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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확산기 한국 세탁기의 특징과 디자인문화, 1987-1992
Features and Design Culture of Korean Washing Machines During the Product Proliferation Period: 1987-1992
  • Chang Sup Oh : Department of Industrial Design, Konkuk University, Professor, Seoul, Korea
  • 오 창섭 :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서울, 대한민국

연구배경 1980년대 초부터 보급이 확대되기 시작한 세탁기는 1990년대 초에 이르러 포화기에 이르렀다. 특히 1990년 전후의 급격한 보급률 증가로 세탁기는 한국에서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한국에서는 88서울올림픽이 열렸고, 해외여행 자율화 조치가 취해졌으며, 아파트는 대표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를 잡아갔다.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었다. 본 연구는 ‘이념’의 시대를 마감하고 ‘일상’과 ‘생활’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었던 1990년 전후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시기 가전 3사는 치열하게 경쟁하며 다양한 세탁기들을 쏟아내었는데, 그 세탁기들은 다양한 객체들과 힘들이 서로 작용한 결과였다. 본 연구는 세탁기가 빠르게 확산하던 1987년부터 1992년까지 세탁기와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객체들의 상호작용을 고찰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해당 시기 세탁기의 특징과 세탁기를 둘러싼 디자인문화를 드러내고 있다.

연구방법 본 연구는 대상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광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광고가 세탁기의 기본 정보를 비교적 상세하게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출현했던 시기의 생산 및 수용의 맥락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고는 출발점일 뿐이고, 기사 및 다양한 관련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

연구결과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80년대 중반부터 세탁기의 흐름을 주도했던 전자동 세탁기는 1990년 말에 인공지능 세탁기들이 출현하면서 주도권을 잃었다. 퍼지이론을 적용한 인공지능 세탁기 경쟁은 주로 금성사와 삼성전자 사이에서 벌어졌다. 둘째, 1991년 말에 대우전자가 공기 방울 세탁기를 출시하면서 세탁기의 개발 방향이 퍼지이론을 적용한 인공지능에서 세탁방식으로 급속히 이동했다. 이러한 초점의 이동은 한국형 세탁기가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1992년에 삼성전자가 출시한 삶아 빠는 세탁기는 공기 방울 세탁기와 함께 한국형 세탁기 현상을 주도했다. 셋째, 1990년 전후에는 예약기능이 있는 크고 조용한 세탁기에 대한 선호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것은 맞벌이 부부의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현상이었다. 이 시기에는 일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여성들의 교육 기회 확대로 인해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였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세탁기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결론 1990년 전후의 세탁기는 다양한 객체들과 관계하면서 인공지능 세탁기, 한국형 세탁기, 그리고, 예약기능이 있는 크고 조용한 세탁기라는 3가지 방향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Abstract, Translated

Background Washing machines, which began to expand in popularity in the early 1980s, reached saturation by the early 1990s. The rapid increase in penetration, especially around 1990, was a major factor in positioning the washing machine as an everyday necessity. During this time, South Korea hosted the 1988 Seoul Olympics, overseas travel was liberalized, and apartments became the dominant form of housing. The number of people who considered themselves middle class was also rapidly increasing. This study focuses on the period around 1990, when the era of ‘ideology’ ended and the era of 'everyday life' began. During this period, the three major home appliance companies competed fiercely and produced a variety of washing machines, which were the result of the interaction of various objects and forces. This study examines the relationships and interactions between washing machines and the various objects that surround them from 1987 to 1992, a period of rapid proliferation. The study aims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of washing machines and the design culture surrounding them.

Methods This study utilized advertisements to access the audience. This is because advertisements provide relatively detailed information about washing machines, as well as the context of their production and reception at the time of their appearance. However, the advertisements were only a starting point, and comparisons with articles and other relevant sources were used to find the truth.

Results The finding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fully automatic washing machines, which led the trend of washing machines since the mid-1980s, lost their dominance when artificial intelligence washing machines appeared in the late 1990s. The competition for artificial intelligence washing machines using fuzzy theory was mainly fought between GoldStar and Samsung Electronics. Second, in late 1991, Daewoo Electronics launched an air bubble washing machine, and the development direction of washing machines rapidly shifted from artificial intelligence using fuzzy theory to washing methods. This shift in focus paved the way for the emergence of South Korean (hereafter, Korean) washing machines. In 1992, Samsung Electronics launched the boiling washing machine, which, along with the air bubble washing machine, led the Korean-style washing machine phenomenon. Third, around 1990, there was a clear preference for larger, quieter washing machines with scheduling capabilities. This was closely related to the lifestyle of dual-income couples. During this period, the number of dual-income couples increased due to changing social perceptions of working women and expanding educational opportunities for women, and washing machines were actively developed to target them.

Conclusions Around 1990, washing machines were developing in three directions: artificial intelligence washing machines, Korean-style washing machines, and large, quiet washing machines with scheduling functions.

Keywords:
Around 1990, Washing Machines, Korean-style Washing Machines, Dual-income Couples, Korean-style Home Appliances, 1990년 전후, 세탁기, 한국형 세탁기, 맞벌이 부부, 한국형 가전제품.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한국디자인학회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23 Aug, 2023
Revised: 17 Sep, 2023
Accepted: 19 Oct, 2023
Printed: 30, Nov, 2023
Volume: 36 Issue: 4
Page: 407 ~ 435
DOI: https://doi.org/10.15187/adr.2023.11.36.4.407
Corresponding Author: Chang Sup Oh (changsup@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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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ation: Oh, C. S. (2023). Features and Design Culture of Korean Washing Machines During the Product Proliferation Period: 1987-1992.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6(4), 407-435.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1. 서론

세탁기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가정마다 크고 작은 세탁기 하나쯤은 갖추고 있고, 세탁기로 빨래하는 생활을 상당 기간 지속해 왔기 때문에 세탁기 없는 삶을 떠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세탁기가 한국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시기는 언제일까? ‘대략’이라는 부사에 의지한다면, 그것은 1980년대 초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약 10여 년 동안 벌어진 사건이다. 통계청 자료(Table 1)에 따르면 1979년 한국의 세탁기 보급률은 11%에 불과했다. 열 가구당 한 가구 정도 세탁기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세탁기 보급률은 매년 2~3%씩 증가하며 완만하게 상승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다가 1984년부터 갑자기 급상승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1984년에 9%, 다음 해인 1985년에도 9%에 이르는 보급률 증가를 나타냈다. 하지만 1986년에는 4%로 이전 2년에 비해 상승이 둔화하는 모습을 보였고, 1987년에도 전년 대비 4%의 증가를 나타내며 상승 폭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1988년부터 다시 세탁기 보급률은 전년 대비 9~11%의 급격한 증가를 나타낸다. 이러한 급등세는 1991년까지 4년 동안 이어졌다. 그 결과 1991년에 한국의 세탁기 보급률은 86%에 이르게 된다. 열 가구당 여덟, 혹은 아홉 가구가 세탁기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Table 1
Trends in domestic washing machine penetration from 1979 to 1994 and the temporal scope of the study (“Washing Machine Penetration Rate,” 2023)

연구의 시간적 범위
년도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 93 94
보급률(%) 11 14 16 19 21 30 39 43 47 56 65 76 86 89 91 93
증감률(%) 3 2 3 2 9 9 4 4 9 9 11 10 3 2 2

Table 1에서 알 수 있듯이 세탁기는 크게 2번의 보급률 급등기를 거치며 한국 가정에 자리 잡았다. 1984~1985년이 1차 급등기였다면, 1988~1991년은 2차 급등기였다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2차 보급률 급등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기간에 세탁기는 매년 약 10%에 이르는 보급률 증가를 나타내며 한국 가정의 보편적 사물로 자리 잡았다. 본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2차 급등기지만, 시기를 1988년부터 1991년까지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차 급등기 직전 1년과 직후 1년도 연구범위에 포함하였는데, 이는 연속성을 고려해야 하는 디자인문화 연구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1988년에 팔리던 세탁기 중 일부가 1987년에 생산된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1991년에 생산된 세탁기가 1992년에도 유통되며 관련 움직임을 추동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한 것이다.

본 연구가 범위로 취하고 있는 시기는 역사적으로 특별한 때였다. 국제적으로는 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련의 멸망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고, 국내적으로도 급속한 사회 발전에 따른 생활의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부침은 있었지만 3저 호황에 힘입은 경제발전을 이어가고 있었고, 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며 사회의 민주화도 진전을 이루고 있었다. 88서울올림픽이 있었고, 전면적인 해외여행 자율화 조치도 취해졌다. 24시간 편의점이 전통적인 가게들을 대체해가고 있었고, 아파트는 보편적 주거 형태로 자리를 잡아갔다. 사회적으로는 낙관적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는데, 1990년 무렵에 이미 국민의 60% 이상이 자신을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 시기 한국은 이념의 시대를 마감하고 문화의 시대로 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시대, 다시 말해 ‘일상’과 ‘생활’이 관심의 중심에 자리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세탁기 보급의 급격한 확대 현상은 바로 이러한 변화와 공명하며 나타났다.

