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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의 공직선거 투표 경험 분석: 비밀선거권의 침해와 투표보조용구의 비실용성
What Eligible Voters with Visual Disabilities Experience in Public Official Elections in South Korea: Violation of Secret Ballot and Unusable Voting Aid
  • Eunjung Lee : Institute of Humanities, Senior Research Fellow,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 이 은정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서울, 대한민국

연구배경 본 연구는 시각장애인들이 공직선거에 참여하여 투표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경험을 가지는지를 실증적으로(empirically) 분석하고자 한다. 이는 ‘모두를 위한 투표 경험 디자인’(Universal Design for New Voting Experience)이라는 궁극적 목표 아래 시각장애인들에게 불균등한 투표 경험을 유발하는 차별적 요인을 탐색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연구는, 시각장애인의 선거권 보장을 위한 모든 공공서비스는 비(非)시각장애인들과 동등한 투표 경험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연구방법 시각장애인들의 공직선거 투표 경험에 관한 실증자료(empirical data)를 수집하기 위해 총 세 차례의 사회조사를 수행하였다. 1차 조사에서는 경상남도 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김해지회의 사무장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여 사전 문헌조사에서 확보할 수 없었던 정보를 수집하였다. 2차 조사에서는 김해시 시각장애인 60명을 대상으로 구조화된 질문지를 사용하여 대면 설문조사를 수행하였다. 3차 조사에서는 2차 조사에 참여한 시각장애인들 중 10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하여 2차 조사에서 새롭게 발견된 문제들을 중점으로 더욱 세밀하게 질의하였다.

연구결과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 시각장애인들의 투표 경험에서 발견된 가장 차별적이고 심각한 문제는 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이 비시각장애인들과 달리 비밀선거의 원칙이 위배되는 환경에서 기표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수한 상황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원인으로 인해 유발된다. 첫 번째 원인은 비밀선거권의 보장을 유보하는 방식으로 시각장애인의 선거권을 보장하고 있는 현행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의 위헌성이며, 두 번째 원인은 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이 사용을 기피하는 현행 점자형 투표보조용구의 비실용성이다.

결론 본 연구는 향후 해결 방안의 세 가지 원칙과 공공서비스디자인 가이드라인을 결론으로 제안한다. 첫째, 시각장애인의 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은 헌법이 보장하는 비밀선거의 원칙을 절대적–우선적으로 준수한다는 전제 아래 강구되어야 한다. 둘째, 투표보조용구의 사용성이 시각장애인의 독자적인 기표 행위를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개선되어야 한다. 셋째, 시각장애인의 투표 편의를 위한 모든 도구들은 유니버설디자인의 관점에서 장애 정도뿐만 아니라 점자 독해력의 편차를 고려하여 개발되어야 한다.

Abstract, Translated

Background This study aims to empirically analyze what experiences eligible voters with visual disabilities have in South Korean public official elections. The study investigates the discriminatory factors that cause them an unequal voting experience for the ultimate goal of ‘Universal Design for New Voting Experience.’ This study starts from the awareness that all public services are guaranteed the right to vote for people with visual disabilities, which should be designed in a way that guarantees them an equal voting experience with the non-disabled.

Methods Three stages of social research were conducted to collect empirical data on the voting experience of people with visual disabilities. In the first stage, the general manager of the Gimhae Chapter of the Gyeongnam Welfare Association for the Blind was interviewed in depth. In the second stage, a face-to-face survey was conducted on 60 people with visual disabilities living in Gimhae using structured questionnaires. In the third stage, in-depth interviews were conducted with 10 of the visually disabled who had participated in the second survey, and questions were asked in more detail, focusing on the problems newly discovered in the second survey.

Results As a result of the analysis, the most discriminatory and serious problem found in the voting experience of the visually disabled is that many of them, unlike people without visual disabilities, vote in an environment where the secret ballot has been violated. This special situation is caused by the following two reasons. The first reason is the unconstitutionality of Article 157(6), The Public Official Election Act, guarantees the right to vote for the visually disabled in a way that waives the guarantee of the right to vote in secret. The second is the impracticality of the current braille-type voting aid, which many visually disabled people avoid using.

Conclusions This study proposes three principles of solutions and public service design guidelines as a conclusion. First, measures to guarantee the right to vote for people with visual disabilities should be devised on the premise that the secret ballot guaranteed by the Constitution is absolutely and preferentially observed. Second, the usability of the voting aid should be improved to the extent that it can guarantee the independent voting of the visually disabled. Third, all tools for voting convenience of the visually disabled should be developed in consideration of not only the degree of disability but also the deviation of braille reading comprehension from the perspective of universal design.

Keywords:
Visual Disabilities, Voting Experience, Secret Ballot, Braille-type Voting Aid, Universal Design, 시각장애, 투표 경험, 비밀선거, 점자형 투표보조용구, 유니버설디자인.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한국디자인학회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22 Feb, 2022
Revised: 06 May, 2022
Accepted: 06 May, 2022
Printed: 31, Aug, 2022
Volume: 35 Issue: 3
Page: 231 ~ 247
DOI: https://doi.org/10.15187/adr.2022.08.35.3.231
Corresponding Author: Eunjung Lee (febei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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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ding Information ▼
Citation: Lee, E. (2022). What Eligible Voters with Visual Disabilities Experience in Public Official Elections in South Korea: Violation of Secret Ballot and Unusable Voting Aid.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5(3), 231-247.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1. 연구 목적 및 필요성

시각장애인은 공직선거에 참여하여 투표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경험을 하는가? 시각장애인은 과연 비(非)시각장애인과 동등한 투표 경험을 가지는가? 시각장애인의 불균등한 투표 경험을 유발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본 연구는 ‘모두를 위한 투표 경험 디자인’(Universal Design for New Voting Experience)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위해 유니버설디자인의 관점에서 이와 같은 일련의 질문을 제기하고, 시각장애인의 투표 경험을 실증적으로(empirically) 분석함으로써 답을 구하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는 다음과 같은 필요성에 기인한다.

첫째, 선거권은 모든 국민의 기본권으로, 장애인은 이를 행사함에 있어서 차별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는 현대 민주사회에서 보편적 가치를 지니는 정의(justice)의 원칙이자 헌법의 정신이다. 그러나 법률로써 제도화되어 있을지라도 실제 현실에서 구현되지 않고 서류상의 약속으로만 머문다면, 그것은 기본권이라고 말할 수 없다. 모든 국민에게 주어진 선거권은 오직 모든 유권자의 경험으로 구현될 때 실질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투표 경험에 관한 본 연구는 시각장애인의 선거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는 목적의식에서 출발한다.

