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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ey Miyake from the Perspective of Social Practices
사회적 실천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 Se-lee Lee : Ewha Womans university, Fashion Design Research Institute

Issey Miyake is a fashion designer who has engaged in multi-dimensional activities through amazing engraftation of the East and the West, tradition and state-of-the-art technology, and the past and the future. He has pursued the viewpoint of design directly connected with major context of practical design, which has essentially emerged in the big flow of social changes of the 21st century. He penetrated into design thoroughly by taking human being as thecenter, yearned for the sustainability of the world, and tried to play a positive role of a designer, who can deeply affect the society, byhaving a strong social relationship with the coexisting life.

This research looked into the process of Issey Miyake’sconsistent moves by observing his overallcases of design and planned activities, thus this study focused on the internal analysis of him as a practical design by identifying the will of the time which he pursued rather than analyzing his plastic works which is already well acknowledged by the world.

Abstract, Translated

동양과 서양, 전통과 첨단기술, 과거와 미래 등의 놀라운 접목으로 다차원적인 활동을 펼쳐온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지향해온 디자인 관점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사회 변화의 큰 흐름상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실천적 디자인의 주요 맥락과 직결된다. 그는 철저히 인간을 중심으로 디자인을 통찰했고, 세계의 지속가능을 염원했으며, 협동과 참여, 상생의 사회적 관계를 추구함으로써 사회에 깊이 영향을 미치는 디자이너의 긍정적 역할을 다하고자 했다.

이 연구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 기획 활동 등의 전반적 사례를 대상으로 그의 일관된 행보 과정을 면밀히 관찰하는 방식으로 정리하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그의 조형적 작품의 외적 분석보다는 그가 지향했던 시대적 의지를 파악하여 실천적 디자이너로서의 내적 분석에 초점을 맞추었다.

Keywords:
Issey Miyake, social practice, sustainability, coexistence(win-win), 이세이 미야케, 실천적 디자인, 인간 중심, 지속가능성, 협동과 참여, 상생.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11 Nov, 2011
Accepted: 05 Dec, 2011
Printed: Feb, 2012
Volume: 25 Issue: 1
Page: 167 ~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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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ation: Lee, S. (2012). Issey Miyake from the Perspective of Social Practices. Archives of Design Research, 25(1), 167-178.
1. 서 론

시대를 앞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창조적 리더로서 손꼽히는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三宅一生)는 패션의 기초를 재정의했고 아름다움에 대한 서구식 함의에 도전한 대표적 동양의 디자이너로서 국제적 활동을 시작한 1970년대 이래로 수 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활동에 있어 선택과 실천은 항상 메시지가 강했는데, 그의 전시 및 쇼의 테마를 나열하자면, A Piece of Cloth(1977), East Meets West(1979), Bodyworks(1983), Pleats please(1990), A-POC(1998), XXIst Century Man(2008) 등으로 인체와 의상의 개념을 근원적이며 재치있는 시각으로 들여다봄으로써 패션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지거나,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인 맥락 해석에 몰두하는가 하면, 새 시대의 신기원을 제안하는 혁신인 태도가 엿보인다.

이세이 미야케의 등장 이래로 그를 향한 주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속되고 있다. 국내 연구에서도 유독 패션디자이너 중 이세이 미야케 작품세계에 대한 연구는 90년대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연구의 초점은 대부분 동양적 전통의 이해, 예술과의 관계, 부정형의 형태미, 신체의 재인식, 하이테크 기술 등에 해당한다.

예컨대, 박명희(1990)는 이세이 미야케의 작품에 대하여 형태 분석과 착장 방식 등을 양적으로 분석하면서 일본의 전통성과 60년대 현대미술로서 팝아트의 정신이 가미된 것으로 해석했다. 김미성, 배수정(2003)은 이세이 미야케의 패션철학을 여성에 대한 배려, 자유의 존중, 전통의 재인식, 예술가와의 폭넓은 교류로 분류하였고, 한경예(2004)는 이세이 미야케 디자인을 해체주의로 규정하고 탈구조적 공간구성, 착장 방식의 불확정성, 재료의 상호텍스트성을 그 조형적 특성으로 정리하였다. 김영선, 강병석(2009)은 일본 전통 미의식 중 유현미(幽玄美)를 중심으로 이세이 미야케의 작품을 분석한 결과, 평면 속에 감춰진 암시, 시간의 흐름과 과정의 표현, 부정형의 가변성, 미완료의 동적 공감, 초자연적 인공 등 다섯 가지로 유현미 요소를 추출했다. 윤지영(2009)은 이세이 미야케의 작품에 대한 영향요인을 일본의 전통문화, 다양한 문화와 예술의 수용, 하이테크 기술로 보고, 몸과 옷의 일체성, 감정이입이 된 옷의 조화성, 절충성 등의 개념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상징성을 풀이하였다. 이와 같이 그의 작품에 나타난 조형적 분석 및 작품 형성배경 위주의 연구가 대부분인 가운데,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 발상과 상업화를 위한 전개과정에 관심을 둔 연구가 눈에 띈다. 조정미, 허은주(2009)는 연구를 통해 전통의 재창조, 다수를 위한 디자인 전개, 의복제작의 새로운 시스템 제시라는 세 가지 상업화 과정 특징을 추출하여 설명한 바 있다.

