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of Design Research
[ Article ]
Archives of Design Research - Vol. 38, No. 1, pp.399-416
ISSN: 1226-8046 (Print) 2288-298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28 Feb 2025
Received 06 Aug 2024 Revised 30 Dec 2024 Accepted 30 Dec 2024
DOI: https://doi.org/10.15187/adr.2025.02.38.1.399

1980년대 ‘프로-스펙스’ 운동화의 디자인문화

Ho Jung Lee , 이호정 , Chang Sup Oh , 오창섭
Department of Design, Postgraduate Student, Konkuk University, Seoul, Korea 건국대학교 디자인학과, 대학원생, 서울, 대한민국 Department of Design, Professor, Konkuk University, Seoul, Korea 건국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 서울, 대한민국
Design Culture of ‘Pro-Specs’ Sneakers in the 1980s

Correspondence to: Chang Sup Oh changsup@konkuk.ac.kr

초록

연구배경 ‘프로-스펙스’ 운동화는 1980년대에 신드롬을 일으키는 사물이었다. 본 연구는 프로-스펙스가 유행을 이끌던 1980년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시기 디자인문화를 설명하는 사물이나 브랜드에 대한 미시적인 연구는 찾기 어렵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프로-스펙스 운동화의 등장 배경과 디자인문화를 밝힘으로써 하나의 브랜드가 당시의 사회·문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정체성을 형성했는지를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방법 1980년대의 신문 기사들의 담론 분석을 통해 관련 주제에 대한 인식과 상황을 파악하였다. 또한 프로-스펙스의 광고의 도상을 분석함으로써 해당 시기 브랜드의 지향점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 격월간지인 『프로-스펙스』지를 보완적으로 활용했다.

연구결과 프로-스펙스는 다음과 같은 과정과 영향 속에 고유한 정체성을 확보해 갔다. 첫째, 프로-스펙스는 국산 브랜드를 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출현하여 그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국산 브랜드 정체성을 획득해갔다. 둘째, 교복 자율화가 시행되어 새로운 소비층이 형성됨에 따라 브랜드 고유성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보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스포츠의 신화를 매개로 이상적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다. 이 과정에 프로-스펙스는 애국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론 1980년대 프로-스펙스 운동화의 고유한 정체성과 디자인문화는 국산 브랜드, 교복 자율화, 스포츠에 대한 신화를 매개로 구체화되었다.

Abstract

Background ‘Pro-Specs’ sneakers were a syndrome in the 1980s. This study focuses on the 1980s, when Pro-Specs was a trendsetter. It is difficult to find micro studies of objects or brands that explain the design culture of this period. This shows the need for related research. In this context, this study aims to examine how a brand shaped its identity in the social and cultural climate of the time by revealing the background and development factors of Pro-Specs sneakers.

Methods This study analyzed the discourse of newspaper articles from the 1980s that understand the perception of the topic and the situation at the time. We also analyzed the iconography of Pro-Specs’ advertisements to understand the brand’s orientation. The bimonthly magazine Pro-Specs was used as a complement to this process.

Results Pro-Specs developed its unique identity through the following processes and influences. First, Pro-Specs emerged in an atmosphere that demanded domestic brands and actively responded to that atmosphere, acquiring a domestic brand identity. Second, Pro-Specs was able to quickly secure its uniqueness among young people as new consumer groups were formed due to the implementation of school uniform autonomy. Third, Pro-Specs built an ideal image through the mythology of sports. In this process, Pro-Specs actively leveraged patriotism.

Conclusions The unique identity and design culture of Pro-Specs sneakers in the 1980s materialized through domestic brands, school uniform autonomy, and the mythology of sport.

Keywords:

1980s Design Culture, Sneakers, Domestic Brands, Sports

키워드:

1980년대 디자인문화, 운동화, 국산 브랜드, 스포츠

1. 서론

1.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프로-스펙스는 1980년대에 국민 운동화로 등장한 우리나라의 첫 스포츠 브랜드로, 그 역사가 40년이 넘는다. 2022년 3월, 프로-스펙스는 러닝화 ‘마라톤 220’을 복각해 출시했다. 이 러닝화는 1978년, 마라토너 데이브 맥길리브레이가 미국 대륙 횡단 시 착용해 널리 알려진 모델이었다. 당시 마라토너가 해당 스니커즈를 신고 완주하는 영상과 함께 “직진, 그날까지”라는 카피의 광고가 제작되었고, 소비자들로부터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명성을 되찾자’ 등의 반응을 일으키며 완판되었다. 해당 제품이 완판된 데에는 한정판이라는 판매 전략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스니커즈의 스토리가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진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곧이어 2023년에는 <프로-스펙스 헤리티지 프로젝트>가 브랜드 내에서 자체적으로 진행되며 프로-스펙스의 역사와 제품을 개괄한 출판물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가 출간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프로-스펙스가 자신의 과거를 주된 콘텐츠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프로-스펙스는 왜 그토록 자신들의 과거에 주목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왜 그러한 프로-스펙스의 과거에 반응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기억하는 프로-스펙스의 특정 시간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81년에 국내에 출범한 프로-스펙스는 당시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는 운동화이자 브랜드로서 인식되었다. 프로-스펙스 운동화의 위상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다양한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써니〉에서는 교복 자율화가 이뤄졌던 시기, 고등학생인 ‘나미’가 서울로 전학을 오는 과정에서 “서울 애들은 모두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신는다”며 자신도 운동화를 사달라고 조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나미가 신은 프로-스펙스 운동화는 시대를 고증하는 주요한 사물로서 전경화되어 등장한다.

1980년대에 ‘운동화’라는 사물은 국내에서 전에 없던 독특한 후광을 입고 있었다. 궁핍했던 시대에 고무신 다음으로 나타난 신발이 바로 운동화였다. 한국전쟁 이후 수입을 통해 들여온 운동화는 한국의 산업화와 궤를 같이하는 시대적 산물로서, 그것이 프로-스펙스라는 고유한 브랜드로 인식되고 소비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에 운동화는 오늘날 이해되는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운동화와는 다른 의미와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세대를 가리키는 사물로 기억되고 있다. 과거를 발굴하는 오늘날 프로-스펙스의 움직임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프로-스펙스가 유행을 선도하던 1980년대는 소비의 물결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그렇다면 프로-스펙스 운동화는 왜 그 시기에 출현했고, 어떻게 스포츠화 시장에서 성장하여 대중에게 선망의 이미지로 기억될 수 있었을까?

