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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출현과 확산
The Emergence and Expansion of Korean-Style Microwave Ovens in the Late 1980s
  • Chang Sup Oh : Department of Industrial Design, Professor, Konkuk University, Seoul, Korea
  • 오 창섭 :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서울, 대한민국

연구배경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을 제품의 핵심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전자레인지를 말한다. 1987년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그런 움직임은 없었다. 이 모델의 등장 이후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국내 전자레인지 시장의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런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어떠한 맥락에서 출현했고, 어떠한 방식으로 발전해왔는지에 관한 연구는 없었다. 본 연구는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어떠한 배경 속에서 출현했는지, 그리고 이어서 등장한 한국형 전자레인지들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는지를 고찰함으로써 1980년대 후반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전개 양상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방법 본 연구는 기본적으로 광고를 통해 제품을 이해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고 광고에만 의지해 내용에 접근하고 있는 건 아니다. 광고는 물론이고 관련 문헌과 일간지 기사 등의 자료를 기호학과 담론분석의 방법을 통해 분석한 후, 분석된 내용을 비평적 서술의 방법을 통해 구조화함으로써 목적하는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연구결과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출현 이유와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1986년에 본격화된 수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 출현했다. 둘째,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수입자유화 품목에 전자레인지가 포함되면서 국내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개발되었다. 셋째, 기술적 한계 상황에서 변별점을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한국형 전자레인지 개발이 이루어졌다. 넷째, 식문화의 서구화 움직임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출현시킨 배경이 되었다.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 출시 이후,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금성사와 대우전자도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생산하였다. 이들 업체가 생산한 한국형 전자레인지들은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당시 사회문화적 상황 변화에 맞춰 다양한 모습으로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론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을 정체성으로 내세운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수출규제와 수입자유화와 같은 난관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출현하였고, 1980년대 후반의 사회문화적 내용과 관계하면서 국내의 지배적 전자레인지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Abstract, Translated

Background Korean-style microwave ovens refer to microwave ovens that can cook Korean food as their core identity. Until 1987, when the Samsung Korean-style Microwave Oven RE-777BR model appeared, there was no such product. Since the appearance of this model, Korean-style microwave ovens have become the mainstream in the domestic microwave oven market. However, there has been no research on the context in which these Korean-style microwave ovens appeared and how they developed.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eal the diffusion process and design culture of Korean-style microwave ovens in the late 1980s by examining the background in which the first Korean microwave ovens appeared and in what direction they developed.

Methods This study applies a method of understanding products through advertisements. However, this does not mean that the content is approached by relying only on advertisements. After analyzing advertisements, related literature, and daily newspaper articles through the method of semiotics and discourse analysis, the analyzed contents are structured through the method of critical description to derive the desired result.

Results The reason and background of the emergence of Korean-style microwave ovens are as follows. First, the Korean-style microwave oven emerged as a response to difficulties in exports that started in 1986. Second, as microwave ovens were included in the list of import liberalization items, the Korean-style microwave oven was developed to gain a competitive edge in the domestic market. Third, the Korean-style microwave oven was developed as a way to create a point of distinction in a situation where technological development has reached its limit. Fourth, the increased interest in Korean food, which arose as a reaction to the westernization of food culture, served as the backdrop for the development of the Korean-style microwave oven. Following the release of the Samsung Korean-style Microwave Oven RE-777BR model, Korean-style microwave ovens were produced not only by Samsung Electronics but also by GoldStar and Daewoo Electronics. Korean-style microwave ovens produced by these companies emphasized their ability to cook Korean food while showcasing a variety of developments in response to the social and cultural context of the time.

Conclusions The Korean-style microwave oven, which assumed as its identity the ability to cook Korean food, appeared in the process of overcoming difficulties such as export restrictions and import liberalization. Since then, Korean-style microwave ovens have become the dominant type in South Korea, influenced by the social and cultural context of the late 1980s.

Keywords:
Korean-style, Korean-style Home Appliances, Korean-style Microwave Ovens, Korean Design History, 한국형, 한국형 가전제품, 한국형 전자레인지, 한국디자인역사.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한국디자인학회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11 Jan, 2023
Revised: 22 Mar, 2023
Accepted: 22 Mar, 2023
Printed: 31, May, 2023
Volume: 36 Issue: 2
Page: 357 ~ 375
DOI: https://doi.org/10.15187/adr.2023.05.36.2.357
Corresponding Author: Chang Sup Oh (changsup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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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ding Information ▼
Citation: Oh, C. (2023). The Emergence and Expansion of Korean-Style Microwave Ovens in the Late 1980s.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6(2), 357-375.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1. 서론

2020년 12월부터 2021년 4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올림픽 이펙트>는 88서울올림픽 전후 한국 디자인과 건축의 양상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였다.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와 사물들, 인터뷰 영상, 작가들의 작업으로 구성된 전시품 중에는 88서울올림픽 전후에 생산돼 사용되었던 가전제품 4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 2점은 TV였고, 다른 2점은 진공청소기와 전자레인지였다. 전시된 전자레인지는 1987년 6월에 출시된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이었다.

그런데 해당 시기에 생산된 많은 전자레인지 중 왜 하필 그 모델이 전시되었을까? 그것은 그 제품이 해당 시기의 주목할 만한 디자인 현상이었던 한국형 가전제품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올림픽 이펙트>에서 전시되었던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은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로,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한국형 전자레인지 유행 현상의 출발점에 자리하는 제품이었다.