둘째, 서비스디자인의 문제의식과 같이 제도를 설계하는 것과 그것이 의도한 대로 경험이 구현되는 것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 마련이므로, 분석과 디자인의 대상은 제도가 아니라 경험이 되어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공직선거법 등은 시각장애인의 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시각장애인의 투표 행위에 관한 제도적 조건을 구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일체를 분석한다고 해서 시각장애인이 실제로 어떠한 투표 경험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발견하거나 대안적 제도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모든 작업은 실제 경험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본 연구가 시각장애인의 투표 경험에 분석의 초점을 두는 이유이다.

셋째, 동일한 제도적 조건에서도 유권자들마다 상이한 또는 불균등한 투표 경험을 가질 수 있으므로, 디자인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유권자들에게 동등한 투표 경험을 보장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모두를 위한 투표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최종 목표는 바로 이러한 함의를 지닌다. 그리고 본 연구는 그것의 일환으로서 시각장애인들이 공직선거에서 실제로 어떠한 투표 경험을 가지는지를 조사하고, 특히 비시각장애인들과는 다른 투표 경험을 하게 만드는 요인들을 발견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하고자 한다.

넷째, 연구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시각장애인들의 실제 투표 경험을 분석한 연구는 선행된 바가 거의 없다. 시각장애인의 정치적 권리에 주목한 연구가 소수 있으나(Yang, Lee, Zhang & Choi, 2015; Yun, 2016; Kong, 2021), 법학적 접근을 통해 헌법 및 공직선거법상의 특정 규정에 한정된 국소적·형식적 권리를 다루었을 뿐 실제 경험으로까지 분석을 확장하지 않았다. 그 밖에 관련 연구는 사회복지학 영역에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의 투표 참여 경험을 질적으로 분석하면서 시각장애인은 단 2명만을 포함시킨 연구 1건(Ryu, 2017)과 시각장애인 및 지체장애인의 투표 참여 여부에 편의서비스가 미치는 영향력을 통계적으로 검증한 행정학 연구 1건(Shin & Lee, 2021)에 불과하다.

반면, 본 연구는 다음의 측면들에서 이러한 선행 연구들과 차별된다. 첫째, 시각장애인들을 직접 대면하여 그들 자신의 투표 경험에 대한 양적·질적 자료를 수집한다. 둘째, 사전부터 특정한 국면 또는 사안으로 시야를 한정하지 않고, 일련의 과정으로서의 투표 경험 전반을 분석하여 문제를 새롭게 발견한다. 셋째, 국내 시각장애인 전체를 대표할 만큼 충분히 크거나 확률표집을 통해 표본의 대표성을 확보한 것이 아님을 명확히 밝힌다는 전제하에, 선행 연구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시각장애인들을 조사 대상으로 한다. 넷째, 상기 선행 연구들의 분야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줄곧 사회과학이 전유해온 연구문제를 유니버설디자인의 관점으로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투표 과정에서 시각장애인들이 비시각장애인들과는 다르게 직면하게 되는 차별적 문제들을 발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다음의 제2장에서는 연구의 방법으로서 우선 투표 경험을 분석하기 위한 틀(framework)을 설정하고, 이러한 분석틀에 입각하여 실제 시각장애인들의 투표 경험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사회조사(social research)를 설계한다. 제3장에서는 조사의 결과를 분석하는데, 분석틀에 제시한 투표 경험의 유무와 유형, 그리고 각 단계에서 관찰된 주요한 특징들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제4장에서는 조사 결과의 종합을 통해 시각장애인의 투표 경험에서 가장 차별적이고 심각한 문제를 도출한 후 이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마지막 제5장에서는 결론으로서 연구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고, 앞서 분석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해결 방안의 원칙과 공공서비스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안한다.

2. 연구 방법
2. 1. 분석틀

본 연구에서 투표 경험(voting experience)이란 유권자가 선거에 관한 정보를 획득하는 단계에서부터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가지게 되는 일련의 경험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화에 따라 시각장애인의 투표 경험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본 연구는 Table 1과 같이 분석틀을 설정하였다. 우선 발생할 수 있는 투표 경험을 세 가지로 유형화하였는데, 첫 번째 유형은 선거 당일에 투표소에 방문하여 투표하는 경우, 두 번째 유형은 사전투표 기간에 사전투표소에 방문하여 투표하는 경우, 세 번째 유형은 거소투표 신고를 하고 자택이나 병원 등에서 우편으로 투표하는 경우이다.

Table 1
Types and Process of Voting Experience

Types Process
Type1 당일투표 선거정보
획득
집에서
투표소까지
왕복

투표소 내
이동 및 기표
Type2 사전투표 선거정보
획득
집에서
투표소까지
왕복

투표소 내
이동 및 기표
Type3 거소투표 선거정보
획득
신고서 작성
및 제출
우편
수령 및
발송
거소 내
기표

이후 각 유형별로 전개되는 투표 경험의 과정을 몇 개의 주요 단계로 세분화하였다. 당일투표와 사전투표는 투표일을 제외하고 동일한 과정을 거치는데, ① 후보자와 공약 등 선거 관련 정보를 획득하는 단계, ② 집에서 투표소까지 이동하는 단계, ③ 투표소 안에서 이동하며 투표용지를 수령하고, 기표소에서 기표하고, 투표함에 투입하는 단계, ④ 투표소에서 집까지 이동하는 단계로 구성된다. 한편, 거소투표의 경우에는 ① 선거 관련 정보를 획득하는 첫 번째 단계 후부터 전혀 다른 절차로 진행되는데, ② 거소투표 신고서를 수령하여 작성한 뒤 해당 기관에 제출하는 단계, ③ 거소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우편으로 수령하는 단계, ④ 머물고 있는 자택, 병원 등에서 거소투표용지에 기표하는 단계, ⑤ 거소투표용지를 회송용 봉투에 넣어 우편으로 발송하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2. 2. 조사 설계 및 수행

본 연구는 시각장애인의 투표 경험에 관한 실증적 자료(empirical data)를 수집하기 위해 Table 2와 같이 총 세 차례의 사회조사를 수행하였다. 일련의 조사는 상기 분석틀뿐만 아니라 이전 단계에서 발견되는 내용에 기초하여 분석을 점차 심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그리고 모든 조사는 경상남도 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김해지회의 도움을 받아 김해시에 거주하는 시각장애인들과 주요 관계자를 대상으로 2018년 9월 약 한 달간 진행되었는데, 조사 설계와 초기 분석 내용의 일부를 동년 가을 한국디자인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소개한 바 있다.

