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각디자인협회(KSVD)의 창립과 해산: 과정 및 배경, 1972~1993
초록
연구배경 한국그래픽디자인협회(KSGD)라는 명칭으로 1972년에 출범하여 한국 그래픽 디자인 분야를 대표하는 단체로 성장한 KSVD는 1993년에 자진 해산했다. 당시 디자인계는 이 소식을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이 연구는 KSVD의 창립 과정과 주요 활동, 그리고 해산 과정 및 그 원인과 배경을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방법 본 연구는 KSVD가 출범한 1972년부터 해산한 1993년까지의 약 20년간의 기간을 대상으로 한다. 2022년에 개최된 KSVD 창립 50주년 기념 전시 연계 세미나에 참여한 것이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KSVD 관련 자료를 추가로 조사하고, 해당 시기의 디자인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전시 도록, 신문, 잡지, 단행본 등을 참고하였다. 또한, 역대 회장들의 인터뷰와 저술 내용을 비교 검토하였다.
연구결과 KSVD는 1970년대 초반, 국가적인 차원에서 디자인 진흥정책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창립되어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변화된 디자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해산을 결정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첫째, 1990년대 초반의 국내외 사회 환경 변화, 둘째, KIDP와의 새로운 관계 정립 필요성, 셋째, 협회 운영상의 실질적인 어려움과 리더십 약화 등이 있다.
결론 KSVD의 창립과 해산은 모두 동시대 디자인 환경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KSVD의 해산은 디자인계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으나, 1994년에 VIDAK이 설립됨으로써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오랫동안 염원해온 통합된 디자인 단체 설립의 한 계기가 되었다. KSVD에 대한 고찰은 한국 그래픽 디자인사의 흐름 속에서 협회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확장된 인식과 성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Abstract
Background Founded in 1972, the Korean Society of Visual Design (KSVD) became the leading organization in the field of graphic design and was dissolved in 1993. The sudden dissolution of KSVD caused a great shock to the design community at the time. This study aims to deeply analyze the founding process, core activities, and the reasons and background behind the dissolution of KSVD.
Methods This study covers the period from 1972, when KSVD was founded, to 1993, when it was dissolved. The starting point of this research was participation in the KSVD 50th-anniversary exhibition and seminar held at Dongdaemun Design Plaza (DDP) in 2022. Additional materials related to KSVD were then investigated. To understand the design context of the time, newspapers, magazines, and books were referenced, and interviews and writings of past presidents were compared and analyzed.
Results KSVD was established in the early 1970s, an era of strong government-led design initiatives, and played a central role in the field of graphic design. However, in the early 1990s, KSVD decided to dissolve in order to adapt to the changing design environment. The main reasons for the dissolution include the following three factors: first, the social changes both domestically and internationally in the early 1990s; second, the need to establish a new relationship with the Korea Institute of Design Promotion (KIDP); and third, the operational difficulties faced by the association and the weakening of leadership.
Conclusions The founding and dissolution of KSVD are closely linked to the shifts in design environments from the 1970s to the early 1990s. In particular, the dissolution of KSVD in 1993 revealed the need to address its outdated organizational system and reconsider its social role, leading to a broad discussion. Through this process, in 1994, the Visual Information Design Association of Korea (VIDAK) was founded as a result of collaboration among several design organizations, overcoming the limitations of previous associations and establishing an integrated design organization that came to represent the field of graphic design. A detailed examination of the process and background of KSVD’s founding and dissolution, along with its connection to the establishment of VIDAK, will provide an opportunity to reflect on the evolution of the role and status of design associations in the history of Korean graphic design.
