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of Design Research
[ Article ]
Archives of Design Research - Vol. 26, No. 3, pp.97-117
ISSN: 1226-8046 (Print) 2288-298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Aug 2013
Received 20 Jun 2013 Revised 15 Jul 2013 Accepted 15 Jul 2013
DOI: https://doi.org/10.15187/adr.2013.08.26.3.97

Fashion Photography and Hommage

LeeSe-lee
Ewha Fashion Design Research Institute, Ewha Womans University, Seoul, Korea
패션사진과 오마주

Correspondence to: Se-lee Lee ciaoselee@gmail.com

Background Since hommage, a genre in which awe for a maestro is the creative motive, appeared as a characteristic in the film arts field, it has been considered as one of the leading creative methods and has established itself in various fields of modern art. Hommage can also be found in fashion photography, which has a century-long history. This study analyzes the specific formats and significances of fashion photography which has paid hommage to art, in order to examine current fashion photography and suggest directions for its future development.

Methods This study took art history, especially fashion photographs which show hommage to the maestros in the history of the painting of art, as the major study object. It collected relevant examples of fashion photographs taken in hommage from the mid- 20th century until recently, and analyzed them by comparing them with the originals of the hommage. The formats of those fashion photographs were classified into different categories and then examined in terms of intrinsic significances in modern art.

Results Based on the fact that hommage is a modern reinterpretation of the existing creations with awe, this study classified the collected fashion photographs into the following: those reinterpreting the originals by reflecting the structure of the subject and its background, those performing sensory reinterpretation focused on color and texture, and those reinterpreting the fashion style of the models. Hommage of the fashion photographs intends to creatively extend the life of classic works of art, and has acted as an intermediary between industry and modern art and thus become a powerful tool that helps attract the public’s interest in the fashion photographs. On the other hand, it was confirmed that in this new age of change hommage has extended and risen to a new technique of expression.

Conclusion Hommage, which succeeds the originals and seeks differentiation, will become an important technique of fashion photographic expression in the fashion industry that pursues differences and changes and in the light of progressing human reason and technology, it is expected to develop in various ways.

초록

연구배경 거장에 대한 외경심이 창작의 동기가 되는 오마주는 영화예술 분야에서 부각된 이래 주요한 창작 방법의 하나로 주목받으며 현대의 다양한 창작 분야 내에서 굳게 자리잡고 있다. 이는 1세기의 역사를 갖는 패션사진 속에서도 확실한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예술에 대한 오마주를 품어왔던 패션사진의 구체적 형식과 의미를 분석함으로써 패션사진 분야의 현재와 발전적 미래를 조망하는데 의의를 갖는다.

연구방법 본 연구에서는 미술사, 특히 회화사의 거장을 향한 오마주가 드러나는 패션사진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아 20세기 중반부터 최근까지의 패션사진 중 해당 사례를 수집하였고 이를 오마주 원본 대상과 비교하며 분석하였다. 외형적 형식 분류과정을 통해서 오마주 기법이 사용된 패션사진의 형식을 유형별로 분류하였고 내재적인 관점에서 갖는 오마주 기법의 현대적 의미를 고찰하는데 주력하였다.

연구결과 오마주가 경의의 뜻을 품고 기존의 창작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라는 점에 근거하여, 수집된 패션사진의 외형상 분류를 시도한 결과, 피사체와 배경의 구조를 반영함으로써 재해석한 경우, 색채와 질감에 중점을 둔 감각적 재해석의 경우, 그리고 모델의 패션스타일을 재해석한 경우로 분류가 가능하였다. 패션사진의 오마주는 고전 예술작품이 갖고 있는 생명을 창조적으로 잇고자 하며, 산업과 현대예술 양자 간의 매개 역할이 되어 대중의 시선을 끄는 강력한 이미지 역할을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한편, 변화하는 새 시대의 오마주는 새로운 표현기법으로 확장, 상승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결론 진본을 계승하면서도 차이를 꿈꾸게 하는 오마주는 숙명적으로 차이와 변화를 지향하는 패션산업에서 패션사진의 표현기법으로서 앞으로도 비중있게 나타날 것이며, 진보하는 인간의 사유와 기술에 비춰볼 때 그 다양한 전개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Keywords:

Fashion Photography, Editorial, Styling, Hommage, 패션사진, 에디토리얼, 스타일링, 오마주

1. 서론

패션사진이 패션잡지에서 한 영역을 차지하기 시작한 지 이제 100년에 이른다. 뉴홀(Newhall, 1984)의 '사진의 역사'에 의하면, 1913년 미국 보그(Vogue)에드 메이어(Adolph de Meyer)가 촬영한 패션 사진이 게재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애스퍼스(Aspers, 2010)의 연구 역시 1920년대 이미 보그에 기용되어 패션사진을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 시킨 작가들- 회닝겐 휀(George Hoyningen Huene), 호스트(Horst P. Horst), 만레이(Man Ray), 어윈 블루멘펠트(Erwin Blumenfeld), 세실 비튼(Cecil Beaton) 등 -을 소개한 바 있다.

고금을 막론하고 패션 포토그래퍼들은 최대한 미학적 관점에서의 자유와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는 매거진과 일하면서 그들의 창작 영역을 인정받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며, 세계의 많은 작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통해 고유의 감성을 표출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이와 같은 작가들의 다양한 시도 중에는 옛 회화 걸작품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렇게 도출된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거장에 대한 외경심이 창작의 동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오마주(hommage)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 있게 한다.