Table 2
Research Design

Stages Subjects Contents
1차 심층 인터뷰 경상남도 시각장애인
복지연합회 김해지회 사무장
시각장애인의 장애유형·인구통계학적 정보,
공직선거 참여현황·지원정책 등에 관한 질의 및 자료 수집
2차 대면 설문조사 김해시 시각장애인 60명 유형별·단계별 투표 경험에 관한 구조화된 질문지
(40개 질문)를 사용, 면접원이 질문 읽어주고 응답 기입
3차 심층 인터뷰 2차 조사에 참여한
시각장애인 10명
2차 설문조사를 통해 새롭게 발견된 내용에 관해
심층 인터뷰

우선 1차 조사에서는 상기 복지연합회 김해지회의 사무장을 여러 차례 만나 협조를 요청하고, 본 연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항들에 대해 광범하게 질문하면서 사전 문헌조사를 통해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던 정보를 수집하였다. 국내 시각장애인의 현황과 장애 유형, 지역사회 내 관련 단체의 가입 현황과 활동을 비롯하여 직접 목격한 관내 시각장애인들의 공직선거 참여 양상, 관련 기관 및 단체가 제공하는 시각장애인 투표지원 서비스와 이용 현황 등이 이에 포함된다.

2차 조사에서는 김해시에 거주하는 시각장애인 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수행하였으며, 조사 대상자들의 특성은 Table 3과 같다. 대상자들은 상기 복지연합회 김해지회를 통해 모집되었는데, 모두 본 연구에 관한 사전 설명을 듣고 조사 참여에 동의한 시각장애인들이다. 문헌조사 및 1차 조사의 내용에 기초하여 앞서 분석틀에 제시된 유형별·단계별 투표 경험에 관한 33개의 질문과 인구통계학적 정보에 관한 7개의 질문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사전 훈련된 조사원이 조사 대상자 개개인을 대면한 상황에서, Figure 1과 같이 구조화된 설문지의 지시에 따라 질문을 읽어주고 응답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하였다.

Table 3
Characteristics of the 2nd Research Subjects

Variables Properties Frequency (%)
연령 30대 4 (6.7%)
40대 10 (16.7%)
50대 15 (25.0%)
60대 18 (30.0%)
70대 이상 13 (21.7%)
성별 남성 32 (53.3%)
여성 28 (46.7%)
학력 초졸 이하 6 (10.0%)
중졸 28 (46.7%)
고졸 23 (38.3%)
대졸 이상 3 (5.0%)
가구 1인 가구 17 (28.3%)
2인 이상 43 (71.7%)
시각장애 전맹 33 (55.0%)
약시 27 (45.0%)
전체 60 (100.0%)


Figure 1 Part of the Structured Questionnaire

3차 조사에서는 시각장애인 10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수행했는데, 2차 조사를 통해 새롭게 발견된 문제들에 집중하여 투표 경험을 더욱 세밀하게 분석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이에 2차 조사의 응답자들 중 투표 경험이 한 번 이상 있고, 다시 한 번 심층 인터뷰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 지원자 10명을 인터뷰 대상자로 선정하였다. 대상자가 직접 겪은 투표 경험의 전 과정을 상기 분석틀에 따라 단계별로 세세하게 구술하도록 하면서 특히 2차 조사에서 발견된 문제들에 대해 자세히 파고들어 캐묻고 응답을 청취하였다. 인터뷰 대상자 1명당 30∼60분가량의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모두의 동의를 얻어 전 과정을 녹취하고 사후 녹취록을 분석하였다.

더불어 1, 2, 3차 조사의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김해시 선거관리위원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여러 차례 정보 공개를 요청하였다. 관할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마련하고 있는 시각장애 선거인을 위한 투표 지원 지침 및 절차, 투표보조용구의 모형 및 제작·보급 방식, 선거공보 자료집 등이 이에 포함된다.

상술한 바와 같은 일련의 조사를 통해 시각장애인의 투표 경험에 관한 양적·질적 자료가 다량 수집되었으며, 통계분석, 내용분석 등으로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본 조사 대상은, 규모가 크지 않고 특정 지역에서 편의표집을 통해 선정되었기 때문에, 국내 시각장애인 전체를 대표한다고 간주할 수 없다. 다만, 본 연구자 개인의 역량으로는 국내 시각장애인들의 모집단 명부를 확보하여 확률표집을 수행하는 작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에, 접촉이 가능한 단체를 통해 최대한의 협조를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점을 시인한다. 그럼에도 모든 공직선거는 관련 법률에 입각하여 표준화된 절차에 따라 치러진다는 점, 시각장애인들의 보편적 조건은 작은 규모의 표본에서도 관찰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조심스럽게 고려하여, 단정적 사실과 일반화로서가 아니라 잠재적 문제와 경향성으로서 분석의 결과를 해석하고자 한다.

3. 조사 결과
3. 1. 투표 경험의 유무 및 유형

조사를 통해 관찰된 시각장애인의 투표 경험 유무 및 유형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은 공직선거에 참여하여 투표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2차 조사의 대상자 60명 중 49명(81.7%)은 한 번 이상의 투표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본 조사 시점에서 가장 최근에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8년 6월 13일)에는 46명(76.7%)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당시 투표율 60.2%를 상회하는 수치로 전체 유권자보다 높은 시각장애인들의 참여도를 보여준다. 상술한 바와 같이 편의표집으로 인한 본 조사 대상의 편향(bias) 가능성을 고려하여 공식 통계를 아울러 살펴보면, 마찬가지로 이와 유사한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장애인복지법 제31조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2014; 2017; 2020), Table 4와 같이 시각장애인의 투표율은 전체 유권자의 투표율보다 뚜렷이 높으며, 전체 장애인 가운데에서도 높은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시각 및 전체 장애인 집단의 높은 투표율은 장애인의 권리와 복지 향상에 대한 강한 열망이 표출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3차 조사에서 나타난 “내가 다른 건 못해도 선거는 항상 참여해왔다”, “국민으로서 신성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우리 장애인들의 대표를 뽑아야 하니”, “할 수만 있으면 꼭 해야 한다” 등의 의견은 투표를 통한 정치참여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Table 4
Turnout Rates in Public Official Elections

June 4, 2014
(6th Local Election)
May 9, 2017
(19th Presidential Election)
April 15, 2020
(21st National Assembly Election)
전체 유권자 56.8% 77.2% 66.2%
전체 장애인 74.8% 84.1% 78.4%
시각장애인 78.0% 88.3% 81.3%

둘째, 시각장애인들은 당일투표와 거소투표보다 사전투표를 더욱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투표 경험이 있는 응답자들 중 65.3%가 가장 최근에 참여한 선거에서 사전투표를 하였고, 나머지 34.7%의 응답자들은 당일투표를 했으며, 거소투표를 한 응답자는 한 명도 없었다. 3차 조사에서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 “투표하는 날(당일)은 복잡해서 시각장애인들은 요즘 다 같이 사전투표를 한다”, “자기 구역이 아니어도 가까운 데로 다 같이 가서 투표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전투표 한다”, “시각장애인들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거소투표는 훨씬 더 어렵다. 나와서 하는 게 더 편하다” 등의 의견이 공통적이었다.

