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of Design Research
[ Article ]
Archives of Design Research - Vol. 29, No. 3, pp.189-199
ISSN: 1226-8046 (Print) 2288-298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Aug 2016
Received 19 Apr 2016 Revised 19 May 2016 Accepted 01 Jun 2016
DOI: https://doi.org/10.15187/adr.2016.08.29.3.189

A Critique on Moral Approaches to and Assessment of Design

KimSangkyu김상규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 Technology, Seoul, Korea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디자인학과, 서울, 대한민국
디자인에 대한 도덕적 접근 및 가치 평가 비판

Correspondence to: Sangkyu Kim ksk2010@seoultech.ac.kr

Background With increased interests in design in recent years, design practices began to be assessed through ethics. Moral approaches to design date back to the 1970s, although then this was only a matter discussed by design professionals. Hence, the recent interests in design ethics can be viewed in this historical context and as a matter that has been expanded to become a public issue by being conflated with the enhanced social responsibilities of design.

Methods In this research, deductive reasoning is used to address a conclusion from the premise that issues of the morality of design are related to the socio-political situation of the 2000s. After reviewing earlier studies and discourses from the 20th century, moral matters and their contexts will be identified.

Results Moral matters can be an opportunity to response to design in its social aspects, whereas they are often used as a factor to restrict various approaches. Moral approaches to design have been booming in the 2000s. A critical review of design ethics, however, were not included in these approaches. Thus, reformative design activities lie behind moral matters and are considered just as good deeds.

Conclusions These changes provide us with a ground upon which to discuss design as a cultural and social practice. On the other hand, such a tendency makes a negative impact on designers, by suppressing a potential active movement of the design community. Furthermore, this could provoke the internalization and de-politicization of design, thereby limiting the design practice to an act of charity. Thus, it is required to examine the socio-cultural context of the ethical assessment of design and to make a critical analysis of the implications of ethics in contemporary design.

초록

연구배경 최근 디자인에 대한 관심 증가와 함께 도덕적 접근방법으로 디자인을 바라보고 디자인 활동을 도덕적으로 가치 평가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디자인에 대한 도덕적 접근은 이미 1970년대부터 이어진 디자인 분야 내부의 움직임이었다. 그 당시부터 그린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책임감, 윤리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러던 것이 근래에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과 디자인 윤리의 문제가 대중적으로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연구방법 본 연구에서는 디자인에서 도덕을 강조하는 현상이 2000년대의 변화된 사회정치적 상황과 연계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이를 입증하는 연역논증을 취한다. 도덕적 접근의 정황을 정리하고 20세기 디자인사를 비롯하여 현재까지 디자인 윤리 담론이라고 할 사례와 선행 연구들을 살펴본 뒤 이러한 접근이 갖는 문제점과 그 배경을 밝힌다.

연구결과 도덕적 접근방법과 도덕적 가치 평가 현상은 디자인의 가치를 사회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기회인 반면, 디자인의 다양한 논의를 제한하는 요인이 된다. 2000년대에 집중된 디자인의 도덕적 접근은 윤리 담론에 대한 근본적인 비평없이 진행되었고 결과적으로 디자인 활동의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개혁적인 노력을 선행으로 위축시키는 한계를 지닌다.

결론 이러한 변화는 문화로서의 디자인, 사회적 디자인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디자인 분야의 성찰, 사회 참여 모색 분위기를 퇴색시키는 부정적인 영향도 있다. 즉, 디자인의 내면화, 탈정치화를 촉발시켜서 디자인 실천을 제 3세계를 돕는 행위, 재능 기부와 같은 선행의 수준으로 제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디자인에 대한 도덕적 평가가 어떤 배경에서 등장했는지, 그리고 오늘날 디자인 영역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비평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Keywords:

Design Ethics, Moral Matters, Internalization, Good Design, 디자인 윤리, 도덕적 접근, 내면화, 착한디자인

1. 서론

2000년대에 들어서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을 언급하는 전시와 출판이 잇따랐다. 이와 관련된 해외의 저작들이 국내에 번역되었고 언론 매체에서도 참여, 나눔, 환경을 주제로 한 디자인을 다루는 경우가 잦아졌다.