오늘날 오마주는 현대의 트렌드 키워드로 자주 등장할 만큼 중요하게 부각되는 용어 중 하나이다. 오마주는 주로 영화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알려져 있는데,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를 뜻하는 말이다. 보통 특정 영화인의 재능, 업적을 기리면서 감명 깊은 주요 장면, 대사 등을 본떠 표현하는 행위를 가리켜 사용되었으나 어느덧 영상예술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창작 분야에서 하나의 기법으로 자리매김을 하였고, 패션의 분야에서 역시 중요한 키워드가 아닐 수 없다. 박은경(Park, 2011)은 오마주가 다른 작품을 단순히 언급한 것이나 다른 작품들의 요소를 단순 나열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용(allusion) 및 패스티시(pastiche)와 구분되며, 원작에 대한 풍자, 익살, 조롱의 결과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패러디(parody)와 뚜렷이 구분된다고 정리한 바 있다. 최근의 차용(appropriation) 역시 주로 도전과 전복의 의도를 보이는 제작방법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오마주와 큰 차이를 갖는다.

본 연구는 예술에 대한 경의, 오마주를 품어왔던 패션의 종적 중에서도 특히 1세기 역사를 갖는 패션사진의 예술에 대한 오마주를 살펴본다. 이에 미술사, 특히 회화사의 거장을 향한 오마주에 창작의 초점을 맞춘 패션사진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패션사진은 에디토리얼 패션사진과 브랜드 캠페인 사진 모두를 포함하였으며, 에디토리얼 패션사진이 새로운 영역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20세기 중반부터 최근까지의 패션사진 중 예술작품의 오마주 기법이 적용된 사례를 수집하였고, 이를 오마주 원본 대상과 비교하며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창작 과정에서 오마주 기법이 사용된 패션사진의 형식을 유형별로 분류하였고 대표작을 중심으로 분류의 특징을 서술하고자 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오마주 기법이 사용된 패션사진이 갖는 현대적 의미에 대해 밝혀보고자 한다.


2. 패션과 예술, 오마주

세계의 많은 패션디자이너들은 예술에 대한 지향을 보여왔다. 크레인(Crane, 2008)은 패션디자인 분야가 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특히 많은 디자이너들이 종종 예술작품으로부터 디자인의 원형을 가져오고 있다고 하였다. 지속적으로 많은 화가에 대한 오마주 컬렉션을 펼쳤던 디자이너로 유명한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은 1979년 F/W 컬렉션 ‘Hommage to Picasso and Diaghilev Collection’에 대한 보그 인터뷰를 통해 피카소의 천재성에 대한 감탄을 표하면서 ‘예술적 즐거움에 취했다’는 표현으로 디자인의 과정을 설명하기도 했고, 1988년 S/S ‘Cubist and Hommage to Braque Collection’ 컬렉션 이후 뉴욕타임즈는 ‘패션과 예술의 결합이야말로 입생로랑의 승리’라는 찬사를 보냈다. 예술로부터 원천을 찾는 패션디자인의 오마주 사례는 다양하게, 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가장 최근의 사례가 필요하다면 1950년대 앤디워홀(Andy Warhol)의 일러스트레이션이 그대로 적용된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의 2013년 F/W 컬렉션을 떠올릴 수 있다.

패션분야 내에서 예술에 대한 지향이 드러나는 예는 비단 디자인뿐만이 아니다. 본 연구에서 주요대상이 되고 있는 패션사진과 관련해서 패션잡지 분야를 살펴보면, 쇨(Söll, 2009)은 회화, 조각 등의 많은 예술작품들이 이미 1930년대부터 패션잡지에 등장해왔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예술작품이 패션잡지 안에 등장하고 패션과 관계 맺는 현상을 분석함에 있어 그 예술작품이 단순히 부수적인 장식물이 아님을 밝히고자 했는데, 1951년 3월 미국 보그에 수록된 세실 비튼의 패션사진에서 작가가 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작품을 사진 전체의 바탕으로 사용했는가를 거론하면서 패션과 예술작품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미국의 대가 폴록의 드립페인팅 작품이 공간의 벽을 가득 채우고 있고 디올의 뉴룩(New Look) 풍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델이 캔버스로부터 매우 가깝게 서있는 이 사진 시리즈에 대해서, 쇨은 폴록의 작품이 단순히 벽을 채우는 고품격의 배경이 아니며 모델과의 관계에서 시각적 요소의 다채로운 조화를 이루거나 유럽의 감성과 미국적 독창성 간의 통합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가 되었다고 해석하였다.(Figure 1)

Figure 1

Irene and Sophie. Photo by Cecil Beaton. American Vogue from March 1951.

에디토리얼 패션사진이 패션잡지에서 영역을 다지는 동안 예술작품이 패션사진 안에서 갖는 역할도 주변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예술작품이 패션사진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며 그 존재를 드러내는 사례는 20세기 중반의 패션사진을 통해서도 일찍이 확인할 수 있다. 노먼 파킨슨(Norman Parkinson)은 1959년 11월 보그에 판 동언(Kees van Dongen)의 여인 초상에 대한 오마주 사진을 게재하였다.(Figure 2)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색채표현을 했던 네덜란드 태생의 화가, 판 동언은 파리의 거리, 카페, 무도장 등이나 많은 저명인사 및 귀부인 들을 자주 그렸으며 개성있는 독특한 스타일로 날씬하고 세련된 여성 표현을 하는데 정평이 나있다. 파킨슨의 사진 속에는 스타일링 포인트가 되는 붉은 베레모와 입술, 이에 대비를 이루는 두꺼운 아이메이크업과 짧고 검은 헤어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되었고, 모델의 포즈와 시선처리까지 동일하다. 평면적이면서도 정교한 배경에 비해 흐릿하게 처리된 모델의 윤곽은 판 동언의 그림에서 뚜렷이 보이는 굵고 거친 터치를 닮고 있다.

‘After van Dongen’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파킨슨의 사진은 배경구성, 모델의 패션스타일링, 포즈, 화면의 색채, 배치 구도 등 모든 면에서 판 동언의 회화작품과 쌍둥이처럼 꼭 닮은꼴을 보이고 있다. 반세기 이상이 지난 오늘날까지 패션사진에 나타난 오마주의 사례는 이처럼 닮은꼴과 같은 형식을 비롯해서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그간 세계적 포토그래퍼의 오마주 작품들을 통해 그 형식에 대한 분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Figure 2

Adele Collins in ‘After van Dongen’. Photo by Norman Parkinson. Vogue November 1959. & Kees van Dongen’s ‘The Corn Poppy’. 1919.


