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of Design Research
[ Article ]
Archives of Design Research - Vol. 36, No. 2, pp.377-387
ISSN: 1226-8046 (Print) 2288-298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May 2023
Received 31 Oct 2022 Revised 25 Feb 2023 Accepted 28 Feb 2023
DOI: https://doi.org/10.15187/adr.2023.05.36.2.377

19세기 서구 학자 서적에 등장한 서구식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원형과 그들이 현대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미친 영향

Ja Eun Ku구자은Jaewon Seok석재원
AABB, Seoul, Korea AABB, 서울, 대한민국 Department of Communication Design, Assistant Professor, Hongik University, Seoul, Korea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 서울, 대한민국
The Original Forms of Western Hangul Typography in 19th Century Western Scholar Books: The Influence on Modern Hangul Typography

Correspondence to: Jaewon Seok jaewon.seok@gmail.com

초록

연구배경 본 연구는 19세기에 서구 학자들에 의해 제작된 조선 소개서, 조선어 학습서, 이개서 사전 등 서양인의 시선에서 한글을 다루는 문헌에서 나타나는 서구식 한글 타이포그래피 원형을 분석하고, 이러한 시도가 현대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방법 문헌 연구 방법과 사례 연구 방법으로 진행했다. 먼저, 연구 범위로는 19세기 서구 동양학 학자, 천주교 선교사, 개신교 선교사에 의해 출간된 문헌 중 본문에 사용된 한글 도판이 확인 가능한 문헌 24권을 선정했다. 해당 문헌들의 저자, 발간 배경 및 의의를 역사 순에 따라 파악하고 각 본문에서 드러난 서구식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원형을 검토 및 분석했다.

연구결과 연구를 통해 발견한 10개의 서구식 한글 타이포그래피 원형은 목적에 따라 총 4개의 범위로 분류할 수 있었다. 첫째는 글자꼴이며, 여기에 오블리크, 컨덴스드, 프락투어가 포함된다. 둘째는 기술이며 여기에 분합활자와 새활자가 포함된다. 세 번째는 배치며 여기에 가로짜기, 2단짜기, 가운데 정렬이 포함된다. 마지막은 문법이며 여기에 띄어쓰기와 문장부호가 포함된다. 이들 중 다수는 현대 한글 타이포그래피에서도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론 19세기 서구 학자의 집필 과정에서 등장한 서구식 한글 타이포그래피 원형은 형태적 완성도가 높지 않았으나, 변화의 폭과 방향성은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었다. 서구식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한글 타이포그래피 발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기에, 한글 타이포그래피 발달 역사의 연구 자료로서 큰 가치를 갖는다.

Abstract

Background This study examines the original forms of Western Hangul typography found in books produced by Western scholars of the 19th Century, including Chosun introductory, Chosun language primer, and bilingual dictionary.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revise the forms and to analyze their influence on modern Hangul typography.

Methods Literature research and case studies were conducted. Of the books produced by Western Oriental studies scholars, Catholic missionaries, and Protestant missionaries of the 19th Century, 24 documents that include Hangul typesetting were selected as the scope of this research. Authors, publication background, and significance of each book were identified and their original forms of Western Hangul typography were analyzed.

Results Ten original forms of Western Hangul typography discovered through this research were classified into four categories, according to their purpose. The first category was the font, which included oblique, condensed, and Fraktur. The second category was technology, which included assembly type and metal type. The third category was layout, which included horizontal alignment, columns, and center alignment. The fourth category was grammar, which included word space and punctuation marks. Most of these original forms remain in modern Hangul typography.

Conclusions The original forms of Western Hangul typography, which appeared in Western scholars’ books of the 19th Century, may not have morphological perfection. However, the range of transition was drastic and disruptive. Therefore, Western Hangul typography influenced the modern Hangul typography in various aspects, and thus significant research material on the history of Hangul typography development.