Keywords:
KSVD, Design Association, Graphic Design, Korean Design History키워드:
한국시각디자인협회, 디자인협회, 그래픽 디자인, 한국 디자인사1. 서론
1. 1. 연구 배경 및 목적
국가적인 차원에서 디자인 진흥정책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던 시기에 협회는 민간 영역을 대표하며 디자인 분야의 세분화와 전문화를 이끌었다.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조선산업미술가협회(이하 산미협회)는 1945년에 출범해 정부 수립 후 대한산업미술가협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1960년대 들어, 산미협회는 창립 회원들의 은퇴로 인해 세대교체라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Kang, 2022). 이 무렵 국내 대학에서 배출된 디자인 졸업생 수가 늘고 이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단체들이 등장했다.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는 1960년에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 출신인 강희수, 권길중, 박대순, 봉상균, 임홍순 등이 참여한 한국응용미술가협회가 창립되었다(Kyunghyang Shinmun, 1961). 1964년에 역시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 출신인 염인택, 봉상균, 김홍련, 김광현 등이 주도하고 홍익대학교 공예학부 출신인 권명광도 참여한 한국상업미술가협회1)가 창립되었다(Chosun Ilbo, 1964). 1966년에는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 졸업동기생(1965)인 배천범, 양승춘, 이태영, 정시화 등이 모여 프리즘디자인그룹(이하 프리즘)을 결성했다(Kang & Cho, 2010). 1969년에는 홍익대학교 도안과 출신인 김훈주, 박근지, 방조국, 백금남, 신정필, 전년일, 최희자 등이 현대디자인실험작가회를 설립했다(KECD, 2019).
한국시각디자인협회(KSVD)는 1972년 한국그래픽디자인협회(KSGD)로 출범해 1993년 해산한 단체다. 2022년 12월 10일부터 2023년 2월 9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KSVD: 1972~1993》 전시는 KSVD가 한국 그래픽 디자인 발전 과정에서 담당했던 역할과 의의를 재조명한 행사였다. KSVD는 그래픽 디자인이 초기의 도안, 응용미술, 상업미술로 인식되던 한계를 넘어, 비주얼 커뮤니케이션과 디자인 리터러시에 기반한 현대적 정체성을 갖추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KSVD의 창립 배경, 구체적인 활동,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계를 선도하다가 갑작스럽게 해산한 이유와 그 과정은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에 본 연구는 197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초까지 KSVD의 20여 년간 주요 활동을 조명하고, 협회 내 참여 디자이너들 간의 관계 양상 변화를 탐구함으로써 한국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발전 과정을 폭넓게 이해하고, 한국디자인사 연구의 심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1. 2. 연구 범위 및 방법
1972년 KSVD의 출범부터 1993년 해산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다룬 본 연구는 2022년 KSVD 창립 50주년 기념 전시 연계 세미나 《1970년대 한국 디자인협회 활동과 의미》에서 발표된 「한국시각디자인협회 활동의 배경과 디자인사적 의미」에서 출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KSVD 회원들의 주요 작품과 활동을 검토했으며 협회에서 발간한 전시 도록, 단행본, 관련 잡지 기사 등 다양한 문헌 자료를 참조하여 정리하였다. 당시 디자인계의 전반적인 상황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이하 상공미전)의 전개 양상과 동시대 그래픽 디자인 관련 협회들의 활동도 함께 살펴보았다. 특히, KSVD의 창립 배경과 해산 원인을 탐구하기 위해 창립 회원이자 회장을 역임한 조영제, 양승춘, 권명광의 인터뷰와 저술 자료를 활용했다. 주요 참고 문헌으로는 『한국 디자인사 수첩: 한국의 폴 랜드, 조영제를 인터뷰하다』(Kang & Cho, 2010), 『한국 디자인의 새벽: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아카이브 디자인 구술채록 자료집: 양승춘』(Kim, 2013), 『권명광 디자인 40년』(Kwon et al., 2002) 등이 있다. 이 자료에 언급된 관련 내용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KSVD의 창립과 활동, 해산의 과정과 배경을 보다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2. KSVD의 창립 과정과 주요 활동