이 시기에 TV와 냉장고 보급률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하지만 세탁기를 비롯해 진공청소기, 비디오, 오디오 등의 보급률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새로운 제품들이 일상에 파고들면서 삶을 구성하는 사물의 질서는 빠르게 재편되는 모습을 보였고, 그에 따라 한국 사회는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디자인문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 시기, 다시 말해 1990년 전후의 한국 디자인과 디자인문화에 관한 연구는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가전제품의 디자인과 디자인문화에 관한 연구만 보더라도 <중산층 시대의 디자인문화, 1989~1997>에 실린 오창섭(Oh, 2015)의 ‘90년대 한국형 가전제품의 풍경’, 2020년에 있었던 <올림픽 이펙트> 전시 도록에 실린 오창섭(Oh, 2021)의 ‘한국형 제품과 기묘한 근대성’, 그리고 같은 도록에 실린 박해천(Park, 2021)의 ‘타임머신, 장치, 그리고 다이어그램’ 등이 있다. 이 연구들은 해당 시기 한국 사회와 가전 3사를 중심으로 한 디자인 실천을 고찰함으로써 급변하던 시기의 디자인 및 디자인문화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 있다. 이보다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연구로는 박해천(Park, 2019)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국내 가전업체의 디자인 전략 연구’, 박해천(Park, 2022)의 ‘젊은 여성 소비자의 부상과 가전제품 디자인 · 광고의 변화, 1989~1994’, 박해천(Park, 2022)의 ‘성숙기 소비사회의 도래와 라이프스타일 개념의 도입’, 오창섭(Oh, 2022)의 ‘한국형 냉장고의 발전 과정: 1984~1995’, 오창섭(Oh, 2023)의 ‘1980년대 후반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출현과 확산’ 등이 있다. 그런데 본 논문의 대상인 세탁기와 관련해서는 일부 연구들에 부분적으로 언급되는 정도에 머물고 있을 뿐, 본격적인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즉, 이 시기 세탁기를 중심에 두고 그 내용과 관련 디자인문화를 심층적으로 다룬 연구는 아직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1987~1992년 사이 가전 3사에서 생산한 세탁기와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객체들과의 상호작용을 고찰함으로써 해당 시기 세탁기의 특징과 디자인문화를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본 연구는 연구대상에 접근하는 매개로 광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광고가 해당 기간에 출현한 세탁기들의 기본 정보를 비교적 상세하게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출현했던 시기의 생산 및 수용의 맥락을 잘 보여주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고는 상품 판매라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제작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통해 본 연구가 밝히고자 하는 세탁기의 특징과 디자인문화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광고의 특성과 맥락을 고려한 종합적 분석과 해석이 필요하다. 이는 광고를 사건 현장의 증거처럼 다루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광고를 대하는 본 연구의 태도는 사건의 증거물을 대하는 탐정이나 수사관의 태도와 유사하다. 탐정이나 수사관이 증거물을 상황 속에서 종합적으로 다루는 것처럼, 본 연구는 광고를 해당 시기에 발행된 일간지 기사, 관련 자료, 연구 성과물 등에서 도출한 내용과 비교하고 종합함으로써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 요약하면 광고와 관련 자료들을 분석해 도출된 내용을 비교 종합함으로써 해당 시기 세탁기의 특징은 물론이고, 그 특징을 만들어 낸 다양한 객체들과 힘들, 그리고 그것들의 관계 변화와 그에 따른 세탁기의 변화 내용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그러한 변화가 인간 행위자만 아니라 객체라 불리는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들과의 협상의 산물이라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는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과 객체지향 존재론의 접근 방식을 일정 부분 수용한 것이다.

2. ‘전자동’을 넘어 ‘퍼지’와 ‘인공지능’으로 진화

‘전자동’을 내세운 세탁기는 1970년대 후반부터 출현하였다. 당시 전자동 세탁기는 한 번의 조작으로 세탁과 탈수를 할 수 있는 1조식 세탁기를 의미했다.1) 그보다 진화된, 다시 말해 센서를 장착한 전자동 세탁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무렵의 일이었다. 그 세탁기들은 모터의 회전 속도를 통해 빨래 양을 감지하고, 압력 센서로 물의 양을 알아내며, 물의 투과도를 통해 헹굼의 정도를 파악하는 식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전자동 세탁기는 세탁물의 상태를 파악하는 센서뿐 아니라, 센서를 통해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적절한 급수, 세탁, 헹굼, 탈수가 이루어지도록 프로그램된 마이크로컴퓨터를 장착하고 있었다(“Increasing Use of Sensors,” 1986).

1980년대 후반에도 이러한 전자동 세탁기가 생산되어 인기를 끌었다. 1988년 2월 3일 자 <조선일보>는 관련 기사(“Home Appliance,” 1988)를 통해 대우전자 소비자 상담실이 1986년과 1987년에 가전제품을 구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1986년에 반자동 세탁기를 구입한 비율은 46%였고, 전자동 세탁기를 구입한 비율은 39%였다. 그런데 1987년에는 반자동 세탁기를 구입한 비율이 44.5%로 줄고, 전자동 세탁기를 구입한 비율은 42%로 늘었다. 무엇보다 향후 구입 예정인 세탁기 유형에 대한 응답은 반자동이 20%인데 반해 전자동이 78.2%로 월등히 높았다. 이는 당시에 전자동 세탁기에 대한 선호와 그것으로의 소비 이행이 뚜렷한 현상이었음을 보여준다.

1980년대 후반의 세탁기 제조사들은 그러한 소비자들의 선호 현상에 맞춰 전자동 세탁기 생산에 몰두하였다. 그런데 전자동 세탁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 현상은 당시 제조사들의 관련 제품 생산 움직임을 추동한 원인이 아니라, 어쩌면 그 결과였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1980년대 중반 무렵에 이미 제조사들은 전자동 세탁기를 생산하고 있었고, 그것에 대한 광고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기에 따라 1980년대 후반 전자동 세탁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 현상은 제조사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소비자들의 반응이 없었다면 그런 움직임은 강하게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둘 중 어느 하나가 절대적인 원인이거나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소비자들의 선호와 제조사의 생산 움직임은 서로를 자극하며 1980년대 후반의 전자동 세탁기 현상을 견인했다고 이해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전자동’을 매개로 한 세탁기 개발과 소비 움직임은 1990년에 접어들어서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런데 그해 말에 이르러 그런 움직임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변화는 ‘퍼지이론’을 매개로 시작되었다.

<주간동아>의 기사(“His wife's beauty,” 2021)에 따르면, 1965년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수학자이자 UC버클리대학의 교수였던 자데(Lotfi A. Zadeh)는 자신의 아내가 예쁘다는 걸 수학적으로 나타낼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 중에 퍼지이론을 만들어내었다. ‘흐릿한’, ‘애매한’이라는 뜻의 ‘퍼지(fuzzy)’를 이름으로 사용한 것은 이 이론이 수학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것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자데는 퍼지 집합과 퍼지 함수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 주위의 애매한 것들을 수학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여기서 퍼지 집합이란 퍼지 원소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가령 ‘젊다’라는 것을 수학적 언어로 나타내야 한다고 했을 때, 몇 살이 젊은 것이고 몇 살은 아닌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정도에 상관없이 ‘젊다’라는 범위에 조금이라도 속할 수 있는 나이라면 모두 퍼지 집합의 원소일 수 있다. 그리고 소속 함수는 퍼지 집합에 속한 각 원소가 얼마나 젊은지 그 정도를 나타낸 것인데, 예를 들어 18세 고등학생의 경우는 젊지 않다고 할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소속 함수가 1이 되는 것이다. 반면, 40세의 경우는 젊지 않은 나이라고 할 사람이 있을 것이기에 소속 함수의 수치는 내려간다. 구체적으로 40세를 젊지 않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10명 중 2명이라면, 다시 말해 40세가 젊은 나이라고 보는 사람이 10명 중 8명이라 한다면, 40세의 소속 함수는 0.8이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퍼지이론은 애매한 상태를 수학적 언어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퍼지이론은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0과 1이라는 이진법의 논리로 작동하는 모 아니면 도인 세계에서 애매하고 모호한 것들은 다루기 어려웠는데, 자데의 퍼지이론이 수학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열면서 컴퓨터를 통해서 그러한 것들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이론을 만들 당시 자데는 UC버클리대학교의 교수였다. 따라서 퍼지이론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전제품에 적용하여 일상화한 것은 일본인들이었다. 1989년 마쓰시타가 세탁기, 진공청소기 등에 이 이론을 적용해 제품을 개발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1990년에 접어들어 일본에서는 퍼지이론을 적용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본에서 퍼지 제품은 인기가 높아 퍼지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으면 팔리지 않을 정도였다.

