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of Design Research
[ Article ]
Archives of Design Research - Vol. 29, No. 3, pp.175-187
ISSN: 1226-8046 (Print) 2288-298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Aug 2016
Received 17 Mar 2016 Revised 26 Mar 2016 Accepted 28 Mar 2016
DOI: https://doi.org/10.15187/adr.2016.08.29.3.175

Study on the Socio-Cultural Background of Unlimited Edition’s Success

OHChang Sup ; 오창섭
Department of Industrial Design, Konkuk University, Seoul, Korea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서울, 대한민국
‘언리미티드 에디션’ 활성화의 사회 문화적 배경에 대한 연구

Background Unlimited Edition is in rapid growth despite the recent economical recession. The scale of the event has increased rapidly, as has the number of visitors.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contents of Unlimited Edition being held annually since 2009 and reveal the socio-cultural background of its success.

Methods This paper uses the methods of literature review and participant observation to uncover the contents and properties of Unlimited Edition. The backgrounds of Unlimited Edition’s success are obtained through critical inference methods. Then I prove them using the method of descriptive arguments theoretically.

Results As a result of research, Unlimited Edition appeared and was activated due to the following factors. The first reason for its success is the change in the media environment. Since 2010, the number of smart phone users has been surging and SNS such as Facebook, Twitter, and Instagram have been popular. The second reason is the emergence of total designers who oversee planning, design, production, promotion, and distribution. They need a platform to distribute their works. The need is one of the factors that activated Unlimited Edition. The third factor is the widespread desire to confirm one’s identity through consumption. The younger generation seeks confirmation of their presence in society by purchasing the products exhibited in Unlimited Edition. Such consumer desire for identity confirmation is another factor contributing to success.

Conclusions There are several sociocultural factors in the emergence and success of Unlimited Edition. The factors described in this paper are the changes in the media, the emergence of total designers, and young people’s need to verify their identity.

초록

연구배경 최근 저성장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한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급속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행사 규모는 물론이고 찾는 방문객의 수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본 논문은 2009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어떠한 이유 때문에 급속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는지 그 사회, 문화적 배경을 밝히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방법 본 논문은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내용과 특성을 밝히기 위해 신문과 잡지의 관련기사를 확인하는 문헌연구와 참여 관찰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도출한 내용들의 사회,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비평적 추론의 방법을 통해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출현과 활성화 배경을 도출한 후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서술적 논증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연구결과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출현하고 활성화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첫째는 미디어 환경이 변화였다. 2010년경부터 급증한 스마트 폰과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가 활성화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둘째는 작가주의 디자이너의 출현이다. 기획, 디자인, 제작, 홍보, 유통을 총괄하는 새로운 창작 주체의 등장은 새로운 유통창구를 요구했고, 이러한 배경이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활성화하였다. 셋째, 자아 정체성 확인을 위한 소비 욕구가 작용하고 있었다. n포세대는 언리미티드 에디션과 같은 행사에 참여하고 그곳에서 전시 판매되는 상품들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데, 이러한 정체성 확인을 위한 소비 욕구가 또 하나의 활성화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결론 시각문화 생산물을 전시 판매하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출현과 활성화에는 일정한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본 논문은 미디어의 변화, 작가주의 디자이너의 출현, 젊은이들의 정체성 확인을 위한 소비 욕구라는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의 활성화 배경을 도출하였다.

Keywords:

Unlimited Edition, Independent Publishing, Visual Culture, Small Studio, 언리미티드 에디션, 독립출판, 시각문화, 소규모 스튜디오

1. 서론

1. 1. 배경 및 목적

지난 2015년 11월,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그곳에서 열렸던 제 7회 언리미티드 에디션 행사장에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는 방문객들의 줄이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독립출판을 중심으로 한 시각문화 생산물들을 전시 판매하는 행사로 2009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다.

