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of Design Research
[ Article ]
Archives of Design Research - Vol. 37, No. 2, pp.433-447
ISSN: 1226-8046 (Print) 2288-298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May 2024
Received 31 Mar 2024 Revised 22 Apr 2024 Accepted 30 Apr 2024
DOI: https://doi.org/10.15187/adr.2024.05.37.2.433

일제강점기 궁궐 내 한-양 절충식 실내장식 도입 배경과 창덕궁 내전 벽지의 양식적 특성 규명

Jiyoung Lee이지영
Visual Art Institute,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서울대학교 조형연구소, 서울, 대한민국
Background and Stylistic Characteristics of The Joseon-Western Eclectic Interior Decoration: Wallpaper of Changdeokgung Palac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Correspondence to: Jiyoung Lee aplicot2@gmail.com

초록

연구배경 본 연구에서는 조선식 왕실 생활문화와 서양식 미적 취향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근대전환기 서양 실내양식이 수용된 경위와 당시 실내장식에 대한 인식의 변화상을 살펴보고, 최근의 조사를 통하여 발굴된 창덕궁 내전 영역의 벽지를 중심으로 양식적 특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식 궁궐 전각 내를 서양식으로 조성하는 한양 절충 실내장식이 지닌 의미와 조형적 특성을 조망해보고자 하였다.

연구방법 조형적 특성 분석에 앞서 궁궐 내 서양 벽지의 수용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선행 연구와 당시 신문기사를 통하여 일제강점기 서양 실내장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조선 궁궐의 성격변화를 살펴보았다. 분석 단계에서는 동일한 조형성을 지닌 동시대 영국에서 제작된 벽지와 비교분석이 이루어졌다. 분석대상과 비교군 간 고유한 양식적 특징을 드러내는 세부 요소들을 교차로 확인하면서 공통된 특징들을 추출하였고, 이에 기반하여 양식에 대한 해석을 시행하였다.

연구결과 창덕궁 내전의 절충식 실내공간 조성에 사용된 벽지에서 프랑스풍 벽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 밖에도 동시대 영국풍으로 지칭되었던 고딕과 중세 리바이벌 경향의 벽지 디자인, 향후 모던디자인으로 연계되는 아트앤크래프트 양식, 아르데코 양식의 벽지가 함께 사용되어 한양 절충의 방식에 있어 당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양식들이 다양하게 변주되어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결론 한양 절충식 실내장식은 한국만이 지닌 정치적, 경제적 전환의 상황 속에서 나타난 복합적인 문화산물이다. 이는 고종이 근대국가의 상징적 표상으로 채택하였던 서구 실내양식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서구화로 달라진 궁정생활 방식과 생활 미적 취향 요소가 궁궐에 반영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Abstract

Background In this study, We study the Western style interior decoration of Changdeokgung Palace accepted during the transition to modern times. At that time, the public’s awareness of Western-style interior decoration was growing, and the Joseon royal family was combining traditional court lifestyle with Western aesthetic tastes. We try to identify the stylistic characteristics of the wallpaper in the Heejeongdang and Deajojeon of Changdeokgung Palace, built in 1920. Through this, We extract the meaning and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the interior decoration of combining Joseon and Western style.

Methods We researched previous studies and newspaper articles at the time to find out the process of acceptance of Western wallpaper in the Joseon royal palace. Through this, We was able to confirm the social perception of Western interior decoration and changes in the character of Joseon palac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the analysis stage, We conducted a comparative analysis with wallpaper produced in the UK at the same time and had the same formative properties. We cross checked detailed elements with unique stylistic characteristics between the Changdeokgung Palace sample and the comparison group and extracted common features.

Results French style wallpaper was used most often in the construction of the Joseon-Western style interior space of Changdeokgung Palace. There were also wallpaper designs with a Gothic and medieval revival trend, which were referred to as contemporary British styles. Although rare cases, Art & Craft style and Art Deco style wallpaper, which continued with 20th century modern design, were used. As a result, styles popular in Europe at the time were used in various variations to achieve a compromise between Joseon and Western styles.

Conclusions The Joseon-Western eclectic interior decoration is a complex cultural result of South Korea’s unique political and economic transition. This is different from the Western interior style that King Gojong adopted as a symbol of the modern empire. The wallpapers of Changdeokgung Palace are valuable as an example of the process by which Western elements in palace interior decoration were transformed into elements of aesthetic taste in daily life.

Keywords:

Joseon-Western Eclectic Interior Decoration, Wallpapers of Korean Palace, French Style Wallpaper, 한양절충 실내장식, 프랑스풍 실내장식, 일제강점기, 궁궐 벽지

1. 서론

1.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조선 말기로부터 대한제국기를 지나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는 유교 이념에 입각한 전제군주제와 함께 조선 왕실의 전통과 풍속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로써 한국 전통 공간의 상징적 유형인 조선식 궁궐건축이 근대화의 흐름 속에서도 존속될 수 있었다. 그러나 왕실의 대내외적 지위 변화로 인하여 능동적이든 피동적이든 타국 문화의 수용은 거스를 수 없는 수순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는 당시 세계질서 속 패권국들의 왕궁 실내양식을 경운궁 내에 재현하는 계기가 되었고, 강제 한일합방 이후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법궁이 된 창덕궁에는 한양(韓洋) 절충양식이 시도되었다. 순종 재위 기간의 한양 절충식 실내장식 요소들은 조선식 왕실 생활문화와 서양식 미적 취향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궁궐 전각 조성에 있어 근대적 주체성이 발현된 특수한 사례이다.

