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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황부용 디자인 활동의 배경과 특징
The Historical Context and Characteristics of Hwang Buyong’s Design Activities during the 1970s and 1980s
  • Hyeon Joo Kang : Department of Design Convergence, Professor, Inha University, Incheon, Korea
  • 강 현주 : 인하대학교 디자인융합학과, 교수, 인천, 대한민국

연구배경 황부용(1951년생)은 33년간(1975~2008) 디자인계에서 활동한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2009년에 전업 화가가 된 후 잊혔지만 ‘디자인계 문맹퇴치운동’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활동하며 한국 그래픽 디자인이 현대화하고 전문화되는 데 기여했기에 그의 활동을 한국디자인사 맥락에서 재조명하고자 한다.

연구방법 황부용의 디자인 작업과 저술을 검토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상공미전과 한국시각디자인협회(KSVD)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20세기 중반 한국 디자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신문 및 잡지 기사와 서적 등을 참고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그가 상공미전 추천작가가 된 1975년부터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SLOOC)를 떠난 1987년까지의 시기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연구결과 해방 이후 응용미술과 상업미술 차원에서 인식되던 한국 그래픽 디자인은 1970, 80년대에 시각 커뮤니케이션에 기반을 둔 전문 분야가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서 전개된 황부용의 디자인 활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였다. 첫째는 해외 디자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탐구다. 둘째는 디자인 창작과 글쓰기의 병행이고, 셋째는 새로운 디자인 분야에 대한 도전과 개척이다. 넷째는 디자인 커뮤니티에서의 교류와 소통이다.

결론 디자인 실무 경험과 이론적 지식을 겸비한 황부용은 앞선 시대의식과 소명감으로 디자인 분야에 신선한 자극과 지적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의 디자인 활동은 한국 그래픽 디자인이 디자인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현대적인 시각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으로서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Abstract, Translated

Background Hwang Buyong (born 1951) is a graphic designer who dedicated 33 years to the field from 1975 to 2008. Despite being somewhat forgotten after transitioning to painting in 2009, he was active during the 1970s and 1980s, contributing to the enhancement of design literacy. Recognized for his role in the modernization and professionalization of South Korean graphic design, the aim of this research is to study his design activities in the context of Korean design history.

Methods Hwang Buyong’s design works and writings were reviewed, and several interviews were conducted with him. Reference materials for The Korean Commercial & Industrial Art Exhibition and the Korean Society of Visual Design (KSVD) were searched. Furthermore, newspaper articles, magazine pieces, and books were examined to comprehend the state of Korean design in the mid-20th century. This study focused on the period during which he was active from 1975, when he became a Recommended Artist, to 1987, when he left the Seoul Olympic Organizing Committee.

Results Until the 1960s, graphic design was seen as applied art and commercial art, but it modernized into visual communication design in the 1970s and 1980s. Hwang Buyong's design activities in this period can be summarized by his interest in foreign designs, the synergy of design practice and writing, exploration of new design fields, and active networking in the design community.

Conclusions Hwang Buyong, with practical design experience and theoretical knowledge, emerged as a leading figure among his generation of designers, infusing the field of design with fresh stimulation and intellectual vitality. His design activities contributed to Korean graphic design and improving design literacy.

Keywords:
Hwang Buyong, Graphic Design, Korean Design History, 황부용, 그래픽 디자인, 한국디자인사.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한국디자인학회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05 Feb, 2024
Revised: 08 Mar, 2024
Accepted: 14 May, 2024
Printed: 31, May, 2024
Volume: 37 Issue: 2
Page: 449 ~ 465
DOI: https://doi.org/10.15187/adr.2024.05.37.2.449
Corresponding Author: Hyeon Joo Kang (joos@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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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ding Information ▼
Citation: Kang, H. J. (2024). The Historical Context and Characteristics of Hwang Buyong’s Design Activities during the 1970s and 1980s.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7(2), 449-465.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1. 서론
1. 1. 연구 배경 및 목적

황부용(1951년생)은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33년간(1975~2008) 활동한 후 현재 유화와 수채화 작업을 하는 전업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디자인 활동은 황부용이 디자인계를 떠나며 잊혔지만 20세기 중반 한국 그래픽 디자인 발전 과정에서 그가 미친 영향은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된 그래픽 디자인 기획전 《交,향 Graphic Symphonia》(2015.08.11.~2015.10.18.)의 전시 도록에 「한국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의 과거와 현재 - 디자이너 10인 인터뷰」가 게재됐는데, 인터뷰 과정에서 안상수(1952년생)는 1970, 80년대 상황을 회고하며 당시 유명했던 ‘서울대 트로이카’를 언급했다. 이 용어는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 69학번 동기생인 김진평, 윤학중, 황부용 세 사람을 지칭하는 것인데 안상수는 특히 황 미디엄 글자체를 개발하고 『디자인』지 초대 아트디렉터를 지낸 황부용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가 동료와 선후배 디자이너들에게 미친 영향력이 대단했다고 말했다(Kang, 2024). 황부용이 1977년에 26세 나이로 대학 교수가 된 것이나 28세 약관임에도 197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13인1) 중 한 명으로 『계간 미술』지 1979년 겨울호 특집에 소개되었던 것을 보면 안상수의 회고처럼 그가 20대에 이미 두각을 나타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디자인사 연구에서는 황부용이 어떠한 디자인 활동을 했으며 동세대 디자이너들 중 일찍부터 주목받은 이유와 그 배경이 무엇인지, 또 그가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았다. 해방 후 도안, 응용미술 시기를 거쳐 1960년대까지 상업미술로 이해되던 그래픽 디자인은 1970, 80년대를 거치며 시각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한 현대적이고 전문적인 분야로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추고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황부용의 생애와 디자인 활동에 대한 연구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그의 개인적인 면모를 파악하는 데서 나아가 해당 시기 한국디자인의 상황과 당면 과제들을 보다 구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1. 2. 연구 방법 및 범위

본 연구에서는 황부용이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했던 1975년부터 2008년까지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되 특히 그가 명지실업전문대학 교수로 임용되었던 1977년부터 서울올림픽디자인조직위원회(SLOOC)를 그만두고 디자인브리지를 설립했던 1988년까지의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2019년 11월에 ㈜CDR 김성천 대표와 함께 황부용을 만나 인터뷰를 시작한 후 본 연구자는 2024년 2월까지 수차례 그의 생애와 디자인 활동, 디자인에 관한 생각 등을 듣고 녹취했다.2) 이와 함께 대한민국상공미전(이하 상공미전)과 한국시각디자인협회(KSVD) 자료를 조사했다. 또한 1970, 80년대 한국 디자인계 상황을 보여주는 신문 및 잡지 기사와 단행본 등을 살펴보았다.