본 연구는 현재까지 선행 연구에서 주로 시행했던 이세이 미야케 작품에 대한 조형적 분석에서 거리를 두고, 최근까지 이어지는 그의 디자인, 기획 활동 등의 전반적 사례를 대상으로 그의 일관된 행보를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그가 지향했던 시대적 의지를 파악하여 실천적 디자이너로서의 이세이 미야케를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이세이 미야케의 본격적인 활동 시기인 70년대부터 가장 최근의 활동까지를 범위로 두고, 특정 테마로 기획된 작품집 및 컬렉션 자료, 오피셜 웹사이트(Issey Miyake Inc. Official site), 각종 인터뷰를 담고 있는 기사, 관련 논문 등에 대한 세밀한 수집과 관찰을 통해 디자인 전개 과정 및 그의 디자인이 관련 생산자 및 소비자와 맺는 관계 등을 포괄적으로 고찰하고자 하였다. 이 가운데 중심이 되고 있는 실천적 디자이너로서의 초점은 최근 현대사회에 부각되고 있는 큰 변화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이에 본 연구는 우선 사회 실천적 디자인의 등장 배경이 된 현대사회의 변화를 알아보고, 사회의 변화로부터 촉구된 디자인계의 실천의지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디자인의 사회적 영향력을 인식하고 행동한 디자이너로서 그가 보여준 실천적 디자인을 규명하고 그 세부 행동의 방향에 대해 자세히 논하고자 한다.

2. 현대사회와 사회적 실천의 디자인
2.1. 현대사회의 변화와 행동의 촉구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 1908-2009)는 인간 사회가 유사 이래의 ‘차가운 사회’에서 ‘뜨거운 사회’로 변화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근대 이후의 뜨거운 사회는 마치 증기기관처럼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다이내믹한 운동을 계속하려고 한다. 사람들을 단단히 묶고 있던 정치나 종교라고 하는 이전의 사회 규범이 바뀌어 사회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기분에 제어 당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역동적인 사회는 소비 욕구가 강한 사람들을 선두로 욕망의 자극을 통해 강력한 회전 에너지를 낳게 된다. 최근에는 레비 스트로스의 뜨거운 사회가 70년 이상 지속된 이후 마침내 욕망과 소비라고 하는 일원적인 가치에서 해방되어 각 사람의 다양한 가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축으로 하는 작은 팽이를 만들어내어 회전하게 된다는 믿음이 하스미 다카시(蓮見孝)에 의해 제기되었다.1) 하스미 다카시는 작은 전체성을 가진 다수의 집단이 거미줄처럼 얽혀 서로 자극하면서 활동하는 사회를 ‘포스트 뜨거운 사회’라 지칭하였으며, 이러한 사회에서는 자율, 자기실현이 사회 가치로 공유되고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과 자원봉사활동 등이 촉진된다고 하였다.[그림 1]


[그림 1] 포스트 뜨거운사회의 개념도

(출처 : 하스미 다카시. (1999) 지역을 여는 소시오디자인의 가능성. ID & JIDA VISION 2010. (사)일본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협회.)


실제로 현대의 사회는 구석구석의 작은 팽이 축을 중심으로 달궈지고 있다. 사회의 모든 면에서 중앙집중의 힘이 분산되고 있고, 집단의 가치에서 개별의 가치로 그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수용의 사회에서 교섭의 사회로 바뀌며, 수평적 힘의 탄력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학자들이 박애의 정신을 저술하고,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겠다고 나서며, 스스로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약속을 하고 있다. 대중은 이웃 혹은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는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지 않고 나서서 보살피는데 작은 힘을 보태려 하고 있다. 물질적으로 드러나는 행동뿐만 아니라 작은 개인의 능력까지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재능기부의 개념까지 발생하였다. 이런 자율적인 작은 팽이의 열기는 오늘날 소셜네트워크 발달과 더불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하고, 더 이상 인류에게 불합리한 불평등의 고통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신념과 움직임은 대중의 보편적 인식 성장을 보여주는 한편, 그간의 가속화된 경제 원리에 지칠대로 지친 현대를 비추기도 한다. 그간의 경제 원리는 근대 사회의 구성원들을 소비로 이끌어내기 위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냈고, 오로지 그 제품들을 유통하기 위하여 미디어가 다양하게 발전했다. 그 결과 나타나는 냉정한 도태, 인간소외 현상과 환경파괴 등의 문제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디자인에 대해 새로운 조망을 요구하며, 디자이너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2.2. 실천적 디자인의 주요방향

오늘날 사회 변화의 큰 흐름 상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실천적 디자인의 몇 가지 대표적인 사례를 관찰해보자. 데이비드 카를손(David Carlson)이 운영하는 스웨덴의 디자인 매체로서 디자인계 전반의 소식과 트렌드 보고서를 발간하는 데이비드 리포트는 근 미래의 디자인 경향에 대하여 5가지의 키워드를 제시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책임 비즈니스(Responsibiz)’이다.2) 책임있는(Responsible)과 비즈니스(Business)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이 단어의 핵심 개념은 전체적(holistic), 지속가능성(sustainable), 윤리(ethical)로 요약되며, 영리하고 인본주의적이며 책임을 다하는 트렌드를 일컫는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지속가능성,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정무역 등의 이슈들은 자연보호 단체나 유사기관들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시민사회와 기업영역으로 그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독일의 연구소 트렌드부에로(Trendbuero)를 인용하여 의미 창출이 기업 이윤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각 기업이 표방하는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영혼과 유전자 속에 완전히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임 비즈니스는 지금까지의 부정적인 발전이 일으킨 환경오염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지향하고 실천함에 있어 전체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즉, 감동과 진실성, 미적 특성과 호환성, 그리고 제품의 내구성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력 등의 진가를 공정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미래에는 윤리적 행위와 전략적 비즈니스의 관련성이 더욱 커지면서 단순한 자선활동에 머물지 않고 지역적 변화에 기여하는 것이 더 현대적이고, 더 지속가능하며, 장기적인 대안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디자인 트렌드에 이어 또 하나의 사례로서 디자인을 통해 휴머니즘을 구현할 수 있다는 발상의 세계적인 디자인 공모전, 인덱스 어워드(INDEX: Award)를 소개할 수 있다. 인덱스 어워드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디자인’을 슬로건으로 하여 몇 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세계 최대 규모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디자인 공모전이다.3)

디자인은 어떤 식으로든 주변 환경과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며, 디자이너들의 선택은 세상에 지속적이고 실제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믿음으로 인덱스 어워드가 꼽는 좋은 디자인의 평가 기준은 ‘영향력(impact)’과 ‘맥락(context)’이다. 세상에 실제로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이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문화적·지리적·경제적 환경과는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바탕으로 ‘좋은 디자인’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덴마크 디자인의 근간을 이루는 휴머니즘이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묻는 시대적 사명과 성공적으로 조우한 결과라고 평가받는다.