1990년 6월에 <조선일보>(“Fuzzy Theory Becomes Popular,” 1990)는 일본에 불고 있는 퍼지이론을 적용한 가전제품의 인기를 다루었다. 기사는 먼저 “최신 고급 전자제품의 상징은 제품에 붙어 있는 무수한 스위치”인데, 그 스위치들 때문에 오히려 사용하는 데 불편함을 겪게 되는 역설에 관해 언급했다. 그러고 나서 “스위치들의 상당 부분을 컴퓨터에 의해 조종되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스위치’ 하나로 간략화”한 일본 가전제품의 새로운 움직임을 소개했다. 물론 이것은 퍼지이론을 적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기사는 그 이론을 적용한 세탁기를 구체적 사례로 제시했다. 내용은 “세탁기 속에 장치된 센서가 이리저리 검토해서 지시를 내려”주기 때문에 “기름 범벅이 된 옷, 목깃이 시커멓게 된 와이셔츠를 세탁기 속에 집어넣”어도 “수량 조절, 세제량 조절, 시간 조절 스위치를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산업화 시기는 물론이고, 1980년대까지도 일본 기업들은 한국 기업들의 모델이었다. 한국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의 움직임을 늘 주시하고 참고해 왔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일본 가전제품의 이슈는 바로 한국으로 이전되었다. 1990년 전후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연구에 토대를 둔 제품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한 것이었다. 퍼지이론을 적용한 제품 개발의 움직임도 한국에 전해졌다. 한국에서 퍼지 이론을 적용한 제품은 1990년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당시 세탁기 제품 개발에 1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마쓰시타 세탁기가 일본에 등장할 무렵인 1989년에 한국 기업들도 관련 제품 개발에 착수했음을 의미한다.

1990년 9월 24일 자 <조선일보>는 “가전제품에 ‘퍼지이론’ 전자동 세탁기 첫 시판”이라는 제목의 기사(“Fuzzy theory applied,” 1990)를 통해 대우전자가 “국내 가전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퍼지이론을 적용한 6.6kg급 초대형 전자동 세탁기를 개발”해 10월부터 판매에 들어간다고 전했다. 기사는 “센서와 마이컴을 응용한 퍼지 기술을 채용, 세탁물의 중량에 따라 세제의 양과 수위, 세탁 시간, 수류 선택, 헹굼 횟수, 탈수 시간 등을 자동적으로 조절”하는 게 이 세탁기의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이러한 특징은 <조선일보>가 1990년 6월에 일본에 불고 있는 퍼지 제품의 인기를 다룬 기사(“Fuzzy Theory Becomes Popular,” 1990)에서 퍼지이론을 적용한 일본 세탁기의 특징이라고 언급한 내용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조선일보>가 1990년 10월부터 판매에 들어간다고 했던 대우전자의 세탁기는 ‘대우 세탁기 예예’ RWF-6688AT 모델이었다. 해당 제품을 출시하면서 대우전자는 ‘인간 센서’를 강조하는 광고(Figure 1)를 내보냈다. 흥미로운 점은 처음 출시할 당시에는 세탁기 전면 왼쪽 윗부분에 ‘예예’라는 제품 이름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두 달 후에는 그것을 떼고 세탁기 전면 중앙에 “FUZZY 인공지능”이라고 새겨진 새로운 스티커를 붙여놓았다는 사실이다. 1990년 12월 17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해당 제품 광고(Figure 2)에서 변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광고에서는 2달 전 광고(Figure 1)에서와 달리 ‘인공지능’을 강조하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2달 전 광고에는 없었던 퍼지이론의 정의와 “퍼지 타입 초정밀 센서 채택”과 같은 문구도 추가되었다. 이는 1990년 말부터 인공지능과 퍼지이론을 매개로 세탁기 제조사 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Figure 1 Advertisement for Daewoo Washing Machine Ye Ye RWF-6688AT model (Daewoo Electronics, 1990a)

Figure 2 Advertisement for Daewoo Washing Machine Ye Ye RWF-6688AT model (Daewoo Electronics, 1990b)

대우전자가 퍼지이론을 적용한 세탁기를 국내 가전 업계 최초로 출시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선일보> 기사(“Fuzzy theory applied,” 1990)가 나온 바로 다음 날(1990년 9월 25일)에 <한겨레>는 금성사가 “국내 최초로 퍼지이론을 적용, 세탁기가 스스로 세탁물의 종류와 양을 감지하여 물의 투입에서부터 탈수까지 전자동으로 처리하는 ‘인공지능 OK 센서 세탁기’를 개발”했고, 25일부터 판매에 들어간다는 내용을 기사(“Commercialization of Artificial Intelligence,” 1990)로 내보냈다. 최초의 지위를 놓고 벌인 대우전자와 금성사의 신경전은 당시 관련 제품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두 제조사 간의 경쟁이 치열했음을 보여준다. <한겨레> 기사에 등장한 금성사의 제품은 ‘인공지능 금성 OK 세탁기’ WF-1410Y 모델이었다. 1990년 9월 29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제품 광고(Figure 3)를 보면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를 화면 상단에 꽉 차게 배치한 후, 그 아래에 “스스로 판단하고 알아서 세탁한다”라는 설명을 달아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금성사는 ‘인공지능’을 전면에 내세우며 관련 광고를 공격적으로 쏟아냈다.2) 이것은 기존의 ‘전자동’ 세탁기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세탁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Figure 3 Advertisement for GoldStar Artificial Intelligence OK Washing Machine WF-1410Y model (GoldStar, 1990)

당시 대우전자와 금성사만 그런 제품을 출시했던 것은 아니다. 1990년 10월에 삼성전자도 관련 제품인 ‘삼성 히트 잠잠 세탁기’ SEW-62Q1 모델을 출시하며 ‘인공지능’을 전면에 내세웠다. 1990년 10월 20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해당 제품의 광고(Figure 4)에서 알 수 있듯이 삼성전자는 인공지능이 “세탁물의 양과 종류를 정확히 감지하여 수위, 세제량, 세탁 시간 등을 가장 알맞게 알아서 조절해” 준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앞서 ‘인간 센서’를 강조했던 대우전자 세탁기 광고(Figure 1)나 ‘인공지능’을 강조했던 금성사의 세탁기 광고(Figure 3)에서 볼 수 있었던 내용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삼성전자는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관련 제품의 출시가 조금 늦은 편이었다. 따라서 차별화를 위해서는 뭔가 새로운 내용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삼성전자가 광고에서 인공지능을 강조하면서도 저소음을 강조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퍼지이론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종래에는 기계로 구분할 수 없었던 까다롭고 예민한 인간의 감각 수준까지 기계 능력을 발휘케 하는 최신 인공지능 기술”이라고 말이다.


Figure 4 Advertisement for Samsung's Heat Zamzam Washing Machine SEW-62Q1 model (Samsung Electronics, 1990b)

하지만 광고를 통한 차별화 시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삼성전자는 제품을 출시하면서 금성사와 대우전자의 제품이 퍼지 제품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한겨레>에 실린 기사(“Fuzzy controversy sparks,” 1990)에 따르면, “퍼지 제품이란 퍼지 전용 집적회로가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금성, 대우가 내놓은 제품은 그렇지 않고 기존의 마이컴 센서를 좀 더 발전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펴면서 삼성전자는 대우전자와 금성사가 낸 보도자료와 광고가 과대 선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금성사는 “퍼지 전용 반도체 칩을 수입 부착했고, 작동방식과 관련된 독자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 사용”했다고 반박했다.

당시 삼성전자가 퍼지 논쟁을 시작한 배경에는 금성사의 ‘인공지능 금성 OK 세탁기’ WF-1410Y 모델이 빠르게 시장을 장악해 가는 데 대한 위기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9월 말에 출시한 ‘인공지능 금성 OK 세탁기’는 출시 1개월 만에 2만여 대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것은 금성사 “창원공장의 퍼지 전용 생산 시설을 풀(full) 가동해 하루 평균 7백~8백 대를 생산해도 주문량을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의 인기였다(“Fuzzy Product Competition,” 1990). ‘인공지능 금성 OK 세탁기’의 판매 호조는 계속 이어졌다. 1990년 12월 2일 자 <매일경제>의 “달아오른 가전사 퍼지 전쟁”이라는 기사(“Home Appliance Manufacturers' Fuzzy,” 1990)에 따르면, 금성사의 ‘인공지능 금성 OK 세탁기’는 출시 2개월이 지난 시점에 5만 3천 대가 팔렸는데, 이는 “보통 세탁기 히트 모델의 월평균 판매 실적이 1만 대 수준인 점”을 고려할 때 엄청난 판매 실적이었다.

금성사의 ‘인공지능 금성 OK 세탁기’뿐 아니라 논쟁을 일으킨 삼성전자의 ‘삼성 히트 잠잠 세탁기’도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매일경제>의 기사(“What Home Appliances,” 1990)는 삼성전자의 ‘삼성 히트 잠잠 세탁기’ SEW-62Q1 모델에 대해 “이 회사의 단일 세탁기 모델로는 최대 판매 실적을 기록한 히트 상품”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이러한 인공지능 세탁기의 인기는 퍼지 회로를 내장해 기능이 좋아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런데도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이 시기 국내 가전제품 제조사들은 소비자의 요구와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제품 개발 체제를 구축해 나가고 있었는데, 이 역시 인기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1991년 3월 27일 자 <한겨레>의 기사(“Consumer Opinions,” 1991)에 따르면 금성사는 “퍼지 세탁기를 개발할 때 30~40명의 주부 모니터 요원을 활용, 노련한 주부들의 손으로 빨래한 것 중 가장 좋은 상태를 설계에 반영”하였다. 그리고 당시 금성사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와 대우전자도 퍼지이론 적용을 위한 연구팀을 두고 있었다. 그렇게 별도의 조직을 두었던 것은 당시에는 “퍼지이론을 적용, 시판에 나선 제품이 세탁기 1개 품목에 불과했지만 앞으로 모든 가전제품에 적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Home Appliance Manufacturers’ Fuzzy,” 1990).