디자인에 대한 도덕적 접근은 1970년대 이후부터 지속되어온 디자인 분야 내부의 움직임이었다. 그 당시부터 그린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윤리 문제가 대두되었는데 그것이 최근에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과 디자인 윤리의 문제로 확장되었고 대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현상은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요구의 변화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디자인을 평가하는 주된 항목이 산업적 측면―새로운 생활양식을 제안하는 것, 생산성의 효율을 높이는 것,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서 윤리와 도덕성 측면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현상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디자인에 대한 기대 또는 요구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고 이를 디자인에 대한 가치 평가의 변화라는 점으로 해석한다. 이에 따라 20세기 디자인사를 비롯하여 현재까지 디자인 윤리 담론이라고 할 사례와 선행 연구들을 살펴보고 이를 종합하여 문제점을 도출한다. 그리고 현재의 디자인에 대한 도덕적 접근이 이뤄진 배경과 문제점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한 연구방법은 주요 문헌의 주제 분석과 이에 대한 비판적 입장의 비평을 종합하여 주류 담론과 비평을 대비하는 방식이다. 본 논문에서 선행연구 예시는 주류 담론의 증거로서 제시되는 것이므로 국내외의 문헌이 시기나 형식에서 상이할 수 있음을 밝혀둔다.


2. 디자인의 가치 평가에 대한 시각 변화

디자인을 윤리와 도덕성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은 가치 평가의 문제다. 여기서 가치는 ‘좋음(goodness)’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으며 좋은 디자인, 우수한 디자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디자인 어워드 형식의 각종 디자인 수상제도의 운영에서 보듯이, 그동안 디자인 결과에 대한 평가는 나쁜 디자인에 제재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디자인에 보상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전통적인 디자인의 가치 평가 기준은 산업과 직결되어 있었다. 즉 생산성의 가치, 비즈니스의 가치였고 현재도 중요하다. 20세기 초부터 산업디자이너들은 기계에 의한 생산이 가능한 디자인, 나아가 효율적인 생산에 적합한 디자인을 고민해야 했다.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잘 팔릴 수 있는 디자인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이처럼 좋은 디자인을 가늠하는 것을 산업, 시장의 판결에만 의존하는 것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기는 했으나 현실에서는 산업, 시장이 디자인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역으로, 좋은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면 시장에서 판매를 촉진시킬 요인이라는 인식도 형성되었다. 예컨대, 디자인진흥기관에서 운영하는 굿디자인 제도는 그 인식을 형성한 것이기도 하고 그 인식에 따라 권위를 갖게 된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디자인의 수준, 즉 완성도와 품질로 디자인을 평가하던 것이 관례였다가 최근에는 디자이너의 도덕성, 사회적 인식까지 논의되고 있다. 이런 논의의 대상이 디자인 프로젝트의 결과물 뿐 아니라 디자인 전문가 집단이나 디자인 활동 전체를 포괄하여 논점이 뚜렷하지 않다. 게다가 디자인의 주체도 불분명해서 막연하게 도덕성 논쟁에 머문다. 즉 논점이 디자이너의 도덕성일 수도 있고 생산자의 기업 윤리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산업 중심에서 사회 중심으로 가치 평가의 근거가 변화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 디자인 분야 안팎에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기 보다는 산업논리에 따른 일부 폐해를 감정적, 정서적으로 거론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Figure 1

Change of Valuation on Design


3. 디자인 윤리 담론

오늘날 디자인에 대한 도덕적 접근을 위해 디자인 윤리 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 장에서는 1970년대와 2000년대에 선행연구가 집중된 점에 주목하여 이 두 시기에 해외에서 논의된 담론을 살펴보고 2000년대에 뒤이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윤리 담론을 분석한다.