이 행사가 대상으로 하는 독립출판은 내용이나 형식, 규모, 문제의식 등을 기준으로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 제작과 유통 프로세스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독립출판은 세부 영역으로 분업화된 기존 출판시스템을 따르지 않고, 특정 작가나 디자이너가 기획에서부터 내용, 디자인, 제작, 홍보, 유통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총괄적으로 담당하는 출판 방식이자 그 결과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립출판은 ‘1인 출판’이나 ‘소규모출판’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독립출판은 2000년대 중반부터 출현하기 시작해 2000년대 말에 이르러 본격적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독립출판의 활성화는 쏟아져 나오는 독립출판물을 판매할 수 있는 새로운 유통채널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소사이어티와 같이 독립출판물을 전문으로 다루는 서점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기 시작했고, 언리미티드 에디션도 그러한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시작된 2000년대 말은 두 번의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경제적 저성장 기조는 최근까지도 유지되고 있고, 성장에 대한 전망도 밝지 않은 상황이다.(Seoul Economy, 2015) 산업 전반의 이러한 불황은 디자인과 관련 분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Chosun Biz, 2015) 이렇듯 사회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7년간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급속한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행사 규모는 물론이고 찾는 방문객의 수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지속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이러한 맥락과 문제의식 속에서 본 논문은 2009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어떠한 이유 때문에 급속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는지 그 배경을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밝히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1. 2. 범위 및 방법

논문은 언리미티드 에디션 활성화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밝히기 위해 다음 두 가지 하위 문제를 두고 있다. 첫째,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그 특징은 무엇인가? 둘째, 참가자들과 방문객들을 불러 모으는 요인과 사회, 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내용과 특성은 2장에서,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흥행 이유와 배경은 3장에서 다루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내용과 문화적 특성은 신문과 잡지의 관련 기사를 분석한 후, 행사 참여 경험을 토대로 도출하였다. 이렇게 도출한 내용을 바탕으로 문헌연구와 비평적 추론의 방법을 통해 언리미티드 에디션 활성화의 배경을 밝힌 후, 이를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서술적 논증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2.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이해

2. 1. 언리미티드 에디션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독립출판물 유통 서점인 유어 마인드의 기획으로 2009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1회 행사는 상수동 인 더 페이퍼 빌딩 지하 1층 화랑에서 12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치러졌다. 22개 팀이 참여한 이 행사에는 900여명이 방문했다. 첫 번째 행사 이후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점차 규모를 키워나갔다. 2, 3회 행사는 논현동 쿤스트할레, 4, 5회 행사는 합정동 무대륙, 6회 행사는 이태원 복합문화공간 네모(NEMO)에서 개최되었다. 5회 행사에는 5000명, 6회 행사에는 8000명이 다녀갔다. 2015년 7회 행사는 광화문에 있는 일민미술관에서 열었는데, 178개 팀이 참가하여 1만 3000명이 다녀갔다. 방문자 수만 놓고 보더라도 7회에 이르는 동안 행사가 크게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참가팀은 사전 신청과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심사를 통해 참가가 확정된 팀들은 주최 측에 일정액의 비용을 지불하고 부스를 배당받는다. 각각의 부스는 칸막이로 구분되기 보다는 테이블에 의해 구분되는데, 테이블 위에는 판매할 참가자들의 작업 결과물이 진열된다. 참가자들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관람자이자 소비자인 방문객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자신들의 작업 결과물을 판매한다. 이러한 방식은 초기부터 유지되고 있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기본적인 구조라 할 수 있다.

