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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통해 본 1980년대 중반 한국 세탁기와 그 특징들
Korean Washing Machines and Their Characteristics in the Mid-1980s
  • Chang Sup Oh : Department of Industrial Design, Konkuk University, Professor, Seoul, Korea
  • 오 창섭 :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서울, 대한민국

연구배경 세탁기는 두 번의 보급률 급등기를 거치며 국내 가정에 자리 잡았다. 본 논문은 1차 보급률 급등기였던 1980년대 중반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시기 가전제품에 관한 연구, 그리고 사회·문화적 변화와 가전제품과의 관계성에 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거나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해당 시기 세탁기에 관해서는 이루어진 연구가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1980년대 중반의 세탁기들과 그것들의 특징, 그러한 세탁기가 등장하게 된 배경 등을 밝힘으로써 해당 시기 세탁기와 세탁기 디자인문화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방법 본 연구는 광고를 증거물 삼아, 그 속의 내용과 표현이 왜 그러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이루어졌는지를 일간지 기사와 관련 문헌들과 함께 분석함으로써 해당 시기 세탁기와 세탁기의 특징들을 드러내고 있다. 분석에는 기호학과 담론분석의 방법이 사용되었고, 도출된 내용은 비평적 서술의 방법을 통해 구조화함으로써 연구목적에 이르고 있다.

연구결과 연구 결과 1980년대 중반 세탁기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과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세탁기 용량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에는 교복 자율화 조치와 1조식 세탁기 확산이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교복 자율화로 청소년들의 의복 소비량이 증가했고, 그에 따라 용량이 큰 세탁기 수요가 늘면서 세탁기 크기가 커졌다. 1조식 세탁기는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세탁기 크기 확대를 수월하게 만들었다. 둘째, 절약에서 기능으로 세탁기의 초점이 이동했다.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구체적인 세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세탁기 개발이 이루어졌다. 당시 도출되었던 문제로는 빨래 엉킴, 빨래 손상, 탈수 시 뭉침과 소음 등이 있었다. 셋째, 의류 건조기를 통한 편리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1980년대 중반에 판매되고 있던 의류 건조기는 별도의 설치대를 통해 세탁기 위에 자리했는데, 기능과 존재 방식이 2000년대 이후에 등장한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류 건조기는 당시에 빨래를 세탁, 탈수, 건조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넷째, 전통적인 빨래 방식을 호명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당시 세탁기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사실과 1983년의 수입자유화 품목에 세탁기가 포함된 게 그런 현상의 주된 이유였다. 이 시기 전통적 빨래 방식을 내세운 세탁기들은 1990년대 초중반의 한국형 세탁기 현상을 선취한 움직임이면서 한국형 세탁기 현상의 출발점에 자리한다고 할 수 있다.

결론 1980년대 중반 세탁기의 특징은 용량 확대, 전통적인 빨래 방식 채택, 세탁과 관련된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적 제품 개발, 의류 건조기를 통한 편리의 확대로 요약될 수 있다.

Abstract, Translated

Background In South Korea, washing machines entered the home in two rapid waves of diffusion. This paper focuses on the first diffusion period, the mid-1980s. There are few studies on household appliances and their relationship to socio-cultural changes during this period, and there are no studies on washing machines. In this context, this study aims to expand our understanding of washing machines and washing machine design culture in the mid-1980s by identifying washing machines, their characteristics, and the context in which they emerged.

Methods This study considered advertisements as evidence of history and analyzes the forces that shaped their content and representation. The advertisements were analyzed in conjunction with daily newspaper articles and related literature. The methods of semiotics and discourse analysis were used in the analysis, and the findings were structured through the method of critical narrative to reach the study objectives.

Results The study found that washing machines in the mid-1980s had the following content and characteristics. First, the capacity of washing machines began to increase in earnest. The reason for this phenomenon was the liberalization of school uniforms. This led to an increase in the consumption of clothing by young people, which in turn led to an increase in the demand for larger capacity washing machines. Second, the focus of washing machines shifted from saving to function. In the early to mid-1980s, washing machine development began to focus on solving specific laundry problems. Problems identified included tangled laundry, damaged laundry, clumping, and noise during dehydration. Third, clothes dryers expanded convenience. Clothes dryers, which began to be sold in the mid-1980s, sat on top of the washing machine on a separate rack. They were not much different in function and presence than they are today. Clothes dryers demonstrate that we were beginning to understand laundry as a series of processes: washing, dehydrating, and drying. Fourth, there was a movement to call out the traditional way of doing laundry. The fact that the performance of washing machines did not meet expectations at the time, and that washing machines were included in the import liberalization list in 1983, were the main reasons for this phenomenon. The washing machines that advocated the traditional way of doing laundry during this period can be seen as a precursor to the South Korean washing machine phenomenon in the early to mid-1990s, and as the starting point of the South Korean washing machine phenomenon.

Conclusions The characteristics of washing machines in the mid-1980s can be summarized as expanding capacity, adopting traditional laundry methods, developing functional products to solve specific problems associated with laundry, and expanding convenience through clothes dryers.

Keywords:
1980s, Washing Machine, Clothes Dryer, Korean-style Home Appliances, Korean Design, 1980년대, 세탁기, 의류 건조기, 한국형 가전, 한국디자인.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한국디자인학회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23 Aug, 2023
Revised: 22 Oct, 2023
Accepted: 22 Oct, 2023
Printed: 30, Nov, 2023
Volume: 36 Issue: 4
Page: 365 ~ 389
DOI: https://doi.org/10.15187/adr.2023.11.36.4.365
Corresponding Author: Chang Sup Oh (changsup@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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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ation: Oh, C. S. (2023). Korean Washing Machines and Their Characteristics in the Mid-1980s.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6(4), 365-389.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1. 서론

최초의 국산 세탁기로 알려진 ‘백조 세탁기’ WP-181 모델이 출시된 것은 1969년의 일이다. 통계청 자료(Table 1)에 따르면, 최초의 국산 세탁기가 등장하고 11년이 흐른 1980년 한국의 세탁기 보급률은 14%였다. 열 가구당 한두 가구 정도가 세탁기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1991년 한국의 세탁기 보급률은 86%를 나타냈다. 열에 여덟, 아홉 가구가 세탁기를 사용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었다. 통계청 자료(Table 1)는 1980~1991년 사이에 급속한 세탁기 보급 확대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시기 보급률 증가 추이를 자세히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상승률이 일정하지 않았음을, 다시 말해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던 기간과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던 기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1980~1983년 사이는 매년 2~3%의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지만, 1984~1985년에는 매년 9%라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그리고 1986년과 1987년에는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1988~1991년 사이에 또다시 매년 9%가 넘는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Table 1
The growth rate of washing machine penetration in South Korea from 1979 to 1994 and the temporal scope of the study (“Washing machine penetration rate,” 2023)

연구의 시간적 범위
년도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 93 94
보급률(%) 11 14 16 19 21 30 39 43 47 56 65 76 86 89 91 93
증감률(%) 3 2 3 2 9 9 4 4 9 9 11 10 3 2 2

거시적으로 보면 1980년대 초에서 1990년대 초에 이르는 10여 년의 기간을 세탁기 보급률 급등기라고 할 수 있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두 번의 보급률 급등기(1차 보급률 급등기: 1984~1985년, 2차 보급률 급등기: 1988~1991년)가 있었던 것이다(Table 1). 이 두 시기를 거치며 세탁기는 한국 가정의 보편적 사물로 자리하게 되었다. 본 논문은 1차 보급률 급등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2차 보급률 급등기, 다시 말해 88서울올림픽 이후부터 1990년대 초까지 한국 가전제품의 디자인과 관련 디자인문화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소수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연구가 진행되었다.1) 그러나 1980년대 중반의 한국 가전제품과 디자인문화, 혹은 사회·문화적 변화와 디자인의 관계성에 관한 연구는 제한적으로 존재하거나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이 시기 세탁기를 대상으로 한 관련 연구는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1차 보급률 급등기에 해당하는 1980년대 중반 국내에서 생산 판매되었던 세탁기들과 그것들의 특징, 그러한 세탁기가 등장하게 된 이유와 배경 등을 밝힘으로써 해당 시기 세탁기와 세탁기 디자인문화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본 연구는 기본적으로 1차 세탁기 보급률 급등기인 1984~1985년을 시기적 연구범위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 직전 해인 1983년과 그 직후인 1986년의 내용도 연구범위에 포함하고 있다. 이는 급격한 보급률 증가가 나타난 1984~1985년에 유통되었던 세탁기 중 일부가 1983년에 생산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1984~1985년에 생산된 세탁기가 1986년에도 여전히 판매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한 조치다. 직전과 직후를 고찰하는 게 해당 시기 세탁기와 관련 디자인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연구의 시기적 범위를 벗어난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1980년대 중반의 세탁기와 그 특징, 그리고 관련 디자인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범위에 포함해 다루었다.