3. 1. 현대 디자인사에서의 논쟁

현대 디자인사에서 여러 측면의 도덕적 접근과 논쟁이 있었다. 미술공예운동 중 윌리엄 모리스의 비판적 논쟁도 포함할 수 있겠으나 디자인 자체보다는 기계생산과 노동이 중요한 쟁점이었다. 따라서, 19세기말부터 현재까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다룬 디자인사로 제한해본다면 정직한 노동과 재료의 진실성에 대한 주장, 그리고 아돌프 로스(Adolf Loos)의 장식에 대한 비판이 초기의 논쟁이다.

70년에는 빅터 파파넥의 주장으로 소비주의를 촉발시킨 디자인 논쟁이 확산되었다. 파파넥(Papanek, 1971)은 ‘인간을 위한 디자인’에서 디자인을 인간이 도구와 환경을 만드는 강력한 도구로 보았고 그 때문에 높은 사회적, 도덕적 책임이 요구되는 반면 디자이너의 책임에 대한 책이 전혀 출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Figure 2

Important Events Related to Design Ethics

3. 2. 선행연구: 2000년대 해외의 사례

파파넥이 기대했을 법한 책은 데이비드 버먼의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 혁명’(Berman, 2008), 워렌 버거의 ‘글리머’(Berger, 2009), 로버트 그루딘의 ‘디자인과 진실’(Grudin, 2011) 등 2000년대 후반에 집중적으로 출간되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디자인 윤리 문제를 제기하면서 인도주의적 디자인의 사례를 소개하는 일련의 전시가 개최되었다. 뉴욕의 쿠퍼 휴잇 국립디자인박물관이 ‘Design for the other 90%’(2007), 'Design for the other 90%: Cities’(2010)를 열면서 같은 제목의 책을 발행했고, 뉴욕현대미술관도 ‘Small Scale, Big Change’(2010)라는 비슷한 형식의 전시를 열었다.

2000년대의 출판, 전시 사례들은 이것이 동시대적인 관심사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디자인이 사회를 위한 실천으로 가치를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과 언론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각 저자와 기획자들이 주장하는 일면에는 디자이너 또는 디자인 영역 전체에 대한 무책임한 비난에 치우쳐서 사회적, 정치적 문제의 희생양으로 디자인 활동을 언급하는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이는 디자인이 사회문제가 해결되는 가능성을 보여주면서도 사회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동시에 갖는다.

3. 3. 선행 연구: 2000년대 국내의 사례

앞에서 제시한 해외의 선행연구 외에도 디자인 윤리와 관련된 국내의 선행 연구는 저서와 논문이 있다. 앞에서 다룬 책과 전시 도록은 ‘Small Scale, Big Change’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내에 출간되었다. 국내 저서의 경우는 대부분 번역서에서 다룬 것과 유사한 해외 사례들을 소개하는 책들이기 때문에 논문에서 연구 사례를 찾는 것이 더 적절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에서 디자인 윤리를 주제어로 검색한 국내 논문은 총 20건이 확인되었으며 2000년대에 섬유 및 패션디자인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다룬 학술지 게재 논문들이 주를 이루었다. 학술지마다 비슷한 양상을 보여서 한국디자인학회의 논문 중 디자인 윤리, 도덕적 디자인에 대한 주장이 명확히 드러난 4편의 논문을 검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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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임, 김인철(Cheon and Kim, 2009)은 칸트의 선의지 개념을 디자인 윤리의 철학적 배경으로 두었고 허진영, 김혜연(Heo and Kim, 2014)은 앞의 논문을 인용하면서 동일한 논리를 근거로 삼았다. 최성운, 장국진(Choi and Chang, 2008)은 ‘디자이너의 사회, 윤리 의식적 관점’을 별도의 항목으로 두어 저자 개인의 관점에서 필요성을 서술하였다. 김태선(Kim, 2014)은 포용적 디자인(Inclusive design)을 유니버설 디자인과 구별하여 디자인 윤리에 경제성을 더한 ‘디자인의 윤리적 경제성’을 언급하였다.