초기만 해도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는 독립출판물, 다시 말해 도서가 주로 전시되고 팔렸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성격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문구와 음반, 포스터, 스티커, 굿즈 등 시각문화 일반으로 그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행사 기간 동안 세미나를 개최하여 행사의 밀도를 더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2015년에는 본 행사에 앞서 젊은 디자이너 40여명이 만든 포스터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포스터 온리’라는 부대행사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는데, 이는 행사의 확장이라는 맥락에서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단순한 도서 판매의 장 이상임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이전까지 시각문화 영역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통 이벤트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유사한 형태의 디자인 페어들이 있었지만, 독립출판을 매개로 디자인 결과물을 전시 판매하는 이벤트는 없었다. 이 행사의 참가자들은 전통적인 제도의 자기장에서 일정부분 벗어난 지점에서 기존의 움직임과는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는 젊은 창작자들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독립출판을 매개로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젊은 창작자들이 늘어나면서 소비 대중과의 접촉 필요성이 생겨났고, 그에 따라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새로운 유통 창구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현재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젊은 시각문화 생산자들과 향유자들의 관심과 호응 속에 새로운 디자인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대상만 다를 뿐 유사한 구조로 작동하는 행사들을 견인해내고 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과 유사한 구조와 작동방식을 보여주는 행사로는 과자전이나 굿즈가 대표적이다. 과자전은 말 그대로 수제 과자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행사다. 공업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들의 기획으로 2012년 한남동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언리미티드 에디션처럼 급속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발 행사이기는 했지만 굿즈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될 수 있는 이벤트였다. 굿즈는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장이다. 조선일보 기사(Chosun Daily News, 2005)에 따르면 2015년 10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굿즈에는 5일간 7000여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2. 2.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문화적 특징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다음과 같은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탈권위적이다. 한 인터뷰(gcolon, 2012)에서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기획자인 이로는 “권위적으로 포장된 전시의 형태를 거부”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다. 이러한 분위기는 행사의 매개물인 독립출판과 일정부분 공명하고 있는 결과라 할 수 있다. 독립출판물 역시 주제나 내용, 표현 방식에 있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독립출판의 자유로운 성격이 전통적 시스템에 비판적인 창작자들을 불러들이고, 그들의 자유롭고 탈권위적인 성향이 또 독립출판의 자유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7회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전시 판매된 「월간 잉여」, 「젖은 잡지」, 「털보고서」, 「후장사실주의」 등과 같은 진(Zine)들, 그리고 「맥주도감」, 「위대한 망가」, 「서울 미스테리한 장소 기행기」 등의 도서들은 기존의 진중한 주제들과 분명히 다르다. 그동안 주류 시각문화로부터 주목받지 못했던 영역과 금기시 되어왔던 영역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전시 판매되는 창작물에는 기존 권위에 대한 저항정신이 배어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시각문화 생산자와 향유자의 소통의 장이며 그들이 서로 섞이는 카니발적인 복합매체라 할 수 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많은 참가자들은 판매자일 뿐만 아니라 생산자이고, 디자이너이며, 동시에 기획자이기도 하다. 기존의 시각문화 생산방식의 경우는 기획과 디자인, 생산, 유통이 분리되어 있었으나 소규모 스튜디오나 독립출판이라는 새로운 흐름에서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기획, 디자인, 생산, 유통을 총괄하는 참가자들의 정체성은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고유성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복합적 정체성 때문에 참가자는 누구보다 전시 판매되는 작품의 작업 의도와 맥락을 잘 알고 있는 존재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누구보다 작품에 대해 정확하고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참가자들의 성격이 관람자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기획자인 이로는 행사의 소통적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2009년 처음으로 시작된 언리미티드 에디션(Unlimited Edition)은 책을 둘러싼 관계와 이야기, 홍보와 판매에 주력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판매 부스’를 통하여 일대일의 시장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관람자 혹은 구매자는 책의 제작자/구성원/아티스트와 직접 만나면서 즉흥적인 담론을 만들고 이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영감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gcolon, 2012)

인터뷰 내용은 시각문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고 소통하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성격이 기획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기획 의도에 따라 판매부스는 전시와 판매뿐만 아니라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된다.

소통은 참가자와 방문자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참가자들이 디자이너이자 기획자이기 때문에 이미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행사장에서는 참가자들끼리 소통하는 풍경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설령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참가자들은 작품을 매개로 서로의 작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자극을 주고받는다. 이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전시나 판매만이 아니라, 의견교환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이고, 생산자가 향유자가 되기도 하고 향유자가 생산자가 되기도 하는 복합적 문화의 장이라 할 수 있다.


3.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활성화 배경

3. 1. 미디어 환경의 변화

언리미티드 에디션 활성화에는 무엇보다 새롭게 형성된 미디어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찍이 마셜 맥루언(McLuhan, 2002, p.37)은 “인간의 행위”뿐만 아니라 “결사(結社)의 규모와 형태를 형성하고 제어하는 것이 바로 미디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신문이나 방송뿐만 아니라 시계, 자동차, 전화기, 텔레비전 등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인공물들을 미디어라 규정하였는데, 이러한 미디어는 사람들의 만나는 방식과 규모뿐만 아니라 삶의 내용과 형태를 결정하는 힘을 갖고 있다.

