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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Typography through Single Alphabet
단벌 알파벳을 통한 친환경 타이포그래피
  • Ja Eun Ku : Hongik Univ. Visual Communication Design Dept. Ph. D

Various fields of the society, including the design industry, are submitting Green Solutions in order to meet the needs of today. Typographers have also been participating in this problem solving movement, yet their methods have been limited and results have been subtle. From the history, the Green Typographic values were found from the German Single Alphabet movement where capital letters were eliminated for efficiency. In this paper, similar Single Alphabets are studies, and Green Typographic values and possibilities of Sae-bul Hangeul are proposed.

Abstract, Translated

시대의 요구에 따라 디자인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친환경 솔루션을 제안하고 있다. 타이포그래퍼들 또한 이 문제 해결에 동참해 왔으나 그 방법은 제한적이었고 결과는 미비했다. 역사를 살펴보니 효율성의 이유로 대문자를 과감하게 생략했던 독일의 단벌 알파벳으로부터 새로운 친환경 타이포그래피 가치들을 찾을 수 있다. 본 논문은 비슷한 단벌 알파벳 사례들을 연구하고 세벌식 한글의 친환경적 가치와 가능성을 제안한다.

Keywords:
green, typography, single alphabet, kleinschreibung, sae-bul hangeul, 친환경, 타이포그래피, 단벌 알파벳, 클라인슈라이붕, 세벌식 한글.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07 Mar, 2012
Accepted: 23 Apr, 2012
Printed: May, 2012
Volume: 25 Issue: 2
Page: 231 ~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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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ation: Ku, J. (2012). Green Typography through Single Alphabet. Archives of Design Research, 25(2), 231-239.
1. 서 론

급변하는 자연 환경과 고갈되는 자원 문제는 오늘날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소수의 환경운동가들만 관심 갖던 환경 운동은 이제 범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각 분야의 디자이너들은 적극적으로 이 문제해결에 동참하고 있으며 최근 ‘친환경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주위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수의 타이포그래퍼들 또한 친환경적 타이포그래피 개발에 대한 관심과 시도를 선행해왔다. 본 연구자의 논문 ‘인쇄물에서의 친환경 타이포그라피(Green Typography for Printed Materials)’에서 그 연구 목적은 ‘실용적 가치(종이와 잉크의 절약)와 상징적 가치(시각적으로 환경 메시지를 소통)를 모두 만족시키면서 가독성도 유지하는 진보된 형태의 친환경 글자를 만드는데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것’이었다. 자료조사를 통해 과거 선배 타이포그래퍼들의 엉뚱하면서도 흥미로운 시도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들로부터 친환경 타이포그래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다. 본 논문에서는 그 중 하나인 단벌 알파벳(Single Alphabet)을 발췌하여 역사과 사례, 친환경적 가치에 대해 알아보고, 유사한 가능성을 세벌식 한글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2. 친환경 타이포그래피
2-1. 친환경 타이포그래피 정의

친환경 디자인이란 전체 사용기간이 환경에 미치게 되는 영향력을 고려하여, 제품의 전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환경 피해를 줄이면서 제품 기능과 품질 경쟁력을 높이도록 하는 디자인이다. 그린디자인(Green Design), 에코디자인(Eco Design), 서스테이너블 디자인(Sustainable Design) 등으로도 불린다. 유해물질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사용이 가능하고, 사용이 끝난 것에 대해서는 분해, 재이용, 폐기가 쉽도록 설계한다. 생산 및 사용 시 에너지소비가 적은 등, 환경에 영향을 배려하여 제품과 포장을 설계한다.

타이포그래피의 탄생 이래, 적절한 친환경성을 위해 연구되고 개정된 부분은 타이포그래피의 부수적인 영역으로 제한되어 왔다. 인쇄에 쓰이는 장비, 종이, 잉크, 화학약품 등의 제조업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친환경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새로운 제품과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열거한 영역들은 산업 발전과 더불어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오늘의 해결책이 내일은 무의미해질 수 있다. 마치 오늘날 종이는 스크린으로, 잉크는 픽셀로 진화했듯이 말이다. 타이포그래피에서 시공을 초월한 불변의 매개체는 오직 글자이다. 제품 탄생의 원천인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는 것이 친환경 디자인의 요점이듯, 친환경 타이포그래피에서 먼저 다루어야 할 부분은 종이도, 잉크도 아닌 바로 글자 그 자체이다.

