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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의 정치와 예술 : 뱅크시(Banksy) 그라피티 분석
Politics of Affect and Art : Analysis of Banksy's Graffiti
  • Soyeon Yang : Department of Visual Culture, Student, Kangwon National University, Chuncheon, Korea
  • 양 소연 : 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학생, 춘천, 대한민국
  • Seoungho Ryu : Department of Visual Culture, Professor, Kangwon National University, Chuncheon, Korea
  • 유 승호 : 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교수, 춘천, 대한민국

연구배경 1990년대 문화비평과 비평이론을 중심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정동은 정신과 분리되지 않는 신체에 잠재된 행동 능력 역량으로서 주체와 객체, 정신과 육체라는 근대적 이분법을 뛰어넘어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사회의 문제를 설명하는 지적 화두로 주목받고 있다. 이 연구는 정동이 가진 실천적 함의에 주목해 국가 권력과 소비 자본주의를 풍자하며 사회 비판적 그라피티를 그려온 뱅크시의 예술 활동을 정동의 정치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연구방법 정동 개념과 관련된 기존 연구를 살펴보고, 정동의 실천적 함의에 주목한 들뢰즈와 마수미의 정동 이론 관련 문헌을 분석하였다. 뱅크시 작품에 대한 기존 연구와 관련 문헌을 분석하고, 작품의 내용 분석을 시행하였다. 뱅크시의 작품과 활동을 정동의 관점에서 분석해 정동의 정치로서 뱅크시의 예술 활동을 3가지 특성으로 정리하였다.

연구결과 뱅크시의 예술은 미학적 실천이자 정동의 정치로서 다음의 3가지 특성을 갖는다. 첫째, 이미 정립된 도식을 횡단하는 창조적 실천 행위이다. 둘째, 단절과 충격을 통한 현실 재각성의 계기가 된다. 셋째, 집단적으로 전개되는 사건을 도모하는 관계의 정치로 작용한다. 뱅크시는 이미지 생산에만 머물지 않고 일상의 다양한 실천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며 잠재로만 존재했던 것들을 현실의 사건으로 드러나게 한다.

결론 우리 신체에 잠재되어 있는 역량으로서 정동은 끊임없이 우리의 감각과 지각을 자극하면서 주변의 사물, 사람, 환경을 새롭게 바라보고 크고 작은 변화를 모색하게 함으로써 삶을 바꾸는 정치적 실천이 된다. 뱅크시의 그라피티는 예술이 새로운 상상력을 통해 기존 규율과 제도에 균열을 내고 자본주의 권력의 모순과 역설을 깨닫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뱅크시 작업을 통해 예술 행위가 갖는 정치적 실천으로서 잠재력을 살펴보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Abstract, Translated

Background Since the 1990's, affect is central to understanding late-capitalist society in cultural and critical theory, as it provides possibilities to explain multiple and complicate social problems by surpassing the dichotomy of subject and object, mind and body in modern philosophy. This study will analyze Banksy's graffiti works focusing on their capacity of affect to produce social and political effects.

Methods This study analyzed related literature on affect focusing on Gills Deleuze and Brian Massumi. Then the study reviewed existing documents on Banksy's works and analyzed images and messages in Banksy's graffiti from the point of view of affective approach.

Results Banksy's art works have three characteristics as social and aesthetic practices. First, it is a creative practice that deterritorises the established disciplinary boundaries. Second, it provides opportunities to reawaken reality through dissonance and disconnection. Banksy continues to criticize disciplinary power and capitalist mechanism by drawing graffiti dealing with social issues and organizing various social critical performances. Third, it realizes relational politics by interacting with people and promoting creative and collective actions.

Conclusions This study tried to analyze the capacity of affect which increases the collective's capacity for action by stimulating our sense and perception and encouraging people newly recognize things, people and environment and pursue changes in everyday life. Banksy's graffiti illustrates how art works break through existing rules and institutions through a new imagination and awaken the contradictions and paradoxes of power in this capitalist world.

Keywords:
Banksy, Graffiti, Affective Turn, Politics of Affect, Ethico-Aesthetic Paradigm, 뱅크시, 그라피티, 정동적 전환, 정동 정치, 미학적 패러다임.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한국디자인학회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25 Sep, 2020
Revised: 03 Jan, 2021
Accepted: 21 Jan, 2021
Printed: 28, Feb, 2021
Volume: 34 Issue: 1
Page: 187 ~ 199
DOI: https://doi.org/10.15187/adr.2021.02.34.1.187
Corresponding Author: Seoungho Ryu (shryu@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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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ding Information ▼
Citation: Yang, S., & Ryu, S. (2021). Politics of Affect and Art : Analysis of Banksy's Graffiti.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4(1), 187-199.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런던의 지하철 벽면에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쥐를 풍자한 그라피티가 등장했다. 물질중심의 자본주의와 인권문제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왔던 그라피티 예술 활동가 뱅크시(Banksy)가 그린 그라피티 속 쥐들은 재채기를 하며 비말을 내뿜고, 마스크를 낙하산 삼아 타고 내려오거나, 손 소독제를 뿌려대고 있다.1) 그라피티 속 익살맞게 그려진 쥐는 웃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질병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일으키고, 한 발 더 나아가 공공의 건강과 안전을 이유로 우리 신체에 가해지고 있는 정부의 통제와 관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처럼 우연히 마주친 그라피티는 우리의 모든 감각을 자극하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새로이 느끼게 함으로써 보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변화들을 우리 몸에 일으키며 행동하게 한다. 정동(affect)의 자율성에 집중한 마수미(Brian Massumi)의 접근에 따라 정동을 우리의 의식이나 지각에 앞서 우리 신체에 잠재되어 있다가 충격에 반응해 나타나는 변화라고 정의해본다면 뱅크시가 그린 그라피티는 우리를 정동하고 있는 것이다.

