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Vol. 31, No. 2

The Works of Naomi Filmer with Reference to Ecological Insights
생태학적 통찰의 관점에서 바라본 나오미 필머의 작품세계
  • Selee Lee : Fashion Design, Ewha Womans University, Seoul, Korea
  • 이 세리 : 이화여자대학교 패션디자인전공, 서울, 대한민국

Background Naomi Filmer is famous for her works which involve experimental contact points between a human body and space. She is widely known as a representative modern jewelry designer who not only pursues new fashion but also proposes an entirely unique method for situating a human body in space. This study suggests ecological insights as implications in her works and also concretely shows the characteristics of Filmer’s design and her ecological insights.

Methods For these purposes, this study uses two methods. First, it was very essential to collect and analyze diverse images of Filmer’s representative works. From her early works in the 1990s, when she was at the Royal College of Art, to recent ones, this paper widely deals with images, texts, lectures and interviews of her works. Second, figuring out the exact concept of ecological insight relevant to modern design is required to establish a basis of the analysis of Filmer’s works.

Results A view of the characteristics of Filmer’s design revealed that there are very unique features in terms of shape, material and attitude. For example, she explores negative space, uses fragile materials and expresses inevitable contact in the process of her design. From the viewpoint of ecological insights, there are three representative characteristics of Filmer’s works: the nondiscriminatory respect for a human body; the focu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media and substances, humans and space; and a consistent attitude and development in order to show the perception and experiences of life through her works.

Conclusions Naomi Filmer’s remarkable trait as a designer is that instead of focusing on decorating a human body, she respects and admires the body itself. In this way, she can express her ecological insights more deeply. In addition, she has realized that all things made by a human body are the objects of sensory perceptional experiences which deserve attention all the time. There have been many studies about designers’ thinking or considerations on their times. This study can be one meaningful example that suggests an influential methodology to investigate the ideological origin of modern design through the analysis of Filmer’s works.

Abstract, Translated

연구배경 인체와 공간 사이에 실험적 접점을 형성하는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갖는 나오미 필머는 단지 새로움을 추구하는 패션이 아니라 공간 속 인체의 존재 방식에 있어 기존과 전혀 다른 방식을 제안하는 현대의 대표 주얼리 디자이너로 인식되는 인물이다. 본 연구는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함의로서 생태학적 통찰을 인식하고, 필머의 디자인에 나타난 특징과 생태학적 통찰이 과연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데에 목적을 둔다.

연구방법 본 연구는 필머의 대표작품 이미지와 관련 텍스트의 수집 및 분석이 필수적이었다. VADS(The Visual Arts Data Service) 등을 통해 필머의 초기 작품, 즉 1990년대 Royal College of Art의 MA 재학시절 작품을 포함하여 최근까지의 대표작들에 대한 이미지와 관련 텍스트, 강연, 인터뷰 자료 등을 수집하였다. 한편 생태학적 통찰에 대한 개념, 현대디자인과 관련된 생태학적 통찰의 개념 등을 정리하고, 이를 필머의 작품세계 분석에 대한 근거로 삼았다.

연구결과 나오미 필머의 디자인의 특징을 살펴본 결과, 그 형태나 재료, 착용의 측면에서 남다른 특징이 포착되었다. 특히 반전의 공간을 탐색하고, 연약한 재료를 사용하며, 필연적 접촉 등의 디자인 특징을 보인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생태학적 통찰의 관점에서 바라본 필머의 작품 특징은 세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였다. 우선 인체에 대한 위계 없는 존중이 특별하였고, 작품의 표현에 있어 매질과 물질, 인간과 공간 등의 관계성에 집중하였으며, 줄곧 생명의 지각과 경험을 표현하려했던 일관된 태도와 발전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론 인체를 장식하기보다 인체 자체를 존중하고 예찬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생태학적 통찰의 깊이를 표현할 수 있었던 디자이너 나오미 필머는 인체를 통해 생성되는 모든 것들을 우리가 귀하게 주목해야 할 감각 지각적 경험의 대상으로 인식하였다. 패션 디자이너의 사유, 발상, 시대인식에 대한 연구가 거듭되는 오늘날 본 연구는 현대 디자인의 근거 및 방법론에 대한 연구 자료로서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Keywords:
Naomi Filmer, Jewelry Design, Body Adornment, Fashion, Ecology, 나오미 필머, 주얼리디자인, 신체장식, 패션, 생태학.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한국디자인학회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06 Feb, 2018
Revised: 20 Mar, 2018
Accepted: 20 Mar, 2018
Printed: 31, May, 2018
Volume: 31 Issue: 2
Page: 181 ~ 193
DOI: https://doi.org/10.15187/adr.2018.05.31.2.181
Corresponding Author: Selee Lee (ciaose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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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ation: Lee, S. (2018). The Works of Naomi Filmer with Reference to Ecological Insights.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1(2), 181-193.
1. 서론

