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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vasive Public Performance and Pervasive Game as Aesthetic Experience
미적 경험으로서의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와 펄베이시브 게임
  • Hyun-Jean Lee :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s and Arts, Yonsei University

Looking into two kinds of creative work, pervasive public performance and pervasive game, which have recently received much attention, this paper aims to discuss the aesthetic experiences and values of them in the contemporary art and design context. This research first examines the definition and concept of each type of work and finds shared characteristics in both by looking at several exemplifying works in each field. As a result, this research examines three shared characteristics between the two. First, they create beauty or an aesthetic experience that results in fun or joy; second, they promote community participation and have a common interest in ordinary daily life; finally, they widely exploit and explore communication media technologies, from planning and organizing their creative work to documenting and distributing their experience. Such shared approaches and attitudes can be found in connection with contemporary artwork, particularly from the perspective of relational aesthetics, which analyzes artwork after the 1990s as reflecting diverse types of relationships found in society. On the other hand, when their use of media technologies and their approaches of media rhetorics are looked at closely, the artworks can be seen as media artworks. Through this discussion, this research claims that this kind of work can be positioned as a type of creative contemporary artwork and the aesthetic approaches which this kind of work is producing help expand and develop the realm of media art realm itself by approaching interactivity on a more thematic and socially meaningful level.

Abstract, Translated

본 논문은 근래 주목되는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와 펄베이시브 게임 등 새로운 미디어 표현매체를 통해 접근 가능한 다양한 집단적 창작 행위들이 함유하고 있는 미적 경험의 속성과 가치에 대하여 살펴보고, 이들이 현대 예술, 디자인 작업으로 어떻게 자리매김 될 수 있는지 고찰한다. 이를 위해 각 행위들의 일반적 정의와 개념, 사례들을 살펴보고 이 사이에서 공유되는 공통적 예술 창작 행위로서의 접근 태도와 감상 경험을 찾아본다. 이 작업들에서 발견한 세 가지 공통점은 첫째, 아름다움 혹은 즐거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미적 경험, 둘째, 커뮤니티적 참여를 불러일으키고 일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디어 기술과 수사학이 창작 행위들의 기획과 진행, 기록과 배포 등의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측면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들은 현대 예술적 행위들과 다양한 지점에서 공유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1990년대 이후 현대 예술의 흐름을 다양한 관계적 소통과 참여의 맥락으로 해석하고자 한 '관계미학' 이론으로 조망해 볼 수 있다. 한편, 위의 작업들이 보여주는 미디어를 활용한 수사학적 표현과 태도는 이러한 창작과 감상 행위들을 일련의 미디어 아트 작업으로서도 주목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본 논문에서는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와 펄베이시브 게임 등이 아름다움과 즐거움의 인식적 쾌를 동반한 가치 있는 미적 경험을 창조하는 현대적 예술 행위로서 바라볼 수 있음을 밝히고, 더 나아가 미디어를 예술적 도구로서 보다 충실히 접근해가며, 주제적으로도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보다 의미 있는 상호작용과 소통의 차원으로 확장, 발전시켜 가고 있는, 보다 발전된 미디어 아트 작업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Keywords:
Pervasive Public Performance, Pervasive Game, Aesthetic Experience, Relational Aesthetics, Media Art&Design, Community, Participation,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 펄베이시브 게임, 미적 경험, 관계미학, 미디어아트, 미디어디자인, 커뮤니티, 참여.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10 Apr, 2012
Revised: 31 May, 2012
Accepted: 31 May, 2012
Printed: Aug, 2012
Volume: 25 Issue: 3
Page: 76 ~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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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2010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0-332-G00112)

Citation: Lee, H. (2012). Pervasive Public Performance and Pervasive Game as Aesthetic Experience. Archives of Design Research, 25(3), 76-93.

1. 들어가며
1.1 두 가지 간접 경험의 기억

누구에게나 스쳐 지나가는 일상 속 경험 중에서 몇 년이 흘러서야 새롭게 떠오르는 간접경험에 대한 기억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 중 인터넷의 보급과 편재적인 통신망의 발달,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의 확산이 가속화되며 이러한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 다양한 간접 경험의 소스들은 이제 다양하다 못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는, 이른바 간접경험의 공급과잉시대에 접어든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간접경험, 즉, 예술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나 굳이 예술 작품이라 하지 않아도 시공간의 현장성을 담지한 컨텐츠로부터 얻게 되는 간접경험은, 현장에서 느껴지는 직접적 감흥과 그 정도와 가치가 단순 비교될 수는 없지만, 그 유입이 더욱 다양한 경로로 접해진다는 장점 때문에 그 경험자들에게 단편적 기억의 조각들로 남아 있다가 훗날 우연히 교차되거나 연결되어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는 실마리로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필자에게도 근 이삼 년 전 각각 다른 형태의 간접경험으로 접하게 된 두 작품이 있다. 이들은 기억의 한편에 희미하게 존재하다가, (서서히 관련 정보에 대한 노출이 빈번해진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관심사가 서서히 집중되었기 때문인지,) 점점 서로 교차되며 하나의 의미 있는 덩어리로 발견되고, 마침내 연구의 대상으로까지 다가오게 되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연구의 출발 지점이 된 이 두 가지 상이한 프로젝트들에 대하여 소개하며 시작하려 한다. 그 중 첫 번째 경험은 본 논문을 계획하며 메일 서버에 (다행히) 남아있는 몇 년 전에 교환된 메일 서신 속의 대화들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좀 더 선명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 역시 그 프로젝트가 진행될 당시 필자가 그 주변에 머무르며 간접적으로 경험하였으며, 최근 인터넷 상이나 서적 등의 기록물과 홍보 형식의 기사들에 기대어 접근하고 조사, 연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메일 서버에 의하면) 2008년 3월 11일, 필자가 미국의 한 미디어 관련 학문 분야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수학하던 중, 프로그램 학생들끼리 서로 다양한 논의를 주고받도록 개설된 전자 메일링 시스템을 통해 한명의 멤버가 그룹의 다른 멤버들에게 보낸 하나의 이-메일(E-mail) 속에 동영상 링크가 전달되며 시작되었다. 그 메일은 하나의 웹싸이트의 링크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그 곳에 올라있는 하나의 동영상 작품을 감상해보라 권하는 내용이었다. 그 동영상은 미국 뉴욕시에서 행해진 하나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비디오였는데, "Frozen Grand Central"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다. 이 비디오에는 한 명의 인물이 한 시내 공원에 모인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뭔가를 지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즉, 디렉터가 퍼포먼스를 수행해 줄 참여자들(agents), 즉 퍼포머들(performers)에게 퍼포먼스의 취지와 퍼포머들의 임무(mission)를 지시하는 것이다. 그 내용인즉,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기차역사내의 광장에서 모든 퍼포머들이 동시에 약속된 순간부터 시작하여 5분간 행하던 모든 일을 멈춰 있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우리나라의 '얼음땡'과 같이 끝을 알리는 또 다른 약속된 큐(cue) 신호가 있으면 다시 그전의 행하던 일을 연결하라는 주문이다. 이러한 미션이 지시된 후 비디오는 행위의 장소인 그랜드 센트럴(Grand Central)로 장소를 옮긴다. 그리고 이윽고 카메라는 이 장소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섞여 퍼포머들이 순간적 큐 신호에 의해 하던 일을 멈추고 동시에 얼음이 되는 모습을 하나하나 이동하며 보여주기 시작한다. 손을 잡고 걷던 연인은 걷기를 멈추고, 실수로 서류철을 바닥에 떨어뜨린 사람은 서류종이를 줍다 말고, 시계를 보며 걷던 사람은 시계를 바라보던 그 자세로 멈췄다. 한편 이런 퍼포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간 중간에 이 비디오는 이들을 우연히 바라보게 된, 이 계획을 전혀 모르는 행인들의 모습도 함께 보여준다. 이들은 순간적으로 벌어진 이 광경에 의아함과 혼돈을 느끼는 듯하지만, 곧 이 집단적 행위를 서서히 하나의 퍼포먼스로 파악한 후 이 광경을 즐기기도 한다. 약속된 시간이 흐른 후, '땡'을 알리는 큐 신호가 내려진 듯이, 비디오는 다시 각자 하던 일들을 자연스레 이어가는 퍼포머들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그리고 곧 길을 가다 아예 멈춰 서서 이들의 행위를 감상하던 군중들(비참여자들)이 모두 함께 박수를 치며 열광하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이 비디오에서는 비디오 관람자가 퍼포먼스 관람객들 사이의 사소한 대화를 들을 수 있도록 그들의 대화를 때때로 삽입시켜 놓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신나는 배경 음악이 사운드로 깔려 이 모든 장면들을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충실하게 묶어 내고 있다.

이 이-메일이 전달된 후 메일 그룹에서 꽤 오랫동안 이 동영상에 대한 감상평이 오고 갔던 기억에 비추어 볼 때, 필자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에게도 이 비디오 영상은 꽤 인상적인 경험으로 남은 듯하다. 메일 그룹 멤버들은 공통적으로 "아름답다(beautiful)!" 이라는 감탄으로 그들의 감상 경험을 표현하였다.1) 이외에도 메일링 그룹에서는 이 비디오를 감상할 때 소리를 켜고 감상해야 하는지, 아니면 끄고 감상하여야 하는지, 비디오에서의 사운드의 존재유무가 더하고 감하는 효과에 대한 논의도 전개되었다. 이러한 논의들은 이 동영상을 하나의 싱글채널비디오 작업으로서 간주하며 펼쳐진 크리틱(critique)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는 이 행위를 일련의 시리즈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성 퍼포먼스 작업인지 눈치 채지 못하였거니와,2) 이 작업을 그 자체로 하나의 잘 구성되고 준비된 한편의 비디오 작업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림 1] "Frozen Grand Central"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의 기록 비디오 스틸 장면