한국형 전자레인지란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을 제품 정체성의 핵심으로 내세우는 전자레인지를 말한다. 1987년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그런 성격의 전자레인지는 없었다. 하지만 그 모델의 등장과 함께 전자레인지를 그런 방식으로 정의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자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곧바로 국내 전자레인지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만 아니라 금성사와 대우전자도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왜 하필 그때 출현한 것일까? 그리고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을까?

본 연구는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어떠한 맥락 속에서 출현했는지, 그리고 이어서 등장한 한국형 전자레인지들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는지를 고찰함으로써 1980년대 후반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양상과 확산 배경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2장에서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인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과 그것의 출현 배경을 다루었다. 3장에서는 RE-777BR 모델 이후에 한국형 전자레인지들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는지를 제조사별로 고찰한 후, 발전이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이유를 밝히고 있다.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다룬 연구는 소수에 불과하다. 오창섭(Oh, 2015)의 연구 “90년대 한국형 가전제품의 풍경”에서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다루었지만, 한국형 전자레인지라는 현상이 있었음을 확인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고선정(Ko, 2021)도 “1980~90년대 ‘한국형’ 가전제품의 소비와 물질문화 연구” 4장 1절에서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다루었으나, 한국형 가전제품의 하나로 일부 사례를 나열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지금까지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어떠한 맥락에서 출현했고, 어떠한 방식으로 발전해갔는지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는 없었다.

본 연구는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이 출현한 1987년부터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대세를 형성하며 뚜렷한 현상으로 자리한 1989년까지 3년간의 기간을 시간적 범위로 취하고 있다. 하지만 논의 전개에 필요한 경우, 그 이전 사례도 내용에 포함했다.

본 연구는 기본적으로 광고를 통해 제품을 이해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광고가 기록 저장 매체로서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어 관련 내용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당 시기에 출시된 의미 있는 전자레인지 모델들이 모두 광고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광고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디자인과 관련 내용을 보여주고 있어서 비교하기 수월하다는 이점이 있다. 게다가 시공간적 맥락과 밀접한 관계성을 형성하는 광고의 속성으로 인해 제품이 자리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그렇다고 본 논문이 광고만을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자레인지 모델들의 디자인과 소구점을 고찰하는 데는 광고를 1차 자료로 이용하고 있지만,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는 관련 문헌과 일간지 기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논문은 그런 대상과 자료들을 기호학과 담론분석의 방법을 통해 분석한 후, 분석된 내용을 비평적 서술의 방법을 통해 구조화함으로써 연구가 목적하는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2.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출현과 그 배경

1987년 6월에 출시된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은 한국형을 내세운 최초의 전자레인지였다. Figure 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모델의 구조는 기존 전자레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좌측에 조리실, 우측에 조작부라는 전형적인 전자레인지의 배치를 따르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몇 가지 고유한 특징이 있었다. 우선 용량이 커졌다. 그전까지 삼성전자가 생산하던 모델들의 용량은 22리터, 28리터, 30리터였던 반면, RE-777BR 모델의 용량은 32리터였다. 둘째, 기존 모델들과 비교할 때 가로 폭이 조금 긴 형태를 띠었다. 조리실의 용량이 늘어나면서 제품의 비례가 달라진 것이었다. 세 번째 특징적인 부분은 조작부의 형태였다. 상태를 알려주는 작은 디지털 계기판이 상단에 자리했고, 그 아래에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의 분홍과 파란색으로 되어 있는 조작 버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제품의 가격은 239,000원으로 다른 제품에 비해 비싼 편이었다.


Figure 1 An advertisement for Samsung Korean-style microwave oven model RE-777BR (Samsung Electronics, 1987)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이 한국형 전자레인지인 것은 한국인이 주로 먹는 밥이나 찌개 같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해당 제품의 광고에 잘 나타나 있다. 1987년 6월 18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RE-777BR 모델의 광고(Figure 1)를 보면, 화면 중앙에 “밥도 되고 찌개도 되는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탄생!”이라는 문구가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구의 존재 형식과 내용은 밥과 찌개를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전자레인지를 한국형 전자레인지이게 하는 핵심 요소임을 보여주고 있다. 화면 상단의 음식 사진들은 물론이고, 등장인물 옆 작은 말풍선 속 “쌀밥, 잡곡밥, 된장찌개, 생선찌개, 닭찜, 생선조림 ⋯ 메뉴만 골라주면 혼자서 척척!”이라는 표현도 한국형인 이유가 요리할 수 있는 음식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요리할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를 통해 전자레인지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모습은 이 시기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 이전까지 전자레인지는 편리함이나 경제성, 빠른 조리 속도, 품질의 우수함 등을 통해 정의되고 홍보되었다.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이 등장하기 몇 달 전에 대우전자가 출시한 ‘대우 터치식 전자레인지’ KOR-604ET 모델(Daewoo Electronics, 1987)의 경우만 하더라도 터치식이라는 점, 예약 조리 기능을 갖추었다는 점, 해동에서 조리까지 한 번에 이루어진다는 점 등을 내세웠을 뿐이다. 그보다 1년 전에 나온 ‘금성 콤비 그릴 오븐 전자레인지’ ER-611HB 모델(GoldStar, 1986)도 그릴 오븐 기능을 갖추었다는 점, 회전식 테이블을 갖추었다는 점, 빨리빨리 익혀준다는 점, KS마크를 획득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물론 음식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추상적으로 여러 음식을 손쉽게 요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을 뿐, 구체적으로 한식을 언급하거나 주목하지는 않았다. 삼성전자의 경우도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을 선보인 1987년 이전까지는 빨리 고르게 조리가 된다는 점, 청소하기 쉽고 위생적이라는 점, 내부가 넓다는 점을 통해 제품을 정의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1987년 삼성전자는 어떤 이유로 한국 음식을 주목하게 되었고, 그런 음식을 요리할 수 있는 점을 내세우며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등장시킨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처음 선보인 삼성전자가 당시 어떠한 상황에 있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매일경제>의 기사(“The microwave age,” 1979)에 의하면 국내 최초로 전자레인지를 개발한 것은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가 전자레인지를 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한 1979년만 하더라도 가열하지 않고 음식을 익히는 전자레인지의 조리 방식은 낯선 것이었다. 그런 방식의 낯섦과 사회적으로 만연했던 에너지 절약 분위기 등으로 인해 국내에서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는 삼성전자가 당시에 생산한 전자레인지 대부분이 수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1983년에 100만 대(“Samsung Electronics surpassed,” 1983), 1984년에는 200만 대의 수출(“Exceeded 2 million,” 1984)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국내 시장 홍보에서 이러한 수출 실적을 자사 제품이 우수하다는 증거로 활용했다.