본 연구는 프로-스펙스의 등장 배경을 설명하고, 프로-스펙스의 고유한 정체성 형성 요인을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 다음과 같은 방법을 활용하였다. 우선 연구의 시간적 범위인 1980년대에 발행된 신문 기사들을 통해 프로-스펙스에 대한 당대의 인식을 파악했고, 담론 분석의 방법을 통해 이 시기의 사회문화를 연구한 문헌을 분석했다. 또한 광고의 도상 분석을 통해 프로-스펙스의 생산 주체인 국제상사의 이상향과 판매 전략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국제상사가 1986년부터 발행한 격월간지 『프로-스펙스』지를 살펴봄으로써 국제상사라는 기업의 내부 상황과 의지가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고자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 연구는 운동화에 대한 대중적 반응이 강렬하게 나타났던 1980년대를 대상으로, 프로-스펙스 운동화가 어떤 과정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본 논문은 국내 첫 스포츠 브랜드인 프로-스펙스의 등장 배경과 성장 요인, 당시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 노력을 고찰함으로써 1980년대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둘러싼 디자인문화를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 2. 연구 범위 및 방법

본 연구는 프로-스펙스가 공식적으로 나타난 1981년부터 88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까지를 주된 시간적 범위로 삼고 있다. 그런데 국제상사가 미국으로부터 ‘스펙스’를 인수한 시점이 1978년이라는 점과 1990년대에 이르러 프로-스펙스에 대한 인식이 저하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주된 시간적 범위 이전과 이후의 내용도 연구 목적에 이르기 위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그러한 발전 양상의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 1980년대 전후의 시기의 내용도 일정 부분 연구 범위에 포함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연구 대상인 ‘프로-스펙스’를 물질적인 대상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은 하나의 이미지로 바라보고 있다. 이는 사용자에게 프로-스펙스 운동화가 어떤 존재였는지, 프로-스펙스에 대한 그러한 인식은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초점을 두고 접근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디자인문화의 맥락에서 1980년대를 다룬 연구로는 한국형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또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연구들이 있었다.1) 하지만 디자인 분야에서 운동화는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중공업이나 전자산업에 비해 역사적 가치가 거론되지 못했다. 운동화를 다룬 논문은 산업적 측면에서 접근한 「신발산업의 기술혁신 패턴과 전개방향」(Kim, 2000)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운동화는 1980년대에 각별한 의미를 가지는 일상적 사물이었다. 따라서 프로-스펙스는 당대의 일상과 디자인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살펴야 할 상징적인 브랜드이자 중요한 연구 대상이라 할 수 있다.


2. 프로-스펙스의 출현과 그 배경

2. 1. 국제상사와 신발산업

우리나라에 처음 운동화가 도입된 시기는 대략 1950년대 전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 부산은 일본으로부터 생산과 관련된 기술을 넘겨받기 유리한 지리적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이 몰려든 부산은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일본으로부터 신발 제조 기술과 부자재를 수급받아 적절한 신발 생산 거점이 된다. 상표가 달린 고무신은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함께 지어진 여러 고무 공장 중 하나였던 국제고무공업사는 1948년에 설립되어 신발 제조 기술을 확보해 가는 중이었다. 국제화학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꾸며 생산한 ‘왕자표 고무신’은 국제화학이 고무신으로 명성을 얻게 된 계기이자 국제화학의 품질을 보증하는 정체성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은 이러한 부산의 상황을 주목했다. 이는 1950년대에 서양권 국가에서 운동화 열풍이 일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세계대전으로 중단되었던 올림픽 대회가 1948년에 재개됨에 따라 푸마와 아디다스, 리복, 나이키와 같은 스포츠 브랜드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차례로 설립되었다. 운동화를 대량으로 저렴하게 만들어야 했던 서양의 스포츠 브랜드들은 대규모 생산 라인과 노동 집약적인 기술력, 그리고 저렴한 인건비를 지닌 한국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그 기회를 잡고자 했다. 그들의 상표를 다는 대신, 제조 기술을 넘겨받아 제품의 발주를 받는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을 통해 한국은 부산에서 운동화를 만들어 수출을 시작했다. 부산은 그 전초기지였다.

어느 정도 신발 생산 체계가 자리 잡혀 있던 부산의 공장들에게 OEM 방식의 제조와 수출 경험은 외국의 운동화 제작 기술을 습득할 좋은 기회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부산을 중심으로 한 신발 제조업이 서양권 국가와의 국제적인 관계 속에서 한국의 주요 수출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즉, 부산이라는 위치와 신발이라는 상품, 그리고 해외에서의 수요는 운동화를 스스로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킨 협조적인 조건들이었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국제화학주식회사는 1961년에는 일평균 3만 1,000족을, 1969년에는 16만 4,500족을 생산할 정도로 압도적인 성장세를 보인다.(Pro-Specs, 2023) 우리나라도 운동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리고 우리만의 국산 운동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다. 1962년에 국내 최초로 미국에 농구화를 수출하는 성과를 거둔 국제화학주식회사는 1970년대를 지나며 우수한 생산력과 품질로 제품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고, 1976년 ‘국제상사’라는 이름의 종합상사로 설립된다.

1978년, 국제상사는 미국의 신발 브랜드였던 ‘스펙스’를 인수했고 3년 뒤인 1981년 ‘프로-스펙스’라는 이름의 한국 브랜드로 재탄생시켰다. 프로-스펙스의 뜻은 “‘프로규격’이란 뜻의 영문 약자로, 프로 수준에 맞는 고품질의 스포츠용품”(Park, 1992)이었다. 1978년, 마라토너 데이브 맥길리브레이가 신고 있던 것은 바로 그때의 한국제 ‘스펙스’ 운동화였다.

“1981년 가을 국제상사(현 LS네트웍스)는 긴급간부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는 당시 한국에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국 브랜드에 대응해 국내 스포츠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세계일보〉, 2022년 5월 28일)

위의 기록은 외국 브랜드의 유입이 프로-스펙스 출시의 계기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국제상사의 탄생과 신발산업의 발전은 국제적인 요인, 즉 외국 브랜드라는 존재를 강하게 의식한 결과였다. 프로-스펙스의 판매가 시작된 것은 1981년이었지만, 그전부터 국내 운동화 산업의 생산 체계는 외국, 특히 미국과의 경쟁 구도 속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2. 2. 1980년대와 스포츠 저변의 확장

1981년 9월 30일, 바덴바덴에서 서울의 올림픽 유치가 결정되었다. 이 소식은 80년대가 스포츠 시대임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다. 전두환 정권과 한국의 건설업체들이 합심해 만든 이벤트는 스포츠를 필두로 한 시대를 암시하고 있었다. 올림픽 유치의 성공에는 독일 브랜드 아디다스의 역할이 컸다. 서울이 일본의 나고야와 경쟁하던 상황에서, “당시 일본의 ‘아식스 타이거’, ‘미즈노’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아디다스’, ‘푸마’ 등 독일의 스포츠 자본은 만약 나고야에서 올림픽이 개최될 경우 이를 통해 형성되는 거대시장의 주도권을 일본기업에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Chung, 2009)이었던 것이다. 당시 스포츠 브랜드들의 국제적인 영향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올림픽 유치 이전부터 이미 국내에는 스포츠가 대중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 1980년 12월 1일, 컬러 TV 방송이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컬러를 갖추고 등장하는 제품들은 이전과는 다른 광고 효과를 내기 시작했고, 이는 광고의 시대가 시작됐음을 뜻했다. 광고는 TV에만 있지 않았다. 1981년, 8면에서 12면으로 증면한 신문에서 가장 많은 증면의 혜택을 받은 부분은 바로 스포츠면이었다(Chung, 2009). 이는 스포츠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매체 상황을 드러낸다. KBS의 TV 스포츠 프로그램 편성률은 81년에 19%, 82년 27%, 83년 28.2%로 비약적으로 늘었다(Kang, 2003). 1985년 창간된 『스포츠서울』은 스포츠 매체의 성장세에 정점을 찍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소비 욕구가 ‘볼거리’를 위주로 발전한다고 봤을 때, 이러한 스포츠 미디어의 보급 및 확대는 미디어를 매개로 한 스포츠의 소비와 상업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이었다(Kim, 2006).

