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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적 디자인 아카이빙의 개념 연구
Study on Contemporary Concept of Design Archiving
  • Sangkyu Kim :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 Technology, Seoul, Korea
  • 김 상규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디자인학과, 서울, 대한민국

연구배경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연구가 필요하나 기록관리학 기반 개념을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방법론 이전에 개념 연구가 우선되어야 한다. 본 연구는 아카이브에서 출발하지만 아카이브가 기록보존소, 박물관 같은 하드웨어로 인식되기 때문에 ‘아카이빙’이라는 개방적이고 동적인 개념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구방법 디자인 아카이빙의 현재적 의미를 추적하기 위해 귀납적 접근으로 유형을 일반화하되 사회적 행위자의 동기와 인식을 파악하여 개념을 정리했다. 현황과 인식 조사의 두 축을 설정하고 최근에 일어난 아카이브 관련 현상, 아카이브 쟁점, 아카이브 관련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종합하여 분석했다.

연구결과 대체로 기록관리학적 개념이 통용되고 있었는데 이것을 디자인 아카이빙에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확인했고 따라서 동시대적 디자인 아카이빙은 전형적인 아카이빙 개념과 달리 정의될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 현황과 인식의 분석 내용을 토대로 문제점과 동시대적 특성을 도출했고 이를 통해 디자인 아카이빙의 개념을 제시했다.

결론 디자인 아카이빙에 대한 인식에서 시사점을 찾고 디자인 아카이빙의 특성을 반영하여 디자인연구, 공공기록, 문화기억으로서의 디자인 아카이빙 개념을 도출했다.

Abstract, Translated

Background As interest in archive increases, research on archiving is needed in design. However, since there are limitations in applying the concept of record management to design archive methodology, the concept research should be conducted. Although this study originates from archives, the study focuses on the open concept of 'archiving' because archives are recognized as hardware, such as archives and museums.

Methods In order to trace the current meaning of design archiving, this research generalized the type of archive with an inductive approach, but proceeded to understand the motives and perceptions of social actors and to organize the concepts. I set up two axes of current status and awareness research, and I analyzed the recent interviews of experts related to archives, archive issues, and phenomenon on archives.

Results In general, most activities in design archiving are based on the concept of archival management, which has been widely used. It has been confirmed that contemporary design archiving needs to be defined unlike a typical archival concept. Based on the analysis of the current situation and perception, the problem and the contemporary characteristics are derived, and the concept of design archiving is presented.

Conclusions I have found implications in the recognition of design archiving and I have derived the concepts of design research, public record, and design archiving as cultural memory reflecting characteristics of design archiving.

Keywords:
Design Archive, Archive Phenomenon, Public Records, Cultural Memory, 디자인 아카이브, 아카이브 현상, 공공기록, 문화기억.
pISSN: 1226-8046
eISSN: 2288-2987
Publisher: 한국디자인학회Publisher: Korean Society of Design Science
Received: 05 Sep, 2018
Revised: 30 Sep, 2018
Accepted: 30 Sep, 2018
Printed: 30, Nov, 2018
Volume: 31 Issue: 4
Page: 97 ~ 109
DOI: https://doi.org/10.15187/adr.2018.11.31.4.97
Corresponding Author: Sangkyu Kim (ksk2010@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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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ation : Kim, S. (2018). Study on Contemporary Concept of Design Archiving.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1(4), 97-109.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1. 서론

문화예술에서 시작된 아카이브 현상이 최근에 사회적인 현상으로 확산되었다. 디자인 분야에서도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아카이빙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에 아카이브에 대한 개념 및 아카이빙 방법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또한 관련 연구들이 참조하는 모델은 기록관리학 기반의 아카이브 개념과 방법인데 이것을 곧장 디자인아카이브에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본 연구는 아카이브 연구에서 출발하지만 기록보존소, 박물관 등 하드웨어로 인식되는 아카이브 개념을 넘어 ‘아카이빙’이라는 개방적이고 동적인 개념을 연구하는 데 목적을 둔다.

또한 귀납적 접근으로 유형을 일반화하되 사회적 행위자의 동기와 이해를 파악하여 개념을 정리하는 방법을 취한다. 이를 위해 현황과 인식 조사의 두 축으로 접근한다. 구체적으로는 최근 아카이브 현상, 아카이브 쟁점, 아카이브 관련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종합하여 동시대적 특성을 도출하며 이를 근거로 디자인 아카이빙의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다.