2. 황부용의 생애와 디자인 활동
2. 1. 황부용의 생애

황부용은 1951년에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중학교와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69년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0년에 제1회 전국대학문화예술축전에서 은상을 받았다. 1971년 제6회 상공미전에서 입선하고, 1972년 제7회와 1973년 제8회 때 특선을 했다. 1974년 제9회 때 무역협회회장상 수상 후 추천작가 자격을 얻어 1975년부터 1984년까지 출품했고, 1985년부터 1994년까지 초대작가로 참여했다. 군 제대 후 1975년 8월부터 12월까지 조영제가 진행하던 ㈜제일모직 데코마스 프로젝트에 참여해 양승춘, 김현, 구동조와 함께 일했다. 1976년에 한국시각디자인협회(KSVD)에 가입하고 합동통신사 광고기획실에서 일하다가 1977년 3월에 명지실업전문대학 전임강사로 임용돼 1983년 8월까지 재직했다. 황부용이 26세에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상공미전 추천작가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상공미전은 권위가 매우 높아서 추천작가는 교수 임용 때 석사 학위에 준하는 자격을 인정받았다(Kang, 2024). 대학에 재직하며 황부용은 1977년 3월호부터 1979년 1월호까지 『디자인』지 초대 아트디렉터로 활동했으며, 1978년에는 활자체 디자인 연구서인 『황 미디엄』을 출간하였다. 1981년에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3년에 교수직을 사임하고 그해 11월부터 1987년 7월까지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에서 디자인실장을 지냈다. 1983년부터 1993년까지 KSVD 홍보이사를 역임했고 1985년에는 구동조, 김상락, 김현, 나재오, 방재기, 이봉섭, 전갑배, 정연종, 조종현 등과 함께 《그래피코리아‘85》 동인전에 참여했다. 1987년 8월부터 1988년 7월까지 CDR에서 기획실장으로 근무하다가 1988년 9월에 디자인브리지를 설립해 1993년 10월까지 운영했다. 1994년에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에 가입해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정책 부회장을 역임했다. 이후 더그래픽스의 상임고문(1994.11~1995.07)을 거쳐 1995년에 중앙일보사 편집국 신문디자인 전문위원으로 초빙되어 1997년 4월까지 근무했다. 1995년에는 구동조, 권명광, 김교만, 김현, 안상수, 양승춘, 조영제 등과 함께 《코리안포스터디자인》 미국순회전에 참가했다. 이후 인피니트 공동대표 및 크리에이티브 디렉터(1997.03~1998.08), 전자신문사 자문위원(2001.03~2001.12), 조선일보사 자문위원(2005.01~2006.04), 엑스포디자인 상임고문(2007.01~2008.10) 등을 역임 후 2009년에 전업 화가 활동을 시작했다.3) 최근 디자인 분야에 대한 열정을 되살린 황부용은 2022년 12월에 부용티비(BUYONGTV)4)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면서 폴란드 포스터를 비롯해 과거 자신이 관심 가졌던 디자인 주제에 관한 콘텐츠들을 올렸다. 2023년 8월에는 ㈜티랩5)과 협업해 『황부용 미디엄 글꼴집』6)을 출간했다. 그리고 2024년 3월 29일부터 4월 3일까지 갤러리내일에서 《황부용 포스터전-부활》개인전7)을 개최했다.

2. 2. 황부용의 디자인 활동
2. 2. 1. 서체 개발

대학 재학 시절 황부용은 일본 그래픽 디자인 전문 잡지를 통해 구와야마 야사부로(桑山弥三郎)가 일본선전미술가협회전(약칭 일선미전)에 서체 디자인을 출품해 주목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서체 디자인에 필요한 각종 도구와 프로세스 등의 실무적인 내용을 담아 『서체디자인(書体デザイン)』(1971)을 출간하자 그 책의 내용을 독학으로 익혀 졸업 작품으로 한글 서체 개발을 구상했다. 그는 일면식도 없던 한국사연(韓國写研, Korea Shaken)8)의 김영옥 사장을 찾아가 자신의 졸업 작품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고 그를 설득해 제작경비 일체를 지원받았다(Propaganda, 2022). 그때까지 대학생이 졸업 작품으로 서체를 개발하고 나아가 기업 후원까지 받은 사례는 없었다. 이후 1978년에 명지실업전문대학에 재직하며 <레터링> 수업 교재로 한글 활자체 원도집 『황 미디엄』을 출간했다. 미진사에서 초판 500부를 찍어 발간한 128쪽 분량의 책자에는 그가 제자들과 함께 그린 1,350자의 한글 원도와 활자 개발에 대한 그의 생각 및 개발 방법 등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Figure 1 Hwang Buyong’s Graduation Work (1973)

Figure 2 Hwang Medium (1978)
2. 2. 2. 편집 디자인 교육 및 연구

황부용이 1976년 10월에 창간한 『디자인』지의 초대 아트디렉터가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였다. 1976년 12월에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전시실에서 개최된 김교만의 첫 개인전인 <한국을 주제로 한 관광포스터 전> 준비를 돕던 황부용은 전시 자료를 전달하기 위해 『디자인』지를 방문했다. 평소 잡지라는 매체에 호기심과 매력을 느끼고 있던 황부용은 기자였던 이영혜 현 디자인하우스 대표와 대화를 나눈 후 『디자인』지 제호를 리디자인하고 잡지 기획 및 편집 디자인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1986년 10월호에 게재된 창간 10주년 기념 좌담회에서 이영혜 대표는 『디자인』지를 거쳐 간 아트디렉터들 중 일정 기간 지속적인 영향을 준 디자이너로 황부용과 이상철을 꼽았다.