1982년, 한국 프로야구 리그가 출범하며 스포츠는 대중의 일상에 파고들었다. 프로야구의 인기는 프로야구 유니폼을 유행시켰다. 확대된 스포츠 산업은 더욱 다양하고 고급화된 스포츠 상품군을 등장시켰다. 1982년 5월 23일자 〈조선일보〉의 기사에서는 “프로야구팀의 명칭과 자기 이름이 쓰인 유니폼을 입고 등교하는 어린이들이 부쩍 늘어났다”며 스포츠용품이 어린이와 학생을 상대로 불티나게 팔리는 현상을 취재했다. 중요한 점은 스포츠의 유행이 운동용품에 대한 소비와 그에 대한 로망을 발산시켰다는 것이다. 스포츠용품 소비에는 운동을 더 잘하기 위한 기능적인 이유가 아닌, 야구의 굿즈를 소유한다는 상징적인 이유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983년도 기사에 따르면, 국제 스포츠대회 유치를 계기로 1982년도 스포츠용품 소비액은 국내에서 약 3천억 원어치에 이르렀다(〈동아일보〉, 1983년 1월 10일). 88올림픽 유치지가 서울로 결정되자 레저 스포츠 업계의 내수 시장과 해외 시장은 폭발적으로 스포츠화 제작에 열을 올렸다. 특히 1982년도에는 ‘스포츠화 경쟁’과 ‘쟁탈전’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주를 이뤘다. 지나친 개발 열풍의 후폭풍이었는지, 2년 뒤인 1984년도에는 출혈 경쟁을 감당하지 못한 몇 레저용품 회사들이 생산을 중단하는 현상이 발생할 정도였다. 광고와 컬러 TV, 그리고 프로스포츠라는 세 요인은 스포츠 시장을 열어젖혔고, 88올림픽의 서울 유치 소식은 스포츠 시장 호황을 촉발했다. 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감수성이 일상으로 파고들 때, 소비자들은 이미 어떤 운동화와 스포츠 브랜드를 소비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3. 프로-스펙스 고유의 정체성 형성 원인 및 배경

3. 1. 국산 브랜드의 출현

프로-스펙스는 그 탄생부터 ‘국산 브랜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국산 브랜드 정체성은 국내 브랜드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국산’의 의밋값은 한국의 고유한 스포츠 브랜드를 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매겨졌다. 앞서 밝혔듯, 프로-스펙스는 물밀듯 들어오는 해외 브랜드들에 대한 국제상사의 저항이자 대응의 산물이었다. 그렇다면 국산 브랜드는 왜 요구되었을까? 또한 그 시점이 1981년인 이유는 무엇일까? 국산 브랜드의 출현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수입자유화에 대비한 ‘한국형’ 제품 생산이 그것이며, 둘째, 국제 스포츠대회를 겨냥해 유입되는 해외 브랜드를 견제하기 위한 자국 브랜드 설립이다. 해외 브랜드를 국내로 끌어들인 두 요인은 프로-스펙스를 압박하는 동시에 발전시켰다.

우리나라의 1차 수입자유화 조치는 1978년에 취해졌다. 운동화는 1차 수입자유화 품목에 포함되었다. 수입품목에 따라 규제 정도는 상이했는데, 이듬해에 정부는 7개의 업체에만 하루 평균 3만 5천 켤레까지 생산량을 확대했으며, “중·고생의 획일적 착용” 규제를 철폐해 소비량 규제도 풀었다(〈매일경제〉, 1979년 5월 8일). 운동화가 수출 상품으로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입자유화 조치는 국내 시장 상실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외국 제품이 국내 시장에 들어오더라도 국내 기업과 시장을 지켜줄 단단한 기반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이미 퍼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기반은 국산품을 애용하는 국민으로부터, 고급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로부터 나와야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인식은 상표와 로열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외국 유명 상표의 제품을 국내에서 판매하는 경우, 높은 상표 사용료가 붙어 물건의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었고 이는 국내 업체에 큰 부담을 줬다. 1983년 8월 26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외국 상표가 들어오기 전 운동화 값은 4~5천 원이었으나 나이키와 아식스와 같은 브랜드가 들어옴에 따라 운동화 가격은 약 2만 원에 육박했다. 이 기사에서는 “외제 선호 바람”을 타고 나이키를 따라 가격을 인상했다며 프로-스펙스와 타이거 운동화를 지적했다. 또한 “외국 모델”을 사용한 운동화는 한국인의 발 모양에 맞지 않으며, “한국형 신모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단지 한 언론사의 의견만은 아니었다. 1982년 2월 11일자 〈매일경제〉의 기사에는, 상공부가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국내 스포츠화 브랜드의 수출을 지원하고 권장할 계획이라며 그간의 제조 방식이었던 “주문 수출”을 탈피하고 고가화 전략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그렇게 외국 제품만큼 비싸지 않지만 품질은 그만큼 좋아야 하는 “한국형” 운동화가 요구되었다. 수입자유화를 둘러싼 걱정은 국내 기업을 향한 기대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세계 유명상표 제품에 한국이 원산지인 경우가 많아졌다며 특히 상표 수출에 효과가 있었던 의류와 신발류 브랜드를 호평하는 기사가 발행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프로-스펙스는 ‘국산 브랜드’의 정체성을 전략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프로-스펙스는 1982년부터 그 정체성에 충실한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1982년 12월 29일자 〈조선일보〉 광고(Figure 1)에 “한국인의 체형에 가장 알맞게 만들어진 정상의 스포츠화 프로-스펙스”라는 표제에서 제시된 ‘“한국인의 체형”을 고려한 운동화’는 한국인의 발에 맞지 않는 외국 제품을 비판한 위 기사의 문제의식을 정확히 해결한 것이었다. 하단의 문구에도 “한국의 상표”라는 텍스트로 ‘한국’을 재차 언급하며 강조했다. 이는 당시 수입자유화와 관련해 논쟁적이던 이슈가 광고에 의도적으로 언급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좌측의 이미지는 운동화를 손수 포장하는 듯한 연출을 통해 국제상사의 이미지를 보다 정감 있게 조성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Figure 1과 같이 국산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광고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는 사실이다.