Table 5
2nd Research Result: Existence and Type of Voting Experience

Variables Properties Frequency (%)
투표 경험 한 번 이상
있다
사전투표 32 (65.3%) 49 (81.7%)
당일투표 17 (34.7%)
거소투표 0 (0.0%)
한 번도 없다 11 (18.3%)
전체 60 (100.0%)

3. 2. 투표 경험의 단계별 분석

상술한 바와 같이 본 연구의 조사 대상자들 중 거소투표를 해 본 시각장애인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본 절에서는 분석의 범위를 당일투표와 사전투표로 제한하고자 한다. 그리고 분석틀 Table 1에 제시한 바와 같이 두 유형의 투표 경험은 동일한 단계들-①선거정보 획득, ②·④집에서 투표소까지 왕복, ③투표소 내 이동 및 기표–을 거쳐 전개되므로, 아래에서는 각 단계별로 세분화하여 조사 결과를 분석하고자 한다.

3. 2. 1. 제1단계: 선거정보 획득

선거일을 앞두고 후보자, 공약 등에 관해 정보를 획득하는 단계에서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투표 경험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은 점자형 선거공보를 통해 정보를 획득하지 않는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65조에 따라 후보자는 반드시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형 선거공보를 작성·제출해야 하며, 관할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를 발송해야 한다. 그러나 조사 결과, 그 실질적 유용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차 조사의 대상자 중 25.0%만이 주로 점자형 선거공보를 통해 정보를 획득한다고 응답하였으며, 35.0%는 점자형 선거공보를 아예 받지 못하거나 수령 여부 자체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둘째, 점자형 선거공보의 유용성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누구나 점자를 잘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들의 점자 독해력은 편차가 매우 크며, 특히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지니게 된 많은 경우에는 점자를 거의 읽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2차 조사의 대상자 중 58.4%는 점자를 거의 또는 전혀 읽지 못한다고 응답했으며, 20.0%만이 거의 또는 모두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3차 조사에서도 모든 인터뷰 대상자들이 점자 독해의 어려움과 점자형 선거공보의 무용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우리는 (점자를) 배우지도 못했는데, 일반과 점자를 동시에 보내는 게 아니라 전부 점자 자료만 보낸다. (장애 등급이 높은) 1, 2급이라도 점자 모르는 사람 많다”, “나는 시력을 잃은 지 얼마 안 됐다. 점자 공부를 해보니 머리에 잘 안 들어간다”, “어릴 때부터 전맹이라 맹아학교를 나온 사람들이나 줄줄 읽지, 중도 실명자들은 점차가 참 어렵다”, “점자 한 뭉텅이를 보내는데, 하나도 못 본다. 전부 낭비다”, “주변에 본다는 사람 없다. 오면 재활용 쓰레기에 내다버린다”, “점자를 잘 보는 사람도 아마 안 볼 거다. 그냥 텔레비전 듣고 하는 거지”, “나는 점자를 다 읽을 줄 안다. 그런데 읽는 속도가 상당히 더디다. 너무 남발할 때는 짜증이 나고 다 안 읽어 본다” 등이다.

셋째, 시각장애인들이 선호하는 음성지원 선거공보는 거의 제공되지 않는 실정이며, 이는 시각장애인들의 선거정보 접근성을 매우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상기 공직선거법 제65조 4항에 따르면, 점자형 선거공보의 작성·제출은 후보자의 의무이나, 내용이 음성으로 출력되는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를 책자형 선거공보에 표시하는 것은 가능하기는 하되 의무사항은 아니다. 이로 인해 본 2차 조사에서도 음성이 지원되는 선거공보를 실제로 받아 본 시각장애인은 조사대상자 중 6.7%에 불과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2차 조사의 대상자 중 압도적 다수가 일반적으로 점자보다는 음성 자료를 다소(10.0%) 또는 훨씬(78.3%) 더 선호한다고 응답하였고, 선거공보에 대해서도 같은 비율의 조사 대상자들이 점자와 음성지원이 모두(68.3%) 되거나 음성지원만(20.0%) 되는 자료를 선호한다고 답하였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제작되는 점자형 선거공보의 실효성을 의문시하게 하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선거공보의 형태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Table 6
2nd Research Result: Obtaining Election Information

Variables Properties Frequency (%)
선거정보를
획득하는
가장 주된 수단
TV 20 (33.3%)
가족 또는 지인 19 (31.7%)
선관위가 발송하는 선거공보 15 (25.0%)
라디오 5 (8.3%)
기타 1 (1.7%)
선거공보
수령 여부
받았다 점자형 공보 35 (58.3%)
음성지원 공보 1 (1.7%)
점자 및 음성지원 공보 3 (5.0%)
[소계] 39 (65.0%)
받지 못했다 9 (15.0%)
잘 모르겠다 12 (20.0%)
점자 독해력 전혀 읽을 수 없다 4 (6.7%)
거의 읽을 수 없다 31 (51.7%)
절반 정도 읽을 수 있다 13 (21.7%)
거의 읽을 수 있다 7 (11.7%)
모두 읽을 수 있다 5 (8.3%)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자료 유형
점자를 훨씬 더 선호 1 (1.7%)
점자를 다소 더 선호 0 (0.0%)
점자와 음성을 비슷하게 선호 6 (10.0%)
음성을 다소 더 선호 6 (10.0%)
음성을 훨씬 더 선호 47 (78.3%)
선호하는
선거공보 유형
점자형 공보 2 (3.3%)
음성지원 공보 12 (20.0%)
점자와 음성지원 모두 되는 공보 41 (68.3%)
기타 또는 잘 모르겠다 5 (8.4%)
전체 60 (100.0%)

3. 2. 2. 제2·4단계: 집에서 투표소까지 왕복

집에서 투표소까지 갔다가 투표를 마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왕복의 단계에서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경험의 주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은 타인을 동반하거나 관할 장애인 심부름센터의 차량편의서비스를 이용하여 이동한다. 2차 조사 결과, 투표 경험이 한 번 이상 있는 조사 대상자 중 34.7%는 가장 최근에 참여한 선거에 혼자 이동한 반면, 나머지는 가족이나 지인(26.5%), 또는 활동보조인(38.8%)을 동반하거나 상기 심부름센터가 제공하는 차량(53.1%)을 타고 함께 이동하였다.