2. 동시대적 아카이빙의 이해
2. 1. 아카이브와 아카이빙 개념

아카이브는 공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문서와 기록물을 보존하는 곳을 가리킨다. 그러나 자크 데리다(Derrida, 1995)가 아카이브라는 말보다 명확하지 않은 단어는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아카이브 개념은 역사학, 철학 등 각 분야에서 논란이 되어왔다(Manoff, 2004).

아카이브 논쟁의 중심에 있는 ‘기록물’은 각 기록물 사이의 구체적인 ‘관계’로 형성된 문서 전체를 의미한다. 이처럼 문서 형식의 기록보관소를 염두에 둔 아카이브 개념도 있지만 미셀 푸코가 주장하듯이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차원에서 정보를 모아 구성하는 행위 혹은 정보의 집합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아카이브 개념은 박물관, 도서관 등 기관의 기록보관실, 도큐먼트 자체, 그리고 전시와 창작, 연구 등 활동의 차원을 모두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Woo, 2017).

한편 기록관리학적 정의에 따르면 아카이빙은 이미 존재하는 기록물을 기록보존소로 이관하는 과정이고 아카이브는 그 아카이빙의 결과가 된다. 또한 아카이빙을 기록관리와 동일한 말로 보기도 한다(Noh, 2017).

본 연구에서는 아카이브가 갖는 전통적 인식, 즉 보관소의 개념으로 인해 현재의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한계를 벗어나되 아카이브 개념을 재정의하기보다는 ‘아카이빙’이라는 행위 중심의 개념을 탐구하고자 한다.

2. 2. 주요 담론

아카이브 담론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19세기 후반에 발전한 역사주의에 강한 반발이 있었고 기록환경 측면에서도 다양한 매체와 기록방법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디자인 아카이빙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담론은 다음과 같다.

2. 2. 1. 기억 및 기록유산 아카이빙

‘기억(memory)’ 개념은 서구 지식사회에서 역사 이념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되었다.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식 전환이 본격화되었고 국내에서도 과거 청산과 위안부 문제에서 비롯된 ‘기억투쟁’ 같은 표현이 등장하면서 기억담론이 주목받았다.

기억과 역사가 똑같이 과거를 재현하는 통로를 제공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둘은 상호작용하며 서로 충돌한다(Jimerson, 2016). 전진성(Jeon, 2005)은 기억담론이 과거의 신화를 해체하려는 입장과 과거를 재신화하려는 입장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고 보았다.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을 보존하고자 추진하는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 프로그램은 후자의 입장이다. 기억담론은 다중적인 기억들의 공존을 꾀하지만 이처럼 역사화되기도 한다.

2. 2. 2. 디지털 아카이빙

디지털 아카이빙은 기법과 매체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미술의 경우 디지털 환경 속에서 미술품의 디지털 원본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등장했다. 이로 인해 미술 아카이브는 작품의 디지털 원본을 중심으로 주변 기록 간의 질서를 부여하게 되었다.

이처럼 디지털 아카이빙은 전통적인 문서고의 아카이빙에서 나아가 디지털 원본을 핵심기록으로 하여 여타 기록들과 연계되고 구조화가 가능해졌다. 기록보관소, 박물관 등이 네트워크로 상호 연결하여 풍부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어서 공유 가치도 커진다. 개인들의 독립적인 온라인 아카이브를 연결하는 일까지 가능해졌는데 알레산드로 루도비코(Ludovico, 2017)는 이것을 ‘분배된 아카이브’, ‘유동적인 아카이브’라고 칭하고 풀뿌리 아카이빙의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2. 3. 쟁점
2. 3. 1. 동시대성

‘동시대’는 단순히 현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동시대’, ‘동시대성’은 미술에서 현대 미술과는 다른 방식의 표현으로 사용되었는데 역사적 시점을 1989년 이후로 보기도 한다(Dumbadze, 2015). 이러한 시도는 동시대를 ‘지금’, ‘오늘’처럼 비슷한 시간대의 활동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컨대, 같은 시기의 창작이더라도 동시대적이지 않은 고루한 작업도 있다. 따라서 ‘동시대 아카이브’는 동시대의 아카이브 담론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어야 한다.