1990년 후반기부터 시작된 퍼지이론을 적용한 인공지능 세탁기 붐은 1991년에도 이어졌다. 그런데 1991년 8월 대우전자가 ‘대우 세탁기 파워’ DWF-6685AT 모델을 출시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퍼지’나 ‘인공지능’이 아닌 ‘세탁방식’이 새로운 화두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3. 한국형 세탁기 현상
3. 1. 공기 방울 세탁기

공기 방울 세탁기는 “물과 세제만을 사용하던 기존 세탁기와는 달리 세탁기 내부에서 공기 방울을 발생시켜 세탁 효과를 높이도록 설계”한 제품이었다(“World's first air bubble,” 1991). 1991년 9월 6일 자 <동아일보>는 공기 방울 세탁기의 특징과 원리를 자세하게 소개했다. 기사(“World's first air bubble washing machine” 1991)에 따르면 공기 방울 세탁기는 “세탁기 안 물을 돌리는 와류장치(프로펠러) 바닥에 1백여 개의 노즐(직경 3mm)을 부착, 공기를 쏘아내 30여만 개의 기포를 발생시킴으로써 세제가 쉽게 풀리도록 하고, 공기 방울의 운동을 통해 때를 빼내”도록 만든 제품이었다.

1991년 9월 3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광고(Figure 5)를 보면, 제품의 전면과 모서리 부분이 곡선으로 처리되어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를 풍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제품의 외관은 1990년 금성사의 ‘인공지능 금성 OK 세탁기’ WF-1410Y 모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이후, 1990년대 초반 세탁기들의 보편적인 형태적 특징으로 자리했다.


Figure 5 Advertisement for Daewoo Washing Machine Power DWF-6685AT model (Daewoo Electronics, 1991)

공기 방울 세탁기 광고(Figure 5)는 “공기 방울로 세탁한다”라는 문구를 표제로 내세우고 있다. 제품의 배경도 공기 방울이 생성되는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광고 하단을 보면 “세계 최초 공기 방울 세탁방식”이라는 문구가 세탁기 이름을 수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광고는 공기 방울이 이 세탁기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출시 당시 공기 방울 세탁기의 이름은 ‘대우 세탁기 파워’였다. 그런데 이후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대우 세탁기 파워’라는 이름도 ‘대우 공기 방울 세탁기 파워’로 변경되었다. 광고를 보면 세탁기 오른쪽 옆에 “에어로 퍼지”라는 표현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제품이 등장한 1991년 8월만 해도 세탁기 시장의 주된 화두가 ‘퍼지’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광고의 또 다른 특이점으로는 오른쪽 아래에 “국내 최초의 본격 드라마 CM 신대우 가족” TV 방영 시간표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대우 가족’은 신대우(유인촌 역)의 처남(박상원 역)이 진정한 사랑을 이루는 과정을 담은 멜로드라마 형식의 광고였다. 이 광고는 신대우 씨 가족의 생활 속에 대우전자와 대우자동차가 생산한 제품들을 배치함으로써 시청자가 광고를 보는 과정에 해당 제품과 그것의 사용 모습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신대우 가족’은 일반적인 TV 광고와 달랐다. 그것은 제품을 직접적으로 홍보하는 광고라기보다는 기업 이미지를 제고(提高)하기 위한 광고에 가까웠다. 신달자 극본, 이장호 연출로 제작된 ‘신대우 가족’ 1탄은 1991년 8월 31일 ‘프롤로그’ 편을 시작으로 1992년 3월 6일 ‘결혼식’ 편에 이르기까지 총 13편이 제작 방송되었다(“Korea's first drama CF,” 1992). ‘신대우 가족’ 1탄 상영이 종료된 이후, 대우전자는 ‘신대우 가족’ 2탄 ‘공기 방울 이야기’ 5편을 추가로 제작해 1992년 5월 29일부터 9월 11일까지 방영하였다. ‘신대우 가족’ 2탄은 대우전자의 공기 방울 세탁기를 소재로, 공기 방울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 개발로 연결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엮어 만들었다(“Creating dramatic commercials,” 1992). ‘신대우 가족’ 2탄을 제작하면서 대우전자는 당시 인기 작가였던 김수현을 섭외하려고 했으나, 경쟁사인 삼성전자 광고 담당 자문위원이어서 성사되지는 않았다. 대신 1990년 MBC 드라마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극본을 쓴 주찬옥 작가가 대본을 맡아서 썼다. 이 시리즈 광고에서 유인촌이 연기한 신대우는 개발 당시 대우전자 수석연구원 임무생이 그랬던 것처럼 수족관에서 뿜어 오르는 기포를 보면서 ‘공기 방울 세탁기’에 대한 영감을 얻는 인물로 표현되었다(“The Story,” 1992).

공기 방울 세탁기가 출시되고 1년이 지난 1992년 8월 23일에 <동아일보>는 1980년대 중반 ‘대우 봉 세탁기’로 “가전 3사 중 시장점유율이 한때 20%까지 올랐던 대우는 그 후 별다른 히트작을 내놓지 못해 작년(1991년) 한때 점유율이 10%까지 떨어졌으나 공기 방울 세탁기의 성공에 힘입어 다시 시장점유율을 거의 20% 정도까지” 끌어 올렸다는 내용의 기사(“Captured 20%,” 1992)를 내보냈다. 1992년 12월 14일 자 <조선일보>의 기사(“Idea Products Don't Know,” 1992)도 1991년 8월 등장해 인기를 얻은 대우전자 공기 방울 세탁기가 1992년에도 히트상품의 반열에 올라 2년째 기염을 토했다고 썼다. 구체적으로 1992년 “10월까지 31만 대를 팔면서 시장점유율을 27%로 높여 가전 부문을 되살리려는 대우그룹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사들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대우전자는 공기 방울 세탁기를 통해 잃었던 시장 지배력을 회복했다. 그것은 곧 국내 시장에서 다른 제조사들의 상대적 지배력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공기 방울 세탁기가 등장해 세간의 관심을 받으며 인기를 끌자, 공기 방울의 세탁 효과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선일보>의 기사(“Industry and Academia,” 1992)에 따르면, 1992년 4월 18일에 열린 한국의류학회 학술발표회에서 연구자 김성연과 박선경은 “기포가 세탁기의 세척 효과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세탁기의 기포는 옷감 손상을 막아주나 세탁 효과는 떨어뜨린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공기 방울 세탁기 개발을 총괄했던 임무생 대우전자 가전연구소 소장은 김성연과 박선경의 연구가 “거품과 기포를 혼돈”했고, “기포의 물리적 화학적 작용을 무시”했다고 반박했다. 더 나아가 그는 김성연과 박선경의 연구가 “경쟁 가전사인 S사의 연구비 지원에 의한 것인 만큼 의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두 연구자는 “거품과 기포는 세탁액의 세제 농도를 떨어뜨리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라고 반박했다. 연구비 지원에 관해서도 “연구비 지원이 학술 연구를 왜곡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공기 방울의 세탁 효과에 대한 논쟁은 공기 방울 세탁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관련해 <동아일보>의 기사(“Captured 20%,” 1992)는 “논쟁이 가열돼 세간의 화제로 떠오르면서 공기 방울 세탁기의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계속 높아져 이 분야 최대의 히트상품”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공기 방울 세탁기가 인기를 끌고 있던 1992년 8월에 삼성전자는 ‘삶아 빠는 세탁기’로 알려진 ‘삼성 히트 세탁기’ SEW-7588 모델을 출시했다. 이 모델을 출시하며 삼성전자는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그러자 대우전자도 그에 대응하는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1992년 8월 13일 <조선일보>에 실린 ‘대우 공기 방울 세탁기 파워’ DWF-6650 모델 광고(Figure 6)가 그런 광고였다. 이 광고에서 대우전자는 “빨래는 이제 삶을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걸었다. 물론 이 슬로건은 삼성전자의 삶는 세탁기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삼성전자의 삶는 세탁기가 등장하기 전인 1992년 1월, ‘대우 공기 방울 세탁기 파워’ DWF-6650 모델의 광고는 “공기 방울 세탁기 왜 장안의 화제인가?”라는 표제를 내걸었다. 내용도 공기 방울로 세탁하면 애벌빨래가 필요 없고, 옷감 손상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삶는 세탁기가 등장한 직후에 빨래는 삶을 필요가 없다는 내용의 광고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대우전자 역시 삼성전자의 삶는 세탁기를 경쟁제품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해 속에서 대우전자는 “삶지 못하는 순모, 실크, 색깔 있는 옷들도 열작용 없이 공기 방울의 충격 에너지로 세탁”해 준다거나, 표준코스 세탁을 한 번 하는데 12원 정도의 전기 사용료밖에 들지 않아 경제적이라는 주장을 폈다. 심지어 광고의 화면 아랫부분에 “에너지 절약, 더 밝은 경제”라는 표어까지 달아 놓았다. 이는 삼성전자의 삶는 세탁기가 물을 끓여 세탁하기 때문에 전기 소모가 크다는 약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Figure 6 Advertisement for Daewoo Air Bubble Washing Machine Power DWF-6650 model (Daewoo Electronics, 1992)