Figure 3 Cover and Table of Contents Page for the March 1977 Issue of Monthly Design

이 시기에 황부용은 <편집 디자인> 수업에서 『타임』, 『세븐틴』, 『우먼즈데이』 등의 미국 잡지를 교재로 활용했다. 당시 다른 대학에는 아직 편집 디자인 과목이 없었기 때문에 이 수업을 수강한 졸업생들은 출판사와 잡지사 등에서 각광을 받았다. 황부용은 당시 수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첫 시간에 수강생들에게 “이번 학기의 교재는 『세븐틴』 3월호입니다”라고 고지를 해서 학생들이 모두 같은 교재를 구해 두 번째 수업시간부터 교재를 가지고 수업에 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두 번째 시간부터는 수강생들과 함께 『세븐틴』지를 한 페이지씩 같이 넘겨 가며 편집 디자인에서 사용하는 용어들과 편집 디자인의 기본 원리와 기초 기술을 강의했습니다. 이론과 기술에 대한 강의는 대략 4주 정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5주째부터 실기에 들어갔는데 각자 집에 보관하고 있는 가족사진들이나 사진첩에 있는 친구 사진 등을 가지고 와서 가족 이야기나 친구 이야기 등을 소재로 8페이지 분량의 편집 디자인 과제를 부여해 여러 가지 디자인 문제들을 함께 풀어나갔습니다. 16주 강의가 끝날 때쯤 되면 수강생들은 모두 자신감이 붙어있었고 수강생들은 시중에 돌아다니는 구인 정보 등을 공유해 가며 졸업하기 전에 이미 빠르게 그들끼리 취업영역을 확장해 나갔습니다.9)

Figure 4 American Magazine Cover Design (1978)

황부용이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기간행물의 편집디자인 매뉴얼에 관한 연구」(1983)라는 석사 논문을 쓸 때 도움이 된 책은 가미구치 리쿠토(上口陸人)의 『에디토리얼 디자인의 실기(エディトリアル デザインの実技)』(1977)였는데 그는 이 책이 자신의 편집 디자인 사상 및 방법의 뿌리가 되었다고 밝혔다.

2. 2. 3. 출판기획 및 저술

1970년대 국내 출판계에서는 디자인 전공자들이 읽을 만한 그래픽 디자인 전문 서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부용은 시각문화사(1978)10)에서 발간한 시각문화문고(1979~1984)의 출판 기획을 주도했다. 이 시리즈의 발간 목적은 책 표지 뒷날개에 적힌 ‘시각문화문고는 인간이 창조하는 그래픽 디자인의 모든 전통과 이념을 한글로 알기 쉽고 아름답게 정리한다’는 문구에 잘 나타나 있었다(Kang, 2024). 이 시리즈에 포함된 책들은 다음과 같다: 『그래픽 디자인의 출발』(저지 카로 지음, 윤학중 옮김, 1979), 『아이디어는 어디에 있는가』(나가이 가즈마사 지음, 박진숙 옮김, 1979), 『나는 디자이너인가』(황부용 엮음, 1979), 『새로운 세대의 그래픽 디자인』(이길도 비젤레 지음, 박수호 옮김, 1979), 『경영전략으로서의 디자인/아메리카』(나까니시 모토오 지음, 박진숙 옮김, 1979), 『세계의 로고타이프』(황부용 엮음, 1979), 『포스터에의 도전』(윤학중, 황부용 엮음, 1979), 『포스터의 위력』 (김진평 엮음, 1979), 『그래픽은 어디로 가는가』(황부용 엮음, 1980), 『경영전략으로서의 디자인/철도, 지하철』(나까니시 모토오 지음, 박인용 옮김, 1980), 『조직체의 개성』(윌리 올린스 지음, 임인선 옮김, 1984), 『아메리칸 일러스트레이션』(윤학중 엮음, 1984). 전체 12권 중 6권은 번역서이고 나머지 6권은 편저서였는데 황부용은 이 시리즈 전반을 총괄했다.


Figure 5 Visual Culture Book Series (1979~1984)

황부용은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디자인』지에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 연재를 시작해 총 13회에 걸쳐 게재했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특징을 살펴본 이 연재에서 다루어진 주제와 디자이너는 다음과 같다.

Table 1
People Who Create Images (Monthly Design, August 1985- May 1987)

시기 주제 관련 그래픽 디자이너
1986년 1월호 제1회 주정적 디자인 김교만, 권명광, 전후연
1986년 2월호 제2회 주지적 디자인 조영제, 안정언, 김현
1986년 3월호 제3회 기초 디자인적 접근 나재오, 구동조,
1986년 4월호 제4회 타이포그래피적 접근 이상철, 김진평, 안상수
1986년 5월호 제5회 그래픽 프로세스에 의한 접근 양승춘, 조종현
1986년 6월호 제6회 회화적 접근 한홍택, 백금남
1986년 7월호 제7회 해학적 접근 전갑배, 한호림, 강우현
1986년 8월호 제8회 극적 접근 김영기, 정연종, 이봉섭
1986년 12월호 제9회 70년대에 떠오른 디자이너들
(산업디자인전 스타일)
-
1987년 1월호 제10회 개념적 접근 윤학중, 황부용, 이성표
1987년 2월호 제11회 장식적 접근 현용순, 김상락, 오병권
1987년 3월호 제12회 사실적 접근 허상회, 이복식, 방재기, 김경열, 김건배, 김동원
1987년 5월호 제13회 에필로그 -


Figure 6 People Who Create Images (Monthly Design, January 1986)

연재를 시작할 때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을 총 20회로 기획하고 이 중 후반부 7회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유럽, 미국, 일본, 한국의 그래픽 디자인 발전사를 연표 형식으로 담으려 했던 황부용은 계획을 수정해 후반부 제목을 「현대 그래픽 디자인 100년: 아르누보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까지」로 바꾸고 총 14회로 분량을 늘려 1878년부터 1977년까지 세계 그래픽 디자인 소사를 정리해 소개했다.