인덱스 어워드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경험’이다. 인간 생활 단위에서 가장 기초를 이루는 ‘신체’부터 가장 광범위한 단위인 ‘사회’까지, 각각의 단계를 이루는 것은 인간의 경험을 구성하는 생활의 장이다. 따라서 수상 부문의 구분 역시 일반적인 공모전과 달리 신체(Body), 주거(home), 일(Work), 놀이(Play), 공동체(Community)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제시한다. 이렇듯 새로운 분류를 통해 디자이너들 간의 ‘협력’을 방해하지 않으며 디자인을 아카데믹한 영역에 한정 짓지 않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례로서는 2009년 광주 비엔날레의 주제를 떠올릴 수 있는데, ‘The Clue-더할 나위 없는’이라는 테마로 개최된 이 전시행사에서는 총체적 삶의 관점에서 영역간의 경계 없이 삶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세 가지 프로젝트전이 진행되었고, 그 주제가 바로 살림(Design to Save), 살핌(Design to Care, 어울림(Design to Share)이었다.

이상의 사례들이 보여주듯, 현대의 디자인은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적 측면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 보다 더 나은 사회, 더불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회, 앞으로 지속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고민을 주요 방향으로 갖고 제각기 창의적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미학자 얀 무카로브스키 (Jan Mukařovský, 1891-1975)에 의하면 미학적 기능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세상과 사물에 대한 단순한 표면 장식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것이며, 주변을 둘러싼 현실을 반영해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현실에 적극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다.4) 라즐로 모홀리나기(Laszlo Moholy Nagy, 1895-1946)는 디자이너를 사회의식의 주조자, 혹은 일상생활의 조작자라는 개념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5) 한편, 더 평등하고 나은 세상을 위한 디자인의 기여를 연구하는 알라스테어 풔드-루크(Alastair Fuad-Luke)는 ‘디자인 액티비즘’이라는 저서를 통해 디자인 행동주의는 긍정적인 사회, 제도, 환경, 경제 변화를 생성하고 균형을 맞추는 반대화법 창조를 위해 알게 모르게 적용되는 디자인 사고와 상상이며 실천이라고 예비적 정의를 내렸다.6) 많은 이론가의 연구처럼 진정한 디자이너는 현실에 깊이 관여할 수밖에 없으며, 디자인의 사회적 실천에 대한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는 오늘날 이 시대의 디자이너는 그 실천적 측면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3. 이세이 미야케의 실천적 디자인
3.1. 인간중심의 디자인

그가 만들어온 창조의 세계에 있어 언제나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었다. 의복은 그 시대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해야 된다고 했듯이7) 그는 당대의 대중에게 밀착하여 귀 기울였고, 대중이 갖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띈 인체 및 동작에 집중하여 대중들이 가능한 폭넓은 범위에서 그의 미의식을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여기서 그의 메인 디자인 제품들이 유니버설 디자인으로서 인정을 받는다는 점은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세이미야케의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는 유니버설 패션 디자인의 대표적인 제품으로 손꼽히고 있으며8) 특히 (사)한국유니버셜패션협회는 유니버설 패션을 분류하고 그 대표적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 플리즈는 소재와 가공에 의해 사이즈나 체형에 관계없이 입을 수 있으며 패션성도 우수하여 체형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고 하였다.9)[그림 2]


[그림 2] Pleats Please

(출처 :Miyake Design Studio. http://mds.isseymiyake.com/im/en/work/)


시대별로 규정되는 체형미의 기준을 넘어 다수의 대중에게 아름다움을 누리게 해주는 패션은 1960년대 말 뉴욕에서의 생활과 관계가 깊다. 1968년 파리에서 학생과 근로자들이 연합하여 벌인 대규모의 사회변혁 대중운동, ‘5월 혁명’을 목격한 직후, 뉴욕으로 무대를 옮긴 이세이 미야케는 제프리 빈(Geoffrey Beene)브랜드의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면서 당대의 미국 문화에 대한 경험을 통해 다수의 대중을 위한 유니버설 패션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된다. 그는 무엇보다도 1960년대 말 히피운동과 팝문화가 지배했던 젊은 미국문화의 힘에 매료되게 되는데, 모든 경계를 넘어서 자유와 해방의 상징이 되는 티셔츠와 청바지를 보았고, 계급이나 성별 등 인간을 범주화하여 구분하는 여러 겹의 차원을 넘어 누구나 일상적으로 입을 수 있는 옷에 뜻을 품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는 고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일본의 다수 대중들이 입었던 전통 작업복에 주목하기 시작했다.10) 뉴욕에서 돌아온 이세이 미야케는 일본의 전통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동자들 즉, 굴뚝수리공(Tobi), 인력거꾼(Kurumahiki)혹은 농부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일하는 여성의 움직임을 관찰했고, 그들의 아주 오래된 행동들 속에서부터 아름다움을 찾았다. 노동을 통해 현실을 만들어가는 노동자들은 늙고 정형화된 미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세이 미야케에게 있어 패션디자인은 스타일 자체가 아니라 생활에 기반을 둔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의미 있었다.