Keywords:

Hangul, Typography, 19th Century, Western Scholar, 한글, 타이포그래피, 19세기, 서구 학자

1. 서론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1443년 창제 후 꾸준히 변화했으나 약 400년간 그 변화는 한자 문화권의 관점 안에서 이루어졌다. 한편, 18세기 초 유럽의 동양학자들은 중국학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중국과 일본, 북방 민족의 문자에 대해 활발히 연구했다. 조선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되었는데,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조선의 문화와 한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서구 학자들이 한글을 자국에 소개한 문서나 조선어 학습을 위해 제작한 사전 및 학습서에는 로마자 문화권의 관점으로 다루어진 한글 타이포그래피가 나타난다. 구자은(2013)의 연구에 따르면 한자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필기도구, 조합형 구조, 네모틀 형태, 세로짜기 등을 중심으로 변화해왔던 반면, 서구 학자 및 선교사에 의해 다뤄진 한글 타이포그래피에는 로마자의 특징이 반영된 미감의 글자꼴, 가로짜기, 띄어쓰기, 가운데 정렬, 문장부호 등 생경한 시도가 나타난다. 서구 학자들의 개입 이후 한글 타이포그래피 변화의 범위와 방향성에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난다. 그 중 다수는 현대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이루는 주요 요소로 자리 잡았다.

본 연구의 목적은 19세기 서양인에 의해 제작된 한글 문헌에 나타나는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원형을 검토하고 분석하여 이들이 현대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는 것이다. 류현국(2015)김미성(2015)의 연구에 따르면, 19세기 서양인에 의해 출간된 문헌 중 한글 도판이 포함된 가장 초기 기록 중 하나는 클라프로트(J. Klaproth)의 『삼국통람도설(Trois Royaumes』(1832)이다. 연구 범위로는 이 문헌을 포함하여 본문 확인이 가능한 문헌 24권을 대상으로 삼았다(Figure 1). 각 문헌에 나타난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원형을 직접 확인하고 정밀하게 탐구하는 것이 핵심인 만큼 한글에 대한 기록이 글로만 남아있거나 도판의 품질이 떨어지는 문헌은 생략했다. 본 연구에서는 서구 동양학 학자, 천주교 선교사, 개신교 선교사를 통틀어 서구 학자라고 칭하기로 한다.

Figure 1

24 books on Hangul produced by Western scholars in 19th century


2. 19세기 한글 문헌

2. 1. 동양학 학자의 한글 소개

『하멜 표류기(The Journal of the Unfortunate Voyage of the Jaght the Sperwer)』(1668)는 한글에 대한 단편적인 소개를 포함하는데 ‘그 문자는 매우 쉽게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글자를 통해 알려지지 않은 일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들을 다른 문자보다 훨씬 더 쉽게 쓸 수 있다’고 서술한다. 브로튼(W. Broughton) 장교의 『북태평양 항해기(Voyage de Découvertes Dans la Partie Septentrionale de l’Océan Pacifique)』(1804)에서도 수십 개의 한글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한글에 관한 단독 문헌으로 알려진 것은 중국과 중국어 전문가인 아벨레뮈자(J. Abel-Rémusat) 교수의 『타타르어에 관한 연구(Recherches sur les langues tartars)』(1820)이다. 그는 ‘한글은 진정한 알파벳 문자로 9개의 모음자와 15개의 자음자로 형성되어 있으며 그 자형의 결합 방식이 지금까지 알려진 다른 알파벳과 어떤 유사성도 없다. (중략) 아마도 한자로부터 문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미 한자에 가져온 변화와 결합되어 완전히 한자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믿을 수 있다. 나는 조선의 문자들이 조선 민족 고유의 발명품이라고 보기보다는 이런 가정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다수의 초기 서구 학자들이 이와 같이 한글이 한자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글자라고 부정확하게 이해했던 이유는 그들의 연구가 조선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이나 일본인들의 중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 동양학자 클라프로트(H. J. Klaproth)의 『삼국통람도설』, 『고대세계의 문자의 기원에 대한 고찰(Aperçu de l’origine des diverses écritures de l’ancien monde)』(1832), 언어학자 가벨렌트(H. Gabelentz)의 『학문과 예술의 일반적인 백과사전』(1886), 『한국 문자』(연도 미상), 『한국 문자와 음운에 관한 고찰』(1892), 외교관 애스턴(W. Aston)의 『일본 문자와 한글의 비교 연구』(1879), 『한글 배열 제안』(1880) 등의 논문 및 저서를 통해 한글이 유럽에 소개되었다.