뱅크시의 그라피티는 들뢰즈(1988)가 ‘미세지각’으로 언급한 아주 작은 지각, 즉 의식에 등록되지 않은 우리 신체의 어떤 것들을 자극하고,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들을 활성화하는 충격의 요인이 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의 감각과 지각을 자극하면서 주변의 사물, 사람, 환경을 새롭게 바라보고 크고 작은 변화를 모색하게 함으로써 삶을 바꾸는 정치적 실천이 된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실천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서로 다른 삶의 선택이 아니라 공생하도록 조절하는 것이 곧 정동의 정치”라고 본 마수미(Massumi, 2015)의 정의에 따라 보자면 뱅크시의 그라피티는 새로운 상상력으로 기존 규율과 제도에 균열을 내는 실천 행위로서 정동의 정치를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1990년대 초반부터 영국 브리스톨을 중심으로 사회 비판적이고 권력 풍자적인 그라피티를 그려온 뱅크시의 예술 활동이 갖는 문화정치적 의미를 정동의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뱅크시의 예술 행위가 우리 삶의 활력을 일깨우고 새로운 사건을 발생시키는 정동의 정치로서 기존 사회 질서를 재배치하고 재활성화시키는 사회적 실천임을 밝힐 것이다. 또한 자본이 사람, 상품, 관념, 정보가 국경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운동하도록 강제하는 탈산업시대에 우리 삶의 활력인 정동적 능력까지 도구화시키는 자본주의의 포섭(Massumi, 2015)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정치 행위로서 예술적 실천이 갖는 대안적 가능성을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정동이 가진 신체성, 자율성, 과정성 측면에서 정동의 개념에 담긴 사회적 실천의 함의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가 몰고 온 위기를 자본에 의한 정동 즉 생명의 포획으로 설명하는 마수미의 정동 정치 개념을 미학적 패러다임과 연계해 분석할 것이다. 이어 뱅크시의 그라피티에서 정동의 역량이 어떻게 발휘되고 사회적 의미를 갖는지를 분석함으로써 삶을 바꾸는 정치적 실천으로 예술 행위의 잠재성을 고찰할 것이다.

2. 그라피티와 거리미술 그리고 뱅크시

‘바위, 벽, 길가 등에 숫자, 그림, 문자를 쓰는 행위’ 라는 사전적 정의를 따르자면 그라피티는 원시시대 고대 낙서화(ancient graffiti)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오늘날 그라피티는 6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의 도시에서 등장한 문자나 도상에서 시작된 예술적 흐름을 지칭한다(Stéphanie, 2012; Waclawek, 2011). 그라피티는 지배 권력에 저항적인 청년 세대 하위문화의 흐름 속에서 발전했지만 미술사적으로는 기존의 예술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혁신적 예술을 주장한 아방가르드나 혁명을 위한 거리 선전에 미술을 활용했던 프로파간다 등 회화와 갤러리 중심의 미술계를 거부하고 거리에서 예술 활동을 통해 대중을 직접 만나고자 했던 거리미술과 맞닿아 있다(Stéphanie, 2012). 8, 90년대를 거치며 다양한 재료, 기법, 양식을 도입한 그라피티는 이제 설치미술과 행위예술 등 다양한 예술 형식과 접합하며 거리미술로 통용되고 있다. 뱅크시를 비롯한 90년대 이후의 거리미술가들은 권력에 대한 저항과 예술의 권위 부정이라는 그라피티의 본질적 주제를 견지하면서 자본주의 발전과 세계화에 따른 소외와 불평등, 환경문제, 국제 분쟁 등 90년대 이후 심화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의 폭을 넓히고 있으며, 미디어와 IT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작가로는 80년대에 스텐실 기법으로 그린 쥐를 선보였고 여전히 사회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거리미술 활동을 하고 있는 블레크 르 라(Blek le Rat), ‘오베이(obey)’ 스티커를 활용해 공공 영역을 장악한 자본주의를 풍자하는 캠페인을 벌여온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가 대표적이다. 팔레스타인, 아프리카 분쟁 지역 등 정치사회적 이슈가 있는 장소에서 대형 초상화 사진 작업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해온 제이알(JR), 남아프리카의 빈민가 판자촌과 낡은 벽에 작품을 그리며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를 다룬 페이스47(Faith47) 등 역시 사회비판적이고 정치적인 거리미술 활동을 하고 있다. 도시에 만연한 상업주의 비판은 거리미술의 또 한축을 이룬다. 제우스(Zevs)는 거리 광고판의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시켜 기존의 광고를 전복시키고, 론 잉글리시(Ron English)는 기존 광고의 패러디를 통해 소비문화를 비판한다. 마그다 사이예그(Magda Sayeg)는 뜨개 작품을 실외에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장소의 소통 문제를 제기하고 환경의 문제까지도 생각해 보게 한다.

뱅크시는 이러한 거리미술의 흐름 속에서 패러디와 차용,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차별화된 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다. 뱅크시는 쥐, 원숭이, 경찰 등을 풍자하는 유머러스한 그라피티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업은 벽에 그린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회화적 기법 외에도 거리 조형물을 설치하거나 다양한 형태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다큐멘터리나 영화 제작, 그리고 환경 및 인권 단체와의 협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2003년 런던에서 열린 반전시위에서 리본을 단 헬리콥터가 그려진 피켓을 시위대에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벌였고, 2005년 영국박물관에 유성펜으로 낙서한 돌을 ‘Peckham Rock’이란 이름을 붙여 기습 전시하기도 했다. 또한 모나리자 얼굴을 스마일리로 바꿔 그리거나, 탱크를 막아선 천안문민주화 시위 장면에 골프세일 안내문을 끼워 넣어 예술의 권위, 자본주의와 상업화를 풍자한다. 이들 작품에서 보듯 뱅크시의 작업을 관통하는 특성인 패러디와 차용은 기존 작품의 권위를 전복시킴과 동시에 대중이 작품의 주제를 쉽게 이해하고 각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뱅크시의 그라피티 속에서 여왕의 근위병은 벽에 소변을 보거나 낙서를 하는 등 권력의 상징인 경찰이나 군인은 희화되고, 원숭이 얼굴을 한 왕관을 쓴 여왕의 모습에서 권위는 조롱당한다.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에 그라피티를 그리는 프로젝트나 전쟁의 희생양이 된 난민 어린이, 미사일을 껴안은 소녀 등의 그라피티는 전쟁의 폭력성과 참혹함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버거킹 왕관을 쓴 채 빈 밥그릇을 앞에 두고 배고픔에 지쳐 앉아 있는 어린이나 쇼핑백을 든 십자가 위 예수 등과 같은 작품은 물신화된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뱅크시는 2002년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와 함께 ‘SAVE DELETE’ 포스터와 스티커를 제작했고, 2003년엔 스페인, 영국, 호주 등의 동물원에서 갇혀 있는 동물의 문제를 우회적으로 꼬집는 메시지 푯말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뱅크시는 공권력과 권위에 대한 풍자, 전쟁과 폭력 고발, 물질 중심 자본주의 비판, 환경과 인권의 문제를 주제로 특정 계층에 국한된 고가의 미술 시장으로 전락한 상업화된 미술계에 저항하며 다양한 예술 형식의 거리 미술을 선보이고 있다.