대우전자가 삼성전자의 삶는 세탁기를 의식하며 견제에 나섰던 것은 1992년 당시 가전제품 영역에 한국형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기 방울 세탁기가 등장하고 채 2달이 안 된 시점에 <동아일보>는 “가전제품 한국형이 쓰기 편하다”라는 제목의 기사(“Korean-style appliances,” 1991)에서 “대우전자는 방망이로 빨래를 두드리는 효과를 내주며 세제를 덜 써도 되는 공기 방울 세탁기를 내놓아”라고 공기 방울 세탁기를 한국형 제품의 맥락에 배치하여 다루었다. 이는 가전 영역에 불고 있던 한국형 제품 현상을 기사화하는 과정에 당시 주목받고 있던 공기 방울 세탁기를 일부러 포함해 다룬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출시 초기만 하더라도 공기 방울 세탁기는 한국형의 맥락에서 이야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1년 9월 6일의 인터뷰(“World's first air bubble washing machine” 1991)에서 개발자인 임무생은 한국형을 떠올릴 만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단지 어항의 기포 발생 장치를 보고 착안했다는 점을 강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삶는 세탁기가 출시될 즈음 인터뷰에서는 전통적인 빨래 방식과 관련을 맺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1992년 8월 26일 자 <매일경제>의 인터뷰 기사(“Inspired by Mother’s Laundry,” 1992)에서 임무생은 “빨래터의 방망이질과 어항의 기포 발생기, 삶는 빨래의 수류 작용 등이 공기 방울 세탁기에 원용됐다”라고 밝혔다. 또한 “조상 전래의 습관적인 행동들이 지극히 과학적이라는 믿음으로 단순한 행동도 놓치지 않고 곰곰이 생각한 것이 착안의 비결”이라고도 말했다. 그의 발언 내용이 이전과 달라진 것은 냉장고, 전자레인지, 진공청소기 등의 제품 영역에서 한국형의 유행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던 당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경쟁사의 삶는 세탁기의 등장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이 한국형 세탁기로 이동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우려였을 뿐 아니라 대우전자의 우려이기도 했다. 이듬해인 1993년에 대우전자가 빨랫방망이를 등장시키면서 “공기 방울 세탁은 빨랫방망이로 찌든 빨래를 최대 168번 두들겨 빠는 효과를 냅니다”라고 광고했던 것은 당시의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Daewoo Electronics, 1993). 이 일련의 흐름은 공기 방울 세탁기가 어떻게 점차 한국형 세탁기의 맥락에 자리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3. 2. 삶아 빠는 세탁기

‘한국형 세탁기’라는 표현은 1990년에 처음 등장했다. 1990년 11월 4일 자 <매일경제>를 보면 당시 업소용 세탁기를 생산하던 한국기계공업사가 자사의 세탁기를 ‘한국형 세탁기’로 광고(Figure 7)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광고의 화면 중앙에 제품 이미지를 크게 배치하고, 그 위에 “한국형 전자동 세탁·탈수기”라는 제품명을 써 놓았다.


Figure 7 Advertisement for a fully automatic Korean-style Washing Machine and spin-dryer (Korea Machinery Industries, 1990)

이 세탁기가 한국형 세탁기라는 이름을 달게 된 것은 무엇보다 한국형 가전제품이 유행하고 있던 당시 상황과 관계가 있다. 1980년대 말부터 가전 3사는 냉장고나 전자레인지 영역에서 한국형을 매개로 치열한 개발과 판매전을 벌였다. 당시 제조사들이 한국형을 매개로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는 수입자유화와 유통시장 개방에 따른 위기감 때문이었다. 1991년 9월 15일 자 <한겨레>의 “가전 업계 ‘한국형’ 제품 개발 열기”라는 제목의 기사(“Home Appliance Industry,” 1991)는 당시 기업들이 왜 한국형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는지에 대해 “외국 제품에 의한 시장 잠식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생활방식 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 기능 면에서 차별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쓰고 있다.

위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형 제품이란 “한국인의 생활방식에 맞는 제품”을 뜻한다. 여기서 생활방식이란 의식주 전 영역에 걸쳐 발현하는 고유한 삶의 방식, 혹은 문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형 제품은 한국인의 생활문화가 반영된, 혹은 한국인의 고유한 생활방식에서 파생된 제품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1991년 9월 9일 자 <조선일보>의 기사 “한국형 가전품 개발 본격화”(“Korean-style Home Appliance,” 1991)에서도 한국형 제품을 “우리 생활방식과 가옥구조 등에 맞는 제품”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한국 고유의 생활문화라는 맥락에서 한국형 제품이 정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1980년대 한국형 냉장고의 개발이 왜 김치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김치를 빼고 한국형 냉장고는 이야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1990년대 초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뚝배기와 같은 한국 음식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정의되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한국형 세탁기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세탁기를 어떤 생활방식이나 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한국형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일까? 한국형의 맥락에서 한국기계공업사의 ‘한국형 전자동 세탁·탈수기’ 광고(Figure 7)를 살펴보면, 사용처에 관한 설명 바로 아랫부분에 “삶는 빨래는 한국형 세탁기로”라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문구는 해당 제품이 한국형인 이유가 빨래를 삶는다는 점 때문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1991년 9월 15일 자 <한겨레> 기사(“Home Appliance Industry,” 1991) “가전 업계 ‘한국형’ 제품 개발 열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세탁물을 삶아주는 기능을 갖춘 세탁기 등 한국형 제품”이라는 표현은 한국형 세탁기가 세탁물을 삶는 기능에 의해 정의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1992년에 삼성전자가 출시한 7.5kg 용량의 ‘삼성 히트 세탁기’ SEW-7588 모델은 전형적인 한국형 세탁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제품은 부드러운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당시 세탁기들과 달리 전체적으로 직선적이고 각진 외형을 취하였다. 제품은 1992년 6월 27일 자 <동아일보>의 새상품 코너에 처음 소개되었는데, 기사(“Boil and wash laundry.” 1992)에 따르면, “히터 장치와 스테인리스 세탁조가 장착돼 섭씨 95도 이상의 물을 공급, 삶아 빠는 방식의 세탁이 가능”했다. 1992년 8월 5일 자 <동아일보>에 해당 제품의 광고(Figure 8)가 등장했는데, 광고는 세탁기를 크게 확대해 화면에 꽉 채워 제시하였다. 화면 하단에는 장작불에 빨래를 삶는 도상을 세탁기 이미지에 겹쳐 배치함으로써 광고하는 제품이 세탁물을 삶아서 빠는 세탁기라는 점을 명확하게 나타냈다. 장작불에 빨래를 삶는 이미지 위에는 “삼성 삶는 세탁기 탄생”이라는 문구를 배치했다. 이 문구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삶는’을 가마솥 모양의 빨간 아이콘 안에 흰색 글자로 표현해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물론 이 역시 해당 제품이 삶아 빠는 세탁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었다.


Figure 8 Advertisement for Samsung Heat Washing Machine SEW-7588 model (Samsung Electronics, 1992)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삶는 효과가 아닙니다. 진짜 삶아서 빨아드립니다”라는 표제였다. 무엇보다 “진짜 삶아서 빨아드립니다”라는 문장은 가장 큰 글자로 표현되어 있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그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왜 이 점을 그렇게 강조했던 것일까? 내용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삼성전자가 뭔가를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당시 삼성전자는 무엇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일까?

