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of Design Research
[ Article ]
Archives of Design Research - Vol. 29, No. 2, pp.231-243
ISSN: 1226-8046 (Print) 2288-298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May 2016
Received 11 Feb 2016 Revised 07 Mar 2016 Accepted 07 Mar 2016
DOI: https://doi.org/10.15187/adr.2016.05.29.2.231

A Study on the Cover of the Magazine, The Deep Rooted Tree: A Focus on Photography Direction

JunKay ; 전가경
Department of Visual Communication, Hongik University, Seoul, Korea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서울, 대한민국
잡지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 연구: 사진운영을 중심으로

Background This study examines South Korea’s 1970’s magazine, The Deep Rooted Tree, with a focus on the cover’s photographic design. Although the magazine is appraised as a pioneer of South Korean modern graphic design, only a few studies have been conducted. Especially, photography has played a key role in The Deep Rooted Tree. However, there is no significant research on this topic. This study focuses on the cover design and how the photography approach for message delivery and vision has been practiced by the magazine. The Deep Rooted Tree is the first magazine in South Korea to have imported an art director system. Therefore, this study hopes to look into the meaning of the art director system in a cultural and social context.

Methods Based on several documents and articles on The Deep Rooted Tree, this study applies theories of design and photography in order to examine the methodology of photography direction and its meaning.

Results A total of 53 covers were studied. First, traditional and modern Korean items were photographed. Second, these photos were boldly cropped. Third, criticism and vision were functions of the cover photography. Cropping was a useful tool that can enhance the ambiguity of the original photography, which was critical in the time of an authoritarian regime. Also, cropping opened a new vision for deserted traditional Korean values, which can lead to a new interpretation and acceptance of Korean culture and nature.

Conclusions The Deep Rooted Tree was the first magazine to successfully adopt the art director system in South Korea and the first to not use the photographic design as a plastic language. The photographic design under the art director system in itself was a social and political statement.

초록

연구배경 본 연구는 1970년대 중후반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교양지 <뿌리깊은 나무>를 살펴본다. 잡지가 국내 현대 디자인에서 점하고 있는 상징적 위상에 비해 관련 연구는 미비한 실정이다. 특히, 잡지에서 사진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연구는 부족하다. 본 연구에서는 이 잡지의 표지디자인, 그 중에서도 사진운영에 중점을 둔다. 잡지라는 매체가 시대를 포착하는 인쇄물임을 볼 때 표지는 잡지의 메시지가 응축된 상징적 공간이다. 잡지가 국내 최초로 아트디렉팅 체제를 도입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표지를 중심에 놓고 잡지의 사진운영과 그것이 지니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연구방법 <뿌리깊은 나무>와 관련된 문헌조사를 일차적으로 진행한 후, 디자인과 사진 관련 이론들을 적용시켜 잡지표지에 나타난 사진운영을 분석했다.

연구결과 총 53종에 달하는 잡지의 표지사진을 분석한 결과, 첫째, 전통과 현대를 표상하는 소재를 선정하고, 둘째, 이러한 소재의 사진들을 과감하게 크로핑했으며, 셋째, 이를 통해 비판과 비전이라는 두 가지 층위에서의 의미를 획득했음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크로핑은 유신체제의 언론 통제와 검열에서 벗어나기 위한 효과적인 비판적 도구로 기능하기도 했으며, 전통적 소재를 표지에 내세운 경우에는, 토박이 문화에 대한 재해석을 촉구하는 장치가 되기도 했다.

결론 이 연구를 통해 잡지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디자인과 사진운영의 지니는 문화사회적 의미를 짚어볼 수 있었다. 잡지의 아트디렉팅은 체제의 도입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유의미한 사회적 발언으로 기능했음을 볼 수 있었다.

Keywords:

The Deep Rooted Tree, Magazine Design, Photographic Design, Photo Editing, Han Chang-ki, 뿌리깊은 나무, 잡지디자인, 사진편집, 사진디자인, 한창기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잡지 표지의 조형적 특징과 사회문화적 의미를 살펴본 크로울리(Crowley, 2003)는 잡지 표지를 일종의 공공 무대라고 표현했다. “대부분의 아트디렉터들과 사진가들 그리고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창의성 혹은 관점을 투영시키는 하나의 공공 무대로 잡지 표지를 점령하고자 한다.” 잡지 표지는 한 시대의 드라마를 포착하거나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한다고 그는 내다보았다.

사실(fact) 위주의 뉴스를 전달하고 기록하는 신문과 달리 잡지는 보다 느슨한 발행주기를 기반으로 만든 이의 비전이 강하게 투영되는 매체이다. 그리고 비전은 대개 시각적인 장치를 통해 보다 정교하게 전달된다. 비전은 기사와 같은 내용 뿐만 아니라 잡지가 채택한 시각적 코드(code)를 통해서도 반영되기 때문이다. 잡지제호, 표지사진, 내지 레이아웃, 타이포그래피 등의 조형언어가 메시지 형성 및 전달에 기여하는 것이다. 잡지에서 표지가 잡지의 편집방향을 암시하는 상징이자 아이콘으로 기능할 수 있는 근거이다.

하트필드(Heartfield)의 <AIZ>, 독일 60년대 시대정신이 응축된 <트웬>, 대중적인 포토저널리즘의 효시를 알린 <라이프>에서부터 70년대 대중문화의 키치적 감수성을 드러낸 <선데이서울>과 매호 강렬한 표지를 선보인 <뿌리깊은 나무>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잡지에는 시각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표지 컨셉이 존재한다. 표지가 독자 혹은 불특정 다수에게 주는 잡지의 첫 인상이라는 점에서 잡지 표지의 디자인 전략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표지 디자인은 잡지의 내용이 응축되는 장이자, 시대에 대한 잡지의 시각적 해석물이라는 점에서 포스터 및 광고와 유사한 기능을 갖기도 한다.