둘째, 시각장애인들은 집과 투표소를 왕복하는 과정에서 불편함을 거의 느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최근에 참여한 선거에서 투표소까지의 이동이 어떠했는지를 물어본 결과, 2차 조사에서 투표 경험이 한 번 이상 있는 조사대상자 중 83.7%가 조금(18.4%) 또는 매우(65.3%) 편했다고 응답한 반면, 불편했다는 의견은 전혀 없었다. 3차 조사에서도 인터뷰 대상자들이 이동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과거보다 편해졌다고 평가하였는데, “사전투표날 센터 봉고차가 집 앞에서 태워준다. 도우미 있는 사람은 같이 가고, 도우미 없는 사람은 차량 기사가 손을 잡고, 예닐곱 명이 줄줄이 차를 탄다. 약시들이 전맹들을 도와준다. 손을 잡고 투표소까지 올라간다”, “센터에서 차량을 도와주셔서 남편이랑 같이 못 가도 갈 수 있다”, “도우미 없는 시절에는 투표장까지 가는 게 불편해서 안 갔다. 이제는 기사가 집 앞에서 태워서 집까지 데려다 준다” 등의 의견이 공통적이었다.

셋째, 도우미, 차량 지원 등의 공공서비스는 이동 편의를 크게 향상시킴으로써 시각장애인들이 선거권을 행사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으나, 복지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2차 조사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투표해 본 경험이 없다는 11명의 응답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 “투표소까지 이동이 불편하다”(36.4%)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나타났다. 본 조사대상자들의 경우에는 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김해지회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지회 및 관할 장애인 심부름센터 등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이용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았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조사 대상의 편향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동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각종 네트워크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시각장애인들의 불편함이 훨씬 더 클 것임은 자명하다. 이는 관련 조직과 공공서비스의 네트워크로 시각장애인들을 최대한 포괄시키는 작업이 사회복지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권리 행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Table 7
2nd Research Result: Going to the Polling Place and Coming Home

Variables & Properties Frequency (%)
투표
경험
여부
이동
방식
혼자 이동 17 (34.7%) 49 (81.7%)
타인
동반
가족 또는 지인 13 (26.5%)
활동보조인 19 (38.8%)
(중복응답) 센터 차량 26 (53.1%)
[소계] 32 (65.3%)
이동
편의
매우 편함 32 (65.3%)
조금 편함 9 (18.4%)
보통 8 (16.3%)
조금 불편함 0 (0.0%)
매우 불편함 0 (0.0%)
투표소까지 이동 불편해서 4 (36.4%) 11 (18.3%)
선호하는 후보가 없어서 3 (27.3%)
기표가 불편해서 2 (18.2%)
선거정보가 부족해서 1 (9.1%)
투표소 내 이동이 불편해서 1 (9.1%)
전체 60 (100.0%)

3. 2. 3. 제3단계: 투표소 내 이동 및 기표

투표소에 도착하여 투표용지를 교부받아 기표한 후 투표함에 넣는 일련의 과정에서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경험의 주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투표소 안에서 이동하는 동안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대체로 이 과정을 편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2차 조사 결과, 투표 경험이 한 번 이상 있는 시각장애인들 중 93.9%가 투표소 안에서 활동보조인(40.8%), 가족 또는 지인(26.5%), 자원봉사자(26.5%) 등과 함께 이동하였고, 이 과정에 대해 77.6%가 조금(24.5%) 또는 매우(53.1%) 편했다고 응답하였다. 김해시 선거관리위원회의 설명에 따르면, 투표소에 한 명씩 배치되는 투표관리관의 직무교육 시 시각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선거인들의 투표 편의를 지원하기 위해 투표관리 매뉴얼이 전달된다고 한다.

둘째, 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은 기표소 안에 타인을 동반하여 출입하는 경향이 있다. 2차 조사에서 투표 경험이 한 번 이상 있는 시각장애인들 중 24.5%는 기표소에 혼자 출입하였고, 75.5%는 한 명(69.4%) 또는 두 명(6.1%)의 타인과 함께 들어갔다고 응답하였다. 동반자는 활동보조인(30.6%), 자원봉사자(28.6%), 가족 또는 지인(20.4%), 참관인(2.0%) 등의 순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는데, 3차 조사의 인터뷰 대상자들도 도우미, 심부름센터 직원, 투표소 봉사자, 남편, 아내, 동생, 참관인 등과 함께 출입하였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셋째, 많은 시각장애인들은 자신이 직접 점자형 투표보조용구를 사용하여 기표하기보다, 기표소 안에 함께 들어간 타인에게 선택하고자 하는 후보자를 말하여 대신 기표하게 하는 방식을 취한다. 2차 조사 결과, 투표 경험이 한 번 이상 있는 시각장애인들 중 71.4%가 일반 투표용지를 교부받았고, 26.5%만이 점자형 투표보조용구를 사용하였다. 또한 53.1%는 직접 기표한 반면, 46.9%는 활동보조인, 가족 또는 지인, 자원봉사자 등이 대신 기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특수한 상황은 시각장애인의 선거권 행사에 관한 법률과 점자형 투표보조용구의 사용성 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Table 8
2nd Research Result: Moving in the Polling Place and Filling in a Ballot

Variables & Properties Frequency (%)
투표
경험
여부
투표소

이동
방식
혼자 이동 3 (6.1%) 49 (81.7%)



가족 또는 지인 13 (26.5%)
활동보조인 20 (40.8%)
자원봉사자 13 (26.5%)
[소계] 46 (93.9%)
투표소

이동
편의
매우 편함 26 (53.1%)
조금 편함 12 (24.5%)
보통 8 (16.3%)
조금 불편함 1 (2.0%)
매우 불편함 2 (4.1%)
기표소
출입
방식
혼자 출입 12 (24.5%)



*중복
선택
가능)
가족 또는 지인 10 (20.4%)
활동보조인 15 (30.6%)
자원봉사자 14 (28.6%)
참관인 1 (2.0%)
[소계] (*2인 동반: 3명) 37 (75.5%)
투표
용지
유형
일반 투표용지 35 (71.4%)
점자형 투표보조용구 13 (26.5%)
잘 모르겠다 1 (2.0%)
기표
방식
직접 기표 26 (53.1%)



가족 또는 지인 7 (14.3%)
활동보조인 9 (18.4%)
자원봉사자 6 (12.2%)
잘 모르겠다 1 (2.0%)
[소계] 23 (46.9%)
11 (18.3%)
전체 60 (100.0%)

4. 종합
4. 1. 문제 1: 비밀선거원칙의 위배와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의 위헌성

상기 조사 결과들을 종합하면, 시각장애인의 투표 경험에서 나타나는 가장 차별적이고 심각한 문제는 제3단계에서 발견된 특수한 기표 상황과 제1·3단계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 점자형 도구들의 낮은 사용성 문제로 압축될 수 있다. 사실 양자의 문제는 상호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본 절에서는 더욱 근본적이고 중대한 전자의 문제에 먼저 주목하고자 한다.