본 연구는 1983~1986년 사이 일간지에 등장했던 세탁기 광고들을 연구의 기본적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본 연구에서 대상으로 취하고 있는 구체적 광고와 제품의 내용은 Table 2와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광고는 제품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자리하면서 둘을 매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Kim, 2020). 제품은 팔려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필요와 환상을 반영하며 제작되고, 광고는 그러한 점을 부각하며 소비자들의 욕구와 욕망을 자극한다. 이는 광고가 소비자들의 앎과 희망, 믿음의 체계 안에서 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품들이 왜 그렇게 디자인되었는지, 왜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며 변화해 나갔는지, 거기에 자리하는 사회적 이해나 기대, 외부적 힘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리고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문화와 이데올로기는 무엇이었는지를 광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존재론적 위치에 광고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Table 2
Information about the advertisements and related washing machines in the study

번호2) 광고매체 광고 게재일 광고 세탁기 모델명 제조사 용량(kg) 가격(원)
12 경향신문
(12면)
1983.11.21. ‘대우 세탁기’
DAW-2582W
대우전자 2.5 210,000
5 조선일보
(12면)
1985.01.20. ‘대우 봉 세탁기’
DW-360
대우전자 3.6 225,000
2 동아일보
(8면)
1985.12.21. ‘대우 봉 세탁기’
RW-420C
대우전자 4.2 269,000
6 동아일보
(12면)
1986.02.13. ‘대우 전자동 세탁기’
RWF-460H
대우전자 4.6 432,000
1 동아일보
(8면)
1983.12.13. ‘삼성 세탁기’
SEW-400D
삼성전자 4 229,500
13 조선일보
(12면)
1984.10.17. ‘삼성 점보 크리스탈 세탁기’
SEW-450F
삼성전자 4.5 420,000
11 동아일보
(8면)
1985.07.13.
15 동아일보
(12면)
1985.09.23.
8 동아일보
(8면)
1986.04.22. ‘삼성 센서 크리스탈 세탁기’
SEW-471FH
삼성전자 4.7 450,000
4 동아일보
(8면)
1983.03.14. ‘금성 백조 세탁기’
WA-352TR
금성사 3.5 271,000
3 경향신문
(12면)
1983.12.19. ‘금성 백조 세탁기 레이디’
WF-800A
금성사 4.0 389,500
9 동아일보
(12면)
1984.05.25.
10 동아일보
(12면)
1984.06.26.
7 경향신문
(12면)
1986.01.24. ‘금성 마이콤 레이디 세탁기’
WA-401AX
금성사 4.0 299,000
14 동아일보
(9면)
1986.02.04. ‘금성 빨래판 세탁기’
WF-920AH
금성사 4.6 429,000

본 연구의 광고 분석에는 기본적으로 이미지 분석과 담론분석의 방법이 활용되었다. 그런데 세탁기와 관련된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광고 그 자체의 표현과 내용 분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즉, 광고를 둘러싼 맥락들의 이해와 사실 확인을 위한 종합적 비교 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일간지 기사와 관련 자료를 참고하며 광고 분석 내용을 비판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광고가 가질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본 연구는 증거를 매개로 사건의 실재에 다가가는 범죄 수사의 방법과 유사한 방법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 광고를 포함한 관련 자료들을 증거물 삼아, 그것들이 왜 그러한 모습으로 발현되었는지를 비평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디자인문화의 맥락에서 당시 세탁기들의 특징은 물론이고, 그것을 추동한 이유와 배경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연구는 대상이 인간 행위자만 아니라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협상의 산물이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2. 커지는 세탁 용량

1983년 1월 대한전선이 대우전자에 매각되었다. 이에 따라 금성사, 삼성전자, 대우전자가 서로 경쟁하는 가전 3사 체제가 만들어졌다. ‘대우 세탁기’ DAW-2582W 모델은 가전 3사 체제가 형성된 이후 대우전자의 이름으로 나온 첫 세탁기였다. 이 세탁기의 용량은 2.5kg이었는데, 1969년에 출시된 최초의 국산 세탁기 용량이 1.8kg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리 크지 않은 용량이었음을 알 수 있다(“Domestic Washing Machines,” 1969).

1983년에 접어들어 삼성전자는 3.5kg 용량의 ‘삼성 세탁기’ SEW-355W 모델을 주력 제품으로 내세웠고, 금성사도 3.5kg 용량의 ‘금성 백조 세탁기’ WA-352TR 모델을 주력으로 내세웠다. 이 두 모델은 당시 가장 큰 용량의 세탁기였다. 하지만 1983년 초반만 해도 용량은 그렇게 큰 이슈가 아니었다. 1983년에 대우전자가 광고까지 내보내며 주력으로 내세운 ‘대우 세탁기’ DAW-2582W 모델 용량이 2.5kg이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1982년에 금성사가 ‘금성 백조 세탁기’ WP-350Z 모델을 광고(GoldStar, 1982)하면서 용량 표시 자체를 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용량이 경쟁에서 중요한 이슈로 부상한 것은, 다시 말해 세탁기 크기를 매개로 제조사들의 경쟁이 본격화된 것은 1983년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그해 12월에 금성사는 용량이 4kg인 ‘금성 백조 세탁기 레이디’ WF-800A 모델을 출시했고, 삼성전자도 같은 시기에 같은 용량의 ‘삼성 세탁기’ SEW-400D 모델을 내놓았다. 1983년 12월 13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삼성 세탁기’ SEW-400D 모델 광고(Figure 1)를 보면 세탁기 상부 이미지를 화면 중앙에 크게 확대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왼쪽 옆에는 아이가 세탁조 안을 쳐다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런 모습의 아이를 거기에 배치한 것은 세탁기 용량이 크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아이와 세탁기의 비례가 부적절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는 지나치게 작고, 세탁기는 지나치게 크다. 이러한 과장된 표현 역시 세탁기 크기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Figure 1 Advertising of the ‘Samsung Washing Machine’ model SEW-400D (Samsung Electronics, 1983)

그렇게 1983년 말부터 세탁기 용량은 4kg으로 커졌다. 그런데 세탁기 용량을 키우는 제조사들의 움직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1984년 10월에 삼성전자는 4.5kg 용량의 ‘삼성 점보 크리스탈 세탁기’ SEW-450F 모델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크기가 크다는 의미를 담은 ‘점보’를 제품 이름에 사용했다. 이는 크기를 매개로 한 경쟁이 당시에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984년 10월 17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해당 세탁기 광고(Figure 13)를 보면 용량을 나타내는 4.5kg 앞에 “국내 최대”라고 써 놓은 걸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제품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1985년 1월에 대우전자는 3.6kg 용량의 ‘대우 봉 세탁기’ DW-360 모델을 출시했다. 그리고 그해 12월에 4.2kg 용량의 ‘대우 봉 세탁기’ RW-420C 모델을 또 내놓았다. 1983년에 대우전자가 내놓았던 제품의 용량이 2.5kg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1985년 무렵에 이르러 대우전자 역시 크기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1985년 12월 21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대우 봉 세탁기’ RW-420C 모델 광고(Figure 2)에서 대우전자는 제품 이미지와 함께 높이 쌓여 있는 세탁물의 모습을 등장시켰다. 세탁기와 세탁물 사이에는 앞치마를 두른 주부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녀의 한 손은 세탁기를 짚고 있고 다른 손은 높이 쌓인 세탁물을 가리키고 있다. 이렇게 이미지를 배치한 것은 광고하는 세탁기 용량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광고는 이미지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대우 봉 세탁기 대형 4.2kg 탄생!”이라는 문구와 “커졌습니다”라는 표현의 제목을 통해서도 제품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Figure 2 Advertisement for the ‘Daewoo Bong Washing Machine’ model RW-420C (Daewoo, 1985)