이와 같은 대중 전반을 대상으로 한 패션 디자인에 대한 노력이 그에게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을 형성케 했으며 더불어 그를 대중들의 일상생활 가까이까지 끌어당기게 된다. 그는 철저히 ‘생활 밀착형’디자인을 추구하고 있다. 2007년 방한한 이세이 미야케의 수석 디자이너 다이 후지와라(藤原大)는 인터뷰를 통해 생활 밀착형 명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세탁이 간편한 것, 여행 갈 때 트렁크에 구겨 넣을 만큼 편한 것, 거드름 피우는 명품이 아닌 소비자에게 행복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11)

인디펜던트지에 소개된 인터뷰에 의하면, 이세이 미야케는 철저히 ‘대중 안에서의’디자인을 추구하고 있다. 마치 소형카세트 워크맨이나 가장 흔한 대중의 옷차림인 티셔츠와 청바지처럼 대중 안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디자인을 염원하는 그는 옷의 생산 과정은 물론 착용자의 입장에서 세탁과 코디네이션, 보관, 가격 절감 등의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12)

대중을 향한 디자인의 힘, 휴머니즘에 기반한 디자이너의 사회적 영향력, 믿음과 책임감은 어쩌면 그에게 숙명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일찍부터 디자인이 사람에게 미치는 강력한 힘을 체험했다고 회고하였다. 그에게 있어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는 디자인과의 첫 만남은 그의 고향 히로시마, 즉 전쟁의 잔인한 결과로 남은 폐허 근처에 세워진 두 개의 희망의 다리 위에서였다. 그는 생(to live)과 사(to die)로 이름 지어진 이 다리 위를 거닐면서 디자인이 갖는 감성적 반응, 희망에 대한 강력한 힘을 체험하였다.13)

뉴욕에서의 경험 역시 그에게 내재되어 있던 인류애와 사회적 실천정신을 이끌어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이세이 미야케가 어시스턴트로 일했던 브랜드의 대표 디자이너 제프리빈(Geoffrey Beene, 1924-2004)은 의학도 출신의 미국 패션 디자이너로서 현대사회의 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갖고 혁신가 및 지도자의 위치에서 사회적 기여에 힘쓴 디자이너이다. 그는 “옷은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활동하기 쉽고 입기 편하며 운반하기에 편리해야 한다. 햄라인이나 기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디자인 철학을 갖고 있었으며, 현재 그의 브랜드 수익은 암 연구, 알츠하이머연구, 가정폭력근절, 아동보호, 장학 및 교육관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인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되고 있다.14) 이세이 미야케는 경험으로부터 체득하고 내면화한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사람을 향한 통찰과 관심을 제고하는 디자인 실천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3.2. 지속가능을 위한 디자인

이세이 미야케는 과거로부터 전해진 전통성, 특히 자국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의 재해석을 제품에 적용한 디자이너로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시선은 과거의 시점에 묶여있지 않으며 항상 미래를 향하고 있다. “나는 과거의 일부이지만,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는15) 그의 언급처럼 미래를 향한 그의 시선은 기술적 진보를 추구하며, 궁극적으로 그 진보의 개념은 인류의 지속가능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2001년 독일 베를린의 비트라디자인뮤지엄(Vitra Design Museum)전시에 대한 기대감과 의의를 적은 그의 글에는 ‘환경보호와 자원보존에 대한 의지’가 뚜렷하며, 2007년부터 도쿄의 새로운 디자인 플랫폼으로 자리잡은 21_21 디자인 사이트(21_21 DESIGN SIGHT)공동기획 이후 그곳에서 연이어 있었던 많은 전시 테마에서 역시 미래에 대한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확실히 읽을 수 있다.

미래 인류를 위해 그가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실천방식은 덜 버리기와 다시 사용하기 등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컴퓨터 기반의 특수 니트 조직으로 잘라 완성하는 옷 A-POC 제품 개발에 이미 적용되고 있다. 이세이 미야케는 90년대 후반부터 연구가 시작되어 200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제품군을 형성한 A-POC 라인을 설명함에 있어 조형적인 면을 들어 특징적 가치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변화하는 새 시대에 패션이 과연 구식의 방법론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자문에 대한 자답의 형식을 빌어 새 시대를 반영하는 프로세스를 통해 만들어진 ‘상상과 기술이 응집된 미래의 옷’으로서 소개하였다. 이어 그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여 이루려고 하는 노력들이 노동력과 자원 소모를 절감시킬 뿐 만 아니라 실을 재활용할 수 있는 프로세스로서 존재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밝힌 바 있다.16) 예컨대 [그림 3]으로 예시한 바와 같이 원단의 재료가 되는 실과 컴퓨터 기반의 특수니팅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A-POC 제품은 사용자의 의도에 의해 의류 아이템으로 완성될 수 있는데, 실의 재활용은 물론 생산된 원단의 모든 부분이 각종 상하의 외에 모자, 양말, 가방까지 치밀하게 계획되어 원단 조각 폐기물을 거의 만들어내지 않음으로써 원단의 낭비를 줄이고자 하는 의도를 담아내고 있다.


[그림 3] A-POC King & Queen

(출처 : 디자인DB. http://www.designdb.com/dreport/)


덜 버리기 혹은 다시 사용하기의 또 다른 사례로서, 도쿄 아오야마의 플리츠 플리즈 매장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곳은 자동차 부품이었던 알루미늄을 재활용하여 인테리어 디자인을 완성한 것으로 유명하다.[그림 4] 뉴트럴한 컬러의 알루미늄으로 마감한 매장은 군데군데 기워 연결한 부분이 역력히 보이나, 완벽하게 모던한 인테리어 마감재의 역할을 다하도록 처리함으로써, 그는 매장 공간기획을 통해 ‘요람에서 요람으로’17)의 사회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림 4] Pleats Please 매장. Tokyo Aoyama

(출처 : Tokujin Yoshioka. http://www.tokujin.com/en/project/)