각 논문이 다루는 대상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디자인 윤리를 기반으로 하여 논리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특기할 점은 저자 모두가 소비 문화와 기업 활동의 변화를 당연한 결과로 인식하고 있으며 과거에 비해 디자인 윤리 지향적이라고 긍정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소비 자체의 문제, 기업이 사회적 책임 활동을 하는 배경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거나 비평적 입장은 찾기 어렵다.

종합하면, 저자들은 분명하게 시기를 구분하지는 않았지만 이전에는 디자인 윤리 의식이 취약했던 반면 사회문화의 변화와 함께 최근에는 자연스레 디자인 윤리 의식이 강화되었고 이와 관련한 실천이 가능하거나 가능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4. ‘윤리’ 개념의 재고

전문가 집단의 활동을 윤리 측면에서 비판할 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윤리라는 기준은 정당한 것인가, 또 무엇을 윤리로 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정말로 사회가 변하고 기업이 변하는 것은 앞의 사례에서 주장하듯 인본주의적이고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선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렇다면 디자인 전문가들은 그러한 선한 의지가 부족하여 여전히 윤리 의식이 부재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남는다.

우선 앞의 사례들에서는 이러한 의문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중요한 혼선에서 비롯된다. 첫째는 윤리와 윤리학, 도덕성의 개념이 마치 공유된 불변의 개념이 있는 것처럼 혼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알랭 바디우(Badiou, 1993)는 윤리를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주체의 실천들에 대한 판단 원리라고 정의하고 헤겔이 주장한 윤리(Sittlichkeit)와 도덕성(Moralität)의 구분을 인용하여 도덕성을 반성된 행동으로 설명한다. 또한 바디우는 앞의 두 논문에서 철학적 토대로 삼는 칸트의 정언 명령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할 필요를 제기한다. 즉, 윤리의 이데올로기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윤리학은 도덕의 문제를 일으키는 인간행위를 연구하는 철학의 한 분야이다.(Choi, 2012, p.61) 앞의 출판, 전시, 논문들에서 사용하는 용어 ‘윤리’의 용례는 윤리학에서 규범 윤리학(normative ethics)에 해당하는데 여기서 핵심 개념은 좋음과 올바름이다. 윤리학에서 이것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메타 윤리학 등 새로운 틀을 제시하고 있다. 바디우와 최용철은 모두 윤리의 개념이 고정적이지 않으며 고전적 개념을 고수하기보다는 오늘의 상황에 대한 성찰과 이성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바디우는 윤리가 악용될 우려까지 표명했고 최용철(Choi, p.41)은 도덕도 결국 하나의 제도이기 때문에 개인의 결단, 선택을 배제한 도덕규범은 부당한 압력이자 횡포이라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이성의 성숙함을 요구하고 있다.

성숙한 도덕 생활을 하는 개인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도덕을 맹목으로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중략) 어떤 도덕을 받아들이고 거부할 것인가에 심사숙고하여 정당한 이유를 제시하려고 한다.(Choi, p.104)

두 번째 혼선은 디자인 내부의 문제 의식과 디자인 자체의 윤리성을 강조하는 디자인 외부 저자들의 주장을 뭉뚱그리는 점이다. 내부의 윤리 의식은 성찰적인 태도이지만 외부에서 디자인 윤리를 주장하는 것은 디자인 주체에 책임을 전가하는 측면이 있다.

선행 연구에서 보듯이 선하고 옳은 방향으로 디자인하자는 것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와 관련된 현상에 포함된 공정무역, 기부문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윤리적 소비에 대해서 이미 비판적인 견해가 나오고 있다. 해더 로저스의 ‘에코의 함정-녹색 탈을 쓴 소비 자본주의’, 라미아 카림의 ‘가난을 팝니다’, 천규석의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 등의 단행본에서 구체적인 사례들로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이것은 그 의도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좋은 의도라는 명분에 의해 가려진 문제점을 실증한 것이다.

