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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o-Jin Park : Inje University
This paper explores the differences of expression and interpretation that exist between cultures with regard to graphics as one of image information. Through cultural anthropologic research and the experimental research of cognitive psychology, objective data on the images' cognitive differences according to the cultural differences are obtained. Through theoretical research, items for comparison of the Eastern and Western cultural characteristics applicable to graphic interpretation were developed. The case study focuses on the covers of English literary novels and their translated copies in Korea. In order to understand the graphic characteristics of the originals, as well as those of the copies, the analytic frames of the graphic factors were developed with ‘visual factor’, ‘relational factor’ and ‘semiotic factor'. The Eastern-Western comparative indices extracted through this frame were substituted in performing the cultural analysis. As a result, the existence of distinguishable, expressive characteristics in the American original cover graphics and the Korean copy cover graphics was confirmed . These identified characteristics are as follows: the difference of cognitive connectivity, observing gaze, interpretation of nothingness. And individualism vs. collectivism, the theory of human nature vs. the theory of situations, analytic thought vs. intuitive thought, and argument vs. compromise are also the representative items of characteristic differences. These differences of expression and interpretation were found to correspond to the differences between the two countries.
본 연구는 이미지 정보 중 그래픽의 문화 간 표현과 해석 차이에 대한 고찰로서 그래픽의 문화적 표현 특성의 이해와 문화적 해석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문화인류학 연구와 인지심리학 실험연구들을 통해 문화차이에 따른 이미지 인지 차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확보한 후, 이를 토대로 그래픽 해석에 적용할 수 있는 동서양 문화 특성 비교 항목을 도출한다. 그래픽 사례 분석의 대상으로는 미국의 원본과 한국의 번역본 책표지를 선택하고, 그래픽의 분석을 위해 시각적, 상관적, 기호적 요소로 구성된 그래픽 요소 분석틀을 개발하여 적용한다. 이 틀을 통해 추출된 그래픽 특성을 앞서 도출한 동서양 문화 특성 비교 항목에 대입하여 문화적 분석을 실시한다. 그 결과 미국의 원본 표지 그래픽과 한국의 번역본 표지 그래픽에는 확연히 구분되는 표현과 해석상의 특징이 내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표지 그래픽과 한국 표지 그래픽의 표현에는 인지 맥락성의 차이,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본성론과 상황론, 관찰하는 시선의 차이, 분석적 사고와 직관적 사고, 논쟁과 타협, 그리고 없음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그래픽의 표현과 해석 특성은 두 국가의 문화적 특성 차이에 의한 발현임을 알 수 있다.
이미지의 소통은 언어와 다르다. “눈은 귀처럼 열려 있지만 타인의 눈을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이미지 이론가 레지스 드브레(R. Debray)의 말처럼 낯선 이미지는 낯선 언어보다 소통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이 있다. 타문화의 언어는 사전이나 통역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이미지의 해석에는 사전도 통역자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미지 소통의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의 교통과 통신 기술은 엄청난 양의 그래픽 정보를 전 세계에 실어 나르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이미지의 문화적 장벽을 경험한다.
인쇄, 영상,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타문화권의 이미지들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이미지의 이방성(異邦性)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는 다음의 두 가지 방법이 관찰된다. 첫 번째로 지속적인 시각 노출을 통한 자극에의 순응을 들 수 있다. 국내의 미국 드라마(일명 미드)나 할리우드 영화, 해외 브랜드의 광고물 등에 대한 적응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는 타문화권의 이미지를 자문화권에서 수용 가능한 표현 방식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많은 타문화권의 시각이미지가 이러한 조율의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여기서 시각디자이너의 관여가 발생한다.
문화와 이미지 해석의 차이에 대한 선두 연구로는, 이미지 해석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 바르트(R. Barthes)의 선구적인 글들1)과 최근 미국에서 발전하고 있는 니스벳(Nisbett)2)과 그 동료들의 인지심리학 실험연구들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시각디자인분야에서 그래픽의 문화적 표현과 해석 특성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글로벌 시대의 시각정보 교류는 시각디자이너의 문화적 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사전과 통역자가 있는 언어처럼 이미지의 해석자로서의 시각디자이너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그래픽의 표현이 어떤 문화적 배경에서 유래되었으며, 어떤 태도 속에서 해석되고 소통되는지 이해하기 위한 나와 타자의 문화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본 연구는 문화권에 따른 그래픽의 표현과 해석 차이 존재 여부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그에 따른 검증의 절차로 사례분석을 실시해보고자 한다. 일련의 연구 과정을 통해 피상적으로 추론되어 온 그래픽 표현에서의 문화적 차이 존재 여부를 구체적인 사례분석으로 확인해 봄으로써, 그래픽 정보의 논리적 분석 가능성을 제시하고 문화적 정보의 의미작용 과정과 그 영향을 설명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본 연구에서는 문화학과 인류학 이론의 도움으로 문화를 정의하고, 가장 보편적이며 차별화된 비교 문화권으로 동양과 서양 문화에 주목한다. 인지심리학 이론을 통해 동양과 서양 문화 차이에 따른 이미지의 인지 차이를 확인한 후, 조형이론과 기호학 연구를 기초로 한 기호분석틀을 구축하여 사례분석을 실시하고자 한다. 구체적인 사례분석을 위해 동양문화권인 한국과 서양문화권인 미국의 그래픽 비교로 연구 범위를 국한하고자 한다.