한번 사용된 소재를 다시 사용하는 재활용의 방법에 이어, 폐기물을 예술작품으로 승화하여 미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로 표현한 작품이 눈에 띈다. 2008년 21_21디자인사이트에서 전시한 이세이 미야케의 기획전 ‘21세기인(XXIst Century Man)’은 다양한 아티스트와 함께 21세기를 바라보는 전시였는데, 그는 이 전시를 통해 궁극적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시작 중 그의 작품 ‘21세기의 신화’는 플리츠 플리즈 영구주름 제조공정에서 사용된 폐종이, 즉 이미 산업용으로 사용되어 그 역할을 다한 종이를 이용하여 8명의 여신들의 몸과 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그림 5] 현대의 우리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전래동화와 같은 형태로 표현하고자, 일본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뱀, 야먀타노 오로치와 8명의 여인들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두었다. 책을 손에 든 여인은 지(知)의 상징이며, 비둘기와 함께 있는 여인은 평화와 사랑을 염원하고 있고, 나비가 날아드는 닥나무를 손에 든 여인은 생명의 원천을 나타낸다. 그는 작품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닐까.”18)라고 말한다.


[그림 5] Myth of the 21st Century Tokyo, 2007 - 2008

(출처 : 21_21 design sight. http://www.2121designsight.jp/en/program/xxic/)


한편, 이세이 미야케는 이 ‘21세기인’전시 기획에 있어 일본의 각광받는 차세대 디자이너 오오키 사토(佐藤 オオキ)를 초대하면서 그에게 이 종이 폐기물을 활용한 가구 작품을 의뢰하였다. 오오키 사토는 21세기 미래의 인간에게도 손이란 여전히 강력한 생산의 수단임을 이야기하는 듯 종이두루마리의 겹을 벗겨냄으로써 양배추처럼 수많은 겹으로 이루어진 의자를 만들어냈고, 이 종이 작품은 폐기될 수 있는 제조공정 과정 산물을 이용하여 견고하고 편안할 뿐만 아니라 양배추처럼 껍질을 벗겨내면서 사용하는 재미에 미묘한 아름다움까지 더한 의자로 인정받아, 더 나은 삶을 염원하는 2009년 ‘인덱스 어워드’최종 후보작에 선정되기도 했다.[그림 6]


[그림 6] 이세이 미야케 Pleats Please가공용 종이재료를 이용한 가구 작품. Cabbage Chair

(출처 : MoMA. http://www.moma.org/collection/browse_results.php?criteria=O%3ADE%3AI%3A1%7CG%3AHI%3AE%3A1&page_number=12&template_id=1&sort_order=2)


이세이 미야케는 페이퍼패션(Paper Fashion)전이라고 하는 유럽 순회 공동전시를 통해서도 이 폐종이에 대한 또 다른 시도를 보여주었다. 페이퍼패션전에서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디자이너들은 각자에게 영감을 준 종이를 이용한 작품을 전시하였는데, 이세이 미야케는 이 폐기용 주름 종이를 이용하여 그의 디자인 세계 및 의지를 표현하는 전시작품을 완성하였다.[그림 7]


[그림 7] Paper Fashion 전시 중 이세이 미야케 작품.Fashion Museum in Antwerpen, Belgium, 2009

(출처 : 서울패션센터 글로벌 패션리포트 블로그. http://blog.naver.com/ahnsse?Redirect=Log&logNo=70060704694)


한편, 최근 들어 재활용 메시지를 담은 그의 실천적 의지는 더욱 실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나타나는데, 바로 얼마 전 2010년 11월에 있었던 새로운 라인 ‘132 5. ISSEY MIYAKE’의 출범이 이를 보여준다. 수학적인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하여 입을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가는 이 라인은 한 장의 천으로 접혀져 있던 구조가 인체에 입혀지면서 기존의 의상 패턴에 의미 있는 창조적 도전을 한다.[그림 8] 여기서 주목할점은 이 라인의 제품들이 일본의 대표적 화섬기업 데이진(Teijin)사에서 개발한 재활용 PET 제품으로부터 만들어진 섬유, 혹은 기타 재활용 섬유와의 합성 원단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착용감까지 우수한 데이진사의 신소재는 폴리에틸렌 수지로부터 분쇄-용해-방적에 이르는 단계를 밟아 만들어지는 화학적 재활용 소재로서, 더 이상 유한한 화석염료에 의존하지 않는 소재를 활용하고자 했던 이세이 미야케의 의지에 적절하게 부응한다.


[그림 8] 132 5 ISSEY MIYAKE 기본 형성과정

(출처 : dezeen. http://www.dezeen.com/2010/10/05/132-5-by-issey-miyake/ 연구자 편집이미지.)


특히 데이진사는 화학적 재생의 폴리에스테르계 섬유관련 선도적 기업으로 생산과정에 있어 에코서클(Eco-Circle)이라 불리는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해왔는데 이 시스템은 생산 중 소재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에너지 소비량을 감소시키고,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약 80% 감소시킨다.19) 이세이미야케는 에코서클에의 참여를 매우 중요한 계획으로 언급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라인의 출범에 있어 환경보호에 대한 자신의 의식을 구체적으로 강조하여 설명하면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132 5기획의 원천을 ‘재생과 재창조(Regeneration and Re-creation)’라고 밝히고 있다.20)

그에게 있어 지속가능성을 위한 실천 의지는 남다른 자연에 대한 의식이 밑거름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디자인, 자연의 원 현상에 대한 관찰과 응용의 디자인 방법을 실천해온 디자이너이다. 이는 특히 최근의 작품 중 2009 S/S 컬렉션, 아마존 밀림에서 직접 수집한 컬러로 제작된 디자인에서 잘 드러난다. 웹사이트에 공개한 컬러 수집 자료에 의하면, 측색 과정을 세 가지로 나눠서 아마존 밀림의 나무, 풀, 꽃 등의 식물이나 대지의 빛깔을 나누는 과정, 잔잔한 호수와 늪의 빛깔, 그리고 규모와 속도감을 담아 좀 더 넓은 강의 활력있는 물결색을 미리 준비한 다양한 원단 컬러칩의 육안검색 방법으로 측색하는 과정이 보인다.[그림 9] 이는 현재 살아있으나 인간에 의하여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아마존 야생의 색이 채취되는 과정이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배운 디자인 결과물을 컬렉션으로 남겼고, 그 진지하고 경이로운 디자인 과정을 대중의 기억에 남기고 있다.