1984년 12월 19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삼성전자 ‘컴퓨터 전자레인지’ RE-850TC 모델 광고(Figure 2)는 그런 움직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광고는 “삼성 전자레인지는 왜 해외에서도 인기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 바로 아래에 제품 이미지를 보여주며 다음과 같은 답을 제시하고 있다. “1. 기술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2. 품질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3. 세계 유명 전자레인지가 채택하고 있는 전자샤워 방식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이다. 그렇게 이 광고는 삼성 전자레인지가 해외에서 인기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을 통해 광고를 마주한 소비자는 기술과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에 삼성 전자레인지가 해외에서 인기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Figure 2 An advertisement for Samsung microwave oven RE-850TC model (Samsung Electronics, 1984)

그런데 RE-850TC 모델 광고는 그러한 명시적 의미만을 발산하고 있는 게 아니다. 광고는 광고를 마주한 소비자들이 함축적 의미 또한 떠올리도록 자극하고 있는데, 그 함축적 의미는 명시적 의미를 만들어내는 해석의 움직임과는 다른 방향, 다시 말해 원인과 결과를 역전시키는 움직임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게 형성된 함축적 의미는 한마디로 ‘해외에서 인기 있는 제품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수출이 많이 되는 제품이기 때문에 기술과 품질이 뛰어나다’라는 것이다. 이 함축적 의미는 ‘기술과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에 해외에서 인기 있다’라는 명시적 의미 위에 겹쳐져 제품에 대한 긍정적 이해와 느낌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중요한 것은 광고의 함축적 의미가 광고 표현 자체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함축적 의미는 광고를 마주한 소비자의 관심과 욕망, 그들이 자리한 사회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앎의 체계로부터 만들어진다. 주디스 윌리암슨(Williamson, 2007)이 “광고는 이미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적 사고로부터 나온 부스러기를 사용한다.”라고 주장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삼성전자 ‘컴퓨터 전자레인지’ RE-850TC 모델 광고의 함축적 의미 역시 예외가 아닌데, 왜냐하면 ‘해외에서 인기 있는 제품이기 때문에 기술과 품질이 뛰어나다’라는 함축적 의미는 이 광고가 만들어진 시기에 유통되던 지식과 관심 체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RE-850TC 모델 광고가 등장한 1984년이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는 사실이다. 두 국제적인 행사는 한국인들에게 세계의 시선을 의식하도록 만들었다. 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직후, 연세대 교수 최정호(Choi, 1981)는 한 칼럼에서 “세계의 눈이 한국을 주시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올림픽을 유치했다는 것은 한국이 스스로 세계의 ‘쇼윈도’ 속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80년대 초부터 세계의 시선을 의식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정부도 그러한 시선을 환기하며 행사를 준비해 나갔다. 세계의 시선을 의식하는 움직임은 그 시선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으로 발전했는데, 이러한 욕망은 해가 갈수록 강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이러한 욕망이야말로 이 광고의 함축적 의미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토대였다.

이듬해인 1985년에도 삼성전자는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음을 환기하는 전략을 이어갔다. 국내 시장에서 이러한 전략을 펼친 바탕이 된 것은 수출 실적이었다. 1985년 삼성전자는 전년 대비 100만 대가 늘어난 300만 대의 전자레인지 수출 실적을 달성하였고, 이를 기념해 국내 시장에서 15% 가격할인 행사를 펼쳤다. 할인 행사를 알리는 광고(Figure 3)가 1985년 9월 4일 자 <동아일보>에 실렸는데, “국내 최초 수출 300만 대 돌파 기념”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케이크 이미지를 배경에 두고 “수출로 얻은 이익 주부님께 돌려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명시적으로 광고는 수출로 얻은 이익을 가격 할인을 통해 국내 소비자에게 돌려준다고 말하고 있지만, 함축적 의미의 맥락에서 유통시키고자 한 것은 수출을 많이 하고 있고 그래서 우수한 제품이라는 이해였다. 이러한 광고가 가능했던 것은 당시 전자레인지가 삼성전자의 주된 수출품 중 하나였고, 수출도 잘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지속되지 못했다.