[그림 1] 연구의 내용과 절차
사례분석 대상은 그래픽 매체 중 책표지를 선택한다. 책 또는 책표지는 다른 그래픽 매체에 비해 문화권 간 교류를 관찰하기 수월한데, 이유는 원본과 번역본의 구분이 분명하고 그래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사례의 수가 많아 문화권 간 충분한 분석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책표지는 다른 매체에 비해 문화적 보수성이 강한 출판 매체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문화권의 특성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연구의 내용과 과정을 정리하면 그림 1과 같다.
영국의 문화 연구자 윌리엄스가 ‘문화(Culture)는 영어에서 가장 복잡한 두세 가지 단어 중 하나이다’(Williams, 1983, 87)라고 토로했듯이, 문화를 하나의 정의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본 연구에서는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국가문화’로서의 문화 개념을 채택하고자 한다. 국가 문화는 각 나라 고유의 언어, 종교, 규범, 제도 및 의, 식, 주를 둘러싼 생활 방식을 말한다. 국가문화에 관한 연구가 사회적으로 조명 받게 된 것은 네덜란드 조직심리학자 호프스테드(Hofsted)의 『문화의 결과(Culture's Consequences)』(1981)라는 책 덕분이다. 호프스테드는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국가문화라는 것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각 나라 사람들의 의식 구조와 나아가서는 일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가나 민족, 문화권 간의 소통은 가장 큰 단위의 커뮤니케이션 현상이 된다. 세계화, 국제화라는 단어가 일상용어로 정착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일정한 커뮤니케이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의사소통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다른 문화와의 커뮤니케이션은 기존 문화의 경험, 형이상학적 개념, 표현의 기호에 따라 각각 그 문화에 준한 의미체를 형성하고, 이는 의미적 오차를 발생시키기 쉽다.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의 의미전달의 문제는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의 상태보다 매체를 통한 매개된 커뮤니케이션4) 상태에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지구상의 모든 인류 문화를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구분에는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인류의 문화가 동양문화와 서양문화로 대별될 수 있으며 그 특성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기존의 보편적 동서양 문화 구분을 중심으로 특성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바,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특성을 동양과 서양 문화라는 큰 테두리 안에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니스벳은 오늘날에도 발견할 수 있는 동서양 사고방식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약 10억 정도가 고대 그리스의 지적 전통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라면, 그보다 훨씬 많은 20억 정도는 고대 중국의 지적 전통을 물려받았다. 그런데, 지금부터 2,500년 전의 고대 그리스와 중국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회 구조 면에서 매우 달랐을 뿐만 아니라, 철학과 문명에 있어서도 서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차이들이 현대를 살고 있는 동양과 서양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큰 차이를 가져왔다는 점이다(Nisbett, 2003, 26).
학계에 알려진 대부분의 동서양 문화 비교 연구는 서양의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동양의 시각에 의한 분석이 부족하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서양의 동서양 문화연구는 문화 차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있어 동양의 연구5)보다 용이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과학적인 실험을 통한 검증은 추상적인 현상을 이해하는 데 확실한 도움을 준다. 그 대표적인 학자로 에드워드 홀(Hall)과 호프스테드를 꼽을 수 있다. 이 두 학자의 비교 문화 분석 모델들은 인류학 뿐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디자인분야에서 국가 간 문화비교를 통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또는 조형 선호도 분석에도 빈번히 인용되고 있다.
홀은 맥락(context)을 기준으로 문화를 구분하였는데, 고맥락 문화권에서 커뮤니케이션의 핵심내용을 파악하려면 메시지보다는 상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반면, 저맥락 문화에서는 메시지가 겉으로 명백하게 드러나며,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구체적인 언어 메시지를 선호한다. 이러한 특징에 따라 분석하면 동양은 고맥락 문화권에 속하며, 서양은 저맥락 문화권에 속하는 경향이 있다(표 1 참조).
홀의 저맥락 문화와 고맥락 문화의 특성 비교
호프스테드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국적을 제외하고는 동일한 고용주, 회사문화, 업무, 그리고 거의 유사한 학력을 소유한 근무자들 사이에서 국가 집단 간에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러한 차이를 문화차원(dimension)으로 구분하고 국가별 문화 특성을 수치화 하였는데, 호프스테드의 지수치와 문화차원 개념을 통해 비교해 본 미국과 한국의 문화 특성은 표 2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호프스테드의 문화 분석을 적용한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특성
오랜 세월을 통해 축적된 특정 지역(생태 환경적 격리 지역) 구성원의 경험은 그 집단 특유의 생존방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는 민속형이상학을 이루게 된다. 각 문화권의 형이상학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전술한 동서양의 문화비교 연구를 통해 살펴본 바와 같다. 다양한 민속형이상학은 다시 구성원들의 지각과 사고과정의 차이로 나타난다.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인과적 판단 방식이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한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였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동서양 문화 차이에 대한 인지심리학적 연구들은 과학적 실험을 통해 다양한 검증 자료를 제시해준다.