[그림 9] 2009 S/S Collection을 위한 컬러 수집 과정 ‘Color Hunting in Amazon’

(출처 : Issey Miyake. http://www.isseymiyake.com/en Behind Design Archive 동영상 화면캡쳐)


3.3. 협동과 참여, 상생의 디자인

이 시대의 실천적 디자이너로서 이세이 미야케를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의도했던 인간중심, 지속가능성 등의 여러 가지 실천이 다양한 사회적 인간관계 내에서 상생을 도모하여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그는 협력의 관계를 지향하여 개인과 개인이 만나 팀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실천을 이루었고, 이러한 협력의 관계는 단순히 디자이너 혹은 예술가, 전문가들의 것이 아니라 중소지역생산자 그리고 소비자에게까지 연결된다. 사람을 통해 이끌어내는 가치에 힘을 실었고, 이로써 그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의 사회적 선, 상생의 가치를 따르려 했다.

세계의 수많은 패션디자이너 중에서 이세이 미야케만큼 동료, 혹은 팀의 관계를 강조하고 성공의 결과 앞에 동료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디자이너는 지극히 드물다. 이런 가운데 그가 디자인 작업에 있어 힘을 쏟았던 협력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면, 그가 공개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했던 사회적 관계는 매우 다양하다.

먼저 그의 브랜드 내부의 협력관계로서, 대표적인 리얼리티 랩(Reality Lab Project Team)이 있다. 현재의 이 팀은 2007년에 형태를 갖춘 팀웍 기반의 조직으로서, 연구를 통해서 옷으로부터 여타의 산업제품에 이르기까지 미래지향적인 모든 제품을 탐구하는 목적을 갖는다. 그래서 항상 대중들이 필요로 하는 창의적인 제품을 찾고, 창의적 생산을 자극할만한 새로운 방식을 찾는다. 이 역동적인 팀을 이끄는 대표 연구자로서 텍스타일 분야의 마나부 기쿠치(菊池學)와 패턴 분야의 사치코 야마모토(山本幸子)가 있다. 그는 리얼리티 랩이라고 하는 협력조직을 내세워 다양한 제품개발에 힘쓰는 한편 작품 전시를 열고 그가 고민하는 세계의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 2010년, 21_21 디자인 사이트(21_21 Design Sight)에서 열린 특별전 ‘리얼리티 랩(Reality Lab)’에서 그는 지금이야말로 만들기, ‘생산의 미래’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라 이야기한다. “디자이너의 임무는 사용자들을 위해 생각을 현실로 변환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모색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일종의 현실 실험(Reality Lab)인 것이다.”21)

또 다른 창조적 협업의 관계는 텍스타일 디자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교토의 전통염색과 직조로 유명한 가문 출신 마키코 미나가와(皆川魔鬼子)와의 지속적인 협력이 있고, 독특한 테크놀로지의 결합으로 일본의 현대텍스타일 산업에 예술적 기반을 마련케한 섬유예술가 주니치 아라이(新井淳一)와의 협업 등이 유명하다. 이세이 미야케는 특히 소재개발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던 디자이너로서 일본의 전통소재와 일본의 현대섬유예술의 장을 넘나들며 감동과 진실성의 가치를 추구했다.

한편, 이세이 미야케는 패션과 텍스타일 분야를 넘어선 콜레보레이션을 시도하게 되는데, 1998년 파리 까르띠에 재단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국내 미술전 문지와의 인터뷰를 가진 그는 “96년부터는 동시대 작가들을 초청, 예술과 의상의 만남을 도모하는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Making Things'라는 테마로 기획된 이 전시는 세계적인 예술가, 이사무 노구치(野口勇), 모리무라 야수마사(森村泰昌),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経惟), 팀 호킨슨(Tim Hawkinson), 차이구오창(Cai Guo-Qiang)과의 협업이 중심이 되었다. 이세이 미야케는 자신의 팀 작업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팀 작업을 할 때는 우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개념을 확립시키고, 그것에 근거한 연구 조사를 통해 마침내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낸다. 팀 작업은 연구원 한 사람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공동 작업인 셈이다. 나는 나의 작업 과정을 이런 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내 역할은 제작 과정과 최종 작품의 완성도를 관리하는 것이다.”22)

이와 같이 패션 고유의 범위를 넘어서는 협업 관계로서 가장 최근에 눈에 띄는 경우는 컴퓨터과학자 미타니 준(三谷純)과의 콜레보레이션이다. 3D 오리가미(折紙)분야의 선구자인 미타니 준과 더불어 전위성과 일본의 고유함을 보여주는 새로운 라인 ‘132 5. 이세이 미야케’가 탄생하였다. 1장의 천으로 3차원의 입체 조형을 만들고, 2차원의 평면이 시간 속에서 인간에게 입혀짐으로 인해 시공을 초월한 5차원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뜻을 품고 있는 132 5라인을 만들면서 이세이 미야케는 그가 일찍부터 오랜 시간 몰두했던 테마, ‘한 장의 천’에 대한 진보를 컴퓨터과학자와의 협력을 통해 진행할 수 있었다.