3. 패션사진의 오마주 형식

관련 연구를 통해 오마주에 대한 유형 분류 결과를 살펴보면, 한성수(Han, 2011)는 오마주 기법이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유형별로 분석하면 메시지 전달 과정에서 오마주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대체, 삽입, 재구성, 재해석의 기법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하였다. 패션 디자인에 표현된 다양한 오마주 사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예술가에 대한 오마주를 주요한 한 가지로 분류한 바 있는 박은경(Park, 2011)은 패션디자인의 오마주 표현형식으로 재해석 형식, 삽입 형식, 포괄적 형식, 상징 형식 등이 사용되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패션사진에 나타난 오마주를 대상으로 한 본 연구는 오마주가 경의의 뜻을 품고 기존의 창작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라는 점에 근거하여 외형적 형식 분류를 시도한 결과, 피사체와 배경의 구조를 반영함으로써 재해석한 경우, 색채나 질감에 중점을 둔 감각적 재해석의 경우, 그리고 모델의 패션스타일을 재해석한 경우로 분류가 가능하였다.

3.1. 피사체와 배경의 구조적 재해석

패션사진에서의 오마주를 가장 쉽게 확신할 수 있는 경우는 대부분 사진의 배경구도 및 피사체의 배치가 원본 회화로부터 흡사하게 반영된 경우라 할 수 있다. 패션사진은 특정의 컨셉을 표현하기 위해 평면적이든 깊이감이 있는 입체적 표현이든 배경이 존재하고 그 공간 안에 패션을 표현하는 피사체가 배치되게 마련 인데, 이 피사체는 여러 가지가 가능하지만 인체가 가장 많은 경우를 차지한다. 배경과 인물, 혹은 배경과 사물이 사진 안에 배치될 때 작가는 고도의 전략적 기획을 바탕으로 주제를 형상화하게 되는데, 거장의 회화 속에서 보이는 인물의 포즈를 빌려오거나, 혹은 그 인물과 배경의 관계를 창의적으로 모방하는 사진 작품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처럼 화면 전체의 구성요소를 반영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에 중점을 둔 경우는, 기본적으로는 한 가지 유형으로 묶일지라도 세부적으로는 또 다양한 사례가 존재하므로 몇 가지 하위 분류를 포함하게 된다.

우선 첫째로 원본의 배경 자체, 혹은 원본에서 보이는 배경과 모델의 관계 구조를 상대적으로 최대한 존중하면서 기타 부분적 표현을 재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한 사례를 들자면 미국의 대표적인 패션포토그래퍼 스티븐 마이젤(Steven Meisel)의 2011년 작품이 걸맞을 듯하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라파엘 전파의 미학적 경향을 따른 듯한 (Figure 3)의 사진은 2011년 12월 미국 보그지에 실린 사진으로서, 영락없이 존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의 오필리아(Ophelia)를 떠올리게 한다. 우선 사각의 프레임 속에 비스듬히 가로지르게 누워 배치된 모델과 배경에 무성히 깔린 풀과 나뭇가지, 꽃 설치물들은 최대한 큰가감 없이 원본과의 구조적 유사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확실히 읽을 수 있게 한다. 결과적으로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반짝이는 셀룰로이드 프린지 드레스를 입고 반듯하게 누운 모델은 물에 잠긴 대신 푸른색 타일 위에 누워 있고, 그림 속 푸르게 생기 있는 풀과 꽃에 비해서 시든 풀더미에 에워싸여 있지만, 비련의 스토리를 낭만적이며 신비롭고도 기이하게 보여주는 화면의 분위기는 회화 원본과 사진에서 모두 통하고 있다.

Figure 3

Saoirse Ronan in ‘The Cult of Beauty’. Photo by Steven Meisel, styled by Grace Coddington. Vogue US, December 2011. & Sir John Everett Millais’s Ophelia, 1851-1852.

앞선 경우가 원본의 배경과 모델의 배치에서 거의 동일한 화폭을 유지하고 있다면, 이와 달리 축소 및 확장을 통해 새로운 구성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마리오 소렌티(Mario Sorrenti)의 1998년 입생로랑 컬렉션 캠페인은 패션화보와 예술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고급 남성복 브랜드의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이 연작 사진들은 몇몇 거장의 회화를 원본으로 한 흥미로운 화면을 보이고 있다. (Figure 4)는 플랑드랭(Jean- Hippolyte Flandrin)의 대표작과 이를 연상시키는 소렌티의 사진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원본 회화에는 바닷가의 바위 위에 등을 구부려 무릎을 감싸 안은 젊은 남성 1인만이 존재하지만 소렌티의 사진 속에는 남성의 등에 여성이 등을 마주대고 앉아 있으면서 배경이 확장되어 있고, 주변에 바위섬들이 생략되면서 더 광대한 바다에 나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Figure 4

Yves Saint Laurent - Rives Gauche winter collection Campaign. Photo by Mario Sorrenti, 1998. & Jean-Hippolyte Flandrin’s Young Male Nude Seated beside the Sea, 1836.

소렌티의 작품이 대표적으로 확장의 사례를 보여준다면, 이와 반대로 축소, 생략의 경우도 다수 존재하는데, 윗킨(Joel Peter Witkin)이 뉴욕 타임즈의 2006년 ‘The History of Hats in Art’ 기사를 위해 제작한 패션사진, 오마주 시리즈에서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의 깃털모자를 쓴 모델의 사진을 통해 이 사례가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Figure 5) 이 사진은 마네(Edouard Manett)의 걸작 올랭피아(Olympia) 원본과 비교하여 광택감이 훨씬 강조된 내용에 화폭 좌측 일부만을 가져온 구도이지만 어떤 원작을 계승하고 있는지 떠올리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다.