이전 논문 연구를 통해 본 연구자가 재 정의한 친환경 타이포그래피(글자)의 실용적 가치는 다음과 같다.

ㄱ. 물질적 감소: 새로운 형태나 부분적 생략을 통해 잉크와 종이의 사용을 절약

ㄴ. 에너지 감소: 제작과정을 단순화하여 디자인 노동력 및 개발비용을 절약

ㄷ. 효용성 증가: 새로운 구조 혹은 조합을 통해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

위 가치들을 지닌 타이포그래피에는 발전 가능한 친환경적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위와 같은 기준으로 단벌 알파벳 사례들과 세벌식 한글을 분석할 것이다.

2-2. 친환경 타이포그래피 사례

지난 500여 년간 글자 디자이너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목적에 부합하는 수많은 글자들을 개발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환경 디자인의 유행과도 같은 압도적인 흐름에 비해 구체적으로 친환경 타이포그래피를 목적으로 개발된 글자 사례는 많지 않다. 인쇄물이라는 매체를 유지하면서 환경에 실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아끼는 글자[그림 1]와 에코폰트(Eco Font)[그림 2]의 경우 기존에 있던 글자의 획 내부를 비워서 잉크사용의 25%가량 감소시켰다. 그러나 아끼는 글자는 정작 작업 노동량이 너무 크다는 단점이, 에코폰트는 가라몬드(Garamond) 등의 산세리프체에 비해 오히려 30% 이상의 잉크와 종이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논쟁이 일었다. 본 연구자가 만든 그린 No.2(Green No.2)[그림 3]의 경우 각 글자 안의 열등 획과 소문자의 디센더를 생략하여 잉크와 종이 사용량을 20% 가까이 줄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많이 훼손된 글자들이 가독성 문제를 일으켰고 이 글자 또한 견본으로 마무리 되었다. 슈피커만(Eric Spiekermann)이 자신의 블로그에 ‘이 시대 가장 경제적이며 획기적인 글자’라고 소개한 FF Mt[그림 4]는 대문자 축소와 모음 생략을 통해 종이의 50%를 줄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글자는 인터넷 상에서 파괴된 언어 문제와 친환경에 대한 맹목적 유행을 풍자하는 만우절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그림 1] 아끼는 글자, 이용제, 2006

[그림 2] Eco Font, Spranq, 2008

[그림 3] Green No.2, 구자은, 2009

[그림 4] FF Mt, Eric Spiekermann, 2007

이렇듯, 실제로 환경에 도움을 주는 새로운 글자를 디자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글자들이 이 시대의 가장 획기적 친환경 디자인 솔루션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종이와 잉크를 절약하는가? 그렇다. 절약의 결과가 당장은 미비하고, 때로는 더 많은 문제점들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가능성이다. 물리적인 글자가 갖는 친환경 요소의 가능성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 가능성은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동등한 가치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므로 소통의 매개체 만으로서도 친환경 타이포그래피 글자들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다.

3. 단벌 알파벳
3-1. 독일의 단벌 알파벳, 클라인슈라이붕

국가 사회주의가 정권을 잡은 독일에서는 1차 세계 대전 후부터 공산품 관련 규격을 제정하려는 노력이 가속화 되었다. 공업 생산을 통해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절실해졌고, 정부는 평화 때보다 더 엄격한 산업 규제 조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종이 판형에 규격과 표준을 제정한 독일 공업 표준(DIN, 1923)이나 타이포그래피의 기준과 규칙을 제안한 치홀트의 뉴타이포그라피(New Typography, 1928)가 바로 이 시기의 결과물들이다.