신체 인식에 대한 전향적 태도로서 패션디자인과 주얼리디자인의 현대적 경향을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한 인물 중 대표적 디자이너로서 나오미 필머(Naomi Filmer)가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나오미 필머의 작품세계는 최근까지도 유럽을 중심으로 굵직한 전시를 통해 줄곧 소개되고 있다. 현대 디자인을 거론하는데 있어 나오미 필머의 작품에 대한 중요성은 전시뿐만 아니라 여러 글에서 또한 포착된다. ‘Thinking Through Fashion’에 실린 네그린(Negrin, 2015)의 글에는 필머를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와 함께 소개하며 단지 새로움을 보여주는 뉴룩으로서의 패션이 아니라 공간 속 인체의 존재 방식에 있어 기존과 전혀 다른 패션을 제안하는 현대의 대표 디자이너로 설명한다. 바인쉬테인(Vainshtein, 2012) 역시 인체와 공간 사이에 실험적 접점을 형성하는 필머의 작품에 대하여 바디스케이프(bodyscapes)에 대한 새로운 이해라고 평하였다. 럭셔리 브랜드 컨설턴트 자피에리(Zappieri, 2013)에 의하면 나오미 필머의 디자인 컨셉은 인체와 관련된 면, 공간, 감춰진 부위, 새로운 태도 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서 현대 패션 주얼리의 새 지평을 제안할 만큼 대단하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나오미 필머의 작품이 갖는 시대적 의의가 매우 큰데 비하여 필머의 작품세계는 현대 주얼리나 패션 경향 연구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될 뿐 아직 본격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에 본 연구는 국내외 학계에 미처 소개되지 못했던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대하여 소개하고 작품 속에 투영된 시대적 통찰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특히 그의 작품 세계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키워드들의 함의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생태학적 사유를 본 연구의 주요 인식 개념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생태학적 관점을 전제한 본 연구는 필머의 작품세계 전반에 드러나는 디자인 특징을 찾고, 필머의 디자인에 나타난 생태학적 통찰이 과연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데에 목적을 둔다.

이를 위한 연구의 방법으로서 1990년대 초반부터의 대표작품 이미지와 관련 텍스트의 수집 및 분석이 필수적이었다. VADS(The Visual Arts Data Service)를 비롯하여 많은 아카이브들을 통해 필머의 초기 작품, 즉 Royal College of Art의 MA 재학시절 작품에서부터 최근 대표작에 이르기까지 이미지와 관련 텍스트, 강연, 인터뷰 자료 등을 수집하였다. 한편 생태학적 통찰에 대한 개념, 생태학적 통찰과 관련된 현대디자인의 개념 등을 정리하고, 이를 필머의 작품세계 분석에 대한 근거로 삼았다.