3. 정동적 전환

1990년대 문화비평과 비평이론을 중심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정동은 탈근대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지적 화두로서 인식의 지평에 전환을 몰고 왔다. ‘정동적 전환(affective turn)’이 인지과학, 인문학, 사회과학 전반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두될 만큼 다양한 학문 분과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Park, 2016; Kim & Oh, 2019; Lee,2019). 정동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존재하지만 정동은 무엇보다 스피노자의 ‘신체를 변용하는 능력’에 철학적 기원을 두고 있다(Kim, 2017). 정동은 정신에 종속되지 않는 활동성과 수행성을 본질로 삼는 신체의 역량으로서 사회적 실천으로 함의를 갖는다. 끊임없이 변이하는 역량으로서 신체는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고, 끊임없는 운동과 정지를 통해 새로운 사건을 일으킨다(Deleuze, 1978a).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정동하는 신체 역량에 대한 개념에서 출발해 정동을 ‘신체의 변용 능력’, ‘표상하지 않는 사유 양식’, ‘힘과 힘의 관계’로 정의(Deleuze, 1978a)하고 있는데 이는 실제적 변화를 일으키는 정동이 가진 창조적 변화 역량을 나타낸다.

들뢰즈(Deleuze, 1978a)는 신체를 ‘신체에 포함된 무한히 많은 입자들 간의 운동과 정지의 관계, 이 입자들 간의 빠름과 느림의 관계’ 그리고 ‘다른 신체들을 변용시키거나 다른 신체들에 의해 변용되는 능력’ 두 가지 측면에서 정의한 스피노자의 신체 개념에서 출발해 행동 능력(puissance)으로서 정동이 갖는 지속적 변이 역량에 주목했다. 마수미(Massumi, 2015)에 따르면 정동은 신체에 잠재된 역량으로서 관념이 아닌 실제로 이행되는 행위이며, 끊임없이 연속적 변이를 일으키고 새로운 관계를 생성함으로써 서로 다른 다양한 삶의 형태들을 만들어낸다. 신체의 행동 능력, 이행의 지속성을 본질로 삼는 정동은 ‘애초부터 정치적으로 정향’ 되어 있으며 따라서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함의를 갖는다.

들뢰즈(Deleuze, 1978b)는 정동을 ‘재현적 특징에 의해 규정된 사유 양식’이라는 스피노자의 관념에 대비시켜 정동을 ‘비재현적 특징에 의해 규정된 사유 양식’으로 정의했는데, 이는 정동이 가진 창조적 잠재력으로서 행동 능력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관념과 재현에 대한 들뢰즈의 해석이 스피노자를 일부 곡해한 것이라는 비판도 존재하지만(Choi, 2016), 들뢰즈는 정동의 특성으로 끊임없이 차이를 발생시키는 이행이라는 점에 주목해 정동이 갖는 실증적이고 실천적인 속성을 강조(Kim, 2017)했으며 이는 정동이 갖는 창조적 변이의 속성을 잘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들뢰즈(Deleuze, 1978a)는 또한 정동과 정서의 본성상의 차이는 이행(passage) 혹은 변이(transition)에 있다고 보고 끊임없이 차이를 발생시키는 살아 있는 변이로 정동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모든 가치를 획일화하는 현대 자본주의 작동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창조적 실천 방식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마수미(Massumi, 2015)의 지적대로 정동은 사건들의 구성으로 진입하는 하나의 창조적 요인으로 정동은 연쇄적인 반복과 차이의 논리와 밀접하게 연관된 사건-논리이자 새로운 변화로서 사건 발생의 계기가 된다.

사회를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으로서 정동이 갖는 의미는 또한 “가상적 잠재의 왕국으로서 정동”(Massumi, 2002)이 갖는 자율성에서 찾을 수 있다. 마수미(Massumi, 2002)는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슬픔이냐 기쁨이냐가 아니라 강렬하게 느꼈느냐의 여부라며 이미지 수용에서 정동이 우선한다고 설명하고, 이를 인식이나 지각에 앞서는 능력으로서 정동이 갖는 자율성이라고 설명한다. 마수미는 두뇌가 관여하기 전 즉 의지와 의식에 앞서 나타나는 신체적 반응에 주목하며 정동의 강렬함이 초기 발생이자 선택의 기원이 된다고 언급한다. 육체는 실제적이지만 육체의 반응은 너무 빨리 일어나서 실제로 나타날 수 없기 때문에 인식이나 의지에 앞서 발생하는 정동은 가상적(virtual)이고 그렇기 때문에 발생과 경향성이 가득한 잠재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체로서의 정신과 육체에 자율적으로 반응하는 힘인 정동은 우리의 신체에 잠재로서 존재하며 강렬함에 의해 발생한다. 마수미는 이것이 바로 정동이 가진 자율성이며 따라서 정동은 개방성과 열림을 전제로 지속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창출해 나간다고 보고 있다(Massumi, 2002).

가상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의 동시 발생이자 동시 참여를 의미하는 정동은 “열려 있는 다사다난한 복잡한 관계의 장으로 진입하는 한 지점”(Massumi, 2015)으로서 새로운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상호작용을 통해 새롭게 배합된다. 이처럼 신체 위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행인 정동은 도래할 미래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이자 사건들의 연속으로서 그 자체가 관계적 속성을 띠며 과정성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마수미는 사회질서와 재배치, 정착과 저항, 진압과 봉기는 자동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며 정동의 정치성을 발현시키는 과정성을 강조했다. 지각의 가장 작은 최소치로서 의식의 문턱을 넘지 않은 무한히 작은 지각인 ‘미세지각’(Kim, H.Y, 2019)의 충격에 의해 사건으로 발생하는 정동은 끊임없는 운동과 정지를 계속한다. 이처럼 의식과 지각 이전에 육체적으로 일어나는 운동인 정동은 활성화된 경향성, 능력들인 잠재태로 존재하면서 서로 다른 차이를 발생시키고 다양한 삶의 형태를 만들어낸다(Massumi, 2015). 정동은 결국 삶의 잠재적 가능성을 다양화하는 창조적 과정으로써 가치의 획일화를 통해 삶의 다양성을 위협하는 탈근대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삶 정치적 실천 전략이 된다.