Figure 3 An advertisement for Samsung Electronics to drastically reduce the price of its microwave oven (Samsung Electronics, 1985)

상황 변화는 1986년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986년 10월 22일 자 <동아일보> 기사(“Dumping case,” 1986)에 따르면, 유럽공동체(EC) 집행위원회는 회원국 대표자 회의를 열고 한국산 전자레인지에 대해 덤핑 판정을 내렸다. 한국 업체들이 공정 가격 이하로 전자레인지를 팔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상반기에 30만 대를 선적한 한국 업체들은 연말까지 유럽 지역의 연간 총 예상 수요량(320만 대)의 37%에 해당하는 117만 대의 전자레인지를 수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유럽공동체 집행위원회의 결정으로 목표 달성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11월 초 프랑스 세관은 규격 검사에서 안전규격과 다른 데가 있다는 이유로 한국산 전자레인지에 대해 통관 보류 결정을 내렸다. 1986년 12월 5일 자 <조선일보> 기사(“The ordeal,” 1986)에 따르면, 해당 조치로 인해 연말까지 15만 대 수출 계획을 세워놓고 제품을 생산하고 있던 한국 업체들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수출의 어려움은 삼성전자에 특히 큰 타격을 입혔다. 삼성전자는 1983년에 마그네트론 생산 공장까지 만들며 수출에 적극적이었고, 그래서 당시 국내 업체 중 가장 많은 전자레인지를 수출하고 있었다. 수출이 어려워지자 새로운 판매 시장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상황이 삼성전자로 하여금 국내 시장에 주목하도록 했다. 왜냐하면 한국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었다. 통계청 자료(“Trends in penetration rate,” 2023)에 따르면 1985년 국내 전자레인지 보급률은 고작 4%였고, 1986년에도 6%에 불과했다. 결국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1986년에 본격화된 수출의 어려움을 국내 시장에서의 판매 확대를 통해 극복하려는 전략적 판단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형 전자레인지 출현의 또 다른 배경으로는 수입자유화를 들 수 있다. 1986년 6월 30일 자 <동아일보> 기사(“Liberalization of imports,” 1986)에 따르면, 그해 5월에 정부는 실크류를 제외한 모든 섬유제품, 컬러TV, 식기류 등 301개의 품목에 대한 수입을 자유화한다고 발표했다. 301개 품목에는 전자레인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국내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차별점이 필요했다. 기술을 통해 그러한 차별점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지만, 기술 개발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 기술의 재배치를 통해 한국형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하나의 돌파구로 받아들여졌다. 사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처음이 아니었다. 오창섭(Oh, 2021)의 연구에 의하면, 이미 1981년에 유사한 배경 속에서 금성사가 한국형 냉장고를 선보인 바 있었다. 비록 제품의 종류는 다르지만, 유사 선례의 존재는 한국 문화를 매개로 한 한국형 전자레인지 개발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복잡하지 않은 전자레인지의 구조와 한계에 이른 기술 상황도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등장시킨 배경으로 볼 수 있다. 전자레인지는 전자파 발생장치인 마그네트론(Magnetron), 마그네트론에 고압 전류를 공급하는 변압기, 열기를 순환시키는 냉각팬, 작동 시간과 강도를 조절하는 조작부, 음식이 조리되는 조리실 등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단순한 구조의 제품이다. 그 때문에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관련 기술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 이르러 국내 제조업체 간 기술의 격차가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제품들 사이의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즉, 기술적 내용만으로는 변별점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이 도래하자 제조사들은 기능은 유사하지만 크기가 다른 제품들을 쏟아내며 소비자들의 선택 폭을 넓히는 전략을 사용했다. <매일경제> 기사(“Microwave oven challenges,” 1986)에 따르면, 1986년만 하더라도 삼성전자가 20여 종, 금성사가 15종, 대우전자가 10여 종의 전자레인지를 생산 판매하고 있었다. 특이점이 없는 제품들의 난립은 기술에 의한 차별화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당시에 이미 그러한 전략도 한계에 처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용자의 생활문화에 기반한 제품 개발이 모색되었고, 그에 따라 한국 음식을 매개로 한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식문화의 변화 역시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출현시킨 배경일 수 있다. 80년대 말에 이르러 한국 사회에는 식문화의 서구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마요네즈, 케첩, 치즈, 건포도, 요구르트 등의 판매 증가는 그러한 변화의 증거였다. 1988년 7월 16일 자 <경향신문>은 “입맛 서구화, 양 외식 호황”이라는 기사(“Booming western food,” 1988)를 통해 이러한 움직임의 심화 현상을 다루었다. 기사는 입맛의 서구화로 인해 코코스, 데니스 등의 패밀리 레스토랑과 피자헛, 맥도날드, 타코벨 등의 패스트푸드 점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밝혔다. 기사 내용은 해당 시기에 이미 입맛의 서구화가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전통과 한국적인 것에 관한 관심은 1980년대 초부터 사회 문화 전 영역에서 걸쳐 나타나고 있었다. 그것은 근대화와 서구화 움직임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그런데 관심의 양상이나 강도는 분야나 영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식문화의 맥락에서 우리 것에 관한 관심은 비교적 늦게 구체화되었다. 이는 식문화의 서구화 움직임이 88올림픽을 전후한 시기에 이르러서야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식문화의 서구화 경향은 비교 대상으로 기능하며 전통 음식과 한국의 식문화를 가시화했다. 그것은 소비 영역뿐만 아니라 생산 영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삼성전자는 식문화의 서구화 경향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현상이라는 사실, 그래서 일반 가정의 식탁에는 여전히 밥, 국, 찌개가 중심 메뉴라는 사실을 주목했다. 1987년 삼성전자가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인 RE-777BR 모델을 광고하면서 밥도 되고 찌개도 된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맥락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광고가 누구를 해당 제품의 사용 주체로 상상하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이것은 ‘제품을 누가 구매할 것인가?’, 즉 ‘제품의 소비자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광고가 상상하는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의 소비자는 서구적 식생활을 즐기는 이들이 아니었다. 식문화의 서구화 경향 속에서도 여전히 한국 음식 문화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인 일반, 그들이 바로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 광고가 상상하는 소비자였다.