2. 생태학적 통찰과 디자인

생태학(ecology)이란 일반적으로 유기체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일컬어진다(New York Times, 2004). 개념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 짚어보면, 그레이엄(Graham, 2009)을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말해왔듯이 생태학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에서부터 출발한다. 1866년 유기체의 일반적 형태학을 소개하던 생물학자인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서 ‘eco’는 고대 그리스어에 ‘집’, ‘사는 공간’을 의미하는 ‘oikos’로부터 왔다. 이점에 포착하여 그레이엄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공간을 연구하는 데에 꼭 생태학적 이해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교육학자 저드슨(Judson, 2010)은 생태학적 통찰(ecological insight), 생태학적 소양(ecological literacy), 생태학적 감성(ecological sensitivity), 생태학적 역량(ecological competence), 생태학적 디자인 지능(ecological design intelligence) 등의 단어 조합들을 열거하면서 생태학을 근간으로 한 다양한 개념들이 현대 여러 분야에 강점과 탄력성을 제공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며 발전하는 생태학의 발전 근간에는 데카르트적인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끈질긴 노력이 포착된다. 이러한 노력의 주인공들로는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이나 움베르토 마투라나(Humberto Maturana), 그리고 이들의 이론을 주목하여 저술했던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카프라의 1996년 저서 'The Web of Life'와 2002년 저서 'The Hidden Connections' 등에는 베이트슨과 마투라나에 대한 언급이 잦다. 인류학자 베이트슨의 주요 관심사는 생명과 환경간의 커뮤니케이션이었고 신과 인간, 인간과 환경과 같은 전통적 대립의 사유를 반대함으로써 자연계를 관통하는 생명의 자율성에 주목하였다(Chun, 2009). 인지생물학자 마투라나는 인지(cognition)를 생명의 과정 그 자체로 보았다. 이러한 베이트슨과 마투라나의 이론을 잇는 카프라의 생태론적 세계관은 우주가 수많은 관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분리되지 않는 유기적 구조를 가진 전체라는 것이다. 세계의 인식을 기계가 아닌 일종의 유기체로 이해하자는 세계관은 데카르트의 근대 인식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카프라는 생명체와 무생물이 함께 공존하는 지구 전체를 하나의 연쇄적이며 동시에 위계 없는 유기체로 인식하였고 이러한 포괄적 개념 인식을 가리켜 생태적 소양(eco-literate)이라는 어휘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디자인의 관점에서 주로 논의되는, 인간과 환경을 분리하는 이원론적 접근에 반대한 생태학자로는 생태심리학의 기초를 이룬 제임스 깁슨(James Gibson)이 있다. 특히 생태심리학자 사사키(Sasaki, 2004)는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생체 고유의 지각(perception)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려했던 깁슨의 이론에 주목하였고 이를 계승하여 데카르트의 근대적 인식 속에 구축되어 익숙한 원근법, 좌표축이 아닌 표면과 모서리에 대한 지각을 강조한 바 있다. 매질(medium), 물질(substance), 표면(surface)이라고 하는 이 세 가지의 레이아웃과 각종 단계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동물에게 지각의 자원을 형성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사사키는 환경을 구성하는 매질, 물질, 표면 중에서도 특히 표면에 대한 경험과 표현에 집중하여 인간이 생명기간동안 이어가는 모든 활동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의미’라고 부르는 것은 표면에 있다고 하는 깁슨의 언급을 직접적으로 인용하며 표면이라는 것이 생물의 모든 활동이 행해지는 곳이라고 정의하였다.

이상의 생태학적 관점에 대한 몇 가지 논의들은 유기체와 환경간의 긴밀한 관계성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개념적 뿌리를 가지며, 각 분야별로 탄력적 개념의 연장을 보인다. 이상의 관점들을 간단히 정리한 내용은 다음의 Table 1과 같다.

Table 1
Ecological approaches

Author (Year) Ecological Approach
Haeckel (1866) - 생물학의 입장
- ‘사는 공간’을 의미하는 ‘oikos’로부터 생태학 용어 제안
생태학에 대한 근본적 이해 및 활용에 대한 기반
Judson (2010) - 교육학의 입장
- 생태학을 근간으로 한 다양한 개념들이 현대 여러 분야에 강점과 탄력성을 제공할 수 있음을 강조
Bateson (1972) - 인류학의 입장
- 생명과 환경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집중 자연계를 관통하는 생명의 자율성 주목
이원론적이며 인과론적인 데카르트의 근대인식론으로부터의 극복 /
위계 없는 세계에 대한 인식 토대
Maturana (1979) - 인지생물학의 입장
- 인지(cognition)를 생명의 과정 그 자체로 보았음
Capra (1996) - 물리학의 입장
- 생명체와 무생물이 함께 공존하는 지구 전체를 하나의 연쇄적이며 동시에 위계 없는 유기체로 인식
Gibson (1979) - 심리학의 입장
-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생체 고유의 지각(perception) 이라는 관점에서 설명
디자인 분야에서 가장 다수로 언급되는 생태학 이론 근거
Sasaki (2004) - 생태심리학의 입장
- 깁슨의 이론을 계승하였고 환경을 구성하는 매질, 물질, 표면 중에서도 특히 표면에 대한 경험과 표현에 집중하여 인간의 모든 활동을 설명

3. 나오미 필머의 디자인 특징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나오미 필머는 1990년대 초반부터 후세인 샬라얀(Hussein Chalayan), 줄리앙 맥도날드(Julien MacDonald), 트리스탄 웨버(Tristan Webber), 쉘리 폭스(Shelley Fox),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스와로브스키(Swarovski), 앤 발레리 하쉬(Anne Valerie Hash) 등 다수의 패션 브랜드와 협업을 이루며 컬렉션 작업에 참여하였다. 필머의 작품 활동은 특히 끊임없이 초대전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2000년 이후로는 런던과 밀란을 오가며 아르마니(Armani), 버버리(Burberry), 포실(Fossil), 안토니니(Antonini),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 등을 위한 디자인 작업을 수행하였고 런던의 Central Saint Martins와 London College of Fashion에서 후학 양성을 위해 강의하는 한편, 스위스, 이태리, 네덜란드 등에서 강의와 워크샵을 진행하며 주얼리디자인, 액세서리디자인 등의 분야에서 큰 흐름을 제시하고 있다.