이러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한양 절충식 실내장식은 문헌기록과 사진을 제외하면 실체가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실내장식의 특성상 수요자의 취향에 따라 쉽게 변형된다는 특성도 있지만,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1941년 2차 세계대전에 가담한 일본에 의한 물자동원과 수탈로 인하여 조선의 산업과 경제가 파탄에 다다르게 되면서 생활문화가 급속도로 궁핍해진 영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따른 왕실 폐지로 궁궐을 비롯한 왕실 일가의 재산들이 국유화를 거쳐 문화재로 지정되게 되었는데, 왜색 청산의 분위기 속에서 일제강점기 조성된 한양 절충양식 궁궐 전각은 일제의 잔재라는 부정적 대상으로 인식되며 본래의 모습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현재 창덕궁 내전에 남겨진 한양 절충식 실내장식의 흔적들은 제국의 상징적 표상으로 채택되었던 서구 실내양식이 미시적 주체들의 생활 미적 취향 요소로 전이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유일무이한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개항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실내장식재로서 벽지가 수용된 경위와 서양 실내장식에 대한 당시 인식의 변화상을 살펴보고, 최근의 조사를 통하여 발굴된 창덕궁 내전 영역의 벽지를 중심으로 각 사료가 지닌 양식적 특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실내공간 내에 전근대적 양식인 조선식과 근대 사이 절충과 혼용이라는 공존의 상태가 상당 기간 지속되었음을 밝힘으로써 근대 생활공간 영역까지 이국의 양식이 수용-전이-토착화되는 과정을 주체적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1. 2. 연구의 대상 및 방법

본 연구의 주요 대상은 대표적 한양 절충식 궁궐 전각인 희정당과 대조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권역을 구성하고 있는 창덕궁 내전 영역의 벽지이다. 희정당과 대조전은 1920년에 건립된 전각으로 전통 궁궐 공간의 근대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 유물이자 20세기 건립된 궁궐 전각을 대표하는 특징적인 문화유산이다(Chang. 2014). 그러나 실내장식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가 2021년과 2023년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추진한 <창덕궁 관람환경 개선공사>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두 차례의 조사과정을 통해 상당량의 실내장식재들이 수습되면서 한양 절충식 궁궐 실내장식에 대한 연구저변이 확장될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한양 절충식 실내양식에 대한 전반적인 특성과 경향을 규명하는 연구의 일환으로 당시 조사를 기록한 보고서에 기반하여 벽지에 대한 양식 규명을 시도하였음을 밝힌다.

연구는 크게 두 갈래로 구성되는데, 1단계는 문헌조사 및 분석의 단계이다. 선행 연구와 당시 신문기사를 통하여 첫째, 서양 벽지의 공급의 측면에서 근대전환기 서양 실내장식재의 유통환경과 당시 서양 실내장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살펴보고, 둘째 궁궐 내 서양 벽지의 수용과정으로써 조선 궁궐의 성격변화를 살펴보았다. 문헌 연구의 시대적 범위는 근대적 문물과 문화가 도입되기 시작한 개항기부터 창덕궁 대조전·희정당 영역이 조성되어 조선왕조의 궁궐로서 명맥을 유지하였던 일제강점기까지를 다루었다. 2단계는 사료분석 단계로 1920~21년 건립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벽지를 대상으로 양식 규명을 시행하였다. 1차적으로 선별된 사례들 간의 양식을 구별하기 위해 동일한 조형성을 지닌 당대의 영국 벽지와의 비교분석을 시행하였다. 이를 위해 영국의 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의 벽지 아카이브가 보유한 1890년부터 1930년까지의 벽지를 전수조사하였다. 패턴의 주제와 구성, 표현 디테일에 있어 가장 근접하는 사례들을 찾아 양식 구분의 기준으로 삼아 분석대상이 지닌 조형적 특징을 검토하여 양식을 판별하였다.


2. 한양 절충식 궁궐 실내장식 요소로서 서양 벽지 도입의 배경

2. 1. 근대전환기 서양 실내장식의 공급과 인식변화

1886년부터 1894년까지 한국에 체류하였던 미국인 길모어(W. Gilmore)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궁중을 중심으로 상류사회에 많은 서양가구가 들어왔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Shin. 1999)