Figure 5

‘The History of Hats in Art’. Photo by Joel Peter Witkin, 2006. & Edouard Manett’s Olympia, 1863

마지막으로, 사진 속에 등장하는 주요 피사체가 원작 회화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사진 속에 삽입되거나 대체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사례는 아바디언(Max Abadian)의 2009년 9월 플레어지(FLARE) 사진이다.(Figure 6) 화면을 상부와 하부로 양분하듯 파란 하늘과 초록빛 풀밭이 수평으로 보이고 집 한 채와 뾰족 솟은 등대의 구도가 눈에 띄는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은 아바디언의 사진과 전체적인 배치에서 상당히 유사성을 띈다. 다만, 회화의 제목에서 읽을 수 있듯 구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대의 위치에 겹쳐 그 앞쪽으로 모델이 대신 서있음으로 인해서 원작을 한 눈에 파악할 때 감지할 수 있는 수직적 요소의 영향을 유지하고 있다.

Figure 6

‘East Coast Escape’. Photo by Max Abadian. FLARE magazine, in September 2009. & Edward Hopper’s Lighthouse-Hill, 1927.

3.2. 색채 및 질감의 감각적 재해석

색채 및 질감 등에 의한 분위기를 반영하면서 원본과의 연계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오마주는 가장 감각적으로 눈에 띄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색채는 형태보다도 인간의 감정에 가깝게 관련되는 강력한 시각 요소이다. 일찍이 이텐(Itten, 1960)은 색채를 일컬어 인간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간에 정서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힘이며 빛나는 에너지라고 언급한 바 있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1926년 발표한 논문 ‘회화에서 이론강의의 필요성에 대하여’ 를 통해 화가들에게 색채연구를 권고했는데, 순수하게 이론적인 것으로 색의 본질과 특성, 잠재성과 효과를 파악하는 연구,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즉각적인 필요에 부응하기 위한 색의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이는 화가에게 있어 색채의 사용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가 되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화가의 고유 화풍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손꼽히는 색, 질감 등이 강렬하게 사진의 분위기를 주도함으로써 오마주를 표현하는 경우는 피사체와 배경 요소의 물리적 관계를 따져서 연계성을 찾는 오마주 형식과 또 달리 즉각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감각의 즉각적 자극으로 오마주를 암시하는 고도의 표현 사례로, 2008년 9월 미국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에 실린 강렬한 사진을 들 수 있다. (Figure 7)에 제시된 것처럼 루보미르스키(Alexi Lubomirski)의 사진을 보면, 재현적인 요소를 일체 포기하고 모든 대상을 원색의 수평선과 수직선으로 극단화시켜 화면을 구성했던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품을 떠올릴 수 있다. 검은 직모의 헤어스타일을 한 모델이 흰색 벽에 기대어 서있고, 벽에 난 창 너머는 순수한 파란색 하늘로 가득하다. 팔꿈치를 뾰족하게 힘주어 포즈를 취한 창백한 모델은 베라왕(Vera Wang)의 붉은 쟈켓과 검정 스커트를 입고 있으며, 제이 크루(J.crew)의 노란색 작은 클러치를 들고 있어서 몬드리안의 구성 작품과 거의 일치하는 배색을 보인다. 몬드리안은 추상파의 지도자적 역할을 한 화가로서 순수 기하학적 형태의 화면 구성과 삼원색, 흰색, 검정, 그리고 회색에 한한 제한적 색채를 사용하곤 하였다. 구상적, 재현적인 요소를 일체 포기한 그의 회화를 구상적 화면으로 풀어 재해석한 루보미르스키의 사진이 매우 흥미롭게 보인다.

Figure 7

‘Bright Ideas’ Photo by Alexi Lubomirski. US edition of Harper's Bazaar, September 2008. & Piet Mondrian’s Composition II in Red, Blue, and Yellow, 1930.

색채 및 질감 등에 중점을 두며 오마주를 표현한 또 다른 사례를 추가하자면,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의 사진 작품 속에서도 대담한 색채와 표현적인 형태로 유명한 야블렌스키(Alexej von Jawlensky)의 인물 표현에 대한 오마주를 읽을 수 있다.(Figure 8) 극단적으로 얼굴 이목구비에 강조를 둔 야블렌스키의 초상화 작품은 푸른색의 강조적 사용과 함께 인물의 신비로운 특성이 부각되며 특유의 강렬하고 원시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사진 속의 린다 에반젤리스타(Linda Evangelista)는 표현주의적 색채를 직설적으로 받아들인 비현실적인 메이크업을 한 채 한 쪽 뺨은 푸르게 또 다른 쪽 뺨은 붉게 칠해 색면이 강조된 얼굴만으로 화면 안에 존재하고 있다.

Figure 8

Linda Evangelista in Homage to Jawlensky. Photo by Karl Lagerfeld. Makeup by Stephane Marais. America Vogue, 1992. & Alexej von Jawlensky’s Head in blue, 1912.