클라프로트의 『삼국통람도설』에는 한글 반절표가 등장했다. 자음자와 모음자의 조합 중 받침 없는 음절글자 154자에 6자를 추가한 총 160자를 소개했다. 로니(L. Rosny) 교수가 클라프로트의 문헌을 바탕으로 연구한 논문 「한글 개요(Aperçu de la langue coréenne)」(1864)는 조선어 문법과 문화를 다루었다. 이후에도 서양의학 보급을 위해 일본으로 파견된 지볼트(F. Siebold) 의사는 일본에서의 다양하고 총체적인 연구를 모아 보고서 『니뽄(Nippon)』(1840)을 통해 본국에 소개했는데 제7부에서 조선 관련 문헌과 더불어 한글을 다뤘다. 오페르트(E. Oppert)가 저술한 『금단의 나라 조선의 유람(A Forbidden Land: Voyages to the Corea)』(1880)의 한글 반절표는 기본자 154자에 28자를 추가한 182자를 소개했다. 리델(F. Ridel) 신부의 『한어문전(Grammaire Coréenne)』(1880)의 한글 반절표는 기본자 154자에 26자를 추가한 180자를 소개했다. 이전까지 한글 반절표가 세로조판이었던 것과 달리 리델 신부의 한글 반절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최초의 가로조판이었다.

2. 2. 기독교 선교사의 이개어 사전

18세기 말 영국에서 일어난 복음주의 운동을 시작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세계 곳곳으로 진출했다. 선교 국가의 언어로 번역한 성경을 인쇄하여 복음 전파에 활용하는 문서 전도는 이들의 주요 전도 방법 중 하나였다. 이영미(2019)에 의하면 당시 조선의 경우, 서양 종교 탄압과 쇄국정책으로 인해 선교사들이 조선 입국에 어려움을 겪자 중국이나 만주에 머물며 조선 풍습과 한글을 익히며 조선 선교를 준비했으며, 이 과정에서 조선어 학습서와 이개어 사전 편찬이 이루어졌다.

조선어 이개어 사전에 대한 최초 기록은 다블뤼(M. Daveluy) 주교의 『중한불사전』과 『나한사전』, 푸르티에(J. Pourthié)의 『한중나사전』, 프티니콜라의 『나한사전』등 이다. 이 사전들은 병인박해 때 불태워져 실물이 남아 있지 않다. 실물로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사전은 페롱(S. Feron) 신부의 『불한사전(Dictionnaire Francais-Coréen)』(1869)이다. 이는 육필본으로, 이후 리델 신부가 요코하마에서 활판본으로 간행한 『한불자전(Dictionnaire Coréen-Francais)』(1880)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후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H. Underwood)가 요코하마에서 출간한 최초의 한글영어 대역사전 『한영자전(A Concise Dictionary of the Korean Language: Pocket-edition in two volumes)』(1890), 주한영국공사관 스코트(J. Scott)의 『영한자전(English-Corean -Dictionary- Being a vocabulary of corean colloquial words in common use)』(1891), 캐나다 선교사 게일(J. Gale)의 『한영자전(Korean-English Dictionary)』(1897) 등이 순차적으로 편찬되어 외국인의 조선어 학습에 이바지했다.