1985년에 판매되었던 세탁기 중 가장 큰 세탁기는 4.5kg 용량의 ‘삼성 점보 크리스탈 세탁기’ SEW-450F 모델이었다. 1986년에 접어든 직후에도 해당 세탁기는 가장 용량이 큰 제품이었다. 그런데 1986년 2월, 금성사와 대우전자가 4.6kg 용량의 ‘금성 빨래판 세탁기’ WF-920AH 모델과 ‘대우 전자동 세탁기’ RWF-460H 모델을 각각 출시하며 ‘국내 최대 용량’이라고 광고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삼성전자는 그해 4월에 4.7kg 용량의 ‘삼성 센서 크리스탈 세탁기’ SEW-403MC 모델을 출시하며 “국내 최대 용량”임을 내세웠다. 그해 10월에는 금성사도 4.7kg 용량의 ‘금성 빨래판 세탁기’ WF-941HW 모델을 출시했다. 1986년 10월 27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해당 제품 광고에서 금성사는 “전자동 국내 최대 용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크기 경쟁을 이어갔다. 흥미로운 점은 자사 제품이 국내 최대라고 주장했지만, 서로 간의 차이는 0.1kg이나 0.2kg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미세한 용량 차이는 ‘크게 만들고 싶다’라는 욕망이 기술적 한계 등으로 ‘그럴 수 없다’라는 현실과 충돌했음을 보여준다. 미세하게라도 크기를 늘리고, 미세한 차이를 통해서라도 크기에 있어 우월함을 확인받으려고 했던 제조사들의 모습은 당시에 세탁기의 크기를 매개로 한 경쟁이 그만큼 치열했음을 보여준다.

내용을 정리하면, 1983년 초까지 3.5kg 정도였던 세탁기 용량은 1983년 후반과 1984년 초에 이르러 4kg으로 커졌고, 1985년에 4.5kg, 1986년에는 4.7kg으로 늘어났다. 이것이 어느 정도의 변화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이전까지 국산 세탁기의 크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개관할 필요가 있다. 우선 1969년에 생산된 최초의 국산 세탁기 용량은 1.8kg이었다. 1971년에는 2kg으로 커졌고, 이후 조금씩 용량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다가 1977년경에 3kg 용량의 세탁기가 등장했다. 그리고 1978년 말경에 삼성전자가 3.5kg 용량의 ‘삼성 은하 세탁기 SEW-350L 모델을 출시했는데, 이후 5년 동안 이 크기를 넘어서는 세탁기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3년 말에 4kg으로 용량이 늘어난 것이다. 그 이전까지, 즉 1983년 초까지만 해도 최대 용량이 3.5kg이었다는 것은 세탁기가 등장하고 14년 동안 총 1.7kg의 크기 변동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1986년 세탁기 용량이 4.7kg으로 늘어났다는 것은 1983년 후반부터 1986년까지 3년 동안 총 1.2kg의 크기 변동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1983년 후반 이후 3년 동안의 크기 변화가 상당히 큰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시기에 실제적 크기 변화만 있었던 게 아니라, 크기가 소비자와 제조사의 중요한 관심 대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그 시점에 그러한 현상이 나타났던 것일까? 왜 세탁기 크기가 당시에 이슈가 된 것이었을까?

이와 관련해 다양한 내용이 이야기될 수 있겠지만, 1983년 3월의 교복 자율화 조치는 디자인문화의 맥락에서 특히 주목해 보아야 하는 변화였다. 이 조치로 인해 중고등학생들은 일제강점기부터 입어왔던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등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교복 자율화는 단순히 교실에서의 복장이 교복에서 사복으로 바뀌었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교복 자율화는 캐주얼웨어 붐을 일으키며 관련 산업이 활성화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원단과 옷의 종류가 다양하게 변화하는 계기는 물론이고, 관련 디자인 산업을 활성화하는 계기도 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소비 매장의 확대 현상도 새롭게 나타났다. 실제로 교복 자율화 이후 도심 곳곳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의류매장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서울만 하더라도 이대 앞에 “여학생용 캐주얼 복장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소”(“20 Stores,” 1983)들이 생겨났고, “남대문 1번가를 중심으로 … 전문상가가 생겨 치열한 경쟁”(“Fixed Price System,” 1984)을 벌이는 모습도 나타났다.

교복 자율화는 청소년들이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든 계기이기도 했다. “교복 자율화 바람을 타고 학생들은 1만~2만 원씩 하는 고급 운동화나 고급 상표가 붙은 옷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가 되어버렸다”라는 당시 <조선일보> 기사(“Spending Spree Spreads,” 1984) 내용은 교복 자율화와 브랜드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 사이의 관련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여파로 중고생들이 소비하는 의류가 고급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세탁의 맥락에서 이러한 변화는 옷감의 차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축이나 오염에 신경을 쓰면서 세심하게 세탁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무엇보다 교복 자율화는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주 빨래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교복 자율화로 의복 소비량이 늘어난 데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물론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주 빨래를 해야 했던 게 그런 실제적인 필요와 요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에 그것을 자극하고 추동하는 담론도 활발하게 생산되어 유통되었다. 1985년에 흰색 옷이 유행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기사(“White Fashion,” 1985)는 “흰색 패션을 한층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교복 자율화로 유행”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한 10대들이라고 전제하면서 “흰옷은 한두 번만 입어도 더러움이 쉽게 타므로 세탁을 자주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그런 담론의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결국 교복 자율화로 옷의 양이 늘어 빨래를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는데, 바로 이러한 상황이 당시 세탁기 용량을 키운 주된 이유였던 것이다.

세탁 용량과 관련하여 또 하나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이 시기에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가정용 세탁기의 주된 형식이 2조식에서 1조식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이다. 2조식은 세탁조와 탈수조가 구분되어 있는 세탁기를 말하는데, 구조가 간단하여 세탁기 도입기라 할 수 있는 1970년대에 제조사들이 주로 채택했던 형식이었다. 금성사가 히타치와 기술 제휴로 1969년에 생산한 최초의 국산 세탁기도 2조식이었다. 1974년 삼성전자, 한일전기, 신일전기가 이 시장에 진입하며 생산한 세탁기의 형식도 2조식이었다(“Four Electric,” 1974). 그렇게 한동안 2조식 세탁기가 생산 판매되면서 2조식 세탁기는 대중들의 의식에 세탁기의 전형적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이것은 1970년대 후반 들어 1조식 세탁기가 등장했음에도 여전히 2조식 세탁기를 소비하도록 만든 한 요인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러한 관성적 움직임이 1조식 세탁기의 소비 확대로 인해 본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1조식은 세탁조와 탈수조가 하나로 통합된 형식의 세탁기를 말한다. 국내에서 제작 출시된 최초의 가정용 1조식 세탁기는 1976년 12월에 화신전기가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기술 제휴로 선보인 ‘화신 전자동 프로그램식 세탁기’ WL-3000A 모델이었다. 화신전기는 1979년에도 1조식 세탁기인 ‘화신 컴퓨터 세탁기’ WL-3200CM 모델을 내놓았다. 하지만 1980년에 회사가 부도 처리되면서 명맥이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 무렵 화신전기 이외에도 삼성전자나 금호전자처럼 1조식 세탁기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모든 제조사가 1조식 세탁기를 만들고 있지는 않았고, 만들었다고 해도 주력 모델로 내세우지 않았다. 제조사들은 2조식 세탁기 생산에 주력했고, 1조식 세탁기는 판매 모델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구색 맞추기 정도의 역할을 담당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제조사들이 1조식 세탁기를 주력 모델로 생산하며 홍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세탁기 용량이 커지는 현상과 공명하며 전개되었다. 1983년 12월에 출시된 ‘금성 백조 세탁기 레이디’ WF-800A 모델(Figure 3)은 그 시발점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직전까지 금성사가 판매하고 있던 ‘금성 백조 세탁기’ WA-352TR 모델이 2조식에다 크기도 3.5kg 용량이었던데 비해, ‘금성 백조 세탁기 레이디’ WF-800A 모델은 1조식에다 용량도 4kg으로 늘었다는 점이다. 물론 같은 시점에 삼성전자가 용량을 4kg까지 키운 2조식 세탁기인 ‘삼성 세탁기’ SEW-400D 모델(Figure 1)을 출시하며 2조식으로도 크기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4kg이라는 용량은 2조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치였다. 만일 그보다 용량을 더 키운다면 2조식의 구조적 특성상 탈수조도 따라서 키워야 하고, 그렇게 되면 세탁기의 외형이 부담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후 2조식 세탁기로 4kg 용량을 넘어서는 세탁기는 등장하지 않았다.