Table 2
100 Years of Modern Graphic Design: From Art Nouveau to Postmodernism (Monthly Design, August 1987-March 1989)

시기 주제 대상 연도
1987년 8월호 아르누보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1) 1878년~1900년
1987년 9월호 아르누보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2) 1991년~1921년
1987년 10월호 아르누보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3) 1922년~1931년
1987년 12월호 아르누보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4) 1932년~1944년
1988년 2월호 아르누보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5) 1945년~1949년
1988년 5월호 아르누보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6) 1950년~1953년
1988년 6월호 아르누보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7) 1954년~1958년
1988년 7월호 아르누보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8) 1958년~1962년
1988년 10월호 아르누보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9) 1962년~1965년
1988년 11월호 아르누보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10) 1966년~1968년
1988년 12월호 아르누보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11) 1969년~1971년
1989년 1월호 아르누보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12) 1971년~1973년
1989년 2월호 아르누보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13) 1973년~1976년
1989년 3월호 아르누보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14) 1976년~1977년


Figure 7 100 Years of Modern Graphic Design: Art Nouveau to Postmodernism (Monthly Design, August 1987)

황부용이 『디자인』지 1986년 1월호부터 1989년 3월호까지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총 27회에 걸쳐 게재한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과 「현대 그래픽 디자인 100년: 아르누보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까지」 연재는 『디자인』지 편집부가 1985년 8월호에 게재했던 「도표로 보는 디자인 40년사」11)의 후속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이 기사는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는데 그 이유는 해방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디자인의 흐름을 도표 형식으로 알기 쉽게 정리해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디자인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결과가 아니라 편집부가 몇몇 디자이너들의 개인적 기억과 경험에 의존해 작성한 것이라서 내용적인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이에 편집부에서는 한국디자인계 현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일본과 서구 디자인계의 동향도 꾸준히 파악하고 있던 황부용에게 장기 연재를 의뢰했다. 집필을 시작할 당시 황부용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디자인실장으로서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 준비에 한창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러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그가 연재 요청을 수락한 것은 조직위원회에서 디자인 행정 업무를 하면서 한국디자인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깊어졌고 한국디자인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국내외 디자인사에 대한 역사적이고 체계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오래 전부터 이미 관련 자료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필이 가능했다. 순서로는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현대 그래픽 디자인 100년: 아르누보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까지」보다 앞서 게재가 되었지만 한국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활동을 다룬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의 구성은 「현대 그래픽 디자인 100년: 아르누보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까지」에서 다루어진 세계 그래픽 디자인사 흐름 속에서 중심 주제를 골라 한국 현대 그래픽 디자인에 접목시킨 것이었다.

2. 2. 4.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디자인실 업무

88서울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발족한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에는 디자인전문위원회(위원장: 조영제) 외에 실무조직으로 디자인실이 설치되었는데 황부용은 디자인실장으로 근무하며 올림픽 관련 디자인 제반 문제의 결정, 계획, 예산집행, 인선 등 디자인 행정 전반에 관계된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관료, 군인, 기업가, 교수, 언론인 등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어있는 독특한 조직인 조직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정부와 디자인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Kang, 1988). 이 시기에 황부용은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 공식 포스터(1984)를 디자인하고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 및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그래픽 표준편람(1985)을 제작하는 한편 픽토그램(1986)을 개발했다


Figure 8 Magazine Cover and Articles on Hwang Buyong (Monthly Design, September 1988)

스포츠 픽토그램과 관련해서는 국제 판권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조직위원회에서는 86서울아시안게임에서 사용한 스포츠 픽토그램을 88서울올림픽에서도 계속 사용하려 했으나 뮌헨올림픽(1972) 스포츠 픽토그램 판권을 사서 보유하고 있던 몬트리올올림픽(1976) 조직위원회에서 인체 동작이 유사하다며 사용료를 내라는 요구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앞서 개최된 모스크바올림픽(1980)과 LA올림픽(1984) 때는 제기되지 않았던 초유의 일이었지만 논란을 피하고자 조직위원회에서는 스포츠 픽토그램을 다시 만들 것을 결정했다. 이에 황부용은 인물 상체를 외곽선으로 투명하게 처리하고 이전 동작들과 다르게 디자인해 호평을 받았다.12)


Figure 9 Sports Pictograms for the 24th Olympic Games Seoul 1988

Figure 10 Sports Pictograms for the 10th Asian Games Seoul 1986
2. 2. 5. 포스터 디자인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황부용의 개인적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은 포스터 작품들인데 그가 제12회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에 추천작가로서 출품한 <파라솔 쇼우>(1977)는 그해 가장 아름다운 포스터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그의 포스터 중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평화> 포스터(1987)를 꼽을 수 있는데 이 포스터는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산하 국제미술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rt, 약칭 IAA)에서 개최한 국제포스터살롱에서 2등 상을 수상했다. 당시 이 대회에는 30개 국가에서 600여 점이 출품됐고 다국적 전문가들로 구성된 50명 심사위원단의 투표로 수상작이 결정됐다. 1등 상은 폴란드 출신의 스타시스 아이드리예비치우스가 27표로 수상했고 황부용은 26표를 얻어 1표 차이로 2등 상을 받았다.13) 당시 폴란드 디자이너들은 기존의 형식과 다른 이색적인 감각과 개념적인 스타일의 포스터 작업을 선보이며 세계 그래픽 디자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었고 황부용 역시 20대 때부터 폴란드 포스터에 매료되어 영향을 받았다.


Figure 11 Parasol Show Poster (1977) and Peace Poster (1987)

황부용은 1971년에 상공미전에 포스터를 처음 출품한 후 1994년까지 꾸준히 출품했는데 이는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일반 자격으로 출품한 시기다. 두 번째는 1975년부터 1984년까지 추천작가 시기이고, 세 번째는 1985년부터 1994년까지 초대작가 시기다.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개념적으로 뚜렷하게 표현해내는 그의 포스터 디자인 특징은 출품 초창기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추천작가 시기에도 이러한 경향이 이어지다가 초대작가 시기에 들어서는 86서울아시안게임 공식 포스터에서처럼 사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거나 캐릭터의 활용을 모색하는 등 변화가 나타났다.