이 동영상은 재미있는 플래쉬 게임, 동영상, 애니메이션 등을 모아놓고 이들을 일반에게 소개하거나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는 웹싸이트에 올라있던 비디오였다.3) 그 후 이 비디오는 본 연구자의 기억 뒤편으로 희미하게 물러나 있다가 우연히 이러한 비디오에서 기록된 형식의 행위들이 이 프로젝트 이외에도 수많은 형태로 다양하게 존재하며, 또한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만나 기획을 하고, 또한 자발적인 참여자들을 모아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일종의 흐름이 있는 행위로 발전해 가고 있음을 서서히 알게 되면서 다시 주목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소개하려는 간접적 감상경험의 대상이 된 작업 역시 필자가 2004년에 유학 중 수학하던 프로그램에서 개설된 한 수업의 프로젝트로 기획되고 구현된 작업이다. 그 프로젝트는 바로 프랭크 란츠(Frank Lantz) 교수가 강의한 “빅게임(Big Game)“ 수업에서 진행된 도시 게임 프로젝트(urban game project)인 "팩-맨하튼(Pac-Manhattan)"게임이다. 이는 1980년대 고전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인 '팩맨(Pac-Man)'을 뉴욕 도심 거리의 큰 구획들을 중심으로 옮겨 놓은 매우 실험적 게임 프로젝트였다. 필자가 이 수업에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이 게임이 참여 플레이어가 각각 게임 캐릭터가 되거나 혹은 캐릭터를 보조하는 진행자가 되어 게임을 진행하는 일종의 '리얼 라이프 롤플레잉 게임(real life role-playing game)'적 요소를 지닌 게임이라는 점, 실제 도심의 거리를 가상 게임의 공간과 접목하여 활용한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실제 도심 거리 현장에서의 게임 디자인 테스트 과정을 거치기 위해 주말마다 도심을 뛰어다니는 게임의 자원참여자를 모으던 점들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이 게임이 이러한 몇 차례 게임 플레이어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홍보의 과정과 디자인 테스트 과정을 거쳐, 실제 현장에서 완성된 게임으로 구현되어졌을 때 이미 커뮤니티 내에서 적지 않은 입소문을 통한 반향과 유쾌한 화제 거리를 낳았던 것도 기억한다.4)

게임을 장르적으로 구분할 때, 종종 이 게임은 도심의 거리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며 도심의 행인들을 게임의 플레이어로 흡수하려 한다하여 ‘큰 규모의 도시기반 게임(Big Urban Game)’이라고 칭한다.5) 또한 일상과 게임이라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요소를 뛰어넘어 접근하거나 게임의 구현을 위해 펄베이시브 컴퓨팅 기술(pervasive computing technology)을 도구적으로 사용한다고 하여 ‘펄베이시브 게임(pervasive game)’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의 개념적 디자인으로, 도시에 관한 새로운 접근과 일상으로의 침투, 그 안에 공존하는 커뮤니티에 대한 인식과, 이를 통한 유쾌함과 재미와 즐거움의 공유 등은 이 게임을 더욱 주목되어 살펴보게 만드는 지점이 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면들은 앞서 소개하였던 공공 퍼포먼스 작업, "Frozen Grand Central"에서도 비슷하게 떠올리게 되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점들에서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기억들은 서서히 교차되며 본 연구자에게 재탐색의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1.2 연구목적 및 방법

본 논문은 이러한 두 작업들에 대한 간접 경험의 기억을 계기로 출발하여 최근에 더욱 주목되는 퍼블릭 퍼포먼스(public performance)와 커뮤니티 게임(community game) 혹은 펄베이시브 게임(pervasive game) 등 새로운 매체와 기술을 통한 표현 방식으로서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는 대중적이고, 집단적 미디어 창작 행위들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들을 비교적 새로이 출현하는 예술-디자인 창작 행위와 감상 대상으로 바라볼 때, 기존부터 있어온 일반적 예술 개념의 문맥으로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지,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즉, 이러한 새로운 작업들이 기존의 예술적 행위들과 어떤 연결 고리를 가질 수 있는가, 또한 이러한 유형의 작업들은 오늘날 현대 예술의 커다란 흐름의 맥락에서 어떠한 교집합을 구성하는가 질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림 2] "팩-맨하튼“의 게임지도(좌측 상하)와 ”팩-맨하튼“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우측 상하)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본 연구는 다음의 연구방법론을 택하고자 한다. 먼저 이러한 예술창작, 감상 행위의 사례들에서 교묘하게 교차, 감지되는 예술창작 행위로서의 접근 태도와 감상 경험을 살펴볼 것이다. 이는 첫 번째, 아름다움과 즐거움이라는 감정의 공유와 확산적 개념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며, 두번째, 이를 커뮤니티적 참여와 일상의 관심의 측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디어기술의 활용이란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공유되는 특징들을 살펴본 후에는 이들을 하나의 미적 경험을 생산하는 예술적 행위로 바라보고자 하는데, 이를 위해 먼저 현대 미술에 대한 이론과 비평, 특히 관계미학 이론과 비평이라는 분석의 틀을 통해 다시 한 번 접근해 보고자 한다. 또한 제작 방식에서 미디어 기술과 수사학적 표현 형태가 집단적 감상경험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현대 예술 속에서 새로이 확장되는 미디어의 활용의 관점에서 파악해 보고자 한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서두에서 소개한 펄베이스브 퍼블릭 퍼포먼스(pervasive public performance)와 펄베이시브 게임(pervasive game)에 대해 우선 이 두가지 장르에서 모두 등장하는 ‘펄베이시브’란 용어에 대하여 간단히 정의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펄베이시브(pervasive)’는 “만연하는, (구석구석) 스며[배어]드는”이란 뜻을 가진 용어로, 우리 말로는 흔히 “편재적”이란 뜻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는 “펄베이시브 컴퓨팅(pervasive computing)”이나 “유비쿼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 등 컴퓨터 과학 및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학문 분야에서 데스크탑 컴퓨팅의 후속 모델로서 새로운 HCI적 패러다임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명명된 것이기도 하다. 즉, 컴퓨터가 사용된 제품이나 시스템을 통해 정보가 일상의 사물들과 행동들에 합쳐져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마치 그들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잘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기술적이며 디자인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는 ‘편재성’ 이외에 ‘분산성’, 그리고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진’ 등의 폭넓은 의미를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본 논문은 이러한 폭넓은 뉘앙스를 충분히 담아내기 위하여 원어인 펄베이시브를 번역하지 않고 사용하려 한다. 다음 장에서는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와 펄베이시브 게임 각각의 장르를 보다 구체적인 예를 통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2.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와 펄베이시브 게임

먼저 펄베이시브 게임에 관한 이론과 디자인을 정리한 책인 Pervasive Games: Theory and Design Experiences on the Boundary Between Life and Play(2009: 31-46)에서는 펄베이시브 게임을 다양한 장르로 세분화시켜 소개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장르 세분화를 크게 두 가지, 즉 '이미 정착화된 장르(Estabilished Genres)'와 '새로이 출현하는 장르(Emerging Genres)'로 먼저 구분하며, 각 장르에 세부 장르를 카테고리화 시킨다. 이미 정착화된 장르로 '보물찾기(Treasure Hunts)', '암살게임(Assassination Games)', '펄베이시브 라이브 액션 롤 플레잉(Pervasive Larps)', '대체현실게임(Alternate Reality Games)'을, 그리고 새롭게 출현한 떠오르는 장르로서는 '스마트 거리 스포츠(Smart Street Sports)', '유희적 퍼블릭 퍼포먼스(Playful Public Performances)', '도심 어드벤처 게임(Urban Adventure Games)', '현실 게임(Reality Games)' 등을 들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 라이브 액션 롤 플레잉(live-action role-playing, 약자로 LARPs)을 차용한 'Pervasive Larps', 그리고 '유희적 공공퍼포먼스(Playful Public Performances)'는 이들의 행위를 지켜보는 이들이 있는 공간에서 플레이되며 퍼포머티브한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설명하며, 또한 특히 '유희적 공공퍼포먼스'는 정치적이며, 대립을 조장하는 극적 요소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하는 공연(busking)으로서의 측면을 버리는 대신, 참여자들의 재미와 관객들을 위한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측면을 추구한다고 설명한다. 본 연구자는 이 책에서 정리한 'Emerging/Established' 장르 구분에 크게 공감하지는 않지만, 이들이 게임의 하위 장르로서 본 논문에서 지칭하고자 하는 펄베이시브 퍼포먼스와 유사한 'Pervasive Larps', 'Playful Public Performances' 등을 폭넓게 펄베이시브 게임의 세부 장르로 꼽고 있는 면은 주목하게 되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들의 생각과 같이, 본 연구자도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도 넓게 펄베이시브 게임으로서의 요소를 지니고 있거나, 혹은 이 두 가지의 영역 모두 다원예술적 시각에서 서로 공유되는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하고자 하는데, 이는 본 논문에서 이 두 성격의 행위들을 함께 묶어 비교하고 고찰하고자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2.1.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

앞서 소개한 “Frozen Grand Central" 작업은 Improv Everywhere 그룹이 조직하고 기획하였다. 이 그룹은 2001년 뉴욕을 기점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고 하며 일반적으로 ‘희극적 퍼포먼스 아트 그룹(a comedic performance art group)’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다.6) 이 그룹은 "We Cause Scenes"이라는 모토(motto)를 가지고 현재까지 매년 다양한 규모로 수십 차례에 걸쳐 미션 개념의 퍼포먼스 프로젝트들을 창작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대체로 공공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에 의해 행해지며, 일시적으로 공간을 점유하여 행위를 한 후 사라지는 일회적 성격의 퍼포먼스라는 특징을 가진다고 하여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라 불린다. 이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공공장소에서의 퍼포먼스는 일시적이고, 일회적 속성을 지니지만, 최근 사진과 비디오와 스마트 폰을 이용한 모바일 블로깅 등을 통해 보다 섬세히 기록되고, 또한 유투브와 SNS(Social Network Service) 미디어 등의 인터넷과 소통매체를 통해 더욱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를 시각 예술 분야의 하위 장르로서, 미술사 내에서의 그 행위나 장르의 기원을 찾자면 표현 형식이나 개념적 측면j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등장하여 예술가의 몸을 하나의 매체로 주목한 신체 예술(body art), 작업으로 무대나 주어진 공간에서의 즉흥성과 현장성, 일회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플럭서스(Fluxus)의 해프닝(happening)이나 상황주의(Situationalism), 혹은 1980년대의 퍼포먼스 아트(performance art)와 등과 연결 지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물질적 작품의 형태로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의 제도적 공간에서 보관, 감상되고, 소유물이 되던 기존의 예술작품 개념에서 벗어나, 오직 일회적 사건의 현장성을 중시하며, 시각예술적 행위의 결과물이 비물질적 형태로 존재하거나 사라지는 것을 개념으로 한다. 그 행위의 과정은 물론 개념과 의도를 정리한 기획서, 혹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기록할 수 있는 사진, 비디오의 형태로 남겨져 미술사 안에 기억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기록물들이 그러한 행위들의 현장감과 분위기를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만 그 작업의 존재를 증거 할 수 있는 자료나 개념을 전달하는 보충자료로서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한편,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를,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등장하여 예술작품이 펼쳐지고 행해질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공공장소와 일상성의 개념에 주목하며, 예술 개념의 확장을 꾀한, 퍼블릭 아트(public art)와도 연결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즉흥 극장(improvisational theater), 거리 연극(street theater) 등 연극 쪽에서의 연결 지점도 찾아볼 수 있겠다.7)

