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of Design Research
[ Article ]
Archives of Design Research - Vol. 31, No. 4, pp.189-201
ISSN: 1226-8046 (Print) 2288-298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Nov 2018
Received 25 Jul 2018 Revised 05 Aug 2018 Accepted 05 Aug 2018
DOI: https://doi.org/10.15187/adr.2018.11.31.4.189

1980년대 중후반 아파트 거실의 사물 배치에 대한 연구 : 여성지 『샘이깊은물』의 「볼만한 집치레」를 중심으로

Haecheon Park박해천
Department of Design, Dongyang University, Dongducheon, Korea 동양대학교 디자인학부, 동두천, 대한민국
The Arrangement of Objects in the Living Room of Korean Apartments in the mid to late 1980s

Correspondence to: Haecheon Park ecri11@naver.com

연구배경 1980년대 중후반, 한국의 중산층 일부는 경제 호황을 바탕으로 아파트 단지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새로운 형태의 일상문화를 일궈 나가고 있었다. 여성지 『샘이깊은물』의 고정 칼럼 「볼만한 집치레」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주목하면서 중산층 내 상위 집단의 주거 공간을 취재하고 그들의 취향과 안목을 소개했다. 이 칼럼은 나름의 편집 방향에 따라 선별·축적된 디자인 아카이브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연구방법 본 연구는 「볼만한 집치레」라는 렌즈를 통해 당시 중산층 내 상위 집단이 거주하던 아파트 거실 경관을 세밀하게 살펴보면서, 아파트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그들이 시도한 사물 배치의 내적 역학과 논리를 분석한다. 아파트 실내 공간의 질서가 만들어내는 ‘거실의 프레임’은 여기에서 중요한 분석의 도구로 활용된다.

연구결과 아파트를 중심으로 입식문화가 확산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사물 배치 전략이 등장한다. 「볼만한 집치레」의 사례를 중심으로 보자면, 박물관화 전략, 갤러리화 전략, 극장화 전략 등 세 가지 전략을 구분해볼 수 있다. 특히 이 전략들에 있어 거실의 프레임은 아파트 거주자들이 실내 공간을 응시하는 시선의 프레임이면서, 동시에 공간 분위기 연출에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사물 배치의 좌표계였다.

결론 「볼만한 집치레」에 소개된 아파트 거주자들은 장 보드리야르가 『사물의 체계』에서 정의한 '배치하는 인간형'과 유사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들은 자기 소유의 사물을 그저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물을 배치하고 정돈하고 통제하면서, 실내 공간의 분위기를 특정한 방향으로 연출한다. 거실의 프레임은 이들이 일상 소비문화의 새로운 주체로 자리를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Abstract

Background In the mid to late 1980s, the middle class in Korea rapidly grew based on the economic boom, and started to build a new everyday culture by designating apartment complexes as a place for living. 「A House Worth Seeing」, a fixed column for the women's magazine 『Saemigipunmul』, covered the housing spaces of the upper segment of the middle class and introduced their taste and design sense. The articles and photos in these columns have an important meaning as design archives selected and accumulated according to editorial direction.

Methods This study examines the internal dynamics and logic of the arrangement of objects in social and cultural contexts surrounding apartments, by taking a closer look at the living rooms introduced in 「A House Worth Seeing」. 'The frame of the living room' created by the organization of interior space is used as the main analysis tool.

Results Various types of object arrangement strategies emerged around apartments. Based on the examples introduced in 「A House Worth Seeing」, three strategies can be distinguished: museumization, gallerization, and theatricalization. The frame of the living room was a field of vision in which apartment dwellers gazed at their interior spaces, and at the same time a coordinate system of object arrangement which they must consider in order to fomulate their own organizational strategy.

Conclusions Apartment dwellers appearing in 「A House Worth Seeing」 shared similar aspects to "the arranging man" defined by Jean Baudrillard in 『The System of Objects』. They not only consumed their own objects, but also created an interior atmosphere in a particular direction, by placing, arranging and controlling objects. The framework of the living room played an important role in establishing them as a new subject form of consumer capitalism.

Keywords:

Apartment Living Room, The Frame Of The Living Room, The Arrangement of Objects, The Arranging Man, 아파트 거실, 거실의 프레임, 사물의 배치, 배치하는 인간

1. 서론

1. 1. 연구 배경 및 목적

『샘이깊은물』은 1984년 11월에 창간된 여성지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해왔듯이 이 잡지는 1936년생 발행인 한창기가 1976년에 창간했다가 1980년 8월호를 끝으로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된 『뿌리깊은나무』와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발행인과 발행처가 동일할 뿐만 아니라 기획·편집 방향, 한글 전용주의와 혁신적인 편집디자인 등에서도 연속적인 기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별성도 분명했다. 『뿌리깊은나무』는 1960년대 『사상계』의 뒤를 잇는 남성 교양잡지의 성격이 강했던 반면, 『샘이깊은물』은 『여원』이나 『여성동아』 등과 경쟁해야 하는 여성 종합잡지를 표방했다. 창간사에서 밝혔듯이 가정이 사회와 맺는 다양한 관계를 관찰하며 양자 간의 조화를 모색하겠다는 『샘이깊은물』의 기획 방향은 한편으로는 당시 전두환 정권의 정치적 탄압을 우회하려는 방편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성장과 함께 빠른 증가 추세를 보이던 새로운 세대의 중산층 여성을 독자층으로 상정한 결과이기도 했다.