3.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발전
3. 1. 금성사

삼성전자가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인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을 출시한 이듬해인 1988년 6월, 금성사도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615HSB 모델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양옆으로 긴 일반적인 전자레인지 형태가 아니라, 높이(400mm)가 폭(312mm)보다 높은 모니터룩 타입이었다. 이러한 형태는 조작부를 조리실 밑에 배치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제품은 오븐과 그릴 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가격이 399,0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었다. <산업디자인> 97호 기사(“1988 Good design products,” 1988)에 따르면, 한경하가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제품은 한국디자인포장센터가 주관한 1988년 우수디자인(Good Design) 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1988년 6월 10일 자 <동아일보>에 등장하는 해당 제품의 광고(Figure 4)를 보면, 중앙에 해당 제품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는 당시 금성사가 판매하고 있는 4대의 전자레인지 제품들을 배치해 놓았다. 그중 가장 아래에 있는 ‘금성 콤비 그릴 오븐 전자레인지’ ER-611HB 모델은 2년 전인 1986년에 출시된 제품으로, 광고하고 있는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615HSB 모델과 유사한 외관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615HSB 모델의 경우는 12개의 요리와 기능을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조작부에 디지털 계기판과 버튼들이 배치되어 있다. 버튼들을 길게 나열한 이유는 사용 과정의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광고에서는 이를 “자동 요리 선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동 요리 선택 버튼에는 스테이크, 케이크, 쿠키와 같은 양식(洋食)도 있지만, 불고기와 같은 한국 음식명도 있다. 거기에 더해 데우기, 데치기, 볶음, 밥 짓기 등의 버튼이 있는데, 이는 한국 음식을 만들 때 필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제품이 한국형 전자레인지인 것은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요리할 수 있는 음식 때문이다. 설명 부분의 “각종 찜, 국, 볶음, 불고기, 밥까지 맛있게 조리하는 한국형”이라는 표현이나 “알아서 데치고, 끓이고, 볶고, 찌고, 밥까지 뜸 들여서 맛있게 내놓는 한국형”이라는 표현은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Figure 4 An advertisement for Korean-style GoldStar Microwave one touch ER-615HSB model (GoldStar, 1988)

1989년에도 금성사는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내놓았다. Figure 5의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917HSB 모델이 그것인데, 1989년 11월 9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해당 제품의 모습을 보면 전체적 비례가 모니터룩 타입이었던 ER-615HSB 모델과 달리, 일반적인 전자레인지 모양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제품의 모서리 부분이 곡선으로 처리돼 있어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문을 아래로 잡아당겨 여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광고에서는 그렇게 열린 문이 선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제품은 한국형 전자레인지로 홍보되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할로겐 빛으로 120가지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 이는 당시 금성사가 한국형 전자레인지 개발에 있어 삼성전자만큼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Figure 5 An advertisement for Korean-style GoldStar microwave one touch ER-917HSB model (GoldStar, 1989)
3. 2. 삼성전자

1987년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출시했던 삼성전자는 이듬해인 1988년 8월에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688BR 모델을 출시했다. 1988년 8월 17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해당 모델의 광고(Figure 6)를 보면, 제품 형태가 1년 전에 출시된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느낌을 자아내는 이유는 제품의 전체 색상과 비례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달라진 부분들이 많다. 우선 문 여는 방식이 바뀌었다.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의 경우는 문에 달린 손잡이를 당겨서 문을 열도록 디자인되어 있었지만, 이 모델은 조작부 하단에 살짝 튀어나온 버튼을 눌러 문을 열도록 디자인되었다. 조작부 상단에 자리한 상태를 알려주는 디지털 계기판의 크기도 커졌다. 그렇게 조작부에 문 열림 버튼이 추가되고 계기판이 커지면서 전체적인 버튼 배치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688BR 모델은 한국인이 즐겨 먹는 6개의 음식, 즉 밥, 국, 찌개, 조림, 탕, 볶음 버튼을 별도로 두어 원터치로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12개의 음식을 원터치로 요리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615HSB 모델을 의식한 디자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스테이크, 케이크, 쿠키, 롤빵을 포함했던 금성사와 달리 한국 음식에 해당하는 내용으로만 버튼을 구성했다.


Figure 6 An advertisement for Samsung Korean-style microwave oven RE-688BR model (Samsung Electronics, 1988)

1988년 8월 17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688BR 모델 광고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이탈리아 해외 무역공사 사무국장 부인을 모델로 등장시키고 있는 점이다. 광고 속에서 그녀는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덕택에 된장찌개의 참맛을 알게 됐어요”라고 말하고 있다. 여러 한국 음식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서 말이다. 물론 그러한 음식을 차릴 수 있는 것은 한국 요리 전문가인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덕분이다. 이 광고에 백인 여성을 등장시킨 것은 그런 외국인에게 인정받을 만큼 제품이 우수하고 사용하기 쉽다는 이해를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이런 모습은 이듬해인 1989년 7월 25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동일 제품의 광고(Figure 7)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광고 속 화자는 한복을 입은 부인이다. 화자는 신혼일기라는 형식을 통해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688BR 모델에 얽힌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한국 가정을 방문하길 원하는 남편 회사의 미국 바이어 부부를 초대해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로 한국 음식을 차려 대접했더니 만족해했다는 것이다. 이 광고에서 핵심은 외국인의 인정이다. 일차적으로는 화자가 차린 한국 음식에 대한 외국인의 만족과 인정이지만, 그것은 곧 삼성전자라는 한국 기업이 만든 전자레인지에 대한 외국인들의 만족과 인정으로 확장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광고는 앞서 2장에서 살펴본 1984년의 삼성전자 ‘컴퓨터 전자레인지’ RE-850TC 모델 광고의 연장선상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Figure 7 An advertisement for Samsung Korean-style microwave oven RE-688BR model (Samsung Electronics, 1989)