디자인 연구에서도 디자인 윤리, 도덕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현상을 문제시하고 선한 명분에 의해 가려진 쟁점을 밝힐 필요가 있다. 선행 연구에서 ‘디자인 윤리’, ‘윤리적 가치’, ‘도덕성’ 등으로 뒤섞여 표현된 부분들은 비도덕적(immoral) 실행에서 벗어나려는 저자들의 의식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윤리의 개념으로 포괄하기에는 앞서 살펴본 대로, 논란의 여지가 많으므로 ‘도덕적 접근’으로 포괄하여 지칭하는 것이 적절하다.


4. 도덕적 접근의 배경

3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도덕의 문제는 의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칭찬과 비난이 내려질 수 있느냐에 따라 정해진다.(Choi, 2012) 본 연구도, 디자인에서 도덕을 강조하는 현상은 선행 연구들이 주장하듯이 선을 향한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변화라기보다는 사회적 평가의 부담 때문이라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디자인을 사회적 가치로 평가하면서 높은 도덕성을 지향하는 것이 긍정적인 반면 탈정치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접근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대부분 2000년대 중반 이후에 집중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이들 연구에서는 내부적인 성찰보다는 디자인 외부에서 강제되는 상황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배경은 사회문화와 세계질서의 변화와 연결된다. 그 중 다음의 두 가지의 사건을 배경으로 볼 수 있다

4. 1. 9/11 사건 전후의 변화된 양상

디자인 비평가 릭 포이너(Poynor, 2006)에 따르면, 2001년에 뉴욕의 국제무역센터가 붕괴된 9/11 테러 사건은 디자인 분야에도 변화를 초래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한창 사회적인 관심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이와 관련된 포럼이 준비되고 있었으나 9/11 이후에는 미국의 디자인계가 디자인계 내부의 문제로 시각을 돌리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노동착취와 같은 국제적인 쟁점들은 자유세계의 수호, 아프가니스탄의 폭탄테러 같은 문제들에 비하면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Poynor, p.59)

환경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도 변화가 있었다. 앨리스 트웸로(Twemlow, 2008)는 ‘디자인 옵저버’에 기고한 ‘A Look Back at Aspen, 1970’에서 1970년 여름, 미국 아스펜의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International Design Conference at Aspen)에 참여한 환경 운동가들과 학생들이 컨퍼런스에 정치적 참여가 결여되었음을 강하게 비판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 환경 운동가들과 학생들은 1960년대 말부터 이어진 반문화, 환경적, 정치적 선동의 흐름과 연결시켜 디자인 전문직의 가치를 사회적 참여라고 보았고 환경 문제에 대해 전지구적인 시스템 측면까지 다루었다. 이와 같이 아스펜에서 있었던 논의에 비하면 90년대의 그린디자인과 현재의 에코디자인 담론은 상대적으로 디자인 실행으로 위축되었다고 볼 수 있다.

4. 2. 신보수주의 도덕 담론의 강화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Harvey, 2005)의 주장은 보다 큰 도덕 논쟁의 배경을 설명했다. 하비는 오늘날 도덕담론이 점차 강화되는 현상을 짚어내고 있는데, 이른바 신보수수의자들이 도덕 가치들에 대한 동의 여론을 구축함으로써 그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인권 단체들도 이러한 담론에 쉽게 빠져들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인권기반 박애주의의 뿌리가 1970년대부터 서방국가가 개발국가의 국내 상황에 개입하는 것을 눈감아주고 지원하기까지 하는 컨센서스에 있다는 급진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하비의 관점으로 정리하자면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질서에서 도덕 공동체가 탄생했고 디자인 분야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즉, 그동안 디자인에 대한 여러 논의가 다양한 입장의 목소리를 담아왔다면 이제 도덕이라는 보편적인 가치가 강력히 주장되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묻히는 현상을 낳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5. 도덕적 접근과 도덕적 가치 평가의 쟁점