이와 같은 표지의 기능 안에서 사진은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편집방향의 시각적 전략에 따라 사진을 다루는 방식 또한 잡지표지마다 상이하기 때문이다. 1920년대 유럽에서 촉발된 포토저널리즘에 힘입어 잡지표지에 사진이 등장하기 시작한 이후로 표지 전체를 도배하는 사진을 만나는 건 더이상 드문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라이프>, <픽쳐 포스트>, <뷰> 등은 포토저널리즘 중심의 잡지를 표방한 초기 잡지들이었고, 표지사진의 선정을 통해 잡지의 주제와 시대의 이슈를 짚어 나갔다. 일러스트레이션에 비해 보다 객관적이고, 현대적이라는 사진에 대한 인식은 사진 중심의 잡지 확산에 기여했다. 사진 사용은 20세기 초반 잡지 역사에서 시대의 진보를 뜻하는 지표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 연구는 한국 시각디자인 역사에서 현대적인 잡지디자인과 아트디렉팅으로 주목 받았던 잡지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잡지가 현대적인 사진운영을 적용시켰다는 사실을 토대로 표지에서 구현한 사진운영의 방법론과 그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크로울리(Crowley, 2003)는 잡지 표지가 “가치와 꿈 그리고 욕망과 연결된다.”고 말했다. 잡지 표지는 만든이의 비전이 투영되는 공간이면서 대중의 욕망이 만나는 공공의 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체계적인 사진운영을 적용시킨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에 나타난 발행인의 비전은 무엇인가. 그 비전은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 되었는가. 잡지의 표지는 1970년대 후반 한국 사회를 어떤 관점에서 포착하고 있었는가. 연구는 이와 같은 질문을 통해 잡지 <뿌리깊은 나무>에 나타난 사진운영의 방법론을 연구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잡지가 표방한 비전과 욕망의 실체를 질문해 보고자 한다.

논문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전개된다. 제 2장에서는 잡지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위해 잡지의 시대상과 잡지의 디자인적 특징을 짚어본다. 제 3장에서는 잡지의 사진운영, 그 중에서도 표지운영을 중심에 놓고 아트디렉팅이라는 체제에서 사진이 운영된 방식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분석결과의 의미를 도출한다.


2. <뿌리깊은 나무>의 창간과 디자인

2. 1. 잡지의 창간과 시대적 배경

1970년대 중후반 한국의 대표적인 잡지 중 하나였던 <뿌리깊은 나무>는 1976년 3월 창간되어 1980년 8월 전두환 군부정권에 의해 강제폐간되었다. 이 잡지를 두고 언론학자 강준만(Kang, 1997)은 “한국 잡지사는 <뿌리깊은 나무> 이전과 <뿌리깊은 나무> 이후로 구분된다”라고 말했으며, 유재천(Yu, 2008)은 “<뿌리깊은 나무>는 1970년대 정신사적 변혁운동의 주역이면서, 특히 문화사적 변혁운동의 주역”이라고 평했다. 잡지를 둘러싼 이러한 평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잡지가 창간되었던 시대에 대한 이해가 우선시 될 필요가 있다. 주창윤(Joo, 2007)은 “1970년대 중반에는 발전주의(근대화), 반공주의, 민족주의라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여 유신체제가 강화되었다”며, “사회적 통제와 감시를 확대했고, 민족주의는 역사와 전통의 재구성이나 한국적 민주주의의 정당화 도구로 활용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유신체제는 1972년 10월 17일 계엄령 선포 이후 12월 26일 유신헌법이 공포됨으로써 출범되었다. 유재천(Yu, 2008)은 유신체제로 인해 세 가지 ‘배제현상’이 나타났으며, 그 세가지로 정치활동의 배제, 민중의 경제 참여 배제, 언론 배제를 꼽았다. 그는 “1975년 5월 13일에 선포한 긴급조치 9호는 완벽하게 배제했다”며 “<뿌리깊은 나무>는 이같이 엄혹한 언론 배제 상황에서 창간되었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이와 같은 언론 통제 속에서 비판적 저널리즘의 계보가 이미 형성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 <사상계>를 필두로, <문학과 지성>, <창작과 비평>, <씨알의 소리> 등이 박정희 정권의 독재주의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1976년 3월에 창간된 <뿌리깊은 나무>는 이미 형성된 저항적 저널리즘 대열에 동참했다. 조상호(Cho, 1997)는 당대 저항적 저널리즘은 비단 <뿌리깊은 나무>만의 고유한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유재천(Yu, 2008)은 이러한 저항적 매체의 핵심에는 ‘민중론’이 공통의 주제로 깔려 있었다고 전한다. “비판적인 지성인들이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소외당한 사람들, 정치적, 경제적으로 배제당한 사람들의 실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들을 ‘민중’으로 개념화하였다”라며 ‘민중론’으로서의 공동의 저항노선 형성에 대해 설명했다. 강준만(Kang, 2008) 또한 이와 비슷한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존재론적 질문’은 절박한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박정희 정권은 주입식의 일방적인 정체성을 덧씌우기를 시작했다고 비판한다. 그것은 주체적인 실존에 대한 질문이 아닌, 강압적인 것이자, 국가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사상적 차원에서의 국민 동원이었다. “한창기의 뿌리깊은나무가 출현한 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그건 박정희식 ‘우리 것 모독’에 대한 소리 없는 저항이었다”라고 언급하며 <뿌리깊은 나무>를 박정희식 민족주의에 대항하는 한창기식 민족주의라고 평했다.

