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of Design Research
[ Article ]
Archives of Design Research - Vol. 35, No. 1, pp.367-387
ISSN: 1226-8046 (Print) 2288-298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28 Feb 2022
Received 09 Sep 2021 Revised 29 Sep 2021 Accepted 19 Oct 2021
DOI: https://doi.org/10.15187/adr.2022.02.35.1.367

한국형 냉장고의 발전 과정, 1984~1995

Chang Sup Oh오창섭
Department of Industrial Design, Konkuk University, Professor, Seoul, Korea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서울, 대한민국
The Development Process of Korean-Style Refrigerators: 1984~1995

Correspondence to: Chang Sup Oh changsup@konkuk.ac.kr

초록

연구배경 냉장고는 음식을 보관하기 위한 제품이기 때문에 그 디자인은 음식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한국형 냉장고는 한국 음식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치와의 관계 속에서 발전해 왔다. 물론 김치가 한국형 냉장고를 규정짓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었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주거 공간이 아파트로 변화하고, 생활문화 역시 변화함에 따라 한국형 냉장고를 규정짓는 요소는 더욱 다양화되었다. 특히 8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중산층의 문화는 다양한 한국형 제품을 등장시킨 동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치는 한국형 냉장고를 규정짓는 핵심 요소였다. 본 논문은 한국형 제품이 번성했던 올림픽 시기를 기준으로 전후 약 10여 년 동안 출현한 대표적 한국형 냉장고들을 고찰함으로써 해당 시기 한국형 냉장고의 내용과 흐름, 특징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방법 본 논문은 일간지와 잡지에 등장하는 냉장고 광고와 기사를 도상학적 해석과 담론분석의 방법을 통해 분석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비평적 서술의 방법을 통해 분석된 내용을 해석하고 구조화함으로써 연구가 목적하는 결과를 도출했다.

연구결과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도출되었다. 첫째, 1984년에 출현한 금성사와 대우전자의 ‘김치냉장고’는 아이스박스 형태를 응용한 최초의 김치냉장고로,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 등 도시 가정의 김치 보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당시 별도의 냉장고를 통한 김치 보관은 공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둘째, 1988년 기존 냉장고에 별도의 김치 보관실을 갖춘 3단 김치냉장고가 금성사와 대우전자에 의해 등장했다. 이들 제품은 김치 냄새가 다른 음식에 배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했지만, 문화적 이유로 인해 재래 김장독이나 특수 제작된 아이스박스 제품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셋째, 80년대 말에 이르러 냉장고 보급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제조사들은 디자인 변화, 첨단 기술, 크기 향상이라는 3방향으로 변별점을 만들어갔다. 이때 등장한 다양한 색상의 냉장고는 개성과 취향이 강조되는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냉각방식이나 자외선, 적외선 등을 활용한 살균과 탈취가 강조되는 제품도 이때 등장했다. 대형화 경향도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이는 당시 본격화된 중산층 문화와 관련된 현상이었다. 넷째, 1993년 한국형 제품의 유행에 따라 다시 한 번 김치냉장고가 등장하였는데, 이 시기 김치냉장고는 냉장고가 김치를 단순히 보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숙성시키며 맛을 낸다는 개념을 구현했다. 1995년에 출시된 만도 위니아의 딤채는 김치냉장고의 발전 방향을 바꾸었다. 이 제품의 형태는 이후 김치냉장고의 전형으로 자리했다.

결론 한국형 냉장고는 김치를 매개로 한 음식 문화, 한국 고유의 주거 환경과 생활 방식, 기업의 차별화 전략 속에서 발전해 왔다. 특히 김치를 매개로 등장한 한국형 냉장고들은 냄새와 보관의 이슈에서 점차 저장과 맛의 이슈로 이동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Abstract

Background Since the refrigerator is a product for storing food, its design has no choice but to be closely related to the user's food culture. The Korean-style refrigerator has developed in relation to kimchi, the core of Korean food culture. Of course, kimchi was not the only defining factor in Korean refrigerators. With industrialization and urbanization, residential space changes to apartments, and as living culture changes, the factors that define Korean-style refrigerators have become more diversified. In particular, the culture of the middle class, which has increased since the late 1980s, has been the driving force behind the emergence of various Korean-style products. Nevertheless, kimchi was a key factor in defining Korean-style refrigerators.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reveal the development process and characteristics of Korean-style refrigerators by examining representative Korean refrigerators that appeared for about 10 years before and after the 1988 Olympics when Korean-style products flourished.

Methods This thesis was conducted by analyzing refrigerator advertisements and articles appearing in daily newspapers and magazines through iconographic analysis and discourse analysis. The purpose of the study was derived by interpreting and structuring the analyzed contents through the critical description.