그런데 이와 더불어 필자는 특히 이러한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가 프로젝트성 퍼포먼스로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한 구성원을 조직하는 것과 같은 행위의 기획과 조직, 그리고 그 행위의 과정과 결과물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부분에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 등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등장한 '플래쉬 몹(flash mob)'이나 '스마트 몹(smart mob)'과도 유사한 모습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8)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플래쉬 몹의 최초 기원은 2003년 빌 와식(Bill Wasik)이 기획한 이벤트를 자료로 올린 블로그에서 발견된다.9) 플래시 몹(flash mob)이란 인터넷 상에서 특정 웹싸이트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을 뜻하는 '플래시 크라우드(flash crowd)'에서의 ‘플래쉬’와, 그리고 이와 유사하게 실제 생활공간 안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모여 일정한 행동을 하는 집단인 '스마트 몹(smart mob)'에서의 ‘스마트’를 합성하여 만든 용어이다. Smart Mobs: The Next Social Revolution(2002)이란 책에서 하워드 레인골드(Howard Rheingold)는 집단적 행위인 '몹(mob)'에 대하여 이는 새로운 종류의 사회적 저항 형식이라고 말하였으며, 또한 "스마트 몹의 참여자들은 그들이 서로 누구인지 몰라도 조화롭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p.xii). 스마트 몹이 레인골드의 정의대로 사회저항성을 지닌다면, 플래쉬 몹은 보다 목적성 없는 행위를 특징으로 한다. 2004년 11번째 개정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새로운 단어인 '플래쉬 몹'에 대한 설명을 보면, 이는 “비일상적이며 목적성 없는 행위(unusual and pointless act)"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그것을 스마트 몹, 예를 들어 퍼포먼스와 저항행위, 혹은 다른 형식의 집회 등과 차별화 하고 있다.10) 또한 웹스터 영어사전에서는 플래쉬 몹에 참여하는 사람들, 즉 플래쉬 모버(flash mobber)들을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을 조직하고 공공장소에 빠르게 집합시켜, 어떠한 이상한 행위를 한 뒤 흩어져 버리게 하는 그룹의 사람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11) 이처럼 플래쉬 몹은 점차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하며, 서로 모르는 불특정 다수가 인터넷뿐만 아니라 전자메일, 휴대전화, 블로그,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며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 모여, 짧은 시간 동안 주어진 놀이나 행동을 취하고는 금세 제각기 흩어지는 것을 말한다.12) 앞서 언급한 “Frozen Grand Central” 및 Improv Everywhere 그룹의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 작업과 활동들은 물론 단순히 플래쉬 몹이라 정의내리기는 간단치 않은 부분도 있다.13) 하지만, 이러한 미디어의 활용과 일상의 삶과 대중, 커뮤니티에 대한 인식적 측면에서의 공유점은 플래쉬 몹의 특징과 상당부분 공유되는 측면이 있으며, 본 연구는 바로 그러한 창작과 감상 행위적 측면에 집중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예로 들고 있는 범주 안에서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 작업을 몇 가지 더 소개하자면, (우리나라 MBC 9시 뉴스에도 보도된 바 있는14)) Improv Everywhere 그룹의 또 다른 퍼포먼스는 "No Pants Subway Ride"(이하 "No Pant" 표기함)나15), 거대한 창문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건물 전체를 덮고 있으며, 이곳 건물의 각 층의 각 창문마다 한 명씩의 퍼포머들이 춤을 추어 마치 인간의 퍼포먼스로 구성된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와 같은 프로젝트인 "Look up more"(2009)도 들 수가 있겠다. 그리고 마치 우리나라의 이대역나 충무로역과 같은 깊게 뚫린 지하철 내의 에스컬레이터에서 무표정한 시민들에게 작은 웃음을 선사하여 주는 이벤트와 같은 프로젝트였던 "High Five Escalator"(2009)와 공공 도서관이나 공연장 등의 책가방과 옷가지 등의 소지품을 보관해주는 장소에서 소지품 안에 무선전화기를 넣고 이들을 외부에서 연결하여 수신 신호를 울리게 한 다음, 이러한 여러 전화기에서 울리는 수신음들을 가지고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서로 한데 어우러진 사운드 퍼포먼스를 행한 "Cell Phone Sympony"(2006)의 프로젝트 등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다양하고 재기 발랄한 재미와 잔잔한 일상의 감동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의 예이며, 본 논문에서 관심을 가지고 분석하고자 하는 창작적 행위와 감상 경험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16)

2.2. 펄베이시브 게임

앞서 언급한 '팩맨' 게임 역시 오늘날 '펄베이시브 게임' 혹은 '빅게임'이라 불리며 점차 그 장르적 성격을 굳혀가고 있다. 특히 이러한 장르는 2006년 미국 뉴욕시와 2007년 암스텔담시를 매 주말마다 놀이터(playground)로 바꾸며 게임 플레이의 공간을 보드(board)나 스크린 위에서가 아닌 실제 도심 속 거리 위나 공원 등의 공공장소로 이동하여 큰 규모로 시도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2008년 이후 계속하여 매년 미국 뉴욕 맨하튼과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에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열리는 “Come Out and Play Festival” 등을 통해 소개되고 실험되고 있다.17)

이러한 게임은 종종 도시의 블록(block)을 마치 보드 게임에서의 스퀘어나 컴퓨터 게임에서의 픽셀처럼 이용하여 플레이 하는 큰 규모의 게임이란 접근에서 “빅게임(Big Game)”이라고도 칭해지며, 혹은 실제 어떤 특정 장소를 선정하여 그곳에서 게임을 디자인하고 플레이한다 하여 '장소기반 게임(location-based game)' 혹은 게임 플레이를 위해 모바일폰(mobile phone)이나 모바일 테크놀로지(mobile technology)를 많이 사용한다고 하여 '모바일 게임(mobile game)'이라고도 불린다. 또한 이는 멀티 플레이어(multiplayer)가 참여하며, 그들의 행위가 실제 세계와의 가상세계의 사이에서 긴밀한 인터렉션을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혼합현실게임(mixed reality game)'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유사한 경험의 대상에 대하여 명칭이 다양한 이유는 펄베이시브 게임이 하나의 유행과 같은 시대정신을 지닌 게임으로 주목받고 생산되는 이유도 있으나, 동시에 이런 새로운 영역을 하나의 단어로 지칭하기 어려운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Pervasive Games: Theory and Design Experiences on the Boundary Between Life and Play(2009) 책에서 저자들은 펄베이시브 게임의 디자인 원리를 설명하는데, 이들 게임이 플레이어의 삶속에 여러 가능한 방법으로도 침투하며 플레이어들이 다시 세계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게임과 플레이 자체를 상호작용적으로 만들 것, 그리고 커뮤니티를 포용할 것 등을 언급한다(pp. xiii and xiv). 실제로 게임 이론가들이나 게임디자이너들은 펄베이시브 게임은 기존의 게임이 가지는 '매직 써클(magic circle)'을 시공간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고 본다.18) 즉, 시간적으로는 기존 게임이 가지던 전형적인 시간의 틀, 즉 게임과 비게임 시간을 구분하는 플레이 세션(play session)을 포기하며, 공간적으로는 세계 자체를 하나의 놀이터(playground)로 활용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또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 혹은 주변인들과 함께 플레이를 이뤄간다는 점에서 펄베이시브 게임은 게임에서의 재미와 흥미를 일상적인 삶 속에 가져다 놓는다.

이러한 펄베이시브 게임의 예로는 위의 책에서도 소개된 "공중전화 전사들(Payphone Warriers)" 게임을 들 수 있다. 이 게임은 이미 존재하는 기술과 도시의 제반 시설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을 모색해 보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서울도 그러하지만,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수년전부터 모바일 폰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하여 더 이상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찾기 힘들다. 이 게임은 이처럼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 존재의 가치가 희미해져 가는 도심의 사물과 시설들을 이용하여 만든 게임으로, 플레이어가 도심 곳곳에 위치한 공중전화부스를 찾아다니며 공중전화를 통해 게임 시스템에 전화를 걸고, 각자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알리고 점수를 얻으며 게임을 진행한다.19) 도심을 거침없이 뛰어다니게 되는 방식의, 속도감 있는 게임(fast-paced game) 디자인 때문에 '도심 속 스포츠 게임(street sport game)'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 다른 게임인 "렉스플로러(REXplorer)"는 재미를 추구하는 동시에 젊은이들에게 학습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시리어스 게임(serious game)'20)의 개념도 지닌다. 이 게임은 유네스코(UNESCO)의 세계 문화유산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독일의 레겐즈버그(Regensburg) 지역의 역사 문화적 장소를 관광하는 게임이다. 게임 속 공간에서 플레이어는 과거를 여행하며 돌아다니다가 일정 공간을 지날 때 가지고 다니는 모바일 스크린에 심장박동이 흥분된 상태로 표시되면, 그 장소에 초자연적이고, 불가사의한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초자연적 정신을 불러들이기 위하여 플레이어는 예정된 어떤 특정한 동작을 표현하며 마법의 주문을 외우고, 만약 주문을 거는데 성공하면, 초자연적 정신이 스크린 상에 나타나 플레이어에게 그 장소에 얽힌 스토리를 들려주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펄베이시브 게임들과 그러한 게임 디자인 배경에는 빈틈없는 도시 공간 속에서 새로운 공간을 추출하고 경험하며, 게임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을 통해 참여자들 사이에 많은 대화를 이끌어 내고, 또한 이들을 바라보는 구경꾼들, 즉 거리의 대중을 서로서로 관계를 맺게 하여 커뮤니티에 속한 사회적 인간으로서 역할 할 수 있게 이끈다는 디자인적 철학이 담겨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특성은 이 게임들을 사회 문화적 현장에서, 혹은 실제 교육 현장에서 기존의 단순한 오락적 게임과 다른, 예술적이며 디자인적 경험을 주는 작업들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바로 이와 같은 게임의 방식은 사회와 관계 맺으며 다양한 실험을 통해 사회적 소통을 추구하고자 하는 비평적이며, 미학적 태도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3. 공유되는 특징들