2. 3. 2. 다원성과 학문적 복잡성

하나의 공식 역사로 수렴하려는 실증주의적 역사관 대신 다양한 미시 기억들이 공존하는 역사인식이 힘을 얻고 있다(Kang, 2018). 이것은 아카이브 개념의 다원성으로 귀결된다. 즉, ‘아카이브’를 물리적인 기록물에서 관념적인 것, 단순한 저장 행위 자체까지 각 주체들이 인식하는 다양한 층위가 공존하는 폭넓은 개념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상 뿐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복합적인데 기록학 자체가 역사학에 뿌리를 두었을 뿐 아니라 문헌정보학, 민속학, 고고학, 문화인류학, 박물관학, 고미술학 등 여러 학문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2. 3. 3. 아카이브 재표상

기록학자 슈 매케미쉬는 ‘아카이브 재표상(refiguring the archive)’이라는 관점에서 기존 아카이브의 기록 대상이 매우 협소하여 근대 기록담론에서 구술(orality)이 아카이브의 한 형식으로 주목받지 못했으며 건축, 풍경, 춤, 의식이 각각의 잠재적 증거 특성에도 불구하고 다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Myungji University, 2012).

실제로 아카이브 제도가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며 아카이브의 구조 또한 변해가는 중이다. 기록학계에서도 폐쇄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고 그 중 제프리 예오(Yeo, 2012)는 아카이브가 특정한 질서를 만들 수 있으며 아카이브만의 집합체(aggregation)를 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주장은 디자인 아카이빙 개념을 정립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디자인 아카이브 관련 현황
3. 1. 현상

이 장에서는 정책 및 연구 현황과 구분하여 현상을 다루고자 한다. 즉, 여기서 ‘현상’은 디자이너 개인이나 집단의 아카이빙을 뜻한다. 자발적으로 아카이브를 만드는 현상은 디자인 아카이브 논의의 중요한 출발점인 동시에 연구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첫 번째로, ‘여성 그래픽디자이너 정책연구 모임’(WOO)의 아카이빙을 들 수 있다. 일민미술관 큐레이터의 성폭력 사건 발생 직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언리미티드 에디션 행사가 끝나는 날에 연구모임이 발족되었다. 당시 선언문에는 김린 디자이너의 아카이빙이 조직 결성의 계기가 되었고 성폭력과 성차별 피해 제보를 기록하고 공론화하는 방법으로 아카이빙이 언급되었다.

두 번째 현상은 서울올림픽 관련 아카이빙이다. 2017년 11월에 열린 DDP 포럼에서 <디자인 유산의 아카이빙>이라는 제목으로 두 프로젝트가 소개되었다. 스튜디오 팩스커뮤니티의 ‘서울올림픽 스탠더드매뉴얼 제작프로젝트’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당시의 디자인을 아카이브로 복원하여 디자인 유산을 소장하고 보급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는 ‘유산’, ‘복원’이라는 아카이브의 전형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최지웅 디자이너가 진행한 아카이빙은 수집품과 기록사진 등이며 2017년에 <우리 모두의 88>이라는 책으로 제작되었다.

세 번째로, 시디알어소시에이츠(CDR)의 ‘코리아 디자인헤리티지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페이스북 계정에 지속적으로 초창기 한국디자인 주요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기업 아이덴티티와 편집디자인 분야가 중심이다.

이 외에 아카이빙 방법론을 활용한 전시도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건축가 시리즈 전시와 2017년 열린 <종이와 콘크리트>, 그리고 2018년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두 번의 올림픽, 두 개의 올림픽>이 해당된다. 위의 사례들만 보더라도 디자인 아카이빙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3. 2. 정책 및 연구
3. 2. 1. 국립디자인박물관 건립 추진

2023년 세종시에 완공될 박물관 단지 내 국립디자인박물관은 디자인아카이브 구축에 중점을 두고 계획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2년 연구보고서에는 한국디자인 자료가 미비한 현실을 반영해, 기획전을 통해서 주요 역사적 자료들을 수집하고 디자인박물관의 아카이브에서 최근 20여 년간의 자료들을 집중 수집하는 전략이 제시되었다(Ahn, 2012).

3. 2. 2. 학술연구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서 ‘디자인 아카이브’로 키워드 검색할 때(검색일 2017. 11. 27) 48편의 학위논문과 37편의 학술지 논문을 찾을 수 있다. 이 중 디자인 아카이브를 중심 주제로 다룬 논문을 선별하면 여섯 편으로 좁혀진다.

이 논문들에서 아카이브는 디자인 프로젝트의 수단이거나 대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로젝트를 염두에 둔 논문에서는 아카이브를 사전적 방식으로 설명하면서 데이터, 정보 개념으로 정의한 것으로 보아 아카이브를 도구적으로 인식함을 알 수 있다. 창작 및 작품 분석 논문들은 아카이브의 개념을 창작의 한 방식으로 전제하여 새로운 작업을 위한 방법론적 인식을 보여주었다.