본 논문이 연구 대상으로 다루려는 「볼만한 집치레」는 「이런 음식 한 가지」, 「잘 입은 한복」과 더불어 『샘이깊은물』의 핵심적인 연재 칼럼이자, 전통과 현대의 교차점으로서 일상의 의식주에 주목하는 기획 기사였다. 편집장을 역임한 바 있는 설호정은 이 칼럼들이 『샘이깊은물』의 여성지다움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발행인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반영된 대표 칼럼이었다고 말한다(Seol, 2008). 확실히 「볼만한 집치레」는 단순한 인테리어 소개 칼럼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중산층 내부의 상위 집단이라고 할 만한 교수, 사업가, 건축가, 디자이너, 예술가, 고학력 주부 등의 주거 공간을 취재 대상으로 삼으면서, 실제 그 공간 내부의 사물 배치를 주도한 거주자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담아내려고 시도했다. 물론 섭외 대상으로 선택되고 방문 취재를 거쳐 기사화되는 과정에서 편집진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 분명하지만, 그런 개입에도 불구하고 이 연재 칼럼은 1980년대 중후반에 중산층 내 상위 집단이 지녔던 미적 취향과 디자인 감각을 살펴보는 데 무척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당시 주거 공간에 대한 자료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 이 칼럼의 기사와 사진은 나름의 편집 방향에 따라 선별·축적된 디자인 아카이브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배경에서 「볼만한 집치레」라는 렌즈를 통해 당시 중산층 내 상위 집단이 거주하던 아파트 거실의 경관을 세밀하게 살펴보면서, 아파트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그들이 시도한 사물 배치의 내적 역학과 논리를 분석하고자 한다.

1. 2. 연구 방법 및 범위

본 연구는 1985년 1월호부터 1989년 12월호까지 5년간에 걸쳐 『샘이깊은물』에 게재된 총 60편의 「볼만한 집치레」 칼럼 중 아파트를 취재한 23편 칼럼의 기사 텍스트와 사진 이미지를 일차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되, 사물 배치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10편의 칼럼을 문헌 연구 중심으로 집중 분석한다. 필요에 따라 1990년대 초반의 칼럼도 언급할 것이다.

Contents of 「A House Worth Seeing」

본 연구가 연구 범위로 설정한 1980년대 중후반의 시기는 중산층이 고학력 사무직·전문직 종사자를 중심으로 급속히 증가하던 고도성장의 절정기였다. 실제로 1980년에 1.7%로 출발한 경제 성장률은 1981년부터 9년간 연 평균 7%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히 1983년에는 13.2%로 정점을 찍었고 1986년부터는 3저 호황의 여파로 11~12%대를 유지했다. 민간 소비 증가율 역시 경제 성장률과 보조를 맞추면서 가파른 속도로 증가했다. 1970년대 이래 지속되어온 정부의 소비 억제 기조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중산층 중심의 대량 소비 시대로 진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Lee, 2018).

또한 이 시기는 강남 등 한강 변의 단지형 아파트가 신시가지 개발 마무리와 2호선 완공, 8학군 형성과 88올림픽 개최 등을 거치면서 중산층의 주거 모델로 각광받기 시작하던 시점이기도 했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도입이 지연되는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생활수준 향상과 사회적 이동 가능성에 대한 낙관주의가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되었고(Lee, 2018), 중산층 일부는 바로 그러한 낙관주의를 동력원으로 삼아 아파트의 독특한 주거 형식과 긴밀히 상호작용하면서 일상의 소비문화를 새롭게 주조해 나가고 있었다.

실제로 「볼만한 집치레」 칼럼은 이런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이나 하듯이 아파트를 취재 대상으로 삼는 횟수를 늘려나갔다. 연재 초기인 1985년만 해도 1곳의 아파트밖에 다루지 않았지만, 이후 1986년 3곳, 1987년 6곳, 1988년 5곳, 그리고 1989년에는 8곳의 아파트를 다뤘다.


2. 사물 배치의 내적 역학: 거실의 프레임

본 논문의 주요 분석 대상 중 하나가 「볼만한 집치레」에 게재된 아파트 실내 경관 사진들이므로, 이 사진들의 특성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특히 「볼만한 집치레」의 4페이지 분량의 레이아웃에서, 첫 펼침 면의 한쪽 지면 전체를 차지한 큰 사이즈의 사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Figure 1 참조).

Figure 1

A layout of「A House Worth Seeing」 (December 1988 issue)

주로 이 사진은 방문객이 아파트의 현관문을 열고 실내에 들어섰을 때 처음 대면하게 되는 거실의 경관을 하나의 장면으로 포착해내는 데, 독자들이 실내 공간의 전반적인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반면, 다른 사진들은 거실 일부나 사물의 디테일을 담으면서, 이 큰 사진에 대한 시각적인 주석이자 부가적인 설명으로 기능한다. 즉 독자들은 큰 사진을 통해 전체적인 공간 정보를 숙지한 이후, 세부를 담은 사진들을 살펴보면서 기사를 읽어나간다.

그런데 여기서 큰 사진의 용도는 그저 지면 구성상의 정보 전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사진의 프레임은 당시 아파트 거주자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거실 공간을 응시하는 시선 역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좀 더 면밀히 검토하기 위해 1942년생 문학평론가 김현은 『뿌리깊은나무』 1978년 9월호에 발표했던 에세이를 살펴보자. 거기에서 그는 자신이 거주했던 32평 반포 주공아파트의 실내 공간이 지닌 특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물은 아파트에서 그 부피를 잃고 평면 위에 선으로 존재하는 그림과 같이 되어버린다. 모든 것은 한 평면 위에 나열되어 있다. 그래서 한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아파트에는 사람이나 물건이나 다 같이 자신을 숨길 데가 없다. 모든 것이 열려 있다. 그러나 그 열림은 깊이 있는 열림이 아니라 표피적인 열림이다."(Kim, 1993)