이는 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이 비밀선거의 원칙에 위배되는 환경에서 기표한다는 점이다. 비밀선거의 원칙이란 어느 유권자가 어느 후보자에게 투표했는지를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도록 투표의 내용에 대한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보통·평등·직접선거와 더불어 민주적 선거를 구성하는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앞서 분석한 바와 같이 많은 시각장애인들은 한 명 이상의 타인을 동반하여 기표소에 출입하며, 직접 기표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원하는 후보를 말하여 그가 대신 기표하게 하는 방식으로 투표한다.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비밀이 보장되는 폐쇄적인 기표소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 공개적인 공간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특수한 상황은 현행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에 의거하여 발생한다.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항은 본 연구자의 정보 공개 요청에 따라 김해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제공한 장애인 투표 편의 지원 매뉴얼에 보다 구체화된 지침으로 반영되어 있었는데, “혼자서 기표할 수 없는 시각장애선거인 ⋯ 은 그 가족(1인도 가능)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하여 기표소 내 투표를 보조받을 수 있음을 안내”하고, “선거인 본인이 지명한 자가 없거나 가족 아닌 자가 1인인 경우에는 투표참관인의 입회하에 투표사무원 중에서 2인이 되도록 선정하여 투표보조”를 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조항은 시각장애인의 선거권 행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현실적 고려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타인의 보조를 동원해서라도 선거권 자체가 무력화되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에서이다. 그리고 가족이 아닐 경우 보조인을 2인까지 동반하게 하는 이유는 선거인의 의사가 왜곡되지 않고 투표용지에 정확히 표기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해석될 수 있다. 보조인이 정치적 의도로 인해 또는 무의식적 실수로 인해 시각장애선거인이 말한 바로 그 후보자에게 기표하지 않을 가능성을, 또 다른 보조자의 견제를 통해 차단하려는 것이다.

3차 조사의 인터뷰 대상자 중 2인의 보조인을 동반한 경험이 있는 시각장애인들도 이런 정황을 유사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가족이 들어가면 한 사람,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따라 들어오더라고. 그래야 어디에 찍는지 알지”, “부부나 부모자식 같은 가족은 나랑 둘이만 들어가고, 가족 아닌 경우에는 도우미하고 참관인하고 나, 이렇게 총 3명이. 찍으라고 말만하면 도우미가 찍어주는데, 도우미가 이쪽 편이면 모를까, 저쪽 편이면 안 되니까” 등으로 구술하였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들로 하여금 이와 같이 특수한 상황에서 기표하게 하는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과 이에 의거한 지침은 다음의 이유들로 인해 근본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첫째, 상기 조항과 지침은 시각장애인의 투표의 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헌성을 지닌다.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를 보장하는 헌법 제41조 1항과 제67조 1항에 위배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공직선거법의 다른 조항과도 충돌한다. 공직선거법 제167조에 따르면, “투표의 비밀은 보장되어야 한다. 선거인은 투표한 후보자의 성명이나 정당명을 누구에게도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진술할 의무가 없으며, ⋯ 선거인은 자신이 기표한 투표지를 공개할 수 없으며, 공개된 투표지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당사자인 시각장애인들은 투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며, 타인이 대신 기표하는 상황으로 인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2차 조사의 대상자들에게 “기표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내가 선택하는 후보자를 알게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본 결과, 53.3%가 부적절하다(다소: 18.3%, 매우: 35.0%)고 응답했으며, 적절하다는 응답은 18.4%(다소: 11.7%, 매우: 6.7%)에 불과했다(보통: 28.3%). 그리고 3차 조사의 인터뷰 대상자들은 자신의 의사가 왜곡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공통적으로 호소하였는데, 다음의 구술에 이런 정황이 잘 드러난다.

“⋯ 가장 아쉬운 것은 선거 네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하는데, 내가 직접 못하니까 상당히 아쉽지. ⋯ 내가 C를 좋아하면, C를 좋아하는 사람을 데리고 가야 한다. 한 번은 집사람을 데리고 가는데(가려고 했는데), 나는 문재인, 집사람은 박근혜를 좋아했다. 그래서 믿을 수가 없어서 안 데리고 갔다. 딴 데 찍으면 어떻게 하나? 내 표가 확실히 그 사람한테 찍어질 수 있도록 행사될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간다. 하나마나 오히려 반대쪽 표를 늘려주게 된다.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표가 갈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찾는다. 그래도 남의 손보다는 내가 직접 찍을 수 (있어야 하는 데, 그럴 수) 없는 게 아쉽다.”

셋째, 상기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 및 투표 편의 지원 지침이 엄격하게 준수되지 않아 기표소 내 보조인 동반 출입을 허가한 법률의 취지가 퇴색되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지침은 가족 간 신뢰를 무조건 가정하고 있다. 실제 현장에 직접 적용되는 지침에 따르면, “가족(1인도 가능)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할 수 있되, “가족 아닌 자가 1인인 경우 ⋯ 투표사무원 중에서 2인이 되도록 선정하여 투표보조”를 해야 한다. 그런데 우선 이는 바로 앞 단락에서 인용한 인터뷰 구술에서처럼 정치적 견해가 다른 가족의 존재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또한 지침과 달리, 2차 조사에서는 타인을 동반하여 기표소에 출입한 시각장애인 중 64.9%(24명)가 가족이 아닌 1명의 보조인만을 동반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가족을 동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참관인을 한 명 더 동반한 경우도 한 사례 있었다. 이는 3차 조사에서 인터뷰 대상자들이 왜 다음과 같이 불편함과 동시에 불안감까지 드러냈는지를 설명해준다. “센터 직원(활동보조인)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직원하고 들어가면 그게 좀 그렇다. 비밀이 없으니까. 참관인이 따라오긴 왔는데, 밖에 서 있고 기표소 안에는 안 들어왔다. 직원이 제대로 찍었을지 그것도 모르겠다.” “도우미만 있어도 믿을 수 없다. 들어오려면 꼭 두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한테 말하는 건 영 편하지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혼자 하면 좋겠다.” “내 도우미랑 갔는데, 나는 참관인이 없어서 제대로 찍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못 보니까, 일대일로 들어가니까 그걸 모르겠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상기 조항 및 지침의 위헌성 여부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의 기표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4. 2. 문제 2: 점자형 투표보조용구 및 점자형 선거공보의 비실용성