2. 1. 창립 과정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 교수였던 조영제(1935~2019)는 1966년부터 활동해온 프리즘 회원들에게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발전을 위해 동문 모임이 아니라 여러 대학 출신이 함께 할 수 있는 협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디자인의 이념과 철학을 공유하며, 역량을 갖춘 디자이너들이 모여 수준 높은 디자인 문화를 만들고, 이를 통해 디자인 인식을 넓히고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Kang & Cho, 2010). 이에 프리즘이 해체되고, 1972년에 KSVD의 전신인 KSGD가 출범하게 되었다. 신세계화랑에서 개최된 창립전(1972.9.26.~10.1.)에는 총 11명이 참여했다. 창립 회원의 구성을 보면 서울대 교수 3명(김교만, 조영제, 양승춘2)), 프리즘에서 활동했던 서울대 졸업생 5명(김영기, 권문웅, 이태영, 안정언, 정시화), 그리고 당시 홍익대학교 교수였던 한도룡이 추천한3) 홍대 졸업생 3명(권명광, 류재우, 홍종일)이었다(Kang & Cho, 2010). 연령대별로는 40대 1명, 30대 9명, 20대 1명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들 모두가 동시대 디자이너의 공식 등용문으로 인식되던 상공미전에서 활동했다는 점이다. 상공미전은 정부가 디자인의 중요성을 알리고 수출 상품의 디자인 수준을 향상하기 위해 1966년에 시작한 공모전으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와 유사한 추천작가 제도가 있었다. 한홍택, 조명덕, 김교만, 조영제, 염인택, 이명구, 김수석, 봉상균, 김명호, 김홍련 등이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추천작가였다가 제4회(1969) 때부터 대통령상이나 3회 연속 특선 이상 수상 경력이 있는 경우에 추천작가 자격이 부여됐다(Chung, 1980). KSVD 창립 회원 중 김교만과 조영제는 상공미전 출범 시기부터 심사위원과 추천작가였고 권명광, 권문웅, 김영기, 류재우, 안정언, 양승춘, 이태영, 정시화, 홍종일 등은 상공미전 수상 경력을 가진 신진 디자이너들이었다.4) 창립 이후 KSVD는 기존 회원의 추천을 받아 가입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Kang & Cho, 2010).
KSVD의 전신인 KSGD가 1972년에 출범하게 된 이유를 조영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첫 번째 동기는 1970년대 초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실정과 결부시켜 생각할 수 있겠는데 그 당시만 해도 인습적으로 쓰이던 ‘도안’이나 ‘응용미술’이라는 일반적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혼돈상태였기 때문에 현대적인 개념으로서의 디자인을 정립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동기라고 한다면 그 당시 그래픽, ID, 공예를 총망라하여 하나의 단체를 구성하자는 일련의 움직임이 있었는데 당시의 생각으로 보아선 좀 더 디자인 개념이 깊이 있게 성숙이 되려면 각 전문 분야별 자질 향상이 먼저 전제되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커다란 연합체로서의 출범 계획을 무산시키고 시각디자인 분야에 국한해 출범하게 된 것입니다(Cho, 1982).
KSVD의 회원 수는 해마다 늘어나서 창립 10주년을 맞은 시점에는 12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1982년 기준으로 회원들의 소속을 살펴보면 교직이 45명, 기업체 근무가 53명, 디자인 에이전시 운영이 22명이었다. 여성 회원은 5명으로 그 수가 매우 적었다(Na, 1982). KSVD가 해산한 1993년에는 회원 수가 300명이 넘었다(Lee, 1993).
2. 2. 창립 이후 주요 활동
1972년 창립 당시에 초대 회장으로 김교만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 교수가 추대되었다.5) 이후 조영제, 양승춘, 권명광, 이태영, 정시화 등이 회장을 역임했다. 역대 회장은 모두 창립 회원이었고 재임 기간과 소속, 그리고 해당 시기의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다.
KSVD 활동에서 중심이 된 것은 회원전인데 1972년부터 1991년까지 총 17차례 개최되었다. 초기에는 공통 주제를 정했으나, 점차 자유 출품 방식으로 변화했다.
1980년대에는 해외 디자이너 초청 강연이 여러 차례 기획됐는데 초청된 강연자는 다음과 같다.
KSVD는 『한국의 시각디자인 70/79』(미진사, 1979), 『한국의 시각디자인 80/85』(미진사, 1986), 『한국의 시각디자인 86/88』(둥지, 1988), 『한국의 시각디자인 89/90』(둥지, 1991) 등 네 권의 작품집을 냈다.
KSVD 활동은 전반기(1972~1982)와 후반기(1983~1993)로 구분된다. 먼저 전반기에는 초대 회장 김교만을 시작으로 제2대와 제3대 회장 조영제, 제4대 회장 양승춘까지 모두 서울대학교 출신이었다. 그러다가 1980년에 처음으로 홍익대학교 출신인 권명광이 제5대 회장이 되었다. 당시 회장 선출은 회원 직접 선거가 아니라 선거인단을 구성해 뽑는 간접 선거 방식이었다(Kwon et al., 2002). 출범 초기에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출신으로만 구성되었던 KSVD는 중앙대학교와 국민대학교 등 다른 대학 디자이너도 참여하면서 회원 수가 증가했다(Kang & Cho, 2010). 권명광은 1980년대 초반을 회고하며 자신이 KSVD의 회장이 되고자 했던 이유는 ‘명예나 권위가 탐나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합단체의 한 축을 대표한다는 뜻, 즉 대표성의 의미였다. 민주적 절차로 각 세력이 대표를 맡아야 연대의 진정한 의미를 살릴 수 있고 조직의 활성화를 기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Kwon et al., 2002)이었다고 밝혔다.