1989년의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688BR 모델 광고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부분은 신혼부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해당 제품의 소구 대상이 신세대 신혼부부임을 보여주고 있다. <매일경제> 기사(“All-out war,” 1988)에 따르면 80년대 후반 들어 전자레인지는 혼수품의 하나로 자리하였고, 그에 따라 기업이 그들을 주목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히 마케팅 차원에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에 소비자의 계층과 유형에 따라 제품을 개발하는 모습이 본격화되었는데, 이는 2년 전 한국 음식을 즐기는 한국인 가구 일반을 소구 대상으로 삼았던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움직임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1989년의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688BR 모델 광고 하단에 나열된 4개의 전자레인지가 크기에 따라 사용 대상을 각각 대가족용과 핵가족용으로 구분하고 있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1989년 11월 삼성전자는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07GMW 모델을 출시했다. 1989년 11월 4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해당 제품 광고(Figure 8)를 보면, 금성사의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917HSB 모델처럼 문을 아래로 잡아당겨 여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릴과 오븐 기능도 채용하고 있으며, 그래서 다른 제품에 비해 고가였다. 제품은 16가지 종류의 한국 음식과 바비큐까지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 음식만을 고집하지 않는 이러한 움직임은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 등장 이후 나타난 전자레인지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광고 하단에 나열된 4개의 제품에 “한국형 센서, 한국형 핵가족형, 한국형 표준형, 10만 원대 실속형”이라고 각각 표기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가족의 규모만이 아니라 경제적 상황이나 취향 등을 매개로 소비자 구획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Figure 8 An advertisement for Samsung Korean-style microwave oven RE-707GMW model (Samsung Electronics, 1989)

광고에서 알 수 있듯이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07GMW 모델은 특히 맞벌이 신혼부부를 소구 대상으로 취하고 있다. 제품의 배경에도 아파트 복도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는 신혼부부가 등장한다. 그들 위로 “누가 식당 당번 되든 상관있나요?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있는데!”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 문구는 젊은 세대의 평등한 가정 내 관계를 토대로 등장한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 가정 내 성역할에 대한 젊은 층의 인식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변화의 내용은 1989년 5월 4일부터 5월 28일까지 10회에 걸쳐 연재된 <한겨레> 신문의 “젊은 가정, 사회를 바꾼다”라는 시리즈 기사(“Young families change society,” 1989)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리즈의 첫 기사 제목은 “‘가사는 여자일’ 고정관념 사라져”였다. 기사의 핵심은 젊은 신혼부부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사회생활을 남성들만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가사를 여성들만의 일로 여기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3. 3. 대우전자

대우전자도 1989년에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대우 한국형 전자레인지’ KOR-647G 모델이 바로 그것인데, 이 모델은 좌우로 긴 삼성전자의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과 상하로 긴 금성사의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615HSB 모델의 중간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1989년 1월 12일 자 <조선일보>에 해당 제품 광고(Figure 9)가 등장하는데, “23가지 한국 요리가 버튼 하나로 OK! 대우 한국형 전자레인지”라는 표현을 전면에 내걸었다. “요리 중 수분을 잘 조절해야 제맛이 살아나는 갈비찜, 된장찌개, 생선조림 ⋯ 이젠 습도 센서로 음식 본래의 맛을 살려주세요”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제품은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한국형 전자레인지라 할 수 있다. 이 제품의 가격은 207,000원으로 해당 시기 출현한 한국형 전자레인지 중 가장 저렴하다.


Figure 9 An advertisement for Daewoo Korean-style microwave oven KOR-647G model (Daewoo Electronics, 1989)

‘대우 한국형 전자레인지’ KOR-647G 모델을 출시하고 몇 달 후 대우전자는 ‘대우 한국형 전자레인지’ KOR-801G 모델을 내놓았다. KOR-801G 모델은 KOR-647G 모델과 유사한 형태였지만, 조리실 쪽 조작부를 조리실 문과 동일하게 처리하면서 전체적으로 조리실이 커진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제품 버튼의 형태가 원으로 처리되어 있는 것도 특징적인 부분이다. 1989년 8월 31일 자 <경향신문>에 해당 제품의 광고(Figure 10)가 등장하는데, KOR-647G 모델 광고에서처럼 23가지 한국 음식이 버튼 하나로 요리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광고에서 흥미로운 점은 제품이 자리하고 있는 주방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다. 수직과 수평의 격자형 공간에서 하얀 육면체 형상의 전자레인지는 공간을 구성하는 한 요소인 것처럼 자리하고 있다. 수납장, 식탁 등과 어우러져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 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공간을 연상시키는 주방에서 전자레인지는 아일랜드 식탁처럼 보이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중요한 것은 가스레인지보다 식탁에 더 가깝게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만큼 유용하고 가깝다는 의미일 것이다. 광고는 신혼인 여성을 모델로 내세우고 있다. “첫날부터 요리 합격! 신부 합격! 요리 솜씨 하나는 새댁 같지 않다나요?”라는 설명 글을 통해서 모델이 신혼의 여성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이는 앞서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688BR 모델 신혼일기 광고에서처럼 해당 제품이 신세대 신혼부부를 소구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Figure 10 An advertisement for Daewoo Korean-style microwave oven KOR-801G model (Daewoo Electronics, 1989)
3. 4.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발전 및 확산 배경