김현에 따르면 아파트 실내 공간에서 사물들은 내부의 시선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특히 이런 경향이 가장 강하게 나타는 공간은 거실이다. 거실을 바라보는 시선에게 내부의 사물들은 "평면 위에 선으로 존재하는 그림"처럼 보인다. 박해천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김현의 위 문장을 해석하면서, 거실 한쪽 벽면을 차지하는 베란다 창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거실을 바라보는 실내의 시선은 자동적으로 베란다 창으로 향하게 된다. 베란다 창이 시선의 맞은편에 자리한데다가 실내를 비추는 광원의 기능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란다 창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거실을 "한눈에 드러나게 만드는 '소실면'의 역할"도 한다. 베란다 창의 네 꼭짓점에서 뻗어 나온 직선들이 실내의 수평면과 수직면이 교차하는 선분을 따라 이동하면서 거실을 응시하는 시선을 투시도적 질서로 구획해버리기 때문이다. 박해천은 이와 같은 시선과 소실면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거실의 사물들이 김현의 표현처럼 “한 평면 위에 존재하는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지적한다(Park, 2011). 바로 이 그림의 사각 틀을 ‘거실의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거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베란다 창을 비롯한 거실의 독특한 공간 질서와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내는 시야의 프레임을 의미한다. 확실히 김현은 아파트 거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 프레임의 개입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1987년 5월호의 「볼만한 집치레」에 소개된 1940년생 배천범 이화여대 미대 교수의 아파트 거실은 '거실의 프레임'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다(Figure 2 참조). 배천범 교수는 베란다 창에 채광뿐만 아니라 조망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부여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아파트의 지리적 위치 덕분이었다. 그의 아파트는 한강변 북쪽에 위치한 용산 이촌동의 고층 아파트였고, 거실에서는 남향의 베란다 창을 통해 아무런 장애물 없이 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이 아파트에 방문한 기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예상 밖의 눈부심에 잠시 주춤"했다고 술회한다. 현관에 들어서 거실을 바라보는 순간, 일반적인 실내 경관이 아니라 "시원히 트인 한강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배천범 교수는 조망의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거실의 프레임을 적극 활용한다. 베란다 창을 통유리로 설치했고 기존의 복잡한 격자무늬 난간을 간결한 디자인으로 바꿨다. 더 나아가 시선의 움직임에 방해가 될 만한 물건을 치우고 최소한의 세간으로 거실을 꾸몄다. 이에 따라 거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실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베란다 창 너머의 경관으로 시야를 확장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거실은 "시각적으로 널찍하고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Figure 2

Cheonbum Bae's living room

한편, 1985년 12월호에 소개된 1937년생 서양화가 김종학 서울대 교수의 아파트 거실은 배천범 교수의 사례와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거실의 프레임을 활용한다(Figure 3 참조). 김종학 교수는 13층에 위치한 베란다 창 바로 앞에 가림막을 세워두었다. "옛 한옥에서 떼어낸 방문"을 병풍과 같은 형태로 재활용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 가림막의 쓰임새는 명확했다. "을씨년스런 바깥 풍경"이 거실 내부로 진입하는 것을 막고, 나무 창살의 창호지를 통해 "들쭉날쭉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차분하게 골라"내는 것이다. 그는 베란다 창에 간접 채광의 기능만을 부여해 실내의 시선이 외부로 향하는 것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가림막으로 베란다 창의 존재를 시야에서 지워버린다. 결과적으로 거실은 외부와 차단된 공간으로 변모한다.

Figure 3

Jonghak Kim's living room

위 두 가지 사례는 양 극단에 속하는 것이긴 하지만, 베란다 창을 중심으로 '거실의 프레임'이 실제 아파트 거주자들의 사물 배치 전략에 어떻게 관여하는 지를 보여준다. 즉 배천범 교수는 베란다 창의 기능을 극대화함으로써 거실 공간을 한강 주변의 경관을 조망하기 위한 전망대로 변모시킨 반면, 김종학 교수는 베란다 창을 시각적으로 은폐함으로써 거실 공간을 전통 한옥의 방과 같은 형태로 변형한다. 양자 모두는 제 나름의 관점에서 베란다 창의 기능을 해석하고 사물들을 새롭게 배치한다. 이 과정은 거실의 프레임이 이들의 의사 결정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이 프레임을 통해 실내를 응시하면서 사물 배치의 방향을 결정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만한 집치레」의 사진에 담긴 거실의 프레임은 취재를 위해 방문한 기자의 시선, 지면을 통해 기사를 읽는 독자의 시선뿐만 아니라, 자신의 거실을 응시하는 아파트 거주자의 시선까지 중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기자와 독자뿐만 아니라, 실제 거주자에게도 거실 공간은 이 프레임을 통해 입방체 내부의 형태로 보이며, 그 내부의 사물들은 나름의 질서를 지닌 집합체처럼 전시된다. 그들에게 거실은 물건을 채우거나 비우는 상자나 다름없다. 거기에는 꾸며야 하는 벽이 있고, 깔아야 하는 바닥이 있으며, 무엇보다 사물을 세워둬야 하는 빈 공간이 있다. 「볼만한 집치레」는 이 공간을 비우고 채우고 꾸미는 과정에서 아파트 거주자들마다 나름대로 사물 배치의 논리를 만들고 실행에 옮긴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취재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그렇다면 거실의 프레임 내부에서 사물들은 어떻게 배치되는가? 배치의 논리는 거실의 프레임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정당화되는가?


3. ‘거실의 프레임’ 내부의 사물 배치 논리

『샘이깊은물』이 취재한 아파트 거실들을 검토해보면, 사물 배치의 논리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박물관화 전략, 갤러리화 전략, 텔레비전용 극장화 전략이 그것인데, ‘거실의 프레임’과의 관계 속에서 그 세부 논리를 살펴보자.

3. 1. 거실의 박물관화 전략

첫 번째, 박물관화 전략은 거주자가 취미 활동의 일환으로 수집한 특정한 사물들의 전시 공간으로 아파트 거실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김종학 교수의 거실은 이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Figure 3, 4 참조).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수집한 전통 가구, 조선 목기와 토기, 자기 같은 골동품들로 거실을 꾸민다. 그런데 단순히 골동품을 진열하는 수준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선별한 컬렉션의 배치를 통해 공간의 질서를 새롭게 재편한다. 앞서 살펴봤듯이 그 시작은 베란다 창 앞에 병풍 형태의 가림막을 세워두고 베란다 창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병풍 앞에 문갑을 배치하고 바닥에는 무늬 없는 돗자리를 깔아놓는다. 한쪽 벽면에는 삼층 찬장과 돈궤가, 맞은 편 벽면에는 찬장과 전통 가구가 놓여 있다. 문갑 위에는 무릎 연적과 나무 기러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양쪽 벽면의 가구들에는 붓통, 도자기, 촛대, 보살상 등 옛 사람들의 생활용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여기에는 나름의 원리가 있는데, 이를테면 장식이 없고 소박한 형태의 조선 목기는 홀로 나두면 초라하지만 여럿을 모아두면 묘한 장단이 생기며 거기에 토기나 백자를 얹어 악센트를 주면 더 보기 좋다는 식이다. 기자는 거실에 진열된 골동품들이 "장식적이지 않은 것을 선호하고 간결한 것을 좋아하는" 화가의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사진으로만 봐서는" 이 골동품들이 놓인 공간이 아파트 거실임을 알아채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김종학 교수가 자신의 거실에서 전통 한옥의 사랑방 실내를 복원한 듯한 "예스런"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Figure 4