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미디어들을 만들어 낸다.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들은 기존 미디어들이 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지위를 변경하거나 역사 속으로 밀어낼 뿐만 아니라, 맥루언이 지적한 바와 같이 바로 그러한 작용을 통해 일상 주체들의 생활환경과 삶의 모습을 변화시킨다. 최근 가장 많은 미디어들을 쏟아내는 기술 분야는 아마도 디지털 정보기술 영역일 것이다. 이에 따라 인터넷, 컴퓨터, 그리고 다양한 통신 기기들은 현재 생활변화의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은 그러한 미디어들 중 대표적인 사물로, 다양한 어플리케이션들과 함께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정보통신진흥회 통계에 따르면 2014년 11월 현재 전국 스마트폰 사용자는 4000만 명에 이른다. 전 국민의 80%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작은 2007년 1월 애플이 선보인 아이폰이었다. 아이폰의 등장으로 이전까지 휴대용 단말기를 생산하던 각국의 통신기기업체들은 빠르게 스마트폰으로 관심을 돌렸다. 삼성은 2008년 11월에 옴니아를 선보였고, 노키아와 소니 등도 비슷한 시기에 스마트폰을 선보였다. 이후 휴대폰 시장은 스마트폰 시장으로 빠르게 재편되어갔다.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된 것은 2009년 11월의 일이다. 등장한지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국내에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은 휴대폰을 단순히 통신기기로 이해하는 이전까지의 관념을 해체하고 그 이상의 제품일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다양한 어플리케이션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에 따라 이전까지 삶에 자리하던 많은 사물들이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워크맨과 CD 플레이어의 뒤를 이어 모바일 뮤직 감상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던 MP3 플레이어마저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고,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네비게이터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한 쪽에서 기존 사물들이 수행하던 기능을 대신하는 어플리케이션들이 등장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쪽에서는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기능을 가진 새로운 어플리케이션들이 등장하며 일상의 모습과 관계방식을 바꾸어 나갔다. 그 결과 이제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건강을 체크하고, 외출하기 전에 날씨를 확인하며, 원거리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실내 제품들을 조작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특히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관련 어플리케이션은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새로운 시각문화 유통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이 어플리케이션들은 이전의 전통적인 미디어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다른 관계방식을 가져왔다. 전통적인 미디어의 경우는 신문이나 방송의 경우처럼 중심이 있고, 사람들은 그 중심에서 쏟아지는 정보를 단순히 수동적으로 소비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는 전통적인 미디어에서와 같은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미디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정보의 소비자가 될 수 있고, 동시에 생산자도 될 수 있는 것이다.

SNS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유사한 관심과 취향을 가진 이들을 찾아 나서고, 그들과 기꺼이 친구가 된다. ‘페친’이나 ‘트친’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사용자들은 SNS 상의 친구들이 올린 정보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정보의 생산자가 되어 정보들을 올리기도 한다. 그러면 관심을 공유한 친구들에 의해 정보들이 빠르게 공유되고 리트윗 되면서 급속하게 퍼져나가는 것이다.