4. 정동 정치와 미학적 패러다임

마수미는 푸코의 생명 정치와 가타리의 주체성 생산 논의와 연계해 개인은 물론 집단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정동의 가치화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실천 전략으로 정동의 정치를 제시한다. 푸코(Foucault, 1978)는 인간의 생물학적 요소를 정치, 정치 전략, 권력의 일반 전략 내부로 끌어들이는 메커니즘의 총체를 생명 권력으로 정의하고, 근대 국가에서 개인의 신체는 통치와 관리의 대상이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인간의 신체를 규율을 통해 경영하고 타산적으로 관리해야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근대 국가의 생명 정치 전략은 자율적 신체 능력이자 잠재적인 창조 역량인 정동마저 측정할 수 있는 등가물로 만들어 삶 전체를 포획하고 있는 탈근대 자본주의 권력과 유사한 작동 방식을 갖는다. 하트와 네그리(Hardt and Negri, 2001)는 역사적으로 자본은 전통적인 사회적 경계들을 파괴하고 영토를 가로질러 확장하면서 특정하게 코드화된 영토들로부터 주민들을 분리하고는 다시 이윤 획득의 메커니즘으로 재영토화해 왔다고 분석하며 탈근대 정치 경제 구조는 노동 즉 행동하는 능력으로서 정동의 가치를 평준화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마수미(Massumi, 2015)는 분할의 경직성과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 정치적 실천으로 가타리의 윤리-미학 정치를 언급했다. 자본주의 권력이 다양성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정동을 조작해 우리 삶을 포섭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 맞서는 저항의 방식 역시 정동적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가타리(Guattari, 1992)는 “정립된 틀에 대항하는 예술 운동의 끊임없는 충돌이 다른 영역들에 직접 전염되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모든 것들을 횡단하는 창조적인 차원들을 부각시키고 재평가하게 만든다”고 언급하며 미학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강조한다. 그리고 예술은 창조를 독점하지 않지만 전례 없고 예견할 수 없는 존재의 특질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극단적인 지점까지 지닌다고 보고 이처럼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저항 방식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창조에 대한 언급 자체가 창조된 것, 사태의 굴곡, 이미 정립된 도식들을 넘어서는 분기, 극단적인 양태에 있는 타자성의 운명과 관련한 창조적 층위의 책임성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윤리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는 것이다. 가타리(Guattari, 1992)는 이를 미학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으로 언급하며 주체성을 객관화, 물상화, 과학화하는 과학적 패러다임을 벗어나 창조성의 차원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미학이 갖는 실천적 속성에 주목했다.

마수미(Massumi, 2015)는 가타리의 미학적 패러다임 논의를 이어 받아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 방식은 강직함과 옳은 판단에 기반 한 처벌이나 훈육이 아닌 퍼포먼스적이고 연극적이며 미학적인 방식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접속해 새로운 관계를 맺고 변이를 창출해 내는 실천을 의미한다. 마수미는 우리의 삶은 타인과 접속할 수 있는 잠재태이며 그 안에는 수많은 실천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다. 이들 모두는 열린 장에서 상호 작용하고 그 안에서는 일대일 갈등만이 아닌, 그들 모두가 서로 꿈틀거리고 그들을 동일한 사회적 장으로 끓어오르게 하는 그들 모두의 중-간성(in-betweenness)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정동의 정치는 특정한 정체성이나 지위를 포기하거나 따내기보다는, 관계나 어울림에 그 자체로서 관심을 기울이고 그쪽으로 주의를 끌고 굴절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동의 정치는 정체성의 정치가 아닌 어울림의 정치, 상관적 발생의 정치, 실행주의적 사이의 정치로 결국은 세계 속에 우리 자신을 내던지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결국 정동의 정치란 우리의 삶을 감당해내고 살아내는 것, 즉 현실의 참여를 의미하며 삶을 스스로 우리의 삶을 직접 경험하는 일은 창조이자 세계적 생성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미학적 실천이 되는 것이다(Massumi, 2015).

5. 뱅크시의 그라피티와 정동 정치

마수미는 "예술이 창조적 구성을 독점하지 않으며, 정치가 변화를 독점하지도 않는다"고 언급하며 모든 실천은 종합적으로 미적-정치적이라고 보았다(Massumi, 2011). 우리 신체에 잠재되어 존재하는 새로운 가능성이자 사건들의 연속적 이행을 의미하는 정동은 끊임없는 창조적 과정으로서 그 자체가 미학적이며, 조율을 통해 새로운 관계, 서로 다른 삶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실천으로서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정동한다는 것은 결국 창조적 긴장 속에서 서로 다른 잠재태들이 도래할 사건으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며 서로 다른 삶의 형태가 불일치 속에서 분화되면서 실천으로 드러나게 된다(Massumi, 2015). 뱅크시의 그라피티 역시 기존의 틀과 관습에 충돌하며 충격을 가함으로써 우리 안에 내재된 창조적 차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라피티는 1960년대 뉴욕 빈민가 흑인의 소외감을 회화로 표현한데서 시작해 기존 사회 질서나 체제에 저항하는 하위 문화의 흐름 속에서 발전해 온 주류 예술에 속하지 않는 변방의 예술(Kim, H.K, 2019; Joo, 2019)로서 공공 혹은 개인의 자산을 훼손하는 범법 행위를 통해 지배적 규율과 제도를 탈주하고 있으며, 보편적인 지배적 가치 체계에 균열을 가하고 있다.

뱅크시의 예술이 갖는 사회 문화적 함의에 대해 김해진(Kim, 2014)은 뱅크시의 그라피티는 위선적 지배 권력에 대한 비판, 소비지상주의 세태 풍자, 전쟁의 불합리성 고발이라는 측면에서 사회 비판적 속성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으며, 김해균(Kim, H.K, 2019)은 비판적이고 풍자적 내용에 나타난 예술적 감성을 시각적 재미와 미적 의미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주하영(Joo, 2019)은 뱅크시의 그라피티에 담긴 사회 비판적 의미, 위트와 풍자에 내포된 불일치 미학이 가져오는 감각적 형태의 자율성, 비합법적 행위 예술로서 거리미술이 갖는 저항적 속성에 주목해 그라피티 예술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분석했으며, 박윤조(Park, 2009)는 뱅크시의 작업이 표현매체와 방식이 아닌 작업의 내용 전달과 영향력을 중시하고 있다고 분석하며 작업 과정 자체가 사회적 공간으로의 개입을 의미한다고 보고 의사소통의 미술로서 가치 전복에 주목했다.