Figure 1

Advertisement for Pro-Specs ‘The best sports shoe for the Korean body type’ (Chosun Ilbo, 1982)

국산 브랜드의 정체성은 나이키를 견제한 프로-스펙스의 태도에서도 드러났다. 프로-스펙스의 매장이 1981년 11월에 개장한 것은 한발 늦은 것이었다. 1981년 8월 28일, 나이키가 먼저 명동에 직매장을 열면서 “누가 나이키를 신는가”라는 표제의 광고로 거대한 나이키 선풍을 일으켰다. 프로-스펙스가 스포츠화 시장에 뛰어들기로 한 데에는 나이키의 역할이 컸다. 1983년 1월 29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나이키와 경쟁했던 프로-스펙스의 일화가 담겨 있다. 어느 방송국에서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방영되는 프로그램의 녹화를 준비하던 중, 프로-스펙스 판매 담당자와 방송국 제작 간부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출연자들이 신은 나이키 신발 때문이었다. 이를 발견한 프로-스펙스 담당자가 신발을 벗기라며 요구했고, 결국 출연자들은 신발을 벗거나 나이키 상표를 칼로 도려낸 채로 녹화에 들어갔다고 전해졌다.

프로-스펙스가 나이키를 상대로 경쟁했던 핵심적인 이유는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 스포츠대회’ 때문이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광고 효과를 기대하는 수많은 브랜드가 유입되었고, 그중에서도 나이키와 프로-스펙스는 공식 공급사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가령 프로-스펙스가 연 1억 6천만 원어치의 신발을 선수촌에 공급한다면 나이키가 육상 연구 기금으로 6만 5천 달러를 기증하는 식이었다(〈동아일보〉, 1983년 1월 29일). 또한 전국에 나이키가 100여 개의 대리점을 갖추면 프로-스펙스 역시 지지 않고 90여 개의 판매점을 갖춘 상황이었다. 당시 프로-스펙스의 광고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겨냥하면서 동시에 나이키를 의식하는데, 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3년 2월 24일에 동아일보에서 발행된 광고(Figure 2)에서는 국산 브랜드로서 프로-스펙스의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다. 상단에는 “KOREA”가 표기된 전광판과 꽉 찬 관중석으로 보아 올림픽 경기장으로 추정되는 이미지가 배경에 자리한다. 화면에 크게 자리한 운동화의 배치는 마치 이 운동화가 경기화인 것처럼 연상시킴으로써 경기장과 운동화의 상관관계를 강하게 만들어 낸다. 또한 광고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상단 이미지를 통해 경기화를 선보이려는 프로-스펙스의 강한 의도를 볼 수 있다. 운동화의 앞코가 가리키는 곳부터 문구가 시작되는데, 나이키를 비롯한 해외 브랜드 스포츠화를 가리키는 듯 “외국에 로얄티를 주는 비경제적인 스포츠화”와 달리 프로-스펙스는 “외국으로부터 로얄티를 받고 수출하는 우리의 상표”라며 경쟁 상대와 극단적으로 대조시키고 있다. 해외 브랜드 제품의 비싼 가격과 국내 브랜드 제품이 받는 로열티를 비교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프로-스펙스의 지위를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7개의 글귀는 프로-스펙스가 국산 브랜드로서 가지는 장점을 열거한다. 국제상사의 고유상표로서 “한국이 낳은 세계적 스포츠 상표”이며 로열티가 없기에 “가격이 합리적”이고, 언급했다시피 “우리 체형에 가장 잘 맞”는다. 제품성이나 기술력, 디자인 등 광고의 방법은 다양할 수 있음에도 상표의 기원이 한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점을 두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Figure 2

Advertisement for Pro-Specs ‘What Makes Pro-Specs Shine!’ (Dong-A Ilbo, 1983)

프로-스펙스의 집요한 ‘국산’에 대한 호소는 당시의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과장된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에는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선수들에게 우리의 브랜드를 입혀야 한다는 국민적인 의식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1982년에 체육진흥재단이 개최한 ‘국제 스포츠·레저 용품전’은 88올림픽에 대비해 국내 스포츠용품의 질적 향상을 위해 열린 것으로, 세계 대회라는 무대에서 국산 브랜드를 전시하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1981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는 한국 선수들이 착용한 옷과 신발에 붙은 일제 상표를 보고 일본 선수로 착각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격노한 대한체육회가 외제 상표가 붙은 유니폼과 장비를 금지하는 극단적인 공문을 보내는 일도 있었다. 경기 단체와 업체들의 반대로 대한체육회의 지시는 무산됐지만, 스포츠용품의 국산 여부가 당시에 얼마나 민감한 문제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노력 끝에 1985년, 프로-스펙스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의 신발류 공식 후원업체로 선정되었다. 국가의 호명에 적극적으로 응한 프로-스펙스는 약 5년에 걸쳐 국가를 대표하는 규모로 브랜드를 키울 수 있었다.

3. 2. 교복 자율화

스포츠 시장이 소란하게 성장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88올림픽을 대비하는 또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1982년, 신군부는 유화정책으로 ‘자율화’ 정책을 시행했다. 그중 학생과 청소년이라는 주체를 사회적으로 인식하게 만든 것은 ‘교복·두발 자율화’였다. 의견은 분분했으나, 교복의 이미지는 어느새 학생들의 자유와 개성을 억압하는 낡은 제도의 인상으로 전락해 있었다.

1983년 1월 3일, 문교부는 중·고교생의 교복 자율화를 공식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정무용은 당시 문교부 관계자의 발언에 대해 “교복 자율화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대외적인 시선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된 측면이 컸다”고 분석했다(Jeong, 2021). 또한 문교부 장관은 “통일된 교복은 있을 수 없다”며 자유를 권하는 듯했지만, 이는 오히려 “자율이 강제되는 상황”(Jeong, 2021)이었다. 교복 자율화 정책은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학교의 충분한 논의와 준비를 통해 등장한 해결책이 아니라, 정무용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외국인의 시선에 대응해야 하는 정부가 올림픽을 의식해 내린 결정이었다. 즉, 청소년의 복장을 통해 자유로운 이미지를 얻고자 도입한 정치적 조치였던 것이다.