SNS 상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내용을 보면 심각한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한 것들도 있지만,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보고, 듣고, 먹고, 만난 일상의 모든 이야기들이 활발하게 유통되는 것이다. 거대 서사가 힘을 잃은 포스트 모던한 이 세계(Lyotard, 1999, p.34)에서 SNS는 작은 서사를 유통시키고, 그 서사를 매개로 관심과 취향의 공동체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대상으로 취하고 있는 독립출판의 주 소비자층은 20대부터 30대 초반 여성들이다.(MBN, 2015) 그들은 어느 세대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익숙한 연령층이라 할 수 있다.(Edaily, 2015) 오늘날 자신이 관심 있는 정보와 일상의 모습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찾고, 찍고, 올리는 것은 그들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문화가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새로운 미디어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로 하여금 미디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과 관계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SNS 사용자들은 자신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장소나 현장을 찾아다닌다. 그곳에서 그들은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고, 올리고, 이야기를 남긴다. 이러한 관계방식을 자신들의 문화로 취하고 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독립출판물과 굿즈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매력적인 이벤트의 장이다. 실제로 그들은 행사기간은 물론이고, 행사기간 전후로 자신이 사용하는 SNS에 관련 내용을 경쟁적으로 올리고, 이에 따라 언리미티드 에디션 관련 내용들이 SNS를 타고 급속히 확산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새로운 미디어의 힘, 그리고 그 미디어의 힘에 따라 반응하는 방문객들의 행위는 박해천이 지적한 바와 같이 행사를 “특정 장소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 장소와 동기화된 참여자 개개인의 SNS 타임라인”(Park, 2015)으로까지 확장시킨다. 그렇게 행사가 SNS를 통해 행사장을 넘어서면서 자연스럽게 홍보가 이루어지고, 결국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인기 있는 이벤트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3. 2. 작가주의 디자이너의 등장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시작될 무렵인 2000년대 중후반부터 작가주의 디자이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작가주의 디자이너란 인 하우스 디자이너나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아 작업하는 디자이너와 달리, 자신의 고유한 취향이나 철학, 문제의식을 토대로 작업하는 새로운 디자이너 주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자신의 문제의식에 따라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에는 작가로서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작가주의 디자이너의 출현은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활성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대론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20,30대 디자이너들이 유년 시절을 보낸 90년대는 87년 민주항쟁과 3저 현상에 힘입은 경제 호황으로 미래에 대한 낙관적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했고, 중산층이 확대로 인해 대중 소비문화가 번창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기간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1997년의 IMF와 2008년 금융위기는 한국 사회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이전까지 유효했던 삶의 가치들과 작동방식은 무너졌고,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시장 논리와 치열한 경쟁이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찾아보기 어려운 저성장 시대의 문이 열린 것이다.

두 번의 외환위기 기간 동안 대학은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곳 중의 하나였다. 1990년 33.2%였던 대학 진학률은 2000년에 68%로 증가했고, 2005년에는 82.1%로 정점을 찍었다.(Yonhap News, 2011) 대학 졸업생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어려운 경제상황은 많은 졸업생들을 갈 곳 없는 백수로 만들어버렸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운 상황은 대학의 풍경을 변화시켰다. 취업이 이슈로 부상하면서 대학은 학문의 장이기보다는 취업준비기관으로 그 성격이 변화했다. 캠퍼스에는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 열풍이 휘몰아쳤고, 졸업연기와 휴학생들이 늘어났으며, 이전까지 대학생활의 축이었던 동아리들도 취업 관련 동아리들을 제외하고 급속히 몰락해갔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의 심화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의 확대를 가져왔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취업을 하지 못한 이들은 물론이고 취업을 한 이들의 미래도 암울하게 변해갔다.