Figure 3 Advertisement for the ‘GoldStar Swan Washing Machine Lady’ model WF-800A (GoldStar, 1983)

1984년 10월 삼성전자가 출시한 4.5kg 용량의 세탁기 ‘삼성 점보 크리스탈 세탁기’ SEW-450F 모델은 1조식이었다. 1조식 세탁기는 세탁조가 곧 탈수조였기 때문에, 세탁이 끝난 후 세탁조에서 탈수조로 물먹은 빨래를 옮길 필요가 없었다. 사용자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것은 큰 장점이었다. 제조사에게도 1조식 세탁기는 세탁조와 탈수조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통합되어 있어 세탁기의 용량을 2조식보다 쉽게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세탁 용량을 매개로 경쟁이 전개되던 시점에 1조식 세탁기 등장이 본격화되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 즉, 세탁 용량을 매개로 한 제조사들의 경쟁이 주력 세탁기의 형식을 2조식에서 1조식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말이다.

3. 절약에서 기능으로 초점의 이동

1979년 이란 혁명의 영향으로 석유생산량이 줄면서 2차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2차 오일쇼크는 1973년에 있었던 1차 오일쇼크보다 한국 경제에 더 큰 충격을 주었다. 1차 때보다 경제 규모가 늘어난 상태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 규모 확대가 수출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오일쇼크로 기업들은 생산비용의 증가와 가격 인상 압력에 시달렸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로 전해졌고, 그에 따라 ‘절약’이 제1의 생활 윤리로 자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국가 전체적으로 ‘절약’이 지배적인 화두로 자리 잡으면서 1979년 직후에는 절약형 제품들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2차 오일쇼크의 영향은 경제성과 절약을 강조하는 세탁기들을 등장시켰다. 1982년 12월에 금성사가 내놓은 ‘금성 백조 세탁기’ WA-352TR 모델은 그런 맥락에 자리하는 제품이었다. 1983년 3월 14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해당 제품의 광고(Figure 4)를 보면, “절약 시대의 초절약형 세탁기”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금성사는 “탈수조에서 헹굼과 탈수를 하면서 세탁조에서는 다음 세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스핀 린스(Spin Rinse) 방식을 이 제품이 채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핵심은 이 방식을 채택함으로 인해 “세탁한 물을 2번, 3번 사용할 수 있으므로 물 30%, 전기 20%, 시간, 세제까지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Figure 4 Advertisement for the ‘GoldStar Swan Washing Machine’ model WA-352TR (GoldStar, 1983)

하지만 198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던 시기의 세탁기 개발은 ‘세탁’이라는 세탁기 고유 기능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었다. 제조사들의 관심은 ‘어떤 방법으로 세탁기 성능을 향상시켜서 고유한 변별점을 만들어 낼 것인가?’라는 문제로 수렴되어 갔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조사들은 세탁 상황에서의 구체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세탁기의 기능과 형식을 통해 구현한 후, 그것을 소비자에게 제시함으로써 고유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제조사들이 특히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문제의 발견, 그리고 무엇을 통해, 즉 어떻게 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라는 점이었다. 대우전자의 ‘대우 봉 세탁기’는 이런 맥락에서 제조사들의 관심 변화를 잘 보여주는 제품이었다.

대우전자가 ‘대우 봉 세탁기’라는 이름으로 처음 제품을 출시한 것은 1985년 1월경이었다. ‘대우 봉 세탁기’ DW-360 모델이 그것이었는데, 2조식 세탁기였던 이 제품은 세탁조 회전판에 세탁봉이 부착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1985년 1월 20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해당 제품의 광고(Figure 5)는 빨래들이 기존 세탁기에 대한 불만 내용이 담긴 피켓들을 앞세우며 시위하는 장면을 만화적으로 표현해 놓고 있다. 빨래들의 불만 사항은 “얼룩이 진다, 때가 잘 안 빠진다, 빨래가 엉킨다, 빨래 먼지가 묻는다” 등이었는데, 이러한 문제들을 ‘대우 봉 세탁기’ DW-360 모델이 해결하고 있다는 게 광고의 주된 내용이었다. 중요한 점은 해당 제품이 어떻게 그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작동원리와 구조를 제시하며 설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85년 12월에 대우전자는 후속 모델인 4.2kg 용량의 ‘대우 봉 세탁기’ RW-420C 모델을 출시했는데, 이 제품 광고(Figure 2)에서도 빨래 봉의 모습과 작동원리를 상세히 제시하였다.


Figure 5 Advertisement for the ‘Daewoo Bong Washing Machine’ model DW-360 (Daewoo, 1985)

‘대우 봉 세탁기’는 1986년에 가장 큰 인기를 얻은 세탁기였다(“Words, Events,” 1986). 그렇다고 해서 대우전자가 1986년에 ‘대우 봉 세탁기’만 생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86년 2월에 대우전자는 1조식 세탁기인 ‘대우 전자동 세탁기’ RWF-460H 모델을 출시하였다. 세탁 용량을 4.6kg으로 키운 이 세탁기를 매개로 대우전자 역시 1조식 세탁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였다. 이 제품에서도 대우전자는 구체적인 문제와 그것의 해결을 강조했다. 대우전자가 주목한 문제는 탈수와 소음이었다. 세탁조가 상대적으로 큰 1조식 세탁기의 경우 탈수 기능을 사용할 때마다 빨래들이 한곳에 뭉치는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빨래들이 뭉쳐있게 되면 탈수가 골고루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탈수할 때 축이 흔들려 소음이 발생했다. 대우전자는 바로 이 문제를 주목했다. 1986년 2월 13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제품 광고(Figure 6)에서 대우전자가 기존 1조식 세탁기의 가장 큰 문제로 탈수를 지적했던 것은 바로 그래서였다. 대우전자는 “발란스 탈수방식”을 채택하여 탈수 시 빨래가 뭉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발란스 탈수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탈수 전에 예비 회전과 정지를 반복하여 세탁조 안의 빨래들을 골고루 펴주는 것이었다.


Figure 6 Advertisement for the ‘Daewoo Fully Automatic Washing Machine’ model RWF-460H (Daewoo, 1986)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당시 세탁기 제조사들은 이렇게 구체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개발하였다. 그에 따라 광고도 단순히 ‘세탁을 잘한다’라고 주장하기보다 ‘특정 문제를 이렇게 해결했습니다’라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복합 교반식 세탁기이기 때문에 수류를 상하좌우로 회전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 세탁물이 엉키거나 상하는 정도를 줄이면서도 세탁력을 향상시킨 제품이라고 광고했던 ‘금성 백조 세탁기 레이디’ WF-800A 모델 광고(Figure 3)가 그런 사례였다.

기능의 맥락에서 이 시기에 주목해 보아야 하는 또 다른 내용은 기계식 조작 방식에서 전자 컨트롤 방식으로 전환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1985년 12월 21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대우 봉 세탁기’ RW-420C 모델 광고(Figure 2)를 보면, 그렇게 변화된 조작부를 “IC 판넬”이라고 표현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로부터 2달 후인 1986년 1월에 출시된 ‘금성 마이콤 레이디 세탁기’ WA-401AX 모델도 전자 컨트롤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1986년 1월 24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해당 제품 광고(Figure 7)에서 금성사는 조작부를 “마이콤 판넬”이라고 소개했다. 이 광고에서 흥미로운 것은 “버튼만 살짝 눌러주시면 모든 빨래를 알아서 척척!”이라는 말을 마치 세탁기가 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점이다. 그런 말을 하는 세탁기 옆에는 주부가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뜨개질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를 사용한 것, 그리고 이미지를 그렇게 배치한 것은 알아서 하는 세탁기의 능력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제품 이름에 마이크로컴퓨터의 줄임말인 ‘마이콤’3)을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의 움직임이었다. 광고는 그렇게 ‘컴퓨터 ― 알아서 척척 ― 여유롭고 편리함’이라는 의미의 연결망 속에 제품을 배치하였다.