시각장애인의 투표 경험에서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문제는 제1·3단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점자형 도구들의 낮은 사용성 문제로, 그중 특히 점자형 투표보조용구는 바로 앞 절에서 분석한 시각장애인의 기표 방식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점자형 투표보조용구가 유용할수록 시각장애인들이 기표소 안에서 타인의 투표보조를 받을 필요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점자형 투표보조용구의 비실용성은 시각장애인들의 투표의 비밀이 침해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점자형 투표보조용구의 법적 근거는, 공직선거법 제151조 8항 “구·시·군선거관리위원회는 시각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를 할 수 없는 선거인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특수투표용지 또는 투표보조용구를 제작·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공직선거관리규칙 제74조 2항 “⋯ 특수투표용지를 작성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중앙위원회가 정하는 바에 따라 투표보조용구를 작성하여 ⋯ 시각장애선거인에게 제공할 수 있다”와 동조 3항 “제2항의 규정에 의한 투표보조용구는 시각장애선거인이 투표용지의 기표란에 표를 하기 쉽도록 작성하여야 한다” 등이다.

이러한 법률에 의해 제작된 현행 점자형 투표보조용구는 Figure 2와 같다. 왼쪽은 본 연구자의 정보 공개 요청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공한 모형이며, 오른쪽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사용된 실물(중부매일, 2018)이다. 선거명, 기호, 정당명, 후보자명이 점자로 인쇄된 일종의 종이 틀(frame)로, 그 안쪽에 투표용지를 삽입한 후 네모난 구멍에 기표용구를 이용하여 기표하는 방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설명에 따르면, 선거당일 투표소에는 시각장애선거인 수만큼, 사전투표소에는 관내선거인용과 관외선거인용을 각각 5매씩 비치한다. 단, 사전투표를 하는 관외선거인의 경우에는 선거구를 미리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선거명만이 점자로 인쇄된 투표보조용구에 후보자의 수에 맞춰 점자 기호 스티커를 부착하고, 초과된 기표란은 막음스티커로 차단하여 교부한다(Figure 2의 오른쪽 참조).


Figure 2 Voting Aids for Voters with Visual Disabilities

그런데 현행 점자형 투표보조용구는 시각장애인들의 독자적인 투표권 행사를 돕는 도구로서 다음과 같은 한계를 노정한다. 첫째, 실제로 이를 사용하여 기표하는 시각장애인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 장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2차 조사에서 투표 경험이 한 번 이상 있는 시각장애인들 중 26.5%만이 점자형 투표보조용구를 사용하여 기표하였고, 71.4%는 비(非)시각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반 투표용지를 교부받아 기표한 것으로 나타났다(Table 8 참조).

둘째, 이처럼 시각장애인들이 점자형 투표보조용구의 사용을 기피하는 현상은 그것의 낮은 사용성에 기인한다. 3차 조사를 통해 그 이유를 분석한 결과, 투표보조용구의 사용이 불편하다는 중론이 장애 등급 및 점자 독해력의 편차와 무관하게 시각장애인들 사이에 폭넓게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편하다고들 해서 나는 한 번도 사용 안 해봤다”, “나는 점자를 다 읽을 줄 아는데도 점자기표도구 이용해서 하는 거 한 번도 안 해봤다. 다른 시각장애인들한테 물어봤는데, 끼우다가 비뚤어질 수도 잘못 맞물릴 수도 있고. 딴 데 엉뚱한 곳에 찍으면, 또 두 개 세 개 찍으면 안 되고. 유효표가 되어야 하는데 무효표 될까봐 못했다”, “사용해 봤다. 근데 좀 불편했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기표소에) 혼자 들어가게 되면, 어디에 찍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사용해 봤는데, 네모칸(기표란) 구멍 안에 제대로 들어갔는가, 동그라미(기표)가 선에 겹쳐지진 않았나 너무 걱정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힘들었다. 어떤 종이가 구청장(투표용지)인지도 모르겠고, 또 칸 안에만 찍으면 되는데, 맞춰보니까 너무 좁았다. 혼자서는 안됐다. 그래서 대리로 찍어달라고 해서 찍었다.” 이와 같은 구술 내용은 현행 투표보조용구의 개선이 시급함을 시사한다.

셋째, 점자형 투표보조용구의 사용자 범위는 모든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점자를 아주 능숙하게 독해할 수 있는 소수의 시각장애인에 한정된다. 게다가 기표소 안에서 느껴지는 초조함과 압박감은 점자를 어느 정도 독해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까지도 점자형 투표보조용구의 사용을 꺼리게 만들어 실제 사용자 범위를 더욱 좁히는 경향이 있다. 다음의 구술에는 이러한 상황의 어려움이 잘 드러나 있다. “점자를 읽을 수 있어도 점자지(점자형 투표보조용구)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게다가 오래 걸리니까. 뒤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안에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안 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점자형 투표보조용구의 사용을) 안 하게 되었다”, “나는 점자를 읽기는 하는데, 지난 번(지방선거)처럼 후보(투표용지)가 많은 경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뒤에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게 많이 불편했다. 중간까지 읽다가 그냥 신랑보고 읽어달라고 하고 투표했다.”

이러한 상황은, 앞 장에서 분석한 점자형 선거공보의 문제와 더불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구를 점자 형태로만 고안하는 기존의 접근법에 문제를 제기하게 한다. 기존의 접근법은 시각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점자를 능숙하게 독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비(非)시각장애인들에게 언어가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것과 같이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점자가 그와 동일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에 참여한 시각장애인들 중 오직 20.0%만이 점자를 거의 또는 모두 읽을 수 있다고 응답한 점(Table 6 참조)을 보더라도 이는 비현실적이며 점자형 도구들의 실용성을 필연적으로 낮추는 전제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구들이 기존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모색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5. 결론
5. 1. 해결 방안의 원칙 제안

본 연구는 유니버설디자인의 관점에서 시각장애인들의 공직선거 투표 경험에 대한 조사를 수행하여 시각장애인들이 과연 비시각장애인들과 동등한 투표 경험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요인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불균등한 투표 경험을 유발하는지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시각장애인들의 투표 경험에서 발견된 가장 차별적이고 심각한 문제는, 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이 비밀선거의 원칙이 침해되는 환경에서 기표한다는 점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 문제는 특히 두 가지 원인, 첫째, 현행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의 위헌성과 둘째, 점자형 투표보조용구의 비실용성에 기인한다고 분석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향후 해결 방안이 다음과 같은 원칙하에 모색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첫째, 시각장애인의 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은 헌법이 보장하는 비밀선거의 원칙을 절대적·우선적으로 준수한다는 전제 아래 강구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현행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은 시각장애인의 비밀선거의 권리를 유보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각장애인의 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서 최소한도로 적용되기보다는, 편의상의 타협책으로서 엄준한 경계 없이 빈번하게 적용되는 경향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비밀선거의 권리를 포기하는 방식은 선거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며, 다음과 같은 여타의 방식들이 충분히 시도된 이후에만 취해져야 한다.