지금까지 언급한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와 펄베이시브 게임은 도시적 삶과 일상에 대하여 개입하고 발언하고자 하는 창작 행위로서 새로운 발상과 아이디어를 통해 구현되는 신선한 시도들로 파악될 수 있다. 또한 행위의 주체들이 보여주는 때로는 대규모의 집단적 퍼포먼스로서의 숭고한 힘과 더불어 그 과정 자체가 집단적 기획과 구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 자체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획과 구현, 감상이 참여자뿐만 아니라 거리의 관객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점 등을 통해 그들의 작업은 즐거움과 재미를 '공유'하는 행위로 바라볼 수 있다. 또한 기획과 실천의 과정과 경험의 맥락에서 이를 하나의 현대적 예술 행위로, 그리고 더 나아가, 미디어를 통한 예술로서의 미디어아트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펄베이시브 퍼포먼스와 펄베이시브 게임이 서로 공유하는 특징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겠다. 먼저 두 작업들을 아름다움과 즐거움의 감정을 생산하는 입장에서 접근해 보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커뮤니티적 참여를 통해 전달, 공유되는 입장과, 일상과 예술 사이의 경계가 파괴되며 예술이 일상화되어가는 모습으로서도 접근해 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정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미디어 기술과 표현적 측면도 함께 분석하고자 한다.

3.1. 아름다움과 즐거움의 감정

예술작품을 대할 때의 느껴지는 기본적 감성과 경험은 무엇일까? 먼저, 논문 서두에서 소개한, 필자가 속해 있던 메일링 그룹에서 “Frozen Grand Central” 작업을 본 후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적 감상경험으로서 표현된 ‘아름답다(beautiful)’라는 정서적 감정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일차적으로 그것은 비디오 자체에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쾌의 감정일 수 있다. 두 번째로 그것은 퍼포먼스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일 수 있다. 그리고 퍼포먼스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쾌의 감정은 참여 퍼포머들의 자발적인(spontaneous) 행위 속에 발현하는 일체화되고 조직화된 형태로 구성되는 하나의 주목할 만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행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행위하고도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Improv Everywhere 그룹은 그들의 슬로건으로 "우리는 장면을 이끌어낸다(We cause scenes)"라고 말하였으며, 최초의 플래쉬 몹 기획자이자 플래쉬 몹의 행위들에 대하여 다양한 분석을 시도한 빌 와식(Bill Wasik) 역시 "My Crowd, Or, phase 5"라는 글에서 예술 프로젝트가 “순수한 장면(pure scene)“을 구성하는 것이 될 수 있으며, 이 장면이 그 작업의 모든 포인트가 되고, 그 자체가 작품을 구성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더 나아가 본 연구자는 순수한 장면은 그 자체로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온다고 본다. 그러한 퍼포먼스 프로젝트의 기획의도와 개념, 그리고 그 의도의 수행 속에서 느껴지는 자발성과 참여, 그리고 대중을 향한 방향성에서 일종의 아름다움과 쾌의 감정이 유발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Improv Everywhere은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조직화된 재미(organized fun)”라고 말한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일상의 삶 속에 구현시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그것을 보게 된 사람들에게 신나는 감정(excitement)과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와 유일한 경험(a unique experience and a great story to tell)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21) 이러한 면을 굳이 예술성과 아름다움의 차원으로까지 바라보아야할까 다소 조심스러운 면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본 논문은 Improv Everywhere 그룹의 여러 퍼블릭 퍼포먼스들을 보면서 그들이 추구하는 '다소 장난기가 있는 행동(prank)'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남들에게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 혹은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경험이 아닌, 재미를 통해 더 큰 재미를 만들어내는 가치를 형성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자발적’ 이라는 태도 하에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긍정적 반응' 혹은 ‘긍정적 상호작용’을 불러일으키는 의도 자체도 주목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은 예술적 행위를 통해 만들어가는 일종의 미적 경험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주장하려는 것이다.

“미적 경험의 성격 규정을 위한 제안”(2008)이라는 논문에서 저자 이해완은 어떤 경험을 미적 경험이라고 부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들에 대하여 논하고, 미적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미적 태도와 미적 속성 간의 관계를 이해하고자 한다.22) 이를 위해 그는 노엘 캐롤(Noel Carroll)과 개리 아이스밍어(Gary Iseminger)의 ‘미적 경험’의 정의를 비교한다. 미적 경험이란, ‘경험의 내용이 무엇인가’(캐롤)를 생각할 수 있지만, ‘경험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아이스밍어)의 입장도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즉, "미적 경험은 특별한 종류의 쾌를 주는 경험이다"라는 "정서적 효과 지향적 접근"도 있지만, 또 다른 전통으로 ‘가치를 대상의 형식이나 표현성 등에 주목하여 인식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가치지향적 접근’ 혹은 ‘인식적(epistemic) 접근’도 포함된다는 주장이다(pp. 137-140). 이는 우리가 경험이라 부르는 대상은 현상적인 특징과 경험임을 인식하는 것 모두가 경험의 내용으로써 접근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해완은 (캐롤의 논의를 빌어) 역겨움과 슬픔, 지루함과 고통과 같이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 경험도 대상에 두드러진 속성을 찾아내어 몰두하는 경험이라면 미적 경험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결함 있는 연주의 감상 등 가치가 떨어지는 대상에 대한 경험도 미적 경험으로 포함시켜야하나 질문한다. 저자는 이에 대한 답으로 "대상이 가진 속성의 경험이 본래적으로 가치 있음을 믿는 것" 즉, 미적 감상이라는 경험이 "메타 반응(대상이나 사건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거나 상찬하는 반응에 대해 즐거움으로 다시 반응하는 것)"의 속성을 지니는 것이고 가치판단을 그 요소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pp. 141-143).

정리하면 이해완은 미적 경험은 미적 속성에 대한 주관의 반응으로 미적 경험이 반드시 가치 판단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며, 대상이 아닌 경험에 대한 판단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음악을 듣거나 풍광을 즐길 때와 같이 미적 경험의 경험자가 미적 속성을 경험하고, 계속해서 그것이 야기하는 즐거움이나 지적 통찰을 경험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실제로 야기하는 즐거움의 심리 상태를 인지하거나 통찰과 각성 등의 가치 있는 경험의 상태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즉 이해완은 즐거움이나 통찰과 각성 등을 긍정적인 가치로 평가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며, 여기서 경험자가 자신의 경험 속에서 그것을 인지하는 것이 미적 경험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이러한 이해완의 주장처럼 아름다움 혹은 일반적으로 미(beauty)라고 언급되는 시각적 쾌, 혹은 그 미적 속성과 가치에 대한 이해와 발견의 과정에서 느껴지는 정서적 효과로서의 즐거움이라는 감정, 인식적 접근으로서의 쾌의 감정인 지적 통찰과 깨달음, 그리고 이러한 긍정적 정서의 반응을 통해 판단되는 가치 자체가 미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면, 본 연구자는 앞서 소개한 두 종류의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그러한 아름다움의 요소와 가치가 분명 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 판단적 아름다움은 더 나아가 그것이 집단적 생산과 경험으로서 참여자 개개인의 참여가 단순히 수동적으로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발탁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순수한 동기에 의해 직접적으로 이루어진(스스로 블로그에 들어가 미션을 확인하고 퍼포먼스를 함께 기획하고 수행하는) 자발적이고 적극적 참여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더욱 배가되고 있다고 본다.

3.2. 커뮤니티 참여와 일상에 대한 관심

두 번째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와 펄베이시브 게임에서 공유되는 특징으로 커뮤니티 참여와 일상에 대한 관심을 들 수 있다. 앞서 펄베이시브 게임이 게임의 문맥 안에서 논의될 때 시공간의 경계(membrane)을 파괴하며 스스로를 확장시켜가는 점이 주목된다고 언급하였는데, 이는 게임 플레이가 일상의 행위와 접목되거나 일치되는 부분, 즉 게임의 즐거움을 일상의 평범한 삶으로 옮기고자 하는 게임 개념에서 비롯된다고 말하였다.

사실 예술사에서 이러한 일상에 대한 관심은 오래 전부터 존재하여왔다. 특히 20세기에 이르러 예술 각 분야의 모더니즘적 프로젝트가 점차 엘리트 중심으로 이행하면서 숭고하고 고유한 영역이 되어버렸다면, 이러한 예술을 일상과 합쳐보려는 노력은 반모더니즘적 접근으로 아방가르드 예술, 뒤샹부터 다다, 국제 상황주의에 이르기기까지 문화, 태도와 정신, 그리고 개인과 사회적 삶의 조건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예술가 개개인의 노력에서 집단적이며, 행동주의적 행위 전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아방가르드적 태도는 행동주의나 핵티비즘(hacktivism)이라는 형태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행동주의나 변화, 간섭의 태도 역시, "단순한 파괴 전략이라기보다는 창조적인 것으로서 데이터와 시스템을 깨고 재구성하고 재강화"하는 것으로 "합법의 경계에서 기능하면서 해롭지 않은 장난과 개입을 하는 프로젝트를 포함하고 있다"(Paul, 2003, pp. 239-240).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와 펄베이시브 게임도 이런 문맥에서 볼 때 일정 부분 위와 같은 아방가르드적 태도를 가진다. 그 내부에서 일상과 삶에 대한 개입(intervention)과 침투(interference) 등의 개념적인 접근부터 그 행동주의적 움직임까지 유사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롭지 않은 장난과 개입'의 측면에서 겉으로 드러나며 일상의 경험 속에서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재미와 웃음 등은 한편으로는 다소 가벼운 접근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철학도 있다고 보인다. 그들은 이러한 재미의 추구를 일상의 경험 속에 녹아내려 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나만의 재미가 아닌 함께하는 사람, 같이 있는 사람들 즉 이웃과 커뮤니티를 향해, 그리고 그들과 함께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따라서 이러한 흥미와 재미는 어떤 묘한 아름다움과 미적 가치로서의 또 다른 예술적 감동을 전달하는 듯하다. Improv Everywhere 그룹의 활동을 이끄는 찰리 토드(Charlie Todd)는 이렇게 말한다. “어린 아이들은 플레이하는 것을 배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왜 놀아야 하는지 가르치지 않는다. 만약 그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우리는 플레이가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플레이에는) 어떤 목적도 없다. 그것이 목적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재미있고, 재미가 있을 것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함께 보는 사람들 또한 재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른으로써 우리는 노는데 있어서 옳고 그른 방법은 없다는 것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23) 이러한 플레이의 재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과 과정은 바로 “팩맨하튼” 등의 펄베이시브 게임이 이끄는 재미와 참여와도 일맥상통하며, 오늘날 수많은 개개인의 소소한 작업과 행위들이 만들어내는 긍정적 기운의 창조적 행위와도 연결된다.