전통주의에 맞서는 현대주의의 일환으로, 야콥 그림은 민족적 암시를 줄이고 국제적 소통으로 나아가기 위해 1822년 독일 문법을 프락투어(Fraktur)가 아닌 로만체로 작성했고 영문에서처럼 문장의 시작과 고유명사에서만 대문자를 사용했다.(본래 독어는 모든 명사를 대문자로 시작한다.) 1920년 포르스트만 박사(Walter Porstmann)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어와 글쓰기(Languages and Writing)’을 편찬하고 대문자를 완전히 폐지하자는 제안을 했다. 클라인슈라이붕(Kleinschreibung)은 복잡한 독일어의 단순화한 소문자 전용 표기법으로서 ‘잃을 것은 없고, 오히려 가독성이 높아지고, 근본적으로 더욱 과학적인 문자가 된다’라고 주장하였다. 음성학적으로 더욱 정확한 기호를 갖춘 표기법과 순수하고 원소적이며 국제적인 산세리프체를 결합하고자 했다. 포르스트만은 클라인슈라이붕의 장점이 사무 효율성 증진에 있다고 밝혔지만, 디자이너들은 그 이념에 더 큰 무게를 두었다.

곧 바우하우스(Bauhaus)에서는 모홀리-나기(Laszlo Moholy-Nagy)와 바이어(Herbert Bayer)에 의해 대문자 철폐, 소문자 단독 사용이 시도되었다. 책, 포스터, 카탈로그, 잡지 등을 포함한 모든 인쇄물 에서 대문자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디자이너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는 왜 두 가지 알파벳으로 필기하고 인쇄하는가. 하나의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두 가지 기호는 불필요하다.

A=a. 우리는 대문자 A와 소문자 a를 발음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벌 알파벳만을 필요로 하며, 이는 충분히 대문자와 소문자를 함께 사용하는 것과 흡사한 결과를 갖는다. 단벌 알파벳은 필기하는 모든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준다. 어린이, 학생, 속기사, 전문가, 회사원 등. 훨씬 빠른 속도의 필기가 가능해지는데, 시프트키(shift key)가 불필요해지므로 특히 타자를 칠 때 유용하다. 타자를 보다 빠르게 배울 수 있으며, 구조가 단순해진 타자기는 가격이 줄어들 것이다. 폰트와 납 활자의 개수가 줄어들므로 인쇄비용 또한 줄어들며 인쇄소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상식에 입각하여 1925년에 바우하우스는 대문자를 철패하고 소문자 단독사용을 시작하였다. -바이어, MOMA

소문자만 쓰면-대문자를 제거하면-경제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이 분야 모든 혁신가가 추천하는 필기와 조판 방식이다. 소문자만 쓸 때 손실은 전혀 없다. 오히려 가독성도 높아지고, 배우기도 쉬워지고, 경제성도 근본적으로 높아진다. 예컨대 a소리 하나에 왜 A와 a 두 기호가 필요하단 말인가. 소리 하나에 기호 하나. 왜 한 단어에 두 알파벳을, 두 배로 많은 기호를 쓰는가? 절반으로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치홀트, 원소적 타이포그래피

바이어가 디자인한 대소문자 구별 없는, 순수 기하학적 형태의 알파벳인 유니버설(Universal)[그림 6]이 가장 유명하다. 활자로 제작된 적은 없으나 그가 디자인한 많은 바우하우스 홍보물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나치 정권 초기의 전통주의와 현대주의 사이에서 클라인슈라이붕은 생존하지 못했고, 나치의 탄압에 의해 바우하우스는 심하게 위축되어 여러 도시로 도망 다니다가 결국 강압적 폐쇄되고 말았다.


[그림 5] Neuer Schriftversuch, Max Burchartz, 1924

[그림 6] Universal, Herbert Bayer, 1926
3-2. 단벌 알파벳의 발전

16세기부터 시작되었던 단벌 알파벳에 대한 연구 및 개발은 바우하우스 안팎으로 진행되었는데, 특히 치홀트(Tschichold)[그림 7]와 카산드라(Cassandre)[그림 8]의 작업들을 눈여겨 볼 수 있다. 바이어처럼 소문자만 만들어서 단독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벌로 이루어진 새로운 알파벳을 구성, 디자인 한 것이다. 각 글자의 대문자와 소문자 중 최대 판독성을 기준으로 하나를 선별하여 한 벌의 알파벳으로 구성했고, 전체적인 리듬을 맞추고자 했다. 글자의 부족한 리듬감은 가독성과 판독성을 떨어뜨린다고 치홀트가 주장한 바 있다. 초기 단벌 알파벳 글자들이 실패한 이유도 각 글자 간의 리듬과 조화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모더니스트들의 아이디어는 새롭게 만들려는 의지에 비해 콘셉트가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그림 7] Optofonetische schrift, Jan Tschichold, 1929