3.3. 패션스타일링의 재해석

피사체와 배경의 물리적 배치에 중점을 둔 오마주, 색채 및 질감 표현에 중점을 둔 오마주에 이어, 마지막으로 분류되는 오마주 형식은 원본 회화로부터 추출된 다양한 시각적 특징들이 패션스타일링으로 재해석된 경우이다. 이는 패션스타일링 개념이 단독의 분야로 각광받게 된 최근의 시점으로 볼 때 패션사진의 오마주 형식 중 가장 흥미로운 유형으로 꼽히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말하는 패션스타일링이란 모델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인체와 의상 전반에 걸쳐 행해진 연출상황을 의미한다. 따라서 패션사진의 패션스타일링을 통해 오마주가 표출되었다는 것은 회화에 등장했던 모티프들이 직접적으로, 혹은 암시적 형태로 의상, 악세서리, 메이크업 등에 재현되는 경우, 혹은 회화의 독특한 구도, 구성이 의상이나 메이크업 스타일에 적용되는 경우 등 다양한 사례들을 포함한다.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Diane von Furstenberg)는 2012 S/S 시즌, 달리(Salvador Dali)의 그림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캠페인을 내놓았다. 캘리포니아의 사막을 배경으로 한 화보에는 푸른 하늘과 사막, 정체가 불분명한 구조물이 보인다. 모델은 원본 회화에서 지면에 쌓이는 조형물 일부의 형태감과 연계될만한 드레이프 드레스를 착용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모델이 얼굴에 착용하고 있는 계란형의 거울 마스크이다. 이 특이한 악세서리 소품은 모델을 익명의 존재로 만드는 동시에 전체 화면에서 거울의 크기만큼이 뚫려있는 듯한 초현실적 상상의 장치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Figure 9)

Figure 9

Diane Von Furstenberg. 2012 S/S Campaign. Photo by Camilla Akran & Salvador Dali's Atavistic Vestiges after the Rain. 1934.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로서, 스페인의 사진작가 에우제니오 레쿠엔코(Eugenio Recuenco)는 최근 피카소의 회화를 재해석한 패션화보 연작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 한 장을 소개하면 (Figure 10)과 같다. 피카소의 그림 속 느쉬 엘뤼아(Nusch Eluard)가 입고 있는 더블버튼의 자켓은 깃에 부착된 악세서리까지 보일만큼 사진 속에서 생생하게 재현되었지만, 모델은 소매없는 그린 원피스 드레스를 입고 짙은색 남성적 쟈켓을 한 쪽 어깨에 걸치고 있어서 그림 속 의상의 색채를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착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림에서 추상적 분할 평면으로 표현된 머리장식과 헤어 스타일이 사진에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구체화되었는가를 비교하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레우엔코의 사진은 좌우 분할된 두 장의 사진이 연결되어 있는데, 정면을 바라본 자세의 다리와 45도쯤 돌아앉은 다리가 한몸으로 합쳐져 있으면서 쟈켓의 형태를 해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피카소가 대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고 조각을 나눈 뒤 한 화면에 종합하여 배열한 듯 표현했던 회화의 특이점이 모델의 패션스타일링에 그대로 연계되고 있다.

Figure 10

Photo by Eugenio Recuenco 2013. & Pablo Picasso’s Portrait of Nusch Eluard, 1937.

앞선 사례들이 거장의 특정한 한 작품과 일대일 대칭의 관계를 맺고 있다면,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거장의 작품 전반의 특징을 조합하여 패션스타일링으로 재해석한 경우도 다수 확인된다. 그 중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2008년 8월 하퍼스 바자에 의해 소개된 ‘Surreal Appeal’ 화보는 버브릿지(Richard Burbridge)의 사진연작으로서 뉴욕 현대미술관의 달리 전시로부터 영감을 받은 오마주 작업이다. (Figure 11)에서 보이는 것처럼 검정색의 프라다(Prada) 드레스를 입은 모델은 달리의 작품에서 흔히 보이는 과장된 눈 모양, 날카로운 연장선 등의 장식으로 얼굴과 헤어 부분을 강조하면서 현실을 넘어선 말그대로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꼼므데갸송(Comme des Garc¸ons)의 해체주의적 쟈켓과 셔츠를 겹쳐 입은 모델은 까르띠에(Cartier)와 바카라(Baccarat)에서 제작한 시계모양의 가면을 쓰고 있다. 기괴한 시계 역시 달리의 초현실적 회화 속에 등장하는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인데, 이 시계의 배치 덕분에 연속의 버클 디테일이 중복 나열된 쟈켓까지도 달리의 그림 속에 등장했던 디테일을 연결지어 떠올리게 한다. 여러 회화작품 속에 등장한 모티프들이 조합되어 패션 메이크업, 악세서리, 각종 소품으로 등장하거나 의상의 디테일과 연관되어 표현되었으므로 거장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고유의 분위기를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Figure 11

‘Surreal Appeal’, Photo by Richard Burbridge. Editorial from Harper's Bazaar Magazine, August 2008


4. 패션사진의 오마주 의미

단순 모방과는 철저히 구별되는 창조적 모방으로서의 오마주 기법이 적용된 패션사진에 대하여, 외적인 형식 분류에 이어 이제 내재적인 관점에서 그 현대적 의미를 찾아본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4.1. 생명의 전승

예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시대를 초월하여 높이 평가되는 예술작품, 후세 사람들의 모범이 될 만한 가치를 지닌 작품을 고전(Classic, 古典)이라 한다. 라틴어의 클라시쿠스(classicus), 또는 이 단어에서 유래한 클래식이라는 말은 단지 고풍(古風)이라는 뜻을 넘어 복잡하고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주로 예전에 저작된 모범적이면서도 영원성을 지니는 예술작품을 뜻한다. 고전은 사전적 의미상에서도 등장하였듯이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하며 영원성을 지니므로 흔히 ‘불멸의’ 고전이라 불리는 등 고유의 수식어가 따라붙기도 하는데, 여기서 불멸이란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아니함을 뜻한다. 미국의 철학자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인류에게 정신을 단련시키는 뛰어난 작품과 고전에 대한 감사를 권고하였고 고전작품의 위대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라 예찬한 바 있다.

예술에 있어 생명, 영원성은 매우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모든 예술가는 훌륭한 예술작품 속에서 삶, 생명력, 혹은 생명성을 발견한다.’고 했던 수잔 랭거(Langer, 1957)의 예술론 역시 생명의 언급이 잦다. 랭거는 생명이란 생물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으로서 내적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예술 작품은 은유적 이미지로 나타나는 인간의식의 표현이고 그 이미지는 생명을 부여받은 형식으로 나타내야 한다는 뜻을 이해할 수 있다.