뱅크시의 그라피티는 서로 다름이 충돌하는 창조적 긴장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끊임없이 생성해 내는 활동으로서 정동의 정치이자 미학 정치의 사례를 보여준다.

5. 1. 정립된 도식을 횡단하는 창조적 행위

미학적 실천이자 정동의 정치로서 뱅크시의 작업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지배적인 주체성에 따른 합의를 깨는 미시충격으로서 이미 정립된 도식을 횡단하는 창조적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마수미(Massumi, 2015)는 어떠한 상황도 이데올로기적 구조나 약호들로 완벽하게 미리 결정되지 않으며 언제나 사건으로 발생할 잠재성을 향해 열려 있다고 언급하며 정동이 가진 창조적 잠재성을 강조한다. 이는 지배적 주체성을 깨는 주체의 재창조나 재발명으로 이어지며 다른 가치의 실천 필요성을 제기한다. 뱅크시는 작품에 경찰과 군인을 자주 등장시켜 전쟁과 국가 권력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유머와 풍자로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권력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정동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뱅크시 작품 속에서 군인은 무기를 내려놓고 벽에 뒤돌아서서 소녀에게 몸수색을 당하거나<Figure1>, 역으로 인형을 든 소녀를 수색하고<Figure2>, 경찰은 분홍색 풍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 탄 어린 아이에게 딱지를 떼고, 스마일리(smiley) 얼굴로 완전 군장을 한 채 <Figure3> 표현되는 등 다소 우스꽝스럽거나 역설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시민의 자유를 강제하거나 공권력을 폭력적으로 남용하는 모습이 명시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풍자된 그라피티를 보며 우리는 충분히 권력의 폭력성과 강제력을 떠올릴 수 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권력은 통제와 억압으로 바로 드러나지 않고 은폐되거나 왜곡된 모습으로 매개되어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Figure1 Mural, Bethlehem, Palestine, 2007

Figure 2 Mural, Glastonbury, UK, 2007

Figure 3 Mural, Vienna, Austria, 2003

공공의 안전과 질서라는 명목으로 어린 아이들까지도 검색하고, 동성의 경찰이 진한 키스를 나누는 장면들은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권력과는 다르게 표현되고 있지만 규율과 금기를 통해 일상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권력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한 은폐된 권력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채 희화된 경찰을 그저 유머나 재미로 여기고 넘어간다면 마수미(Massumi,2015)가 지적하듯 “우리를 억압하는 권력의 메커니즘에 속아 그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고 정동적으로 사로잡힌 것”일지도 모른다. 이데올로기가 가장 잘 작동하는 것은 지배적 합리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일상에 그대로 실행하는 상태 즉 권력의 통제하에 안정된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라고 본다면 뱅크시의 그라피티는 겉으로 풍요롭고 안정된 것으로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 은폐된 권력의 모습을 유머와 풍자로 뒤틀며 지배 권력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사고에 단절을 가져오고 충격을 줌으로써 잠재를 일깨운다. 정동의 정치를 언급하며 마수미(Massumi, 2015)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선다는 것은 놀라운 상황에 주목하고 새롭게 나타나는 이데올로기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뱅크시의 그라피티는 우리의 삶 전체에 파고들어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뒤틀고 왜곡하는 방식으로 충격을 가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질서와 규율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사고하고 대응하도록 우리를 일깨운다. 즉 우리 안에 잠재성을 정동한다고 볼 수 있다.

푸코(Foucault,1978)의 지적대로 은폐되어 작동되는 현대 사회의 권력은 이제 특정 계급이나 집단에 가시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고 개별적 주체에게 행사된다. 근대 이후 제도, 법률, 기관 등의 형태로 우리 사회를 통제해 온 권력은 이제 노동과 생산 과정 전반을 통치한다. 주체에 대한 개인화 기술들을 대상에 대한 전체화 과정들과 통합시키는 근대 국가 권력의 이중적 구속(Foucault,1978) 양상은 정동의 도구화와 탈취로 연결된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명 정치는 권력의 장악력을 개별적 주체에서 생명 자체로 전환해 개인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과 의식을 갖게 하면서 동시에 외부의 통제 권력에 순종하게 만든다. 생명 정치는 이처럼 집단화하면서 개별화를 동시에 진행하며 인구의 각각의 모든 요소 즉 빈자, 실업자, 이주민, 만성병자 등을 고려하고(Clough, 2007), 법적 정치적 질서에서 속하지만 규칙의 예외 상태로 존재하며 통제 권력에 순종하지 않는 이들을 양산한다(Agamben, 1995).

뱅크시가 그리는 그라피티의 인물들은 아감벤(Agamben, 1995)이 언급한 예외 상태에 있는 존재, ‘살해는 가능하되 희생물로 바칠 수 없는 규칙의 예외인 벌거벗은 생명(Homo Sacer)’들로서 권력의 메커니즘이 개인의 삶과 생명 즉 정동을 포섭하는 현실을 풍자한다. 뱅크시 작품 속에서 외부의 통제 권력이 군인과 경찰로 나타난다면, 개인에게 미친 권력은 노숙인, 난민, 이주민, 빈민 등으로 표현된다. 베네치아 강변 건물 벽에 그려진 구명조끼를 입은 난민 어린이<Figure4>, 날리는 재를 눈 인줄 알고 좋아하는 폐탄광 마을의 아이<Figure5>, 벤치를 눈썰매 삼아 끌고 하늘로 올라가는 루돌프 벽화 옆 벤치에 눕는 노숙자 <Figure6> 등 그라피티 속 인물들은 근대 권력의 정치 대상으로서 생명이자 자본주의의 경쟁에서 도태된 존재, 국가가 주권화의 대상에서 예외 시켜 버린 존재들이다.