[그림 8] Peignot, A.M. Cassandre, 1937

네셔널로만(National Roman)[그림 9]의 경우 조금 더 실험적이었다. 한 벌로 단순화 된 것 외에도 조금 더 나아가 모든 글자들이 같은 공간 안에서 디자인 되어있다. M이나 W와 같이 선천적으로 넓은 장평을 갖는 글자들은 90도로 회전되어 장평을 균등하게 맞추었다. 몇몇 글자들은 전체적 무게감 통일을 위해 조금씩 변형되었는데, G의 디센터는 과감히 생략되었고, I는 하단 획이 추가되었다. 네셔널로만은 타 단벌 알파벳들보다도 한 글자가 적은 25자로 이루어져있다. 피곳(Piggot)은 ‘글자Q는 단어에 자주 등장하지도 않을 뿐더러 충분히 다른 글자들로 대체 표기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알파벳에서 과감히 제외했다. 물론 이 글자는 가독성에 있어서 무리가 있으나, 시각적 균형과 리듬, 전체적인 조화를 얻어내는데 견본으로서 성공했다.


[그림 9] National Roman, Reginald Piggott, 1964

1950년에는 교육 목적의 단벌 알파벳 글자가 등장했는데, 바로 톰슨(Bradbury Thompson)의 알파벳26(Alphabet26)이[그림 10]다. 문장 ‘Run pal. See him run’에서 R과 r의 다른 구조를 혼란스러워하는 어린 아들을 보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글자를 연구했고, 바스커빌(Baskerville)을 사용하여 알파벳26을 제안했다. 대소문자가 같은 C-O-S-V-W-X-Z, 판독성이 높은 대문자 글자 B-D-F-G-H-I-J-K-L-P-Q-R-T-U-Y, 그리고 판독성이 높은 소문자 글자 a-e-m-n으로 이루어졌다. 실제로 이 글자를 이용해 난독증 환자 및 어린이에게 여러 차례 실험했고, 결과에서 눈에 띄게 높은 글자 식별 능력이 나타나 알파벳26은 인정받게 되었다. 실제로 오늘날까지 가장 널리 알려지고 인정받은 단벌 알파벳 글자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알파벳26의 익숙지 않음에 반대했다. 오히려 시행비용과 시간이 요구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톰슨은 이미 500년이 넘도록 인쇄물에서 사용되어온 알파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새로운 시스템에 금방 익숙해질 것이며, 가르치고 배우는데 있어서 놀라운 효용성을 얻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탄카드(Tankard) 또한 톰슨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아 디스털번스(Disturbance)[그림 11]를 디자인했다. 그는 톰슨의 작업 방향에는 동의했으나, 사라진 단어 외곽형태(bouma)가 긴 문장의 가독성을 떨어뜨린다고 판단했다. 본문용 글자를 만들기 위해 기본 단벌 알파벳의 구조에 가독성을 위한 어센더와 디센더를 추가하고, 이탤릭과 연자도 넣어 글자 패밀리를 완성했다. 대문자와 소문자의 구조가 결합되어 하이브리드 구조로 만들어진 글자(g-q)도 있다. 오늘날까지도 단벌 알파벳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고 있으며 필로소피아(Filosofia), 숄라(Cholla), 유노이아(Eunoia), 포노(Fono), 디자이널(Designal), 퓨전(Fusion), 디스트릭트(District), 데비아타(Deviata) 등 새로운 글자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림 10] Alphabet 26, Bradbury Thompson, 1945

[그림 11] FF Disturbance, Jeremy Tankard, 1992

본래 대문자 단벌로 탄생했던 로만 알파벳은 700년에 걸쳐서야 필사들에 의해 자연스레 소문자가 추가되었다. 소문자가 만들어졌던 이유도 빠르고 쉽게 쓰기 위해서였으니 로만 알파벳의 역사에는 이미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성향이 크게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소문자가 자리를 잡고 1000년이 다시 지난 시점에서 유사한 합리적인 이유로 단벌 알파벳 사용이 제안되고, 이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지속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인다.