[그림 2] 「Perceiving an object and its context in different cultures」 연구에 사용된 실험자극물
시노부 키타야마(Kitayama, 2003)와 그의 일본 및 미국의 동료들은 동서양의 문화 차이에 따른 오브제와 오브제를 담은 배경의 맥락성의 인지 차이를 실험하였다. 미국과 일본 두 그룹의 실험대상자들에게 90mm 크기의 정사각형에 30mm의 선을 그려 넣은 그림을 보여주고, 사각형 안에 있는 선의 길이(30mm)를 기억해서 그려내는 ‘The absolute task'와 사각형 내에서의 선의 위치(사각형의 1/3에 지점)를 기억해서 그려내는 ’The relative task‘의 오류 정도를 측정하였다(그림 2 참조). 실험 결과, 일본인 실험 대상자들은 ’The relative task‘에서 보다 정교했으며, 미국인들은 ‘The absolute task'에서 더 나은 정교성을 보였다. 이 실험을 통해 동양인들은 배경과 관계에 대해 관찰하는 것에 익숙하며, 오브제 자체 보다 오브제와 오브제가 놓여있는 상황 즉 맥락을 인지하는 데 탁월하다는 가설을 검증하게 된다. 반면, 서양인들은 오브제의 관찰에 익숙하며, 오브제의 성질을 분석하고 오브제 자체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능숙하다. 하지만 오브제를 둘러싼 주변의 관계성, 배경, 오브제와 주변과의 맥락성 관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스다(Masuda, 2001)는 보다 단순하고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전체상과 오브제 관찰에 대한 동서양의 인지심리 차이를 보여준다. 미국 미시간대학의 학생 41명과 일본 교토대학의 학생 44명에게 물 속 장면을 담은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다. 화면의 중앙에는 주변의 다른 것들보다 크고 화려한 컬러의 초점 역할을 하는 물고기가 한 마리가 있고, 그 주인공 물고기 주변에는 수중 생물, 수초, 자갈, 물방울 등이 등장한다. 마스다는 화면을 보여준 후, 실험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회상해보게 했다. 그 결과, 미국 학생과 일본 학생 모두 초점 역할을 한 물고기에 대해서는 동일한 정도로 언급했다. 그러나 주변 요소, 배경 요소에 대해서는 일본 학생들이 미국 학생보다 60%이상 더 많이 언급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미국학생들은 “송어로 보이는 큰 물고기가 왼쪽으로 헤엄쳐갔다”와 같이 초점 물고기에 대한 설명으로 회상을 시작하는 반면, 일본 학생들은 “연못처럼 보였어요.”처럼 전체적인 환경, 맥락을 언급하면서 회상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니스벳(2003)은 서양 사고방식의 근원을 ‘사물의 본질’을 중시하는 그리스의 철학에서 찾았으며, 동양 사고방식의 근원은 ‘사물의 관계’를 중시하는 고대 중국의 철학에서 찾았다. 그림 3에는 웃고 있는 동일한 모습의 주인공 뒤에 왼쪽의 그림에서는 같이 미소 짓고 있는 주변인들의 모습이 있고, 오른쪽의 그림 배경에는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이 두 그림을 동양인과 서양인들에게 보여주며 “(가운데 있는) 사람은 행복해보이나요?”라고 물었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왼쪽 그림의 사람은 행복해보이며, 오른쪽 그림의 사람 또한 동일인으로 행복해 보인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동양인들은 왼쪽 그림의 사람은 행복하지만, 오른쪽 그림의 사람은 행복하지 않으며, 그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불행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림 3] Cartoon Emotion Task(마스다 외, 2008)
이와 같은 특성은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발견되는데, 인물 사진 촬영의 경우, 동양인들은 주변 정보가 포함될 수 있는 사진 찍기를 즐긴다. 예를 들어 파티나 행사 장소에서는 주변의 분위기를 같이 담을 수 있도록 기념이 될 만한 배경 앞에서 주변 요소들과 같이 찍히길 바란다. 반면 서양인들은 파티 등에서 기분이 좋은 친구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찍거나, 여행지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가까이서 주인공을 독립적으로 찍는 경향이 있다. 문화연구가들의 주장처럼 동양의 인간은 자연, 환경, 관계 속에 조화롭게 스며든 일부분이고, 서양의 인간은 자연, 환경, 관계에서 분리된 독립된 자아이다. 그림 4는 니스벳이 이러한 특성의 사례로 제시한 예이다.
[그림 4] 미국인이 찍는 인물사진(왼쪽)과 일본인이 찍는 인물사진(오른쪽)(Nisbett, 2003)
홀과 호프스테드 그리고 니스벳을 포함한 인지심리학자들의 연구들은, 비록 서양의 방법론에 의한 분석이기는 하지만, 동서양의 문화 차이가 구성원들의 행동과 사고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이미지를 인지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 준다. 관련 연구들을 종합하여 그래픽의 해석에 관여할 수 있는 동서양의 문화적 사고, 인지 특성을 다음의 7가지 비교 항목을 도출해 보았다.