3.3. 미디어 기술의 활용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와 펄베이시브 게임에서 공유되는 마지막 특징으로 미디어 기술의 활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그것이 활용하는 미디어 기술에 대하여, 그리고 이를 표현적으로 구사하는 관점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3.3.1.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이용

초기에 플래쉬 몹에 대한 안내와 공지를 하고 참여자를 모을 때, 마치 연쇄적으로 이메일을 뿌리거나 데스크탑 컴퓨터, 페이저(pager) 혹은 모바일 폰 등의 텍스트 메시지 형식으로 수일 동안 플래쉬 모버들 사이에서 순환시키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Nicholson, 2005, para 1). 또한 대부분 게임에서도 역시 플레이어의 퍼포먼스의 진행을 위해 모바일 폰이나 GPS, 인터넷을 비롯한 펄베이시브 컴퓨팅이나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기술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기술 미디어를 통해 미션을 전달받고, 미션의 기획과 실행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두 작업 모두에서 주목할 점은 이들이 이러한 퍼포먼스를 기획, 조직하기 위하여 블로그나 모바일 폰과 폰의 텍스트 메세징, SNS 등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의 첨단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또한 플래쉬 몹의 성질은 매우 단시간에 행해지며(shortlived), 의도적으로 사라져버리는(ephemeral) 특징을 지니기 때문에 그것은 블로그나 메인스트림 미디어 등을 통해 매우 잘 기록되며 대중화되는 특징을 지니기도 한다. Improv Everywhere의 웹싸이트를 보면 그들이 여태까지 행하였던 다양한 퍼블릭 퍼포먼스들에 대한 기록이 나열되어 있다.24) 또한 이러한 기록에는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가 강력한 이용수단이 된다.25) 플래쉬 모버들은 경우에 따라 캠코더나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하거나, 혹은 카메라가 장착된 전화를 사용하여 그들의 참여를 기록한다. 이는 순간을 기록하기 위한 일종의 ‘모바일 블로깅(mobile blogging)’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이러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주석달기(digital annotations)'는 후에 다양한 블로그 등에 게시되어 다른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순환된다. 이러한 포스팅은 또다시 이런 종류의 플래쉬 몹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형성하며, 새롭게 조직될 향후의 플래쉬 몹의 정보를 공유하거나 혹은 과거 다른 도시들에서 기획 구현된 플래쉬 몹들의 정보를 공유하는 학습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3.3.2. 수사학적 미디어 표현

위에서 퍼포먼스나 게임 행위에 대한 기록으로 사용되는 미디어 기술에 대하여 언급하였는데, 이는 1970년대 초기 비디오 아트에서 수많은 퍼포먼스 작가들이 그들의 행위를 기록하기 위해 비디오를 이용한 점을 함께 떠올려 비교해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디지털 주석달기, 모바일 블로깅 등은 오늘날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손 안의 스마트폰과 그에 딸린 카메라 등을 일상적으로 휴대하게 되면서 더욱 더 자연스러워진 미디어 접근과 활용의 태도라고 하여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한편 Improv Everywhere의 웹싸이트 상에 오른 하나하나의 퍼포먼스 기록 다큐멘테이션들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또 하나의 쉽게 간과할 수 없게 되는 점은 그러한 퍼포먼스에 대한 기록 비디오들이 매우 치밀하며 전문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이들은(모든 기록 다큐멘테이션 비디오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비디오는) 한편의 기획된 싱글채널비디오 혹은 다큐멘테이션 작품으로 보이기에 손색이 없다.

연구자가 글의 서두에서 소개한 "Frozen Grand Central" 비디오 역시 그 퍼포먼스의 기획 과정부터 퍼포먼스의 장면의 디테일과 퍼포먼스의 장관을 지켜보는 일반인들(비참여자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퍼포먼스가 종료되며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는 장면까지 섬세한 볼거리들을 놓치지 않으며, 편집에서의 어떠한 불필요한 군더더기 장면 없이 명쾌하게 담아내고 있다.26) 이런 작업은 이 분야의 전문가와 예술가에게도 그 자체가 자연스레 하나의 비디오 아트 작업처럼 감상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미디어의 표현 수준을 드러낸다. 또한 이렇게 수준 높게 구성된 작업 결과물들을 통해 대부분의 퍼포먼스 기록 작업들은 그 순간 그 장소에서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그 퍼포먼스의 감동과 유희를 전달한다. 그런데 이러한 촬영과 편집의 디테일과 수준은 그러한 결과물이 결코 퍼포먼스의 우연하고 단순하게 접근된 기록이 아닌, 철저히 준비되고 각색된 기록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앞서도 언급한 “No Pants” 퍼포먼스 중 2002년에 시도된 퍼포먼스의 기록 비디오를 보자.27) 비디오가 시작되며 카메라는 지하철 객실 내의 상황을 무심히 보여준다. 무심하다고 할 것이 수직 수평조차 제대로 맞추지 않은 듯 약 30도 정도 시계방향으로 기울어진 상태의 각도에서 카메라는 오른편 화면 프레임 끝부분(frame edge)에 걸쳐지게 지하철 좌석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한 명의 여성의 모습과 그녀 외에 오직 세 네 명 정도의 승객이 더 있는 듯 한산한 지하철 열차 내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윽고, 지하철이 정류역에 도착한 듯 카메라는 다소 흔들리기도 하다가 열린 문으로 승객이 한 두 명이 나가고 들어온 모습을 포착한다. 잠시 후 다시 안정된 카메라는 머리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탑승객 두 명을 담는데, 이 중 한 명은 화면 왼쪽 앞으로 다가와 착석하며 다리를 꼰 자세를 취하여, 이로 인해 화면 왼편부터 화면 상당부분이 그의 다리로 가려진다. 이 역에서 함께 탑승한 또 다른 한 남자는 지하철 한 가운데 서는데, 바로 책을 보고 있던 앞의 여성이 이 남자를 힐끔힐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고,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모르며 당황하는 장면이 약 10여 초간 보여진다. 그리고 이윽고 서 있던 남자가 조금씩 자리에서 움직이자, 그의 모습이 화면 앞을 가리고 있던 다리 뒤로 살짝살짝 등장하게 되는데, 털모자에 두꺼운 코트까지 입은 그가 하의는 오직 노란색 팬티만을 입고 있다는 것이 화면에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책을 읽던 여자가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가 비디오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이해되면서 그들은 웃음을 짓게 된다.28) 이 비디오는 우연히 포착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우연이라 하기에는 매우 치밀하고 정교하게 포착된 화면의 움직임을 통해 퍼포먼스의 과정과 현장의 분위기를 서서히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주목을 요한다. 즉 화면상의 퍼포머의 움직임의 동선, 탁월한 관객의 표정 포착 등은 퍼포먼스 기록 자체를 효과적으로, 그리고 매우 유머러스한 내러티브적 전개 방식으로 탁월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촬영과 편집의 수준 높은 수사학적 미디어 표현을 통해 이 비디오 자료는 그 자체가 하나의 기획된 작업으로 보이게끔 이끌어 준다.

"Frozen Grand Central" 작업은 이 그룹이 제작한 다큐멘테이션 비디오 중 가장 많은 조횟수(2012년 1월 현재 유투브(YouTube) 상에서 살펴보면 2900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이 작업이 비디오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배포 순환되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업임을 말해주는데, 본 연구자는 이 비디오가 이처럼 유투브에서 많은 조횟수를 기록하고 있는 점은 비단 이것이 훌륭한 퍼포먼스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Frozen Grand Central”을 감상하는 것은 퍼포먼스에 대한 기록을 감상하는 차원 이상의, 즉 비디오 자체로서도 훌륭한 장면들을 연출해 내는 매우 수준 높은 미디어 수사학적 표현 형식이 뒷받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효과적이고 감각적인 편집을 통해 비디오 그 자체만으로도 보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다큐멘테이션의 정교함, 그리고 이러한 효과적 활용이 이러한 형태의 작업의 배포(distribution)와 순환(circulation), 매체를 통한 공공적 감상의 담론을 생산하는 감상 형태로 그만큼 많이 관찰되었다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간접적 감상은 감상자로 하여금 직접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드는 이끄는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교육적이고 홍보적인 기능도 함께 하고 있다고 본다.