Jonghak Kim's living room

박물관화 전략의 또 다른 사례는 1989년 1월호에 소개된 김희주 씨의 반포아파트 거실이다(figure 5 참조). 이 거실의 사물 배치에는 30년 넘게 천삼백 장 이상의 레코드를 모은 사업가 남편의 오디오 취향과 수집 이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특히 남편이 “골동품이나 다름없는” 빈티지 오디오를 선호한 탓에, 대형가구 크기의 덩치 큰 스테레오 스피커가 거실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그 사이에 앰프와 턴테이블 등 각종 오디오 기기들이 배치된 상태다. 베란다를 거실과 합쳤고 주방을 식당으로만 사용하는 대신 부엌 옆 작은 방을 부엌으로 개조했지만, 이러한 공간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오디오 세트는 여전히 실내 분위기를 규정하는 "가장 막강한 존재"다. 일단 목재로 만들어진 대형 스피커가 외관상 가구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내의 가구나 사물은 그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선택된다. "현대적이거나 금속성의 가구"는 선택 대상에서 제외되고, 거실 가구는 "갈색 가죽 소파"로, 텔레비전은 목재 캐비닛 형으로, 거실과 연결된 주방의 식탁 세트와 찬장 역시 스피커와 동일한 나무 재질로 선택된다. 심지어 거실과 주방의 바닥마저도 당시로서는 드물게 마루 바닥재를 깔았다. 목재의 색과 질감으로 시각적 일관성을 부여하려고 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김희주 씨의 거실은 빈티지 오디오가 설치된 클래식 음악 감상실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실제로 이 거실은 부부 친구들이 부담 없이 방문해 음악을 들으며 담소를 나누는 단골 모임 장소, 즉 사교적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Figure 5

Heeju Kim's living room

위에서 살펴봤듯이 김종학 교수와 김희주 씨의 거실이 보여주는 박물관화 전략은 사물의 전시를 통해 남성 가장의 취미 활동과 수집 이력을 가시화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 두 사례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사물이 원래 자리하고 있을 법한 공간의 질서를 복원한다. 양자 모두 거실의 프레임을 통해 자신의 공간을 바라보긴 하지만, 베란다 창의 소실면 기능과 타협하려고 하지 않는다. 즉 김종학 교수는 그 기능을 부정하고, 김희주 씨 남편은 무시한다. 이런 비타협적인 태도는 사실 이들이 1930년대 후반 혹은 1940년대 초반 태생 남성으로 오랜 기간 동안 수집 활동을 해왔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은 일본과 미국의 대중문화의 영향력 아래 학생 시절부터 특정 취향의 미적 감각을 키워왔고, 경제 활동의 시작과 함께 자신의 취미 활동을 문화적 소비의 형식으로 본격화했던 이들이다. 한창기는 1977년에 쓴 에세이에서 당시 새롭게 등장한 골동품 수집가 집단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언급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일본 수집가의 영향을 받은 전통적인 수집가 부류나, 치부의 수단으로 골동품의 상품 가치를 중요시하는 신흥 부자 부류가 이전까지 골동품 시장의 주요 소비자였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 이후 전통적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나름의 미적 감식안으로 조선시대 목가구나 토기, 민화 등을 수집하는 집단이 등장한다. 그들은 교수, 예술가, 건축가를 주축으로 한 젊은 세대의 중산층으로, 김종학 교수는 이 집단에서 유명 인사에 속했다(Han, 2007). 김희주 씨 남편 역시 그 취미 활동의 대상만 다를 뿐 이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청년기에 클래식 음악 감상을 시작해 활동의 영역을 오디오 구입과 음반 수집으로 확장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위 두 사례가 박물관화 전략을 전면화한 경우였다면, 이 전략을 부분적으로 차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경우 거실 구석이나 복도 끝자리에 소품으로 배치하는 식이다. 여기에서 골동품은 프레임 내부의 질서에 개입하지 못한 채,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는 소품 역할을 한다. 첫 번째 방향은 공간 연출의 미적 차원과 연관된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의 전통 가구들은 강남의 유명 화랑 주인이었던 박여숙의 표현을 빌리자면 눈에 확 드러나지 않지만 현대적인 감각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조형적 오브제로, 실내 공간의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두 번째 방향은 사물의 상징적 의미와 관련된다. 여기에서 골동품은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내력 있는 물건”으로서, 가계(家系)의 전근대적인 사회적 지위를 가시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를테면 1989년 7월호에 소개된 1941년생 불문학자 김화영 고려대 교수의 경우, 안방을 서재로 사용하면서 거기에 “눈에 띄는 골동품들, 이를테면 문갑이나 경상, 도자기, 족자 따위”를 배치했는데, 그것들은 경북 영주의 유학자였던 김 교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물품이었다.

3. 2. 거실의 갤러리화 전략

두 번째, 갤러리화 전략은 아파트 거실을 미술 작품의 전시 공간으로, 그러니까 갤러리의 화이트큐브를 모방해 연출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전시의 문법을 사물 배치의 논리로 전유한다는 점에서 박물관화 전략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물의 유형과 물성이 그와 다르며, 배치의 논리 역시 판이하게 다르다.