Figure 12 Posters for The Korean Commercial & Industrial Art Exhibition (1971~1974)

Figure 13 Official Poster for the Asian Games Seoul 1986 (1984)
3. 황부용 디자인 활동의 특징과 배경
3. 1. 황부용 디자인 활동의 특징

황부용은 디자인계에서 활동할 당시에 ‘이론, 합리성, 디자인 센스를 동시에 갖춘 디자이너’라는 평가를 받았다.14) 1970, 80년대 그의 디자인 작품 및 저술 활동에 나타난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해외 디자인 동향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탐구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외국어 공부를 좋아했던 황부용은 대학 재학 중 『아이디어』나 『그래픽 디자인』 같은 일본 디자인 전문 잡지를 구독하고 『타임』과 『뉴스위크』 등 미국 시사주간지를 탐독했다. 또 독일, 폴란드, 미국, 쿠바 등에서 전개된 개념적 디자인 접근방식15)에서 영향을 받으며 A. M. 카상드르, 귄터 람보우, 귄터 키제르, 얀 레니차, 오틀 아이허, 장 미셀 폴롱 등의 작업에 관심을 가졌다.16) 그가 동생과 함께 시각문화사라는 출판사를 설립해 그래픽 디자인 관련 해외 단행본을 번역하거나 편저해 앤솔로지를 출간하고 『디자인』지에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과 「현대 그래픽 디자인 100년: 아르누보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까지」를 연재했던 것은 대학 시절부터 일본 및 서구 디자인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꾸준히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그의 포스터 작업이 초창기부터 일관되게 메시지를 개념적으로 전달하는 시각적 특성을 갖게 된 것 역시 동시대 그래픽 디자인의 시대적 흐름을 자신의 창작 작업에 접목하고자하는 실천적 노력의 결과였다.

둘째는 디자인 작업과 저술 활동의 병행이다. 그는 포스터 출품과 수상으로 25세에 상공미전 추천작가가 되고 28세에 한국을 대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13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될 만큼 작품 창작 능력을 인정받았다. 디자인 저술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황 미디엄』을 교재로 출간했다. 『디자인』지에 아트디렉터로 참여하면서 디자인 작업만이 아니라 기획 및 기사 작성에도 참여했는데 1979년 1월호 디자인 수상 코너에 실린 「디자인계의 문맹퇴치운동」이라는 글에서 그는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해외의 디자인 정보를 해설하고, 현재의 좌표를 설정해 줄 것이며, 누가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정확한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신과 같은 젊은 디자인문맹퇴치 운동가들에 의해 한국디자인의 근대화가 앞당겨질 것이라 기대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디자인 실무와 글쓰기를 이어갔다.

셋째는 새로운 디자인 분야의 개척이다. 황부용은 디자인계에서 한글 글꼴 개발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되기 이전에 대학 졸업 작품으로 한글 서체를 디자인했다. 그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명계수는 본인을 비롯해 다른 교수들도 『황 미디엄』 단행본을 레터링 수업 교재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김진평, 안상수, 석금호 등이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매진하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뿌리깊은나무』지의 아트디렉터(1976~1980)였던 이상철의 영향이 컸지만17) 거의 같은 시기에 『디자인』지에서 아트디렉터(1977~1979)로 활동하며 대학에서 편집 디자인을 가르쳐 출판계에서 활동할 디자인 졸업생들을 배출한 황부용의 시도 역시 자극과 영감을 주었다. 이상철이 대학이 아니라 실무 현장에서 독학한 디자이너였던 반면에 황부용은 대학에서 디자인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그 역시 스스로 편집 디자인 이론을 독학으로 익혀 편집 디자인 실무와 교육을 해나갔다. 그의 대학원 석사 논문인 「정기간행물의 편집 디자인 매뉴얼에 관한 연구」(1981)는 편집 디자인에 관한 이론적 기초를 다진 초창기 연구 논문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이때의 연구를 바탕으로 황부용은 후에 중앙일보 제호를 리디자인하고 지면을 개편해 가로쓰기 신문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에서 디자인실장으로 일하며 디자인 행정 영역을 개척했다.

넷째는 디자인계 내 소통과 교류이다. 황부용은 소탈한 성격과 뛰어난 언변으로 젊은 시절부터 디자인 관련 각종 모임과 협회에서 사회를 보고 행사를 주도하며 여러 세대 디자이너들과 교류했다. 황부용은 자신이 ‘김교만 교수에게서는 사람의 감정을 정서적으로 움직이는 측면의 디자인 방법을 배웠고, 조영제 교수에게서는 논리적인 배경이 깔린 합리적인 스타일의 디자인과 함께 비즈니스와 디자인의 관계를 배웠으며, 양승춘 교수에게서는 메커니즘에 의해 형성되는 디자인의 측면을, 김수석 교수에게서는 디자인 이론 접근방법 등의 영향을 받았고 같은 연배인 김현에게서 디자인 어프로치 방법을, 또 구동조로부터 디테일에서 찾아지는 심미성을 배웠다’고 밝혔다.18) 황부용은 1986년부터 1993년까지 KSVD의 홍보이사를 역임하면서 협회 임원진 및 회원들과 활발히 소통하며 협회 발전에 기여했다. 디자인브리지를 운영하다 그만둔 후 사업상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더그래픽스, 인피니트, 엑스포디자인 등 여러 디자인 전문회사에서 일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디자인업계 내에 확장된 네트워크를 가지고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Table 3
Characteristics of Hwang Buyong’s Design Activities