[그림 3] "No Pants"(2002) 미션 기록 비디오 스틸들

4. 미적 경험으로서의 조망

앞 장에서는 펄베이시브 퍼포먼스나 펄베이시브 게임에서 공유되는 여러 특징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공유점 중 하나로서 아름다움과 즐거움의 감정을 이해완의 논의에 기대어 언급한 바 있다. 본 장에서는 펄베이시브 퍼포먼스나 펄베이시브 게임을 미적 경험을 생산하는 일종의 현대예술 작업의 행위 혹은 현대 미디어 아트 작업으로서 바라보기 위하여 몇 가지 미학적이며 매체예술적 관점에 대하여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앞서 소개한 “미적 경험의 성격 규정을 위한 제안”(2008)이라는 논문에서 이해완은 경험과정에서 경험 자체에 대한 과정과 요소에 대한 가치를 매기는 과정(valuing)이 매우 의식적인 활동, 즉 "현재발생적인 믿음(occurrent belief)"을 요구한다면, 미적 경험 과정에서 이러한 의식적 활동을 매순간 필수적으로 요구하기는 어려울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현재발생적인 믿음의 경험은 경험자가 그 경험의 순간에 일종의 믿음을 의식하기 보다는, 일종의 믿음에 대한 목록을 가지고 있다가 그러한 믿음의 목록에서 그 순간에 의식되는 믿음과 가치매김을 귀속(attribute)시키고자 하는, "성향적 믿음(dispositional belief)"을 통하게 된다는 것이다(2008, pp. 148-149). 본 연구자가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대한 주제로 연구를 계획한 이래 주목하게 된 작업들은 오늘날 일종의 문화적 현상(cultural phenomenon)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과 가치매김을 일종의 성향적 믿음으로 귀속시키려는 흐름 또한 현대 예술과 미학 속에 존재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작업을 예술적 행태로 인식하고자 하였던 의도는 분명 본 연구자의 주관적 가치 판단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나, 연구가 진행된 지난 이년간 소셜 미디어(Social Media) 등 개인 미디어 등의 문화가 더욱 급속히 대중에게 보급되면서, 이러한 소셜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사용한 작업들에 노출되는 기회가 점점 많아질수록 이러한 종류의 작업을 예술적으로 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소위 '성향적 믿음화'가 되어 가는 측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이는 근래 많이 담론화되고 있는 1990년대 이후의 예술계 흐름에 대한 이론적 분석 중 니콜라스 부리요(Nicholas Bourriaud)의 '관계미학(relational aesthetic)'적 접근에서도 그 토대를 발견할 수 있다.

4.1. 관계미학적 관점에서의 조망

예술 기획자이자 이론가인 니콜라스 부리요는 그의 저서 관계의 미학 Relational Aesthetic(2002)에서 1990년대 예술 문화현상에 대하여 바라보며, 과거의 예술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면, 현재의 예술은 가능한 세계를 모델링하는 것이며, 따라서 더 이상 상상적인 유토피아가 아닌, 실제적인 방식으로써의 삶과 행위의 모델들을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만들어가는 것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고 말한다(pp. 12-13).

부리요가 관계미학적 예술작업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계의 상업화와 대상화, 그리고 매일 기술화되어가는 삶에 저항하며 이들을 희미하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들이다. 부리요가 꼽은 현대 예술작업들은 시간과 함께 존재하며(existence within time), 끊임없는 과정 자체로서의 예술인 것이다(art is thus a constant work-in-progress). 그는 특히 이러한 과정으로서의 예술 작품에 내재한 ‘관계’에 대하여 주목하는데, 이러한 관계는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모든 예술에 익숙하게 등장한 것으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예술작품에서 이러한 내재적 관계에 대한 재현의 방식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으며 이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관계들의 영역을 지시하는 형상들이 이제 예술적 형식으로 완전하게 부화하였다. 만남과, 조우, 사건과 사람들 사이의 여러 종류의 협동과정, 게임들, 페스티벌들, 그리고 사소한 일들의 장소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러한 종류의 조우와 관계를 만드는 방식들은 오늘날에는 미학적 대상들로 발견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Bourriaud, 2002, pp. 28-29).

부리요는 또한 그가 조망하는 관계미학적 접근을 펼치는 다양한 예술작가와 그들의 작품 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그러한 작품들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예술적 형식이 자유로운 결합(free association)과 사회적 역동성(social dynamism)을 드러내는 방식에 주목한다. 또한 방식을 드러내는 문화적 현상과 흐름 역시 이것에 준하여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스스로 행하라’의 의미인 ‘DIY(do it yourself)’와 재이용(recycling) 방식을 통해 관계를 형성해가는 방식은 문화적 실천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록 그것이 과거 모더니티에서 전형화 되었던 메시아적 유토피아를 제시하거나 형식적인 '새로움'의 주목을 끌거나 평가받을 만한 대상들을 만들어내지는 않아도, 매일의 삶을 발명하고, 또한 살아가는 시간 자체를 발전시키는 형태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Bourriaud, 2002, p. 14). 또한 그의 이론은 인터넷과 전지구화의 가상적 관계에 대한 반응으로, 사람들 사이에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실제적 만남을 열망하는 동시에 예술가들 스스로에게는 DIY를 통해 그들 스스로의 작은 소우주를 만들어가려는 열망이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본다(Bourriaud, 2002, p. 14; Bishop, 2004, p. 54).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이론은 하나의 가치 있는 문화현상을 현대예술로서 조망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관계미학이 제시하는 관점을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흐름에 주목하여,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은 부리요의 관계미학적 이론을 뒷받침하는 작품들이 그들이 스스로 접근하여 드러내고자 하는 그러한 특정 관계에 대하여 경험의 ‘질(quality)’적 측면에서의 비판적 접근까지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2004, pp. 51-57). 또한 따라서 이러한 많은 관계미학적 예술작업들이 일상과 삶,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존재하는 힘의 구조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그 구조를 변형하고자 하기 보다는 단순히 그 힘을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는데 그치고 있다고 논한다. 더 나아가 부리요의 관계미학에서의 관계들은 하나의 대화와 소통을 이야기할 때 자동적으로 이 대화가 민주적이며, 선(good)한 것으로 간주하며, 또한 그 대화의 참여자들이 상대적으로 건강하며 교육받은 사람들일 것이라 간주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생산하는 것은 대체로 변화를 추구하는 진정성보다는 지적인 오락거리에 대하여 고민하는데 머무르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비숍은 이러한 문맥에서 민주적인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관계미학이 인간관계(human relationship)를 생산하는 것이라면 그 다음 이어질 논리적 질문은 예술작업이 만들어내는 관계는 어떤 종류의 관계이며, 이 관계는 누구를 위해, 그리고 왜 생산되어야 하는 것인가 질문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비숍 역시 부리요의 주장을 너무 단순화시켜 반박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그가 말하는 논점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예술작품이 보다 사회적 존재로 기능하며 발언하는 것이, 단순히 피상적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의미 있는 발언을 하게끔 기대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펄베이시브 퍼포먼스가 “순수한 장면“을 구성하는 것이며, 그러한 장면 구성 자체가 작품이다라는 입장, 그리고 펄베이시브 게임과 퍼블릭 퍼포먼스 등에서 재미를 추구하여 아름다움의 가치를 형성하는 것 모두 관계미학적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현대 예술적 흐름, 혹은 현대 문화적 현상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관계미학적 작업의 일부로 간주하고 이 관점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더불어 수용할 때 ‘조직화된 재미(organized fun)’ 혹은 ‘발현된 장면’은 내용적 면에서 그 이상의 깊이를 가지고 좀 더 심도 있게 논의를 이끌어갈 여지를 남긴다. 다시 말해 "We cause scenes"를 Bishop의 주장까지 포함하여 보다 의미 있는 예술 작품으로 보고자한다면, 이는 단순히 오락거리가 될 만한 유희적인(playful) 상황보다 좀 더 심도 있는 관계를 드러내는 접근으로 모색되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비숍의 비판을 수용할 한 가지 가능성으로 플래쉬 몹에 대한 논의들 중에 ‘몰개성화(deindividuation)’의 심리를 언급한 부분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집단적 그룹 안에서의 개인들은 개인으로서 주목되지 않는 채로 집단의 힘을 빌려 그들의 어색한 감정과 억제된 생각이 사라지는 동시에 보다 용감한 행위를 할 수 있게 되는 심리상태를 가지게 된다고 주장이다(Wasik, 2006, p.56 ; Tapper, 2006, p. 6). 이러한 부분은 오늘날 개인과 사회, 개인과 집단,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좀 더 심도 있게 바라볼 수 있는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 상태를 드러내고 발언할 때 더 의미 있는 재미가 추구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4.2. 미디어아트로서의 조망

이미 앞서 펄베이시브 퍼포먼스와 펄베이시브 게임이 공유하는 특징들 안에서 미디어 기술의 적극적인 활용 방식에 대하여 여러 차례 논의하였다. 그러나, 이 절에서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및 영상미디어 등을 배경으로 미디어 기술을 도구적 방법론으로써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에서 이들을 좀 더 본격적으로 미디어 아트의 또 다른 형태 내지 확장된 형태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은 게임의 진행이나 퍼포먼스의 조직과 기획을 위해 펄베이시브 컴퓨팅이나 온라인 블로그 채팅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또한 펄베이시브 게임 플레이도 퍼포먼스행위라 간주할 때, 그리고 그것이 일정한 장소나 특정 시간 내에서만 벌어질 수 있다는 일반적인 퍼포먼스의 한계이자 특징으로 인해 그 행위들은 퍼포먼스가 행해지는 동안 비디오나 블로그 상의 사진과 텍스트, 그리고 디자인 자료 등을 통해 기록, 보존된다. 이러한 후속 자료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보급되고 전달되어 감상되고 있다. 한편 기록 비디오 자체를 하나의 비디오 작업으로 간주한다면 이러한 비디오는 그 자체로서의 묘한 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수준 높은 미디어 수사학적 표현을 이뤄내고 있으며, 이는 더욱 활발하게 대중에게 간접 경험과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오늘날 이러한 미디어 기술의 적극적 활용과 미디어 리터러시와 수사학적 접근과 태도에 대하여 로버트 아킨스(Robert Atkins)는 "미디어에 흠뻑 젖은 경험들(media-saturated experience)"로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아킨스가 그것은 감상경험을 이끌어내는 것 뿐 아니라 이를 역으로 이용하는 예술가들의 태도와 접근 방식에도 또 다른 변화를 야기한다고 말하는 지점이다. 그는 예술가들이 보다 더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됨에 따라, 그들은 예술작품에 대한 언론의 반응으로부터 최대한의 의미를 얻기 위한 예술 작업들을 생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태도와 이러한 태도로 만들어지는 작업들이 기본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관객 참여에 대한 동력이 되고 있으며, 참으로, 이는 미디어아트라고 알려진 새로운 장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Atkins, 2008, p. 53). 아킨스는 이러한 미디어아트에 대한 용어 사용이 테크놀로지나 컴퓨터를 사용하여 작업을 생산하는 작업으로서의 미디어아트라는 용어 사용과 다르다는 것을 구별될 필요가 있다고 하며, 본인이 말하는 종류의 미디어아트는 자연적으로 혼성적이며 특징적으로 퍼포먼스적인 속성을 지닌다고 말한다(hybrid in nature, performative in character). 그리고 이에 대한 예로써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이브 클레인(Yves Klein)이 그들의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수행한 퍼포머티브한 작업을 “사진적 미디어의 소비를 위해 적합한 열광적 사건(electrifying event suitable for photographic and media consumption)“으로 이야기 한다. 이는 또다시 다양한 방식의 과정 그 자체를 보여주고, 보다 넓은 층의 관람객을 염두하고, 비평적 말하기를 이끌어내기 위한 적극적 보여주기 방식을 활용하는 오늘날의 예술적 흐름과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오늘날 잘 만들어진 예술 작업이 더욱 개인화되고 일상과 삶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미디어를 통해 더욱 잘 이해되고 감상되는 것인지, 아니면 미디어 활용에 대하여 영리하게 대처하는 예술가들이 이러한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을 미리 이해하고 작업으로서도 영리하고 창의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분간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오늘날 미디어는 더욱 빠르게 진화하고 변화하며, 미디어아트 역시 이러한 변화하는 미디어를 폭넓게 이해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아킨스가 말하듯 폴록과 클레인 시대에도 그들 작업들은 그들이 관계되어있던 일반적으로 예술계(art world)라 부르는 전문적 시스템보다 훨씬 더 커뮤니티-지향적 노력 혹은 정치적이며, 미디어적 활동이었다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과 같은 소셜 미디어 시대, 그리고 포스트 모던 문화에서 이제 미디어, 오락 상태 안에서 참여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만약 '예술'이 무엇인지 계속 질문코자 한다면, 예술가들은 참여의 다양한 방식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적이고 또한 집단적인 참여의 가능성을 보장하며, 우리가 속한 사회 내에서 사회적 조건과 개인이나 집단의 참여에 더욱 비평적 안목을 배양시키는 방향의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29) 이는 또다시 필자가 바라본 펄베이시브 게임이나 퍼포먼스 등에서의 비디오 다큐멘테이션이나 블로그의 활용이, 참여와 소비를 이끌어내는 지능적 방식으로서, 일련의 과정을 하나의 예술 작업으로 간주하는 현상을 떠올리게 하며, 동시에 이들의 역할과 가치에 대하여 생각하게 이끌게 되는 것이다.