최근의 몇몇 디자인 비평에서도 위의 배경과 연계된 논점을 확인할 수 있다. 도덕적 접근이 기본적으로 단편적이라는 것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세계 경제 질서의 재편에 따른 불평등의 문제가 디자인의 윤리 문제인 것처럼 왜곡되는 것, 그리고 이것이 디자인의 내면화(internalization)로 이어진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5. 1. 제3세계를 위한 디자인에 대한 비판

2007년에 열린 ‘Design for the Other 90%’전에서 소개된 책임 있는 디자인 사례는 대부분 제3세계, 또는 남반구라고 불리는 가난한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이 점을 다룬 두 편의 비평이 주목할 만하다.

첫 번째는 베라 사체티(Sacchetti, 2011)의 비평으로,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의 디자인 비평 과정(D-Crit program) 석사 논문에서 제3세계를 위한 디자인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사체티는 ‘OLPC(The One Laptop per Child)’가 결과적으로는 교육용 저가 노트북 시장을 개척하여 서구 산업에 이익을 주었다고 평가하면서 제3세계가 디자인의 선교지로 왜곡될 오류를 지적한다.

또한 비영리 단체 ‘국경 없는 디자이너(Designer Without Borders)’의 사무국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테어즈(Stairs, 2007)는 ‘디자인 옵저버’에 기고한 글 ‘Why Design Won't Save the World?’에서 ‘Design for the Other 90%’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스테어즈는 이 전시가 사람들에게 세계 불균형을 보여줄 낯익은 통계와 선의의 특효약들(well-intentioned nostrums)로 가득하다고 평했고 크게 세 가지의 오류를 지적했다. 첫 번째는 현지 상황을 짐작하는 ‘원거리 경험(remote experience)’, 두 번째는 테크놀로지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도구주의적 디자인 사고, 마지막으로 세계 인구 주택 문제와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겠다는 거대한 생각(gargantuan thinking)이었다.

Figure 3

Images from ‘Design for the Other 90%’

5. 2. 내면화 현상

도덕성은 철학자들이 오랫동안 논쟁해온 주제로서, 좋음과 나쁨, 선과 악, 죄와 처벌 등의 개념이 거론된다. 그 가운데 니체(Nietzsche, 1968)는 도덕의 기원에 대해 급진적인 입장으로 취한다. 니체는 억압에 의해 밖으로 발산되지 않은 모든 본능이 안으로 향하는 인간의 ‘내면화’가 시작되고 그래서 양심의 가책, 즉 자신이 고통을 스스로 끌어안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도덕의 계보’에 수록된 논문 중 ‘제1논문: 선과 악, 좋음과 나쁨’에서 니체는 ‘좋은’이라는 개념과 판단의 유래를 탐구했고 습관적으로 항상 좋다고 칭송되는 행위와 공리주의적인 판단을 비판했다. 니체의 논리에 따르면, 가치 평가가 탈가치화 되어야 올바르게 이뤄지지만 사람들이 외부의 압력 때문에 결국 원한을 품는 방향을 바꾸는 것, 즉 열망을 희생한 채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현상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내면화’라는 것이고 능동적인 ‘양심의 가책’으로 발전하는 출발점이 된다.

디자인 책임론이라고 할 만한 도덕적 접근 관련 담론은 이러한 내면화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즉, 환경과 불평등의 문제를 공감하면서도 시스템 전반의 문제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적 요구에 대한 부담을 도덕적 실천으로 해소하려는 태도를 갖게 된 것이다.

5. 3. 성찰과 비판의 충돌

전문분야의 외부에서 강제되는 비판은 그 분야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므로 분야 내부의 자성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디자인 분야의 성찰적 접근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특히, 소비주의와 기업의 이윤 창출에 봉사하는 디자인의 역할을 문제 제기한 것은 70년대 전후로 구체적으로 시작되었다.

