 다루면서 같은 맥락에서 후반부에 후쿠다 토요키치(福田豊吉)의 「조선의 완구(朝鮮の玩具)」, 나카니시 엔지(中西延次)의 「타이완의 민예(台湾の民芸)」, 타니야마 데쓰오(谷山哲雄)의 「만주국 탈에 대해서(満州劇マスクについて)」라는 기고문이 게재되었다. 특집호에서 일본 지방도시의 맥락에서 식민지 국가들의 전통적 민예품에 대해 다룬 것은 조선, 타이완, 그리고 만주 등의 식민지를 일본의 낙후된 변방에 위치시키면서 일본의 문화적 우위성을 시각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이념적 수단으로도 활용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후쿠다(Fukuda, 1932)의 「조선의 완구」의 내용을 보면 고대의 원시 부족의 토템사상을 볼 수 있는 미개한 유물이 아시아 각지에 남아 있음을 언급하며 그 예로 조선의 장승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후쿠다는 “그것(조선의 장승)은 숭배와 경배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현대인(필주, 일본인)의 시각에서는 일종의 시골의 전원 예술로 하나로 여겨지며 이를 통해 과거를 그리게 된다”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원시 부족의 미신으로 수호신으로서 마을 어귀에 모신 장승에 대해 현대인인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마을의 이정표에 지나지 않는다고 논했다. 후쿠다가 제시한 조선의 향토공예에 대한 기고문과 사진은 『구성교육』에서 소개하고 있는 근대화된 일본의 생활 가구[Fig.9]와 대조된다. 후쿠다는 「조선의 완구」에서 조선의 향토공예에 관한 사진으로 ‘노천 취사장(露天炊事場)’[Fig. 10]이라 일컫고 야외에서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지펴 취사하는 장소의 사진을 소개하면서, 이에 대해 야외에 재미있게 자연기물이 진열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후쿠다는 텍스트에서 조선의 장승과 생활공간을 원시적 토템, 미신, 전원적 풍경으로 규정하는 한편, 지면에 실린 조선의 시각이미지로 이러한 인식을 강화하고자 했다.
사진 [Fig.9]과 [Fig.10]에 촬영되어 실린 시각기록을 대조하여 살펴보자. [Fig.9]의 파이프 가구 사진은 실내 공간에 직선과 직각, 금속 파이프 구조가 또렷하게 드러나도록 촬영되어, 장식이 배제된 기능적 가구와 정돈된 생활환경이 전면에 부각되어 있다. 반대로 [Fig.10]의 노천 취사장 사진은 울퉁불퉁한 지면 위에 솥과 돌, 나뭇가지가 뒤섞여 놓인 야외 풍경을 먼 거리에서 흐릿하게 담아, ‘정돈되지 않은 자연물의 나열’로 보이게 한다. 후쿠다가 이에 대해 “야외에 재미있게 자연기물이 진열된 곳”이라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향토적이지만 낙후된 생활양식’으로 읽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Fig.9]은 일본의 근대적, 실내 중심의 생활문화를, [Fig.10]은 식민지 조선의 전근대적, 야외 중심의 생활 풍경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대비하면서 근대/후진, 중심/변방의 위계를 자연스러운 사실처럼 구축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이러한 논리는 현대인이라는 위치의 일본인의 눈에 비친 낙후된 조선의 원시적 생활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근대화’라는 명분 아래 조선, 타이완, 그리고 만주를 일본의 지도를 받아야 할 낙후된 공간으로 설정하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자 한 논리와 맥을 함께 한다. 즉, 식민지 아시아국가의 향토적 공예품에 대해 다룬 1932년 8월의 특집호는 곧 제국주의의 연장선에서 바라볼 수 있으며 일본의 ‘구성교육’은 그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결국 잡지 『구성교육』은 근대적 디자인교육의 기초로 ‘일본적인 것’을 강조하면서 국민 내부의 결속을 위한 담론을 생산했을 뿐만 아니라 외부 타자를 지배하고 관리하는 제국주의적 논리로 전환되어 작동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일본의 근대적 디자인교육의 행보는 서구 모더니즘의 단순한 수용이나 자국의 전통적 미학을 탐구한 것을 넘어 근대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프로젝트를 위한 문화정치적 장치로도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
4. 결론: ‘일본적인 것’의 조형교육과 바우하우스 수용의 문화사적 의미