1987년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등장한 이래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빠른 속도로 전자레인지 분야의 지배종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어떤 배경이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경쟁사의 움직임에 대한 반응이라는 차원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산업화 시기부터 한국의 가전제품 생산 업체들은 상대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성장해왔다. 한 기업이 특정 분야에 뛰어들면 다른 기업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 분야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자레인지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 1979년 삼성전자가 전자레인지를 처음으로 생산하자 다음 해인 1980년에는 대한전선도 전자레인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81년에는 금성사도 생산에 참여했다. 1983년 대한전선이 대우전자에 매각되면서 가전 3사 체제가 완성되었는데, 이후 3사의 경쟁이 본격화됨에 따라 이러한 모습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1987년에 삼성전자가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등장시키며 홍보에 나서자 금성사가 다음 해인 1988년에, 대우전자가 그 이듬해인 1989년에 같은 움직임을 보였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전 3사의 치열한 경쟁 관계는 1980년대 후반 한국형 전자레인지 확산 현상을 만들어 낸 하나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확대되는 국내시장 개방 움직임을 들 수 있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본격화된 3저 현상(저금리, 저유가, 저환율)에 힘입어 한국의 수출은 호조세를 보였다. 수출 호조와 그에 따른 경상수지 개선은 국내시장에 대한 개방 압력으로 이어졌다. 이에 정부는 시장개방 계획을 마련해 속도를 조절하며 순차적으로 국내시장을 개방해 갔다. 하지만 시장개방 압력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해졌다. <매일경제> 기사(“Strong demand,” 1988)에 의하면 1988년 유럽 의회는 “한국이 공정무역을 가로막는 매우 높은 통상장벽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통상장벽을 철폐하고 국내시장을 개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미국도 꾸준히 한국의 시장개방을 요구했다. 1989년 2월 27일 방한한 부시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보호무역주의는 안이한 탈출구같이 보일지 모르나 그것은 가장 빠른 쇠퇴의 길”(“Bush asks Korea,” 1989)이라고 주장하며 시장개방을 직접적으로 요구했던 것은 당시 분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시장개방 압력이 거세지고, 그에 따라 시장개방이 확대되면서 한국의 가전업체들은 국내시장에서 외국 제품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형’을 내세운 제품은 시장 방어를 위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형 전자레인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1989년 5월 30일 자 <매일경제> 기사(“Flood of foreign imports,” 1989)는 “수입 개방 물결을 타고 외제 상품 수입이 급증하자 ⋯ 기업들은 ⋯ 고급제품 개발 ⋯ 디자인 개선을 통해 시장방어에 나서고 있다”라고 전하였는데, 여기서 디자인 개선을 통한 고급 제품이란 1980년대 후반에 쏟아지기 시작한 한국형 제품들을 일컫는다. 실제로 다른 한국형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 후반의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디자인이 개선된 고가의 고급 제품으로 생산되어 판매되었다.

그런데 기업에서 한국형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소비자가 외면했다면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포함한 한국형 가전제품은 확산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기 시작한 한국형 제품의 유행 현상은 한국형 전자레인지 확산의 배경으로 주목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왜 당시에 그러한 유행이 나타났을까? 한국형 제품이 소비자들의 물리적 차원의 필요와 사회적인 요구를 충족시켜주었기 때문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그와 더불어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과 같은 국제행사의 영향으로 강화된 우리 것에 대한 사회적 관심, 그리고 근대화와 산업화에 따른 급속한 사회 변화의 결과로 나타난 심리적 불안과 불안정을 전통에 의지함으로써 해소하려는 움직임 역시 한국형 제품 유행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관심과 심리는 심층적이고 근원적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작동하며 한국형 제품의 유행을 이끌었다. 당시 그런 유행을 보여주는 제품으로는 1986년 금성사가 출시한 빨래판 세탁기 WF-920AH 모델이 있다. 이 제품은 손빨래나 삶아 빠는 등의 전통적 방식을 소환함으로써 인기를 얻었다. 한국형 제품의 유행은 냉장고 소비에서도 나타났는데, 1988년의 ‘김치 싱싱고’와 같이 한국 고유의 음식인 김치 보관을 특징으로 하는 제품이 출현해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 후반의 한국형 전자레인지도 이러한 한국형 제품의 유행이 있었기 때문에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달라진 소비자의 성향과 소비문화도 한국형 전자레인지 확산의 중요한 배경이었다. 1985년 3월 19일 자 <조선일보>의 “밀려드는 개방압력 외제 안 사야 외채 이긴다”라는 기사(“We win,” 1985)에서 전경련 전무 신봉식은 “국내시장을 개방해도 국민들이 수입품을 외면하는 정신자세가 없으면 국제수지 개선과 외채상환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이러한 담론은 시장개방 초기만 하더라도 유효하게 작동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소비자들은 점차 소비 외적인 논리가 아닌 소비 자체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비 자체의 논리에 따르면 국내시장 개방은 양질의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購入)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좋은 것이었다. <조선일보> 기사가 나가고 3년 후인 1988년, 한국소비자보호원의 ‘경제 및 사회구조 변화에 따른 소비자 보호의 방향’이라는 세미나 내용을 보도하면서 <동아일보>(“Accelerating the opening,‘ 1988)는 다른 목소리를 주목했다. “수출 극대화와 수입 극소화 정책”의 청산을 이야기한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 양수길이 그 주인공이었는데, 그는 시장개방이 가격 인하, 소비자 선택 범위 확대, 국산품 질 향상, 독과점 규제 등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요한 점은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소비 자체의 논리를 따르는 움직임이 빠르게 확대되어갔다는 사실이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이 상징하는 정치적 지형의 변화와 경제적 호황, 88서울올림픽 전후 사회구조와 가치관의 변화는 소비사회의 양상들을 출현시켜나간 토대로 자리했다. 핵가족화는 더욱 강화되어갔고, 맞벌이 확대 등의 영향으로 가정에서 여성의 영향력도 확대되어갔다. 소비 대중들은 소비를 통해 물리적 욕구 충족만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며 삶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1980년대 말에 본격화된 이러한 변화를 기업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따라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연구하고, 그에 기반한 제품 생산이 이 시기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박해천(Park, 2019)과 오창섭(Oh, 2021)의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금성사의 LSR팀은 1980년대 말 기업 내에서 그런 움직임이 본격화되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말 한국형 전자레인지의 확산 현상은 생산의 측면에서나 소비의 측면에서 근대가 곧 서구로 이해되던 시대의 움직임과는 다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근대 서구 기술의 무조건적 수용이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매개로 한국인의 생활 공간에 새롭게 자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경제적, 물적 토대의 변화는 물론이고 사회와 문화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등과 맞물리면서 더욱 고유한 모습으로 발전해갔다. 1980년대 말 가전 3사의 한국형 전자레인지 광고를 보면 신혼부부나 젊은 세대의 생활 방식에 호소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달라진 소비 주체의 라이프 스타일과 그에 대한 기업의 반응이 어떻게 만나 발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4. 결론