삼성전자가 의식하고 있던 내용은 다음 두 가지 맥락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 우선 통시적 맥락에서 이 제품이 나오기 8년 전(1984년)으로 거슬러 가보면, 삼성전자가 4.5kg 용량의 ‘점보 크리스탈 세탁기’ SEW-450F 모델을 출시하면서 “삶아 빠는 세탁 효과”를 강조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광고(Samsung Electronics, 1984)를 통해 “국내 최초 삶아 빠는 효과”를 내세우면서 “삼성 크리스탈 세탁기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뜨거운 물도 쓸 수 있어 얼룩이나 때가 많은 세탁물도 깨끗하게 빨아줍니다”라고 주장했었다. 그러한 주장은 1985년에도 계속 이어졌다. 이에 금성사(GoldStar, 1985)도 1985년에 4.0kg 용량의 ‘금성 레이디 세탁기’ WP-400A 모델을 출시하며 65℃의 뜨거운 물을 사용할 수 있어서 삶아 빠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광고했다. 이후 ‘삶아 빠는 효과’는 80년대 말까지 세탁기의 기본 기능처럼 이야기되었다. 1992년에 삼성전자가 “진짜 삶아서 빨아드립니다”라는 슬로건을 사용했던 것은 그러한 내용을 알고 있을 소비자들을 의식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과거에 삶아 빠는 효과를 강조한 세탁기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세탁기의 보편 기능으로 자리하고 있는 현실을 의식했기 때문에 삶아 빠는 효과를 내는 세탁기가 아닌 진짜 삶아 빠는 세탁기라고 강조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공시적 맥락에서 볼 때 삼성전자의 ‘삶아 빠는 세탁기’는 1991년 8월에 대우전자가 출시해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공기 방울 세탁기를 의식했다고 할 수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당시 세탁기 개발에 1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삼성전자의 삶는 세탁기가 출시된 시기가 공기 방울 세탁기가 출시되고 1년 후라는 사실은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삶는 세탁기는 공기 방울 세탁기에 대응하기 위한 경쟁모델의 성격이 컸다. 이에 대해 <경향신문>은 기사(“Developing new home appliances,” 1992)를 통해 “대우가 공기 방울 세탁기로 시장 점유율을 급속히 높이자 금성은 세탁력이 강한 리듬 세탁기를 선보였고 삼성은 한국 최초의 삶는 세탁기로 시장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앞서도 보았지만 1991년 중반 무렵까지만 해도 세탁기의 중심 화두는 ‘인공지능’과 ‘퍼지’였다. 1991년 휴머노이드 로봇의 이미지를 등장시키며 “광센서 인공지능”이 “때 묻은 정도와 때의 종류까지 감지하여 세탁 시간, 헹굼 횟수까지 스스로 판단한다”라는 ‘삼성 히트 잠잠 세탁기’ SEW-62F1 모델 광고(Figure 9)의 문구나 인공지능이 “때 묻은 정도와 종류는 물론 세제의 종류까지도 섬세하게 판단하여 깔끔하게 세탁한다”라는 문구를 등장시킨 ‘금성 OK 세탁기’ WF-1411Y 모델 광고(GoldStar, 1991)는 당시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인공지능과 퍼지가 중심 화두였던 시기에 경쟁은 주로 금성사와 삼성전자 사이에 벌어졌고, 그에 따라 대우전자는 국내 세탁기 시장에서 열세에 놓여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시 대우전자는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필요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기 방울 세탁기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의 역할을 했다. 공기 방울 세탁기의 등장과 그에 대한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인공지능’과 ‘퍼지’가 중심이었던 세탁기 개발의 화두는 ‘세탁방식’으로 빠르게 이동하였다. 삼성전자의 삶는 세탁기는 공기 방울 세탁기가 펼쳐놓은 그러한 세계, 다시 말해 세탁방식이 세탁기의 중심 화두로 자리하는 세계에서 출현한 제품이었다.


Figure 9 Advertisement for Samsung’s Heat Zamzam Washing Machine SEW-62F1 model (Samsung Electronics, 1991)

그런데 삼성전자의 삶는 세탁기는 공기 방울 세탁기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물을 끓이는 데 시간이 드는 만큼 세탁 시간이 길고 전기 소모가 많으며 가격 또한 히터 기능이 추가되면서 일반제품보다 비싼” 결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Captured 20%,” 1992). 그 결과 출시한 지 10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인 1993년 중반에 삼성전자는 파도 물살을 내세운 ‘삼성 퍼펙트 세탁기’로 주력 모델을 바꿨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삶는 세탁기는 한국형 가전제품의 열기가 뜨거웠던 1992년에 세탁기가 어떻게 그 흐름 속에 존재할 수 있는지를 한국 고유의 세탁문화에 토대를 두고 탐색한 결과였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제품이었다.

4. 예약기능이 있는 크고 조용한 세탁기
4. 1. 맞벌이 부부의 증가와 대용량 세탁기

한국 세탁기의 역사를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탁기의 크기가 계속해서 커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세탁 용량이 증가하는 속도와 그것을 추동하는 강도가 시기마다 항상 일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시기는 다른 때보다 그 강도가 약했고 속도도 느렸지만, 어떤 시기는 다른 시기보다 그 강도도 강했고 그에 따라 속도도 더 빨랐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가 바로 그러한 시기 중 하나였다. 세탁 용량의 급속한 확대는 이 시기 세탁기의 주목할 만한 특징이었다. 물론 1980년대 말에도 이전 시대의 연장선상에서 4kg이나 5kg 정도 용량의 비교적 작은 세탁기들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시기는 물론이고 1990년대 초에 세탁기 용량은 6kg 이상이 주를 이루었다. 1991년에 들어서는 7kg 용량의 세탁기도 다수 등장했다. 심지어 1991년 6월에 출시된 ‘대우 세탁기 예예’ RWF-8030 모델은 8kg 용량이었고, 1991년 12월에 출시된 ‘삼성 히트 세탁기 휴먼퍼지’ SEW-8520 모델은 8.5kg 용량이었다. 이 시기 가전 3사 중 최대 크기의 세탁기는 1992년 3월에 금성사가 출시한 8.8kg 용량의 ‘금성 리듬 세탁기 여유만만’ WF-1810K1 모델이었다.

세탁기 역사에서 용량이 큰 세탁기에 대한 선호 현상이 나타나거나 실제로 세탁기 용량이 커질 때는 그런 움직임을 추동하는 이유나 배경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80년 전후에도 큰 세탁기에 대한 선호 현상이 있었는데, 당시 그것은 1979년에 있었던 2차 오일쇼크 영향이었다. 1983년 말에도 그런 현상이 나타났었는데, 당시에는 교복 자율화로 인한 청소년들의 의류 소비량 증가가 배경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1980년대 후반 들어 세탁기 용량이 빠르게 커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시기 세탁기 용량이 커진 것은 맞벌이 부부의 증가와 관계가 있는 현상이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내와 남편이 모두 일을 했기 때문에 세탁물을 모아놓았다가 주말에 한꺼번에 세탁기를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용량이 큰 세탁기가 선호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맞벌이 부부가 증가했다는 말은 여성 취업자가 늘어났다는 것, 그리고 취업한 여성이 결혼 후에도 직업을 유지했다는 것을 뜻한다. 1989년에 발표된 한국의 사회 지표(“89 Social Index,” 1989)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중 여성 취업자의 비율은 1980년 38.2%, 1985년 39.0%, 1988년 40.1%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여성 취업자 중 기혼 여성의 비율도 1980년 72%, 1985년 74.8%. 1988년 75.6%로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수치상의 변화도 변화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표에는 나타나지 않는 내용, 즉 사회에서 여성들이 담당했던 일의 구체적인 내용과 성격의 변화였다. 오자은(Oh, 2021)에 따르면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들의 일은 “남성 가부장의 공백을 메꾸는 한시적인 경제 행위나 제도 바깥의 음성적이거나 재래적인 경제 행위”에 가까웠다. 예를 들면 단순 생산직이나 농수산업과 관련한 육체노동, 가정부와 같은 서비스업이나 소규모 장사와 관련된 일들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성취를 실현하고 증명하는 ‘일하는 여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위 전문직 여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실제로 1986년 3월 5일 자 <조선일보>가 공개한 경제기획원 통계(“Women Want,” 1986)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전문기술 및 관련직, 행정 및 관리직, 사무 및 관련직 영역에서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지게 증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사무직 여성의 증가는 교육받은 여성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해 볼 만한 사건 중 하나가 1980년 7월 30일에 발표된 일명 ‘7.30 교육 조치’였다. 이 조치로 인해 과외가 금지되고 본고사가 폐지되었으며, 졸업정원제도가 시행되었다. 졸업정원제는 대학에서 졸업정원보다 많은 학생을 선발한 후,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일정한 수를 탈락시켜 정해진 인원의 수만 졸업시키는 제도였다. 졸업정원제는 이전까지 입학만 하면 공부를 하든 안 하든 졸업할 수 있는 안이한 대학 풍토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시행되었다(“Educational Innovation,” 1980). 하지만 이 제도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학원소요 사태를 막기 위해 내놓은 통치술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되었다(Nam & Ryu, 2017). 졸업정원제는 여러 논란을 일으키다가 1986년 무렵에 폐지되었다. 그런데 이 제도는 결과적으로 대학생 수를 크게 늘려 놓았다. 1978년에 70,710명이던 4년제 대학의 모집 인원은 3년 후인 1981년에 187,050명으로 늘었고, 1982~1983학년도에 다시 16,000명이 추가로 증가했다. 이로써 매년 대학생이 10만 명씩 자연 증가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1978년 270,000명이었던 대학생 총수가 6년 만인 1984년에는 800,000명으로 거의 3배가 늘었다(“Huge Crowd,” 1983).

대학생 수가 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대생 수도 늘어났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해마다 늘어 1980년에 23.6%였던 것이 1985년에 34.1%로 증가했다. 1991년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여학생의 40.3%가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The Era of the Female,” 1992). 학력고사에서 300점 이상 고득점자 중 여학생의 비율도 1981년에 4.4%, 1982년에 10.8%, 1983년에 22%로 꾸준히 늘었다. 대학 재학생 중 여대생들의 비율도 빠르게 늘어났는데, 고려대의 경우 1981년 12.4%, 1982년 13.1%, 1983년 31.5%로 증가했고, 연세대의 경우도 1981년 19.3%, 1982년 24.8%, 1983년 31.5%로 증가하였다(“Major Disruption Expected,” 1983). 이는 가부장적인 이해 속에서 ‘여자는 시집가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1980년대 초중반을 지나면서 빠르게 변해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대학에 진학한 여학생들은 졸업 후 결혼이 아닌 취업이나 진학을 원했다. 1983년 건국대학교 여학생부가 교내 1,000명의 여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졸업 후 취직해서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싶다는 응답이 52%였고,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을 희망한다는 응답이 30%로 나타났다. 반면 결혼이라고 답한 인원은 13%에 불과했다(“Female college,” 1983). 이는 당시 여학생들의 사회진출 의지가 강했다는 사실과 교육받은 여성들의 의식이 그 이전과 같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취업한 여성들은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러한 경향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혼해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여성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다양했는데, 그중 하나가 산업계의 노동수요 증가 움직임이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찾아온 기회로 1980년대 중후반 한국 경제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수사가 유통될 정도로 상황이 좋았다. 그에 따라 기업은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필요가 여성들이 결혼 후에 직장을 그만두는 움직임을 막아 세웠다. 게다가 19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 임금이 상승하면서 조건도 향상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는 세계 체제 내에서의 한국의 역할 변화와 정보기술의 발달로 산업구조가 개편되고 있었다. 그에 따른 정보화, 그리고 “정보화에 수반되는 전문 사무 직종의 증대와 공장 자동화는 여성 취업을 증가”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체력이나 완력보다 두뇌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더욱 요청되는 직종의 증가는 남녀차이를 거의 무의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가계 차원에서 찾을 수 있는데, 당시 “각종 서비스 가격이 올라가고 집값이 엄청나게 치솟”으면서 “부부가 함께 벌지 않으면 윤택한 생활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맞벌이 부부는 증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The Time Is Coming,” 1990).