Figure 7 Advertisement for the ‘GoldStar Microcomputer Lady Washing Machine’ model WA-401AX (GoldStar, 1986)

‘금성 마이콤 레이디 세탁기’ WA-401AX 모델이 출시되고 3달이 지난 1986년 4월에 삼성전자는 ‘삼성 센서 크리스탈 세탁기’ SEW-470FM 모델을 출시하였다. 1986년 4월 22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해당 제품 광고(Figure 8)에서 삼성전자는 조작부가 잘 보이도록 그 부분을 크게 확대하여 제시하였다. 소프트 터치 방식으로 조작하도록 디자인된 이 세탁기의 조작부는 기존의 기계식 조작부와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첨단의 분위기를 풍기는 조작부 위에 삼성 반도체 이미지와 “첨단 반도체 센서가 이룩한 세탁기의 혁명”이라는 문구를 함께 배치하여 첨단 디지털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세탁기 이름에 “센서”를 추가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는데, 이는 당시 다른 제조사들이 “마이콤”이나 “전자동”을 사용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 자리하는 움직임이었다.


Figure 8 Advertisement for the ‘Samsung Sensor Crystal Washing Machine’ model SEW-470FM (Samsung Electronics, 1986)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삼성전자가 ‘삼성 센서 크리스탈 세탁기’ SEW-470FM 모델의 조작부 위치를 상단 전면에 위치시켰다는 사실이다. 이전까지 세탁기의 조작부는 상단 후면에 자리했었다. 상단 전면에 배치하는 것이 상단 후면에 배치하는 것보다 사용의 편의성이 높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습기에 취약한 기계식 조작 스위치의 특성 때문이었다. ‘삼성 센서 크리스탈 세탁기’ SEW-470FM 모델은 방수 코팅된 전자식 스위치를 채택하여 조작부 위치를 앞으로 변경할 수 있었다. 이러한 디자인의 변화를 통해 삼성전자는 다른 제품들과 차별화는 물론이고 세탁기 사용의 편의성을 한 단계 높였다. ‘삼성 센서 크리스탈 세탁기’ SEW-470FM 모델의 조작부 디자인의 변화는 다른 세탁기들에도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이후 세탁기 조작부의 위치는 점차 상단 전면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4. 의류 건조기를 통한 편리의 확장

<뉴스1코리아>의 기사(“This Is A Clothes Dryer,” 2017)에 따르면 국산 가정용 의류 건조기는 2004년에 처음 출시되어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시 이후 매년 몇 천 대 수준에 머물던 판매량은 2010년대 중반부터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2016년 판매량은 10만 대였고, 2017년 판매량은 60만 대였다. 당시 판매량이 급증한 것은 “베란다 확장 등으로 빨래 건조 공간이 줄어든 것과 미세먼지와 황사 등으로 창문을 열고 빨래를 말리는 것에 대한 찜찜함” 때문이었다. 2018년에도 의류 건조기 판매는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2018년 3월 27일 자 <아시아투데이>의 “미세먼지 공습에 … 마스크·의류 건조기 매출 ‘수직상승’”이라는 제목의 기사(“Sales of Masks,” 2018)는 미세먼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의류 건조기 판매가 3년 새 1,070%” 증가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통계를 반영하듯 의류 건조기는 2018년에 혼수가전 순위 2위에 오르기도 했다(“Get Out,” 2018). 이는 이 시기에 이르러 의류 건조기가 필수 가전제품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국산 의류 건조기가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2004년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20년 전에 이미 국산 의류 건조기의 생산과 판매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984년에 금성사는 2.5kg 용량의 ‘금성 의류 건조기’ DK-250 모델을 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제품은 육면체 모양이었는데, 투명 창이 달린 문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 건조하는 내부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문 오른쪽에는 조작 스위치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문과 조작부의 형태, 비례, 그리고 배치된 모습이 전자레인지와 유사하여 제품 중앙에 전자레인지가 박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작부 위에는 무지개 모양의 그래픽을 배경으로 ‘의류 건조기’라는 상품명이 쓰여 있었다. 제품 가격은 217,000원이었다.

‘금성 의류 건조기’ DK-250 모델은 1984년 5월 25일 자 <동아일보> 제품 광고(Figure 9)에 당시 금성사의 주력 세탁기 모델이었던 ‘금성 백조 세탁기 레이디’ WF-800A 모델과 함께 등장했다. 설치대가 두 제품을 연결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의류 건조기와 세탁기는 일체형 제품처럼 보였다. 설치대는 별도 판매되었는데, 가격은 27,000원이었다. 설치대의 기본적인 역할은 사용 주체가 서서 건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적당한 높이에 의류 건조기를 고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의류 건조기 아래에는 세탁기를 둘 수 있게 하였는데, 그로 인해 ‘세탁기 위의 의류 건조기’라는 배치가 만들어졌다.


Figure 9 Advertisement for the ‘GoldStar Clothes Dryer’ model DK-250 and the ‘GoldStar Swan Washing Lady’ model WF-800A (GoldStar, May 1984)

그런데 왜 세탁기 옆이 아니라 위였을까? 엄밀히 말해 의류 건조기가 세탁기 위에 놓이는 배치는 세탁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탁기는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었고, 따라서 그것을 토대로 의류 건조기의 위치가 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의류 건조기의 존재 이유를 고려할 때 두 제품은 가까이 붙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세탁기가 자리하는 장소에 또 다른 제품을 옆에 둘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여유 공간이 있는 집은 당시에 많지 않았다. 사정은 아파트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국민주택규모 아파트의 경우 다용도실이나 욕실의 경우는 비좁았고, 상대적으로 넓은 베란다의 경우도 폭이 좁아 세탁기 옆에 별도의 제품을 두기는 쉽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이 의류 건조기를 세탁기 옆에 두는 수평적 배치가 아니라, 위에 두는 수직적 배치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대중적인 세탁기 형태는 드럼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탁기 위에 의류 건조기를 바로 올려놓을 수는 없었다. 세탁기 윗면에 빨래를 투입하는 입구와 조작부가 자리하고 있어서 세탁기와 의류 건조기 사이에 약간의 여유 공간을 두어야 했다. 별도로 마련된 설치대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광고(Figure 9)를 보면 “깨끗한 세탁에서 신속한 건조까지 한 자리에서 해결해 드립니다.”라는 문장을 크게 내걸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의류 건조기가 세탁기와 함께 사용하는 제품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광고를 디자인한 주체는 ‘금성 백조 세탁기 레이디’와 ‘금성 의류 건조기’라는 이름을 시각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표현함으로써 표현 형식을 통해서도 두 제품이 한 세트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뿐 아니라 ‘금성 백조 세탁기 레이디’와 ‘금성 의류 건조기’를 설명하는 방식, 모델로 등장한 여성의 모습, 제품 설명의 구조 등도 통일감 있게 디자인되었는데, 이 역시 일체형 제품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84년 6월 26일 자 <동아일보>에 같은 제품의 광고(Figure 10)가 다시 등장했다. 이 광고 역시 설치대를 사용해 ‘금성 의류 건조기’ DK-250 모델과 ‘금성 백조 세탁기 레이디’ WF-800A 모델을 일체형 제품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흥미로운 점은 타일로 된 바닥과 창문 이미지를 추가함으로써 마치 제품이 실내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밖에는 먹구름이 잔뜩 껴 있고, 그 위에 규칙적으로 하얀 사선들이 자리하고 있다. 끝부분에 작은 덩어리가 맺혀 있는 것으로 볼 때, 그리고 창틀에 부딪혀 튀어 오르는 곡선을 통해 볼 때, 사선들은 쏟아지는 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세탁은 자주! 건조는 즉시!”라는 슬로건 앞에 우산 모양의 아이콘과 거기에 자리하는 “장마철 생활 정보”라는 문구는 장마철이 의류 건조기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시기임을 나타내고 있다. 창문 아랫부분에 엄마와 딸이 자리하고 있는데, 엄마 머리에 걸쳐져 있는 말풍선 속 “의류 건조기와 세탁기를 한 자리에 사용하게 되어 참 편리해요. 장마철에는 더욱 편리하죠”라는 표현도 제품의 존재감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때가 장마철임을 보여주고 있다.