Figure 4 Mural, Venice, Italy, 2019

Figure 5 Mural, Port Talbot, UK, 2018

Figure 6 Mural, Birmingham, UK, 2019
5. 2. 단절과 충격을 통한 현실의 재각성

뱅크시는 권력의 작동 방식 자체를 패러디함으로써 자본주의 권력이 갖는 모순을 풍자하기도 한다. 뱅크시의 작업은 마수미(2002)가 “그 무엇도 예측되지 않는 구조화된 변별성의 강렬함으로 와해되기, 규칙들의 패러독스로 붕괴되기”라고 언급한 사건으로서 자본주의 구조와 메커니즘을 패러디와 역설로 비틀어 비판한다. 미키마우스와 맥도날드 마스코트가 베트남 전쟁 당시 네이팜탄 화염을 피해 벌거벗은 채 마을을 뛰쳐나오던 소녀의 양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 뱅크시의 2004년 작품 <Napalm><Figure7>은 자본주의와 문화 산업, 그리고 폭력적 국가 권력이 본질적으로는 제국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Koutras, 2018). 그라피티 작업 외에도 다양한 실천적 활동을 벌여온 뱅크시는 자본주의 마케팅 기법을 그대로 패러디한 실험적 퍼포먼스와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의 삶을 포섭한 자본주의 권력에 균열을 낸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공짜로 주는 대형마트의 판매 전략을 따라 로댕을 패러디한 자신의 조각상을 두 개 만들어 하나는 팔고 하나는 공공장소에 공짜로 배포하거나 벽화 작업과 동시에 포스터나 스텐실 세트를 판매해(Park, 2009) 상업주의에 물든 예술과 물질만능의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그리고 2015년 8월 영국의 웨스턴수퍼메어시에 디즈니랜드를 비튼 일종의 테마공원 디즈멀랜드(Dismaland)을 만들어 한 달간 운영하는 프로젝트를 시도함으로써 디즈니랜드가 상징하는 자본주의와 문화제국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디즈멀랜드에서는 아무것도 수색하지 않지만 검색대를 통과해 가야하고, 시설이나 프로그램 이용 혹은 상품을 구매에 필요한 돈은 디즈멀랜드 내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다. 디즈니랜드가 판매하는 것이 결국은 놀이라는 경험, 재미라는 개인의 욕망이라고 본다면 디즈니랜드는 욕망을 가치화해 판매함으로써 정동을 탈취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뱅크시는 이를 구호나 윤리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느끼게 함으로써, 즉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에 역설적으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디즈니랜드에 담긴 자본주의 권력에 균열을 낸다. 놀이와 여가, 문화적 활동까지 자본주의 생산 관계 속으로 끌고 와 포섭시키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조금은 불편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당연하게 여겨온 자본에 종속된 문화 산업의 지배 논리와 단절하고 대안적 상상력을 발휘해 볼 계기를 마련해 준다. 문화 활동이 갖는 개방성, 창발, 창조성과 같은 정동적 역량마저 이미 자본주의적 포획의 대상이 되었지만(Clough, 2007), 문턱에 존재하는 잠재성으로서 뱅크시의 활동은 초기 발생의 계기가 된다. 마수미(Massumi, 2002)의 언급대로 “우리의 삶은 잠재성의 왕국으로서 무엇이든 그것이 출현하도록, 자질을 갖도록, 사회언어학적 의미를 가지도록, 선형적 작용-반작용 회로로 진입하도록, 제한으로 인해 삶의 내용이 되도록” 정동하고 정동되고 있으며, 뱅크시는 정동의 문턱에 미세한 충격을 가하는 사건으로서 우리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아메드(Ahmed, 2010)는 “정동은 기존의 논리대로 잘 돌아가는 현실에 균열을 내는 것, 이들이 하는 불행한 효과들을 노출시키는 것이야말로 긍정적이며, 좋은 삶 혹은 나쁜 삶으로 간주되는 것에 대한 대안적 상상력을 제공 한다”고 정동의 의미를 분석하고 있는데, 뱅크시의 활동은 행복한 놀이 공원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혹은 불행한 효과를 드러냄으로써 정동의 정치를 실천하고 있다.


Figure 7 Print, Napalm(Can't Beat That Feeling), 2004

마수미(Massumi, 2015)는 반세계화운동의 예를 들어 계속 비판만 하고 제대로 된 접근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바로 뛰어들어 실험하고 네트워킹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정동의 정치의 사례가 2018년 10월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된 뱅크시의 작품 <Girl with Balloon> 파쇄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뱅크시의 전세계적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그의 작품은 상업 미술시장에서도 인기를 끌게 되었고 소더비 경매에서 15억이라는 거금에 낙찰되기에 이른다. 소더비 경매에 뱅크스의 작품이 출품되었을 때 반달리즘(vandalism)을 표방했던 그라피티 작가가 상업 미술계로 전향한 것으로 의심을 샀을 수도 있겠지만 소더비 판매에는 뱅크시의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낙찰 순간에 액자 속에 숨겨져 있던 파쇄기가 작동하면서 작품의 일부가 훼손되었고, 뱅크시는 곧 이어 유튜브 동영상을 올려 경매에서 작품 전체를 파쇄하려는 의도를 갖고 액자에 미리 파쇄기를 설치했음을 알렸다. 낙찰된 뱅크시의 작품은 반쯤 잘려 액자에 걸린 형태가 되었지만 낙찰자에게 그대로 판매되었고 이후 반쯤 파쇄된 작품은 뱅크시가 다시 지은 <Love is in the Bin><Figure8>이라는 제목을 달고 전시되고 있다. 뱅크시의 이러한 행위는 익명으로 그려진 그라피티가 거래 대상이 되어 상업적 예술 시장에서 판매되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자 상업주의에 대한 저항의지를 보여준 것(Joo, 2019)로서 정치적 실천의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이는 모든 가치가 동일한 경제 권력이라는 자로 평가되고 환원되는 현대 자본주의의 획일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그 자체가 정동의 정치가 된다. 이는 자본주의가 정동을 도구화 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자본주의의 역동성에 어떻게 정동적으로 대응할 것인지도 함께 보여준다.