둘째, 그 일차적 시도로서, 투표보조용구의 사용성이 시각장애인의 독자적인 기표 행위를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7조에 따르면, 국가는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니는데, 여기에는 “장애의 유형 및 정도에 적합한 기표방법 등 선거용 보조기구의 개발 및 보급”이 포함된다. 그러나 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이 투표보조용구를 사용하여 직접 기표하기보다 차라리 타인의 보조를 받아 대신 기표하게 하려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할 때, 상기 법률상의 국가의 의무가 충분히 이행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후속 연구를 통해 현행 투표보조용구의 사용성이 개선되는 동시에 다수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실용성이 큰 대안적인 투표보조용구가 새롭게 개발될 필요가 있다.

셋째, 시각장애인의 투표 편의를 위한 모든 도구들은 유니버설디자인의 관점에서 장애 정도뿐만 아니라 점자 독해력의 편차를 고려하여 개발되어야 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현행 선거공보와 투표보조용구는 모두 점자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그 실용성과 사용성은 애당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모두 점자를 능숙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장애를 가지게 된 시점, 장애 정도 등에 따라 독해력의 편차가 매우 크다는 사실이 간과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속 연구는 점자 형태에 국한되지 않는 방식으로 도구들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5. 2. 공공서비스디자인 가이드라인의 제안

본 연구는 분석 결과 및 앞 절에서 제시한 해결 방안의 원칙에 기초하여 시각장애인의 선거권 보장을 위한 공공서비스디자인 가이드라인을 결론으로 제안한다. 향후 개선 또는 개발이 요구되는 공공서비스를 투표과정의 각 단계에 따라 도식화하면 Figure 3과 같다. 선거정보를 획득하는 제1단계에서는 점자 독해력의 편차를 고려하여 대다수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유용할 수 있는 음성출력형 안내서비스를 점자형과 동시에 필수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집과 투표소를 왕복하는 제2·4단계에서는 기존의 이동지원 차량 및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관내 시각장애선거인 모두와 연결시키는 안내·신청 서비스를 보급하여 필요 시 어떤 시각장애인이라도 이에 쉽게 접근하여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Figure 3 Proposal of Public Service Design Guidelines for Voters with Visual Disabilities

특히 본 연구는 본론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제3단계에서 발생하는 비밀선거권의 침해가 가장 차별적이고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하므로, 이 문제의 해결에 주력하여 공공서비스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안한다. 다음과 같은 일련의 공공서비스는 시각장애인이 독자적으로 기표할 수 있는 유무형의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투표의 비밀을 보장하는 효과를 거두는 데 목표가 있다.

첫째, 중하수준의 점자 독해력을 지닌 시각장애인들도 정확히 기표할 수 있도록 사용성이 개선된 점자형 투표보조용구를 디자인한다. 초급수준의 점자만을 최소한도로 이용하여 필수 정보를 표기하고, 무효표를 발생시키지 않는 적정 크기로 기표칸을 표시하며, 투표용지가 말려들어가거나 밀리는 것을 방지하면서 쉽게 끼고 뺄 수 있는 적합한 소재를 사용하여 제작한다.

둘째, 점자를 전혀 읽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도 사용할 수 있는 비(非)점자형 투표보조용구 또는 기표 방법을 개발한다. 이어폰으로 음성이 안내되는 터치스크린과 기표 즉시 투표지를 인쇄해주는 출력장치를 기표소 내에 비치하는 방법, 후보자의 이름 또는 기호 등을 직접 표시하거나 구멍을 뚫는 기표 방법 등이 광범하게 고려될 수 있다.

셋째, 시각장애인들이 상기 점자형·비점자형 투표보조용구의 사용 방법을 숙달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를 다각도로 마련한다. 관내 모든 시각장애선거인에게 투표보조용구의 사용 방법을 설명해주는 점자형·음성형 안내와 투표보조용구의 모형을 보급하고, 선거 전 관련 기관과 선거일 투표소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사용 방법을 직접 알려주는 교육서비스와 연습 기회를 충분히 제공한다.

넷째, 장애인 전용 기표소를 각 투표소 내 최소 1개 이상 설치한다. 뒤에 대기 중인 다른 유권자들의 존재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부담을 느끼게 하여 독자적인 기표를 시도조차하지 못하고 보조인의 대리기표를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시간의 압박을 경감하고 여유를 가지고 기표할 수 있도록 전용 대기선과 기표소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시각장애선거인의 의사에 따라 투표보조를 위해 가족, 지인, 투표사무원, 투표참관인 등의 타인이 함께 기표소에 출입하는 경우에도, 기표방법에 관해 충분히 안내한 후에는 가능한 한 보조인은 기표소 밖으로 나와 대기함으로써 시각장애인이 독자적으로 기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도록 하는 권고사항을 마련한다.

끝으로, 상기 모든 공공서비스를 순차적으로 적용하는 절차 확립을 통해 보조인의 기표소 동반출입 및 대리기표를 최소화한다. 이를 통해 부득이하다고 간주해온 그간의 기표 방식을 지양하고, 시각장애인의 비밀선거권을 일반 유권자들의 그것과 동등한 수준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의식을 고양하며, 시각장애인 스스로도 비밀선거의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고무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 발견한 문제들은 기술적 불가능성으로 인한 필연적 결과라기보다는, 재정적 고려와 행정적 편의가 시각장애인의 선거권을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는 가치를 압도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본 연구에서뿐만 아니라 공식 통계들에서 나타난 시각장애인의 높은 투표율을 고려할 때,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은 더욱 긴요하다. 장애인의 권리와 복지 향상에 대한 강한 열망이 적극적인 투표 참여로 표출된 것이니만큼, 그들의 요구가 왜곡되지 않고 정치과정에 공정하게 투입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단한 후속 연구를 통해 본 연구에서 제안한 공공서비스디자인을 구현함으로써 더욱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현재와 같은 문제적 상황에 제약되지 않고 비시각장애인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선거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Acknowledgments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NRF-2020S1A5B5A16084147). It’s a developed version of a paper presented at the 2018 Fall International Conference,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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