교복 자율화는 신발업계에도 큰 파장을 몰고 왔다. “흑색과 백색의 단색 위주로 생산하는 학생화가 교복의 자율화에 맞춰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수요가 크게 늘어날 전망”, “88올림픽을 앞두고 고급 스포츠화 경쟁이 일고 있는 현상”(〈매일경제〉, 1982년 1월 9일) 등을 거론하며 매체에서는 새로운 시장 경쟁을 예고했다. 스포츠화 브랜드는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교복 자율화가 시행되는 첫 학기 직전이었던 1983년 1월 12일 〈매일경제〉 기사에 따르면 나이키를 제조하는 화승, 프로-스펙스를 제조하는 국제상사, 삼화, 태화 등의 회사들이 “한 켤레 1만 원 선의 학생용 전문 스포츠화”를 개발하며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프로-스펙스도 학생이라는 소비자의 탄생으로 새로운 수요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당시 국내 브랜드 운동화로는 화승의 나이키와 국제상사의 프로-스펙스가 1, 2위를 다퉜다. 그 뒤를 이어 청소년들 사이에서 프로월드컵 운동화와 타이거 운동화, 까발로, 슈퍼카미트와 같은 브랜드들이 선택지로 자리했다. 흥미로운 것은 1986년 6월 30일자 동아일보에서 2만원 대의 고급화, 1만원 안팎의 중급화, 그리고 3천 원에서 5천 원 사이의 하급화로 국내 신발 시장을 세 개의 급으로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 프로-스펙스와 르까프, 프로월드컵 그리고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장악률이 높다고 전했다. 교복 자율화가 진행되었던 1985년도 내수시장 매출 순위를 통해 당시 운동화의 인기도를 추정해 볼 수 있다(Figure 3).

Figure 3

‘Status of domestic footwear companies’ (Donga Ilbo, 1986)

스포츠화 업체들의 노력에 학생 소비자들은 열렬한 소비로 응답했다. 예상대로 청소년들 사이에서 운동화 열풍이 불었다. 1983년, 한 기사는 “외국 상표가 붙어 있는 운동화를 갖기 위해 청소년들이 도둑질을 한 사건”을 예로 들며 학교 내에서 비싼 운동화로 인해 벌어지는 폭력 사건을 언급했다. 또한 학교마다 운동화 도난 사건이 자주 벌어진다며 값비싼 운동화 착용을 금지한 학교도 있었다(〈경향신문〉, 1983년 8월 26일). 그중에서도 나이키와 프로-스펙스는 가장 인기 있는 운동화 브랜드였다. 운동화를 향한 뜨거운 열기는 교복이 자율화된 시절을 배경으로 한 대중매체와 문학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써니〉에서 프로-스펙스 운동화가 그러했고, 박현욱의 소설 『새는』에서 “나이키. 인생의 목표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때 내가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은 나이키 운동화였다. (…) 나이키는 우리나라 불량청소년들이 지나가던 선량한 학생들에게서 돈만 뜯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발도 뺏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구절은 당시 운동화를 향한 학생들의 열망이 오늘날과는 확연히 달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80년대에 유행했던 운동화에 대한 증언은 그 시기에 학생이었던 사람들의 개인적인 기록으로도 많이 남겨져 있는 편이다. 어느 필자는 「등골브레이커의 조상, ‘프로-스펙스’를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토종 메이커인 ‘프로-스펙스’는 1990년대까지 ‘나이키’보다 점유율이 훨씬 높을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며 프로-스펙스가 우세했던 시절을 추억했다.

프로-스펙스는 이런 열망을 놓치지 않았다. 1984년에 발행된 광고(Figure 4)를 보면, 「산뜻한 새학기를 프로-스펙스와 함께!」라는 표제는 새 학기를 준비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전의 광고들보다 밝은 색감을 통해 “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려 했다. 특히 왼쪽의 한 여학생의 사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밝은 미소를 띠며 프로-스펙스 조끼를 입은 여학생은 당시 교복 자율화를 시행하며 기성세대가 상상한 가장 ‘학생다운’ 모습을 표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상반신까지만 나온 사진에서 주력 상품인 운동화를 신은 모습은 찾을 수 없는데, 이는 화면 중앙에 놓인 7켤레의 운동화가 맥락상 여학생의 운동화가 아님을 뜻한다. 또한 당시에는 성별에 따른 운동화의 색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배치된 파란색 계열의 운동화들은 사진 속 여학생에게 자랑할 만한 남학생의 운동화로 추정된다. “오래 못본 방학기간에 깜짝 놀랄만큼 새로와진 멋진 프로-스펙스 신제품들이 지금 개학준비의 붐을 일으키고 있읍니다.”라는 문구는 방학 동안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보여줄 운동화를 준비하라는 스토리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여학생의 시선은 오랜만에 만난 남학생의 운동화를 향하고 있다. 이렇듯 프로-스펙스는 학교라는 공간을 유력한 소비 시장으로 인식하고 그전에는 없던 다양한 기능별 학생화를 제시했다.

Figure 4

Advertisement for Pro-Specs ‘Start your new semester with Pro-Specs!’ (Chosun Ilbo, 1984)

높은 인기는 ‘짝퉁’이라는 디자인 카피 현상까지 일으켰다. 이유는 비싼 가격 때문이었다. 정품을 사기 어려운 소비자를 대상으로 나이키의 경우 ‘NICE’ 운동화, 프로-스펙스의 경우 ‘프로스포츠’라는 짝퉁 브랜드 운동화가 나타난 것이다. 짝퉁의 등장으로 운동화 사이의 계급은 더욱 세분되고 극명해졌다. 1983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학생화’라 불리는 검정색 신발이 전부였다면, 교복 자율화가 시행된 1983년 이후부터는 운동화에도 계급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품과 짝퉁, 외국과 국내 브랜드, 운동화와 고무신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선이 생겨 학생들 사이의 계급 차이를 가시화했다. 그럼에도 “재래시장 신발가게에서도 최소한 ‘NICE’ 같은 유사품이라도 갖다 놓지 않으면 장사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고, “모방품도 이전의 운동화보다는 훨씬 비쌌다”는 기록은 오히려 유사 디자인의 유통이 정품 브랜드의 가치를 더욱 홍보하는 격의 효과를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Cho, H. & Yang, M. & Lee, D. & Joo, Y., 2017). ‘짝퉁’ 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1986년에 나온 광고(Figure 5)를 보면 알 수 있다. “길거리에서 진짜 유명상표라고 하며 소비자를 현혹하는 스포츠화(…) 조금만 눈여겨 보시면 가짜임이 쉽게 드러나는 저질 제품입니다”라는 문구와 “스포츠화의 상표는 그 회사의 얼굴”이라는 표현은 스포츠화 상표가 가진 고유성과 진품성을 강조하고 있다.

Figure 5

‘Did you know that the name-brand sneakers you see on the street are all fake?’ (Donga Ilbo, 1986)

그런데, 이들이 내세우는 상표의 ‘진품성’은 브랜드 시대의 징후이기도 했다. “소비자들의 선택지는 한층 넓어졌고 품질에 대한 기준도 강화”2)되었기 때문에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가진 상표를 차별점으로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이 상표의 진품성이 구매자의 ‘프라이드’를 만들었다. 1985년 『월간디자인』에 실린 프로-스펙스의 광고 캠페인 기사에 따르면, “‘신발이 질기고 멋있다’는 기능만으로 나이키를 능가하지 못한다. 나이키를 신을 때와 같은 프라이드를 프로-스펙스에서도 느껴야 한다”며 광고의 기획 의도를 밝혔다. 또한 프로-스펙스의 오동희 전무는 인터뷰에서 프로-스펙스가 상정한 소비자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비자와 생활자는 많은 차이가 있읍니다. 소비자는 필요에 의해 구매하고 생활자는 삶을 즐기고 개성을 찾기 위해 구매하기 때문에 시장이 다르다고 봅니다. (…) 브랜드를 찾는 사람의 심리는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신분상의 노출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브랜드 선호 경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읍니다.”