2. 3. 기독교 선교사의 조선어 학습서

문법(grammar)은 서양에서 발달한 학문이다. 조선어 문법서가 서구 학자에 의해서 쓰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영국 선교사 로스(J. Ross)는 조선어 문법서를 저술했다. 중국 만주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로스 목사는 최초의 조선어 성경을 번역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1876년부터 성경을 조선어로 번역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응찬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운 후 1877년에 이응찬과 함께 조선어 학습 교재인 『조선어 초보(Corean Primer)』(1877)를 만들었다. 첫머리에 국어의 음운과 문법에 관한 설명을 포함한 이 회화서를 성공적으로 편찬한 뒤 그는 의주 청년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한문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기 시작하여 1882년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와 『예수셩교 요한복음젼셔』, 1883년 『예수셩교셩셔 누가복음 데자행젹』과 『예수셩교셩셔 요한복음』, 1884년 『예수셩교셩셔 마태복음』과 『예수셩교셩셔 말코복음』, 1885년 『예수셩교셩셔 요한복음 어비쇼셔신』, 1887년 『예수셩교젼셔』, 총 8권의 한글 성경을 10년에 걸쳐 완성했다. 로스 목사는 한글 성경 번역 작업을 통해 조선에 기독교의 초석을 다졌다.

로스 목사와 함께 만주에서 활동하던 매긴타이어(J. MacIntyre) 선교사도 『조선어론(Notes on the Corean Language)』(1879)을 출간했다. 김미성(2015)에 의하면 프랑스 선교사 리델 신부의 『한어문전( Grammaire Coréenne par les Missionaires de Corée de la Société des Missions Etrangères de Paris)』(1881)은 본격적인 문법 연구를 통해 이후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 서적이다. 단, 서양의 문법 체계를 조선어에 그대로 적용하다보니 조선어의 특징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으며, 순수한 학문적 필요보다는 실용적 목적을 위해서 쓰였다. 스코트의 『언문말책(A Korean Manual or Phrase Book with Introductory Grammer)』(1887)은 언문의 발음, 품사의 설명으로 구성된 1편과 회화 연습으로 구성된 2편으로 되어 있다. 언더우드의 『한영문법(An Introduction to the Korean Spoken Language)』(1890)에서는 품사 분류에서 관사, 전치사가 없어지고 그 대신 후치사(postposition)가 등장했는데 이는 앞선 프랑스 선교사들의 문법보다 한 걸음 발전한 것이다. 게일 주교의 『사과지남(Korean Grammatical Forms)』(1893)은 조선어 용언의 활용어미를 실례로 들어 설명한 책이다. 이것은 서양인이 조선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용언 어미라는 점에 착안하여 집필한 것으로, 조선어의 용언 어미 264종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한 것만으로 유의미한 업적이 되었다.


3. 서구식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원형

3. 1. 분합활자

분합활자는 한글을 닿자, 홀자, 받침에 해당하는 낱글자로 분리하여 각각의 활자를 주조하고, 조판할 때 이것들을 조합하여 한 글자를 이루는 방식이다. 류현국(2015)은 초기 동양학 학자들의 조선 관련 문헌에 포함된 몇 개의 한글 단어와 음절표는 글자꼴의 미적 측면으로 보았을 때 조선인이 그린 글자를 석판 인쇄한 것으로 추정한다. 로니의 『한글개요』에는 유럽인이 그리고 제작한 초기 한글 활자가 사용되었다(Figure 2). 로니는 조합형 글자인 한글을 기능적이고 합리적으로 조판하기 위해 로마자와 같이 낱글자로 분리하여 주조하고 조합하는 시스템으로 접근했다. 이 방법에는 모형 조각을 위한 시간, 비용, 수납 공간을 절약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조합했을 때 글자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으며, 그 불균형은 세로모음 글자의 경우 더욱 두드러졌다.