현대디자인 이슈의 중심에서 대표적인 실천적 디자이너로 거론되는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 1927-1998)의 말처럼 대부분의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행동이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곳은 바로 서로 다른 기술분야나 학문분야가 만나는 경계영역 내이다.23) 이세이 미야케는 과감한 공유를 통해 보다 더 나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확장된 경계의 공유를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고민할 수 있다는 믿음은 도쿄의 미드타운에 세워진 ‘21_21디자인 사이트’를 통해서도 강력히 보인다. 이세이 미야케, 후카사와 나오토(深澤直人), 사토 다쿠(佐藤卓)등 3명의 공동 디렉팅으로 만들어진 이 디자인 센터의 목표는 디자이너는 물론 회사, 장인, 엔지니어, 그리고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에 관계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의 시각과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고24) 디자인을 통해 인간의 ‘생명’과 ‘생활’, 그리고 ‘환경’을 한 번 더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재발견을 기대한다고 했다.25)

이렇듯 다양한 관계 속에서 보여지는 그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믿음은 앞서 밝힌 바대로 사회적 상생의 가치로 승화되어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살리는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즉 그는 팀 활동으로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그 결과물에 대한 자부심뿐 아니라 그 조직에 대한 자부심을 사회에 드러내고 있다. 이세이 미야케의 각종 기획은 서로의 분야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그가 조직 및 동료의 에너지를 얻듯 그의 에너지를 사회로 널리 전하고 있다.

이에 이세이 미야케의 팀작업은 뛰어난 역량의 후진 양성과도 연관이 깊다. 대표적으로 현대 미술계와 디자인계에서 작품성과 상업성 모두를 갖춘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도쿠진 요시오카(吉岡德仁)는 1988년부터 이세이 미야케에게 사사받고 이세이 미야케의 디스플레이 작업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여, 이후 2000년에 독립적인 디자인사무소를 설립한 아티스트이다. 도쿠진 요시오카는 이세이 미야케의 정신세계를 이어받았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26)

또한 이세이 미야케가 표방하는 사회적 상생의 의지는 그가 취하는 일본의 전통지역산업에 대한 관심을 통해 가장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는 영국 유력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의 지역산업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면서, 지역생산시스템이 당면한 어려움에 대해 적극적으로 현실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는 상생의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지역기반 생산업체들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일본의 전통문화, 전통기술을 진흥시킬 수 있을지, 그리고 이를 통해 미래의 세대에게 전수될 것들을 어떻게 창조해낼 것인지의 고민들을 제기했고, 특히 소재분야에서의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큰 과제로 다가온다고 밝힌 바 있다.27)

이러한 고민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이세이 미야케의 기획과 생산에는 자국의 지역 전통 생산시스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연계하여 결과물을 산출하는 한편, 이 과정을 홍보의 단계로 잇고 있다. 그의 대표 웹사이트에는 시즌별 컬렉션 디자인의 배후 과정을 보여주는 콘텐츠가 있는데, 그 중 ‘Galaxy meets Hachijo-island - 섬의 푸른 바다와 전통직물 '키하치조'를 만나다. ’동영상은 2008 S/S 컬렉션 디자인 과정을 보여주는 홍보물이다. 이는 하치조섬(八丈島)의 유명한 특산직물 키하치조의 장인, 호마레 야마시타(山下八百子)의 메유공방(めゆ工房)을 방문하여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일본장인의 작업 현장을 소박함과 절제된 감성이 묻은 작은 시골 풍경과 함께 담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화면에는 키하치조 자연염색의 원료가 되는 식물 코부나구사(조개풀), 타부노키(후박나무)등의 재배 현장, 건조 과정, 그리고 섬의 둘레 푸른 바다에 침잠하여 실험 중인 이세이 미야케의 의상들이 등장한다.

이와 유사하게 2008 F/W 컬렉션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Meet Japan's woolen fleece’동영상이 공개되고 있는데, 일본 혼슈 북동부 이와테(岩手)현 지역 농장을 방문하여 수공의 섬세함과 혁신적 기술을 두루 갖춘 시스템을 소개하고, 평화로운 풍경에서 양을 키우며 털을 깎아 엄선의 과정으로 검증하고 지역민의 손길과 기계의 운용으로 실을 뽑고 짜는 과정을 홍보하고 있다. 자국의 지역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물론 자국 지역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상생의 의지가 엿보인다고 할 수 있다.

4. 결 론

사회가 요구하는 메세지를 디자인의 문제로 풀어가는 창조적 리더 이세이 미야케는 시대적으로 앞서 디자인의 사회적 영향력을 인식하고 행동한 디자이너이다. “나는 디자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28) 라고 했던 그의 언급처럼 그는 디자이너가 사회 속에 존재하며 적극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면서 다양한 실천적 활동을 펼쳐왔다.

이세이 미야케는 인간 중심의 기본 태도 안에서 고유의 미학적 세계를 대중화하고자 노력했고, 사회의 다수를 위한 생활밀착형 디자인을 추구하였다. 과거로부터 이끌어낸 가치를 미래로 연결하여 희망의 메시지를 사회에 전하고자 했던 그는 환경보호와 자원보존에 대한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출하였고, 이 바탕으로는 자연에 대한 겸허한 자세가 관찰된다. 그는 사람을 통해서 보다 나은 것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협력을 추구했고, 이것이 작게는 자국의 지역산업에, 크게는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에 일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디자인사 연구자 빅터 마골린(Victor Margolin)은 ‘생산물 환경과 사회적 행위’에 대한 글에서 디자인이란 무엇이고 디자이너는 누구인가 자문하면서, 결국 인간의 디자인 행위는 수동적이 아닌 적극적인 행위로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디자인에 다차원적으로 개입한다고 하였다.29) 경험으로부터 체득하고 내면화한 이세이 미야케의 휴머니즘은 자신의 신념에 집중한 채로 다른 사람, 즉 타인의 삶을 중심으로 다차원적 통로를 형성하게 했다. 이에 오늘날 많은 감각적 디자인들의 홍수 속에서 그의 다차원적 행보가 여전히 눈에 띄는 것은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에 담긴 사회를 향한 굳은 실천적 의지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Notes

1) 하스미 다카시(蓮見孝). (2004). 따뜻한 사회조성을 위한 유니버설디자인. 유니버설디자인연구센터 옮김. 부산:세종출판사. pp.158-161참고.