패션사진의 오마주는 고전 예술작품이 갖고 있는 생명, 영원성을 전승하고 확산시키려 하는 지향을 뜻한다. 과거 특정 시기에 탄생한 거장의 예술작품은 역사적으로 일회적인 유한의 산물이기에 물리적으로는 영원한 생명이 보장될 수 없을지라도 오히려 내재적 생명의 영원을 지닐 수 있고 패션사진의 오마주는 이 내재적 생명의 감흥을 창조적으로 잇고자 한다.

마침 환생과 같이 생명을 전승하고 있는 장 폴 구드(Jean Paul Goude)의 패션사진을 보면, 걸작이 품는 생명의 힘은 시대를 거치면서 경의에 경의로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구드의 1994년 샤넬(Chanel) 향수 캠페인은 많은 이들에게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의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걸작 ‘샘(La Source)’을 떠올리며 화제가 되었었다.<Figure 12> 샘의 정령인 젊은 여인이 나신으로 물항아리를 들고 서있으며 물항아리에서 자연의 근원을 뜻하는 맑은 물이 흘러 떨어지고 있는 구성은 ‘샤넬의 정신’으로 명명된 향수액을 지면 쪽으로 붓고있는 사진의 모델과 흡사하다. 그런데 여기서 보이는 거장에 대한 오마주는 한 단계 이전부터 역사를 갖는다. 임인희(Yim, 2012)의 앵그르 누드화 연구에 의하면, 앵그르 역시 자신이 심취했던 고전주의 양식의 회화를 완성하기 위해, 고대 양식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형식을 교묘하게 결부시켜 고전적 조화를 이룩한 16세기 프랑스 조각가 장 구종(Jean Goujon)에 대한 오마주를 작품에 적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앵그르는 1820년에 이미 ‘샘’에 등장하는 여인의 포즈를 구종의 부조 작품 ‘Naiade da La Fontaine des Innocents’에서 물의 정령 나이아스로부터 구상하고 있었다. 이에 수세기에 걸쳐 환생하듯 고전적 예술형식인 조각, 근대적 예술형식인 회화에 이어 오늘날 현대의 예술형식 중 하나인 사진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전승 관계를 목도할 수 있다.

Figure 12

Jean Goujon’s Naiade da La Fontaine des Innocents, 1549.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s La Source, 1856. & Jean Paul Goude’s Coco. L’Esprit de Chanel, immagine pubblicitaria, Francia 1994.

예술과 디자인의 분야에서 환생(reincarnation, 還生)의 개념을 연구한 김유경(Kim, 2011)은 리인커네이션을 예술가의 다양한 관점에 따라 무한하게 다시 창조되어 끊임없는 탄생을 지속할 수 있는 개념으로 설명하였고 예술과 패션의 긴밀한 관계 안에 리인커네이션의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현대 패션사진에 나타난 오마주 역시 환생을 통해 걸작의 강력한 생명을 전승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현대의 주요 표현기법이라 할 수 있겠다.

4.2. 매개의 암시

밴크로프트(Bancroft, 2012)는 손택(Susan Sontag)이 1978년 12월 영국 보그 기사 ‘The Avedon Eye’에 적은 ‘가장 훌륭한 패션사진이란 패션을 찍은 사진 그 이상이다.’라는 문장을 인용하면서 패션사진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물음을 던진 바 있다. 사실 초기 패션을 사진에 담는다는 행위는 의복의 충실한 재현을 목적으로 했다. 안젤레띠와 올리바(Angeletti & Oliva, 2006)에 의하면 처음으로 보그에 등장했던 사진들은 집이나 요트클럽, 컨트리클럽에서의 티파티, 스포츠이벤트 또는 상류층의 모임들에서 커다란 모자와 값비싼 가운들을 입은 여성사회의 사진들이었다. 1892년 보그의 탄생 자체가 뉴욕에서 고급 사교계의 주간신문으로서의 발행이었고, 1909년 콘데 나스트(Conde′ Nast)가 인수하면서 정통 패션지로 탈바꿈하게된 것이다. 즉 패션사진은 부유층의 전유물로서 그 안에 상류층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제품들이 담겨진 사진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전설적인 사진작가로서 보그에서의 활동 및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클리니크(Clinique) 등의 브랜드 캠페인 작업으로도 유명한 어빙 펜(Irving Penn)이 자신의 패션사진 작업과 관련하여 ‘옷이 아닌 꿈을 팔고 있음을 언제나 느끼고 있다.’라고 하였듯이 오늘날의 패션사진은 단지 제품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선전하는 역할만을 하지 않는다. 패션사진은 패션문화의 흐름과 정보를 이해하여 의상과 모델을 적절히 조화해서 가장 이상적으로 시각화해 가는 작업으로서 존재한다. 패션지의 에디토리얼 패션사진은 유의미한 주제, 유익한 정보, 흥미로운 시각과 그에 따르는 완벽한 표현력으로 독자들에게 경이로움을 체험하도록 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고, 브랜드 캠페인의 경우는 소구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표현할 것인가를 목적으로 하되 현대 소비자의 미적 감성을 충족시키며 스타일을 제시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위와 같이 패션사진은 현대의 패션산업에 중요한 상업적이고 세속적 목적을 추구하는 분야이지만, 한편 미학적 가치,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현대예술의 한 분야, 사진예술에 속한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작가들은 그들 각자의 의도와 미적 의지, 개성이 담긴 자신만의 고유 스타일로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하며, 이러한 미학적 측면이야말로 감상자에게 특별한 감동을 안겨줄 수 있다. 다만 인류 기술의 발전과 함께 자란 사진의 예술적 위상은 분명 전통예술과 는 뚜렷이 구분되고 있다. 사진은 현대 기술복제시대 예술을 대표하는 분야 중 하나로서, 벤야민(Walter Benjamin)으로 하여금 아우라(aura)의 상실과 새로운 예술시대의 도래를 논하게끔 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벤야민은 전통적 예술작품의 고유한 속성으로 아우라를 언급하면서 진본이 갖는 현재성과 일회성에서 느끼는 신비스러운 체험을 설명하였고, 대량 복제기술에 의해 가까이 할 수 없음에서 형성되는 숭배의 가치로서의 아우라가 사라지게 된다고 하였다. 벤야민의 구분에 따를 때 사진과 같은 현대 예술은 원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이른바 아우라를 상실한 새로운 예술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패션사진은 현대 예술작업에 속하면서도 디자인산업을 지원하는 도구로서 역할을 겸한다. 작가는 패션분야가 갖는 특수한 속성의 테두리 안에서 외견상 모순되는 두 가지 측면, 즉 예술의 측면과 산업의 측면이라고 하는 양자간의 경계를 인식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효율적 매개가 이루어질 때에 균형 잡힌 결과물을 탄생시킬 수 있다.