Figure 2

Original forms of Hangul typography found in Western scholar’s books

3. 2. 오블리크

오블리크는 이탤릭과 같이 특정 방향으로 기울어진 글자 형태로, 필경사의 손글씨 습관에서 비롯된 글자꼴 형태이다. 페롱 신부의 『불한사전』은 활자본이 아닌 육필본이라는 한계 때문에 오히려 한글에 대한 서구 학자들의 관점이 잘 드러난다. 인쇄체가 아닌 필기체로 쓰인 불어 표제어와 불어 풀이 사이에 등장하는 한글은 로마자와의 시각적 조화를 위해 글자 너비가 좁고 오른 방향으로 기운 형태로 쓰였다(Figure 2). 한글에 없던 ‘누운 글자꼴’인데다 붓이 아닌 펜으로 쓰인 덕에 당시 보편적으로 쓰이던 부리 글자가 아닌 민부리 글자로 쓰여 로마자의 오블리크(oblique)와 유사하다. 한글 흘림체나 서간체는 글자 간이 연결된다는 특징이 로마자 필기체와 유사하나, 세로쓰기이다보니 글자가 특정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성은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가로로 후행하는 글자를 쓰기 위해 받침 ‘ㄴ’, ‘ㄹ’의 맺음 획이 수평보다는 위쪽으로 둥글려진 것도 해당 글자꼴의 특징이다.

3. 3. 가로짜기

가로짜기는 글자가 가로로 진행되는 배열 방식이다. 세로짜기로 태어난 한글이 가로짜기로 등장한 가장 오래된 육필본 기록으로는 페롱 신부의 『불한사전』, 활판본으로는 로스 목사의 『조선어 초보』가 있다(Figure 2). 이개어 사전 및 언어 학습서는 그 특성상 두 언어가 병기된다. 병기된 두 언어의 쓰기 방향이 각기 다르다면 조판공 및 독자에게 불편함을 주게 된다. 이에, 서양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쓰고 읽기에 편리하도록 로마자의 쓰기 방향에 맞춰 한글을 가로짜기 했다.

3. 4. 컨덴스드

컨덴스드(condensed type)는 글자 너비가 70%정도 좁혀진 형태이며, 주어진 지면 안에 더 많은 글자를 조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로스의 조선어 초보에서는 한 글줄에 많은 글자 수를 조판하기 위해 글자너비를 절반가량으로 줄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Figure 2). 이는 한글 글자꼴에서 자주 등장하는 정방형 비율보다는 1800년대 중반부터 유럽에서 널리 사용된 컨덴스드 활자와 유사한 형태이다. 세로짜기 환경에서 한 글줄에 많은 수의 글자를 조판하기 위해 평체가 사용된 사례는 종종 있었으나, 가로짜기 환경에서 공간 활용이 효율적인 장체가 한글에 적용되어 새로운 인상의 글자꼴을 만들었다.

3. 5. 띄어쓰기

띄어쓰기는 글자 또는 단어 사이에 공목을 추가하여 의미를 구분 짓는 표기법이다. 홍윤표(2013)에 의하면 어절 단위 띄어쓰기는 로스의 『조선어 초보』에서 등장한다(Figure 2). 이전의 조선 소개 문헌이나 이개어 사전과 달리 『조선어 초보』는 회화 학습서이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문장의 의미를 쉽고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에 로마자의 단어 단위 띄어쓰기를 단순 적용하는 대신 교착어의 특성에 맞춰 어절 단위 띄어쓰기를 적용하여 내용 전달 향상에 중점을 두었다. 『조선어 초보』는 이응찬,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 등이 원도 작성에 가담하여 만들어진 세 종류의 분합활자가 사용되었으며, 활자꼴의 조형감으로 보아 급조된 활자인 것으로 보이며, 띄어쓰기 크기도 어절 사이마다 균등하지 못하다.