Figure 8 Print, Love is in the Bin, 2018

그라피티가 대중의 관심을 받아 유명해지면서 소유하고 싶은 대상이 되고 실제로 상업 옥션에 올라가 상품으로서 고가에 거래되었고, 게다가 작품이 파쇄되어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낙찰된 사실은 오늘날 사회에서 우리가 구매하는 것은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이나 스타일 등 정동적 역량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경매에 의도적으로 참여해 작품을 훼손한 뱅크시의 퍼포먼스는 자본주의의 정동 포획의 메커니즘을 대중들이 각성할 수 있게 한다. 이미지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 속에서 물질로서 가치를 부여받게 되면서 상품으로 거래되고, 예술 활동과 같은 노동으로 인식되지 않던 일련의 활동들이 자본주의적 생산 규범에 종속되어 가치의 생산 내부로 이끌려 들어오게 하는 자본주의의 권력 구조를 사람들은 재각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수미(Massumi, 2015)는 정동의 포획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은 저항의 주입이 아니라 포획을 벗어나려는 선도적인 제스처를 통해 끊임없이 시행해 나가는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뱅크시의 퍼포먼스는 새로운 변이를 계속해 증폭시켜 나감으로써 권력화된 구조와 충돌하며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5. 3. 집단적으로 전개되는 사건을 도모하는 관계의 정치

마수미는 정동은 서로 공명하면서 동일한 사건을 다르게 되풀이하고, 복합적 수준으로 조직화한다고 설명하며 서로 다른 이질적 특성들이 잠재적으로 공존하며 상호 연결되어 있는 관계의 속성을 강조한다(Massumi, 2002). 무엇보다 정동은 영향을 주고받는 운동으로서 계속해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는 실천이 된다. 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변이와 관계를 만들어내는 속성은 뱅크시의 작업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뱅크시는 이미지 생산에만 머물지 않고 일상의 다양한 실천으로 확대 발전해 나가며 잠재로만 존재했던 것들을 현실로 드러나게 만든다.

이스라엘은 2002년부터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 속한 요르단강 서안 지구(West Bank) 내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8미터 높이의 분리장벽을 건설했고, 이 장벽은 전쟁의 참혹함과 폐해, 국가 패권주의와 제국주의 폭력성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뱅크시는 이 장벽을 “가장 거대한 열린 감옥”이라 부르며 2005년경부터 종교와 민족 간 갈등이라는 이유로 국제 사회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반인륜적 현실을 고발하는 그라피티를 그리기 시작했다(Park, 2009). 무기를 내려놓고 벽에 손을 얹은 채 뒤돌아 서있는 군인을 검문하는 소녀 <Figure1>나 풍선에 매달려 날아가는 소녀의 모습은 군인과 소녀의 관계를 뒤집은 위트와 풍자로 전쟁의 참혹함을 풍자하고 있을 뿐더러(Kim, 2014), 이스라엘 군인의 뺨을 때려 수감된 소녀나 가자 지구에서 의료 봉사자로 일하다 이스라엘 군의 총격을 받아 숨진 의료인의 초상 등은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반인륜적 행위와 인권 문제를 고발했다.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에 그려진 뱅크시의 그라피티는 이미지 자체가 불법과 위법, 언어와 상황의 불일치를 통해 예술의 자율성과 실천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지만(Joo, 2019), 다양한 활동과 실천으로 끊임없이 이행되고 변이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정동의 정치로서 예술의 실천적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뱅크시는 이와 함께 다른 사회비판적 그라피티 및 일러스트레이션 작가들과 함께 공동 작업 및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확장시키며 잠재적 가능성을 현실화 시켜 나갔다. 2007년에는 그라피티와 일러스트레이션 작가 집단과 함께 매년 런던에서 열던 Santa's Ghetto 전시를 베들레헴에서 열고 팝업 스토어를 통한 작품 판매 대금 기부,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한 모금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Park, 2009). 또한 이에 머물지 않고 2017년에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 맞닿은 곳에 ‘벽에 가로막힌 호텔(Walled Off Hotel)’을 열어 국가, 민족,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다. 뉴욕에 있는 세계 최고급 호텔 월도프 애스토리아(Waldorf Astoria)와 유사한 발음을 유도한 호텔은 창문을 열면 멋진 자연 풍광이나 휘황찬란한 도시의 야경이 아니라 ‘세계 최악의 풍경’인 반인륜적 장벽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한다. 세계 최대의 유통기업 월마트를 풍자한 ‘WALL★Mart’라는 원 스톱 숍에서는 맞춤형 스텐실 교실도 운영하고 각종 기념품 판매, 그리고 방과후 수업 프로그램도 진행한다.2) 갤러리라는 폐쇄된 공간에 한정하지 않고 거리에 세워진 벽에 메시지를 담은 그라피티 예술 작업을 하고, 그 예술적 성과를 다양한 퍼포먼스로 연결하며, 호텔이나 갤러리 운영 등 자본주의 시장 논리를 그대로 재현하면서 그 안에 담긴 지나친 상업주의와 대기업 권력의 독점 자본주의까지도 비틀고 풍자하고 있다. 그라피티 작업에 머물지 않고 예술 활동을 다양한 일상적 행위로 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변화를 계속 되풀이하며 일상의 실천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계속 창조해낸다. 뱅크시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수동적으로 바라보고 감상하고 향유하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삶 그 자체가 되고 몸으로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경험과 기억이 된다(Park, 2009).

이처럼 뱅크시의 작품은 예술이 전시된 미술을 감상하는 관계가 아니라 작품에 새롭게 접촉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정동의 힘을 보여준다. 들뢰즈는 정동을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전이들, 체험된 이행들, 지속들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더 크거나 적은 완전성으로의 이행의 연속된 변주라고 언급하며 이러한 이행을 ‘작용권력’의 증대 또는 감소로 설명했는데(Kim, 2017) 뱅크시의 그라피티 작업과 활동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이되며 새로운 변이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마수미는 정동은 언제나 새롭게 되풀이되고 재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사건을 발생시키는 발생적 요인이 된다고 보았는데(Massumi, 2015), 뱅크시의 그라피티는 이질적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시키며 발생적 관계를 만들어낸다.