이제 안정된 직장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떠올릴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2007년에 출간된 「88만원 세대」는 이러한 젊은 세대의 암울한 현실을 담아내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말이 등장했고, 최근에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세대라는 의미의 n포세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살기 힘든 현실을 풍자하는 합성어인 헬조선이라는 말도 등장했는데, 많은 이들에게 헬조선은 더 이상 냉소적인 현실의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디자인을 비롯한 예술 문화계라고 해서 이러한 사회적 움직임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디자인의 경우 앞서 이야기한 전반적인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산업구조의 변화가 추가적인 고통을 만들어 내었다. 한동안 아시아의 신흥국들과 함께 담당해왔던 세계 공장으로서의 역할은 중국으로 넘어갔고, 그에 따라 제조업에서 서비스 산업으로 산업구조가 빠르게 재편되어 갔다. 이는 결과적으로 디자인의 수요 축소를 가져왔고, 80년대 팽창한 여러 대학들에서 쏟아져 나온 예비 디자이너들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 사회적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은 취업의 기회만 감소시킨 게 아니었다. 디자인 수요가 감소하면서 디자인 전문 업체들의 경쟁은 치열해졌고, 그에 따라 디자인 단가는 하락했다. 때문에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업체들도 늘어났다. 생존을 위해서 디자인 전문 업체들은 낮은 단가의 디자인 일들이라도 해야만 했고, 이전과 같은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많은 일들을 수행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이 어렵사리 취업을 한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박봉과 야근에 시달리게 만들었고, 창작자로서의 자부심과 만족도를 하락시켰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나 독립출판과 같은 새로운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난 것은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취업이 어렵다면, 그리고 취업을 통해 디자이너로서의 자존감을 가지기 어렵다면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결과물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유통시킴으로써 창작자로서의 자존감도 회복하고 새로운 기회도 만들어보자는 태도가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와 독립출판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관심 이면에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자리한다.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의 활동이나 독립출판 활동에서는 이미 마련된 콘텐츠에 형태를 부여하는 전통적 디자인 업무를 넘어서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들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매개로 콘텐츠를 직접 생산한다. 기획과 디자인, 생산, 유통에 이르는 전 단계를 아우르며 작품, 혹은 제품을 오롯이 자신들의 창작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결과 이들은 이전과 다른 디자이너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기업이나 디자인 에이전시에 고용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작가로서의 능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아이템들이 간단한 서적이나 소품의 형태에 머물고 있기는 하지만 제품의 생산과정에서 형태 결정이라는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전체를 능동적으로 기획하고 총괄하는 새로운 작가주의 디자이너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젊은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프랑스대혁명 이후 유럽 미술계에서 일어난 변화 양상과 유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변화 이전의 화가들은 후원자의 비호아래 후원자가 원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들이 그린 그림들은 대부분 후원자가 요구하는 종교적 성화나 초상화였다. 무엇을 그릴까에 대한 의문은 가질 필요가 없었고, 후원자들의 주문에 화답해 그림을 생산하는 것만으로 화가들은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대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귀족이나 궁정을 중심으로 작동하던 후원자 시스템은 급속히 붕괴되었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화가들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내몰았다. 하지만 그것은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였다. 후원자가 사라진 지점에서 화가들은 무엇을 그릴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했고, 따라서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자신이 그리고 싶은 방식대로 그리는 자의식을 가진 주체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러한 흐름이 진행되면서 화가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졌다.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얼마나 창조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했는가가 화가와 그림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부상한 것이다. 19세기 이후의 미술사는 이러한 변화의 역사였고, 이에 대해 곰브리치(Gombrich, 2013, p.385)는 “용기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탐구하여 기존의 인습을 비판적으로 대담하게 검토하고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창조해낸 외로운 미술가들의 역사”라고 서술한 바 있다.

19세기 이후 화가들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직접 팔아야 했다. 몽마르트 언덕으로 화가들이 몰려든 것이 바로 이 시기였고, 파리가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한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몽마르트 언덕은 예술이 무엇인지를 논하고, 배우고, 서로의 작품들을 확인하고 거래하는 새로운 장이었다. 그곳은 거래의 장이면서, 소통의 장이이었고, 경쟁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고집하는 새로운 화가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곰브리치(Gombrich, 2013, p.382)는 이러한 변화로 인해 “사상 처음으로 미술은 개성 표현의 완벽한 수단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19세기 이후 미술계의 새로운 질서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최근의 경제적 어려움과 디자인 환경의 변화는 기존 시스템의 작동을 위협하고 있다. 그에 따라 젊은 디자이너들은 기존의 시스템의 질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기존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미술계의 질서가 만들어진 것처럼, 오늘날 젊은 디자이너들도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일군의 디자이너들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획, 콘텐츠 생산, 제작, 홍보, 판매를 총체적으로 담당하는 작가주의 디자이너로 변신하고 있다. 외부의 강요된 변화 속에서 탄생한 이들 새로운 디자인 주체들은 자신들이 활동할 무대를 필요로 했고, 이러한 그들의 요구가 자연스럽게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활성화하는 또 다른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3. 3. 자아 정체성 확인을 위한 소비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젊은이들이 환호하는 이면에는 자아 정체성 확인의 욕구가 자리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아란 무엇이며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확인되는 것인지에 대한 이론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일찍이 라캉은 거울단계론을 통해 자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밝힌 바 있다. 거울단계론은 “아직 신체 조직이 통합되지 않아 자기 손발조차 구분이 안 되는 생후 6개월 전후의 말 모르는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덩실거리며 자기 모습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절단된 신체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통합된 자아를 거울에 비친 이미지라는 형태로 획득하는 자아의 기원이 형성되는 과정”(Ataru, 2015, pp.41-42)을 의미한다. 라캉은 이 이론을 통해 자아가 외부에 자리한 이미지와 상상적으로 동일시함으로써 형성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상상적 동일시는 쉽게 어느 하나의 모습(소타자)에 안착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편집증 환자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며 망상에 시달리는 것처럼, 상상적 동일시 과정에서 자아는 증식하는 소타자들 사이를 이동하며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상상을 통한 동일시와 의심을 통한 부정, 그리고 재동일시라는 움직임의 무한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이것이 바로 너다.’라는 어떤 선언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대타자의 역할이다. 대타자의 호명에 화답함으로써 부유하던 자아는 하나의 자아상에 정박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상징계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이다.