20여 년간 남겨진 필머의 작품들을 관찰하고 그 안에 두드러지는 형태, 재료, 착용 관련의 특징을 찾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3. 1. 반전의 공간

나오미 필머의 디자인 정체성이 드러나고 이것이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 것은 Royal College of Art의 MA 재학시절의 작품에서부터 시작된다. 인체의 곳곳에 필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사이’, ‘틈’에 대한 관찰로부터 시작되는 이 작품들은 여전히 필머의 대표작으로 인식되면서 현대 디자인의 경향을 드러내는 수많은 전시에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1993년 ‘-between’ 연작에는 특히 손과 발이라고 하는 인체의 말단에 형성된 사이에 고정될 수 있는 장신구들이 등장한다.(Figure 1) 자연스럽게 생기는 인체의 굴곡 부분들, 즉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서 손등으로 연결되는 기다란 골, 발가락과 평평한 발바닥이 연결되는 그 틈의 좁은 공간들을 작은 메탈, 녹아들 듯 부드러운 형상의 금속 조각들로 채우는 듯 보인다.


Figure 1 Finger-between pinch piece & Toe-between pieces 1993

다음의 Figure 2는 흔히 취할 수 있는 특정의 손동작을 지지하는 듯한 형상의 디자인이다. 손가락이라고 하는 신체의 일부 대상을 장식하기 보다는 동작에 대한 의미가 더 크게 부각되는 형태이다.


Figure 2 Hand manipulation piece 1993

앞선 사례들처럼 자연스럽게 생기는 인체의 틈이나 동작으로부터 생기는 공간의 지지 외에 행위로부터 형성되는 공간을 강조하는 디자인도 눈에 띈다. 알렉산더 맥퀸의 2002년 S/S 컬렉션에 등장한 구형 손장식이 바로 그것이다.(Figure 3) 텅 빈 유리구와 은도금 구리의 결합으로 구성된 이 손장식의 공은 모델의 두 팔을 뒤로 모았을 때 착용이 가능하다. 맥퀸의 요청에 따라 플라맹코 무용수의 격정적인 동체를 둘러싼 반전의 공간(negative space)을 포착하고자 했던 필머는 무용수의 플라맹코 동작 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은 손동작에 집중하였고 무용의 동작이 활발히 이루어질 때 손이 만들어내는 공간을 투명 구형으로 표현하였다.


Figure 3 Ball in the Small of my Back 2001 Design for Alexander McQueen's 2002 S/S

필머의 디자인 중에는 인체의 겉면을 장식하는 주된 장신구 착장 위치를 거부하고 과감하게 인체의 내부로 위치를 바꾸는 작품도 볼 수 있다.(Figure 4) 후세인 샬라얀의 1996년 S/S 컬렉션에 등장한 필머의 작품은 모델의 입 안에 있는데, 입을 벌리도록 지지하는 마우스 바(Mouth bar), 입술이 벌어질 때 빛을 발하는 마우스 라이트(Mouth Light) 등이 있다. 마우스 바는 앞니 안쪽으로 수직으로 삽입됨으로써 입이 벌어져있는 상태를 고정시킨다. 마우스 라이트는 벌려진 입술 안쪽으로부터 용광로 같이 빛을 낸다. 그것은 붉은 빛의 LED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반짝이는 립스틱처럼 입술 밖으로 빛을 낸다. 특히 입 안에서 빛으로 존재하는 마우스 라이트는 나오미 필머 스스로 반전의 공간에 대한 또 다른 해석임을 강조한 바 있다(Gilhooley & Costin, 1997).