① 인지의 맥락성 차이
②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③ 본성론과 상황론
④ 관찰하는 시선의 차이
⑤ 분석적 사고와 직관적 사고
⑥ 논쟁과 타협
⑦ 여백 해석의 차이
이러한 문화 비교 특성들이 실제 그래픽에 어떻게 반영되고 또 정보 수용자들에게 해석되는 지를 책표지 그래픽을 대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제라드 쥐네트(Genette, 1997)는 그의 혁신적인 저서 『파라텍스트(Paratexts)6)』에서 표지란 이야기가 책이 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로, 책 속으로 발을 들여 놓느냐 돌아서 나가느냐를 결정짓게 하는 현관이자 문지방과 같은 주요한 존재라고 설명한다. 책표지는 저자, 출판업자, 그리고 독자가 함께 하는 협상의 장을 관통하는 도관과도 같은 것이다(Matthews, 2007, Introduction).
일반적으로 책표지 디자인의 범위는 앞뒤의 표지와 책등, 그리고 책날개를 포함한다. 최근 표지에 띠를 두르는 띠지 형식이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어 띠지를 책표지 디자인에 포함시켜 작업하는 사례가 많다. 표지의 범위와 구성 요소는 표 3과 같다.
책표지의 범위와 구성 요소(띠지 제외)
본 연구에서는 책표지 중 앞표지의 그래픽을 중심으로 한다. 한국 출판도서의 경우 앞표지의 대표적인 그래픽 요소는 주로 이미지와 책 제목이다. 작가의 이름과 출판사 로고, 광고 카피나 뽑은 말 같은 부가적 표지 내용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작은 크기로 사용되며, 제목이나 주 이미지에 비해 그래픽 처리가 많지 않은 편이다. 반면, 미국 도서의 경우 책표지의 일반적인 구성 요소는 비슷한 편이나 우리나라보다 훨씬 다양한 판형과 제본 방식을 사용한다. 날개나 띠지, 북 재킷과 같은 부수적인 요소들이 책의 제본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국내의 책표지에 비해 강렬한 문자 이미지나 사진 이미지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한국은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번역서 발행량이나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즉 번역서 의존율이 가장 높은 국가로 꼽힌다.7) 번역출판 위주의 출판 현황에 대한 출판계의 걱정은 논외로 하고, 이러한 출판 현황이 국가간 문화권간 번역본 책표지 디자인 연구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의 번역 출판 비중은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나 최근 몇 년간 평균 30%에 가까운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2009년 번역서의 원산국별 비중을 보면 일본(37%)과 미국(32%)이 번역서 전체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도서의 출판 프로세스는 출판기획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대부분 출판기획에 이어 편집팀의 본문 진행, 디자인팀의 표지 또는 본문 그래픽 제작, 그리고 제판, 인쇄, 제본의 제조 과정을 거쳐, 유통과 마케팅의 수순을 밟는다. 번역서의 출판 프로세스도 국내 도서의 출판 프로세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발행인이 해외에 있는 책의 작가나 출판사와 직접 접촉하여 진행하거나 해외 출판사를 대신하는 국내 에이전트를 통한 출판 기획이 가능하다는 점이 다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해외번역서의 경우 국내 출판사에서 새롭게 표지를 디자인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국내용 표지 디자인을 다시 제작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먼저, 해외의 표지 그래픽 저작권을 별도 구매하는 데 있어 발생하는 각종 법률적 처리와 비용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이며, 다른 이유로는 다른 문화권의 그래픽 이미지의 표현 방식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국내의 독자들에게 소구하기 힘들거나, 정서적으로 불편함을 조장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독자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의 표지로 디자인을 바꾸기 위해 시행된다. 디자이너가 문화적으로 수용 가능한 상태로 재해석하여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구매 선호도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활동인 셈이다. 2010년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영미권 번역서 베스트셀러 1,000권 중 원작과 동일한 번역본 표지는 50여권, 유사한 표지디자인은 70여권이었으며 이를 제외한 880여권은 한국 번역본과 원본의 표지 디자인이 상이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례분석조사를 위한 책 표지의 선정 범위는 다음과 같다. 먼저 서적의 분류 중 번역본 점유율이 높고 대중적인 분야인 문학서적을 선택한다8). 한국에서 출판된 영미문학서적의 검색은 영미문학9)이라는 키워드로 국내 인터넷 서점 예스24(www.yes24.com)10)에서 실시하였다. 도서 전문 인터넷 서점 사이트 중 예스24닷컴은 문화권별 카테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조사에 용이하다. 조사는 2010년 8월과 2011년 1월에 실시되었으며, 2011년 5월에 최신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추가 조사가 이루어졌다.