4. 2. 예약기능과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

맞벌이 부부의 증가는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와 공명하는 현상이었다. 이 시기 여성의 사회활동을 증가시킨 이유는 많지만, 일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야말로 특히 주목해 볼 만하다. 1989년 11월 24일 자 <한겨레>는 “주부 사회진출 다양화”라는 제목의 기사(“Diversification of Housewives' Entry,” 1989)에서 “요즘 주부들 사이에서는 낮에 집에서 전화 받기가 창피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너도나도 일거리를 찾아 밖으로 나가는데 자기만 능력이 없어 집안에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이는 ‘주부가 집에 있는 것 = 무능’, ‘주부가 사회활동을 하는 것 = 유능’이라는 인식의 틀이 사회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의 틀은 여성들에게 일종의 압력 장치로 작동하며 맞벌이 부부를 증가시키는 한 배경이 되었다. 동시에 직장에 다니지 않는 주부들에게도 사회활동을 찾아 나서도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집을 나와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무엇을 했을까? 이에 대해 1989년 1월 13일 자 <동아일보>(“Increasing number,” 1989)는 한 파출부의 목소리를 빌어 다음과 같이 전했다. “요즘 주부들은 남자들보다 더 바쁜 모양이에요. 지금 내가 나가는 집은 영동의 한 아파트인데 나하고 나이도 비슷한 주부가 직장이 없는데도 증권이다 동창회다 문화강좌다 해서 거의 매일 외출을 해요” 이는 당시 주부의 사회활동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이 시기 주부들이 일 때문이든 사회적 활동 때문이든 외출을 요구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세탁기 제조사들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맞춘 제품과 광고를 쏟아냈다. 그 중심에 예약기능이 있었다. 예약기능을 강조하는 세탁기는 1988년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금성사가 1988년 10월에 출시한 ‘금성 OK 세탁기’ WF-1030X 모델이 그 시작이었다. 1988년 11월 3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광고(Figure 10)에서 금성사는 자사의 세탁기가 24시간 예약 세탁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원하는 세탁 종료 시간만 맞춰놓으면 그 시간에 자동으로 빨래를 끝내 놓는 첨단의 편리 기능”이라고 예약기능을 소개했다. 광고는 “외출했다 돌아오면 보송보송”하게 빨래가 끝나 있어서 “맞벌이 가정에 더욱 안성맞춤”이라고 밝히면서 “외출이 자유로워집니다”라고 주장했다.


Figure 10 Advertisement for GoldStar OK Washing Machine WF-1030X model (GoldStar, 1988)

그런데 이 세탁기가 예약 세탁이 가능했던 것은 구조적으로 세탁기 상단에 세제를 자동으로 투입해 주는 ‘세제자동투입박스’라 불리는 별도의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세제를 담아두면 세탁할 때마다 빨래 양에 맞춰 일정 분량의 세제가 자동으로 공급되었다. 광고는 “분말 세제 자동 투입 세탁기는 금성뿐입니다!”라는 표제를 내걸었다. 그에 걸맞게 이미지 역시 세제 통에서 분말 세제가 세탁조로 투입되는 모습을 담은 것을 사용했다. 광고에서 흥미로운 것은 세제 통 오른쪽 옆에 분말 세제가 액체 세제보다 저렴하고, 깔끔하고, 한국 주부의 98% 이상이 사용하는 세제라 어디에서나 구입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부분이다. 분말 세제의 장점을 제시하고 있는 이 부분은 마치 분말 세제의 광고 문구처럼 보인다. 금성사는 왜 이러한 설명을 굳이 달아 놓았던 것일까?

금성사가 분말 세제의 장점을 ‘금성 OK 세탁기’ WF-1030X 모델 광고에서 부각했던 것은 액체 세제를 사용하는 경쟁사의 제품을 의식한 것이었다. 1988년 7월 삼성전자가 출시한 ‘삼성 히트 세탁기’ SEW-63FX 모델(Figure 11)이 바로 그 제품이었는데, 이 세탁기는 빨래 양에 따라 액체 세제를 자동으로 공급하는 세제 투입 장치를 처음으로 채택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이 제품에는 예약기능은 없었다. 따라서 일종의 과도기적 제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액체 세제를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삼성 히트 세탁기’와 달리 ‘금성 OK 세탁기’는 분말 세제를 사용하도록 제작되었다. 그래서 금성사는 ‘금성 OK 세탁기’를 광고하면서 분말 세제의 장점을 동시에 강조했던 것이다. 이러한 금성사의 공세에 맞서 1988년 10월 이후의 광고부터는 삼성전자도 “가루비누(분말 세제) 전용 투입구가 따로 있어 훨씬 편리합니다”라는 문구를 추가하였다. 물론 이것은 ‘금성 OK 세탁기’ WF-1030X 모델을 의식한 조치였다.


Figure 11 Advertisement for Samsung Heat Washing Machine SEW-63FX model (Samsung Electronics, 1988)

‘삼성 히트 세탁기’ SEW-63FX 모델은 액체 세제 투입 장치를 세탁물 투입구의 폭과 동일하게 처리하여 형태적으로 자연스러움과 일체감이 느껴지도록 디자인되었다. 그리고 조작부를 상단 우측에 배치하여 차별화를 시도했다. 제품 조작부의 이러한 배치는 1988년 8월에 대우전자가 출시한 ‘대우 세탁기 예예’ RWF-522HR 모델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삼성 히트 세탁기’ SEW-63FX 모델 광고(Figure 11)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핵가족용, 신혼부부용, 대가족용 등으로 가족 수에 따라 용도와 크기가 다른 제품들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핵가족의 증가로 다양한 가족 형태가 현실에 존재하고 있던 당시 사회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광고의 우측 아랫부분에 “세제 자동 투입 히트 세탁기 탄생”을 기념하여 사랑의 편지를 공모한다는 내용인데, 주제가 “주말 부부 또는 맞벌이 부부의 세탁으로 인한 에피소드 또는 부부애를 주제로 한 내용”이었다. 이를 통해 당시 삼성전자가 맞벌이 부부의 증가와 가족의 형태 변화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88년 10월부터 삼성전자가 해당 제품을 광고하면서 주말부부나 부부애를 연상시키는 광고를 배경 이미지로 활용했던 것도 같은 맥락의 움직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금성사는 1989년에도 예약기능을 강조하는 기조를 이어갔다. 1989년 말에 출시한 ‘금성 OK 세탁기’ WF-1360X 모델은 이 시기 예약기능을 내세운 대표적인 제품이었다. 1989년 12월 26일 자 <동아일보>에 해당 제품의 광고(Figure 12)가 등장했는데, 광고 아랫부분을 보면 “예약 세탁”이라는 문구가 ‘금성 OK 세탁기’라는 제품 이름을 수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제품의 큰 특징이 바로 예약기능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광고의 화면 중앙에는 외출에 나선 한 여성이 있다. 그녀는 화면 밖에서 광고를 보고 있는 이들을 향해 웃고 있고, 그런 그녀 뒤에서 한 남성이 미소 띤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배경이 놀이공원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그녀가 외출 중이라는 사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외출은 “빠지고 싶지 않은 모임”에 참석하는 것일 수도 있고, “쇼핑”일 수도 있다. 그녀에게 외출은 “나만의 시간, 나만의 생활”이고, “내 모습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루 중 어느 때고 끝나는 시간만 예약해 놓으면 자동으로 세탁을 끝내놓는 예약 세탁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집 밖에서도 세탁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 세탁기는 “맞벌이 가정”뿐 아니라 “활동적인 여성”에게 적합하다. 이 세탁기가 있다면 여성들은 이제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세탁기에 묶여서 집에 있을 필요가 없다. 광고는 이 세탁기가 그런 시대, 다시 말해 “무인 세탁 시대”를 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시대의 소비자는 그저 “기쁨으로 설레임으로 세탁을 예약하고 외출을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Figure 12 Advertisement for GoldStar OK Washing Machine WF-1360X model (GoldStar, 1989)