Figure 4 Mouth Bar & Mouth Light 1995 Piece made for Hussein Chalayan 1996 S/S catwalk show
3. 2. 연약한 재료

앞서 LED 빛 자체를 하나의 재료로 사용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나오미 필머의 작품에 등장하는 신체장식의 재료는 다채롭다. 자피에리(Zappieri, 2013)는 필머의 디자인에 있어 예측 불허의 재료들이 사용되고, 장인정신과 새로운 미디어의 조합을 시도한다고 평한 바 있다. 이에 필머의 디자인 특징을 규정할 수 있는 부분으로서 재료에 대한 언급이 빠질 수 없음을 읽을 수 있다. 특히 기존의 디자이너들과 차별화된 재료의 시도로서 연약한 재료의 사용이 눈에 띈다. 입 안의 빛과 같이 만질 수 없거나 일상적 착장의 개념에서 물리적으로 매우 취약한 재료의 사용은 기존의 주얼리디자인 개념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필머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최근 작품까지 가장 다수로 눈에 띄는 재료의 특성은 취성(脆性, fragility)이라 할 수 있다. 자기(porcelain)와 유리, 얼음 등을 사용함으로써 가볍거나 무르거나 연약한 성질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얼음을 원재료로 삼는 ‘A Sensual Shiver - Ice Jewellery series’는 인체에 착장되는 동안 착장자가 얼음으로부터 차가움, 얼음이 녹으면서 느껴지는 물기의 축축함을 그대로 느끼게 되는데, 체온에 의해 혹은 공간의 기온에 의해 점점 녹는 장식물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어 자취를 감추는 한시적 특성을 갖는다.(Figure 5)


Figure 5 A Sensual Shiver - Ice Jewellery series Ice-Ear Behind / Ice-Upright Hand Disk / Ice-Under Arm 1999 Design for Judith Clark Costume Gallery

이어 2001년 작품으로서 초콜릿 마스크 역시 재료의 연약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Figure 6) 입술을 중심으로 모델의 턱에서부터 목까지 얼굴 하관을 덮고 있는 마스크는 달콤한 맛으로 미각을 자극하는 초콜릿으로 만들어져 있다. ‘Breathing Volumes project’라는 테마를 두고 엘리자베스 쇼(Elisabeth Shaw) 초콜릿 회사와 함께 제작한 초콜릿 마스크는 모델이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에 나타나는 얼굴 표정을 포착하여 윤곽을 만들어냈다. 초콜릿 재료는 나오미 필머가 창작 소품의 재료로 즐겨 사용하는 재료 중 하나인데, V&A 뮤지엄 전시 ‘Out of the Ordinary: Spectacular Craft’에서는 세계적인 쇼콜라티에 폴 영(Paul A. Young)과 함께 실제로 마다가스카르 64% 초콜릿을 이용하여 인간의 세 가지 표정을 담은 롤리팝을 제작하기도 했었다. 초콜릿은 가장 주된 요소로서 착용자의 존재를 보여주며 그 체온에 의해 녹아버린다. 특정의 형태로 존재하기까지는 한정적이지만 착용 경험은 맛과 감촉에까지 이른다. 이 마스크는 어나더 매거진(Another Magazine)의 기사를 위한 쵤영용 주얼리로 제작되었다.


Figure 6 Chocolate Mask 2001 Breathing Volumes project for Another Magazine
3. 3. 필연적 접촉

나오미 필머의 디자인에 드러나는 특징으로 마지막 한 가지는 인체와 장식 간의 필연적 접촉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에반스(Evans, 2007)에 의하면 필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몸에 걸쳐지는 것이라기보다 몸 그 자체에 대한 것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앞서 디자인 특징을 설명하며 소개되었던 사례들을 보았을 때 현대 추상 조각물과 같은 외형을 가진 이 장신구들은 손가락 사이, 발가락 사이, 귓가와 입 주변 등에 착용하는 순간 살아있는 인체의 관계를 느낄 수 있는 놀라운 감각을 만들어낸다.

필머의 초기 작품 중에서 Figure 7과 같이 고둥 껍데기를 착용하는 실험적 작품이 있다. 유려한 동작으로 신체를 움직이는 무용수의 목덜미와 같은 굴곡에 마치 제자리인양 꼭 맞춰 밀착된 채로 안착된 고둥 껍데기는 신체와 분리되기 보다는 하나인 양 보이고 교감하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Figure 7 A ballet dancer wearing `Shelter', a Filipino shell, early works

쉘리 폭스의 1999-2000년 F/W 컬렉션을 위한 필머의 주얼리디자인은 모델의 턱 하단을 감싸는 받침형, 팔뚝과 상체의 접촉면을 맞닿는 판형의 자기 장식물, 그리고 아래쪽 팔뚝 안쪽 면으로 접착하는 유리 렌즈들이다. 백색의 자기,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이 장식물들은 가장 눈에 띄는 신체의 정면에서 화려하게 독자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신체 일부분의 감춰진 아래쪽 면, 안쪽과 같은 면에 밀착된 채로 착용되며 그 형태와 위치를 유지한다. 접촉의 관계가 디자인 컨셉에 있어 가장 부각되는 특징으로 보인다.