<뿌리깊은 나무>의 창간은 그 자체가 무겁고도 어려운 시도이자 도전이었다. 억압적인 시공간 속에 민중을 중심에 놓은 진보 성향의 비판적인 잡지를 제안한 셈이다. 창간사에는 한창기의 문제의식 충만한 비전이 반영되어 있다. 창간사인 “도랑을 파기도 하고 보를 막기도 하고”에는 한창기가 지향하는 가치관의 실체가 조목조목 기술되어 있다. 그는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그 핵심에 토박이 문화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문화와 언어의 밀접한 관계는 우리말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변화 속에서도 자연을 중시하는 생태주의적 관념을 내비쳤으며, 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나 사고력 중심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끝으로, 한국의 토양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예술에 대한 재조명의 뜻을 비쳤다(Han, 1976).

<뿌리깊은 나무>는 개인성이 억압받을 수밖에 없었던 어둠의 시대에 ‘민중’의 이름으로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고자 했다. 일면 문화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자처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면모는 비단 내용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당시 암묵적인 잡지의 관습을 깨고 나왔던 <뿌리깊은 나무>는 형식적인 면에서도 당대에 대한 도전이자 그 자체로서 신랄한 비판적 문제제기였다.

2. 2. <뿌리깊은 나무>의 디자인

“기존 잡지에서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 디자인의 강조는 뿌리깊은 나무 성공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디자인이 차지하는 요소가 과반수를 넘는 언론학자 마샬 리의 ‘열세 가지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거의 빠짐없이 적용된 뿌리깊은나무의 편집 방향은 디자인의 역할이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었다”라는 박암종(Park, 2008)의 설명은 <뿌리깊은 나무> 디자인이 잡지의 빼놓을 수 없는 ‘덕목’ 중 하나임을 알려준다.

잡지가 나왔을 당시 많은 이들은 잡지에 관해 비슷한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Figure 1]. 유재천(Yu, 2008)은 “겉보기만으로도 별나다는 인상을 줄 만했다”며 당시 잡지들과 확연하게 차이나는 <뿌리깊은 나무>의 시각적 면모를 지적했다. 판형,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등이 “별난 잡지로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편집장이었던 김형윤(Kim 2008)은 “뿌리깊은 나무는 현대 잡지 디자인의 본이 되었고, 이 배경에는 한창기의 조형에 관한 뚜렷한 기준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초기 편집장이기도 했던 윤구병(Yun, 2008)은 <뿌리깊은 나무>가 당시 잡지계에 파다했던 금기를 깨뜨렸다며 그 사례로 잡지가 도전한 금기 열여섯 가지를 열거한바 있다. 가령, 제목이 한글이고, 본문 조판이 가로쓰기이며, 국판보다 크거나, 한글전용이고, 표지에 사진, 특히 무거운 사진을 쓰면 망한다는 금기였다. 그에 따르면 열다섯가지 금기들은 당시 잡지계의 암묵적 관습이었는데 <뿌리깊은 나무>는 이러한 관습과는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꼴로 창간되었다.

<뿌리깊은 나무>의 디자인에 관하여 박암종이 쓴 두 편의 논문은 잡지의 디자인 특징을 살펴보는데 도움이 된다. 2001년도에 발표한 논문 “문화교양지 뿌리깊은 나무의 편집 및 디자인 연구”와 2008년에 발표한 “한국 출판문화의 자존심”에서 박암종은 <뿌리깊은 나무>의 편집 디자인의 특징으로 자간조절, 아트디렉션, 그리드 시스템의 도입, 최초의 출판 실명제, 서체 개발, 설화적 광고, 전문 사진기자의 운용, 참신한 시각 요소, 품격있는 삽화 그리고 표지와 화보 편집의 일관성을 꼽았다.

이 중에서도 한글 가로쓰기, 그리드 시스템 그리고 아트디렉팅은 잡지의 전체적인 인상 뿐만 아니라 운영체제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사진운영과 관련되어 눈여겨 볼 특징이 아트디렉팅이다. 여기서 <뿌리깊은 나무>의 아트디렉팅 의미에 관해 논한 김신(Kim, 2008)의 해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잡지가 창간된 70년대 중반까지 국내에서 디자이너가 잡지를 디자인한 경우는 없었다며, 디자이너가 잡지 제작에 관여하게 된 제도의 도입인 아트디렉팅이야 말로 <뿌리깊은 나무>의 성과라고 설명한다. 그는 아트디렉팅 도입이 “직제의 확립”을 넘어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해석했다.

  • “첫째, 편집자와 문선공과 같은 기술자들이 통일된 원칙 없이 각자 나름대로 책을 만드는 단계로부터 한 걸음 나아갔다.
  • 둘째, 디자이너가 책 전체의 시각적 방향과 틀, 질서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 셋째, 독자가 책을 보기 쉽게 글자의 운용과 조판 형식을 철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 넷째, 사진 이미지의 방향도 정하고 그것을 전문 사진가에게 의뢰하여 만들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아트디렉션이라는 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을 어떤 시각적 원칙을 갖고 만드느냐가 중요하다”고. 이는 잡지의 사진운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진이 글에 대한 보조장치가 아닌, 그 자체로서 독립된 시각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사진에 대한 개념적 접근이 필요하다. 아트디렉팅이 잡지의 조형적 요소를 구체적인 질서 안으로 편입시켜 내용 뿐만 아니라 시각적 일관성과 통일성을 꾀하는 토탈디자인임을 볼 때, 사진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 설정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잡지의 아트디렉터였던 이상철(Lee, 2008)은 “한(창기) 사장은 한국 잡지들은 꼭지별 편집만 있고 연속성이 없다. 전체적인 질서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었고, 그 지적에 동감했습니다”라고 회고한바 있다.