2018년 뱅크시는 영국 사우스웨일스 포트 탤벗(Port Talbot)이라는 옛 탄광촌 마을의 차고 담벼락에 불에 탄 재를 흰 눈으로 알고 즐거워하는 아이의 모습<Figure5>을 그렸다. 뱅크시가 SNS에 자신이 그린 그림이란 사실을 알리자 수 천 명의 사람들이 그림을 보러 왔고, 차고의 주인은 뱅크시의 작품을 지키고자 밤을 새웠다고 한다. 이후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투명 보호판이 설치되었는데 이 보호판 비용은 작품 보존 비용을 차고 주인에게만 전가하고 싶지 않았던 영국 배우 마이클 쉰이 부담했다.3) 뱅크시의 그라피티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는 새로운 변화를 생성하는 정동의 힘을 보여준다. 개인의 소유물이었던 담벼락은 뱅크시의 그라피티가 그려짐으로써 문화적 가치를 얻게 되었고, 근처 주민은 물론 마을에 관광을 온 모든 이들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공공의 문화 자산이 되었다. 과거 뱅크시의 그라피티를 소유하기 위해 벽을 떼어낸 사례에서 보듯 벽화는 개인에게 소유되거나 불법적 행위의 결과물로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공동의 문화로 만들려는 변화에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문화적 커먼즈로 창조해 냈다. 이는 뱅크시의 그라피티가 다양한 잠재성의 문턱을 통과하며 새로운 변이를 이끌어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동적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마주침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면서 창조적 사건들을 발생시켰고 마수미(Massumi, 2015)의 표현대로 이러한 정동의 힘은 “사회를 문지방이나 출입구들로 이어진 열린 장”으로 만듦으로써 정동의 정치를 실현하고 있다.

마수미(Massumi, 2015)는 정동의 정치를 어울림의 정치이자 상관적 발생의 정치로 정의했으며, 뱅크시의 작품 활동은 이러한 속성을 잘 보여준다. 박윤조(Park, 2009)는 뱅크시 예술 활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인터넷을 통한 작품의 공유를 꼽으며 모사와 복제가 가능한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은 장소와 시간의 한계를 넘어 작품을 검색하고 스크랩하고 공유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으로 만든다고 분석하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전시된 작품을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관행을 넘어 사람들 스스로 작품에 새롭게 접근하게 한다고 설명하는데, 이러한 뱅크시의 작품과 활동은 잠재성의 범위를 계속 확대하며 여러 운동들과 접속하며 증식한다는 측면에서 정동의 이행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인터넷을 통해 뱅크시의 작품과 활동은 무한히 복제되고 반복되는 사건들로서 매번 다르게 이어지며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게 된다. 또한 거리나 건물 외벽에 그라피티를 그리는 행위가 갖는 불법성과 공개적 장소에 그려진 이미지의 훼손 가능성 때문에 뱅크시는 자신의 그라피티 결과물은 물론 작업 의도나 제작 과정까지도 영상물로 만들어 SNS를 통해 공개하고 있는데 이는 미디어를 통한 정동의 정치 효과를 갖는다. 마수미(Massumi, 2002)는 잠재적인 것을 발생하거나 한정하는 것 모두 미디어의 문화-정치적 기능으로 보고 정동의 정치로서 미디어 전송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뱅크시의 활동은 문화 정치적 행위로서 새로운 변이를 끊임없이 일으키면서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6. 맺음말

뱅크시가 처음 그라피티를 그리기 시작한 도시 브리스톨에서는 2014년부터 그라피티를 주제로 한 업페스트(Upfest)라는 거리미술 축제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거리와 공공건물을 화폭으로 삼아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자유롭게 표출하던 청년들의 치기어린 불법 행위로 치부되던 그라피티가 이제는 지역 축제를 열게 할 정도로 지역의 대표적 문화 상품이 되어 지역 경제와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다. 물질만능 소비 자본주의를 풍자하던 그라피티가 이제는 기업 브랜드와 협업해 캐릭터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법의 규제를 비웃는 거리의 퍼포먼스는 전시를 위한 화폭이라는 구획 안으로 다시 편입되어 대중과 호흡하던 거리를 떠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것은 물론 경매를 통해 고가에 판매되기까지 한다. 그리고 도시의 거리와 건물에 그려진 유명 작가의 그라피티는 지역의 관광 상품이 되어 전 세계 소비자들을 끌어들인다. 이제 자본주의는 주류 권력에 반대하는 저항과 비판마저 힙한 취향으로 코드화하면서 소유하고 싶은 상품으로 전락시켜 버렸고, 기존의 질서, 규율, 지배적 권력 구조에 균열을 내며 충돌하던 저항적 예술까지도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상품이 되어 자본주의 구조 속으로 재영토화되었다.

마수미의 표현대로 ‘생산성’을 슬로건으로 삼는 자본주의(Massumi, 2015)는 이처럼 우리의 생명, 우리 안에 잠재된 창조적 역량인 정동마저 포획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듯 보인다. 하지만 개방성과 열림을 전제로 하는 정동은 이처럼 포획되고 폐쇄되었다가도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며 집단적으로 탈주한다. 뱅크시가 권력과 자본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할수록 그의 작품이 그려진 벽은 관광 명소로 더 유명해지고 더 높은 상품성을 얻게 되는 역설적 상황도 벌어지지만,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을 판매한 수익으로 프랑스 해군 함대를 구매해 지중해 난민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고4) 권력의 구조 속으로 구획화 된 틀을 벗어나려는 새로운 시도를 실험하며 정동의 잠재성을 현실로 구체화하고 있다. 핑크색 페인트와 하트 모양 구명보트를 향해 손을 내미는 소녀의 그라피티가 그려진 구호선은 지중해에 떠다니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국가 권력의 폭력성과 인종 차별에 대해 재각성하도록 하고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들을 일깨워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마수미는 정동의 정치는 곧 실천의 생태학이며 다시 ‘세계를 믿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우리 안에 내재된 잠재의 가능성을 믿고 새로운 관계 속에 뛰어들어 새로운 변화를 이행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말하며 자본주의 권력의 지배적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문제제기하고 바꾸어나가는 삶을 사는 일이 곧 정동의 정치라고 주장한다. 정동은 이제 일상을 바꾸는 실천 전략으로서 끊임없이 우리 주변 세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고 서로 다름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공생하며 조율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정동적 포획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포획된 삶에 뛰어들어 정동하는 잠재성이 문턱을 넘도록 계속 해서 서로 다른 계열의 생성해내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일 수밖에 없으며, 뱅크시의 작업은 정동적 정치의 사례로서 미학적 실천이 가진 잠재력을 잘 보여준다.

Acknowledgments

This research was supported by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NRF) fund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grant number NRF-2017S1A3A2066149)

Notes

1) 뱅크시는 자신의 웹사이트 (https://banksy.co.uk)에 최신 작품을 공개하고 있으며, SNS계정을 통해 그라피티 작품은 물론 자신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작품 제작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2) 출처 월드오프호텔 홈페이지 http://walledoffhotel.com/

3) 출처 BBC기사. Retrieved September, 2020, from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46663880.

4) 루이스미셀호의 난민 구호활동 홈페이지 https://mvlouisemichel.org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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