3-3. 단벌 알파벳의 가치 변화와 친환경적 가치

현대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던 단벌 알파벳은 초기에는 높은 효용성과 경제성으로 관심을 받았고, 바우하우스의 디자이너들에게는 대소문자의 계급이 철폐된, 순수한 국제적 글자로 인정받았다. 1940년대 이후에는 경제성도, 국제성도 아닌, 판독성의 혼돈을 줄이기 위한 교육 방법으로 개발되었다. 5세기에 걸쳐오며 단벌 알파벳의 목표와 가치가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가치 변화의 흐름 중 본 연구자는 단벌 알파벳으로부터 친환경적 가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서론에서 정의했던 친환경 타이포그래피의 세 가지 가치, 즉 ‘에너지 감소, 물질적 감소, 효용성 증가’ 여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ㄱ. 에너지 감소

— 1. 필기의 수고를 감소한다.

— 2. 타자를 쉽고 빠르게 배우게 된다.

— 3. 글자의 개수가 줄어들어 디자인 노동력이 감소된다.

ㄴ. 물질적 감소

— 4. 단순한 구조의 자판은 가격이 줄어든다.

— 5. 소문자는 대문자에 비해 크기가 작아서 종이와 잉크를 절약한다.

— 6. 글자의 개수가 줄어들어 디자인 개발 시간 및 비용이 줄어든다.

— 7. 폰트의 가격이 줄어들어 인쇄 산업의 비용이 절감된다.

ㄷ. 효용성 증가

— 8. 난독증 환자 및 어린이의 글자식별 교육을 돕는다.

— 9. 배우기가 쉬워 외국인의 알파벳 교육을 돕는다.

4. 한글의 단벌 알파벳, 세벌식 한글
4-1. 네모꼴 한글과 세벌식 한글

앞서 알아보았듯, 단벌 알파벳은 다양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오늘날까지 그 연구가 지속되어왔으며, 친환경 타이포그래피로서의 가치 또한 충분한 가능성으로 개발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비슷한 사례를 한글에서 찾아본다면 어떨까. 독일의 단벌 알파벳인 클라인슈라이붕, 즉 글자 단순화(절약)개념을 세벌식 한글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한글은 본래 단순하고 수학적이며 획이 추가되어 자소가 파생되는 지속가능한 구조와 방식을 가진 우수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자음과 모음을 합하여 고작 24자밖에 되지 않는 기본 자소를 가지고 있다. 초성, 중성, 종성의 소릿값에 해당하는 자소를 모아 글자로 조합하면 한글은 자연스럽게 네모꼴이 아닌 세벌식 탈네모꼴 형태를 띠게 된다.


[그림 12] 네모꼴 한글(위)과 세벌식 한글(아래)

[그림 13] 글자 조합에 따라 다른 'ㄱ‘의 형태

훈민정음에 한글을 네모꼴에 맞추어 쓰라는 설명은 없지만, 창제초기부터 한글은 한자의 영향으로 네모꼴 안에 그려서 사용되어 왔다. 이처럼 모든 조합의 글자가 같은 네모 크기 안에 맞춰져서 개별적으로 그려진 것을 네모꼴 한글이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읽고 쓰는 대부분의 글자들이며 개발되는 대부분의 글꼴들이다. 네모꼴 한글 한 벌 11,172자이며, 최소한 1,000여 자가 각각 손으로 그려져야 한 벌의 글꼴을 만들게 된다. ‘가, 각, 개, 객, 고, 곡, 과, 곽, 괘…….’등에 적용되는 각각의 ㄱ자는 적게는 9종에서 많게는 32종까지 만들어져야 한다[그림 13]. 이렇다보니 한글 글꼴 한 벌을 디자인하는 작업량과 개발 시간은 로만 알파벳 한 벌을 디자인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또한, 간단한 구조의 글자와 복잡한 구조의 글자가 같은 공간에서 표현되기 때문에 종종 가독성에 문제를 일으킨다. 로만 알파벳의 가독성 향상 요소 중 중요한 하나는 울퉁불퉁한 단어외곽형태(bouma)이다. 때문에 대문자로만 이루어진 텍스트 보다는 대소문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텍스트가 가독성이 높고, 충분한 길이의 어센더와 디센더를 가진 글꼴들이 비교적 엑스하이트가 높은 글꼴들에 비해 가독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단어외곽형태가 단순하고 직사각형을 이루는 네모꼴 한글에는 적용되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한글의 우수성이 인정받으면서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나 정작 한글의 구조와 글자꼴의 모습이 글자마다 달라서 한글 교육에 혼란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그림 14] 67자로 이루어진 세벌식 한글 한 벌