그는 한창기의 ‘시각적’ 비전에 따랐고 이를 위해 잡지의 일관성을 마련할 수 있는 그리드 시스템을 도입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리드 시스템 위에 사진운영이 ‘내장’된 아트디렉팅 체제가 세워질 수 있었다.

아트디렉팅은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의 정보 가치를 높이는 것이며, 섹션에 맞는 시각 언어를 구분하고 선별하는 것이자, 전체적인 편집 방향에 맞는 시각 요소를 짜임새 있게 배치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뿌리깊은 나무>의 사진운영전략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Figure 1

First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March 1976 issue)


3.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와 사진운영

3. 1. 아트디렉팅과 사진운영

아트디렉팅이 도입된 <뿌리깊은 나무>에서 눈여겨 봐야 할 점은 박암종이 지적한 화보운영의 일관성이다. 박암종(Park, 2008)은 잡지의 사진 중심의 섹션을 ‘이색화보’, ‘삼색화보’, ‘원색화보’로 구분한바 있다. “이러한 다양한 화보 편집의 일관성 유지로 안정감과 신선감 그리고 통일감을 줄곧 보여줄 수 있었다”는게 그의 분석이다. 사진은 당시 잡지를 접하는 많은 이들에게 <뿌리깊은 나무>의 인상을 좌우하는 주된 요소 중 하나였다. 1976년 당시 잡지의 창간호를 처음 본 김형국(Kim, 2008)은 잡지의 첫 인상이 굉장히 특이했다며, “사진도 달랐습니다. 풍경만 있는 곳에 사람들 모습을 넣은 것 자체도 새로운 시도였죠.”라고 사진에 대해 평한바 있다. 1975년도부터 한창기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사진가 강운구(Kang, 2008) 또한 <뿌리깊은 나무>의 사진 관련 운영을 보면서 “본문이 아니라 화보 편집이 기존 한국 잡지하고는 스타일과 내용을 완전히 달리 했기 때문에 주목을 많이 받은 것이죠”라고 평했다. 실제 발행인 한창기(Han, 1979)는 잡지 <뿌리깊은 나무>의 사진에 대해 각별한 애정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 애정은 ‘포토에세이’란 장르를 통해 표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한글 전용과 글다듬기가 이 땅의 지성지 편집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것임과 함께 <뿌리깊은 나무>에는 어줍잖기는 하나 ‘처음으로 시도된 것’이거나 비록 처음은 아니지만 그런 눈으로 봐 줄 만한 것이 몇 가지가 더 있다.

사진과 글을 한데 묶은, 서양 사람들이 포토 에세이라고 부른 기사를 싣는 것도 그 한 가지이다. 대체로 이 땅의 잡지들은 화보 기사에서 사진을 크게 다루고 글은 ‘사진 설명’에 그치게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눈요기를 넘어서는 지식과 정보를 주는 데에 인색하거나 사진은 좋은 종이에 찍고 글은 따로 질낮은 종이에 찍음으로써 그 연결을 무디게 만드는 전통을 지녀 왔다.”

이 대목에서 한창기는 사진언어의 독립성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종이를 언급하는 부분에선 인쇄물의 물성을 통한 메시지의 차별화를 꾀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잡지에서의 사진언어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척박했던 1970년대에 글과 상호작용하는 사진언어의 속성을 일찍이 간파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위 인용에서 수정되어야 할 점은 포토에세이가 <뿌리깊은 나무>의 고유한 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인진(Choi, 2003)이 기록한 한국매체사진의 역사에서 사진 중심의 잡지는 1948년도부터 있어왔다. <사진문화>와 <국제보도> 등은 사진을 잡지의 시각언어로 사용해왔던 국내 근대 사진잡지였다. 다만 사진운영에 대한 디자인적 이해는 부재했다. 더불어 읽는 잡지에서 보는 잡지로의 전환은 <주부생활>이 창간된 이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여성지의 경우, 국판의 시사교양지와 차별되는 원색화보의 운영은 시각 중심의 편집체제를 잘 드러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뿌리깊은 나무>의 사진운영의 의미는 포토에세이라는 형식의 도입이 아니라 방법론이 되어야 한다. 정리하건데, <뿌리깊은 나무> 화보운영에서 명확하게 구분해야 할 사실은, ‘포토에세이’라는 장르 도입의 특이성이 아니라, 이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했는가의 방법론적 측면이다. 사전계획을 동반한 사진촬영, 기사별로 차별화된 사진촬영과 프리랜서 사진가 도입을 통한 다양한 시각의 사진 확보 등이 그 사례들이다. 구체적으로는 Table 1에서 <뿌리깊은 나무>의 사진운영을 일별하여 살펴볼 수 있다.

Photograpy Direction of The Deep Rooted Tree based on the magazine sections

3. 2. 표지사진의 운영방식

3. 2. 1. 표지의 조형적 특징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는 단단하고 정교한 시각적 질서의 결과였다. 1973년도부터 한 해에 한번씩 세 번의 창간준비를 했기 때문에 창간호의 완성도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디자이너 이상철(Lee, 대면 인터뷰, 2016년 1월 28일)은 창간준비호들과 실제 창간호의 결과물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잡지 제호의 경우, 한창기와 이상철 사이에 오간 오랜 기간의 고민과 집착 그리고 대화가 낳은 것이었다. 창간사의 정신이 명징하게 시각화된 사례라고 볼 수 있는 잡지 제호는 훈민정음에서 영감을 받아 진행했는데, 강운구(Kang, 2008)는 “뿌리깊은 나무 창간호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모습이었어요. 제목 자체도 강렬한 데다가 로고가 인상적으로 단정했죠. 그때까지 붓글씨체 제목 잡지들과 차별되는 아주 반듯한 모양새”라며 당시의 인상을 전한다.