Figure 10 Advertisement for the ‘GoldStar Clothes Dryer’ model DK-250 and the ‘GoldStar Swan Washing Lady’ model WF-800A (GoldStar, June 1984)

광고에서 엄마는 건조기에서 건조된 옷을 꺼내고 있고, 그 앞에서 딸이 빨래 바구니를 들고 신기한 듯 의류 건조기를 쳐다보고 있다. 화면 왼쪽 부분에는 이전 광고에 없던 “세탁 탈수가 끝난 빨래를 넣고 스위치만 누르면 온풍 또는 냉풍으로 쾌속 건조, 금성 의류 건조기로 세탁의 새로운 즐거움을 찾으세요”라는 문구가 추가되었다. 이 문구는 의류 건조기의 사용법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빨래를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닌 즐거운 활동으로 재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웃는 엄마의 모습과 만나 의류 건조기가 유쾌한 경험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금성 의류 건조기’ DK-250 모델이 출시된 직후인 1984년 6월 9일, 삼성전자가 “실내에서 짧은 시간에 세탁물을 말릴 수 있는 의류 건조기를 개발, 7월부터 시판할 계획”에 있다는 기사(“Samsung Develops,” 1984)가 <경향신문>에 등장했다. 삼성전자가 의류 건조기를 예정대로 그때 출시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해를 넘겼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즈음에 삼성전자 역시 의류 건조기를 생산 판매했다는 사실이다. 삼성전자의 의류 건조기는 1985년 7월 13일 자 <동아일보> 광고(Figure 11)에 ‘삼성 점보 크리스탈 세탁기’ SEW-450F 모델과 함께 등장한다. ‘삼성 크리스탈 의류 건조기’ SED-250C 모델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가격은 ‘금성 의류 건조기’ DK-250 모델과 같은 217,000원이었고, 세탁기와 연결하는 스탠드도 금성사처럼 별도로 판매했다.


Figure 11 Advertisement for the ‘Samsung Crystal Clothes Dryer’ model SED-250C and the ‘Samsung Jumbo Crystal Washing Machine’ model SEW-450F (Samsung Electronics, July 1985)

‘삼성 크리스탈 의류 건조기’ SED-250C 모델의 크기와 구조는 ‘금성 의류 건조기’ DK-250 모델과 비슷했다. 하지만 조작부가 문 오른쪽이 아닌 아래에 자리하고 있어 두 제품의 디자인이 유사하지는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삼성전자의 의류 건조기를 광고하는 방식이 1년 전에 등장했던 금성사의 그것과 매우 흡사했다는 사실이다. 우선 삼성전자의 광고 역시 1984년 6월 26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금성 의류 건조기’ DK-250 모델 광고에서와 마찬가지로 장마철을 강조했다. 비가 오는 창문을 등장시킨 것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서로 닮았다. 그리고 두 광고 모두 아이를 등장시키고 있다. 물론 아이의 숫자와 광고에서의 역할은 달랐다. 금성사 광고에서는 1명의 딸이 엄마의 일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표현하였고, 삼성전자 광고에서는 5명의 아이가 빨랫감을 만들어내는 개구쟁이로 표현되었다. 삼성전자 광고의 아이들 숫자가 자녀로 보기에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80년대 초반 한국 사회는 부양자로서의 남성, 가사 전담자로서의 여성이 주가 된 4인의 중산층 핵가족이 이상적으로 여겨지긴 했지만, 그것은 ‘이상’인 만큼 실제로는 너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했다.”라는 오자은(Oh, 2021, p. 62)의 주장을 따르면 5명의 아이는 당시의 현실을 반영한 사실적 표현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The Number of People,” 2023)에 따르면 1980년 6인 이상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가구는 29.8%로 가장 많았고, 1985년에도 19.5%로 4인 가구 다음으로 많았다.

1985년 10월 20일 자 <조선일보>는 “부엌일도 자동화”라는 제목의 기사(“Automation of Kitchen Work,” 1985)에서 TV가 달린 전자레인지, 말하는 냉장고, 김치 제조기 등 새로운 부엌 자동화 기구들을 소개했다. 의류 건조기도 그중 하나였는데, 기사는 “의류 건조기도 개발 판매되고 있으나 아직 값이 비싸 탈수기만큼 일반화되지는 못했다. 세탁기 위에 설치하는 형태로 열풍, 냉풍으로 번갈아 건조시킨다. 값은 21만 7천 원 안팎”이라고 쓰고 있다. 기사를 통해 당시 의류 건조기의 인기가 그리 높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의류 건조기를 통해 편리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2000년대의 의류 건조기의 등장을 선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세탁을 단순히 옷을 빠는 움직임만으로 본 게 아니라,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탈수하고, 탈수가 끝나면 그것을 꺼내서 말리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바로 이러한 이해가 세탁, 탈수, 건조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빨래 시스템에서 빠져 있던 건조의 문제를 주목하도록 만들었고, 급기야 의류 건조기를 등장시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5. 호명된 전통적 빨래 방식

1983년 9월 대우전자는 ‘대우 세탁기’ DAW-2582W 모델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세탁조 내부에 길게 패인 홈들이 규칙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게 특징이었다. 1983년 11월 21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제품 광고(Figure 12)를 보면, 그렇게 디자인된 세탁조 이름이 ‘파형조’인 것을 알 수 있다. 세탁조 내부의 올록볼록한 형태가 물결의 파동 형태라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었다. 광고는 그 용어를 산세리프체로 크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파형조가 ‘대우 세탁기’ DAW-2582W 모델의 고유한 특징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Figure 12 Advertisement for ‘Daewoo Washing Machine’ model DAW-2582W (Daewoo, 1983)

이미지 차원에서 볼 때, 길게 패인 홈들로 이루어진 세탁조 옆에 손빨래하는 모습을 배치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배치는 의미를 이전시킬 목적으로 치밀한 계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광고 속 두 이미지는 가치에 있어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는 기호 체계 안에서 익숙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낯선 것이다. 물론 이 광고에서 익숙한 이미지, 그래서 광고를 마주한 당시 대중이 알고 있었던 이미지는 ‘빨래판을 사용해 손빨래하는 모습’이었고, 그들에게 낯선 이미지는 광고되는 제품의 파형조, 다시 말해 ‘길게 패인 홈들이 자리하고 있는 세탁조’의 모습이었다. 익숙함과 낯섦이라는 차이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의미는 기본적으로 익숙한 이미지에서 낯선 이미지로 흐르기 때문이다. 즉, 광고에서 의미는 빨래판을 사용해 손빨래하는 모습에서 파형조로 흐르는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광고의 의미는 광고를 마주한 이의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런 참여가 가능한 것은 서로 다른 의밋값을 지닌 두 이미지를 나란히 병치시켜놓았기 때문이다. 사실 빨래판에서 손빨래하는 모습과 파형조 사이에는 어떠한 관련성도 없다. 손빨래는 손빨래일 뿐이고, 파형조는 파형조일 뿐이다. 그렇게 개별적으로 자리하는 두 이미지는 광고를 마주한 이의 능동적 참여를 통해 관련성과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즉, 파형조 안의 길게 패인 홈들은 빨래판의 올록볼록한 형태를 연상시키고, 파형조에서의 세탁은 빨래판을 이용한 손빨래를 연상시키게 되는 것이다.