1989년 6월호에 소개된 이강희 씨의 거실은 갤러리화 전략의 한 극단을 보여준다(figre 6 참조). 이강희 씨는 화랑 일을 돕고 있는 친 언니의 도움으로 "거실이라기보다는 아예 화랑의 한 모퉁이 같"은 느낌을 주는데 사물 배치에 주안점을 둔다. 그림이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나름의 원칙을 세워 거실에 가구들을 배치한다. 그에 따르면 그 원칙이란 “세간의 수효를 줄이되, 낱낱의 물건은 디자인이 간결하면서도 보아도 부담이 안 가는 조형이나 소재의 것들로만” 선택하는 것, 그리고 “현대적인 감각이 강한 것들이나 금속이나 유리를 재료로 한 것들”은 피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 천장에도 화랑에서 사용하는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설치해, 천장 한 가운데서 아래로 내리 비추지 않고, 벽면의 그림을 비추면서 그 반사광으로 실내 전체를 은은하게 밝힌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그의 거실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사실상 벽면에 부착된 회화 작품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벽면은 흰색 벽지로, 바닥은 대리석 느낌의 회색 타일로 처리되었는데, 무채색의 배색이 주는 차가운 느낌을 줄이기 위해 바닥에는 약간 화려한 패턴 문양의 카펫을 깔았다.

Figure 6

Kanghee Lee's living room

이강희 씨의 거실이 갤러리화의 전략을 전면화한 사례라고 한다면, 잡지에 소개된 거실 상당수는 이 전략을 부분적으로 차용해 사물 배치의 논리로 활용한다. 이를테면, 1988년 12월호에 소개된 박은영 씨는 거실 한쪽 벽에 벽면 절반 크기의 대형 추상회화 작품을 걸어 놓는다(figure 7 참조). 그 맞은편 벽면에 놓인 소파는 사실상 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관람석의 구실을 한다. 그러나 소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파 앞 유리 탁자 둘레에 1인용 소파와 고전적 디자인의 의자를 두어 응접실의 형태로 가구를 배치한다. 박은영 씨가 가장 고심한 대목은 조명이었는데, 당시 유행하던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대신해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설치해 회화 작품을 돋보이도록 하고, 소파 양 옆 탁자 위에 램프와 스탠드를 배치한다.

Figure 7

Eunyoung Park's living room

이외의 사례들까지 포함해 종합하자면, 갤러리화 전략의 구체적 절차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거실 벽면과 천장을 아이보리색이나 흰색 벽지로 도배하고, 한쪽 벽면에 추상 회화 작품을 내건다. 둘째, 샹들리에 같은 화려한 조명등을 대신해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천장에 설치한다. 셋째, 주부의 취향에 따라 소파와 탁자를 선택해 그 맞은편에 배치한다. 여기에서 가구의 수는 최소한으로 줄인다. 이 일련의 절차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첫 단계, 즉 회화 작품을 벽면에 내거는 단계다. 갤러리화 전략을 실행한 이들 상당수는 인터뷰에서 당시 아파트 인테리어 경향이나 고급 가구 시장의 유행에 대해 거부감을 표명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기존의 집치레가 너무 복잡하고 어지럽다고 생각하며, 거실에서 가구를 비롯한 세간이 거주자의 허리 위로 올라가면 답답해 보인다고 지적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그들은 새롭게 생겨난 공백의 벽을 채우기 위해 회화 작품을 액자에 담아 부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에게 갤러리화 전략은 거실의 프레임 내부를 의도적으로 비워내기 위한 방편에 가깝다. 이를테면, 앞서 언급한 박은영 씨는 장식장이나 진열장 같은 가구가 거실 한쪽 벽면을 채우는 것을 막기 위해 벽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큰 화폭의 추상 회화를 걸었다. 또한 1987년 1월호에 소개된 재일교포 2세 출신의 김영 씨는 아파트 거실 한쪽 벽면에 “처음부터 딸려 있던 커다란 장이 너무나 눈에 걸리적”거려서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 시아버지가 준 장미 그림을 내걸고 그 밑에 “어른 허리춤 높이의 까만 수납장“을 두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벽에서 벽까지 꽉 찬” 기존의 집치레 방식을 우회하기 위해 벽면에 회화 작품을 내걸었던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거실의 프레임을 비우는 사전 정지 작업을 마무리한 후, 그 다음 단계에서 자신의 취향에 따라 소파와 탁자, 의자 등 가구를 선택하고 거실에 배치해 나름의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시도한다. 이를테면, 박은영 씨는 인테리어 잡지를 따로 구입해 볼 정도로 집안을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지만 보수적인 성격 탓에 지나치게 현대적인 디자인의 가구들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그는 "그런 가구들은 확실히 첫눈에는 훨씬 더 매력이 있겠지만" 보는 이에게 쉽게 싫증도 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또한 김영 씨는 벽면과 천장은 흰색으로, 바닥은 밝은 회색으로 처리하고 검정색의 소파, 탁자, 수납장으로 간략하게 거실을 꾸며 흑백의 선명한 대비가 도드라진다. 그녀가 보기에 국내 시장에서 유통되는 가구들은 “값은 비싸고 모양도 진부하고 단일화되어 있는 편”이라서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여기에서 갤러리화 전략의 실행자들이 주로 인테리어 디자인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여성 디자이너, 혹은 대학에서 생활미술을 전공했거나 실내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주부였다는 점도 주목해볼만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확실히 갤러리화 전략은 중산층 내 상위 집단의 여성들이 기존에 우세했던 사물 배치의 관습적인 논리와 단절을 시도하는 방편인 동시에, 자신의 안목과 취향을 선명하게 내세워 거실의 프레임 내부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는 수단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3. 3. 거실의 극장화 전략

주지하다시피, 1970년대 후반 이후 텔레비전은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면서 프로그램 편성 시간에 따라 시청자의 일상생활 리듬을 규율하는 미디어로서 위상을 확보해 가고 있었다(Lee, 2015). 거실의 극장화 전략이란 거실의 사물들을 텔레비전 시청을 위한 가족 전용 극장의 형태로 배치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기존의 단독 주택에서는 안방에 주로 놓여 있던 텔레비전이 아파트에서는 거실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다. 텔레비전의 기능과 위치를 사물 배치의 기준점으로 삼는 이 전략은 거실 내부의 시선의 위치와 방향을 고정시킨다는 점에서 갤러리화 전략과 부분적으로 일치되는 측면이 있다. 즉 갤리리화 전략에서 거실의 시선은 회화 작품을 응시하는 반면, 극장화 전략에서는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것이다.