예스24에서 조사한 영미소설의 원본이 되는 미국 출판 도서의 검색은 아마존닷컴(www.amazon.com)에서 번역본의 영어 원제를 키워드로 검색하였다. 원본의 검색 결과 동일한 원제에 복수의 도서가 검색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미국 출판시장의 규모나 특성에 의한 것으로, 미국에서는 한 권의 책을 독자의 층과 독서 구입 목적에 따라 세분화하여 하드커버 북, 페이퍼 북, 매스 마켓 북 등 다양한 버전으로 출판하기 때문이다. 또한 출판사가 변경되어 새로운 표지 디자인을 제작하거나, 마케팅을 위해 표지 디자인을 교체 하는 등 다양한 변수로 인해 복수의 표지 사례가 검색될 수 있다. 이는 국내 번역본의 경우에도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조사 가능한 사례의 수를 확보하기 위해 원본과 번역본의 표지 디자인이 동일하거나 거의 유사한 표지, 출판년도가 1990년 이전의 표지, 전집류, 총서, 시리즈와 같이 개별 표지 디자인 없이 일정한 디자인 포맷에 의해 제작된 표지 등은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그래픽의 요소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비교 항목을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이에 ‘시각적(visual) 요소’, ‘상관적(relational) 요소’, 그리고 ‘기호적(semiologic) 요소’로 구분된 그래픽 요소 분석의 틀을 구축해보았다. 그래픽 요소 중 시각적 요소와 상관적 요소의 추출은 우시우스 왕(W. Wong, 2004)의 “디자인과 형태론”에서 사용한 시각언어의 해석 방법 중 일부를 따르고자 한다. 단순하고 엄격한 형식을 중심으로 객관성을 극대화시킨 왕의 디자인 요소 구분은 기호적 요소와 달리 감정이나 직관에 의한 해석을 피하고 그래픽의 형태 탐구에 충실한 분석틀을 제시한다.
시각적 요소는 점, 선, 면, 볼륨과 같은 개념적 요소가 가시적으로 바뀔 때 나타나는 요소로, 형상(shape), 크기(size), 색채(color)로 대표된다. ‘상관적 요소’는 형상으로서의 오브제와 그 오브제가 놓여 있는 곳과의 상호관계를 분석하는 데 사용된다. 우시우스 왕의 상관적 요소 중 방향, 위치, 공간 개념을 빌리되, 복합적인 형상으로 구성된 표지 그래픽의 분석에 용이하도록 용어와 개념을 일부 변형하여 방향(direction), 레이아웃(layout), 배경(background)으로 사용한다. 이중 레이아웃과 배경은 위치나 공간보다 표지 그래픽의 특수성과 복합성에 더 부합되며, 동시에 그래픽의 문화적 해석에 있어 오브제와 배경과의 맥락성과 관계성에 대한 논의를 용이하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각적 요소와 상관적 요소는 표지 그래픽의 시각적 조직, 실제적 표현에 관한 것으로 그래픽의 의미에 대한 분석보다는 그래픽의 표면적 상황에 대한 분석에 적합하다. 이와 같은 요소의 분석을 기호학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표현(expression)과 내용(content)중 표현면에 속하는 것으로 소쉬르의 기표(signifier), 퍼스의 기호체(representation sign)에 해당된다. 표지 그래픽의 내용면을 해석할 수 있는 분석 틀로는 바르트의 기호 이론을 응용한다. 바르트 기호론이 갖는 의미작용의 사회, 문화적 해석 특성은 그의 텍스트 구조를 표지 그래픽의 문화적 특성 분석의 틀로 응용하는 데 용이하다. 바르트의 기호 분석 틀을 많은 수의 그래픽 사례를 분석하는 데 용이하도록 단순화 시키면 표 4와 같이 구성할 수 있다.
책표지 그래픽의 기호적 요소 분석의 틀
이상의 내용들을 종합하여, 그래픽의 문화적 특성 분석을 위한 표현차원의 시각적 요소, 상관적 요소, 그리고 내용, 의미차원의 기호적 요소 분석틀을 구성하면 표 5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원본과 번역본 표지 그래픽 요소 분석 틀
그래픽 분석틀에 의해 도출한 두 문화권 표지 그래픽의 시각적, 상관적, 그리고 기호적 특성을 문화적 차원에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해석은 2.4장에서 도출한 7가지의 동서양 문화 특성 차이를 중심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며, 각 항목의 특성에 대표적으로 부합되는 표지 비교 사례(왼쪽은 미국의 원본, 오른쪽은 한국의 번역본) 2쌍을 제시하였다. 그 외 책표지라는 매체의 특수성에 국한되어 발견할 수 있는 그래픽의 문화적 표현 차이를 추가하였다.