대우전자도 1989년 2월에 예약기능을 내세운 세탁기를 출시하였다. ‘대우 세탁기 예예’ RWF-661AT 모델이 그 제품이었는데, 이 세탁기는 직전에 생산했던 ‘대우 세탁기 예예’ RWF-522HR 모델처럼 조작부를 상단 우측에 배치하고 있으면서도 ‘금성 OK 세탁기’와 같은 형태의 분말 세제 자동 투입 장치를 그 제품과 같은 위치에 부착하고 있었다. 1989년에는 삼성전자도 액체 투입 장치를 버리고 대신 분말 세제 자동 투입 장치를 부착한 제품인 ‘삼성 히트 세탁기’ SEW-67FX 모델(Figure 13)을 출시하였다. 이는 삼성전자도 예약기능을 갖추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Figure 13 Advertisement for Samsung Heat Washing Machine with a Spinning Barrel SEW-67FX model (Samsung Electronics, 1990a)
4. 3. 저소음 세탁기와 두 가지 힘

1980년대 후반에 나타난 세탁기들의 특징 중 하나는 저소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1989년 말에 출시된 삼성전자의 ‘삼성 히트 세탁기’ SEW-67FX 모델이 그런 제품이었는데, 1990년 3월 20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해당 제품의 광고(Figure 13)를 보면 “저소음 자동 세탁”, “혁신적인 저소음 설계로 한밤중에 빨아도 조용하다”라는 표제로 저소음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광고 이미지도 아기가 잠잘 시간이니 조용히 하라는 몸짓을 취하고 있는 주부를 등장시키고 있다. 이후에도 삼성전자는 계속 저소음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0년 10월에 출시한 ‘삼성 히트 잠잠 세탁기’ SEW-62Q1 모델은 제품 이름에 ‘잠잠’을 집어넣어 저소음 세탁기임을 더욱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품 광고에서는 배경 이미지로 잠자고 있는 아기의 모습(Figure 4)을 등장시켰다.

198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저소음 세탁기들은 맞벌이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반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출근하기 전인 아침 시간이나 퇴근 후인 밤에 가사 일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소음이 발생하여 가족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제조사들이 저소음 세탁기 광고에 잠자고 있는 아기의 모습(Figure 4)이나 잠자고 있는 아기를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Figure 12)를 등장시켰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1990년 2월 21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대우 세탁기 예예’ RWF-662AT 모델 광고(Figure 14)가 소음이 적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면서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어 아주 편리”하다고 표현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더욱이 ‘대우 세탁기 예예’ RWF-662AT 모델 광고는 배경을 어둡게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을 떠올리도록 하였다.


Figure 14 Advertisement for Daewoo Washing Machine Ye Ye RWF-662AT model (Daewoo Electronics, 1990c)

저소음과 관련하여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주거 공간의 변화였다. 이 시기 주거 공간의 변화를 이끈 것은 아파트의 확대였다. 어수선했던 정치 상황 속에 쟁취한 대통령 직접 선거에서 보수진영은 주택 200만 호 건설을 내세우며 정권을 이어갔다. 1988년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이 발표될 당시만 해도 연간 주택 건설호수는 244,000호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계획이 본격 추진되던 1990년에는 462,000호로 늘었고, 1991년에는 750,000호라는 대규모 주택 건설이 이루어졌다. 중요한 것은 이 시기 건설된 주택 대부분이 아파트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아파트 건설이 증가한 결과 198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급등세를 보이던 아파트 가격은 1991년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Jang, 2005). 이전에도 아파트 주거 확대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아파트 주거가 국민의 보편적 주거 형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러한 주거 형태의 변화가 만들어 낸 풍경 중 하나가 소음으로 인한 불편과 갈등이었다. 1987년 “대한주택공사가 서울, 대구, 광주, 대전 등 4개 도시 21개 아파트단지 2천 8백 25가구를 대상으로 아파트단지 소음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주민의 58.9%”가 내부 소음으로 인해 “생활의 방해를 받고 있다고 대답”했다. “내부 소음의 주요 발생 요인은 위층 아이들이 뛰는 소리(40.7%) 욕조 급배수음(40.3%) 계단 복도의 발자국 소리(40.1%) 변기 배수음(39.9%) 외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26%) 순”이었는데, “내부 소음 발생 빈도는 윗집에서가 77.5%로 가장 잦고, 옆집 소리가 53.7%인 것”으로 나타났다(“Noise Levels,” 1987).

1980년대 말 저소음 세탁기의 등장은 아파트로 대표되는 공동주택으로 지배적인 주거 형태가 변화하던 당시의 움직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현상이었다. 당시 소음으로 인한 실제적인 갈등이 있는 경우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저소음 세탁기는 소비자들에게 호소력을 지닌 제품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아파트에서의 소음은 그것이 발현할 때만이 아니라 발현하지 않을 때도 존재하는 기이한 존재자이기 때문이었다.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소음의 존재를 늘 떠올리며 생활할 수밖에 없다. 소음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당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소음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리며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소음은 아파트와 아파트에서의 삶에 늘 실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세탁기 소음이 적다는 것은 큰 장점일 수 있다. 결국 저소음 세탁기의 등장과 확산에는 아파트로 대표되는 공동주택에서의 소음과 그것에 대한 우려가 하나의 이유로 자리하는 것이다.

5. 결론

본 연구는 세탁기 보급이 급증했던 1987~1992년 사이에 가전 3사가 생산한 세탁기들과 그것을 둘러싼 생산과 소비 차원의 내용을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이 시기에 어떤 세탁기들이 있었고 그 특징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그런 제품들이 출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디자인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연구 결과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1980년대 중반부터 세탁기의 흐름을 주도했던 전자동 세탁기는 1990년 말에 인공지능 세탁기들이 출현하면서 주도권을 잃었다. 퍼지이론을 적용한 인공지능 세탁기는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 등장해 인기를 끌었는데, 1990년에 접어들어 한국에서도 그러한 세탁기가 등장한 것이다. 인공지능 세탁기는 세탁물의 양에 따라 세제의 양과 물의 양, 세탁 시간, 헹굼 및 탈수 시간 등을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게 특징이었다. 가전 3사는 모두 1990년 말에 유사한 기능의 인공지능 세탁기를 생산하였다. 하지만 경쟁은 주로 금성사와 삼성전자 사이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인공지능 세탁기들은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게 특징이었다. 이러한 인공지능 세탁기는 1990년 말부터 대우전자가 공기 방울 세탁기를 출시한 1991년 말까지 약 1년간 지배종으로 자리했다.

둘째, 1991년 말에 대우전자가 생산한 공기 방울 세탁기가 큰 인기를 끌면서 세탁기의 개발 방향은 퍼지이론을 적용한 인공지능에서 세탁방식으로 급속히 이동했다. 이러한 초점의 이동은 한국형 세탁기가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개발 초기 한국형임을 크게 강조하지 않았던 공기 방울 세탁기도 1992년에 이르러 한국형 제품임을 내세우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꿨다. 그러한 변화는 1992년 전자레인지, 냉장고, 청소기 등의 영역에서 한국형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던 상황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또한 삼성전자의 삶아 빠는 세탁기의 등장도 영향을 끼쳤다. 1992년에 삼성전자가 출시한 삶아 빠는 세탁기는 공기 방울 세탁기의 경쟁모델이라는 성격이 강했다. 삶아 빠는 세탁기는 당시 한국형 가전제품이 붐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인기를 얻을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세탁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많고 가격이 비싸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국형 가전제품의 열기가 뜨거웠던 1992년에 세탁기가 어떻게 그 흐름 속에 존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제품이었다.

셋째, 이 시기에는 예약기능이 있는 크고 조용한 세탁기에 대한 선호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것은 맞벌이 부부의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현상이었다. 맞벌이 부부의 증가는 일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여성들의 교육 기회 확대가 배경이 되었다. 특히 1980년대 후반에 전문직 여성이 증가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여기에는 1980년의 7.30 교육 조치 이후 대학 정원이 늘면서 대학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늘어난 것이 토대가 되었다. 1990년 전후에 맞벌이 부부를 증가시킨 직접적인 이유로는 1980년대 후반 경제적 호황으로 인한 산업계의 노동수요 증가, 정보기술의 발달로 두뇌 능력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한 일들의 확대, 집값 및 물가 상승에 따른 필요 등을 들 수 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고 여성의 사회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예약기능을 가진 세탁기들이 활발하게 등장하였다. 맞벌이 부부의 고유한 라이프스타일이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 시간에 세탁기를 돌리도록 만들었는데, 이는 주거 공간의 아파트화 현상과 맞물리면서 저소음 세탁기를 등장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또한 빨래를 모아두었다가 주말에 한꺼번에 세탁하는 맞벌이 부부의 생활방식은 용량이 큰 세탁기들을 등장시킨 주된 이유였다.

Notes

1) 초기 세탁기는 세탁조와 탈수조가 분리되어있는 2조식 세탁기였다. 1970년대 후반 세탁조와 탈수조가 하나로 통합된 1조식 세탁기가 등장해 ‘전자동 세탁기’로 불리면서, 기존의 2조식 세탁기는 ‘반자동 세탁기’로 불렸다.

2) 제품 출시 초기인 1990년 10월만 해도 ‘인간 센서’를 내세웠던 대우전자가 2달 후인 1990년 12월에 ‘인공지능’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인공지능’을 내세우며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갔던 금성사의 움직임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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