2) David Report. <http://www.davidreport.com/the-report>

3) 디자인DB. <http://www.designdb.com/dtrend/trend.r.asp?menupkid=235&pkid=999>

4) 유형식. (2005). 문학과 미학-의미의 탄생에서 의미의 사망까지. 서울:역락. pp.102-107 참고.

5)박신의. (2002).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라즐로 모홀리나기. 서울:디자인하우스. pp.40-41 참고.

6) Alastair Fuad-Luke. (2009). 디자인액티비즘. 조원호 옮김. 서울:미술문화. pp.27-51 참고.

7) Issey Miyake. (1999). Issey Miyake Making Things. Scalo New York. p.115.

8) 닛케이디자인 편저. (2007). 유니버설 디자인 사례집 100. 양성용, 홍철순 옮김. 서울:미진사. pp.44-45 참고.

9) 연구자주 : (사)한국유니버셜패션협회는 유니버셜 패션을 분류하는 중 유일한 브랜드 사례로서 플리츠 플리츠를 소개하고 있다. 출처 : (사)한국유니버셜패션협회. <http://www.radcops.co.kr>

10) Chikako Hiramitsu.(2005). 'Japanese Tradition in Issey Miyake'. Design Discourse vol.1 no.1 2005 January pp.38-39. 참고

11) ‘고정관념 껍질 깨야 새로운 역사 만들죠’, 동아닷컴. 2007년 12월 28일 <http://news.donga.com/3/all/20071228/8527443/1>

12) 'Fashion in a flat pack: Miyake's new clothing concept' The Independent. Monday 01 November 2010. <http://www.independent.co.uk/life-style/fashion/features/fashion-in-a-flat-pack-miyakes-new-clothing-concept-2121713.html>

13) Miyake Design Studio. <http://mds.isseymiyake.com/im/en/work/>

14) 위키피디아 사전 <http://en.wikipedia.org/wiki/Geoffrey_Beene> 및 제프리빈 웹사이트 <http://www.geoffreybeene.com/>

15) Terry Jones, Avril Mair. (2000). Fashion Now : i-D Selects the World's 150 most Important Designers. Taschen. p.338.

16) Issey Miyake, Dai HuFujiwara. (2001). A-POC MAKING. GZD. pp.68-69 참고.

17) 연구자주 : 그린디자인의 실천자 윌리엄 맥도너의 핸드북 제목으로서 제품의 재생 문제를 뜻한다. William McDonough, Michael Braungart. (2003). 요람에서 요람으로. 김은령 옮김. 서울:에코리브르.

18) 21_21design sight. <http://www.2121designsight.jp/en/program/xxic/>

19) ‘132 5. by Issey Miyake.’ dezeen. October 5th, 2010 http://www.dezeen.com/2010/10/05/132-5-by-issey-miyake/

20) ‘再生の糸、一枚の布 三宅一生さん、秋に新シリㅡズ發表’. ASAHI. 2010年8月24日. <http://www.asahi.com/culture/news_culture/TKY201008240097.html>

21) Designflux. 'REALITY LAB, 21_21DESIGN SIGHTSpecial Exhibition'. <http://www.designflux.co.kr/first_sub.html?code=2865&board_value=dailynews>

22) '파리 카르티에 재단에서 개인전 연 패션디자이너 이세 미야케' 월간미술 . 1998년 11월호. <http://www.monthlyart.com/199811/info_03.htm>

23) Victor J.Papanek. (1983). 인간을 위한 디자인. 현용순, 이은재 옮김. 서울:미진사. p.201

24) Designflux. '21_21 Design Sight'. <http://www.designflux.co.kr/first_sub.html?code=796&board_value=dailynews>

25) '도쿄 디자인의 핵, 21_21 디자인 사이트'. 디자인하우스. 2007년 5월호. <http://mdesign.design.co.kr/in_magazine/sub.html?at=view&p_no=&c_id=00010001&info_id=40714>

26) 현재민 외 공저.(2010). 도쿠진 요시오카 스펙트럼. 파주:럭스미디어. p.15.

27) 'Fashion in a flat pack: Miyake's new clothing concept' The Independent. Monday 01 November 2010.<http://www.independent.co.uk/life-style/fashion/features/fashion-in-a-flat-pack-miyakes-new-clothing-concept-2121713.html>

28) 'Fashion in a flat pack: Miyake's new clothing concept' The Independent. Monday 01 November 2010. <http://www.independent.co.uk/life-style/fashion/features/fashion-in-a-flat-pack-miyakes-new-clothing-concept-2121713.html>

29) Richard Buchanan, Victor Margolin 엮음. (2002). 디자인담론. 한국디자인연구회 옮김. 서울:조형교육. pp.195-197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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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닛케이디자인(日経Design)편저. (2007). 유니버설 디자인 사례집 100. 양성용, 홍철순 옮김. 서울:미진사.
  5. 이세이 미야케(三宅一生), 다이 후지와라(藤原大). (2001). A-POC MAKING. GZ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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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Chikako Hiramitsu. (2005). 'Japanese Tradition in Issey Miyake'. Design Discoursevol. 1 no. 1 2005 January.
  10. Jan van Toorn 외. (2004). 디자인을 넘어선 디자인. 윤원화 외 옮김. 서울: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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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Richard Buchanan, Victor Margolin 엮음. (2002). 디자인담론. 한국디자인연구회 옮김. 서울:조형교육.
  13. Victor J.Papanek. (1983). 인간을 위한 디자인. 현용순, 이은재 옮김. 서울:미진사.
  14. William McDonough, Michael Braungart. (2003). 요람에서 요람으로. 김은령 옮김. 서울:에코리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