사사키 아타루(Ataru, 2015, p.120)는 거울에 비친 이미지는 순수한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와 말이 섞인 그 무엇”이라고 설명함으로써 상징계와 상상계의 순차적 관계성을 부정한다. 대타자의 호명, 다시 말해 아이가 거울에 비친 이미지와 마주할 때 ‘이것이 바로 너다’라는 호명이 이미 거기에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호명 없이는 아이가 거울에 비친 이미지가 자기라고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호명은 언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이미지는 단순히 이미지가 아니라 언어와 결합된 무엇이 되고, 상상계와 상징계는 겹쳐서 작동하는 것이 된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결합을 가능하게 하고 그러한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바로 거울이다. 거울은 거울상을 만들어내고, 동일시를 가능하게 하며, 주체를 구성해 낸다. 거울은 도처에 있다. 주체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지각 가능하게 하는 모든 것이 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거울이라는 장치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존재의 한계이자 고유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상품은 거울의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그러한 상품과 상품의 소비를 통해서 확인하기 때문이다. 상품소비의 특징은 내가 동일시한 나의 모습을 타인들에게 상영한다는데 있다. 만일 “자기의식은 다른 자기의식의 인정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헤겔(Hegel, 2005, p.220)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타인들에게 자신이 동일시하는 자아상을 상영하고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아내는 것은 자아 정체성 확인의 중요한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상품의 소비는 단순히 물리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확인하고 드러내는 일종의 발화 행위이며, 따라서 일종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커뮤니케이션 활동일 수 있는 것은 사물들이 기호로 자리하고, 나름의 질서 속에서 출현하며 유통되기 때문이다. 보드리야르(Baudrillard, 1991, pp.103-104)는 “차이화된 기호로서 사물의 유통, 구입, 판매, 취득은 오늘날 우리들의 언어활동이며 코드인데, 그것에 의해서 사회 전체가 의사소통하고 서로에 대해 말한다. 이것이 소비의 구조이며 그 언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기호 소비를 통해 개인들은 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그러한 스타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받고자 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러한 질서를 따르는 소비행위가 그러한 질서의 존재를 증명하고 재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 질서를 벗어나려는 과격한 행위마저도 그 질서를 전제로, 그 질서를 참조하면서 이루어진다.

명품 소비는 자아 정체성 확인의 대표적인 소비 유형이다. 명품이라고 불리는 상품들은 희소성과 높은 가격 때문에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 바로 이러한 명품의 특성이 부유층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존재 증명을 위한 수단으로 그것을 소비하게 하는 것이다. 명품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명품은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거울상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거울상과 동일시할 수 있는 이들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명품의 소비를 통해 그들은 특별한 집단에 소속되었음을 확인하고 동시에 그 이외의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구별 짓는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방문하는 이들에게도 상품 소비를 통한 자아 정체성 확인이라는 구조가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그곳을 찾는 방문객들 대부분은 젊은 세대였다. 오늘날 그들은 n포세대로 표현될 만큼 암울한 상황에 처해있다. 하지만 암울한 세대인 그들에게도 자신의 정체성을 소비를 통해 확인받고자 하는 욕구가 존재한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바로 이러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소비 행태는 명품의 소비 행태와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상품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받는다는 점에서 둘은 유사하지만,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이루어지는 소비는 오히려 명품의 소비를 통해 자아를 확인받을 수 있는 일반적 세계로부터 벗어남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방문객들은 행사장을 방문함으로써, 전시 판매되는 상품들을 소비함으로써,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상에 자신이 구입한 상품들을 찍어 올리고 전시함으로써 일반적인 세계와 다른 세계에 자신이 속해 있음을 확인받으려 한다. 그들은 상품의 소비뿐만 아니라 장소의 소비, 사건의 소비, 더 나아가 소비 그 자체의 소비를 통해 소속을 확인하고, 그들 아닌 이들로부터 스스로를 구별 짓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들 아닌 이들이 자리하는 일반적인 세계가 부와 권력으로 서열을 나누는 새로울 것 없는 진부한 세계라면, 그들이 소속을 확인받으려는 다른 세계는 고유한 취향과 가치로 연결된 작고 새로운 세계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찾는 많은 이들은 소비 그 자체를 즐기며, 상품의 내용보다는 취향과 스타일의 소비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동일한 맥락에서 자신 기다리게 만드는 긴 줄도 그들에게는 소비의 대상일 수 있는 것이다.