“궁궐의 가구들은 대부분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이다. 왕의 처소에는 값비싼 서구풍의 가구들이 갖추어져 있다....수도에 거주하는 몇몇 부자들은 외국인 집에서 본 스프링 침대에 넋을 빼앗겨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그와 같은 침대를 구입했다. 중국인과 일본인이 운영하는 수도의 상점에는 각종 수입상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서구물품이 어떠한 경로로 국내에 유입되었는지에 관한 기록으로는 1884년부터 1905년까지 21년 동안 의료선교사와 외교관으로 활동한 알렌(Horase N. Allen)과 고종의 외교고문이었던 데니(Owen Nickerson Denny)의 기록이 있다. 알렌의 기록으로부터 공사관 가구를 비롯한 물품들은 국내 무역상회 및 홍콩을 통해 구입되었음이 확인되며, 데니 역시 상하이의 가구딜러를 통하여 서양가구를 주문하였다고 기록하였다고 한다(Choi, 2021). 이처럼 개항 초기에는 조선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왕실을 대상으로 건축자재, 생활용품, 약품 등 다양한 서구의 물품들이 서구로부터 직접 혹은 청나라나 일본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수입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반도 내 수요가 증가하면서 앨버트 테일러(Albert Taylor)의 테일러상회와 같이 국내 거류 외국인들이 경영하는 판매상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Choi, 2022).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는 표면적으로는 근대성의 일상화가 소비문화를 통해 좀 더 깊숙하게 침투하게 되었다(Kim, Yoon, Ko & Koh, 2010). 한반도에 들어와 있던 일본인들은 문화주택이라는 서양식을 지향한 주택을 지으면서 서양식으로 실내를 조성하였는데, 이와 더불어 조선인의 가옥인 한옥 내에 서양식으로 실내를 장식하는 경향 또한 일제강점기 이후 더욱 보편화되었다. 박채린과 이경아(Park, Lee, 2021)에 의하면, 이러한 현상은 상류에만 국한된 것으로 대개는 한옥의 온돌방을 활용하여 응접실을 두는 방식을 택하였다. 그들의 연구를 통해 일제강점기 상류층 주택의 응접실을 구성하는 실내장식 요소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주택 응접실의 바닥은 목재 또는 리놀륨(linolum)이나 코르크를 적용하고, 카펫을 깔았으며, 창덕궁 내전에서도 발견되는 고급 마룻바닥인 파케(parquet)공법이 적용된 경우도 있었다. 벽은 벽지 마감이 가장 많았으며, 영국 등의 외국산 벽지를 적용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또한 조선일보의 1931년 기사를 보면, 1930~40년경에 이르러서는 서양식 벽지로 실내를 도배하는 것이 손쉬운 실내장식법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Chosunilbo, 1931.10.7.).

“....지전에 가보면 서양도배지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대개는 빗싼 것이지만 아주 헐한 것도 잇습니다. ...빛깔로 말하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천정만은 흰 빛으로 바르십시오, 그러면 그 흰빛의 반사하여 방안이 환할 것입니다...”

1930, 40년대 이와 같이 서양식 실내장식이 확산되어 감에도 불구하고 직물, 벽지 등의 실내장식 자재와 가구 등은 여전히 수입을 통해 조달되었다. 김은정, 윤태영, 고수진, 고애란(Kim, Yoon, Ko & Koh, 2010)은 조선 내부의 자체 생산 및 공급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서양 수입품에 대한 선호가 점차 증가한 것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특히 일제의 정치적·행정적 비호로 일본 상점이 조선의 상권을 장악하는 반면, 조선인이나 외국인의 사업권이 제약됨에 따라 수많은 수입품들이 일본을 경유하여 수입되었다. 또한 국내 유통상점들은 수입품에 대해 늘어가는 국내 수요에 대응하여 점차 분야별로 전문화되어 갔다. 이에 따라 실내장식 자재 중 지류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지물포점도 등장하게 되었다. 경성 종로에 위치한 지물직수입무역상 ‘철남지물포’는 1920~30년대에 조선지, 외국산제지, 온돌유지, 서북도봉창지, 도배지, 서화 등 실내의장에 필요한 모든 지류를 취급하였고, 서양벽지를 비롯하여 외국산 제지를 원산지에서 직수입하여 도매, 매매하였다. 1924년과 25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는 그들이 게재한 [Figure 1]의 지면광고가 다수 확인된다.

Figure 1

Advertisement for ‘Cheolnamjimulpo’, an interior decoration stor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또한 1920~30년대에는 백화점들을 통해서도 일상적 소비문화의 대중적 접근이 확장되었던 시기로 백화점이 구비하는 품목은 의복, 가구, 직물, 잡화 등으로 다양하였으며, 실내장식재도 취급되었다. 김은정, 윤태영, 고수진, 고애란(Kim, Yoon, Ko & Ko, 2010)은 패션 소비재 측면에서 이 시기를 취향 주체가 확대되고, 이것이 상징 소비로 이어지는 소비문화의 근대성이 발현된 시기로 규정하였는데, 실내장식의 측면에서도 일제강점기 동안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2. 근대전환기 궁궐 성격 변화와 서양 실내장식의 수용

조선시대 궁궐은 유교적 기틀을 확립한 세종대왕이 국가의 의례체계 정비와 건축공사를 병행하며 현존하는 모습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즉 전통적 궁궐의 형식은 유교주의적 예치를 위한 공간적 바탕이었다(Cho, 2012). 크게 대규모 조회를 위한 정전, 일상적인 집무를 보는 편전, 일상생활을 위한 침전으로 구성되며, 정전과 편전의 경우 임금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의식의 절차, 사용자의 위치, 움직임 등이 배치와 규모, 형태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Cho, 2012). 이외에 단청과 도배지에서 색의 사용, 석물의 배치 등 꾸밈에 있어서도 유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원칙이 적용되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조선 궁궐의 양식적 특성은 큰 변화 없이 수백 년간 지속될 수 있었다.

조선식 궁궐 양식에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조선말기 고종 재위기부터이다. 고종은 법궁으로서 경복궁의 위상제고와 문호개방을 통한 개화정책을 추진하며, 근대적 국제관계 속에서 평등한 지위를 지닌 근대국가의 군주가 되고자 하였다(Hwang, 2008).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하며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는데, 대한제국의 성격은 만국공법 질서하의 자주독립 국가라는 근대적 국가 인식과 명나라의 정통을 우리 스스로가 이었다는 ‘주체적 중화의식’이 뒤섞인 것이었다(Cho, 2012). 이러한 맥락에서 궁궐은 근대국가의 황제로서 개혁성을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 유교적 세계관의 중심, 세계질서 속 제국의 왕궁이라는 이질적 상징성을 동시에 갖추어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통과 서양이라는 이질적 건축 양식이 공존하게 되었다. 대표적 양관인 석조전은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양식(Colonial style)으로 확산되었던 신고전주의 양식의 특성을 강하게 띠고 있으며, 실내공간은 영국의 네오 조지안(Neo Georgian) 양식으로 조성되었다(Choi, 2016).