1987년 8월호에 소개된 박순자 씨의 30평형대 아파트 거실은 극장화 전략의 초기 단계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figure 8 참조). 1978년에 완공된 잠실 주공 5단지는 복도식 아파트라서 거실은 그리 넓지 않았다. 당시 건설된 아파트의 평면은 거실보다는 각 방의 크기에 초점을 맞춰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박순자 씨는 "가구점을 하는 친구한테 받은 응접세트"와 "중고 매매 센터에서 구입한 정리장“을 각각 거실의 양쪽 벽면을 배치하고, 정리장 위에는 텔레비전과 오디오 기기들을 놓았다. 기자는 “수저나 포크, 주전자, 그릇들에 이르는 부엌살림부터 시계, 달력, 휴지통, 화병 따위의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전문회사를 운영하는 박순자 씨 남편의 손길을 닿지 않는 것이 없는 탓에 식당을 포함한 거실 공간이 “우수 디자인 전시실”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Figure 8

Sunja Park's living room

특히 기자가 주목하는 것은 거실이 비좁음에도 불구하고 가구들이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실내 분위기가 답답하거나 어수선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대적 사물과 옛 사물이 공존함에도 나무 소재 중심으로 감각적 일관성을 부여했고, 천장의 샹들리에를 스탠드 등으로 대체했으며, 벽면의 그림들은 눈높이 아래에 부착해 산만함을 줄였다. 그리고 이 모든 시도를 거실의 프레임 내부에서 최종적으로 완결하는 것은 극장화 전략이다. 기자의 표현대로 “제 아무리 디자인이 빼어나다 하더라도 개개의 사물들을 알맞은 자리에 적당히 늘어놓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거실의 프레임에서 사물들은 텔레비전과 소파의 관계 질서에 포섭되어 공간의 낭비 없이 제 자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개개의 사물들은 “크고 작음을 떠나 전체를 압도하듯이 버티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저마다를 드러내기보다는 마치 숨기듯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삭막한 단지 풍경을 감추”도록 베란다에 각종 화초들을 놓음으로써 베란다 창에는 채광의 기능만이 부여된다. 박순자 씨는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물 배치의 경제성을 성취한다.

극장화 전략의 좀 더 발전된 형태를 검토하기 위해, 연구 범위에서 벗어나긴 하지만, 1991년 2월호에 소개된 편집 디자이너 이영미 씨의 과천 연립주택식 주공아파트 거실을 살펴보도록 하자(figure 9 참조). 그는 거실의 한정된 공간을 최대한 넓게 보이게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먼저 거실 바닥은 회색 벽지로, 그리고 벽과 천장은 거의 흰색에 가까운 엷은 회색" 벽지로 통일한다. 그 다음은 최대한 세간을 줄이는 것이다. 텔레비전과 스테레오 오디오, 에어컨, 검은색 가죽 소파, 그리고 작은 반닫이 두 개가 그녀가 택한 거실 세간의 전부다. 그 세간조차도 벽면에 부착된 에어컨과 액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허리 아래 높이에 자리 잡고 있다. 벽에 가구를 세워놓지 않고, 장식용 세간도 들이지 않았다. 이런 노력 덕분에 거실은 "시각적으로 부담되지"도 않고 "답답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Figure 9

Youngmi Lee's living room

시간차와 거실 크기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영미 씨의 사례가 텔레비전과 소파의 관계 축을 중심으로 사물 배치의 경제성을 좀 더 발전적인 형태로 실현하는 데에는 텔레비전의 디자인 변화가 촉매제 역할을 했다. 1980년대 후반을 거치면서 텔레비전 브라운관은 점점 커졌으며, 브라운관 양편에는 스테레오 시스템이 부착되었고, 컨트롤 패널 역시 브라운관 오른쪽에서 하단부로 옮겨갔다. 제품의 외형 역시 검정색의 플라스틱 박스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와 같이 기하학적 단순성을 강화하는 형태의 변화는 텔레비전 주변의 전자제품뿐만 아니라 가구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박물관화 전략과 갤러리화 전략의 사례 상당수가 극장화 전략과는 달리 거실에 텔레비전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문화적 교양인의 정체성을 내면화한 중산층 내 상위 집단이 텔레비전을 통해 유통되는 대중문화 일반에 대해 지닐 법한 거부감의 표현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극장화 전략이 보여주듯이 사물 배치에서 강력한 힘을 지닌 텔레비전을 부부 침실에 배치하거나 아예 실내에 그 자리를 배정하지 않음으로써, 거실에서 박물관 전략이나 갤러리화 전략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한 선택의 결과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박순자 씨와 이영미 씨가 남편이나 본인이 디자인 직종에 종사하는 1950년대 생이라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앞서 박물관화 전략과 갤러리화 전략의 사례에서 살펴본 집단과는 세대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기도 했다.


4. 입식문화의 확산과 시선의 역학

‘거실의 프레임’과의 관계 속에서 사물 배치의 내적 역학과 논리를 좀 더 면밀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좌식문화에서 입식문화로의 이행이라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5년에 한창기는 『샘이깊은물』에 「거실과 앉음 자세」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발표한다. 한창기는 이 글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교육 및 공공시설에 의자가 보급되면서 공적 영역에서 좌식문화가 확산되었지만, 사적 영역, 특히 주거 공간에서는 여전히 '방바닥에 앉는 문화'가 지배적이라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자보다 바닥에 앉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꼈다. 그러다보니 형식적으로 응접세트를 구비해 두었지만 방문객이 들르면 편하게 바닥에 방석을 깔고 주저앉거나, 의자에 앉아 책을 보면서도 의자 위에 두 다리를 개고 앉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창기는 이와 같이 오랜 시간동안 형성된 좌식문화의 습속을 두고 "엉덩이의 귀소성"이라고 불렀다(Han, 2007).