종합하면, 관련 선행연구들은 아카이브를 도구적으로 인식하는 경우와 방법론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두 가지 모두 아카이브의 일반적 개념에 머물러서 디자인 아카이브의 개념 자체를 정의하지는 않고 있다(Kim, 2018).

Table 1
Academic papers on Design Archive

제목 서지 정보 아카이브 개념, 인식
학위논문 디자인프로세스를 이용한 시각표현 연구 : 아카이브 방식을 활용한 작품제작을 중심으로 김경주(이화여대, 2016,박사) 창작의 방식,
방법론적 인식
UX 디자인에 기반한 아카이브 전시 디자인 기법에 관한 연구 정가희(경남대, 2013,석사) 기록물,
유형적 인식
아카이브 공유를 위한 애플리케이션 디자인 제안 :레고를 중심으로 김승호(홍익대 국제디자인대학원,2017,석사) 데이터,
도구적 인식
인간 욕망의 현대적 현상을 반영한 실험적 시각표현 연구 :아카이브와 맵핑의 개념 디자인 방법론을 통하여 박지현(이화여대, 2011,석사) 정보수집,
도구적 인식
학술지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기반 디지털 아카이브 검색 서비스 UX 디자인 김신효 외
(한국HCI학회, No.2, 2017)
데이터베이스, 도구적 인식
정연두-트랜스그레시브 아카이브와 기술적 언캐니 장선희(조형디자인연구, Vol.19
No.1, 2016)
창작의 방식,
방법론적 인식

3. 2. 3. 단행본

2000년대에 한국디자인을 주제로 한 전시와 연구가 잇따르면서 단행본이 다수 출판되었다.

첫 번째,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기획한 1세대 디자이너 연구 결과로 조영제와 민철홍을 다룬 단행본이 각각 발행되었다. 이들은 7,80년대에 활동했고 디자인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한국 디자인의 초기 정황을 추론할 자료가 된다.

두 번째로 구술사업 보고서를 들 수 있다. 예술자료원이 추진해온 ‘한국 근현대 예술사 구술채록사업’은 공연예술, 시각예술 등 6개 분야에서 274명을 대상으로 추진되었으며 디자인 분야는 2017년까지 3명(유희경, 노명자, 한도룡)이 포함되었다. 구술자의 교육 경험,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자전적 인터뷰에 기초하여 서술한 구술자료가 디지털 아카이브에 공개되었다(Lee, 2017).

또 다른 사례로는 ‘디자인아카이브 총서’가 있다. 한국 사회의 사건들을 통해 구조를 분석하는 시도인데 첫 책인 <중산층 시대의 디자인 문화 1989-1997>는 올림픽 이후 새로운 일상의 질서를 다층적으로 다룬다.

이 외에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와 같이 아카이빙 방법을 활용한 독립출판물도 있다. 단행본은 일정한 지면에 담는 것이므로 시기와 주제면에서 제한적이다. 또한 아카이빙 개념을 공유하기보다는 편집자나 필자들 개인의 관심사, 조사 역량에 따라 자의적인 아카이빙의 형식을 취한다. 다만, 구술채록, 아카이브 총서와 같은 연속 사업은 지향점이 분명하므로 안정적인 개념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4. 디자인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

현황에서 살펴보았듯이 디자인 아카이브 현상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디자인 아카이브 관련 현황에서 드러난 개념과 인식은 사회적 행위자(social actors)에 대한 것으로, 이는 다음 장에서 분석하고 이 장에서는 디자인 인접 분야의 아카이브 전문가들이 디자인 아카이브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4. 1. 인터뷰 개요
4. 1. 1. 인터뷰 대상 및 진행 방식

2017년 9월부터 국내 10명, 해외 3명을 심층 인터뷰로 진행했다. 국내는 인접 분야를 고루 안배하여 해당 분야의 대표적인 공공기관의 종사자를 접촉했다. 해외의 경우는 민간 스튜디오, 디자인컬렉션이 있는 박물관, 컬렉션이 없는 박물관으로 나누어 섭외했고 현지 방문이 가능한 기관의 아키비스트를 인터뷰했다.

1~2시간 동안 취지와 질문 내용을 설명했고 가능한 현장에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으면서 정리했으나 즉답이 어려운 경우는 인터뷰 이후 답변 내용을 이메일로 받았다. 현장에서 답변이 완료된 경우라도 1차 정리한 내용을 인터뷰이의 확인 및 보완 과정을 거쳐서 완성했다.