특징 관련 주요 활동
해외 디자인
동향 탐구
- 『아이디어』,『그래픽 디자인』 등 일본 디자인 전문 잡지 구독 및 구와야마 야사부로와 가미구치 리쿠토의 단행본 독학
-『타임』, 『뉴스위크』 등 미국 잡지 탐독 및 교재 활용
- 독일, 폴란드, 미국, 쿠바 등의 개념적 디자인 접근방식 연구
- A. M. 카상드르, 귄터 람보우, 귄터 키제르, 얀 레니차, 오틀 아이허, 장 미셀 폴롱 등 해외 그래픽 디자이너 작품 연구
디자인 작업과
저술 활동 병행
- 상공미전 및 KSGD/KSVD 포스터 출품
- 명지실업전문대학 교수 역임 및 『황 미디엄』 교재 출간
-『디자인』지 초대 아트디렉터 및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과 「현대 그래픽 디자인 100년: 아르누보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까지」 연재 집필
- 시각문화사 설립 및 시각문화문고 시리즈 기획과 출판
-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디자인실 근무 및 스포츠 픽토그램 디자인 개발
- 디자인브리지 설립 및 운영
-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 신문디자인 자문
새로운 디자인
분야 개척
- 대학 졸업 작품으로 서체 디자인 개발 및 레터링 수업 교재 집필
-『디자인』지 아트디렉션 및 편집 디자인 관련 교과목 개발과 석사학위 논문 발표, 신문디자인 영역 전문화
- 그래픽 디자인 분야 전문 출판사인 시각문화사 설립
-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디자인 행정 담당
디자인계 내
소통과 교류
- 상공미전 출품과 추천작가 및 초대작가 활동
- 시각문화문고 시리즈 기획 및 출판 활동
- KSVD 회원 및 홍보이사 역임과 『한국의 시각디자인 80-85』발간 주도
-《그래피코리아‘85》 동인전 및 《코리안포스터디자인》 미국순회전 참여
- VIDAK 회원 및 정책부회장 역임

3. 2. 황부용 디자인 활동의 배경
3. 2. 1. 초창기 대학 디자인교육

서울대학교는 1946년 개교 당시 예술대학 도안과로 출발해 1951년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로 명칭이 변경된 후 1960년대 초반까지 응용미술로서 공예와 디자인이 함께 교육되다가 1964년에 상업미술과 공예미술로 세부 전공이 분리됐다. 1965년에 김교만과 조영제가 부임하면서 상업미술의 전공 특성이 뚜렷해지게 되었다. 1972년에 상업미술, 공업미술, 공예미술의 세 전공 체제가 되었고 1976년부터 전공 명칭에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해 상업디자인전공, 공업디자인전공, 공예전공이 됐다. 황부용이 대학을 다니던 시기는 이렇듯 응용미술로서의 디자인이 점차 세분화, 전문화되어 현대적인 모습을 갖춰 가던 때였다(Kang, 2024). 그가 대학 시절 이수한 교과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9)

Table 4
Subjects Completed by Hwang Buyong in the Department of Applied Art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1969-1972)

1학기 2학기
1학년
(1969)
국어, 영어, 불어, 한문, 사회과학, 체육, 교련, 서양미술사, 사군자, 서예, 소묘, 도학1, 일반구성 국어, 영어, 불어, 한문, 사회과학, 체육, 교련, 서양미술사, 사군자, 서예, 소묘, 도학1, 일반구성
2학년
(1970)
영어, 제2외국어(불어), 체육, 교련, 철학개론, 서양미술사, 미술감상, 정밀묘사, 판화, 도학, 상업미술, 공예미술 영어, 제2외국어(불어), 체육, 교련, 철학개론, 서양미술사, 미술감상, 정밀묘사, 판화, 도학, 상업미술, 공예미술
3학년
(1971)
교련, 동양미술사, 미학개론, 해부학, 서양화, 상업미술I, 상업미술II, 실내장치, 교육학, 교육과정 교련, 동양미술사, 미학개론, 해부학, 서양화, 상업미술I, 상업미술II, 실내장치, 교육심리, 교육철학
4학년
(1972)
한국미술사, 예술론, 현대미술론, 상업미술I, 상업미술II, 일러스트레이숀, 상업사진, 교육사, 미술지도법 한국미술사, 예술론, 상업미술II, 일러스트레이숀, 상업사진, 디자인론,

3. 2. 2. 상공미전과 KSVD

초창기 한국 디자이너 세대 구분에 있어서 1969년은 주목할 만한 시기다. 왜냐면 상공미전이 시작(1966)된 후 처음으로 수상자들이 추천작가 자격을 획득한 해이기 때문이다. 정시화는 이를 통해 비로소 디자이너가 공식적으로 전문성과 자격을 인정받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고 보았다. 이어 1970년에 한국디자인포장센터(현 한국디자인진흥원)가 설립되고 1972년에는 KSVD의 전신인 한국그래픽디자인협회(KSGD)와 한국인더스트리얼디자이너회(KSID)가 출범하는 등 민간 차원에서의 협회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러한 디자인계 분위기 속에서 황부용은 일찌감치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 집중해 관련 해외 동향을 파악하고 독학으로 디자인 지식과 정보를 얻어 자신의 작품과 저술에 적극적으로 접목해 나갔다. 1975년에 상공미전 추천작가가 된 후 1976년에 KSVD에 가입해 회원전에 작품을 출품하기 시작했고 1985년부터 1993년까지 홍보이사를 역임했다. 1986년에 KSVD가 발간한 『한국의 시각디자인 80-85』 단행본에는 당시 회장이었던 조영제의 발간사 「긍지의 시대로 가는 길목에서」와 함께 황부용이 쓴 서문 「KSVD ’80-’85」가 실렸는데 이 글에서 그는 1980년대 전반기 한국 그래픽 디자인계의 상황과 협회 활동의 의의를 상세히 서술하였다.

3. 2. 3. 한글 타이포그래피와 편집 디자인

해방 이후 최정호(1916~1988)와 최정순(1917~2016) 등에 의해 출판사와 신문사, 그리고 교과서 등에 사용될 한글 원도가 개발되었지만 1970년대 초반까지 디자인계 내에서는 전반적으로 서체 개발 및 편집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낮고 대학에서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부용이 졸업 작품으로 한글 서체를 개발하고 이후 황 미디엄체를 발표한 것은 앞선 시도였다. 명지실업전문대학에 재직하며 대학 측으로부터 취업에 도움이 되는 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편집 디자인 과목을 신설했는데 황부용은 선진국에서는 편집 디자이너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 국내에서도 편집 디자인 분야가 각광을 받고 취업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뿌리깊은나무』(1976)와 『꾸밈』(1977)이 창간되면서 한글 타이포그래피와 편집 디자인에 관심이 생겼으나 1970년대 중반에 국내 출판업계 종사자들은 대부분 인문계 출신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부용에게 편집 디자인을 배운 졸업생들이 배출돼 업계에서 좋은 평판을 얻으며 주요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편집 디자이너에 대한 수요가 늘게 되었다. 이 시기에 황부용은 『디자인』지의 초대 아트디렉터로도 활동하며 제호를 리디자인하고 지면의 편집 디자인을 개편하는 한편 기획과 집필에도 참여해 창간 시기에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이 중심이었던 『디자인』지가 그래픽 디자인, 제품 디자인, 공예를 아우르는 디자인 종합 전문잡지가 되는 데 기여했다. 내용과 형식 모두 탈바꿈한 『디자인』지의 혁신은 구독자들로부터 관심과 호응을 얻었고 황부용의 활약이 디자인계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꾸밈』지는 1978년 1/2월호에서 한글 디자인을 특집으로 다루어 주목을 받았다. 안상수는 최정호와의 인터뷰를 연재해 최정호의 한글 원도 작업을 디자인계에 소개하였다(Ahn, Noh, 2014). 1979년에 안상수는 김진평, 석금호, 이상철 등과 함께 글꼴모임을 시작했다. 한편 1970년대에 편집자로 활동하다 프랑스에서 편집 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온 정병규는 1984년에 정병규디자인을 설립했다. 1985년에 안그라픽스를 설립한 안상수가 1990년에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이후 홍대에서 편집 디자인 교육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3. 2. 4. 디자인 전문 출판