KSVD 후반기는 조영제가 다시 제6대 회장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제5대 회장인 권명광은 임기(1980~1982) 중이던 1981년 12월, 연구년을 맞아 미국으로 떠나면서 당시 부회장이었던 권문웅에게 회장 직무 대행을 맡겼다(Kwon et al., 2002). 이에 일부 회원들은 직무 대행이 선출된 회장에 비해 역할과 권한이 제한적이어서 현상 유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하며, 협회의 발전을 위해 활동적인 회장이 선출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Kang & Cho, 2010). 이에 따라 조영제가 다시 회장으로 선출됐다. 1983년 3월 안식년을 마치고 귀국한 권명광은 서울대 출신의 독주로 인해 홍익대 출신들이 협회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불만을 접했다(Kwon et al., 2002). 이러한 불만은 협회 내 의사결정과 운영뿐 아니라, 당시 88서울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서울대 출신들이 대거 중심 역할을 맡은 점에서도 비롯됐다.7) 권명광의 주도로 홍익대 출신 회원들이 임시 총회를 요청해 회의가 열렸으나, 개최 유효성을 둘러싼 논란으로 회의가 중단되었다.8) 이에 항의하며 홍익대 출신 회원 대부분이 탈퇴서를 제출하고 KSVD를 떠났다(Kwon et al., 2002). 홍익대 출신들은 탈퇴(1983) 후 한국그래픽디자이너협회(KOGDA)를 창립(1984)했다.9) 이로써 KSVD와 KOGDA는 KSVD가 해산(1993)할 때까지 그래픽 디자인계의 양대 축을 이루며 상호 견제하고 경쟁하는 관계를 이어갔다.
3. KSVD의 해산 과정과 배경
3. 1. 해산 과정
KSVD의 해산은 1993년 2월 12일에 개최된 정기총회에서 급작스럽게 결정됐다. 그날 상정된 안건은 임원진 구성 정관에 대한 것으로, 이사회에서 총무를 정하고 총무 주재로 직선 방식으로 회장을 선출한 후 회장이 임원을 지명하는 방식으로의 개정이었다. 그런데 조영제가 당일 긴급동의 안건으로 KSVD 해산안을 발의했고, 회원들은 정관 개정과 협회 해산이라는 두 가지 안건을 두고 치열하게 토론한 끝에 해산을 결정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회원들은 협회 해산 결정이 사전 논의 없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진 데 대해 당혹감을 표하며 반발하기도 했다(Lee, 1993). 디자인계는 이 소식을 충격으로 받아들였지만, 정기총회에 참석한 회원들이 만장일치로 협회 해산에 동의한 것은 이를 발전적 해체로 보는 시각 때문이었다. 정기총회를 주관했던 정시화는 회장인 자신조차 해산 제안을 당일에 접했지만, ‘국내의 사회적·문화적 변화에 부응하고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며, 국제적인 변화에 긍정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해산을 결정’했다고 밝히며, ‘전문 영역이 점차 세분됨에 따라 각자의 분야에서 더 진취적이고 전문적인 연구단체를 만들어 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Lee, 1993). 회의에 참여한 회원 중 한 명인 정병규 역시 디자인 단체가 개론의 시대를 넘어 각론의 시대로 나아가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KSVD의 해산은 그래픽 디자인계가 당면한 현실을 반영한 시기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하였다(Lee, 1993). 조영제는 KSVD의 해산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설립 당시 세웠던 협회의 목적은 모두 이루었다고 본다. (중략) 창립 당시만 해도 ‘디자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사회적으로 통용되지 않던 시대였고, 이를 인식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되었다. (중략) 당시 정관에 나타난 협회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디자인을 사회적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활동한다. 둘째, 전시회를 통해 양질의 디자인을 개발하고, 시민들이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 결과적으로 디자인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다. 셋째. 친목 도모와 정보 교환의 장으로 만들어 디자인 종사자들의 사회적 위상을 높인다. 협회에서는 그동안 일본 JAGDA(Japan Graphic Designers Association)와 교류하고 ICOGRADA(International Council of Graphic Design Associations)에 가입하는 등 국제화에도 노력했다. (중략) 현재 디자인계 상황으로는 전국 유일의 단체가 법인으로 등록해 대 정부 창구의 일원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 새로운 디자인 경향을 시도하고 제안하려면 세분된 소단위 연구도 필요하다(Lee,1993).