Table 2
List of personal interview

분야 성명 및 직책 소속 및 관련 기관 인터뷰 일정
국내 미술 박상애 아키비스트 백남준 아트센터 2017.11.28
영상 김계영/강현정 아키비스트 영상자료원 2017.11.2, 11.14
사진 김태현 연구자 사진 아카이브 2017.11.28
건축 이현영 아키비스트 국립현대미술관 2017.10.12
공연예술 김현옥 학예사/아키비스트 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2017.11.28
문화
자원
한혜진 아키비스트 아시아문화전당 정보원 2017.9.6
안재홍 교수 문화기술대학원/문화재청 2017.10.13
기록학 원종관 아키비스트 서울기록원 2017.10.12
해외 미술/
디자인
Biljana Joksimovic, archivist Studio Olafur Eliasson (독일 베를린) 2018.6.13
Wirth Marlies, curator/ archivist MAK museum (오스트리아 빈) 2018.6.6
Hans D. Christ, director/curator WKV museum (독일 스투트가르트) 2018.8.21

4. 1. 2. 질문 내용

총 4개의 범주로 나누어 범주마다 2,3개의 질문을 배치했다. 인터뷰이의 상황 특성에 따라 질문을 조정하여 유연하게 질문했으며 기본 질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Table 3
Contents of Questionnaire

범주 질문 요약
인터뷰이 기본정보 - 현재 맡고 있는 아카이빙 분야, 주제
- 아카이빙을 맡게 된 계기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 - 최근에 나타난 아카이브 현상 대한 입장
- 아카이브의 개인적 정의
- 소속 기관에서 아카이브의 의미
아카이브의 방향 - 현재 진행하고 있는 아카이빙 대상과 지향점
- 그 지향점에 부합하는 아카이브 목록, 모델
디자인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 - ‘디자인 아카이브’라는 용어에 대한 인상
- 디자인 아카이브에서 연상되는 모델이나 목록

4. 2. 인터뷰 내용 분석

전체 내용 중에서 본 논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범주는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과 ‘디자인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이 된다. 따라서 두 범주를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4. 2. 1.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

첫 번째로 최근에 나타난 아카이브 현상과 해당 주체들의 아카이브 인식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아카이브 현상이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고 기록 및 수집 행위 자체를 아카이빙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지적하면서도 그것이 문제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을 남기는 것에 의미를 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서는 개인적인 아카이브의 정의가 기록관리 중심과 기록물 활용 중심으로 크게 나뉘었다. 이는 전형적인 아카이브 개념과 새로운 담론의 혼재를 보여준다.

4. 2. 2. 디자인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

기본적으로 ‘디자인 아카이브’라는 용어에 낯설어 했고 미술, 건축, 영화와 마찬가지로 디자인 장르의 아카이브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디자인의 경우, 다른 장르에 비해 아카이빙 대상이 포괄적이라는 점이 공통적으로 언급되었다.

특기할 점은, 디자인 결과물보다는 디자인과정에 대한 기록을 떠올리는 인터뷰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디자인 아카이브에서 연상되는 구체적인 목록으로는 디자이너 개인의 작품 목록, 브랜드디자인 목록부터 도면 등 문서화 가능한 대상의 목록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4. 2. 3. 종합 분석

위의 두 범주 결과를 분석해보면 우선, 아카이브 일반 개념은 유연해진 반면 디자인 아카이브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아카이브 개념을 대입하여 생각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인터뷰에서 채록한 4명의 다음 답변을 참고할 수 있다.

A: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물, 스케치나 프로토타입이 연상된다.
B: 최종 결과물보다는 그 과정에서 생기는 스케치가 의미 있다.
C: 디자인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회의록 같은 자료들.
D: 결과물보다는 그 이면의 스토리(behind scene)가 의미 있을 것 같다.

즉, 디자인 아카이브는 디자인 결과물의 생산과 관련된 무엇인가를 수집·보존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용자 중심의 디자인을 염두에 두는 답변은 없었다. 디자인 아카이브가 포괄적이고 방대하다는 지적도 그래픽, 제품, 패션 등 디자인 분야의 다양성을 염두에 둔 것이지 정책, 경험 등 다양한 층위의 디자인을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디자인 개념에 대한 제한적 인식이 디자인 아카이브의 개념 및 인식에도 고스란히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아카이브의 인식과 디자인 아카이브의 인식이 불연속적이고 창작자 중심의 아카이빙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인접 분야의 아카이빙 개념을 그대로 디자인 아카이빙에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디자인 아카이브를 컬렉션과 확연히 구분하고 있었다. 아카이빙이라면 마땅히 과정을 기록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디자인 전문가의 논의에서 컬렉션과 아카이브가 혼용되는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인터뷰이들이 현역 전문가로서 아카이빙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C의 답변인데 아카이빙의 대상이 의사 결정 과정까지 포괄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부 정책, 대기업의 경영방침에 큰 영향을 받는 한국 디자인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지적이다.