고종의 독립국가의 선포 노력에도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였고, 1910년 강제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 황제는 이왕(李王)으로 격하되었으며, 대한제국 황실은 일본 궁내성에서 관리하는 왕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황실에 대한 대우를 결정하였기에 왕실 일가는 강제 병합 후에도 그 지위를 유지하였고, 조선의 국왕으로서 상징성은 유지될 수 있었다(Lee, 2016). 이러한 배경에서 1908~1909년 순종의 법궁이 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을 알현실로, 편전인 선정전을 소알현실로 변경하는 공사가 이루어졌다. 인정전 일곽은 조선의 방식에 더해 서양식을 첨가하는 반양제(半洋製)로, 대조전은 경복궁의 교태전의 재목을 사용하여 조선식 침전으로, 창덕궁의 편전이었던 희정당 권역은 서양식 접견공간으로 조성되었다. 그러나 1921년 2월 2일자 조선일보의 기사 <신건축한 대조전>의 기사에 따르면, 대조전과 희정당을 포함한 내전영역을 ‘순조선식’ 전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미 기재한 바와 같이 창덕궁 안 대조전은 대정 육년 불이 일어나 다시 개축공사에 착수하였던바, 평수는 일천여평이오, 건축경비는 칠십삼만여원으로 삼개년의 일자를 허비하야 순조선식의 대건축으로 작년납월경 준성한바...그 건축은 이왕가의 명령에 의하여 전혀 조선인 기술가를 고용하여 순조석식으로 화려하게 한바이라더라.”

창덕궁 궁역의 공간 변화를 연구한 장필구(Chang, 2014)는 당시 일본이 메이지궁 조영사업을 통해 일본 고유의 건축양식에 영국의 실내장식 양식을 주체적으로 접목하는 화양 절충양식을 도입한 경험이 희정당 권역의 조성에도 유의미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라 제시하였다. 또한 우동선(Woo, 2014)은 매일신보 1920년 10월 13일자 기사에서 희정당의 내부장식이 불국식(French Style)으로 변경되었다는 기록을 인용하며, 건축구조와 외관 이외에도 내부장식, 설비 및 배수 등이 근대적 기술을 접목한 절충식으로 조성되었음을 제시하였다. 그럼에도 당시 이를 순조선식 전각으로 소개한 것은 당시 문화통치를 표방하던 일본이 조선 내 왕실의 상징성과 영향력에 따른 조선 궁궐의 모습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간과할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외관은 불에 타기 전의 전각과 대략 같으며 대조전의 구조는 그 기초를 조선 고래의 건축법에 따라하고 또 내외의 장식은 불국식(佛國式)을 가미하여 매우 화미하고 가려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창덕궁 내전영역의 서구 양식 절충 경향은 알현실로의 사용성 변화뿐 아니라 당시 순종의 궁정생활 이면의 상황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왕무(Lee, 2014)의 연구에 따르면, 순종의 행보는 종묘를 비롯한 능원묘의 제사를 주제하고 외국사절의 알현을 받을 정도로 의례적 측면에서는 외견상 큰 변화 없이 종통(宗統)을 이어간다고 인식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왕가는 일본황실의 아래에 위치하였으며 별다른 실권을 행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순종은 의례주재와 순행(巡幸)활동을 제외하고는 창덕궁 내전에서 기거하며 보냈다. 이러한 배경에서 희정당과 대조전 일곽의 실내구성은 순종과 순종비의 궁정 생활 및 이에 대한 지원의 성격이 강했다. 또한 우동선과 기세황(Woo. Ki, 2014)은 1920년 1월 16일 매일신보에 수록된 조선인 건축기사 김륜구 씨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불국식으로 명시된 실내장식의 절충 시도가 궁궐이라는 상징성보다는 생활미적 취향요소로 다루어졌음을 제시하였다.

“건축물은 전부 구식으로 전 집과 비하여 대동소이할 것이오...전하께 당하여는 조선식 온돌이 제일 편하옵시겠기에 침전은 역시 온돌로 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내부 장식은 전부 서양식으로 하겠지만 아무쪼록은 전하의 취미의 맞으시도록 조심하였다.”

3. 창덕궁 내전 영역 내 서양벽지 도입의 배경 및 분석대상 선별

3. 1. 창덕궁 내전 영역 내 서양실내장식 도입 배경

수많은 기록에서 당시 절충식 내전 전각의 실내를 조선식과 서양식의 조화로 일컫고 있지만, 일부 흑백 도판 자료를 제외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어 그 분위기와 조형적 특징을 명확하게 판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창덕궁 희정당의 내부장식을 불국식으로 하였다는 기록을 통하여 다음을 가정해볼 수 있다. 첫째, 실내 장식재료와 물품의 산지가 프랑스였을 것, 둘째, 당시 프랑스풍으로 지칭되었던 특정한 양식을 따랐을 것이라는 점이다. 첫 번째 가정에 대하여는 대조전 옆 이발소에서 발견된 도배지에서 “TRADE MARK ENGLISH MADE R70689”라는 문구를 확인함으로써, 이외의 것들도 영국을 원산지로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두 번째 가정에 대하여는 기록상 당시 공사 재목의 조달 담당이 이왕직이었다는 점과 실내장식 공사의 담당이 일본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본의 시각에서 명명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였던 유럽 양식의 경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Figure 2