서양과 동양의 인지의 맥락성 차이는 표지 그래픽에서도 쉽고 빈번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림 5, 6의 대표적인 비교사례와 같이 미국의 원본은 작가와 책 제목으로 구성된 문자 정위주의 정보 표현이 특징적이다. 특히 유명 작가의 이름을 부각시키기 위해 제목보다 더 큰 서체로 나타내거나, 제목과 대비되는 컬러로 주목성을 강조하는 등의 표현은 우리나라 표지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방식으로 저맥락 문화 특성의 대표적인 영향이라고 하겠다. 실제 사진을 활용하거나 실사에 가까운 일러스트레이션 표현이 많다는 것도 정보의 명료성을 통해 이야기의 신뢰를 높이고, 정보 전달의 간결함을 득하기 위한 저맥락적 발상의 한 단면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표지에서는 타이포그래피 요소와 그래픽 요소의 혼합형이 보편적이다. 타이포그래피만을 사용하는 표지는 전문 학술지 등에서만 발견할 수 있으며, 의도적으로 타이포그래피만을 사용한 표지의 경우도 미국과는 달리 사용된 타이포그래피에 그래픽 처리가 가미되어 제목 자체가 하나의 그래픽 오브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많이 등장하는 캘리그래피 또는 손 글씨 타입 제목은 객관적 정보로서의 기능보다는 소설의 분위기나, 장르, 내용을 암시하는 그래픽 요소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이다. 이와 같은 표현의 특성은 한국인의 고맥락적 문화 성향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또한 실제적인 사진 기법을 피하고 일러스트레이션을 주로 사용하는 것도 고맥락적 특성과 연관이 있다.
[그림 5] 인지 맥락성 비교1
[그림 6] 인지 맥락성 비교2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그래픽 인지의 맥락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개인을 위주로 한 생활방식에서 타인과의 관계가 개인의 가치보다 우선할 수 없듯이, 집단주의 문화의 사람들은 개인의 가치를 타인과의 관계에서 찾으며 이는 그래픽에서도 쉽게 구분해 낼 수 있다. 미국의 개인주의는 자연스럽게 주인공 한 사람을 위한 표지 공간 창조로 이어지며, 한국의 집단주의 성향은 주인공의 정체성과 처한 상황을 다른 등장인물 또는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 나타내는 방식으로 귀결된다. 그림 7과 8의 사례에서 그 차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림 7] 개인·집단주의 비교1
[그림 8] 개인·집단주의 비교2
고대 그리스의 철학사상에 뿌리를 둔 서양인들의 본성론은 사람 또는 사물의 모든 결과물은 절대적으로 그 사람이나 사물의 본성에서 유래된 것이라 믿는다. 반면, 동양인들의 상황론은 집단주의나 고맥락적 성향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사물이나 사람의 행동이나 도달한 결과에는 그 사람을 둘러싼 수많은 관계와 상황에 의해 결국 그렇게 된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뜻한다. 예를 들어 그림 9의 경우, 대부분의 한국 독자들은 원본을 개에 대한 안내서로 파악한다. 생활고에 처한 어린 소녀가 부잣집 개를 훔쳐야겠다는 발칙한 상상을 하는 코믹소설의 표지로는 번역본과 같은 만화스타일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선호한다. 한 여성의 요리를 통한 세상에의 도전을 그린 소설인 그림 10에서도 유사한 맥락의 특성을 비교해 볼 수 있다.
[그림 9] 본성론과 상황론 비교1
[그림 10] 본성론과 상황론 비교2
사실적인 사진 이미지의 극단적인 클로즈업은 한국의 문학 표지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표현이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극단적인 인물의 클로즈업 이미지에 거부감을 느낀다. 극단적 클로즈업이 가지는 단도직입적인 대화법에 문화적으로 익숙하지 않으며 동시에 소설적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하고 특히, 상황이 배제된 인물이나 사물은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는데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반면, 주된 사물의 클로즈업 이미지의 사용을 즐기는 미국의 표지는 상황보다는 정보, 암시보다는 설명을 택하는 미국적 문화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림 11과 12의 사례들을 통해 오브제와 배경에 대한 관찰하는 시선의 차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림 11] 관찰 시선의 비교1
[그림 12] 관찰 시선의 비교2
서양의 분석적 사고와 동양의 직관적 사고는 디자인 이전에 순수 회화의 기법 해석에서 다루어지는 특성이기도 하다. 마치 숲을 이룬 개별 나무를 관찰하는 서양의 인지 방식과 개별 나무로 형성된 숲 전체를 관조하는 동양식 인지 방식의 차이로 설명되는 이 특성은 표지 그래픽에 있어서도 미국에서는 이야기의 내용을 분석하고 핵심적인 오브제를 제시하거나, 원인규명을 요구하거나, 문제를 직시하는 시선 등으로 나타나는 반면, 한국에서는 전체적인 분위기나 장르를 암시하거나, 원인이 되었을만한 정황을 보여주는 식으로 표현한다. 서양의 펜과 동양의 붓은 이러한 사고 차이의 전형적인 도구들로서, 서양의 펜은 사실적인 사진 기법 위주의 표현으로 발전하였으며, 동양의 붓은 감성적인 일러스트레이션 기법으로 반영되고 있다. 그림 13과 14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림 13] 분석과 직관적 사고1
[그림 14] 분석과 직관적 사고2
서양의 논쟁적 태도 또는 자기표현의 자유는 한국인들에게 윤리나 미풍양속의 준수에 적잖은 도전이 된다. 괴기스러운 것, 금기된 것, 도덕적이지 못한 것, 또는 저속한 것을 있는 그대로 또는 더욱 사실적으로 강조하여 전하는 것은 한국 독자들에게는 불편함을 가져온다. 비록 국제적인 시각문화의 교류로 서양적 표현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순간적인 흥미를 느낀다 할지라도, 실제적인 출판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성향의 옷을 입는 게 한국 표지의 현실인 셈이다. 한국의 출판사는 미국의 자극적이고 원색적이거나 직접적인 그래픽과 타협하기 위해 ‘중용’이라는 문화적 대안을 찾는다. 그림 15와 16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림 15] 논쟁과 타협 비교1
[그림 16] 논쟁과 타협 비교2
서양인에게 여백은 가치 없는 그야말로 ‘공간’일 뿐이거나 혹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배경일 뿐이다. 하지만 동양인들에게 공간은 오브제를 담는 그릇이나 오브제와 관계하는 가치 있는 공간이며 또 하나의 오브제로 여겨진다. 굳이 백의의 민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국인들은 흰색에 대한 호의를 갖고 있으며, 이는 동양적인 배경의 애호와 함께 흰 배경의 빈번한 사용에 반영되곤 한다. 반면 미국 표지에서는 배경으로서의 빈 공간을 찾기 어렵다. 표지는 메인 오브제로 꽉 채워지는 경향이 많으며 메인 오브제들이 주로 사진이미지이기 때문에 공간은 여백이기 보다는 조명이 닿지 않는 사실적 공간으로 표현된다.