세 번째로는, 디자인 아카이브의 대상 범위에 대한 문제가 빠지지 않고 제기되었다. 이에 해당하는 4명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E: 디자인이라는 말 자체가 방대해서 범위를 설정하지 않으면 디자인아카이브가 무엇인지 금방 인식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F: 디자인 분야가 워낙 방대해서 구체적인 범위를 설정하여 아카이빙하지 않으면 디자인 아카이브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G: 실제로 거의 모든 분야의 아카이브에서 ‘디자인’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디자인을 염두에 두는지가 관건이다.
H: 목적이 설정되지 않으면 몹시 광범위할 것 같다.

디자인 자체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범위를 설정하고 목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G의 답변인데 그는 미술, 영화처럼 독립적인 장르의 아카이브로 디자인 아카이브를 보는 시각 외에도 기능적인 측면에서 디자인을 아카이빙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 예를 들어, 연극 아카이브에서 무대디자인, 의상디자인이 소주제로 나올 수 있고 도면과 스케치가 기록물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디자인의 세부 분야에 따른 범위 뿐 아니라 아카이브의 층위, 즉 다른 분야 아카이브의 하위 범주에서 이뤄지는 디자인 아카이빙까지 고려한 범위가 있을 수 있음을 말한다.

위의 세 가지에 덧붙여 소속기관의 아카이브 인식을 질문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중요점도 있다. 각 기관의 아카이빙 현황이 그리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도서관과 국가기록원 등 기록물의 원출처와 질서가 분명한 조건에서 출발한 아카이빙 방법이 문화예술에 적용되는 것이 쉽지 않고 특히 메타데이터의 틀을 잡는 데도 시행착오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것은 아키비스트의 배경, 즉 전공에 따라 관점이 달라서, 동일한 아카이브에서도 해당 분야의 역사 및 이론 전공자와 기록학 전공자가 아카이빙 방식을 합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각 분야의 아카이빙 방법론은 완결되지 않았고 동시대적 개념을 만들어 가는 중인 것이다.

5. 디자인 아카이빙의 동시대적 특성

동시대적 디자인 아카이빙의 개념은 앞의 내용을 토대로 단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3, 4장의 분석 내용에서 문제를 도출하고 디자인 아카이빙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개념을 정리하고자 한다.

5. 1. 현황 및 인식 분석에서 도출된 문제

디자인 아카이빙의 행위자들은 ‘기록’이라는 측면의 아카이빙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인식조사에서 나타났듯이 기록학적 아카이브는 물론 인접 분야의 아카이브 개념이라도 디자인 아카이브에 대입하기 어렵다. 한편, 기존 아카이브 담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도 있다. 즉 절대적인 아카이빙 개념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여 맹목적으로 따르는 오류와 아카이브에 대한 기초 지식 부족으로 생기는 오류가 뒤섞여 있다. 이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5. 1. 1. 개념의 혼동 문제

아카이빙이 개인들의 필요에 따라 즉각 이뤄진 탓에 유사 개념들과 혼용되고 있다. 이는 개념 정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올림픽 관련 아카이빙에서는 과거의 디자인을 수집하거나 복원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곧 아카이빙이었다. 실제로 DDP 포럼의 발표자들은 아카이빙을 수집으로, 아카이브를 수집품으로 간주했다.

이것은 ‘컬렉션’과 ‘아카이브’가 혼용되는 문제에서 비롯된다. 전통적인 의미의 컬렉션은 박물관 및 개인의 컬렉션 방식을 말하는데 김정하(Kim, 2007)에 따르면 이 컬렉션은 소장품이자 ‘박물(博物)’이므로 아카이브와는 거리가 있다. 일상적으로는 두 용어가 혼용되는 것이 사실이며 디자인 컬렉션이 디자인 아카이브와 공유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아카이브는 디자인 활동 관련 기록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광범위한 자료 수집인 반면, 컬렉션은 사료적, 조형적, 정보적 가치가 보다 탁월하다고 판단된 콘텐츠다(Kim, 2012).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디자인 아카이브 현상들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인터뷰이들의 답변에서 보듯이 자의적인 해석이라 하더라도 아카이빙 자체는 중요한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다만 학술적으로 디자인 아카이빙의 개념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문제일 수 있다.