오동희 전무에 의하면, 프로-스펙스가 상정한 소비자는 자신을 노출하기 위해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다. 광고 하단에 일제히 놓인 브랜드들은 카피 피해를 호소하는 브랜드들이겠지만, 역으로 상표의 진품성을 홍보하며 그것을 판매하는 브랜드 시대의 주역자들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은 다시 교복을 챙겨 입어야 했다. 청소년 범죄가 증가한 이유로 교복 자율화가 지목될 정도로 상황이 바뀐 것이다. “복장과 머리형이 자율화된다면 품행이 자유로워지고 청소년의 탈선으로 이어진다”며 사복 착용이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Jeong, 2021). 청소년 선도 및 통제가 요구되면서 결국 1986년 정부는 정책을 수정했고, 이후 교복을 선택하는 학교가 증가함에 따라 교복은 부활했다. 그러나 교복이 부활한 1989년도 기사에 따르면, “교복자율화로 길러진 청소년들의 고감도 감성”이 오히려 패션 신발의 붐을 가져왔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즉, 교복이 부활해도 다시 흑백의 운동화로 돌아가지 않았고, 청소년이라는 소비 주체와 운동화의 계급 차이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평범한 캔버스화는 싫다. 시선을 끄는 대담한 디자인…”과 같이 기능보다는 멋을 추구하게 된 소비자의 요구에 프로-스펙스도 색상 배색 및 액세서리를 활용해 더욱 화려한 패션 신발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동아일보〉, 1989년 5월 10일). 프로-스펙스는 그 계급의 가장 높은 곳에서 “당신은 이것을 사야만 한다”(Williamson, 2007)며 끊임없이 소비자를 불러들였다. 프로-스펙스 운동화는 1980년대에 교복 자율화를 겪은 세대의 기억의 중추로 작용했다.

3. 3. 올림픽 정신과 스포츠 과학

1986년 7월, 국제상사는 프로-스펙스의 판촉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격월간지 『프로-스펙스』지를 창간한다. 심재영 사장은 창간사 「세계의 상표로 웅비하는 한국의 상표 프로-스펙스」에서 다음과 같이 잡지의 시작을 알렸다.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의 공식 스포츠화로 지정됨으로써 우리 스포츠 용품을 대표하는 자랑스런 소임을 맡게 되었읍니다. (…) 특히 금년을 ‘프로-스펙스 세계화 기반 조성의 해’로 잡고 (…) 프로-스펙스는 이제 단순히 폐사 한 기업의 제품 브랜드가 아니라, 당초 폐사가 표방한 대로 한국의 상표로, 나아가 세계의 상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심재영 사장은 프로-스펙스가 ‘한국의 상표’를 넘어, ‘세계의 상표’로 나아갈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전하고 있다. 이러한 발언이 가능했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프로-스펙스』지가 창간되기 일 년 전인 1985년을 주목해야 한다. 1985년은 프로-스펙스에게 의미가 깊은 해였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대회의 신발류 공식 후원업체로 선정되어 서울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와 계약을 체결한 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5년은 신군부의 압박으로 인해 국제그룹이 갑작스럽게 해체된 해이기도 했다. 국제그룹이 진통을 겪자, 국산 브랜드를 애용하자는 움직임이 격려 소비를 불러일으켜 오히려 프로-스펙스의 판매량을 높여주는 현상까지 나타났다(〈매일경제〉, 1985년 3월 13일). 그룹의 해체로 휘청이던 국제상사는 소비자의 반응을 의식한 듯 “변함없이 성원해” 달라며 프로-스펙스가 “어느 한 기업의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것”임을 설파하는 광고를 발행하기도 했다(〈조선일보〉, 1985년 3월 5일). 프로-스펙스는 한일합섬에 합병되면서 제작을 이어 나갈 수 있었고, 스포츠 이벤트를 향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88올림픽 유치지가 서울로 선정됐던 1981년, 나이키와 미즈노는 이미 국내에서 축구화와 야구화를 시판하고 있었고 다음 해에는 아식스가 농구화와 축구화를 선보일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적인 브랜드였던 아디다스와 푸마도 한국 진출을 계획 중이었다(〈매일경제〉, 1981년 11월 10일). 주지하다시피, 올림픽 대회는 스포츠 브랜드가 자신의 상표를 선보이고 전 세계적으로 광고할 결정적인 기회였다.

여기에는 그간 올림픽을 거쳐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로 발돋움한 일본과 독일의 선례가 존재했다. 국제상사는 이 성공의 법칙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아식스는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빠른 성장을 이루었으며, 독일의 아디다스는 1974년 뮌헨 올림픽 이후 세계적인 상표로 자리 잡았다는 공식 말이다. 『프로-스펙스』지는 “올림픽의 공식 제품은 품질이나 기능, 지명도 등이 올림픽의 권위에 비추어 국제적 수준과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며 프로-스펙스가 공식 스포츠화로 선정된 것은 “세계화의 개연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것”이라고 자부했다. 엄밀히 말해 제품력의 경쟁이라기보다 공급권 전쟁에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신발류 공식 후원업체로 등극한 사실을 두고 프로-스펙스는 자신을 ‘신화’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1988년도 3월 24일자 〈매일경제〉에 실린 ‘프로-스펙스 신화’라는 광고를 보면, 1981년부터 1988년까지의 업적을 기술함으로써 그 과정을 유사-신화적으로 서사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0년에 발행된 『프로-스펙스』지 21호에 실린 광고에도 ‘가장 짧은 신화, 그러나 가장 세계적인 신화’라는 제목으로 1980년대에 이룩한 브랜드의 업적을 반복해 기술하고 있다. 프로-스펙스도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통해 아디다스와 아식스처럼 세계적인 상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제조되고 있었다.

프로-스펙스는 스포츠가 가진 이미지를 활용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스포츠화의 전문성과 기능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둘째, 운동선수들의 신체를 광고 소재로 보여줌으로써 올림픽의 가치를 브랜드의 가치로 획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로-스펙스는 어떤 자아상을 총체적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이러한 전략은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켰을까?