조영제가 밝힌 것처럼 KSVD가 창립되던 1970년대 초반에는 디자이너 간의 친목 도모가 필요했고, 디자인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널리 계몽해야 한다는 점에서 협회 활동의 의미가 컸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디자인 분야가 전문화되고 다양화됐지만, 협회 활동은 여전히 이전 시기의 친목과 계몽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1990년대에는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디자이너 수가 늘고 실무 중심으로 디자인계가 재편되었으나, 협회는 여전히 교수들이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KSVD와 KOGDA의 관계처럼 대학 간 파벌적 관행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남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단체가 다른 어느 단체보다도 미래를 보고 앞서간다고 자부하는데, 그렇다면 이제 여기서 제대로 된 직능 단체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현재의 KSVD를 해체하는 게 어떠냐’(Kang & Cho, 2010)는 조영제의 주장이 회원들로부터 설득력을 얻었다.
3. 2. 해산 원인과 배경
정기총회에서 갑작스레 제출되어 당일 의결된 해산안의 배경에는 이 제안을 한 조영제의 KSVD 내 독보적 위상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는 2대, 3대, 6대, 7대 회장을 역임하며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협회의 대외 교류를 촉진하고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KSVD 출범을 주도했던 조영제가 20년 후 협회 해산을 추진한 것은 변화한 디자인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10) KIDP 출범(1970)으로 국가 차원의 디자인 진흥정책이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자, 조영제는 프리즘 해산을 제안해 KSVD 창립(1972)을 이끌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KSVD 해산(1993)을 통해 답보 상태에 빠진 그래픽 디자인계 단체 활동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조영제는 협회가 민간 영역을 대표하는 파트너로서 정부의 디자인 진흥정책에 실질적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디자인 단체 생태계의 재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Kang & Cho, 2010). 이러한 상황 인식이 해산 제안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KSVD 해산 전후의 디자인계 주요 흐름과 KSVD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90년대에 접어들며 국제화, 세계화, 개방화의 가속화에 따라 디자인계에도 미래지향적 혁신이 요구되었다. 상공자원부는 제1차 산업디자인발전 5개년 계획(1993~1997)을 발표하며 산업디자인 진흥대책의 강화를 표방했다. 1993년이 산업디자인 원년으로 선포됐고, 산업디자인 주간(1993.09.01.~09.08.)도 지정됐다. 1994년 5월 2일이 디자인의 날로 선포됐고, 1996년에는 국제산업디자인대학원(IDAS)이 KIDP 부설로 개교했다(KIDP, 2020). 이처럼 이 시기는 디자인 개발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각종 정책과 실천 전략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마련이 되던 때였다.
둘째, KIDP와 민간 디자인 단체와의 관계 재정립 필요성 대두이다. 디자인·포장진흥법(1977)이 산업디자인·포장진흥법으로 개정(1991)이 되면서 시행령에 따라 1992년 12월 1일에 산업디자인·포장민간 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상공부 차관을 포함해 20인으로 구성된 이 협의회에는 한국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장, 디자인학계 원로, 민간 디자인 단체장, 대기업 종합디자인연구소 소장, 중소기업 디자인용역 대행 전문업체 대표 등이 참여했다(KIDP, 2020). 이 협의회가 디자인 진흥정책 수립 및 추진에 필요한 실질적인 자문 및 논의 기구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디자인계를 대표하는 법인 단체의 구성이 시급했다. KSVD는 창립 초기부터 그래픽 디자인 분야를 이끌어가는 단체라는 자부심이 강했으나, 법인 인가를 받은 등록 단체가 아니라 임의 단체였기 때문에 협회 조직을 재정비하고 체계화할 필요가 있었다.