Figure 8 Chin Plate, Under-Arm porcelain Plate & Glass Lenses for forearm Pieces made for Shelly Fox 1999-2000 F/W catwalk show 1999

2012년 아른헴에서 열렸던 'Jewellery Unleashed!' 심포지엄에서 ‘Body Extracted, Absent and Alluded’ 라는 제목으로 행해진 나오미 필머의 강연은 인체에 대한 필머의 관찰 방식을 세 가지 방향으로 정리하여 보여준 바 있다. 그 세 가지는 바로 인체로부터 추출된, 인체가 부재한, 인체를 암시하는 작업에 해당하는데, 철저하게 인체에 근거한 작업을 펼쳐오고 있음을 강조한 설명이었다. 결국 나오미 필머의 작품은 인체의 표면으로부터 추출되며, 인체가 부재하더라도 인체가 암시될만한 표면을 갖는다. 이것은 그만큼 그의 디자인 결과물이 인체 표면과의 접촉에서 특별한 관계를 맺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4. 나오미 필머의 디자인에 나타난 생태학적 통찰

인간 대 자연, 인간 대 환경 등의 대립과 위계를 당연시하던 이분법적 전통 사유를 거부하는 경향으로서 유기체와 환경간의 긴밀한 관계성을 탐색하는 생태학에 기본을 두고 나오미 필머의 디자인에 나타난 생태학적 통찰의 대표적 경향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4. 1. 위계 없는 존중

나오미 필머의 작품에 있어 가장 중요한 태도는 인체에 대한 존중이다. 「Metal Magazine」 2011년 봄여름호 인터뷰에서 필머는 인체보다 더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는 신체장식물의 위상에 대해 물음을 던지며, 그간 경시되었던 인체 자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한편 런던 V&A 뮤지엄에서부터 2007년 시작되어 2010년까지 유럽 각국에서 순회 전시하였던 ‘Out of the Ordinary : Spectacular Craft’ 전을 시작할 때에 당시 필머는 뮤지엄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작품에 담겨있는 인체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필머는 인체 자체에 대한 의미를 기리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이는 인체 부분에 따라 서열이 부여되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 흔히 근대적 주얼리디자인의 분류가 인체의 착용 부분에 근거하며 주요하게 장식 대상이 구분되는데 반하여 필머의 작품은 일반적 인식과 예상을 뒤엎는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2007년 필머의 Ball Lenses 시리즈는 우리가 인체에서 전혀 드러내어 뽐내지 않았던 평범한 부분들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유리 구형은 우리 인체의 각 부분을 비범하게 집중해볼 수 있는 렌즈로서 효과적인 기능을 한다.(Figure 9) 어깨의 끝이나 팔꿈치, 발꿈치 등은 전통적인 주얼리디자인의 분류상 주목받는 장식 부위는 아니었다. 그러나 필머의 디자인은 사실상 우리의 인체에서 평범한 부위는 아무데도 없다는 뜻을 보여준다. 인체의 모든 부위는 모두 개별적으로 독특하고 특별하다. 투명한 유리 볼은 신체의 부분부분을 독립시켜 주목하게 함으로써 인체 자체에 대한 서열과 위계 없는 존중을 보여주는 필머의 작품 경향을 확실히 읽을 수 있게 한다.


Figure 9 Ball Lenses 2007 Pieces for ‘Out of the Ordinary : Spectacular Craft’