그에 대한 첫 번째 노력으로 1983년 2월, 국제상사는 부산 공장에 ‘스포츠제품과학연구센터’를 설립했다. 1986년 9월에 발행된 『프로-스펙스』지에 따르면, 연구센터는 애초에 해외 주문량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86, 88 양대 제전을 겨냥하여 한국 신발제품의 품질 향상과, 전문 스포츠화를 비롯 동사 프로-스펙스 스포츠용품의 세계화를 위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겨냥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84년부터는 신발을 주종으로 한 각종 스포츠용품의 신소재 개발, 기술혁신, 공법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며 기술 개발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스포츠제품과학연구센터는 기술연구팀, 신제품개발팀, 인체개발팀 등 분야별로 3개의 연구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사에서는 ‘기계식 충격실험기’와 ‘인체식 충격실험기’ 그리고 ‘마찰 시험기’라는 장비를 소개하며 인체에 가해지는 충격과 소재의 관계를 연구하는 현장을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이 시기, 프로-스펙스만 개발과 연구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초부터 섬유 신소재 개발의 열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기성복 시장의 등장과 교복 자율화의 영향으로 섬유업계에서는 대량생산에 대비해 합성섬유 개발이 한창이었고, 신발업계에서도 특수 소재에 대한 수요가 나타나고 있었다. 물론 스포츠가 과학의 영역이라는 인식도 이때 처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올림픽 경기에서 우수한 선수들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과학적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어 왔고, 국제 대회를 앞두고 스포츠와 과학을 연계해 언급하는 기사가 1980년대부터 급증했다. 프로-스펙스는 신소재 개발 열풍과 과학적 스포츠에 대한 당대의 요구를 수용해 운동화의 전문적이고 인체공학적인 측면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1983년 4월 30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광고(Figure 6)를 보면 운동화의 분해도가 화면 중앙에 놓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라톤화’라고 적힌 그림은 분해하지 않는 이상 소비자가 알 수 없는 바닥면을 층층이 열어 보여주고 있는데, ‘INNER SOLE’, ‘TEXON’ 등 각 소재의 이름과 기능을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여 분석적인 이미지를 얻으려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발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피로를 방지하며 주행기능을 최대로 높이는 과학적인 바닥설계”라는 문구 하단에는 ‘특수 발포스폰지’, ‘최경량 스폰지’, ‘특수쿠션스폰지’ 등의 특수 소재들을 열거함으로써 단순해 보이는 운동화가 얼마나 정교한 설계를 통해 만들어졌는지를 시각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분해된 운동화가 제도판 위에 수평에 맞게 놓여 더욱 수학적인 인상을 자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도판은 스포츠의 과학화를 드러내는 배경 소재로, 프로-스펙스의 다른 광고에서도 자주 활용된다. 무엇보다 “스포츠는 과학이다”라는 카피는 프로-스펙스를 강하게 수식하고 있다.

Figure 6

Advertisement for Pro-Specs ‘Sports is a science. Pro-Specs’ (Chosun Ilbo, 1983)

과학적 이미지가 프로-스펙스에 기여한 것은 과학기술이 지닌 미래의 환상이었다. 신정훈은 한국미술에서 1960년대에 과학기술에 관한 관심이 기계적이고 정돈된 인상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이 실제적인 과학에 대한 논의나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현대성의 열망”에 기대어 “표상이나 인상”에 기반한 것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Shin, 2021).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프로-스펙스의 운동화는 일상적인 신발의 모습보다는 과학적인 기계의 모습에 가까워야 했다.

1986년 4월 29일 〈경향신문〉에 실린 광고(Figure 7)에서도 전문 경기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게 드러난다. 화면에는 총 28가지의 전문 경기화가 차례로 놓여 있는데, 태권도화, 핸드볼화, 테니스화 등 올림픽의 각 종목을 기호적으로 상징하는 각종 경기화로 구성되어 있다. 왼쪽 상단에 “대부분의 전문 경기화는 수요가 매우 적기 때문에 영리를 초월한 사명감이 없이는 만들지 못합니다”라는 문구는 판매량을 포기하고서라도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스포츠 정신과 애국심을 강조하고 있다. 눈여겨볼 점은 이 광고가 경기화를 사지 않을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발행됐다는 사실인데, 그런 점에서 해당 광고는 경기화를 판매하기 위한 광고가 아닌 올림픽 공식 브랜드로서의 자격과 지위를 홍보한 광고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프로-스펙스는 한 나라의 스포츠를 세계에 알리는 “스포츠―민족주의”(Sim, 2014)적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Figure 7

Advertisement for Pro-Specs ‘A Korean trademark around the world Pro-Specs’ (Kyunghyang Shinmun, 1986)

광고정보센터에 기록된 TV CF(Table 1)에 의하면, 1980년대에 방영된 프로-스펙스의 스포츠화 광고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88올림픽’을 주제로 삼은 것으로, “세계인을 하나로” 만드는 올림픽 정신을 그대로 계승해 광고 멘트에 적용하고 있다. 두 번째는 ‘스포츠의 과학화’로, 앞서 설명했듯이 각 경기화가 지닌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는 광고들로 ‘제도판’이나 ‘그래프’와 같은 시각적 도구를 활용했다. 대표적으로 ‘특수설계 워킹슈즈’ 광고와 ‘충격콘트롤시스템’ 광고가 그러하다. 또한 올림픽의 도전 정신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운동선수들의 신체가 소재로 활용되었다. 특히 1988년에 방영된 ‘태권무’라는 광고의 경우 다양한 종목의 운동선수가 도약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때 이들의 움직임은 슬로우 모션 처리되어 육체의 근육과 동세가 더욱 강조되게끔 촬영되었다. ‘도전’이라는 광고 멘트와 함께 프로-스펙스 제품을 착용한 운동선수들의 눈빛을 포착해 특정 제품보다 운동선수의 이미지를 광고함으로써 올림픽 정신을 운동선수의 몸짓을 통해 시각화했다고 볼 수 있다.

Information about TV Commercial for Pro-Specs related '88 Olympics and Sports Science (Advertising Information Center)

프로-스펙스가 운동선수가 등장하는 광고를 내보낸 것은 지극히 현실 반영적인 것이었다. 광고 속에 등장하는 스포츠 선수들은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는 모델이었지만 현실에서도 그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포츠 선수들은 국력을 상징하면서 자본력이 잠재된 모델이었다. 1988년 9월 14일자 〈경향신문〉에서는 “스포츠 업체들이 가장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는 선전전은 유명 선수 붙잡기”라며 유명 선수를 “움직이는 광고탑”이라고도 비유할 정도였다. 올림픽 당시 프로-스펙스는 “일부 종목 선수들을 포섭하는 전략”으로 의류 공식 후원업체였던 코오롱 액티브와 경쟁하며 영국 근대5종팀과 파키스탄 하키팀의 경기 복장을 쟁취하기도 했다. 스포츠의 과학성과 전문성을 강조함으로써 기술력을 알리고, 스포츠 선수들과 올림픽의 정신을 토대로 광고하는 전략을 펼쳤던 프로-스펙스는, 결과적으로 한국이라는 대표성을 지닌 신화로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4. 결론