England patent number found on the wallpaper of Huijeongdang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급속한 서구화를 추진하면서 서양 문명을 인류 보편의 문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영국 문명을 최상의 문명으로 여겨 흠모하고 배우려고 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메이지 시대의 관료들은 영국의 빅토리안 양식(Victorian Style) 건축디자인에 심취하고 있었으며, 이를 일본풍과 절충하는 화-양 절충양식이 황실을 넘어 대중적 공간까지 저변을 확대해 갔다(Jordan Sand, 2000). 빅토리아 양식의 특징은 그리스, 로마 등의 고전주의 양식, 고딕을 근간으로 하는 영국의 중세적 양식, 프랑스풍으로 상징되는 바로크, 로코코 양식까지 이전 시대의 양식들을 통일성 없이 모방, 절충하여 화려함과 풍요로움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특히 종이벽지의 양산과 대중화로 직물 태피스트리(tapestry)나 고전 건축의 모티브 등을 모사한 패턴벽지들이 유통되면서 중세와 근세의 양식주의 시대 벽장식을 흉내 내는 실내장식이 중산층까지 확산될 수 있었다.

Figure 3

Meiji Palace interior decoration(출처: 工学会 編, 『明治工業史. 建築篇』, 工学会明治工業史発行所, 1927)

창덕궁의 내전이 조성된 1920년경은 당시 유럽 실내장식의 흐름을 주도하였던 영국의 빅토리아-에드워드 시기와 프랑스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기와도 일치한다. 양국 모두 다양한 역사적 양식들과 이국취향을 혼합하는 것이 이 시기의 특징이었다. 두 국가 모두의 영향력을 고려하더라도 앞서 기술하였던 바와 같이 영국-일본-한국의 관계를 고려할 때 대부분은 영국산 벽지가 일본인 무역상을 통하여 수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기록상의 불국식은 프랑스 양식의 특징을 반영한 디자인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식 전각이라는 건축 형식과 순종의 취향에 대한 고려가 반영되어 그 특성에 적합한 벽지의 최종 선택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1920년 창덕궁 내전 공사에 사용된 벽지들과 당시 영국에서 생산, 유통되었던 벽지들과의 비교를 통해 조형적 유사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양식적 특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3. 2. 연구대상 및 비교군 선별

창덕궁 내전의 조사를 기록한 <창덕궁 대조전 및 희정당 관람환경 개선공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조사를 통해 희정당 영역에서 총 35종의 벽지가 수습되었고, 2023년 대조전 영역에서 새로운 유형의 도배지 총 32종이 수습되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1920년 건립 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최초 도배지는 총 25종이다. 이 중 창호나 가구에서 발견된 사례는 건축 구조체에 도배된 것들과는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여 이번 분석에서는 제외하였다. 또한 대조전의 벽에서 발견된 벽지 1종도 시료가 너무 작아 분석이 불가하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선별된 벽지는 총 12종이다. 창덕궁 내전 영역은 여러 채의 전각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크게 귀빈의 접견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희정당과 순종과 순종비의 생활영역인 대조전 영역으로 구분한다. 내전 영역에서 각 벽지가 발견된 세부적인 장소는 [Table 1]과 같다.

The room inside Changdeokgung Palace where the wallpaper was discovered

1차적으로 선별된 사례들의 양식을 구별하기 위해 동일한 조형성을 지닌 당대의 영국 벽지와의 비교분석을 시행하였다. 이를 위해 영국의 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의 벽지 아카이브가 보유한 1890년부터 1930년까지의 벽지를 전수조사하였다. 1차 목표는 분석대상과 동일한 사례를 찾는 것이었으나 일치하는 사례는 발견하지 못하였으며, 패턴의 주제와 구성, 표현 디테일에 있어 가장 근접하는 사례들을 찾았다. 분석대상과 아카이브로부터 추출된 비교군은 [Table 2]와 같이 좌우로 병렬하여 정리하였으며, 각 사료는 알파벳으로 구분하였다. 아카이브로부터 선별된 벽지를 비교군으로 삼아 분석대상이 지닌 고유한 세부 특징을 교차로 확인하면서 공통된 특징들을 추출하였고, 추출된 요소가 지닌 조형 특징에 기반하여 양식에 대한 해석을 시행하였다. 양식의 판별과 해석은 일차적으로 박물관 아카이브상 기재된 스크립트를 준용하였고, 19세기 후반에 발간된 실내장식 관련 서적, 영국과 미국에서 발간된 문화재 건축물의 벽지 관련 도서를 참고하였다.

Changdeokgung Palace wallpaper and comparison examples


4. 한양 절충식 궁궐 전각 내 벽지의 양식적 특성

4. 1. 벽지 양식 분석

A와 L 사례는 중심모티브 둘레를 연속된 곡선의 장식 테두리로 두른 형태를 구성하고 있다. 섬세한 나뭇잎과 꽃줄로 구성된 아라베스크 스크롤(scroll)은 로코코 양식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징으로 로코코 리바이벌의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cahrd C. Nilander, 1992). 영국 제작사 Allan, Cockshut & Co.에서 1914년까지 제작하였던 로코코 양식 벽지와 전반적인 유사성이 확인된다. 두 사례 모두 중심에 장미 다발(rococo rose)을 배치하였는데, A의 경우 장미 꽃다발 아래 종려나무 잎을 부채꼴 형태로 펼친 듯한 모양의 팔메트(palmette)를 두었다. 팔메트는 식물을 정형화된 형식으로 묘사하여 장식하는 그리스 양식의 특징 중 하나로 이후 르네상스, 바로크, 빅토리아 양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에서 고전주의 요소로 활용되었다(Jones, O., 2001). L의 경우 루이 16세 양식의 상징적 모티브인 리본이 함께 어우러져 로코코의 분위기가 더욱 강조된다.