3. 6. 2단짜기

2단짜기는 주어진 지면을 두 개의 좁은 칼럼으로 나누어 의도에 따라 공간을 활용하는 편집 디자인 방식이다. 언더우드의 『한영문법』은 기존 문헌들과는 차별화된 편집 양식을 사용한다(Figure 2). 한글과 로마자를 상하로 배치하여 단어와 단어를 대역했던 기존 문헌들과 달리 지면을 2단짜기로 구성하고 한글과 로마자를 병렬 배치하여 문장 대 문장을 대역했다. 로마자로부터 공간적으로 분리된 한글이 두 줄 이상 연달아 조판되어 한글에 가로짜기 글줄사이 개념이 도입된 사례이다. 단짜기 응용 과정에서 내어짜기 및 들여짜기를 적용한 문단들도 찾아볼 수 있다.

3. 7. 문장부호

문장부호는 문장의 뜻을 돕거나 구별하여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하는 여러 부호이다. 언더우드의 『한영문법』에는 한글에 서양식 문장부호가 적용되었다. (Figure 2). 한자를 비롯한 동아시아 글자에서는 문장부호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문맥에서 문법 구조가 유추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어 문장 ‘~か’와 한국어 문장 ‘~까’는 의문형이다. 그러나 문맥 이해가 어려운 외국인이 보다 명확하게 문장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한영문법』에 문장부호를 적용했다. 단 문장부호의 위치가 로마자에 맞추어져 있어 한글과는 조화롭지 못한 것이 특징이다.

게일의 『한영자전』은 기존의 이개어 사전들과 달리 표제어의 다양한 변형 및 활용 예시를 포함하여 한글 조판의 비중이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괄호, 별표(*), 줄표(—), 세미콜론(;), 콜론(:), 쉼표(,) 등이 한글에 직접적으로 적용되었다. 텍스트의 구조와 내용에 적합한 서양식 글리프를 활용하여 기능적인 조판의 체계를 갖추려는 시도가 드러난다.

3. 8. 프락투어

프락투어는 중세시대 유럽에서 사용하던 딥 펜으로 쓴 필사체이다. 오페르트의 『금단의 나라 조선의 유람』에서는 한글을 로마자와 같이 필기체(writing)와 인쇄체(print)로 구분하여 소개한다(Figure 2). 인쇄체는 반포체와 유사한 형태인 반면, 필기체는 펜으로 그려진 로마자 캘리그래피와 유사한 미감으로, 한글에 있어서는 다소 파격적인 곡선의 자형으로 표현된 점이 특징이다. 오페르트의 필기체 한글은 로마자의 프락투어(Fraktur)와 유사한 인상이다.

3. 9. 새활자

새활자는 19세기 중반 전통적인 옛활자가 서양식 활판술과 납활자로 교체된 시기의 글자 기술이다. 대표적인 초기 한글 새활자는 최지혁체로 1880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주조되어 같은 해 그 곳에서 간행된 리델 신부의 『한불자전』과 『한어문전』 외 다수의 문헌에 사용되었다(Figure 2). 박지훈(2011)에 의하면 자본을 그린 이는 조선인 최지혁이나, 이는 리델 신부의 지휘 아래 진행되었으며 처음부터 로마자와의 혼용을 목적으로 가로짜기를 염두에 두고 기획되었기 때문에 기존 해서체와 달리 로마자에 가까운 활자 구조를 띄게 되었다. 가로 폭에 비해 세로 폭이 넓은 장방형 활자로 만들어져서 세로짜기에 적합하지 않다. 기둥이 아래로 갈수록 점점 가는 쐐기 모양으로 나타나고, 보의 오른 끝이 수평보다 많이 올라가는 특징은 필기구의 영향이다. 비슷한 시기에 인쇄된 다른 한글 글자꼴에 비해 붓의 특징이 뚜렷하지 않은 점으로 보아 로마자의 영향으로 무딘 펜촉으로 쓰인 글자이다.

3. 10. 가운데 정렬

가운데 정렬은 유럽의 중세시대부터 가로짜기 환경에서 자주 사용되던 전통적인 정렬 방식으로, 강조하는 내용을 지면 가로 중앙에 배치하여 주목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스코트의 『언문말책』에서는 가운데 정렬이 등장한다(Figure 2). 단순했던 조선어 학습서의 지면 구성이 1880~90년대에 이르러서는 이전보다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에 로마자로 조판된 설명글과 조선어 문장 및 뜻풀이를 시각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전자에는 양끝맞춤을, 후자에는 가운데 정렬을 적용했다.