전시를 주최했던 V&A 뮤지엄 측은 필머의 작품을 두고 인체를 장식하는 것이라기보다 인체를 존중하고 예찬하는 것이라고 소개하였다. 인체에 대한 생태학적 통찰이 드러나는 시도는 곧 이어 패션 컬렉션에서 매끄럽게 응용된다. 앤 발레리 하쉬의 2008-2009년 F/W 꾸띄르 컬렉션에 공개된 나오미 필머의 작품은 유연한 곡선형으로 외곽선을 그리며 공간을 만들고 있는 외형이 눈에 띈다. 특히 난꽃 모티프의 조형적 특징을 적용한 넥 피스(Neck Piece)는 턱에서부터 가슴까지 이어지는 인체의 깊은 공간을 안정적으로 채우면서 앤 발레리 하쉬의 컬렉션에서 풍기는 우아한 여성적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Figure 10) 필머는 1990년대 초반부터 오랜 시간 튤립, 난초 등의 식물 모티프에 관심을 두고 작품에 적용해 왔었다. 추상화된 자연물을 주된 형태로 삼아 위계와 서열을 뒤엎는 인체 위치에 배치한 필머의 주얼리디자인은 생태학적 통찰이 느껴지는 급진적 우아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Figure 10 Gold-plated Shoulder piece & Orchid Neck Piece Design for Anne Valerie Hash’s Couture 2008-2009 F/W
4. 2. 관계의 지향

길훌리와 코스틴(Gilhooley & Costin, 1997)은 나오미 필머의 작품으로부터 인간과 기기, 물질 간의 공생에 대한 견해를 읽을 수 있다고 하였다. 필머는 인체 내외부로부터 인체의 틈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내고 있으며 인체에 대한 기능적 시각은 물론 비기능적 시각,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적 확장 등을 탐험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공생에 대한 언급은 인체와 환경, 인체와 주얼리, 매질과 물질 등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관계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성찰하고 탐험하는 디자이너의 태도, 즉 생태학적 통찰의 의미를 연결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생태심리학의 입장에서 깁슨과 사사키가 강조했던 주요 요소들, 즉 균질성을 가지면서 표면이 없는 ‘매질’과 견고성을 가지며 표면이 있는 ‘물질’ 간의 관계에 대한 특별한 태도는 앞서 디자인 특징을 통해 사례로 등장했던 작품들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듯이 나오미 필머의 20여 년의 작품에 일관되게 드러난다. 필머의 작업은 인체의 존중을 기반으로 유기체와 그 유기체를 감싸는 환경이 이루는 표면의 관계를 새롭게 발굴하였다.

이러한 관계성의 탐구는 2000년대 들어 보다 적극적 개념으로 발전되는데, 필머는 연결과 접촉의 방식뿐만 아니라 반대로 파편화 및 분리 등과 같은 방식을 통해서도 관계성을 부각시키는 작업을 시도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2007년 ‘Toe and Heel Ball Lenses’ 작품이 있다. 서로 다른 크기의 여러 개의 유리 구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투명의 유리 공 안에 속이 빈 금속 주형을 통해 여러 인체 부위 공간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특히 금속 내부에 피부색이 사실적으로 적용되어 있어서 마치 인체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Figure 11) 인체에 대한 분리와 부재의 표현, 인체의 파편화 방식을 취하지만 이 역시 인체와 인체를 감싸는 공간의 관계 인식이 중심이 되고 있다.


Figure 11 Toe and Heel Ball Lenses 2007 Pieces for ‘Out of the Ordinary : Spectacular Craft’
4. 3. 생명의 지각과 표현

2009-2010년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반 뵈닝겐(Boijmans Van Beuningen) 뮤지엄에서의 ‘The Art of Fashion : Installing Allusions’ 전시에 비디오 인스톨레이션으로 설치된 필머의 작가 인터뷰에서는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단지 장식이나 개별적 테마에 대한 관심보다는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입는가, 그리고 인간이 왜 착용하는가에 대한 보다 포괄적 근본 개념에 대한 관심이 무엇보다 크다는 점을 강하게 표출하였다. 필머가 지향한 인체의 표현은 조형적 관심의 표출만이 아니며 인간의 삶과 생명을 지각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생태학적 통찰의 의도를 갖는다.

앞서 필머의 디자인 특징을 언급함에 있어 인체의 어떤 공간을 찾아내고 어떤 재료를 활용하며 인체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서술을 통해 나타났듯이 필머의 디자인은 인간을 포함하는 자연의 모든 존재에 대한 고찰이 드러나며 그 안에 삶과 생명의 원리가 담겨있다. 인도의 일간지 힌두(The Hindu, July 17, 2004)에 의하면 필머는 디자인에 있어 어떤 값비싼 재료로 만들어졌느냐 보다는 착용 시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귀한 것들에 주목한다고 하였다. 얼음조각을 귓가에 착용했을 때의 차가움, 차가움 끝에 오는 부분적 무감각 증세, 약간의 얼얼함, 그리고나서 얼음은 녹아 없어지며 남는 것은 귓가에 축축한 감각이다. 마르고 나면 얼음장식은 단지 기억이 되고 일시적인 경험이 된다. 초콜릿 장식은 착용자가 그것을 맛볼 것이고 장식을 착용한다는 감각과 지각, 기억의 경험이 향과 맛을 경험하는 것이 되며 마침내 소화되는 것이다.