본 연구는 1930년대 초 일본에서 발간된 디자인교육 잡지 『구성교육』에 수록된 다양한 논고와 시각자료를 중심으로, 그 안에 담긴 교육적 실천과 문화정체성 담론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일본이 유럽의 근대 디자인 이념, 특히 독일의 바우하우스의 기초조형교육을 수용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일본 고유의 미의식, 전통 감수성, 동양적 조형 개념을 결합하여 일본식 바우하우스 교육이라는 독자적인 근대적 디자인교육을 ‘구성교육’이라는 새로운 명칭 아래 구축해내고자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잡지 『구성교육』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일본적인 것’의 교육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조형 이론과 색채 감각, 기초 구성 훈련 등의 방법론이 바우하우스에서 전래된 체계적이고 기능주의적인 원리를 면밀히 검토하고 이를 수용하고자 하면서도, 그 이론적 토대 위에 근대 일본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교육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해 국가적 기획으로서 근대적 디자인교육을 탐색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교육적 탐구는 일본의 ‘구성교육’이 단지 조형 능력의 향상이나 산업디자인 인력의 양성을 목표로 한 기술 교육이 아니라, 일본적 감수성을 내면화하고 근대국가를 함께 구현할 수 있는 국민 주체를 양성하고자 하는 문화정치적 교육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근대적 디자인교육에서 ‘일본적인 것’에 대한 탐구는 디자인교육을 매개로 근대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일본인을 만들어내고자 한 전체주의적 문화정치의 실천이기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잡지 『구성교육』에서 1932년 8월에 발간된 조선과 만주 관련 특집호 <향토공예>의 기고문들을 분석함으로써, ‘일본적인 것’을 기초조형의 핵심 가치로 설정한 ‘구성교육’이 단지 국내의 일본적 정체성 구축을 위한 교육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식민지 국가를 대상으로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문화 위계를 재편하려 했던 제국주의적 문화정치의 일환으로 작동했음을 규명해볼 수 있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본 연구의 분석을 통해 바우하우스 디자인교육의 일본식 수용으로 구축된 ‘구성교육’은 단순한 디자인교육 커리큘럼이 아니라, 일본 근대 시각문화의 이념적 기반이자 문화정치학적 실천이었다는 점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는 디자인교육이 문화 정체성을 내면화하는 도구이자 국가의 문화 정치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살펴보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잡지 『구성교육』에서 홍보된 ‘동광회’의 강습에 참여하고 수료한 조선인 교사 최유련의 활동에 대한 기록은 일제강점기 일본과의 교육 네트워크와의 관계에서 한국의 근대 디자인교육을 재검토해볼 수 있는 연구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Glossary
1) 도쿄고등사범학교는 1886년에 도쿄 간다구(神田区)(현재 분쿄구(文京区))에 ‘사범학교(師範學校)’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일본 최초의 중등교원 양성기관이었다. 1902년에 도쿄고등사범학교 (東京高等師範學校)로 이름을 개편한 후 1929년에는 대학 승격 운동으로 관립대학에 해당하는 도쿄문리과대학 (東京文理科大學)으로 승격되었으며, 전후 학제개혁으로 1949년 도쿄교육대학으로 발족했다가 1952년에 폐지되었다. 이후 1973년에 다시 도쿄교육대학을 모체로 하여 쓰쿠바대학(筑波大学)으로 발족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 『日本美術年鑑』昭和17年版, p.76.
3) 構成敎育』, 東邦社, 1932年1月.
Acknowledgments
This work was supported by 2023 the Japanese Studies Scholars of Next Generation Overseas Research Support Program (Hee Heui Keon Korea-Japan Foundation, Seoul)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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