5. 1. 2. 역사화 문제

역사화(historization)는 바로 위에서 우려한 왜곡의 한 형태로, 역사주의적 태도다. 이것은 담론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CDR의 코리아 디자인헤리티지 프로젝트는 “한국 디자인의 뿌리를 찾아가는 페이지”라고 소개되어 있다. 디자인 결과물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미술 영역에서는 이미 역사화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역사화를 위해 문서화와 아카이브 작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이 작품들이 애초에 역사적으로 탄생하지 않았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들은 역사적이 되기를 주장한다(Dumbadze, 2015).

물론 위의 사례를 비롯한 디자인 아카이브 현상은 개인들의 프로젝트일 뿐 역사화의 목적의식을 둔 활동은 아닐 것이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규모를 갖추게 되면 특정한 방향성을 갖게 되는데 현재 아카이브 담론의 쟁점을 인식하지 못하면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역사주의적 태도는 유물과 유산 개념에 얽매여 디자인과정, 디자인 의사결정 등 풍부한 맥락의 연구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 역사적 연구와 역사화는 분명히 다르다. 전자는 발굴과 해석이지만 후자는 긍정적인 의미 부여로 귀결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동시대적 디자인 아카이빙은 역사적 의미부여라는 도구적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5. 2 디자인 아카이빙의 특수성

‘특수성’을 거론하는 것은 기존 아카이브 담론을 배제하거나 디자인 담론을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다. 동시대적인 아카이브 담론을 수용하되 동시대적인 디자인 상황을 반영함으로써 더 실질적인 개념을 정립하려는 것이다. 이를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5. 2. 1. 디자인사 연구와 지적자산의 공유

영향력 있는 디자인운동이나 유명인의 디자인은 박물관을 중심으로 보존되지만 이외의 기록은 파편적으로만 존재한다. 디자인은 당대의 물질문화, 인공물의 생산-소비 관계를 밝혀줄 중요한 경로임에 틀림없으나 역사적 연구가 불충분한 상황에서는 디자인 아카이빙이 디자인사 연구를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디자인사 연구는 디자인을 지적자산으로 공유하는 문제와도 연계된다. 디자인 결과물이든 디자인과정의 생산물이든 그것이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논의되기 보다는 생산주체의 소유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즉, 지적자산이 공유되지 못하는 것이다. 피터 버크(Burke, 2017)는 이를 ‘정보 봉건주의’로 부르기도 하는데 기업 연구소에서 연구원은 연구결과를 누설할 수 없다. 많은 디자인 기록이 기업에 보관되어 있는 현실에서 기업의 지식 사유화가 문제시 된다. 이는 근본적으로 디자인과정의 기록을 지적공유재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5. 2. 2. 한국 디자인의 특수성

한국의 디자인 분야에는 몇 가지 특수성이 있는데 이 점도 디자인 아카이브의 접근방법이 전형적인 아카이브와는 다른 원인이 된다.

첫째, 한국은 사내 디자인 조직이 디자인 활동의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디자이너가 부각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업 자체의 아카이빙 사례가 드물 뿐 아니라 기록물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접근하기 어렵다.

둘째, 개인들이 소장한 자료를 발굴하는 방법이 있으나 현재 신뢰할만한 기관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원로 디자이너가 자신의 작업기록물을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해도 그 기록물을 인수하여 분류, 보관, 활용할 전문기관이 없는 것이다.

셋째, 기술에 민감한 디자인의 특성을 들 수 있다. 디지털 매체로 인해 모든 분야의 아카이브가 겪는 변화이자 어려움이지만 디자인 콘텐츠는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디지털 생성물(born-digital)인 경우가 많아서 디자인 결과물의 원형이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

5. 2. 3. 디자인연구와 기록

디자인연구 측면에서 ‘기록’이 갖는 의미가 있다. 창작에 초점을 맞추는 예술 기록의 경우는 예술 활동과정에서 생산되고 축적된 기록 전체를 말하는데(Seol, 2011) 디자인 아카이브도 디자인과정의 기록이다. 그러나 아카이브 대상의 범위가 다른 장르처럼 명확하지 않고 복합적인 관계망 속의 사회적 행위이기 때문에 생산과정 뿐 아니라 수용과정의 기록이 더해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기록학에서 요구하는 원질서(original order)를 지키기 어렵고 현용과 비현용기록이 병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디자인 아카이브에서 ‘기록’은 디자인연구에 의해 수집되고 주제별로 재분류되어야 할 특수성이 있다.