B 사례는 세로방향의 장식띠를 배열하여 전체적으로 선형구도를 이루고 있다. 이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1837~1901) 이후 바로크풍의 바탕에 간결한 장식을 추구한 에드워드 시대(1901~1910)의 장식적 특징과 유사하다. 장식용 항아리(urn)를 정형화된 꽃잎 모티브인 파테라(paterae)가 받치고 있는 양각의 타원형 메달리온(medalion)을 중심에 배치하였는데, 고전양식을 차용하는 바로크적 특징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M. H. Birge & Sons Co.에서 1910년경 제작한 에드워딘 양식 벽지와 유사하다.

C 사례는 큰 꽃송이와 잎사귀가 사선방향으로 엇갈리며 배열되어 있으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규칙성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구성의 패턴은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영향으로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형식이 되었다(Cho, 2009). 전체적으로 적색을 띠며, 섬유의 결을 모방한 것 또한 특징이다. 바로크 시대의 실내장식재인 벨벳 태피스트리를 모방하여 실크직물에 양모 기모를 코팅한 벽지를 플록(flock)벽지라 하는데, 영국의 제작사인 Jeffrey & Co.에서 1900년까지 생산되었던 플록벽지와 C가 매우 유사하다. 당시 붉은색 플록벽지는 고급 실내장식을 상징하였다. 이후 종이 인쇄를 통하여 이에 대한 시각적 모방이 이루어지면서 유사한 분위기의 실내장식이 대중화될 수 있었는데, C는 그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D는 희정당 신관 영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벽지 문양으로 꽃다발과 식물의 잎과 줄기를 모티브로 한 C 형태의 아라베스크 곡선이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는 프랑스 루이 16세 스타일 실내장식에서 찾아볼 수 있는 후기 로코코 장식의 특징으로, 프랑스 벽지디자이너 폴 발린(Paul Balin)이 1873년 비엔나 박람회에 출품한 루이 16세 양식 벽지와 전체적 구도에서 유사성이 확인된다. 빅토리아 후기 이와 같이 꽃과 아라베스크풍의 스크롤 모티프로 패턴을 구성하는 루이 16세의 로코코풍이 재유행하게 되었는데(Recahrd C. Nilander, 1992), D에서 이러한 경향이 확인된다.

E 사례는 유일한 추상 기하학 패턴으로 회벽의 색감과 질감 묘사가 특징적이며, 연속된 사선전개로 치장벽돌(stucco brick)을 연상케 한다.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의 벽지 아카이브 중 1920년 영국에서 생산된 벽지들 중 이와 유사한 패턴들이 발견되는데 제작사나 디자이너에 대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의 아카이브 중 1930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폴 그뤵(Paul Gruin)의 인테리어 샘플북에 실린 아르데코풍(Art Deco Style) 인테리어 스케치에서 유사한 벽지 이미지를 찾을 수 있다.

F 사례는 짙은 벽돌색 바탕 위 큰 꽃송이와 잎사귀를 반복하여 패턴 배열에 있어서는 C와 유사하다. 19세기 퓨진(Pugin)은 중세건축에 반영된 식물장식을 소개하는 저서 <Floriated Ornament>를 발간하였는데, 이것이 윌리엄 모리스의 작품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오웬 존스(Owen Jones, 2001)는 꽃 장식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려는 윌리엄 모리스의 열정으로 양식화된 꽃과 식물의 흐르는 듯한 배열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그의 패턴들이 빅토리아 시대 디자인을 혁명적으로 바꾸었다고 평가하였다. F와 K는 그러한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G와 H 사례는 추상화된 꽃잎 도안(rosetta)을 중심에 두고 둘레를 원형 고리로 연결하여 사방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이처럼 띠를 땋고 엮어서 공간을 채우는 기하학적 패턴인 인터레이싱(interacing)은 아일랜드와 북유럽의 중세 초기 장식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19세기 말 영국의 고딕 리바이벌 양식에서 주로 차용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꽃문양 중심의 벽지패턴을 극복하고 기술과의 통합, 건축과의 통합을 추구하며 새로운 조형성을 제시하고자 했던 퓨진의 벽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퓨진은 1842년 도예가 허버트 민턴(Herbert Minton)과 <Early English Tile Patters>을 발간하면서 중세양식의 타일 패턴을 복원하기도 하였다(Owen Jones, 2001). G와 H는 전체적인 색감과 질감 표현에서 벽돌의 부조 장식이나 타일 문양과도 매우 유사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패턴의 벽지들은 빅토리아 시대 건축 외관의 특징과도 부합하여 조각이나 타일을 손쉽게 대체하기 위해 활용되었다.

I 사례는 C와 마찬가지로 고급 텍스타일을 모방한 벽지로 다마스크(damask) 양식의 직물을 모사한 것이다. 다마스크는 비잔틴과 중세 중동지역에서 발전한 직조기술로 자연물의 특징을 추상화한 형태가 특징이며, 16세기 이탈리아를 거쳐 17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나 당시 영국에서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스의 버네큘러한 특징으로 인식되곤 한다(Owen Jones, 2001). I의 경우 마치 금사로 짠 듯한 큼직한 연속 문양과 실크의 광택감을 표현한 디테일에서 더욱 중후하고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데, 실크로 직조된(woven silk) 다마스크는 중세 이탈리아에서 주로 제작되었다(Jenkins, David T., 2003). 20세기 초에는 바로크 리바이벌 양식의 영향으로 수많은 다마스크 패턴 벽지가 생산, 유통되었다.