4. 서구식 한글 타이포그래피 원형 분석

검토된 24권의 문헌에서 나타난 서구식 한글 타이포그래피 원형 10종을 글자꼴, 기술, 배치, 문법의 4가지 범위로 분류하고, 이들이 현대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미친 영향을 확인했다.

4. 1. 글자꼴: 오블리크, 컨덴스드, 프락투어

서구 학자의 관점에서 낯선 한글을 로마자 식으로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형태들이다. 이들이 등장한 문헌들은 대체로 로마자가 지배적으로 사용되고 한글은 중간 중간 삽입되는 구조였다. 조화로운 섞어짜기를 위해 로마자에 한글을 맞추었다. 당시 서구 학자들은 한글 미감에 대한 기준이 부족했기 때문에 ‘프락투어식 한글‘과 같이 낯선 인상의 글자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 글자꼴들은 조선인들에게 호감을 얻을 수준의 미감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서구 학자들의 19세기 문헌 이후까지 잔존하지 못했다. 반면, 가로짜기 환경에서 공간 효율성 및 경제성이 뛰어난 컨덴스드는 한글 전면 가로짜기 전환 이후 현대 한글 타이포그래피에서 장체(長體)라는 분류하에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4. 2. 기술: 분합활자, 새활자

조선시대의 금속활자 인쇄 기술은 대량 생산을 가능케 하지는 못했기에 19세기 중반에 서양식 납활자가 조선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한글 인쇄 기술도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서구에서 신식 활판술과 전태법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주조활자는 납으로 만들어진 새활자로 교체되었다. 이러한 기술 환경에서 서구 문화 특유의 기능성과 합리성에 기반을 두어 하나의 자소를 하나의 활자로 만든 것이 분합활자였다. 그러나 이는 한글의 미감을 과도하게 해치는 데다, 자소로 이루어진 활자는 크기가 너무 작아 최소 글자 크기가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분합활자는 19세기 말 새활자로 대체되며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었다. 초기 새활자였던 최지혁체와 박경서체를 거쳐 1950년대 원도활자 최정호체에 이르러서는 현대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명조체’의 기틀이 잡혔다.

이후 1950년대 한글 기계화 과정에서 분합활자와 유사한 개념이 재등장한다. 한글 타자기 개발 과정에서 로마자 타자기의 제한된 글쇠 개수로 한글을 처리해야하는 어려움을 마주하게 된 안과의사 공병우가 기능성과 합리성을 고려하여 자소별로 한 형태씩 디자인하는 세벌식 글자를 발명한 것이다. 이로부터 탈네모틀 글자 개념이 생겨났으며 현대 한글 타이포그래피에서도 탈네모틀 폰트가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분합활자와 새활자는 기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결과물이었으나 현대 한글 폰트 디자인의 다양성에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4. 3. 배치: 가로짜기, 2단짜기, 가운데 정렬

서구 선교사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한글 학자들은 한글 가로짜기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독립신문』(1896)에 실린 주시경의 「가로짜기의 네 가지 유용성」이라는 기고문에서는 가로짜기의 효율성과 편리함을 설명한다. 주시경 사망 후 후계자들이 1919년 ‘조선어학회’라는 이름의 조직을 부활시켜 한글에 대한 과학적인 이론 및 시안 연구에 기반을 두어 가로짜기 및 가로 풀어짜기 보급에 힘썼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비로소 한글의 특성에 적합한 자주적 가로짜기 타이포그래피 연구가 이루어졌다.