필머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드러난 인간과 인체를 둘러싼 관심은 이후 생명의 메커니즘에 대한 직접적 관심과 표현으로 더욱 강조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호흡이라고 하는 생물들이 유기물을 분해하여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작용을 시각화하는 작업이 두드러지는데, ‘Breathing Volume’이라는 제목의 작품 Figure 12는 인간이 숨을 모으고 저장하고 삼키는 모습 그리고 숨을 내쉬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Figure 12 Breathing Volume, Installation view & sketches 2009

매질과 물질, 인간과 환경,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부터 승화되는 생명의 관계를 표현한 생태학적 시각화는 차츰 더 착용의 관점으로 진화하여 패션 콜라보레이션 작품으로 나타나는데, Figure 13과 같다. 이태리 밀라노에서 활동 중인 호루조 디자인(Horujo Design)과의 협업으로 편물의 후드(hood)와 칼라(collar)를 구현한 이 버블 시리즈는 고온의 도가니에 넣어 말아낸 유리 용액에 입으로 숨을 불어 만든 둥근 유리조형물이 편물 안에 심어져있다. 유리는 매우 부드럽게 인체에 안착하거나 매달려 있어서 재료 자체가 갖는 취성, 즉 여리게 파괴되는 성질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버블 칼라의 경우 코-기관-폐로 이어지는 인간의 호흡기를 연상하게 하며, 좌우로 둥글게 붙어있는 유리공이 우리 몸 속에 마치 두 개의 풍선처럼 붙어있는 폐를 떠올리게 한다.


Figure 13 Hood & Bubble / Bubble Collar 2010

‘톨 다크 로스트(Tall Dark Roast)’ 매거진과의 2011년 인터뷰에서 필머는 자신이 찾는 아름다움이란 자유를 전제로 한 인간 내면의 에너지와 경험이라고 답을 하였다. 생명을 기반으로 한 인간이 존재하는 데에 필수적인 감각, 지각, 경험에 대한 탐구와 표현의 의지는 그의 작업 전반에 잘 나타나고 있으며 생태학적 소양의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5. 결론

인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안하는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현대 패션에 큰 영향을 끼친 나오미 필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생태학적 통찰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본 연구의 결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체와 인체를 둘러싼 공간 사이의 실험적 접촉으로서의 관계를 탐구한 나오미 필머의 작품은 현대의 디자인에 담긴 시대적 사유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생태학적 통찰로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둘째, 19세기 생물학자 헤켈에서부터 21세기 생태심리학자 사사키에 이르기까지 생태학적 통찰을 둘러싼 근간의 이론들을 살펴본 결과 생명체와 무생물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를 하나의 연쇄적이며 동시에 위계 없는 유기체로 인식하고자 하는 개념을 가장 기본으로 추출할 수 있었다.

셋째, 나오미 필머의 디자인의 특징을 살펴본 결과, 그 형태나 재료, 착용의 측면에서 보이는 특징이 남다르다. 특히 반전의 공간을 탐색하고, 연약한 재료를 사용하며, 필연적 접촉 등의 디자인 특징을 보인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넷째, 생태학적 통찰의 관점에서 바라본 필머의 작품 특징은 세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였다. 우선 인체에 대한 위계 없는 존중이 특별하였고, 작품의 표현에 있어 매질과 물질, 인간과 공간 등의 관계를 지향하곤 하였으며, 줄곧 생명의 지각과 경험을 표현하려했던 일관된 태도와 발전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체를 장식하기보다 인체 자체를 존중하고 예찬하고자 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현대 패션에 생태학적 통찰의 깊이를 표현할 수 있었던 나오미 필머는 인체의 형태, 움직임, 그리고 인체를 통해 생성되는 모든 것들을 우리가 귀하게 주목해야 할 감각 지각적 경험의 대상으로 인식하였다. 패션 디자인을 둘러싼 다양한 개념의 변천이나 디자이너의 사유, 발상, 시대인식에 대한 연구가 거듭되는 오늘날 이상의 연구는 부분적이나마 현대 디자인의 근거 및 방법론에 대한 연구 자료로서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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