J의 경우 팜트리와 올리브나무 등이 우거진 이국적 풍경을 묘사하고 있으며, 벽지 한 장이 하나의 장면을 구성하고 있다.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장 가브리엘 샤르베(Jean Gabriel Charvet)에 의해 중세의 벽화나 태피스트리를 모방하여 풍경을 거대한 파노라마로 연결하는 풍경 벽지(scenic wallpaper)가 유행하였다(Lim, 2003). 20세기 초 서양에서는 이러한 풍경 벽지가 웅장한 주택의 특징이었던 온실 및 정원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로 여겨지며, 고급 주택 장식기법으로 다시 선호되었다(Recahrd C. Nilander, 1992). 1906년 영국의 제조사인 Allan, Cockshut & Co.에서 제작한 벽지 중 이와 유사한 풍경 벽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전체적인 색감은 물론 자카드 직조의 세부묘사까지 J와 매우 유사함이 확인된다.

K 사례는 F 사례와 마찬가지로 20세기 초반 가장 선호되었던 유기적인 꽃문양 벽지로 패턴의 경계 없이 꽃송이와 잎이 밀도 있게 채워져 있다. 암갈색의 짙은 배경 위에 분홍색, 베이지색 꽃과 녹색 잎사귀가 어우러져 F에 비하여 조형적 구성은 물론 색감에서도 풍부함이 느껴진다. 자카드 원단의 태피스트리를 흉내 내기 위한 세밀한 점들이 표현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구도와 색감, 디테일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Allan, Cockshut & Co.가 1900년부터 1915년까지 제작했던 벽지와 매우 유사함이 확인되었다.

4. 2. 분석결과 종합

당시 유럽의 벽지 디자인은 당시 주요 생산국이었던, 영국, 프랑스 공통적으로 다양한 양식의 혼합과 재창조가 이루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을 모방한 것은 프랑스풍, 고딕과 중세적 양식을 모방한 것은 영국풍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희정당과 대조전 건립 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총 12개의 벽지를 분석한 결과 [Table 3]와 같이 바로크 리바이벌 경향이 4건, 로코코 리바이벌 경향이 각 3건, 고딕 리바이벌, 아트앤크래프트 양식이 각 2건, 아르데코 양식이 1건으로 분류되었다. 즉 창덕궁 내전의 절충식 실내공간 조성에 사용된 벽지에서 프랑스풍 벽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이를 통해 기록상 불국식 실내장식의 주요한 요소로 벽지가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동시대 영국풍으로 인식되었던 고딕과 중세 리바이벌 경향의 벽지 디자인, 향후 모던디자인으로 연계되는 아트앤크래프트 양식, 아르데코 양식의 벽지가 함께 사용되었음이 확인되면서 절충식 실내장식에 있어 당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양식들이 다양하게 변주되어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Results of analysis of the Changdeokgung Palace wallpaper‘s style

또한 각 벽지의 양식과 발견된 공간의 성격을 비교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함의를 도출하였다. 우선 외빈을 접대하는 영역인 희정당 신관 동측에서는 바로크와 로코코 리바이벌 양식이 집중된 반면, 직원들이 업무를 보거나 숙직하였던 희정당 서편의 관리영역에서는 고딕 리바이벌 경향의 벽지가 집중되어 있었다. 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대조전 권역의 경우 왕의 서재와 오락실, 이발소 등이 배치된 동측은 바로크 리바이벌 양식으로, 왕비의 영역인 서측은 꽃을 주제로 한 로코코 리바이벌 양식과 아트앤크래프트 양식의 벽지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공간의 사용 주체에 따라 적용되는 벽지 양식에 나름의 구분을 두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5. 결론 및 시사점

본 연구에서는 근대전환기 서양 실내양식이 수용된 경위와 당시 궁궐 실내장식 요소로 도입된 벽지가 지닌 구체적 양식을 규명하였다.

개항기부터 서양의 실내장식재는 중국, 일본의 무역항을 통하여 유입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는 한반도 내 수입상점과 백화점을 통하여 손쉽게 구매할 수 있을 만큼 취향 주체가 확대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일합방 이후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법궁이 된 창덕궁 내에도 조선식 왕실 생활문화와 미적 취향의 측면에서 서양식과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조선식 궁궐 전각 내를 서양식으로 조성하는 한양 절충 실내장식이 시도되었다. 그리고 서구적 이미지를 담당하는 주요한 소재로 벽지가 활용되었다.