실제로 1970년대 전반에 걸쳐 양옥식 단독주택이 보급되었음에도, 좌식문화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입식문화로의 이행이 본격화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서울의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완공됨에 따라 기존의 방 중심 거주 문화가 점차 약화되고 식침(食寢) 분리가 확산된 덕분이었다(Jeon, 2015). 이행의 과도기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앞서 살펴본 김종학 교수의 사물 배치 전략은 입식문화에 저항하려는 시도로 간주될 수도 있다. 실제로 당시 이런 사례는 그리 드물지 않았다. 1987년 2월호에 소개된 신혼주부 배현주 씨의 신방도 그런 사례 중 하나였다. 배현주 씨는 시부모님 아파트의 현관 옆 문간방에 신방을 꾸민다. 이십대 신혼부부의 방이라고 하기에는 뜻밖에도 한식의 방으로, 방바닥에는 “노란 종이 장판”을 깔고 벽과 천장에는 흰색으로 도배했다. 한쪽 벽에는 문갑과 그 양쪽에 두 개의 사층 탁자가, 다른 쪽 벽에는 혼수 물건이 담긴 사층 책장이 놓여 있다. 사층 책장 옆으로는 벽면을 따라 소반과 경대가 늘어서 있다. 배현주 씨는 세간을 최소화하면서 이 공간을 안방으로 꾸민다.

특히 좌식문화와 관련해 김종학 교수와 배현주 씨의 사례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실내 한 가운데를 차지한 '상'의 존재이다. 주지하다시피, 좌식 중심의 방 문화에서는 일상 사물을 손에 닿는 위치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상'은 거주자가 바닥에 앉은 채로 사물을 끌어 모으는데 유용하다. 반면 입식 중심의 실내 공간에서는 손이 닿는 거리에 사물을 둘 필요가 크지 않다. 의자에 앉았다가 잠시 일어나 이동했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와 앉는 것은 그리 번거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확실히 아파트의 거주자들은 입식문화에 익숙해질수록 사물 배치의 시각적 질서를 좀 더 면밀히 고려해볼 수 있었다. 일차적으로 일상 사물들이 손이 닿는 거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사물 배치의 시각적 질서를 일정 높이의 시선에서 조율해야 했기 때문이다. 즉 사물들은 더 이상 방바닥에 앉아 올려다보는 시선이 아니라, 의자나 소파에 앉아서 수평으로 응시하거나 똑바로 선 자세로 내려다보는 시선과 보조를 맞춰야만 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김종학 교수가 거실을 사랑방과 같은 형태로 구성해 놓은 이유는 앉은 자세의 익숙한 시선으로 자신이 수집한 골동품을 감상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압구정동에서 화랑을 운영하던 박여숙 씨의 집은 시선의 높이가 사물 배치에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1988년 3월호에 소개된 그의 집은 아파트가 아니라 남산 중턱에 위치한 단독 주택인데, 갤러리화 전략에 따라 실내 공간에 사물들을 배치했다. 일단 현관에서 거실을 거쳐 안방으로 이어지는 동선에는 '화랑'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그림과 조각품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집주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그림들 바로 밑이나 주변에 전통 가구들, 문갑이나 반닫이, 탁자 등을 위치시켜 놓았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 공간의 일상생활이 기본적으로 좌식문화를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벽에 걸린 그림들 역시 좌식문화의 눈높이에 맞춰 부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방바닥에 앉은 눈높이에서 그리 부담되지 않도록 될 수 있는 대로 낮"은 위치에 내걸렸다. 입식문화가 일반화된 아파트에서는 의자나 소파에 앉은 자세의 시선을 염두에 두고 그림을 걸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부착 위치의 차이가 바로 좌식문화와 입식문화 간에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시선의 높이 차이를 가시화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 도달하면 ‘거실의 프레임’이란 단순히 아파트 평면 구성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입식문화의 확산이라는 좀 더 거시적인 문화적 구조 변동의 맥락 속에서 아파트 실내의 공간 질서와 거주자의 감각적 경험이 상호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즉 ‘거실의 프레임’이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입식문화의 눈높이가 이미 존재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박물관화 전략 중 김종학 교수의 사례는 입식문화로의 이행에 대한 반작용이었던 반면, 갤러리화 전략과 극장화 전략의 사례들은 거실의 프레임을 사물 배치의 역학으로 수용해 그 이행에 적극 합류하려는 움직임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입식문화의 눈높이에 기반한 거실의 프레임은 이에 익숙치 못한 이들에게 불편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갤러리화 전략과 극장화 전략을 추구한 이들 대부분은 “간결하고 고전적인 가구들”을 거실에 배치해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시도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공간을 방문한 방문객들의 반응은 그와는 상반된 것이었다. 그들은 이 두 전략을 통해 세간을 최소화한 거실을 방문하고선 “텅 빈 것 같다”거나 “아무 것도 없어서 너무 썰렁하다”고 반응한다. 특히 연령대가 높은 방문객들은 “낯이 선 인상을 지워버리지 못”한 채, “한참 서먹서먹한 눈으로 집안을 둘러보고는” “시원해서 좋습니다”라거나 “차가운 사무실 같다”고 품평하기도 한다. 그들은 입식문화의 눈높이에, 그리고 거실의 프레임이 요구하는 사물 배치의 논리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갤러리화 전략과 극장화 전략이 거실의 프레임 내부에 나름의 질서로 사물을 배치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배치를 통해 또 다른 시선의 역학을 구성해낸다는 점이다. 양자 모두 거실 한쪽 벽면에 소파가 놓여 있으며, 그 맞은편에는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의 시선을 고정시킬 만한 대상이 자리 잡고 있다. 갤러리화 전략에서 그 대상은 벽면에 부착된 회화 작품이었고, 극장화 전략에서는 회화 작품보다는 조금 낮은 위치에 배치된 텔레비전이었다. 김현의 표현대로 거실의 프레임이 실내의 사물들을 “평면 위에 선으로 존재하는 그림”처럼 보이도록 만든다면, 갤러리화 전략과 극장화 전략은 그 프레임 내부에 새로운 시선의 역학을 구성하려고 시도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때의 시선은 거실 내부의 소파나 의자에 앉은 자세로, 즉 입식문화의 눈높이에서 특정 방향으로 실내를 응시하는 시선이었다.