5. 3. 공공기록으로서의 디자인 아카이빙

디자인 기록물은 많이 유실되었고 지금도 유실되고 있다. 디자인 아카이브 현상에서 보듯이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아카이빙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디자인 아카이빙은 공공기록의 차원에서 개념을 세울 필요가 있다. 아카이빙은 기본적으로 공공기록 행위의 가치를 잠재하고 있고 결국은 공공아카이브가 될 수 있으며 디자인 아카이빙도 마찬가지다.

이 부분은 디자인을 문화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문화는 국가의 자산 이전에 보편적 자원이라고 여긴다. 예컨대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도 공공의 자산이다. 클레어 비숍(Bishop, 2016)은 ‘공유재 아카이브’라는 용어로 이를 옹호한다. 원래 공유재(the commons)는 토지 같은 자연재를 일컫지만 비숍은 문화적 자원에 적용하여 모두가 접근 가능한 소장품이라는 개념으로 본 것이다.

이 관점은 사유화된 현대미술관 문제에 대안적인 개념을 제시한 것인데 미술관 소장품을 유물 창고가 아닌 공공재 아카이브로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디자인 아카이빙으로 끌어올 수 있다.

5. 4. 문화기억으로서의 디자인 아카이빙

2013년, 문화재청은 <포니1> 등 18건의 근현대 산업기술 유물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산업디자인 결과물이 유물에 포함된 것인데 이 목록의 의미는 굿디자인으로서의 디자인이 아닌 문화자원으로서의 디자인이라는 점이다.

기억담론에서 보자면 문화재청의 유물, 문화재 개념은 전진성이 말한 과거의 재신화화에 해당될 수 있다. 이것을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디자인 아카이빙은 집단기억보다는 문화기억(cultural memory)에 가깝다. 문화기억은 과거 사실에 대한 인간 기억의 외재화, 물화된 차원으로 넓게 정의된 바 있다(Kang, 2018). 또한 집단기억이 기념비 설립, 문화재 지정 같은 근대 국민국가의 현상이라면, 문화기억은 공식 역사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들을 수용하는 것이다.

디자인 아카이빙은 이제 막 개념을 정립하는 단계이므로 기억담론에서 비판된 근대적인 집단기억의 방식을 따를 이유가 없다. 또 실제로 피에르 노라(Nora, 2010)가 그의 저서 <기억의 장소>에서 기술한 삼색기, 에펠탑 등 사물, 장소, 개념으로 문화기억을 구축하는 방식은 디자인연구의 접근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6. 결론

현재 아카이브 연구는 기록관리학의 체계를 기준으로 두고 있는데 그것을 디자인에 직접 적용하여 아카이브, 아카이빙의 개념을 세우기는 어렵다. 아카이브 담론, 그리고 한국사회에 나타난 아카이브 현상을 보면 아카이브를 기관이자 기록물부터 권력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카이브 뿐 아니라 동시대적인 아카이빙은 전통적인 아카이빙과는 다른 맥락에 놓여있고 기관 중심으로 이해된 개념과도 달리 정의되어야 한다. 디자인 아카이빙에 대한 논의가 미진했던 것은 기록학 체계에 얽매인 인식, 그리고 기관 설립을 위한 아카이빙에 치우친 연구 현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판단에 따라 디자인 아카이빙의 현재적 개념을 정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디자인 아카이빙의 개념 정립을 위해 아카이브 담론과 쟁점을 살펴보고 디자인 아카이빙의 현황과 인식을 조사했다.

동시대적 디자인 아카이빙의 개념을 선언적으로 정리하기 보다는 현황과 인식을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문제를 도출하고 디자인 아카이빙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디자인연구, 공공기록, 문화기억으로서의 디자인 아카이빙 개념을 도출했다.

디자인 아카이빙의 특성을 반영하여 개념을 명확히 하고자 했으나 디자이너 및 연구자들의 인식 조사, 해외의 유력 디자인 아카이브 연구가 빠졌다는 점은 한계로 남아 있다. 후속 연구로 이 부분을 보완하고 아카이빙의 방법론 연구로 발전시켜 가고자 한다.

Acknowledgments

This work was done by 2018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 Technology Research Fund.

본 논문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내 학술연구비 지원을 받아 개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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