예술계 거장에 대한 오마주는 기술복제시대 현대예술에 속하는 패션사진이 갖지 못하는 전통예술의 신비적 공명의 힘을 빌어 매개와 균형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미 널리 알려진 거장의 노력에 대한 대중의 경외, 작품과 관객 사이에 작용하는 은밀한 교감은 예술적 위상으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동시에 대중에게 강력하게 소통하고자 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패션제품들을 감각적으로 소개하거나 현대의 패션문화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산업적 목적의 측면과 사진을 바라보는 감상자에게 노력과 고뇌의 산물인 예술작품이 전하는 심미적 고양을 일으키는 예술적 목적의 측면이 함께 어우러지는 결과를 낳는다. 예술작품이 문화적 권위, 세속적인 물질주의와는 관계없는 위엄과 지혜로움을 제공해 주며, 때문에 산업사회에서 광고 내에 미술작품을 직접 참조하고 인용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존 버거(Berger, 1972)의 언급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거장의 작품은 예술 고유의 아우라를 내재적으로 품어 감상자에게 특별한 숨결, 분위기를 전할 수 있다. 예술가에 대한 경외, 그 예술적 향취를 메아리로 잇는 오마주는 패션사진에 내재하는 통속적 수단과 예술 양식 간의 공존에 있어 그 간극을 인정하고 매개하고자 하는 전략이 된다.

4.3. 확장적 상승

사진을 뜻하는 포토그라피는 그리스어의 ‘빛’이라는 의미의 포스(Phos)와 ‘그린다’라는 의미의 그라포스(Graphos)의 합성어로 ‘빛으로 그린다’는 뜻을 품고 있다. 초창기의 은판사진술에서 그 오랜 노출시간 및 복제 불가능의 속성을 헤아려보면 사진이 회화에서의 작업 행위 ‘그리다’라는 표현을 그대로 잇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본 연구에서 관찰하고 있는 연구대상은 이렇게 ‘그리는’ 행위로 계보를 잇고 있는 이미지들로서, 존 버거(Berger, 1972)는 이미지란 새롭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이라 하였다. 모든 이미지는 사물을 보는 방법을 구체화하고 있으며, 그 이미지에 관한 판단이나 지각은 우리들 자신의 견해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이미지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현실 세계로 불러내려는 목적으로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오마주를 통해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동시에 함께 가지고 있다. 거장의 작품을 예찬하고 계승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해체와 극복을 시도하기 마련이고 여기서 인간의 상상력과 미적 의지가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오마주는 시간적, 공간적 간극과 장벽을 뛰어넘는 이미지로 다시 태어나며 친근함과 낯설음을 동시에 지닌 흥미로운 텍스트를 창조하게 된다. 여기서, 어떻게 거장의 추앙받는 걸작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도전의 의지를 갖는가에 의문을 던져보자면, 미술사가 뵐플린(Heinrich Wo¨lfflin)의 언급을 떠올릴 수 있다. 그는 1915년 ‘Principles of Art History’을 통해 예술의 시대적인 제한에 대해 특히 강조했는데, 그는 모든 예술가들이 자기가 속하는 시대의 특정한 시각적 가능성에 묶여있다고 하였다. 모든 것이 모든 시대에 다 가능할 수 없다고 하였으며, 모든 예술가들은 그보다 앞서는 것에서 어떤 시각적 가능성을 찾아내게 되고 새로운 시대정신이 새로운 형식을 만들 수 있게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거장에 대한 오마주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이미지 형식에 대한 도전정신으로 재탄생하고 있으며, 이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비완결의 진행형 도상 위에 존재하게 된다.

도전정신은 패션사진의 분야에서도 분명 매우 중요하게 존재한다. 헬뭇 뉴튼(Helmut Newton)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충분히 시험해보는 일종의 두뇌집단 혹은 실험실로서 패션지의 에디토리얼 페이지의 꾸밈을 이용한다고 말하였다. 새로운 시대적 사유, 시대의 기술 발전 등에 고무된 작가들은 오늘날 현재를 존재하도록 이끌어준 과거 거장의 걸작 양식이 후대의 상상력에 의해 현실로 불려질수 있을지 끊임없이 실험과 도전을 시도하고 있으며, 그 결과 표현의 방식은 나날이 진보하며 확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패션사진에 나타난 예술 거장의 오마주는 회화의 섬세한 붓놀림이 빛의 순간적 포착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서 현대의 감상자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 것이며 이러한 확장과 상승의 과정은 벌써 다음의 다른 시도를 낳고 있다. 실제로 회화의 오마주가 패션사진에 이어 이제는 시간성과 공간성, 환영성까지 개입되는 패션필름(Fashion Film)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다음의 (Figure 13)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Figure 13

Secret Garden 2 - Versailles. Dior Fall 2013 collection Campaign Film by Inez van Lamsweerde and Vinoodh Matadin. 2013.