손빨래는 당시 세탁기 제조사들의 공통적인 관심사였다. 같은 시기에 나온 ‘삼성 세탁기’ SEW-400D 모델도 ‘대우 세탁기’ DAW-2582W 모델처럼 세탁조 내부에 긴 홈들이 규칙적으로 자리하고 있었고, 광고에서도 대우전자처럼 손빨래 방식을 강조했다. 1983년 12월 13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해당 제품 광고(Figure 1)를 보면 전면에 “세탁은 손빨래 방식”이라는 문구를 크게 배치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품을 설명하는 부분에도 “빨래판 원리의 파형조 설계”, “… 손빨래처럼 깨끗하게 잘 빨립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전통적인 빨래 방식을 환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1984년에 삼성전자는 더욱 적극적으로 전통적 빨래 방식을 호명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이때 삼성전자는 1조식 세탁기 ‘삼성 점보 크리스탈 세탁기’ SEW-450F 모델을 출시하였는데, 1984년 10월 17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해당 제품의 광고(Figure 13)를 보면 손빨래 이미지뿐만 아니라, 빨랫방망이를 사용해 빨래하는 이미지까지 등장시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1985년으로 이어졌다.


Figure 13 Advertisement for the ‘Samsung Jumbo Crystal Washing Machine’ model SEW-450F (Samsung Electronics, 1984)

그런데 ‘삼성 점보 크리스탈 세탁기’ SEW-450F 모델에서 더욱 흥미로운 점은 삶아 빠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세탁기의 기능이었다. 물론 1984년 10월 17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제품 광고에서도 이런 사실을 강조했다. 1985년에 들어서도 삼성전자는 그런 기능을 더욱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1985년 1월 20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동일 제품의 광고에서 삼성전자는 빨래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이미지를 등장시키며 “국내 최초 삶아 빠는 세탁 효과”,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70℃의 뜨거운 물을 쓸 수 있어”라는 표현을 등장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광고 전면에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등장시켰는데, 남편과 아내 사이에 “흰옷은 역시 삶아 빨아야···”라는 문구를 배치하여 삶아 빠는 기능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금성사의 경우는 1983년 12월 ‘금성 백조 세탁기 레이디’ WF-800A 모델을 출시할 때만 해도 광고에서 전통적인 빨래 방식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1985년 ‘금성 레이디 세탁기’ WP-400A 모델을 출시하면서부터는 달라졌다. 1985년 5월 7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제품 광고에서 금성사는 빨래판을 이용해 손빨래하는 모습은 물론이고, 빨랫방망이를 사용해 빨래하는 모습, “삶아 빠는 효과”라는 표현을 모두 등장시켰다. 1986년 초에 ‘금성 빨래판 세탁기’ WF-920AH 모델을 출시하면서는 광고(Figure 14)에 “빨래판 세탁기”라는 표현을 크게 내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손빨래나 삶아 빠는 효과를 등장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1986년 말에도 금성사는 새로운 1조식 세탁기 WF-941HW 모델을 출시하였는데, 이때에도 “금성 빨래판 세탁기”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며 손빨래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다.


Figure 14 Advertisement for the ‘GoldStar Washboard Washing Machine’ model WF-920AH (GoldStar, February 1986)

그렇다면 이 시기 빨래판을 이용한 전통적인 방식의 손빨래가 왜 호명되어 나왔던 것일까? 우선 당시 세탁기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첫 번째 이유로 들 수 있다. 1984년 9월 6일 자 <경향신문>은 “세탁기 세척력 약하고 물소비량 많다”라는 제목의 기사(“Washing Machines Have Weak,” 1984)에서 한국소비자연맹이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국산 가정용 세탁기는 세탁 시간이 오래 걸리고 천이 상하는 정도가 클 뿐 아니라 세척력도 떨어지고 물소비량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1984년 12월 5일 자 “국산 세탁기 겉만 번지르르”라는 제목의 기사(“Domestic Washing Machines Are,” 1984)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했다. 기사는 “국산 세탁기는 외관은 비교적 잘 만들어졌으나 성능 면에서는 선진국 제품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라고 공업진흥청의 품질 비교 결과를 전하며, “가전 3사 제품 모두 세탁기의 핵심 성능인 세탁 및 탈수 성능, 소비 전력량, 물 사용량, 세탁 후 세탁물의 훼손 상태 등이 크게 미흡한 수준으로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세탁기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손빨래의 필요성을 환기하는 담론들이 활발하게 유통되었다. 그런 담론의 기본적인 논리는 다음 3단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째로 세탁기는 특성상 옷감을 하나하나 구분하여 세탁하지 못하고, 옷의 특정 부분만을 섬세하게 세탁하지도 못한다. 둘째, 이로 인해 청바지 같은 특정 의류의 색이 다른 옷을 물들이며 오염시키거나, 하나의 옷에서 상대적으로 더 더러워지는 깃이나 소매 부분이 빨리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셋째, 하지만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하는 빨래는 이러한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고, 따라서 손빨래가 필요하다. 1983년 4월 6일 자 <경향신문>의 “중고생에 청바지 붐”이라는 제목의 기사(“Jeans boom,” 1983)가 바로 그런 논리를 따르는 주장을 폈다. “세탁할 때는 다른 옷과 함께 빨면 안 되고 장식으로 스냅이 달려 있는 것은 세탁기를 상하게 할 우려가 있으므로 손빨래를 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담론은 기본적으로 세탁기를 이용한 빨래보다 손으로 하는 빨래가 더 우수하다는 전제를 바탕에 두고 있다. ‘손빨래의 우수함 ↔ 세탁기를 이용한 빨래의 열등함’은 당시 빨래나 세탁기를 이야기할 때마다 환기되었던 생각의 이미지이자 이해의 도식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해의 도식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탁기 광고들이 끊임없이 전통적인 빨래 방식을 불러들였고, 그것을 기준으로 세탁기의 우수함을 설득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광고하는 세탁기 제품이 “손빨래처럼 ··· 깨끗하게 빨아줍니다”(GoldStar, 1985)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손빨래의 우수함 ↔ 세탁기를 이용한 빨래의 열등함’이라는 이해의 도식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손빨래를 해왔던 노인을 광고에 등장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1985년 9월 23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삼성 점보 크리스탈 세탁기’ SEW-450F 모델 광고(Figure 15)가 바로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광고에는 젊은 여성과 노인이 함께 등장하고 있다. 광고하는 세탁기가 앞에 놓여있고, 그 뒤에서 젊은 주부가 미소 띤 얼굴로 세탁한 옷을 들고 있다. 노인은 주부가 들고 있는 옷을 만져보며 놀라움과 만족스러움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 광고에서 노인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손빨래를 해왔던 경험 많은 존재를 상징한다. 바로 그러한 위치에 자리하기 때문에 세탁이 잘 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노인의 놀라움과 만족스러움이 교차하는 표정은 인정의 기호라 할 수 있다. 광고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손빨래를 해왔던 존재가 인정할 만큼 ‘삼성 점보 크리스탈 세탁기’ SEW-450F 모델이 빨래를 잘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손빨래의 우수함 ↔ 세탁기를 이용한 빨래의 열등함’이라는 도식이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광고가 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Figure 15 Advertisement for the ‘Samsung Jumbo Crystal Washing Machine’ model SEW-450F (Samsung Electronics, 1985)

전통적인 방식의 손빨래가 호명되어 나왔던 두 번째 이유는 수입자유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 60년대부터 수출 주도의 산업 활성화 정책을 폈는데, 해외 시장에 국산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국내 시장도 개방해야만 했다. 다른 나라들에 의한 국내 시장개방 압력은 1980년 전후에 이르러 본격화되었다. 수출이 늘면서 압력이 더 커진 것이었다. 이에 정부는 품목에 따라 개방 시기를 조절하면서 시장을 개방해 나갔다.

그런데 가전제품의 경우 특정 품목의 개방이 이루어질 때마다 국내 제조사들은 하나의 대책으로 전통을 불러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1970년대 말 수입자유화 품목에 냉장고가 포함되어 외국산 냉장고가 시장을 장악해 나가자 1981년에 금성사가 냉장실을 늘인 한국형 냉장고를 등장시킨 것이 그 사례였다(Oh, 2021). 1986년 5월에도 301개 품목에 대한 수입자유화가 시행되었는데, 수입자유화 품목에 전자레인지가 포함되자 이듬해인 1987년에 삼성전자가 한국요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세운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내놓았다(Oh, 2023).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1983년 7월에 시행된 수입자유화의 305개 품목에 세탁기가 포함된 것은 주목해야 할 사건이었다(“Import Liberalization,” 1983). 왜냐하면 그 직후부터 빨래판, 빨랫방망이, 삶아 빠는 효과 등을 등장시키며 전통적인 손빨래 방식을 호명하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1984년에 삼성전자가 ‘삼성 점보 크리스탈 세탁기’ SEW-450F 모델을 출시하며 삶아 빠는 효과를 내세운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왜냐하면 삶아 빠는 기능은 한국형 가전제품이 유행하던 1990년대 초 한국형 세탁기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였기 때문이다.