Figure 2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September 1976 issue)

강운구의 평에 견주어 볼 때 <뿌리깊은 나무>는 제호부터가 남달랐던 잡지였고, 이는 잡지의 현대적인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표지사진은 여기서 잡지의 인상을 좌우하는 요소가 되었다.

중앙정렬의 안정감 있는 레이아웃을 기반으로 상단에는 제호와 발행년월이, 중하단에 걸쳐서는 사진이 앉혀져 있다. 기사제목이 표지에 도배되다시피 한 여타 다른 잡지들과는 극적으로 대비되는 표지였다. 별도로 디자인된 한글 제호와 잡지명 뿐만 아니라 순한글로 표기되었던 발행년월은 숫자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낯선 이미지였다. 잡지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보편적인 장치들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에 적용된 접근법은 대중에겐 불친절과 신선함이라는 양가적 반응을 이끌어 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이상철(Lee, 2016)에 따르면 창간준비 작업을 3년 동안 해왔던 자신은 잡지가 창간될 무렵에는 관여하지 못하고 첫 호의 윤명로, 두 번째 호의 임희주가 맡은 후에야 1976년 9월호[Figure 2]부터 아트디렉팅의 키를 쥐기 시작했다. 복귀라 할 수 있는 그 당시의 정황은 잡지의 몇 가지 작은 변화들을 가져왔다. 1976년 9월호부터 표지의 제호가 커졌다. 원색화보의 포토에세이 또한 보다 안정감 있고 세련된 레이아웃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상철은 잡지의 조형적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미세한 조정을 감행했고, 이는 보다 정교한 레이아웃과 눈에 띄는 섹션의 차별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표지의 무게감있는 중앙정렬과 사진 중심의 운영은 창간부터 폐간까지 변하지 않았던 잡지의 색이었고, 이는 잡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아트디렉팅의 당연한 수순으로서 표지사진은 운영되었다. 이남수(Lee, 2001)는 <뿌리깊은 나무>가 기존 표지스타일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나온 잡지였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잡지들이 일본 양식을 따라하거나 유화를 사용하고, 여성지의 경우 인기 있는 여배우의 이미지를 실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잡지 환경에서 사진에 관한 뚜렷한 계획안을 탑재시킨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는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표지사진 선정 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표지제작은 잡지 전체를 만드는 노력과 같이 진행되었다. 원색화보로 정해진 주제는 그 달치 촬영 진행과 아울러 글쓴이와 편집장, 촬영자가 숙의하여 최종 결정한 후에 정해진 결과에 따라 표지의 사진으로 선정되었다. 창간호의 원색화보는 ‘농부와 땅’이라는 주제였다.”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사진은 신중한 편집회의의 결과이자 원색화보와의 연동에서 비롯된 시각물이었다. 잡지 정체성과 등가물이라는 점에서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는 잡지의 주제를 선보이는 무대였다.

잡지표지의 조형적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맥리언(McLean, 1969)은 독자와 표지간의 시지각적 거리 감각 그리고 타이포그래피의 운영 등이 참조해야 할 것이라고 기술했다. 그는 표지사진의 선정에서 고려해야 할 것으로 표지와 독자간의 거리감을 언급하며, 공공의 장소에 놓인 잡지표지가 주목 받기 위해서는 뚜렷한 디자인 컨셉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단순함 또한 좋은 디자인의 덕목이라고 말했는데, <뿌리깊은 나무>의 간명한 표지디자인은 맥리언의 표지 기준에 부합한 셈이다. 나아가 그는 약간의 기이함과 낯설음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기를 깨고 나온 <뿌리깊은 나무>는 대중의 잡지에 대한 인식을 흔들었다. 잡지를 지각하는 방식의 익숙함에 조형적 반기를 들었던 <뿌리깊은 나무>는 그 자체가 현대성의 새로운 표출이자, 작은 스펙타클이다.

3. 2. 2. 전통과 현대의 소재 선정과 크로핑의 방법론

<뿌리깊은 나무>에 적용된 표지사진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소재의 선정이다. 표지사진의 소재가 잡지의 주제를 일차적으로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사진의 소재를 살펴보는 것은 잡지가 표방하는 주제를 살펴보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1960년대 독일 잡지 <트웬>의 경우, 잡지가 여성해방, 여행, 락과 재즈 등의 청년 담론을 지향했던 만큼 그에 부합하는 표지사진을 선택했는데 주제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젊은 여성이 매 호 등장했다. 표지사진이 잡지의 방향성을 가리키는 일종의 지표가 된다고 볼 때 <뿌리깊은 나무> 표지사진에서 소재 선정은 대중의 잡지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그 자체가 잡지의 표정임을 볼 때 신중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Figure 3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July 1978 issue)

Figure 4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April 1979 issue)

<뿌리깊은 나무> 표지에 사용된 사진은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소재가 대부분이었다. 잡지 판권면이나 차례면에 설명문을 달아 놓아 사진의 배경과 소재에 대한 간략한 이해를 돕는데, 이를 근거로 표지사진에 나타난 소재들을 보면 전통 석상(76년 4월호, 78년 7월호, 79년 7월호, 80년 8월호)[Figure 3]에서부터 한국의 자연(76년 8월호, 76년 9월호, 77년 8월호, 78년 3월호, 78년 8월호, 79년 4월호, 79년 9월호)[Figure 4]까지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연상시키는 소재가 다양하게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사진선정의 이와 같은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창간호라고 볼 수 있다. 창간호의 이미지는 크로핑을 통해 강렬한 상징성을 내뿜는다. 사진설명은 다음과 같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상심리에 사는 예순다섯살의 농부 김 은일 씨는 표지에서 보이는 대로 일과 햇볕과 추위로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쌀을 받들어올리면서 "지난해에 농사가 잘 되는 잘 되었는데..."하고 말문을 열었으나 좀처럼 뒷 말을 잇지 못했다.”