5. 나가며

본 논문은 지금까지 공공장소에서 행해지는 퍼블릭 퍼포먼스와 펄베이시브 게임들 사이의 많은 공통점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들 공통점 중 가장 주목할 사실은 이 행위들이 미디어 매체, 즉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블로그,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 등을 통해 기획되고 수행되며, 또한 자신의 행위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그 기록을 또한 자료적이며, 공개적 형태로 정리하고 대중과 공유해 가는 일련의 과정 자체를 하나의 작업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주목할 점은 이들의 이러한 새로운 형식적 접근은 일반인들도 그들의 창조행위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이끌며, 실제 행위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참여시키거나 비슷한 방식의 모방적 창조를 지속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측면이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의 미디어 기술 문화가 급속도로 일반 대중에게 친밀하게 퍼져 나가며, 미디어의 활용과 예술의 경계가 많이 민주화 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본 논문은 무엇보다 이러한 행위들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 비평적이며 미학적인 태도를 발견하고자 하였으며 또한 미디어를 활용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이나 일반 감상자들의 변화된 태도에서 변화의 흐름을 읽고자 하였다. 또한 1990년대 이후 현대예술의 새로운 형식과 흐름의 맥락 안에서 이러한 행위들을 파악하여 이를 단순히 오락이나 흥미의 차원을 넘어, 사회구성원으로서 대중들과 소통하며 일상의 사소한 아름다움과 즐거움과 마주하고 이를 향유하고자 하는 미학을 그 중심에 담고 있음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또한 비로 이러한 아름다움과 즐거움의 감정에 대한 인식적 쾌와 이러한 긍정적 감정 생산과 공유라는 가치 판단적 즐거움, 그리고 참여자 스스로의 자발적 참여의 과정 자체를 충분히 미적 경험을 향유하는 행위들로써 충분히 바라볼 수 있음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한편, 이와 동시에 본 논문은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미디어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측면들을 확장된 미디어 아트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였다. 초기 미디어 아트 작업들이 인풋과 아웃풋으로 진행되는 컴퓨터 혹은 기계적 매체를 통한 상호작용의 경험에 중심을 두었다면, 본 논문에서는 위에서 살펴 본 작업들이 인간과 기술의 상호작용을 인간과 인간 사이, 혹은 커뮤니티의 진정한 소통이나 행복과 아름다움의 추구 등 사회적, 혹은 (그것이 큰 맥락이던 매우 사소하고 개인적 맥락이던 간에) 주제적인 맥락으로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예로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지점은 이 작업들이 미디어를 하나의 새로운 예술적 매체로 파악하는 초기적 단계에서 점차 벗어나 미디어에 더욱 친밀해지며 미디어를 진정한 예술적 소통의 도구로서 보다 충실히 접근해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미디어아트가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할 지점을 제시하는 예로도 바라볼 수 있음을 논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러한 새로이 출현하는 미디어를 통해 예술적 창작과 감상 경험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형태의 혼성적이며, 퍼포먼스적 미디어 아트이자 또다시 큰 틀에서 관계와 소통을 추구하는 현대예술의 형태들로 바라보고자 한 것이다.

본 논문은 이렇듯 최근 활발히 생산되고 감상되고 있는 펄베이시브 퍼블릭 퍼포먼스과 펄베이시브 게임을 현대예술의 한 형태로서 바라보고자 하였으며, 또한 이를 논의하면서 '관계미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관계미학적 접근이 아닌 또 다른 비평 미학적 렌즈로 접근할 수 있다고도 본다. 그리고 이를 보다 폭넓게 담아내지 못한 점을 본 논문의 한계로서 파악한다. 또한 본문에서 말했다시피, 관계미학 그 자체로서도 이러한 행위들이 누구를 위한 관계이며, 무엇을 추구하는 관계인지 좀 더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다 심도 있게 점검해야 할 지점임을 숙지하고 이에 대한 연구도 차후 진행될 연구로 남겨놓는다. 다만 본 논문은 오늘날 거리 위에서 혹은 쇼핑몰 등에서 행해지는 펄베이시브 퍼포먼스, 펄베이시브 게임 등의 펄베이시브 행위들이 굳이 예술가라는 이름을 칭하지 않은 거리의 대중들에게로 확산되며 이들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서로 협력하여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자유롭고 열린 경계의 예술적 생산물들이 되어가고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새로운 예술문화의 현상들을 현시점에서 점검하고 고찰해 보고자한 시도로써 의의를 가지고자 한다.

Notes

1) 지금에야 다시 조망되는 지점이지만, 당시 동료들의 뜨거운 반응과는 매우 상반되게, 그룹 멤버 어느 누구도 이 비디오가 제공한 영상 이 외의 어떤 다른 정보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비디오는 시작 화면으로서 Improve Everywhere라는 모션그래픽화면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비디오와 별도로 “created by improveverywhere.com”이라는 웹싸이트 링크 등의 세부적 정보(in- depth information)를 가지고 있으나 당시에는 어떤 이도 이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러한 부분이 주목되지 않았거나, 혹은 필자를 포함 다른 그룹 멤버 누구도 이러한 새로운 퍼포먼스를 더 이상의 의미 부여를 통한 확장된 예술적 흐름으로 감지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2) 만약,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에 맥락을 알았으면 감상방식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3) 메일 서버에 남겨진 이 동영상은 다음 링크로 확인되었다. available from: http://www.maniacworld.com/frozen-in-grand-central-station.html

4) Lagorio, Christine. "'Big Game' Safari in Manhattan". CBS News (9.27.2006) http://www.cbsnews.com/stories/2006/09/25/entertainment/main2038578.shtml.

5) available from: http://www.pacmanhattan.com/contact.php

6) available from: http://en.wikipedia.org/wiki/Improv_Everywhere.

7) 샤논 잭슨(Shannon Jackson)은 Social Works: Performing Art, Supporting Publics(2011)에서 이러한 퍼블릭 아트나 사회적 예술작업 (socially engaged art)의 기원을 미술과 연극에서 동일하게 찾고 있다 (pp. 19-20, and pp. 104-143).

8) 본 연구자는 플래쉬 몹과 스마트 몹 등의 기원을 조사하며 이것이 사회적 저항의 형태와 그로 인해 정치적 특성을 지니는지 아닌지에 의해 서로를 차별화시키고자 하는 주장(대부분 그 행위와 이론의 주창자들에 의한 주장)이 많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에서의 정치적 성향과 해석의 유무가 이들의 주장대로 날카롭게 구별되기는 힘들어 보인다는 점도 발견했다. 그 이유는 이러한 펄베이시브 게임과 펄베이시브 퍼포먼스, 그리고 퍼블릭 아트적 행위들이 함께 하고자 하는 관객 대상은 대중이며 지향하는 주제가 커뮤니티적 일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행위들이 현재 시점의 매스 미디어(mass media)를 폭넓게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역시 그러한 행위 자체 혹은 행위의 결과물을 완전하게 정치적인 행위와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기 어렵기도 하다. 한 예로 Bill Wasik은 플래쉬 몹에서 정치적 동기가 있다면 그것은 공적 공간의 성격을 가지나 완전하지는 않은, 중도적 공적 공간 (semi-public space) 혹은 공적 공간인척 하는 공간, 의사 공적 공간(pseudo public space)을 비상업적 활동의 공간으로 바꾸어 재주장하는 것일 것이라 말한다. 이는 예술사에서 1960-70년대 아방가르드 운동들이 미술제도와 상업화에 대항했던 동기와 매우 유사하다. 이들에서도 정치적, 사회 저항적, 그리고 예술적 동기들은 서로 확연하게 구별될 수 없다. 또한 Claire Bishop과 같은 미술이론가는 현대미술의 이러한 행위를 Alan Badiou, Slavoj Žižek, 그리고 특히 Jacques Ranciére의 이론을 근거로 예술적 행위들과 미학을 정치적 행위와의 공통점으로써 분석하기도 한다(Bishop, 2011, pp. 18-30). 본 논문은 이러한 정치적 동기와 예술적 동기가 모호하다는 측면보다는, 다만, 이러한 특성 때문에 퍼블릭 퍼포먼스가 오늘날의 현대 예술적 흐름과 미디어아트적 시각에서 어떻게 조망될 수 있는지에 좀 더 관심을 두고 있음을 다시금 밝히고자 한다. 또한 본 연구자의 이러한 집단적이며 펄베이시브한 행위에 대한 관심의 계기가 “Frozen Grand Central" 작업에서 출발하였고, 이를 조직한 Improv Everywhere의 보다 다양한 행위를 연구의 사례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행위가 가지는 (혹은 그들 스스로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비정치적인 입장을 중심으로 일상과 play에 대한 접근과 미학적 담론을 말하고자 한다.