디자인을 포함해 미술 및 시각문화에 관심을 기울인 초창기 국내 출판사로는 열화당(1971)과 미진사(1973)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열화당의 경우 정시화의 『한국의 현대디자인』(1976)과 스티븐 베일리의 『산업디자인의 역사: 1900년부터 1960년대까지의 공업제품디자인』(1985)을 출간했지만 미술문고 및 미술선서 시리즈에서는 전반적으로 디자인보다는 미술과 시각매체, 그리고 한국전통문화에 중점을 두었다. 미진사는 『문자 디자인』(1976), 『디자인 용어사전』(1977), 『디자인론』(1979), 『포스터 디자인사』(1979),『현대디자인 연구』(1980), 『렌더링』(1981), 『공업 디자인 개론』(1981), 『디자인과 형태』(1981) 등 디자인 관련 단행본을 발간하면서 미술, 공예, 사진 분야도 함께 다루었다. 미진사가 디자인 분야에서 입지를 다지게 된 것은 미진신서를 출간하면서인데 초창기에 출간된 책은 다음과 같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 (미진신서 1)』(1983), 『현대디자인 이론의 사상가들 (미진신서 2)』(1983), 『현대디자인의 현실과 이상(미진신서 4)』(1984), 『바우하우스 (미진신서 6)』(1984), 『근대건축과 디자인: 산업혁명에서 20세기 초반까지(미진신서 16)』(1986), 『인간과 디자인(미진신서 18)』(1986), 『그래픽 디자인의 근본문제 (미진신서 30)』(1989). 황부용이 시각문화문고 시리즈를 기획했던 시기는 미진신서가 발간되기 이전으로 시각문화사는 특히 그래픽 디자인 서적 출간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3. 2. 5. 88서울올림픽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는 1980년대 한국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이 컸고 디자인 발전에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81년 9월에 올림픽 유치가 결정되고 곧이어 11월에 아시안게임 유치도 확정이 되었다. 준비과정에서 86서울아시안게임은 88서울올림픽을 예행 연습하는 기회로 활용되었다. 『디자인』지는 1981년 11/12월 합본호 전체를 올림픽 특집으로 기획하고 관계자 초청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를 통해 올림픽 개최의 의의와 준비 방법, 그리고 디자이너의 역할 등이 논의되었다. 한편 역대 올림픽 자료를 조사하면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조직위원회에서는 조영제에게 올림픽과 디자인의 관계에 대해 오리엔테이션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빅 이벤트와 이미지 아이덴티티>를 주제로 강연을 마친 조영제에게 조직위원회에서는 연도별 시행 계획의 수립을 요청했고 그는 윤호섭과 함께 『88서울올림픽 마스터플랜』을 작성했다(Kang, 2015). 조직위원회에서는 이 제안서를 토대로 디자인 분야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한 후 디자인 기본 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기본 계획에 따라 디자인전문위원회가 구성되어 올림픽 관련 각종 디자인 기획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휘장, 마스코트, 포스터, 픽토그램, 유니폼 등에 관한 디자인 심의 및 결정 등의 업무가 진행됐다. 조직위원회 내 실무를 담당하기 위해 디자인실도 설치되었다. 대회 개최가 가까워지면서 디자인 업무가 복잡해지고 조직위원회와 디자인계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기는 등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디자인 코디네이션 차원에서 볼 때 88서울올림픽은 성공적이라 평가되었고 이후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이벤트 디자인 프로젝트 진행의 선행 모델로 자리 잡았다.

4. 결론

한글 서체 개발, 편집 디자인 교육 및 연구, 출판 기획 및 저술, 올림픽 디자인 행정 업무, 포스터 디자인 등으로 대표되는 1970, 80년대 황부용 디자인 활동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찾자면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이 스스로 표현했던 것처럼 ‘디자인계 문맹퇴치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황부용은 그래픽 디자인이 응용미술과 상업미술로 여겨지던 시기에 디자인 활동을 시작해 한국디자인이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디자인 리터러시(Design Literacy)를 확보하고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그는 해외 디자인 동향을 꾸준히 파악하고 새로운 분야에 과감하게 도전해 동시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황부용이 88서울올림픽 준비를 위해 교직을 떠난 후 다시 디자인 교육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한 것이나 그가 설립했던 시각문화사와 디자인브리지가 사업상의 어려움을 겪고 오래 지속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디자이너로서의 소명의식과 개척정신은 한국 그래픽 디자인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조영제는 1985년 11월에 개최된 한일디자인세미나에서 한국 그래픽 디자이너 세대를 개척기의 제1세대, 상공미전이라는 등용문을 통해 등장한 제2세대, 그리고 사회적으로 폭발하는 디자인 수요 속에서 성장한 제3세대로 구분했다(Hwang, 1986). 하지만 1970년대와 80년대는 이 세 세대가 함께 활동한 시기이기도 했다. 김교만과 조영제가 제1세대라면 권명광, 안정언, 양승춘 등은 제2세대라 할 수 있다. 황부용은 연령적으로는 김현과 안상수처럼 제3세대에 속하지만 20대 때부터 일찌감치 상공미전을 통해 실력을 인정을 받아 제2세대와 함께 활동하며 제3세대의 성장에 자극과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세대 구분을 뛰어 넘는 위치에 있다(Kang, 2024). 그가 1970년대에 ‘디자인계 문맹퇴치운동’을 추진하고자 했던 것은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 국내 디자인 상황이 너무 열악하다는 현실을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독학으로 이론과 실기의 기초를 스스로 다지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가며 한국 그래픽 디자인이 시각 커뮤니케이션 특성을 갖추는 데 기여했다. 황부용(1951년생)에 앞서 한국디자인 담론 형성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는 국내 대학에서 처음 디자인론 강의를 시작하고 평생 디자인 교육에 매진해온 정시화(1942년생)20)가 있다. 정시화는 도안 및 응용미술 차원에서 인식되던 디자인이 미술과 공예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율성과 독자성을 갖추는데 기여했다. 이어 황부용은 작품 창작과 저술 활동을 아우르며 디자인역사와 시각문화 맥락에서 당대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한계와 문제점을 인식하고 디자인 리터러시를 함양해 국제적인 수준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Acknowledgments