Figure 5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May 1976 issue)

Figure 6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August 1976 issue)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두 손”이라는 사진 설명대로 표지사진은 농부의 거친 피부질감을 전달한다. 그 손에 들려 있는 수북한 쌀은 제호 “뿌리깊은 나무”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농부의 손에 들린 쌀 사진과 “뿌리깊은 나무”라는 제목의 일치는 이 잡지가 기반으로 하는 것이 현대가 아닌 전통에 대한 애착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창간사에서도 ‘토박이 문화’와 우리말 그리고 한국의 자연환경에 대한 언급에서 확인되었던 바이다. 수몰 지구의 디딤돌(76년 5월호)[Figure 5]과 연꽃 봉오리(76년 8월호)[Figure 6]의 경우, <뿌리깊은 나무>가 지향하는 생태주의적 세계관이 반영된 표지이기도 하다.

한편, <뿌리깊은 나무>는 시사에도 민감했다. 김형국(Kim, 2008)은 한창기가 잡지를 “엔터테이닝이나 타임킬링용이 아니라 신문적으로/시시비비 형으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한 사장도 ‘비비’형의 사회비평적인 시각으로 잡지를 만든 분입니다. 필자도 대개 그런 취향으로 선택했고요. -중략- 농촌 사정이라든지 현장형의 기사를 많이 실으려도 했어요”라는 그의 설명에서 시사와 비평에 예민했던 잡지의 성격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취지의 반영으로 잡지는 한국의 전통적인 소재 외에 현대적인 생활방식을 반추하는 사진을 동원하기도 했다.

<뿌리깊은 나무>는 국수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이다란 비판에서 자유롭진 않았다. 하지만 한창기의 창간사를 자세하게 읽어보면 지역성을 토대로 한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다원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여기서 보다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아야 할 사실은 전통적이거나 한국적인 소재의 선정이 곧 국수주의나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같은 뜻이 될 순 없다는 점이다. 현대에 대한 비평적 사유와 대안의 한 방법론으서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사진의 소재는 선정되고 운영되었다. 이는 사진을 어떻게 다루었는가란 운영의 측면을 고찰하면 드러난다.

사진 속 소재들은 크로핑이라는 과감한 조형적 툴을 통해 모호한 이미지가 된다. 표지사진이 전통적 소재를 다수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소재의 진부함이나 익숙함 보다는 참신함을 느끼는 이유는 전통적 소재에 대한 조형적 재해석이라는 의도에서 크로핑의 방법론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이상철(Lee, 2016)에 따르면 이러한 크로핑이 사전에 독자의 시지각을 인식하여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크로핑은 특별히 계획되었다기 보다는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고자 했던 이상철의 ‘직관’의 결과였다. 하지만 이는 탁월한 시지각적 효과를 낳았다. 사진들은 모두 한국의 익숙한 소재들이되 근접촬영 혹은 크로핑을 적용하여 해당 사물의 질감과 패턴이 정밀하게 드러나도록 디자인되었다.

사진가 쇼(Shore, 1998)의 프레임에 대한 설명이 크로핑의 효과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사진은 프레임에 갇힌 혹은 그것을 벗어난 예술이다. 프레임은 그만큼 사진의 전제이자 조건이다. 쇼는 "좋은 프레임을 결정하는 것은 프레임에 의해 그 대상, 사람, 사물들을 강조하는 행위이다. 프레임은 그것들을 고정시켜 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한다"라고 말하며, 미적 행위로서의 프레이밍을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의식의 영역 속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사물의 다른 면모가 강조되거나 부상하는 효과가 있다. 피사체는 일상의 구상에서 크로핑이라는 프레이밍을 통해 추상의 영역으로 넘어온다. 사진은 궁극엔 다른 ‘사진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프레임 안에서 새로운 의미 작용이 일어나면서, 사진적 테두리 안에서 피사체는 다른 ‘사물’로 환생하게 되는 것이다. 대개 죽음과 시간의 정지로서 이해되는 사진이지만, 그 안에 포획된 사진의 대상은 오히려 편집되고 디자인되면서 다른 의미를 갖고 연명하게 된다. 클로즈업은 이러한 효과를 두드러지게 한다.

이는 영화에서 말하는 클로즈업 및 헐버트(Hurlburt, 1983)가 <사진디자인>에서 기술하는 확대기의 공헌과 연결된다. 베르토프(Vertov)의 ‘키노 아이(Kino-eye)’와 모호이너지(Moholy-Nagy)의 ‘뉴 비전(New Vision)’은 모두 카메라의 개입을 통한 일상적인 인식체계의 붕괴를 핵심으로 한다. 육안이 포착하지 못하는 세계를 카메라가 담아내면 클로즈업이나 크로핑과 같은 프레이밍의 미학이 반영되면서 대상과 보는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 조성된다. 피넬(Pinel, 2001)이 <몽타주>에서 앙드레 말로의 말을 인용했듯이 “관객과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헐버트(Hurlburt, 1983)가 말하는 확대기의 성과와도 동일한 효과다. “담장이나 덧문, 배선도형, 그리고 많은 평범한 것들은 본래 그래픽적인 요소를 가진 이미지들로 이것들은 사진술의 새로운 물결에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확대기 덕분에 궁극엔 “인간의 시각으로 볼 수 없었던 리얼리티의 세계를 열어 보였고 이 과정 속에서 그들은 어떤 놀랄만한 그래픽적 효과를 창조했다”고 기술했다.