각 벽지의 양식을 분석한 결과 1920년 창덕궁 내전의 절충식 실내공간 조성에 사용된 벽지의 다수는 프랑스풍 벽지였으며, 동시대 영국풍으로 통용되었던 고딕과 중세 리바이벌 경향의 벽지 디자인도 그 뒤를 이었다. 아울러 향후 모던디자인으로 연계되는 아트앤크래프트 양식, 아르데코 양식의 벽지가 함께 사용되었음이 확인되면서 절충식 실내장식에 있어 당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양식들이 다양하게 변주되어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종이벽지의 양산과 대중화로 다양한 역사적 양식들과 이국취향을 혼합하여 다양한 리바이벌 양식을 주도하였던 영국의 상황과 부합한다. 또한 당시 영국을 선망하며 빅토리안 양식을 일본풍과 절충하여 대중의 저변까지 확대시켰던 일본의 상황과도 일치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창덕궁 대조전 및 희정당 관람환경 개선공사 보고서>와 일제강점기 창덕궁 내전 영역을 연구한 우동선, 기세황(Woo. Ki, 2014)의 연구에서는 이를 일본으로부터 이식된 문화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서양 실내장식에 대한 물품과 지식의 유통이 일본을 경유함으로써 미치게 된 일본의 영향력은 간과할 수는 없으나, 궁정은 물론 상류사회에서 서양의 실내장식에 대한 경험이 이미 내재화되어 취향의 한 면을 이루고 있었음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변화된 창덕궁 내전 영역의 벽지 적용 양상을 분석한 결과 외빈 접대영역과 왕과 왕비의 생활영역에는 바로크와 로코코 리바이벌 경향이 집중되어 있었고, 고딕 리바이벌 경향은 관리영역에 집중되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순종의 영역에 프랑스풍 양식 벽지가 집중적으로 사용된 점은 공간 사용 주체를 의식한 선택이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즉 창덕궁 내전의 실내장식은 궁정 생활 방식과 서구적 장식요소가 결합되어 생활 미적 취향요소로 소비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한양 절충식 실내장식은 한국만이 지닌 정치적, 경제적 대전환의 상황 속에서 나타난 복합적인 문화 산물이다. 본 연구에서는 한양 절충식 실내장식이 지닌 특수성을 규명하기 위한 첫 단계 연구로 실내장식 요소 중 하나인 벽지를 조명하였다. 후속 연구를 통해 벽구조와 창호로 분석대상을 확대함으로써 한양 절충을 위해 시도된 조화의 원칙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시대 범위를 해방 이후로 확장시켜 한국의 생활공간 내에 서구 양식이 수용-전이-토착화되어 가는 과정을 맥락적으로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한국만의 독특한 공간적 유산들을 발굴하여 기록해 나갈 것이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23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3S1A5B5A16083145)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NRF-2023S1A5B5A16083145)

Notes

Citation: Lee, J. (2024). Background and Stylistic Characteristics of The Joseon-Western Eclectic Interior Decoration: Wallpaper of Changdeokgung Palac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7(2), 433-447.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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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Figure 1
Advertisement for ‘Cheolnamjimulpo’, an interior decoration stor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Figure 2

Figure 2
England patent number found on the wallpaper of Huijeongdang

Figure 3

Figure 3
Meiji Palace interior decoration(출처: 工学会 編, 『明治工業史. 建築篇』, 工学会明治工業史発行所, 1927)

Table 1

The room inside Changdeokgung Palace where the wallpaper was discovered

Cases Place where the Wallpaper was found Purpose of Space
A 희정당 귀빈실 접대영역(외빈)
B 희정당 현관-귀빈실 복도 접대영역(외빈)
C 희정당 귀빈실 화장실 접대영역(외빈)
D 희정당 귀빈실 복도 접대영역(외빈)
E 희정당 현관방 접대영역(외빈)
F 희정당 찬시실 관리영역(직원)
G 희정당 찬시실 복도 관리영역(직원)
H 희정당 찬시실 복도 관리영역(직원)
I 대조전 이발소 생활영역(왕)
J 대조전 흥복헌 생활영역(왕)
K 대조전 경훈각 생활영역(왕비)
L 대조전 함원전 생활영역(왕비)

Table 2

Changdeokgung Palace wallpaper and comparison examples

Analysis cases Comparison examples Analysis cases Comparison examples
(비교군 출처: https://collections.vam.ac.uk)
A,L 비교군 Produced by Allan, Cockshut & Co. English, 1900.
B 비교군 Produced by M. H. Birge & Sons Co. United States; 1900-1914.
C 비교군 Produced by Jeffrey & Co.; English, 1875-1900.
D 비교군 Designed by Paul Balin, Exhibited at the Vienna Exhibition of 1873.
E 비교군 Published by Paul Gruin. France, 1930.
F 비교군 Produced by Jeffrey & Co.,England, 1875-1925.
G,H 비교군 Produced by Sanderson & Sons Ltd. England, 1840-50.
I 비교군 Furnishing fabric of silk damask, Italy, 1620-1650.
J 비교군 Produced by Allan, Cockshut & Co. England, 1906.
K 비교군 Produced by Allan, Cockshut & Co. England, 1905-15.
A G
B H
C I
D J
E K
F L

Table 3

Results of analysis of the Changdeokgung Palace wallpaper‘s style

Cases Elements of Style Type of Style Purpose of Space
A 장식항아리, 메달리온, 세로꽃줄 바로크 리바이벌 접대영역(외빈)
B 로코코로즈, 팔메트, 스크롤 로코코 리바이벌 접대영역(외빈)
C 붉은 벨벳 태피스트리 질감 바로크 리바이벌 접대영역(외빈)
D 로코코로즈, 아라베스크 스크롤 로코코 리바이벌 접대영역(외빈)
E 추상기하학 아르데코 양식 접대영역(외빈)
F 꽃, 유기적 연속체 아트앤크래프트 양식 관리영역(직원)
G 인터레이스, 로제트 고딕 리바이벌 관리영역(직원)
H 인터레이스, 로제트 고딕 리바이벌 관리영역(직원)
I 다마스크, 실크질감 바로크 리바이벌 생활영역(왕)
J 파노라믹 풍경, 이국의 자연 바로크 리바이벌 생활영역(왕)
K 꽃, 유기적 연속체 아트앤크래프트 양식 생활영역(왕비)
L 로코코로즈, 리본 로코코 리바이벌 생활영역(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