그에 반해 세벌식 한글 한 벌은 67자이며[그림 14], 낱글자도 오직 한 가지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세벌식 한글의 사용을 옹호하는 연구자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세벌식 한글은 경제적이며 과학적이다, 자소의 형태가 왜곡되지 않기 때문에 조합형 글자인 한글의 특징이 살아있다, 글자꼴 개발이 쉽고 빨라져서 시각문화를 다양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기능적이고 기계화가 용이하여 산업화에 뛰어나다, 교육에 효과적이다. 안상수, 한재준 교수 등이 세벌식 한글의 가치와 발전 가능성에 대해 여러 차례 발표한 바 있으므로 본 논문에서 그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은 생략한다.

4-2. 세벌식 한글의 친환경적 가치

글자 수를 절반으로 줄여 획기적이라는 평가와 수많은 가치들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던 클라인슈라이붕에 비교했을 때, 세벌식 한글의 가능성은 더욱 놀랍다. 앞서 언급했던 친환경 타이포그래피 가치(에너지 감소, 물질적 감소, 효용성 증가)를 세벌식 한글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ㄱ. 에너지 감소

— 1. 글자의 개수가 줄어들어 디자인 노동력이 감소된다.

— 2. 기계화에 용이하며 산업화에 뛰어나다. 타자를 칠 때마다 컴퓨터가 새로이 글자 형태를 프로세스 하는 에너지가 감소된다.

ㄴ. 물질적 감소

— 3. 글자의 개수가 줄어들어 디자인 개발 시간 및 비용이 줄어든다.

— 4. 디지털 폰트 파일 크기가 줄어든다. (기본 패밀리와 글리프를 포함한 로만 알파벳 폰트 크기 약 500kb, 11,172개의 조합과 기본 글리프를 포함한 한글 폰트 크기 약 5Mb)

— 5. 폰트의 가격이 줄어들어 인쇄 산업의 비용이 절감된다.

— 6. 자소 조합에 따른 글자의 밀도 변화가 없으므로 작은 글자 크기에서의 잉크 번짐이나 획의 충돌과 같은 인쇄 오류가 감소한다.

ㄷ. 효용성 증가

— 7. 한 가지 형태로 통일된 자소를 아용한 교육은 어린이의 글자 식별을 돕는다.

— 8. 배우기가 쉬워 외국인의 한글 교육을 돕는다.

— 9. 가독성에 관한 새로운 접근을 통해 한글에서의 효율적인 공간 활용 연구가 가능하다.

5. 결 론

지난 수십 년간 무관심 속에 묵혀두었던 세벌식 한글에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친환경 디자인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내제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물론 현 시대에 맞추어 적합한 공간 활용 등 많은 개선과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갑작스러운 세벌식 한글 사용은 독자들에게 형태적인 거부감 혹은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클라인슈라이붕의 가치를 인정했지만 정작 대중들에게는 가독성 저하의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과 같다. 하지만, 글자의 가독성은 ‘익숙함’으로부터 증가한다는 사실을 많은 연구와 실험들이 증명한 바 있다. 이미 오랜 기간 동안 네모꼴 한글에 익숙해진 습관적 미감의 기준에서 볼 때 세벌식 한글은 낯설어 보이지만, 문제점의 근본은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의 부족이지 결코 세벌식 한글의 구조나 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림 15] 안상수체(세벌식 한글), 윤고딕 250(탈네모꼴 한글), 서울 남산체(탈네모꼴 한글), sm견고딕(네모꼴 한글) (위에서부터)

오늘날, 사회의 친환경적 가치 요구에 부합하고 대중들에게 서서히 다가가는 세벌식 한글의 가치와 가능성은 50년 전과 확실히 달라졌다. 이 시점에 세벌식 한글은 타이포그래퍼들에 의해 재조명되어야 한다. 친환경 솔루션을 위해 새로운 방법들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이미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 역사로부터 그 가능성을 찾아 재사용 하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발상의 재사용(reuse of idea) 또한 친환경 솔루션의 3R(reuse reduce recycle) 중 하나인 셈이다.

References
  1. 구자은. (2010). 글짜씨 1-280: 인쇄물에서의 친환경 타이포그라피. 안그라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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