본 논문은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후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어떻게 발전하고 확산하였는지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한국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제품 정체성 형성의 핵심 요소로 활용한 전자레인지를 말한다.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1987년에 출시된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이다. 이 제품은 밥과 찌개를 요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품 정체성의 핵심으로 내세웠는데, 그런 모습은 이전에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연구 결과 1987년에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출현한 배경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1986년에 본격화된 수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모색의 한 산물이었다. 수출의 어려움은 새로운 시장 개척의 필요성을 만들어냈는데, 그 과정에 국내시장이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며 한국형 전자레인지 개발로 이어졌다는 말이다. 둘째, 1986년 수입자유화 품목에 전자레인지가 포함되면서 국내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한국형 전자레인지 개발이 필요했다. 셋째, 복잡하지 않은 전자레인지의 구조와 한계 상황에 이른 기술 발전의 문제로 변별점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면서 사용자의 생활문화에 기반한 한국형 전자레인지 개발이 요구되었다. 넷째, 식문화의 서구화 움직임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한국 고유의 음식을 주목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냈고, 그러한 움직임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한국형 전자레인지 개발이 이루어졌다.

1987년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이 출시된 이후, 1988년과 1989년에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금성사와 대우전자가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80년대 후반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전자레인지 시장의 지배종이 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 가전 3사가 생산한 주요 한국형 전자레인지들의 이름과 특징은 Table 1과 같다. 이 시기 한국형 전자레인지들은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 토대를 두면서도 고유한 특징들을 만들어내며 발전해 나갔다.

Table 1
Major Korean-style microwave ovens produced by three Korean home appliance companies in the late 1980s

년도 주요 한국형
전자레인지 제품
제품의 특징 소구 대상 가격 제조사
1987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77BR 모델
- 최초의 한국형 전자레인지
- 한국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는 점만 강조
일반 한국 가구 239,000 삼성전자
1988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615HSB 모델
- 오븐과 그릴 기능
- 자동 요리 12개 선택 버튼
- 조리실 밑에 조작부가 배치된 모니터룩 타입
젊은 한국 가구 399,000 금성사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688BR 모델
- 버튼을 통한 문 개폐
- 6개의 한국 음식 버튼을 별도로 두어 원터치로 요리
일반 한국 가구
(1988)
신혼부부
(1989)
235,000
(1988)
220,000
(1989)
삼성전자
1989 ‘대우 한국형 전자레인지’
KOR-647G 모델
- 23가지 한국 음식 요리 버튼을 두어 원터치로 요리
- 저렴한 가격
일반 한국 가구 207,000 대우전자
‘대우 한국형 전자레인지’
KOR-801G 모델
- 단순하고 현대적인 외형
- 23가지 한국 음식 요리 버튼을 두어 원터치로 요리
신혼부부 234,000 대우전자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RE-707GMW
- 16가지 한국 음식 요리와 바비큐 요리 가능
- 문을 아래로 잡아당겨서 여는 방식
- 그릴과 오븐 기능
맞벌이
신혼부부
385,000 삼성전자
‘한국형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ER-917HSB 모델
- 할로겐 빛으로 120가지 요리 가능 일반 한국 가구 450,000 금성사

1980년대 말 한국형 전자레인지가 지배종이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와 배경이 있었다. 우선 가전 3사 체제가 형성된 이후, 경쟁사의 움직임에 빠르게 반응하는 기업의 역동성은 확산의 배경이 되었다. 전자레인지 제조사들은 한국형 전자레인지를 1980년대 말에 이르러 더욱 강화된 국내 시장 개방 움직임에 대한 효과적 방어 수단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소비자가 외면했다면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소비 영역에 자리하고 있던 전통과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은 이 맥락에서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관심이 한국형 전자레인지는 물론이고, 한국형 세탁기나 한국형 냉장고 등을 유행시킨 동력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달라진 소비자의 성향과 소비문화였다.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소비자들 사이에는 소비 자체의 논리를 따르는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소비를 통해 물리적 욕구 충족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확인받으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진 것이다. 이러한 소비 영역의 변화는 생산 영역으로 환류해 기업으로 하여금 소비자들의 생활과 라이프 스타일을 주목하며 제품을 개발하도록 만들었다. 바로 이런 배경과 원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1980년대 후반 한국형 전자레인지 발전과 확산 현상을 만들어갔던 것이다.

Acknowledgments

This work was done by 2021 Konkuk University Research 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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