‘한국형 세탁기’라는 표현은 1990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1990년 11월 4일 자 <매일경제>를 보면, 업소용 세탁기 생산 업체인 ‘한국 기계 공업사’가 자사의 세탁기를 ‘한국형 세탁기’로 광고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삶는 빨래는 한국형 세탁기로”라는 광고 문구가 그것이었는데, 이 표현은 해당 제품이 한국형 세탁기인 이유가 빨래를 삶는다는 점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1991년 9월 15일 자 <한겨레>에 등장했던 “가전 업계 ‘한국형’ 제품 개발 열기”라는 제목의 기사(“Consumer Electronics Industry,” 1991)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탁물을 삶아주는 기능을 갖춘 세탁기 등 한국형 제품의 개발에 더욱 힘을 쏟을 계획”이라는 표현은 한국형 세탁기가 세탁물을 삶는 기능에 의해 정의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사가 나온 다음 해였던 1992년에 가정용 삶아 빠는 세탁기가 삼성전자에 의해 출시되었다. ‘삼성 히트 세탁기’ SEW-7588 모델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1992년 6월 29일 자 <경향신문>은 해당 제품의 등장을 알리는 기사(“Boiling Washing Machine,” 1992)에서 “한국형 삶아 빠는 세탁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삶아 빠는 기능에서 시작된 한국형 세탁기는 이후 빨래판, 빨랫방망이, 손빨래 등을 매개로 확장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1991년 12월 4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삼성 히트 세탁기’ SEW-7060 모델 광고의 슬로건은 “이것이 손빨래 세탁!”이었다. 1993년 6월 10일 자 <동아일보>에 등장한 ‘대우 공기방울 세탁기 파워’ DWF-8580 모델 광고에는 본격적으로 빨랫방망이를 등장시켰다. 그런 모습은 1990년대 중반 무렵까지 이어졌다. 1990년대 초중반의 그러한 모습은 1980년대 중반 세탁기에 나타났던 전통적 빨래 방식의 호명 움직임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1990년대 초중반 한국형 세탁기의 전형적인 모습은 1980년대 중반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반복이 아닐 수도 있다. 즉, 서로 다른 시기에 나타난 반복적 현상이 아니라,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1990년대 중반으로 이어진 기간에 나타난 하나의 현상일 수 있다는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한국형 세탁기 현상은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것이 되고, 1980년대 중반 세탁기에 나타난 전통을 호명하는 움직임은 한국형 세탁기 현상의 출발점에 자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6. 결론

본 연구는 급속한 제품 확산이 나타난 1980년대 중반의 세탁기들과 그것들의 특징, 그러한 세탁기가 등장하게 된 이유와 배경 등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 결과 해당 시기 세탁기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과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이 시기에 세탁기의 용량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세탁기의 용량은 1983년 초에 3.5kg, 1983년 말과 1984년에 4kg, 1985년에 4.5kg, 1986년에 4.7kg으로 점차 커졌다. 1980년대 중반의 이러한 현상 이면에는 교복 자율화 조치가 하나의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1983년 3월에 전면 실시된 교복 자율화로 중고등학생들은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등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청소년들의 의복 소비량 증가로 이어졌다. 그로 인해 가정에서는 빨래를 이전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에 따라 용량이 큰 세탁기 수요가 늘면서 세탁기 크기가 커졌던 것이었다. 또한 이 시기에 2조식에서 1조식으로 세탁기의 형식 변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는 점도 주목해 보아야 한다. 소비의 맥락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변화는 1조식 세탁기가 사용이 편리했기 때문에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1조식 세탁기는 크기를 쉽게 키울 수 있어서 경쟁사들과의 크기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둘째, 이 시기에 절약에서 기능으로 세탁기의 초점이 이동했다. 1979년 발생한 2차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절약이 핵심 화두였던 세탁기는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구체적인 세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쪽으로 개발 방향이 바뀌었다. 제조사들은 세탁 상황에서의 구체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세탁기의 기능과 형식을 통해 구체화한 후, 그것을 소비자에게 제시하는 식으로 고유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이 당시 도출되었던 문제로는 빨래 엉킴, 빨래 손상, 탈수 시 뭉침과 소음 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기계식 조작 방식이 아니라 전자 컨트롤 방식이 본격적으로 채택되기 시작했는데, 디지털 기술의 발전, 첨단 기술에 대한 환상, 여유롭고 편리한 생활에 대한 요구 등이 배경에 자리하고 있었다.

셋째, 이 시기에 의류 건조기를 통한 편리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국산 의류 건조기는 2004년에 처음 출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1980년대 중반에 상품화되어 판매되기 시작했다. 당시 판매되었던 의류 건조기는 별도의 설치대를 통해 세탁기 위에 자리했는데, 기능과 존재 방식이 현재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당시 의류 건조기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것을 통해 편리를 확장하려 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의류 건조기는 1980년대 중반에 세탁을 단순히 옷을 빠는 활동으로만 본 게 아니라, 세탁, 탈수, 건조로 이어지는 일종의 시스템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넷째, 이 시기에 전통적인 빨래 방식을 호명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여기에는 당시 세탁기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게 하나의 원인으로 자리했다. 세탁기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손빨래의 필요성을 환기하는 담론들이 활발하게 유통되었는데, 세탁기를 이용한 빨래보다 손으로 하는 빨래가 더 우수하다는 이해가 그 바탕에 깔려있었다. ‘손빨래의 우수함 ↔ 세탁기를 이용한 빨래의 열등함’은 당시 빨래나 세탁기를 이야기할 때마다 호명되었던 생각의 이미지이자 이해의 도식이었다. 전통적인 방식의 손빨래가 호명되어 나왔던 두 번째 이유는 수입자유화에서 찾을 수 있다. 특정 품목의 개방이 이루어질 때마다 국내 제조사들은 전통을 불러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세탁기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1983년 7월에 시행된 수입자유화 품목에 세탁기가 포함되면서 그런 모습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의 전통적인 방식과 관계되었던 세탁기들과 유사한 제품들이 1990년대 초중반 ‘한국형 세탁기’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반복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1980년대 중반은 한국형 세탁기의 전형들이 만들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장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시기 세탁기에 나타난 전통을 호명하는 움직임은 한국형 세탁기 현상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Notes

1) 이 시기 한국 가전제품의 디자인과 디자인문화에 관한 최근 연구로는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올림픽 이펙트> 전시 도록에 실린 오창섭(Oh, 2021)의 “한국형 제품과 기묘한 근대성”과 박해천(Park, 2021)의 “타임머신, 장치, 그리고 다이어그램”이 있다. 고선정(Ko, 2021)의 “1980~90년대 ‘한국형’ 가전제품의 소비와 물질문화 연구”도 해당 시기를 다루고 있다. 미시적 차원의 연구로는 박해천(Park, 2019)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국내 가전업체의 디자인 전략 연구”, 박해천(Park, 2022)의 “젊은 여성 소비자의 부상과 가전제품 디자인·광고의 변화, 1989~1994”, 박해천(Park, 2022)의 “성숙기 소비사회의 도래와 라이프스타일 개념의 도입”, 오창섭(Oh, 2022)의 “한국형 냉장고의 발전 과정: 1984~1995”, 오창섭(Oh, 2023)의 “1980년대 후반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출현과 확산”, 오창섭(Oh, 2023)의 “1990년대 초중반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번성과 퇴조: 삼성전자와 금성사의 사례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2) 표의 ‘번호’란의 숫자는 본 논문에서 그림(Figure) 번호를 의미한다.

3) 1980년 6월 30일자 <매일경제>의 “가전 업계에 마이콤 선풍”이라는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이콤은 1980년대 초부터 유행하던 용어였다. 금성사는 1983년부터 전자레인지, 히터, 선풍기 등의 제품 이름에 이 용어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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