크로핑이라는 사진 디자인 방법은 잡지에서 개념적인 사진을 연출하는데 효과적이었다. 피사체의 추상화를 통해 사진은 상징성을 획득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 이는 시대에 대한 은유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상적인 대상을 낯설게 보여주는 크로핑은 피사체를 대상이 놓여 있는 환경으로부터 탈맥락화시킨다. 여기서 버거(Berger, 1969)의 포토몽타주에 관한 한 편의 글이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사진을 이해하는 흥미로운 단서가 된다.

“하지만 이 대상들이 옮겨졌기 때문에, 그것들이 일상적으로 속해 있던 연속성이라는 것이 깨졌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 생각지 못했던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재배치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이 일상적으로 전하던 연속적 메제시가 임의적인 것이었음을 의식하게 된다. 그 대상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위장 혹은 변장, 제대로 된 자리에 너무 잘 맞아 들어가 외양 자체와 구분이 불가능하게 되어 버린 그 위장과 변장이, 갑자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외양이 순식간에 우리를 어떻게 속일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버거는 여기서 사진술을 통해 의미 전도가 맥락에 따라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포토몽타주의 경우, 익숙한 대상이 배경으로부터 도려져 나와 새로운 사진들과의 이질적인 재배치로 인해 대상의 ‘사물성’이 보다 극대화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사물이 본래 지녔던 ‘일상적’ 의미를 의심하게 된다고 보았다.

<뿌리깊은 나무> 또한 크로핑과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클로즈업이라는 사진편집으로 일상의 사물을 표지 안에서 낯선 각도로 반영하고 있다. 포토몽타주와는 다르게 피사체의 즉물적인 사물성이 드러나기 보다는 추상성이 강조된다. 하지만 ‘의미의 전도’가 일어나는 것은 동일하다. 포토몽타주가 사물의 윤곽선과 사물로서의 의미론적 경계를 부각시킨다면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사진들은 사물의 윤곽들을 감춰버린다. 대신에 사물의 마이크로한 세계를 열어 놓는다. 프레임 안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사물의 세계이다. 그것은 한창기식 ‘뉴 비전’인 것이다.


4.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디자인과 사진운영의 의미

매체사진의 표상과 재현의 문제를 다각도로 다뤘던 문화이론가 홀(Hall, 1997)은 전후시대 휴머니스트 사진에 드러난 프랑스적인 것에 대해 논한 바 있다. 제 아무리 기록을 목표로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고 할지어도 ‘주관적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홀의 주장이다. “기록물의 정보적 가치는 제작자의 관점을 통해 매개된다. 주관적 해석이라는 관점은 반영적이나 의도적이라는 범주 사이에 존재한다. 신문이든, 책이든, 잡지이든 거기에 실리는 포토저널리즘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해석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건이나 대상을 카메라로 포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적 해석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사진들은) 즉 보이지 않는 것, 알려지지 않는 것, 잊혀진 것들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중략- 일반적으로 ‘사진:객관성=글:편향성’이라는 공식이 통용되지만 주관적 해석의 관점에서는 사진이 글 만큼이나 편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듯 사진이 책이나 신문 혹은 잡지와 같은 인쇄된 지면에 놓인다는 것은 의미의 쟁탈이 일어나는 헤게모니의 장 안으로 삽입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진으로 대변되는 시각이 만들어진 특정 관점의 결정체라면 잡지 <뿌리깊은 나무>는 당시 인정 받는 사업가이자 출판인인 한창기의 비전이 만들어낸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주은우(Chu, 2003)는 시각의 속성을 논하며, 시각 또한 궁극엔 사회적 구조물이자 그 관점들의 ‘편향’된 여러 총체 중 하나임을 말했다. 이는 각 사회 그리고 문화권에 따라 사람이 대상을 바라는 ‘방식’이 다를 수 있음을 내포한다. 말하자면 ‘시각 양식’이란 역사적, 문화적으로 형성되어 개인들의 시각을 일정하게 규정하는 사회적인 ‘보는 방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사진은 한 발행인이 1970년대 후반 한국 사회를 보는 방식을 드러내는 수단 중 하나였다.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사진은 첫째, 현대적인 제호디자인 및 표지 레이아웃의 조화 둘째, 전통과 현대를 오가는 소재 선정 셋째, 크로핑이라는 사진편집을 통해 1970년대 중후반 한국 사회에 대한 문화비평과 체제비판을 전개했고, 동시에 대안을 보여줬다.

여기서 크로핑은 두 가지 효과를 낳았는데, 하나가 암시와 은유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적인 한국 문화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전자의 경우, 검열이 매체의 독립성을 방해하는 시대적 정황 속에서 크로핑은 직접적 발언을 숨길 수 있는 교묘한 장치였다.