[그림 17] 여백 해석의 비교1
[그림 18] 여백 해석의 비교2
그 외에도 책표지 또는 지면 위의 그래픽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에 국한되는 몇 가지 특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점으로는 책에 대한 두 국가의 가치관 차이가 있다. 한국인의 책과 독서에 대한 다소 현학적인 고정관념은 미국의 대중적 표현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의 정서에서 책이란 다른 매체에 비해 좀 더 고상하고 학구적인 문화 매체로 여겨진다. 그림 19의 경우처럼, 한국 독자들은 패션 잡지의 모델처럼 현란하게 차려입은 대중 작가의 사진보다는 고뇌하는 문학가의 모습을 담은 흑백 이미지를 선호한다. 또한 미국과 한국의 색채 호불호에 대해 차이도 눈에 뛴다. 시각적 요소 분석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미국의 표지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주목성을 높이기 위해 현란하고 원색적인 컬러가 많이 사용되었다. 크고 전면 배치된 오브제와 함께 전체적으로 미국의 표지 그래픽은 강렬하게 보인다. 반면 한국의 표지는 등장하는 오브제가 표지를 채우는 극단적인 크기가 드물고, 고만고만한 크기의 오브제들이 표지에 산재해 있으므로 특정한 색이 관찰되기 보다는 색조들의 조화로운 배치가 보편적으로 관찰된다. 대비보다는 조화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주목성이 높은 그래픽을 찾기는 쉽지 않다. 대체적으로 미국 표지 그래픽에 비해 명도는 높고, 채도는 낮은 중성색 계열의 밝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상을 선호한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넓은 여백과 흰 여백이 가미된다. 그림 20이 그 한 예이다.
[그림 19] 고정관념의 표현
[그림 20] 선호 색상의 비교
로트만은 다른 문화로부터 차용된 것은 결코 기계적으로 병합되는 법이 없으며 그것은 수용자 문화의 영향 아래서 변형되는 바, ‘낯선 것’이자 동시에 ‘자신의 것’으로서 해석되는 것이라고 했다(Y. Lotman, 2008). 번역도서의 표지 디자인 또한 원본의 텍스트와 표지 그래픽을 독자와 디자이너가 소속된 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변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번역본 표지의 그래픽 디자인은 ‘낯선 것’이자 ‘자기의 것’으로의 ‘문화적 해석’ 작업의 한 형태라 할 수 있겠다.
본 논문은 한국에서 출판된 영미문학 번역본과 미국 원본 표지 그래픽의 비교 분석을 통한 그래픽의 문화적 표현 이해와 해석 가능성의 타진을 목적으로 하였다. 연구 주제의 특성상 다학문적 접근이 불가피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 차이를 살펴보고, 인지심리학 실험 연구들을 통해 문화적 사고 차이가 이미지의 인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그래픽의 문화적 해석에 대한 근거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이 과정을 통해 그래픽 해석에 적용 가능한 동서양 문화 특성 비교 항목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인지의 맥락성 차이,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본성론과 상황론, 관찰하는 시선의 차이, 분석적 사고와 직관적 사고, 논쟁과 타협, 없음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그것이다. 도출한 문화적 특성을 그래픽에서 검증하기 위하여 책표지 그래픽의 표현 특성 비교 분석을 실시하였다. 이에 그래픽의 분석을 위해 시각적 요소, 상관적 요소, 기호적 요소로 구분한 그래픽 분석 틀을 개발하였으며, 이 그래픽 분석틀을 이용하여 선정된 한국의 번역본 그래픽과 미국의 원본 사례들의 그래픽의 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된 그래픽의 비교 특성을 기 도출한 문화 비교 항목에 대입시켜 문화적 해석을 실시해보았다.