작품의 메시지보다 취향과 스타일을 읽어내는데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행태는 오타쿠를 떠올리게 한다.(Azuma, 2001, p.27) 일반적 의미에서 오타쿠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PC, SF, 특수촬영, 피규어, 그 밖에 서로 깊이 연관된 일군의 서브컬처에 탐닉하는 사람들”(Azuma, 2001, p.17)을 뜻한다. 오타쿠를 이렇게 정의한다면 그들을 오타쿠라는 이름으로 담아내는 것이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카다 도시오가 지적한 바와 같이 만일 오타쿠를 “진화된 시각을 가진 인간이자 고도소비사회의 문화상황에 적응한 뉴타입”(Azuma, 2001, p.20)으로 본다면 그들은 오타쿠적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포스트 모던한 파편적인 사회에서 언리미티드 에디션과 그곳에서 전시 판매되는 창작물들을 매개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고, 그 공동체의 논리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받고 있는 것이다.


4. 결론

본 논문은 2009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어떠한 이유 때문에 급속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는지 그 배경을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밝히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독립출판물을 중심으로 시각문화 생산물을 전시 판매하는 이벤트로, 전통적인 제도의 자기장에서 일정부분 벗어나 기존의 움직임과는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는 젊은 창작자들이 만들어가는 행사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젊은 시각문화 생산자들과 향유자들의 관심과 호응 속에 나름의 고유한 디자인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연구결과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출현하고 활성화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첫째, 인터넷과 모바일 스마트기기의 출현과 확산이 활성화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기들은 기존의 정보 생산자와 소비자의 명확한 구분을 해체하고 생산자가 소비자가 되고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은 단순히 소통을 수월하게 할 뿐만 아니라 소통할 정보를 찾아 나서도록 만드는데, 바로 이러한 미디어의 힘이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홍보하고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둘째, 새롭게 출현한 작가주의 디자이너들이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콘텐츠를 형성하며 활성화를 견인하고 있었다. 두 번의 외환위기로 취업이 어려워지고, 취업을 하였더라도 만족감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면서 문화 예술계의 창작자들은 소규모 스튜디오나 독립출판과 같은 영역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기존의 분업화된 생산시스템을 거부하고 기획, 디자인, 제작, 홍보, 유통에 이르는 전 영역을 총괄함으로써 작가주의 디자이너로 발전하였다. 기존의 시스템을 거부하고 새로운 유통 채널을 모색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활성화하는 또 다른 배경이 되고 있었다.

셋째, 자아 정체성 확인을 위한 소비 욕구가 언리미티드 에디션 활성화의 또 다른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는다. 이전 세대가 명품 소비를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사회적으로 증명하고 타인들로부터 구별짓기를 했다면 오늘날 n포세대는 언리미티드 에디션과 같은 특별하고 자유로운 행사에 참여하고 그곳에서 독립출판물이나 굿즈와 같은 상품들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정체성 확인에 대한 욕구가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Acknowledgments

This work was done by 2013 Konkuk University Research Fund.

Notes

Citation : Oh, C. (2016). Study on the Socio-Cultural Background of Unlimited Edition’s Success. Archives of Design Research, 29 (3), 175-187.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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