셋째, KSVD의 내부 사정도 해산에 영향을 미쳤는데 협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재정적 문제와 임원진 리더십 약화, 회원 간 의견 차이 등으로 인해 초창기와 같은 활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Kang & Cho, 2010). 주요 국제 교류 행사의 경우, 경비의 대부분을 조영제와 그가 운영하던 CDR에서 지원했다. 그러나 교수 연구실이었던 CDR이 법인으로 전환(1988)되면서,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협회를 계속 지원하기 어려워졌다고 생각된다.11) 이러한 상황에서 조영제는 협회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헌신이 회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기존 방식의 활동을 중단하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Kang & Cho, 2010).
한편, 디자인계를 대표할 단일 단체에 대한 요구와 필요성이 197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12)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87년부터 KOGDA, 산미협회 시각디자인부, 한국여류시각디자이너협회(이하 여시디), 한국패키지디자인협회 등 그래픽 디자인 분야 4개 단체가 모여 협의체 구성을 논의했다.13) 이후 1988년 12월 3일에 KIDP 회의실에서 제1차 대의원총회를 개최해 한국시각디자인단체총연합회가 출범하게 됐지만 별다른 활동실적이 없어 지속이 되지 못했다(Park, 2002). KSVD가 1993년 2월에 해산한 후 12월에 KOGDA, 산미협회 시각디자인부, 한국디자이너협의회(이하 KDC), 여시디, 서울일러스트레이터협회(이하 서울일러스트) 등의 단체가 모여 사단법인 형태의 한국시각디자인연합회(가칭) 결성을 위한 준비 모임을 했다. KSVD의 관계자도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 모임 후 발표된 취지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그간 몇 번이나 디자인 단체의 단일화를 시도했지만, 소아적 이기심으로 인해 이러한 시도가 좌절된 경험이 있다. 다음 세대 디자인은 우리 한두 사람의 전공 분야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생존력 중 가장 중요한 핵심에 놓이게 될 것이다. 우리 세대는 이러한 미래를 위한 시스템적 기반을 만들어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진정 우리 디자인의 국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조직화된 단체들의 시대에 대한 예견과 이에 대처하려는 슬기가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이다.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Jang, 1994).
이들은 1994년 6월 18일에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14) 발기인 대회를 열고 조영제를 초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몇 차례 거절했던15) 조영제는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권명광과 오근재의 끈질긴 설득 끝에 회장직을 수락했다(Kang & Cho, 2010). 조영제가 참여하기로 한 데에는 당시 디자인계의 지형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93년 8월에 한국산업디자이너협회(KAID)가 출범했기 때문이다. KAID는 기존의 한국인더스트리얼디자이너회(KSID), 한국디자이너협의회(KDC) 산하 공업디자이너협회(INDDA), 한국산업디자인전문회사협회(KIDCA)가 통합한 사단법인이었다.16) 당시 정부는 하나의 단체만 사단법인으로 인가하여 디자인 정책 시행을 체계화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이로 인해 KAID가 디자인계를 대표하는 단체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KAID가 산업디자인에 한정된 단체였던 만큼,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도 독립적이고 공식적인 사단법인 설립을 추진하는 것이 시급했다(Kwon et al., 2002). 이러한 배경 속에서 회장으로 추대된 조영제는 VIDAK을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전문가들의 직능 단체로, 사단법인의 성격을 가진 그래픽 디자인 분야 유일의 대표 단체로 자리 잡게 하는 데 설립의 의의를 두었다(Jang, 1994). 또한, 부회장을 맡은 권명광은 VIDAK의 출범이 대학 간 제휴와 연대를 다시 회복시켰다는 점(Kwon et al., 2002)을 중요한 성과로 평가했다. KOGDA는 VIDAK에 흡수·통합되었으며, 이는 VIDAK 출범 준비 과정에서 기존 단체를 해체하기로 한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Kwon et al., 2002). VIDAK의 출범은 1980년대 중반부터 지속된 KSVD와 KOGDA 간의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는 전환점이 되었다.17)
4. 결론