Figure 7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June~July 1980 combined issue)

Figure 8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April 1978 issue)

4.19혁명을 개념적 이미지로 처리한 77년도 4월호 표지[Figure 7]와 광주 5.18에 대한 강렬한 서정을 자아내는 80년 6~7월호 합병호[Figure 8]가 대표적이다. 4.19 혁명의 목소리는 서울 시청의 점등된 시계의 외형 안으로 숨어 들어갔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발언은 광주와는 전혀 상관없는 국립묘지에서 촬영한 어느 여인이 흰 손수건 이미지로 은닉해 있다. 이남수(Lee, 대면인터뷰, 2016년 1월 6일)에 따르면 이러한 사진선정과 운영은 연명하기 위해 잡지가 택할 수밖에 없었던 생존방식이었다. 이는 시대적 정황이 대상을 읽는데 개입함을 보여준다. 5·18 광주사태가 아니었더라면 <뿌리깊은 나무>의 하얀 손수건은 다른 층에서 해석될 수 있었다. 기표와 기의 사이의 미끄러짐은 시대가 조율하기 나름이며, 그 사이에 대중의 간섭이 끼어들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잡지 표지는 잡지 발행인과 대중 그리고 시대의 이데올로기 사이의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잡지는 시대정신과 흐름을 육감적으로 포착하는 매체이다. 독일 제3제국 시절에 히틀러는 잡지를 동원해 프로파간다를 구현해 나갔다. 메이저 잡지와 별개로 하위문화에서 잡지는 대항적 패거리 문화로 자리잡기도 한다. 잡지는 집단 혹은 개인의 활자화되고 시각화된 목소리이다. 이런 관계로 잡지표지는 그 잡지의 내면화된 동기가 가장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잡지표지와 잡지본문 간의 심리적 그리고 물리적 거리감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성취하는가에 따라 잡지표지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잡지표지는 넓은 의미에서는 잡지 기조, 좁은 의미에서는 내용을 재해석한 독립적이면서 종속적인 이중적 캔버스이다.

이러한 캔버스에서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사진은 체제 비판과 비전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곳이자,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잡지 수사학이 전개된 장이기도 했다. <뿌리깊은 나무>의 표지와 그 안에서 적용된 사진 운영은 시대의 명민함과 긴장을 유지한 채 발행인 한창기가 던지는 시각적인 목소리였다.

Notes

Citation : Jun, Kay. (2016). A Study on the Cover of the Magazine, The Deep Rooted Tree: A Focus on Photography Direction. Archives of Design Research, 29(2), 231-243.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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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Figure 1
First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March 1976 issue)

Figure 2

Figure 2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September 1976 issue)

Figure 3

Figure 3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July 1978 issue)

Figure 4

Figure 4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April 1979 issue)

Figure 5

Figure 5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May 1976 issue)

Figure 6

Figure 6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August 1976 issue)

Figure 7

Figure 7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June~July 1980 combined issue)

Figure 8

Figure 8
Cover of The Deep Rooted Tree (April 1978 issue)

Table 1.

Photograpy Direction of The Deep Rooted Tree based on the magazine sections

연재 코너 성격 사진운영방식
표지 특집기사를 압축하여 보여준다. 잡지 제호의 크기 및 레이아웃이 1976년 9월호부터 변했다. 제호와 사진과의 조화가 잡지의 명확한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았다. 과감한 크로핑이 돋보인다. 특히, 전통적인 패턴 등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으로 한국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만한 소재들이 자주 등장한다. 간혹 개념적인 사진들을 동원하여 메시지의 전달을 극대화시킨 경우도 있다.
원색 화보 사진에세이가 적용된 코너. 매달 사라져가는 한국의 전통 문화, 새롭게 형성되는 도시 문화 그리고 여타 외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비교문화적 관점이 돋보이는 주제들이 많았다. 당대 문화에 대한 비평적 어조가 강하게 드러난 코너이다.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4~5 펼침면에 걸친, 긴 호흡의 포토에세이다. 사진은 그리드에 입각하여 배치되었다. 70 년대 한국문화를 스트레이트하게 보여주는 사진들이 대부분이며, 주관적이기 보다는 객관적 다큐멘터리 사진에 가깝다. 이남수, 주명덕, 그레고리 와이스 등의 사진가들이 참여했다.
그는 이렇게 산다 (삼색화보)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유명인사들의 집을 찾아가 그들의 일상을 취재하는 코너다. 초기에는 흑백화보였으나, 후에는 삼색화보로 변경되었다 김수근, 이어령, 천경자 등 저명한 인사들의 속살을 드러내는 컨셉으로, 초상사진과 객관적 다큐멘터리 사진 유형이 주로 이용되었다. 장표지 역할을 하는 초상사진이 인상적이다. 페이지 레이아웃은 원색화보의 포토에세이의 연장선 상에 서있다. 그리드 중심의 사진배치가 이 코너에서도 눈에 띈다.
볼 만한 꼴불견 기사에 삽입된 형식의 상자기사이다. 문화현상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를 하나의 사진과 단문의 캡션으로 풀어나간 독특한 코너 중 하나이다. 다른 텍스트에 비해 자조적인 어조가 강하다. 대부분 한창기의 언어관이 강하게 투영되었다고 볼 수 있는 기사들이다. 해상도가 낮은 흑백 사진 한장에 단문의 캡션이 달린다. 일상에서 ‘꼴불견’으로 판단되는 것을 크로핑하거나 근접촬영하여 보여준다. 사진과 텍스트(캡션)의 관계를 논의해 볼 수 있는 기사 중 하나다.
민중의 유산 표지와 함께 <뿌리깊은 나무>의 비전을 가장 잘 드러내는 코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비판적 저널리즘의 코드로서 당시 70년대 민중론이 반영된 코너이다. 토박이 문화를 강조한 한창기의 우리 문화 복원 운동의 일환이기도 했던 이 코너는, 유산으로 선정된 사물들을 근접촬영 및 아웃라인을 도려내는 방식을 통해 사물의 즉물성을 극화시켰다. 원색화보와 삼색화보의 객관적 다큐멘터리 사진과는 대척점에 있는데, 사진을 통해 사물의 상징성을 구현시키려는 사진적 전략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