This work was supported by INHA UNIVERSITY Research Grant.

Notes

1) 당시 선정된 디자이너 연령대는 50대 1명, 40대 3명, 30대 8명, 20대 1명이다: 김교만(51세), 봉상균(47세), 조영제(44세), 양호일(40세), 양승춘(39세), 박재진(39세), 권명광(38세), 김영기(38세), 홍종일(38세), 나재오(34세), 정연종(33세), 김현(30세), 황부용(28세).

2) 본 연구자는 대학 재학시절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미술과에 출강(1987)한 황부용의 강의를 수강했다. 또한 『디자인』지 객원기자로 활동하며 1988년 9월호에 「SLOOC 디자인실의 초석을 다진 디자이너, 황부용」 기사를 작성했다.

3) 황부용은 중앙일보 신문디자인 전문위원 시절에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국제CI컨퍼런스(1995)에 참석했다가 펜타그램(Pentagram)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콜린 폽스(Colin Forbes)가 강연 중 그래픽 디자이너의 정년은 55세가 적당하다고 말한 내용을 듣고 자신의 인생 제 2막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일 년에 100일씩 10년간 새벽기도를 하면서 인생 제 2막에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2009년부터 전업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4) 부용티비(BUYONGTV)는 현재 디자인 관련 주제만이 아니라 황부용의 다양한 관심사를 반영한 콘텐츠로 운영되고 있다.

5) ㈜티랩은 고(故) 김진평의 제자들이 2015년에 설립한 글꼴 연구 및 개발 전문가 집단이다.

6) 황부용 미디엄 서체는 현재 CDR황부용미디엄이라는 이름으로 폰트 플랫폼 산돌구름에서 판매되고 있다.

7) 이 전시회에 소개된 포스터의 오리지널 원고들은 황부용이 15년 동안 만든 유화 및 수채화 작품 750여점 중에서 50점을 골라 포스터 형식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활동했던 지난 시기를 추억하고 회상하는 의미에서 이번 개인전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8) 샤켄(写研)은 모리사와(モリサワ)와 함께 일본의 양대 서체 회사 중 하나로 한국사연은 샤켄의 한국지사였다. 아직 한글 글자판이 없던 국내 사진식자 도입기에 샤켄은 최정호(1916~1988)에게 한글 원도 작업을 의뢰해 샤켄 명조체, 고딕체, 굴림체, 그래픽체 등의 글꼴을 개발했다. 모리사와 역시 최정호에게 의뢰해 모리사와 명조체와 고딕체를 만들었다.

9) 황부용 [Buyong Hwang]. Retrieved from http://www.buyong.com

10) 시각문화사는 1978년에 설립된 그래픽 디자인 전문 출판사로 황부용의 동생 황희용이 대표를 맡고 황부용의 대학 졸업 동기인 윤학중이 함께 출자했다. 후에 『디자인』지 편집장이 된 박수호와 『꾸밈』지 편집장이 된 박인용이 편집과 번역을 주로 맡았다.

11) 이 기사는 권명광, 박대순, 박형철, 백금남, 백태원, 신인섭, 유석순, 이순석, 이순종, 한홍택 등으로부터 자문을 받아 『디자인』지 편집부가 집필했다.

12) 스포츠 픽토그램은 황부용이 디자인하고 김승진이 드로잉 어시스턴트로 참여했다. 조영제는 디자인전문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감수를 맡았다.

13) 26표를 얻은 동점자가 3명이었는데 두 명이 모두 1등 수상자와 같은 폴란드 출신이라 한 국가에 하나의 본상만을 수여한다는 원칙에 따라 황부용이 단독 2등이 되었다. 황부용 [Buyong Hwang]. Retrieved from http://www.buyong.com 참조.

14) 1989년 8월 『디자인저널』지 노성연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 참조.

15) 개념적 디자인 접근 방식은 특히 1970년대에 각광을 받았는데 그래픽 디자인에서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해 개념을 혼합, 도치, 상치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시각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디자인 방식이다.

16) 2004년 4월 22일 정은미와의 인터뷰 내용 참조.

17) 이상철은 『뿌리깊은나무』(1976) 창간에 참여하면서 아트디렉션, 그리드 시스템, 타이포그래피 등 편집 디자인 기본 개념 정립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상철 스타일’이라고 불린 그의 편집 디자인은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주었다.(Kang, 2017).

18) 1989년 8월 『디자인저널』지 노성연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 참조.

19) 황부용의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 졸업 성적표 참조.

20) 정시화는 유근준의 추천으로 1968년에 서라벌예술대학(중앙대학교 미술대학의 전신) 교수였던 백태원이 국내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디자인론 강의를 담당했다. 이후 『계간 디자인』(1969) 편집연구원을 지냈으며 허버트 리이드의 『디자인론』(1971)과 존 버니콧의 『포스터 디자인사』(1979)를 번역 출간하고 『현대 디자인 연구: 현대 디자인의 이론적 배경』(1975), 『한국의 현대 디자인』(1976), 『산업디자인 150년』(1991)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1976~2007)하다가 정년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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