본 연구에서는 그동안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KSVD의 창립과 주요 활동, 해산 과정을 분석하고 그 배경을 고찰하였다. KSVD는 1970년대 초반, 국가 차원의 디자인 진흥정책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디자이너들 간의 정보 교류와 협력, 그리고 사회 계몽 역할을 강조하며 설립되었다. 88서울올림픽을 거치며 그래픽 디자인 분야를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 잡았으나, 1990년대 초반 국내외 사회 환경 변화로 인해 발전적 해체를 표방하며 해산하였다. 이 갑작스러운 결정은 당시 디자인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나, 이후 진행된 디자인 통합 단체 구성 논의 속에서 VIDAK 출범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KSVD의 창립과 해산은 당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디자인계 안팎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한국그래픽디자인협회(The Korean Society of Graphic Design, KSGD)의 출범은 응용미술, 산업미술, 상업미술 등 미술의 하위 범주로 여겨지던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위상을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렸다.18) 이후 한국시각디자인협회(The Korean Society of Visual Design, KSVD)로 변경된 것은 시각 매체의 다양화와 기술 발전을 반영한 결과였다. 이는 당시 대학 학과 명칭 및 커리큘럼 변화와 맞물려 시각(전달)디자인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되는 데 기여했다. KSVD가 해체한 이후 설립된 (사)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The Visual Information Design Association of Korea, VIDAK)의 명칭에는 디지털 전환이 진행되던 1990년대 초반의 기술적·매체적 변화가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협회의 성격 및 발전 방향의 변화는 초기 대학과 교수 중심의 디자인 생태계가 기술 발전과 산업 기반 확대로 현장 디자이너와 디자인 전문 회사 중심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KSVD: 1972~1993》전을 기획한 ㈜시디알어소시에이츠의 김성천 대표는 KSVD 활동이 한국 그래픽 디자인 발전에 미친 영향을 다섯 가지 주제로 정리하여 전시했다. 이 다섯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다: ‘눈으로 보는 국민운동_계몽 포스터’, ‘관광산업의 일꾼에서 한국미(美)의 창조자로’, ‘디자인 변방에서 세계로’, ‘문자를 아름답게_문자미화’, ‘국제 행사의 성공 열쇠_디자인’.19) 각 주제 아래에 KSVD 회원들의 과거 작품들이 전시되었으며20) 이를 통해 197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초까지 한국 그래픽 디자인이 현대적인 정체성과 전문성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KSVD 회원들의 작품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까지 다루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협회에서 20여 년간 디자이너들이 활발히 교류하며 국내외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한 궤적을 조명함으로써, 한국 디자인사를 이끌어온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역할과 그들의 사회적·문화적 기여에 대한 통찰을 심화시키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Glossary
1) 한국상업미술가협회 창립 임원 구성은 다음과 같다: 초대회장 염인택, 부회장 봉상균/김홍련, 총무 김광현, 위원회 간사 김선영/문태선/강희수/정남필/이한일/권명광/이동찬/유제국(Kyunghyang Shinmun, 1961).
2) 프리즘에서 활동했던 양승춘은 1970년에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 교수로 부임했다.
3) 조영제는 ‘홍익대는 서울대보다 늦게 출발한 데다 졸업생들 인적 사항을 파악하기 어려워서 당시 홍익대에 근무하던 한도룡 교수에게 부탁해 졸업생 세 사람을 추천받았다’(Kang & Cho, 2010)라고 회고했다. 조영제와 한도룡은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 54학번 동기다.
4) 상공미전 도록(1966, 1969, 1970, 1972) 참조.
5) 창립 회원 중 가장 연배가 높은 김교만이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1972년 12월에 정관을 마련해 조영제가 제2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Kang & Cho, 2010).
6) 협회 초창기부터 존재했던 인쇄물은 1985년에 발간된 『계간 KSVD』 제21호를 기점으로 정식 책자 형식으로 발간되기 시작했다. 다만, 제1호의 발행 시점은 확인되지 않는다.
7) 1981년 9월에 88서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후 조영제는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디자인전문위원장(1982~1988)으로서 올림픽 준비를 총괄했다. 1982년 6월 10일에 김영기, 민철홍, 유제국, 정시화, 최동신, 한도룡 등이 시각디자인과 공업디자인 분야의 디자인전문위원으로 위촉되었는데, 이들 모두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 출신이었다. 디자인전문위원회에는 시각디자인과 공업디자인뿐 아니라 건축, 의상디자인, 미학, 방송 및 광고 기획 분야의 전문가 등 총 20명이 활동했다(Kang & Cho, 2010).