단짜기 및 다양한 정렬(왼끝 정렬, 오른끝 정렬, 양끝 정렬, 가운데 정렬) 등은 모두 가로짜기 조판의 기본 편집디자인 요소인 만큼 가로짜기 정착 후 이들도 정착하게 되었다. 특히 기술이 발전하여 사진식자, 디지털 환경에서의 세밀한 글자 공간 조절이 가능해지자 국내 디자이너들은 일본식 편집디자인의 틀을 벗어난 그리드 시스템을 잡지와 신문에 차용하며 다양하고 과감한 서양식 편집디자인 스타일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4. 4. 문법: 띄어쓰기, 문장부호

띄어쓰기와 문장부호는 한글 문법 체계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자리 잡았다. 그 중 문장부호에 대해서는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발표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수차례 개정되었고, 현대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1988년 문교부에서 발표한 맞춤법을 사용하고 있다. 가로짜기 한글에 어울리는 문장부호의 크기 및 위치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연구가 이루어져 현대 한글 폰트는 글자와 문장부호가 보기 좋은 균형을 이룬다. 반면 띄어쓰기는 아직까지 개선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남아있다. 석재원(2018)에 의하면 한글은 어절 단위 띄어쓰기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소프트웨어는 서구식 표현을 그대로 번역한 ‘단어 사이(word spacing)’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정확도가 떨어진다.


5. 결론

19세기 서구 학자가 조선 소개서, 조선어 학습서, 이개서 사전 등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서구식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원형은 형태적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으나, 변화의 범위와 방향성에 있어서는 큰 발전을 이루었다.

서구 학자들이 이러한 서구식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조선인에게 보급하고자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본인들에게 익숙한 방식을 사용하여 빠르게 조선어 및 문화를 배우고자 했을 뿐, 그들은 조선의 글자 문화를 존중했다. 그 근거는 조선인 신도를 위한 교리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스의 한글 성경(1882~1887), 앵베르(L. Imbert)의 『천주성교공과』(1862), 다블뤼(M. Daveluy)의 『성교요리문답』(1864), 『신명초행』(1864), 『성찰기략』(1864)과 같이 19세기 동일한 시기에 편찬된 한글 교리서들은 모두 전통적인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유지했다. 조선인 신도를 위한 교리서는 조선인이 붓으로 그려 한글의 미감을 유지한 글자꼴로 세로짜기되었으며 띄어쓰기나 문장부호가 적용되지 않았다.

서구식 한글 타이포그래피가 조선인을 위한 보급을 목적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 등장은 조선인의 한글 타이포그래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영향은 실제적인 원형을 넘어서 글자를 바라보는 관점에까지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동양과 서구는 글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 구자은(2013)에 의하면 한자를 비롯한 동양의 글자는 천지만물의 이치를 담은 전통 의식으로서 중시되었던 반면, 서구의 글자는 경제활동을 기록하기 위한 도구로서 등장했다. 편하고 빠르게 쓰기 위해 여러 차례 쓰기 방향과 스타일을 바꿔갔던 것으로 보아 글자를 운용하는 데 있어서 효율성과 편리함이 중시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변화에 있어서 다소 보수적이었던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20세기 초부터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주체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여러 형태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타이포그래피 시도가 이행되었다. 장체, 흘림체, 가로짜기, 띄어쓰기, 문장부호와 같이 서구 학자 및 선교사의 19세기 문헌에 일시적으로 등장했던 타이포그래피 요소들은 해방 후 한글에 최적화된 체계 안에서 재등장하고 섬세하게 다듬어졌다. 그 결과,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오늘날 세계 어느 나라의 타이포그래피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풍부한 스타일과 높은 완성도를 갖추게 되었다. 이와 같이 현대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19세기 서구 학자 문헌은 한글 타이포그래피 발달 역사의 연구 자료로서 큰 가치를 갖기에, 이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도 활발히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Notes

Citation: Ku, J. E., & Seok, J. (2023). The Original Forms of Western Hangul Typography in 19th Century Western Scholar Books: The Influence on Modern Hangul Typography.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6(2), 377-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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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24 books on Hangul produced by Western scholars in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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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Original forms of Hangul typography found in Western scholar’s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