9) Nicholson. “FCJ-030 Flash! Mobs in the Age of Mobile Connectivity"에서 재인용. 이 글에서는 2003년 빌 와식(Bill Wasik)이 뉴욕 맨하탄 메이시 백화점에서 텍스트 메세지, 이메일, 블로그 등으로 모여든 100여명의 사람들이 만불짜리 가격표가 붙은 양탄자에 둘러싸고 서서, 가게 점원에게 그들이 모두 함께 사는데 이 양탄자를 가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최초의 플래시몹을 진행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10) 11th edition of the Concise Oxford English Dictionary에 나오는 flash mob에 대한 정의 참조할 것, available from: http://oxforddictionaries.com/definition/flash+mob. 이는 Wasik이 cheesebikini에 2004년 7월 9일에 올린 글에서 재인용하였다. available from: http://www.cheesebikini.com/archives/cat_flash_mobs.html 또한 이곳도 참조.

11) Webster's New Millennium Dictionary of English, Preview Edition (v 0.9.6). available from: http://dictionary.reference.com/browse/flash%20mob.Retrieved 2007-04-27.

12) 2009년 2월 9일자 CNN news에 의하면, 수천명의 댄서를 이 영국 런던의 기차역에 모여 한 전화 회사 광고물을 흉내내는 플래쉬 몹을 행하였는데, 그 모버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만나 기획을 이루었다고 한다. In "Facebook flashmob shuts down station," available from: http://articles.cnn.com/2009-02-09/world/uk.station.flashmob_1_facebook-user-dancing-liverpool-street-station?_s=PM:WORLD

13) Improv Everywhere 그룹은 그들의 퍼포먼스 행위를 플래쉬 몹과 동일시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행위가 플래쉬 몹인가?"라는 질문에 어떠한 그룹 미션은 수백명에 이르는 다수 군중을 퍼포머로 이용하고, 공공장소에서 행위를 벌이고,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리는 속성 때문에 플래쉬 몹과 종종 비교되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우선 그들의 행위가 플래쉬 몹의 기원(본문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최초의 플래쉬 몹은 2003년이라 말하여짐)보다 이년이나 앞서며, 또한 어떤 미션은 단지 잘 훈련된 퍼포머들 몇 명만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에 플래쉬 몹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available from: http://improveverywhere.com/faq/.

14) available from: http://imnews.imbc.com//fullmovie/fullmovie03/2776502_6448.html/.

15) available from: http://improveverywhere.com/2002/01/05/no-pants.

16) 필자는 이들이 다소 playful한 측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은 본 연구의 범위로 한정하며 동시에 한계로도 인정한다.

17) available from: http://www.comeoutandplay.org/.

18) 'Magic Circle'은 Johan Huizinga가 Homo Ludens: A Study of the Play-Element in Culture(1955)에서 말한 개념으로 모든 플레이는 물질적으로, 혹은 이상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플레이 과정 안에서 이미 상정된 플레이 그라운드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테니스 경기나 법정 재판 등 의식(ritual)들이 어떤 특정 시공간에 벌어지며 이러한 경계가 다른 일상과 구분되는 측면을 가지는 것처럼, 게임 역시 카드 테이블, 운동 경기장, 게임 스크린 등도 일상의 세계 안에서의 행동과 퍼포먼스와는 다른, 일상과 구분되는 시공간의 경계를 가진다는 것이다(p. 10). Katie Salen과 Eric Zimmerman은 Rules of Play: Game Design Fundamentals(2003)에서 이러한 Huizinga의 논의에서 더 나아가 게임은 시작되면서 이러한 magic circle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며, magic circle 역시 게임이 시작되면서 형성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더 나아가 이러한 magic circle을 형성하는 것이 게임의 룰(rule)이라고 말한다(p.95).

19) 게임 디자이너들은 뉴욕의 공중전화가 각자 caller ID라고 하는 독자적인 번호를 가지고 있음을 활용하여, 일단 일정 구역에 있는 모든 공중전화의 caller ID를 확보하여 이를 실제 구역의 위치정보들과 매핑 시키는 작업을 하였다. 또한 Open source PBX Asterisk를 이용, 플레이어가 시스템에 전화를 걸어올 때 오디오 피드백을 해주고, 언제 어디에서 시스템으로 전화가 걸려왔는지 구별하여 점수를 측정해주는 백엔드 시스템 back-end system을 개발하였다.

20) '시리어스 게임'은 '기능성 게임'이라고도 하며, 이는 어떤 특정 기능과 목적(예를 들어 교육적, 의료적 기능과 목적 등)을 추구하는 게임을 말한다.

21) available from: http://improveverywhere.com/faq/.

22) 이해완(2008)은 이 논문에서 미적 경험이란 미학의 고유개념인 ‘미적인 것’에 대한 논의로써 바움가르텐을 위시한 근대 미학 이론가들의 중심 논제였으며 처음에는 ‘미적 판단(aesthetic judgement)’, ‘미적 가치(aesthetic value)’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현대 영미미학에서는 ‘미적 속성(aesthetic properties)’, ‘미적 태도(aesthetic attitude)’, 그리고 ‘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에 관한 논의로 서서히 발전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의 입장을 소개 정리하며, 저자는 미적 경험은 미적 속성에 대한 주관의 반응으로 미적 경험이 반드시 가치 판단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며, 대상이 아닌 경험에 대한 판단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만 저자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음악을 듣거나 풍광을 즐길 때와 같이, 미적 경험의 경험자가 미적 속성을 경험하고, 계속해서 그것이 야기하는 즐거움이나 지적 통찰을 경험하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즉, 내 경험에 대한 평가적, 의식적 믿음과 더불어 성향적 믿음까지도 가질 필요가 없지만, 다만, 이러한 경험이 실제로 야기하는 심리 상태가 즐거움이나 통찰과 같이 긍정적인 가치로 평가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23) “There is no point. It doesn’t have to have a point. and We don’t know the reason, As long as its fun, seems like a fun idea, and seems like that people who witness it will also fun time , then that’s enough for us. And I think that as the adult, we need to learn that there is no right and wrong way of play.“ available from: http://improveverywhere.com/charlie_todd/.

24) Improv Everywhere의 웹싸이트는 최근(2012년 1월 부근으로) 새로이 업데이트되었는데, 기존에 누락되거나 공개되지 않은 각 퍼포먼스가 행해진 날짜들을 기록하여 놓는 등 더욱 기록용으로 형식적인 정리를 하는 방향으로 개선된 점이 눈에 띈다.

25) Nicholson(2005)은 모바일폰의 이용행태와 방식을 새롭게 구현한 새로운 트렌드로써 플래쉬 몹을 분석하며 모바일 커뮤니케이션과 모바일을 통한 연결성들에 대하여 분석하고 있다.

26) available from: http://www.youtube.com/watch?v=jwMj3PJDxuo

27) "No Pants" 퍼포먼스는 2002년 처음 시도되어, 현재 매년 전세계적으로 실행될 정도로 대중화 되었다. 이 기록 비디오는 그 중 제일 처음 실행된 퍼포먼스의 기록이다. available from: http://www.youtube.com/watch?v=217mhbpADN0&feature=player_embedded.

28) 실제로 Improv Everywhere의 리더인 찰리 토드가 TED talk에서 이 비디오를 청중에게 보여주었을 때, 바로 이 장면에서 청중 사이의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available from: http://blog.ted.com/2011/11/11/the-shared-experience-of-absurdity-charlie-todd-on-ted-com/.

29) Atkins는 개인과 집단, 대중의 의미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힘에 의해 매우 강력하게 얽혀있는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예술 행위의 창작자와 감상자 모두 '참여'라는 방식과 태도에 비평적 안목을 배양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2008, p. 64).

References
  1. 이해완. (2008). 미적 경험의 성격 규정을 위한 제안. 미학, 제54집, 127-166.
  2. Atkins, R. (2008). Politics, Participation, and Meaning in the Age of Participation, Frieling. (Ed.), The Art of Participation: 1950 to Now (pp. 50-65). New York & London: Thames & Hudson.
  3. Bishop, C. (2004). "Antagonism and Relational Aesthetics," October 110, Fall 2004, 51-79. [https://doi.org/10.1162/0162287042379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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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Huizinga, J. (1955). Homo Ludens: A Study of the Play-Element in Culture, Boston: The Beacon Press.
  7. Jackson, S. (2011). Social Works: Performing Art, Supporting Publics, New York: Routledge.
  8. Lagorio, C. (2006). "'Big Game' Safari in Manhattan". CBS News (9. 27. 2006), http://www.cbsnews.com/stories/2006/09/25/entertainment/main2038578.shtml.
  9. Montola, M., Stenros, J., & Waern, A. (2009). Pervasive Games: Theory and Design Experiences on the Boundary Between Life and Play. Burlington, MA: Morgan Kaufmann.
  10. Nicholson, J. A. (2005). “FCJ-030 Flash! Mobs in the Age of Mobile Connectivity”. Fibreculture Journal, Issue 6 - Mobility, New Social Intensities and the Coordinates of Digital Networks.
  11. Paul, C. (2003). Digital Art. London: Thames & Hudson.
  12. Rheingold, H. (2003). Smart Mobs: The Next Social Revolution. New York: Basic Books. [https://doi.org/10.3917/soc.079.0075]
  13. Salen, K. & Zimmerman, E. (2003). Rules of Play: Game Design Fundamentals. Cambridge: MIT Press.
  14. Tapper, N. (2006). Me and You and Everyone we know: The Aesthetics of Joining In, The New Criticism. Issue 2, 2006.
  15. Wasik, B. (2006). My crowd: Or, phase 5. Happer’s Magazine. March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