박지나(Park, 2006)는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를 소비시대의 성찰적 디자인 시기로 분류하고 이탈리아의 급진적 디자인 운동이 소비주의의 극적 부상에 따른 반발로 성장하였음을 언급했다. 이것은 실험적인 디자인 작업 논리로 설명될 수도 있으나 1976년에 런던 왕립미술학교에서 열린 ‘Design For Need’ 컨퍼런스는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한 사례가 된다. 또, 구체적인 실천을 촉구하는 ‘First Thing First’ 선언이 1964년과 2000년에 발표되기도 했다.

위의 사례가 모두 디자인 전문가들의 함의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디자인 분야 내부의 논의가 촉발되었고 성찰적인 접근이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본 논문의 3장에서 언급한 출판과 전시의 사례들은 이러한 성찰의 과정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즉, 윤리라는 기준을 세우고 마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로 디자인, 건축 등의 분야 전문가들의 각성과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자칫 그동안 진행되어온 성찰적 접근을 무력화하고 전문 분야의 복잡한 맥락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단순화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착한 디자인’이라는 현상이 확산되었고 디자인 연구에서도 이에 대한 해석과 비평의 노력을 찾기 어렵다.


6. 결론

80, 90년대까지 디자인 담론은 급진적인 것과 온건한 것, 시스템의 개혁과 유지, 사회적인 것과 탈정치적인 것이 대립하고 충돌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로 지나오는 동안 강력한 담론으로 자리 잡은 것은 결국 보편적인 인간 정서에 호소하는 도덕적인 접근이다. 이로 인해 개혁적이고 정치적인 담론은 목소리를 잃었고 심지어 디자인 활동이 그동안 비도덕적인 것으로 비판받기까지 했다. 따라서, 오늘날 디자인 담론보다는 ‘Human-Centered Design’과 같은 문화인류학적인 리서치, 서비스디자인의 논리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디자인 방법론과 제품 의미론과 같은 과학적 접근방법 보다는 사용자의 경험을 더 현실적으로 다룬다고 볼 수 있고 문화로서의 디자인, 사회적 디자인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디자인 분야 내부의 자성, 사회 참여 모색 분위기를 퇴색시키고 ‘사회적(social)’의 범위를 축소하여 비판적인 의식, 근본적인 사회 문제에 대한 이견과 주장은 유보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즉, 디자인의 내면화, 탈정치화를 촉발시켜서 디자인 실천을 제 3세계를 피상적으로 돕는 행위, 재능 기부, 착한 디자인과 같은 선행의 수준으로 제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한 사회에서 전문가가 책임감을 갖는 것과 전문가의 정당성을 도덕성에서 찾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디자인을 도덕성의 잣대로 평가하기보다는 디자인에 대한 기대가 왜곡되어온 점, 그리고 디자인 전문가 집단의 역량이 부족함이 있다면 이에 대한 비판이 더 적절하다.

디자인 윤리,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은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칫 막연한 책임을 추궁하고 복합적인 문제를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디자인에 대한 도덕적 접근이 오늘날 디자인 영역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비평적으로 바라보고, 연구와 논의를 거쳐 담론으로 발전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은 도덕적 접근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접근의 편향성을 밝혀서 다양한 접근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며 디자인 연구의 풍부한 토대를 지킨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럼에도 본 연구는 비평적 시각에서 문제점과 그 배경을 도출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 연구자가 접근하지 못한 문헌들과 디자인 실행 사례들을 면밀하게 분석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이는 향후 각론으로 실행의 문제를 실증적으로 연구할 숙제를 안고 있다.

Acknowledgments

This work was done by 2016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 Technology Research Fund.

*본 논문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내 학술연구비 지원을 받아 개제되었습니다.

Notes

Citation: Kim, S. (2016). A Critique on Moral Approaches to and Assessment of Design. Archives of Design Research, 29 (3), 189-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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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Figure 1
Change of Valuation on Design

Figure 2

Figure 2
Important Events Related to Design Ethics

Figure 3

Figure 3
Images from ‘Design for the Other 90%’

Tabl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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