본 연구를 통하여 얻게 되는 동서양의 그래픽 특성에 대한 이해와 문화적 그래픽 정보 해석의 경험은 글로벌 시대의 디자이너에게 요청되는 문화적 정보 해석과 창작의 능력 배양에 기본적인 지식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다양한 매체를 대상으로 그래픽의 문화적 표현과 해석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함으로써 21세기의 지구촌 디자이너가 견지해야할 문화적 능력에 대한 학문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 Roland Barthes는 『이미지의 수사학(Rhétorique de l'image)』(1964),『기호학과 영화(Semiologie et cinema)』(1964)와 같은 에세이, 『사비냑-벽보금지(Défense d'Afficher)』(1971)의 서문, 『기호의 제국(L'Empire des Signes)』(1970)과 같은 책에서 영화, 사진, 광고, 포스터 등 다양한 그래픽 이미지의 기호학적 해석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2) Richard E. Nisbett은 사회심리학자이자 미시건 대학의 문화와 인지 프로그램 교수이다. 2003년 미국에서 출판된 그의 책 『The Geography of Thought: - How Asians and Westerners Think Differently. And Why』(2005)에서 그는 인간의 인지가 어느 곳에서든 동일한 방식으로 일어나는 건 아니며, 동양인과 서양인은 수 천 년 전부터 매우 다른 사고의 방식을 견지해 왔다는 것을 밝힌다. 아울러 이러한 차이는 과학적으로 측정이 가능하다고 보고 다양한 인지실험을 통해 자신의 논리를 검증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 한국,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동서양 비교실험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본 연구의 중요한 참고문헌 중 하나이다.
3) 이미지(image)는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한 학문적 정의를 가지고 있는 단어로, 일반적인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감각을 통해 경험한 어떤 대상에 대한 인상의 총합을 뜻한다. 본 연구에서는 미첼(Mitchell, 1986)의 이미지와 그래픽 개념을 따른다. 미첼의 이미지는 그래픽(graphic) 이미지, 광학적(optical)이미지, 지각적(perceptual) 이미지, 정신적(mental) 이미지, 그리고 언어적(verbal) 이미지로 구분된다. 이 중 그래픽 이미지는 사진, 조각상, 디자인 등을 포함한다. 본 연구에서는 책표지의 시각적 표현들을 그래픽이라고 칭하지만, 논의되는 시점에 따라 그래픽의 상위 개념인 이미지로 설명하기도 한다.
4) 기든스는 매개된 경험을 “인간이 감각적 경험을 통해 시간적, 공간적으로 먼 곳의 영향에 관여하는 것”(Giddens, 1991, 243)으로 정의한다. 그러므로 매개는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서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것으로 간주된다(Tomlinson, 2004). 매개된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언어영역 뿐 아니라, 전화나 팩스, 이메일 등의 현대 커뮤니케이션 기술 및 신문 등을 포함한 인쇄물,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과 같은 대중매체에 의한 매개된 경험도 다룬다. 최근에는 온라인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컴퓨터 기반 매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연구가 많다.
5) 동서양 문화차이를 연구한 동양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중국의 량수밍(梁潄溟), 리따띠아오(李大釣), 일본의 가네코 우마지(金子馬治) 등을 들 수 있다.
6) 파라텍스트(Paratexts)란 책의 몸통인 이야기(텍스트)를 소개하고 설명하기 위한 표지, 제목, 저자명, 서문 또는 일러스트레이션과 같은 요소들을 가리진다. 쥐네트의 원서명은 Seuils이며 영문번역 시 Paratexts 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7) 2009년도 전체 발행종수(42,191종) 가운데 번역서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27.6%(11,681종)로 전년도(31%)에 비해 감소하였지만, 여전히 해외 도서의 저작권 수입에 의한 국내 출판의 번역서 구성비는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90년대 중반 15%대에 머물렀던 번역출판 점유율이 2000년대 이후에는 30%를 넘는 대폭적인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2009년도 출판 통계」, 대한출판문화협회). <뉴욕 타임스>는 2007년 4월 15일자 북리뷰에서 한국의 출판 총 발행 수 대비 번역서 발행 비율이 세계 1위임을 보도했다(한기호, 2008).
8)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09년도 출판 통계」에 따르면, 번역서 비중이 가장 높은 분야는 만화이며 그 다음이 문학이다. 본 조사에서는 표지 디자인의 일반적 형태를 취하고 있는 문학서적을 조사 대상으로 한다.
9) 영미문학이란 영어로 쓰여진 문학으로써 주로 미국과 영국의 문학작품을 말한다. 본 연구에서는 관찰의 편의상 미국에서 출판되거나 판매되는 서적으로 한정한다. 그러므로 사례 중에는 미국 국적이 아닌 작가가 영어로 집필하여 미국에서 출간된 서적들이 포함될 수 있다.
10) 대한출판문화협회가 펴낸 ’2010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지난 해 국내 도서시장(2조7244억원 추정)에서 인터넷 서점의 매출은 8938억원을 기록, 전체 매출의 32.8%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예스24, 인터파크, 교보문고 등이 국내 인터넷 서점 등이 판매액 상위를 점하고 있다. 이중 예스24는 업계 판매액 1위로, 3,669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대비 22.5%의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논문은 2011년 경북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의 일부임
* 이 논문은 2010년도 인제대학교 학술연구조성비 보조에 의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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