베르사이유의 성과 뜰을 배경으로 디올의 2013 Fall collection을 소개하는 캠페인 필름은 네덜란드 듀오 사진작가 이네즈(Inez van Lamsweerde)와 마타딘(Vinoodh Matadin)에 의해 만들어진 영상이다. 총 66초동안 전개되는 이 영상은 베르사이유를 배경으로 제작된 ‘Secret Garden’ 캠페인 시리즈의 두 번째 필름으로서, 특히 작년의 전작과 비교했을 때 동일한 배경과 모델이 등장하였음에도 마네(Edouard Manet)의 1863년 작품 ‘Le De′jeuner sur l’herbe’가 오마주로 삽입됨으로써 확실하게 차별화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풀밭 위에서 점심 식사를 하며 유희를 즐기는 주요 등장인물 세 명을 유사한 구도로 영상화면에 배치한 이네즈와 마타딘은 모델의 움직임과 카메라의 움직임 모두를 적극적 으로 사용함으로써 회화 원형이 간직했던 감동에 더하여 관찰자에게 역동적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 회화-패션사진-패션필름으로까지 이어지는 오마주 기법은 작품과 작품이 서로를 되비춤으로써 친근함과 낯선 새로움이라고 하는 양면을 동시에 갖춘 흥미로운 텍스트를 만드는 동시에, 확산과 상승의 방향으로 진화된 이미지를 생성하게 한다.


5. 결론

오늘날 패션산업에서 홍보의 역할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패션사진은 이미 패션디자이너의 창작 과정을 거쳐 탄생한 작품을 다시 사진 속에 창의적으로 담아내는 특이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고감성 패션산업에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패션사진은 피사체가 되는 패션 제품의 미적 가치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설명하는 단순한 사실 전달의 기능뿐 아니라, 사진을 찍고 있는 작가의 미적 의도와 개성이 담긴 고유 스타일로 감상자에게 강한 인상과 특별한 감흥을 제공해야 하는 존재이다.

패션사진에서의 오마주는 시대를 막론하고 작가들에게 창조적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창작 방법 중 하나로서, 경외를 바탕으로 연결된 회화와 사진은 작품과 작품이 서로를 비춤으로써 창조와 소통의 하모니를 이루어 보다 정교한 해석을 요하는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예술적 오마주로부터 탄생한 패션사진은 고전 예술작품이 갖고 있는 생명, 영원성을 전승하고 확산시키려 하는 지향을 뜻한다. 여기서 고전 예술작품은 친근성을 가지면서 특별한 숨결을 지닌 존재이므로 대중에게 강하게 소통할 수 있는 상업적 측면과 예술적 측면, 양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이에 작가들은 새로운 시대적 사유에 근거하여 끊임없이 오마주를 통한 패션사진의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고 있으며 표현의 확장과 상승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오마주는 옛 거장에 대한 경외로부터 출발하므로 언뜻 과거를 향한 듯하지만 사실상 미래를 향해 존재하는 것이며, 보수적인 듯 보이나 변화를 꿈꾸는 기법이다. 따라서, 숙명적으로 차이와 변화를 지향하는 패션산업에서 패션사진의 오마주 기법은 앞으로도 주요하게 나타날 것이며 진보하는 인간의 사유와 기술에 비춰볼 때 그 다양한 전개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Notes

Citation: Lee, S. (2013). Fashion Photography and Hommage: Archives of Design Research, 26(3), 9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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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Figure 1
Irene and Sophie. Photo by Cecil Beaton. American Vogue from March 1951.

Figure 2

Figure 2
Adele Collins in ‘After van Dongen’. Photo by Norman Parkinson. Vogue November 1959. & Kees van Dongen’s ‘The Corn Poppy’. 1919.

Figure 3

Figure 3
Saoirse Ronan in ‘The Cult of Beauty’. Photo by Steven Meisel, styled by Grace Coddington. Vogue US, December 2011. & Sir John Everett Millais’s Ophelia, 1851-1852.

Figure 4

Figure 4
Yves Saint Laurent - Rives Gauche winter collection Campaign. Photo by Mario Sorrenti, 1998. & Jean-Hippolyte Flandrin’s Young Male Nude Seated beside the Sea, 1836.

Figure 5

Figure 5
‘The History of Hats in Art’. Photo by Joel Peter Witkin, 2006. & Edouard Manett’s Olympia, 1863

Figure 6

Figure 6
‘East Coast Escape’. Photo by Max Abadian. FLARE magazine, in September 2009. & Edward Hopper’s Lighthouse-Hill, 1927.

Figure 7

Figure 7
‘Bright Ideas’ Photo by Alexi Lubomirski. US edition of Harper's Bazaar, September 2008. & Piet Mondrian’s Composition II in Red, Blue, and Yellow, 1930.

Figure 8

Figure 8
Linda Evangelista in Homage to Jawlensky. Photo by Karl Lagerfeld. Makeup by Stephane Marais. America Vogue, 1992. & Alexej von Jawlensky’s Head in blue, 1912.

Figure 9

Figure 9
Diane Von Furstenberg. 2012 S/S Campaign. Photo by Camilla Akran & Salvador Dali's Atavistic Vestiges after the Rain. 1934.

Figure 10

Figure 10
Photo by Eugenio Recuenco 2013. & Pablo Picasso’s Portrait of Nusch Eluard, 1937.

Figure 11

Figure 11
‘Surreal Appeal’, Photo by Richard Burbridge. Editorial from Harper's Bazaar Magazine, August 2008

Figure 12

Figure 12
Jean Goujon’s Naiade da La Fontaine des Innocents, 1549.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s La Source, 1856. & Jean Paul Goude’s Coco. L’Esprit de Chanel, immagine pubblicitaria, Francia 1994.

Figure 13

Figure 13
Secret Garden 2 - Versailles. Dior Fall 2013 collection Campaign Film by Inez van Lamsweerde and Vinoodh Matadin.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