본 논문은 1980년대에 국내의 첫 스포츠 브랜드인 프로-스펙스가 어떻게 출현하여 스포츠화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와 과정을 고찰함으로써,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둘러싼 디자인문화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 결과 1980년대의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프로-스펙스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고유한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첫째, 프로-스펙스는 ‘국산 브랜드’의 정체성을 가지고 출현했다. 1981년은 88올림픽 유치지가 서울로 결정된 해였다. 급속히 유입되는 해외 브랜드에 맞서 프로-스펙스는 1981년에 출시됐다. 마침 이 시기 국내에서는 수입자유화가 진행되면서 국산 브랜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었다. 1978년, 수입자유화 품목으로 운동화가 포함됨에 따라 경쟁력 있는 ‘한국형 운동화’가 요구되었다. 프로-스펙스는 이러한 요구에 충실하게 따르며 한국인 체형에 맞는 운동화를 강조했다. 또한 나이키를 견제하며 국산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했다. 나이키와의 경쟁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의 공식 후원업체가 되기 위한 경쟁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그 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둘째, 교복 자율화 조치가 취해지면서 새로운 소비 주체가 나타났다. 1983년에 행해진 교복 자율화는 갑작스럽게 학생들에게 사복을 입고 등교할 자유를 부여했고, 신발업계는 새로운 수요를 맞이했다. 다양한 브랜드의 운동화들이 등장하며 흑백이던 학생화는 화려해졌고, 계층을 가시화했다. 나이키와 프로-스펙스는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였는데, 프로-스펙스는 이러한 열망을 이용해 상표의 진품성을 드러내면서 브랜드의 고유성을 확보했다. 비싼 가격으로 인해 ‘짝퉁’ 운동화도 나타났지만, 이는 프로-스펙스의 가치를 올려주는 또 하나의 현상일 뿐이었다.

셋째, 스포츠를 신화화함으로써 이상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88올림픽의 공식 후원업체였던 프로-스펙스는 올림픽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자격과 지위를 보여야 했다. 기술력을 드러내기 위해 스포츠제품과학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신소재를 개발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스포츠의 과학화’를 이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운동선수를 광고의 소재로 삼아 올림픽의 스포츠 정신을 프로-스펙스의 정신으로 내면화했다. 유명 선수의 경기화를 후원한 것 역시 세계의 상표로 자리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였다.

프로-스펙스는 88서울올림픽 유치 성공으로 높아진 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관심, 교복 자율화를 매개로 변화한 소비 문화, 밀려드는 외국 브랜드에 대한 대응 등 1980년대의 고유한 사회, 문화, 역사적 상황 속에 출현해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한 상황들과 관계하며 프로-스펙스는 정체성과 경쟁력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고유한 디자인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하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어 상황이 바뀜에 따라 프로-스펙스의 위상도 변화를 맞는다. 1990년대 이후 프로-스펙스의 디자인문화는 후속 연구를 통해 내용이 확인되길 기대한다.

Glossary

1) 이 시기 디자인문화에 관한 최근 연구로는 오창섭(Oh, 2023)의 「광고를 통해 본 1980년대 중반 한국 세탁기와 그 특징들」의 세탁기를 비롯해 전자레인지, 냉장고를 다룬 연구가 있다. 전자제품과 관련해 고선정(Ko, 2021)의 「1980~90년대 ‘한국형’ 가전제품의 소비와 물질문화 연구」가 있으며, 비슷한 시기를 다룬 박해천(Park, 2022)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국내 가전업체의 디자인 전략 연구 - 금성사와 대우전자를 중심으로」와 이 시기 도입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연구도 있다. 자동차 문화를 다룬 연구로는 고민경(Go, 2023)의 「포니 자동차와 1980년 전후 국내 자동차 문화」가 있다.

2) 앞의 책, p.172.

Notes

Citation: Lee, H. J., & Oh, C. S. (2025). Design Culture of ‘Pro-Specs’ Sneakers in the 1980s.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8(1), 399-416.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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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Figure 1
Advertisement for Pro-Specs ‘The best sports shoe for the Korean body type’ (Chosun Ilbo, 1982)

Figure 2

Figure 2
Advertisement for Pro-Specs ‘What Makes Pro-Specs Shine!’ (Dong-A Ilbo, 1983)

Figure 3

Figure 3
‘Status of domestic footwear companies’ (Donga Ilbo, 1986)

Figure 4

Figure 4
Advertisement for Pro-Specs ‘Start your new semester with Pro-Specs!’ (Chosun Ilbo, 1984)

Figure 5

Figure 5
‘Did you know that the name-brand sneakers you see on the street are all fake?’ (Donga Ilbo, 1986)

Figure 6

Figure 6
Advertisement for Pro-Specs ‘Sports is a science. Pro-Specs’ (Chosun Ilbo, 1983)

Figure 7

Figure 7
Advertisement for Pro-Specs ‘A Korean trademark around the world Pro-Specs’ (Kyunghyang Shinmun, 1986)

Table 1

Information about TV Commercial for Pro-Specs related '88 Olympics and Sports Science (Advertising Information Center)

분류 광고 화면 제목 발행일 광고 멘트
88올림픽 한국의 상표 1985.7.26. 86 88 서울올림픽 프로-스펙스 공식 스포츠화 제작
이제 프로-스펙스는 새로운 각오로 세계 제일의 상표로 성장하겠습니다 계속 성원해 주십시오
한국의 상표 프로-스펙스
- 1987.4.2. 자랑스런 그 이름 세계를 달려가 프로-스펙스 프로-스펙스
세계인을 하나로 스포츠를 (하나로) 프로-스펙스
세계를 달리는 한국의 상표 프로-스펙스
태권무 1988.8.11. 도전 그리고 도전
이제 우리의 것이 세계의 것
세계의 상표, 프로-스펙스
스포츠 과학화 그랜드슬램 테니스화 1984.11.2. 프로-스펙스 그랜드슬램
기능과 패션감각이 살아있는 국제 수준의 테니스화
프로-스펙스 그랜드슬램
한국의 상표 프로-스펙스
숨쉬는 스포츠화 1987.7.1. (호흡하는 소리)
스포츠화가 숨을 쉰다
프로-스펙스 빅스타
공기가 충격을 흡수한다 빅스타
프로-스펙스 빅스타
특수설계 워킹슈즈 1987.9.1. 걷는 것도 스포츠다!
프로-스펙스 워킹슈즈
절대 충격을 흡수하는 특수 설계
무한한 유연성으로 피로를 덜어줍니다
스포츠 과학이 탄생시킨 프로-스펙스 워킹슈즈
충격콘트롤 시스템 1989.3.17. 스포츠화가 충격을 컨트롤한다
충격을 흡수하는 마이크로탄
뒤틀림을 방지하는 테크니컬 프로텍터
새로운 두 가지 혁신 기능이 프로-스펙스
충격콘트롤시스템
첨단 스포츠 과학이 이룩한 프로-스펙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