8) 권명광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임시 총회의 유효성 문제부터 거론되면서 논란 끝에 이 안건이 투표에 부쳐져 근소한 표 차이로 부결되어 총회 자체가 무산되었다. 임시 총회 개최를 발의한 회원들의 의견이 묵살되면서 결국 갈등만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Kwon et al., 2002).
9) ‘힘(energy)’을 주제로 서울그라픽센터 미술관에서 개최된 KOGDA 창립전(1984.10.25.~10.31.)에는 64명의 회원이 참여했다(Kim, 1984).
10) 당시 해산 결정에 대해 조영제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전공 분야에 같은 연배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상의할 선배도 마땅치 않고 그러다 보니 내가 논리성 등을 심사숙고해 결정해도 제3자가 보기에는 독선적이라고 할지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한 결과가 나중에 가서 지탄받지는 않았어, 자기들끼리는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회의 석상에서 해산안을 제시한 거 사실 그리 후회하지 않아’(Kang & Cho, 2010).
11) KSVD가 해산된 후 조영제는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개인적으로는 심혈을 기울여서 KSVD를 만들었고, 그 활동을 할 때 경비를 실제로는 내가 사비로 다 댔다고. 지내놓고 보니 CDR 멤버들한테 미안한 일이었지만, CDR 수익을 협회 경비로도 많이 썼어. 하지만 내 열정이랄까 그런 게 회원들한테 절절하게 전달되는 것 같지도 않고 해서 단체 활동은 이제 그만하겠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고’(Kang & Cho, 2010).
12) KIDP가 설립(1970)된 후 시각디자인, 공업디자인, 공예 등 디자인 관련 분야를 모두 포괄하는 단일 협회 창립이 백태원의 주도로 시도되었으나 준비 과정에서 대학 간, 세대 간 갈등이 조정되지 못해 무산되었다. 회장 선출과 관련한 이견이 주요 원인이었는데 백태원, 박대순, 김수석 등이 회장 후보로 거론됐으나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해 결국 창립총회 자체가 무산되었다고 권명광은 회고했다(Kwon et al., 2002).
13) KSVD가 참여하지 않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 논의를 주도한 주체가 KSVD와 긴장 및 갈등 관계에 있던 KOGDA였다는 점이 주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14)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라는 국문 명칭은 조영제가 '정보'라는 단어의 추가를 제안하여 만들어졌다. 영문 명칭은 백명진이 'The Visual Information Design Association of Korea'(약칭 VIDAK)를 제안해 확정되었다(Kang & Cho, 2010).
15) 당시 상황에 대해 조영제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연락이 와서 좀 앞장서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난 일언지하에 거절했거든. 권명광 씨하고 오근재 씨가 내 사무실을 방문해서 “선생님이 참여해서 구심적인 역할을 해야 성사가 되겠다”라고 자꾸만 부탁을 해. KSVD 때의 안 좋은 기억도 있고, 디자이너들의 수동적이고 이기적인 기질에도 좀 실망했던 터라 한사코 거절했다고’(Kang & Cho, 2010).
16) KAID 홈페이지 협회 소개 참조. http://www.kaid.or.kr (2024-12-26)
17)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로는 KSVD 해산이 VIDAK과 같은 통합 단체 출범을 염두에 둔 조영제의 의도적인 결정이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18)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1970년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협회 명칭에 포함되면서 해당 분야를 대표하는 용어로 널리 자리 잡았다.
19) ‘눈으로 보는 국민운동_계몽 포스터’ 세션에서는 국가 정책 홍보와 국제 행사를 위한 계몽 포스터를 선보였다. ‘관광산업의 일꾼에서 한국미(美)의 창조자로’ 세션은 한국적 정체성을 모색하려는 디자이너들의 노력을 조명했다. ‘디자인 변방에서 세계로’ 세션에서는 국제 교류와 관련된 작품들을 통해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문자를 아름답게_문자미화’ 세션은 한글 디자인의 발전에 기여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마지막으로, ‘국제 행사의 성공 열쇠_디자인’ 세션에서는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국제 행사를 통해 발휘된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역량을 강조했다.
20) 과거 수작업으로 제작된 포스터들이 디지털로 재현되어 전시되었다.
Acknowledgments
This work was supported by INHA UNIVERSITY Research Grant.
Notes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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