5. 결론

주지하다시피 「볼만한 집치레」에 등장하는 아파트 거주자들은 나름의 문화적 소양을 갖춘 중산층 내 상위 집단으로, 『샘이깊은물』의 편집진에 의해 선별된 것이기에, 본 논문의 발견 사항을 1980년대 중후반의 중산층 거주 아파트 일반으로 확대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본 논문의 연구 범위 내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 「볼만한 집치레」에서 사진의 형태로 가시화된 ‘거실의 프레임’은 편집진의 의도에 따라 선택된 것이긴 했지만, 베란다 창을 중심으로 한 아파트 실내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적어도 이 거실의 프레임은 아파트 거주자들이 자신의 실내 공간을 응시하는 시선의 프레임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공간 분위기의 연출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물 배치의 좌표계이기도 했다.

둘째, 아파트의 주거 공간에서 입식문화가 확산되면서 중산층 내 상위 집단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사물 배치 전략이 등장한다. 「볼만한 집치레」에 소개된 사례를 중심으로 보자면, 박물관화 전략, 갤러리화 전략, 극장화 전략과 같은 세 가지 전략을 구분해볼 수 있다. 사후적으로 판단하자면, 극장화 전략이 이후 거실의 프레임 내부 사물 배치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부가해야 할 점은 「볼만한 집치레」가 취재한 총 23곳의 아파트 중에서 주방과 아이 방을 다룬 6곳의 아파트를 제외하고 본 논문에서 다루지 않은 사례들은 세 유형의 전략으로 명확히 분류되기 어려운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사례 상당수는 극장화 전략을 중심으로 다른 두 유형의 전략을 차용해 부분적으로 절충하는 방식으로 사물 배치의 전략을 구사했다. 여기에서 텔레비전의 영향력은 강력했다.

셋째, 「볼만한 집치레」에 등장하는 아파트 거주자들은 장 보드리야르가 『사물의 체계』에서 정의한 '배치하는 인간형'에 가까운 면모를 보여준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이 인간형은 적극적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람으로서, 자기 소유의 사물을 그저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배치하고 정돈하고 통제한다(Baudrillard, 1999). 이와 유사하게 「볼만한 집치레」의 아파트 거주자들은 상품의 소비 그 자체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상품이 주거 공간 내부로 편입되는 과정을 조율하고, 다른 사물과 조화를 이루며 특정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과정까지 관리한다. 여기에서 거실의 프레임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넷째, 본 연구는 1980년대 중후반의 「볼만한 집치레」에 소개된 아파트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으나, 이후 연구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볼만한 집치레」에 소개된 한옥과 양옥 등 다른 주거 유형뿐만 아니라, 1990년대 『샘이깊은물』에 연재된 해당 칼럼의 기사와 사진까지 포함된다. 물론 이 범위의 확장은 국내 주거 환경과 디자인 문화의 구조변동이라는 좀 더 거시적인 맥락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Acknowledgments

This study was supported by grant from Dongyang University in 2017.

본 연구는 2017년도 동양대학교 학술연구비의 지원으로 수행되었음.

Notes

Citation : Park, H. (2018). The Arrangement of Objects in the Living Room of Korean Apartments in the mid to late 1980s.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1(4), 189-201.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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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d, J. (2017). House and Home in Modern Japan: Architecture, Domestic Space, and Bourgeois Culture, 1988-1930 (Park, S., Cho, Y. & Kim, H., Trans.), Seoul:Somyung. (Original work published 2005).

Figure 1

Figure 1
A layout of「A House Worth Seeing」 (December 1988 issue)

Figure 2

Figure 2
Cheonbum Bae's living room

Figure 3

Figure 3
Jonghak Kim's living room

Figure 4

Figure 4
Jonghak Kim's living room

Figure 5

Figure 5
Heeju Kim's living room

Figure 6

Figure 6
Kanghee Lee's living room

Figure 7

Figure 7
Eunyoung Park's living room

Figure 8

Figure 8
Sunja Park's living room

Figure 9

Figure 9
Youngmi Lee's living room

Table 1

Contents of 「A House Worth Seeing」

구분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
월호
화가 서세옥
한옥 사랑방
박기옥
양옥 아들방
김영
아파트 거실
안정남
도시한옥 거실
김희주
아파트 부엌
2
월호
오현숙
양옥 부엌
송광섭
양옥 거실
배현주
아파트 신방
조현진
빌라 거실
주영이·재영이
양옥 아이방
3
월호
학자 김준엽
양옥 서재
안상수
양옥 거실
김혜영
양옥 거실
박여숙
양옥 안방
화가 양주혜
아파트 주방
4
월호
건축가 공일곤
양옥 거실
유대기
양옥 거실
운현궁
한옥
한별이.현정이
아파트 아이방
대학생 오지혜
양옥 방
5
월호
남수정
양옥
최유경
아파트 아기방
배천범
아파트 거실
임히주
양옥 거실
김정옥
한옥 별장
6
월호
임송희
양옥 뜰
화가 정탁영
양옥 뜰
건축가 김원석
양옥 거실
송미숙
아파트 서재
이강희
아파트 거실
7
월호
건축가 박찬무
빌라 거실
화가 한승재
양옥 거실
이상희
아파트 부엌
화가 송영방
양옥 뜰
김화영
아파트 서재
8
월호
학자 권중희
양옥 거실
박동애
아파트 거실
박순자
아파트 거실
김병순
한옥
정기용
한옥
9
월호
사정숙
양옥 바느질방
화가 장욱진
한옥
숨결 새벌
한옥 뜰
상철이·상욱이
아파트 아이방
김지영
아파트 거실
10
월호
조예리
양옥 거실
시인 김영태
아파트 거실
정영수
양옥 거실
김영자
아파트 거실
한윤희
아파트 거실
11
월호
김석화
양옥 거실
화가 강연균
한옥
이윤지
아파트 방
이병목
적산가옥 거실
한종훈
양옥 거실
12월호 화가 김종학
아파트 거실
김필규
양옥 안방
박서원
빌라 거실
박은영
아파트 거실
이정경
아파트 거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