Results The following results were derived from the study. First, the 'Kimchi Refrigerator' of Goldstar and Daewoo Electronics, which appeared in 1984, was the first kimchi refrigerator and was created to solve the problem of kimchi storage in urban homes such as apartments and multi-family houses. However, at that time, storing kimchi in a separate kimchi refrigerator was not popular because it was burdensome to users in terms of space and cost. Second, in 1988, three-story kimchi refrigerators with separate kimchi storage rooms were introduced by Goldstar and Daewoo Electronics. These products effectively solved the kimchi smelling of other foods, but for cultural reasons, they could not replace traditional kimchi-dok or specially made icebox products. Third, by the end of the 1980s, the supply of refrigerators reached saturation, and manufacturers developed distinctive points for new products in three directions: design change, advanced technology, and size increase. The refrigerators in various colors reflected the atmosphere of the time when individuality and taste were emphasized. Products featuring artificial intelligence technology, advanced cooling methods, and sterilization and deodorization using ultraviolet or infrared rays also appeared at this time. The increase in the size of refrigerators was also a clear phenomenon related to the culture of the middle class. Fourth, kimchi refrigerators appeared again in 1993, following the trend of Korean-style products. At this time, the manufactures realized the concept that kimchi refrigerators store and ripen as well as improve the taste of kimchi. Mando Winia's Dimchae, launched in 1995, changed the direction of the development of kimchi refrigerators. Since then, this product has been understood as a typical kimchi refrigerator.

Conclusions The Korean-style refrigerator has developed in relation to the food culture mediated by kimchi, Korea's unique living environment and lifestyle, and the differentiation strategy of companies. In particular, Korean-style refrigerators related to kimchi gradually moved from the issue of smell and storage to the issue of storage and taste.

Keywords:

Korean-style, Korean-style Home Appliances, Kimchi Refrigerator, Korean-style Refrigerator, Korea Design History, 한국형, 한국형 가전제품, 김치냉장고, 한국형 냉장고, 한국디자인역사

1. 서론

오창섭(Oh, 2021)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형’ 제품을 처음 선보인 가전제품 제조사는 금성사였다. 1981년에 금성사는 ‘금성 눈표 냉장고’를 ‘한국형 냉장고’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형 냉장고’는 광고의 홍보 문구로 사용되었을 뿐 제품의 공식 이름은 아니었다. 제품의 공식 이름에 ‘한국형’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이듬해의 일이었다. 1982년 금성사의 ‘금성 한국형 냉장고’가 바로 그것이었다.

80년대 초 ‘금성 한국형 냉장고’가 출현하기 이전까지 ‘한국형’은 주로 국가중심적 차원에서 국산 무기류를 설명할 때 사용되었다. 한국형 탱크, 한국형 미사일, 한국형 장갑차 등이 그것이었는데, 당시 ‘한국형’은 한국에서, 한국인에 의해, 한국의 기술로 제작된 고유성을 띈 산물을 의미했다. 그런데 한국형 무기 제작에 사용된 기술을 보면 한국 고유의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로 인해 ‘한국형’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방점은 한국에서 한국인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점에 찍혔다. 즉, 한국인이 만든 것 중에서 새로운 부분이 있는 산물이면 고유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으레 ‘한국형’이라고 불렸다. 이러한 움직임은 일반 산업제품에도 적용되었다. 1976년 시판된 포니 자동차의 경우 많은 기술을 일본에 의존했고, 디자인 역시 이탈리아의 주지아로가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한국인에 의해 제작된 고유한 산물이었기 때문에 ‘한국형’으로 표현되었다.

1981년 금성사가 ‘금성 눈표 냉장고’를 ‘한국형’으로 광고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자리한다. 물론 가전제품의 경우 특이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형’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가전제품 제조사들은 가급적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려는 경향을 보였다. 1981년 금성사가 ‘금성 눈표 냉장고’를 ‘한국형’으로 소개한 것은 채소나 김치 등 냉장식품이 많은 한국 가정의 특성에 맞춰 제작한 제품이기 때문이었다. 1982년에 제품 이름을 ‘금성 한국형 냉장고’라고 바꾼 것도 한국 주부들의 의견을 듣고 한국 가정에 맞도록 디자인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형’은 단순히 한국에서 한국인에 의해 제작된 산물이라는 의미를 넘어, 한국 생활문화에 적합하도록 디자인된 산물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 갔음을 알 수 있다.

이후에도 이러한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그 결과 80년대 말에 이르러 ‘한국형’은 한국 생활문화에 적합하도록 디자인되고 제작된 제품의 이름으로 확고히 자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이 시기에 ‘한국형’은 제품의 고유성을 획득하기 위한 방법론이자 한국 가전제품 제조사들의 차별화 전략으로 그 성격이 분명해졌다.

본 논문은 한국형 냉장고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속성상 냉장고는 음식과 관련된 제품이기 때문에 냉장고가 ‘한국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 고유의 음식, 혹은 음식 문화와 관계가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치는 주목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김치는 한국 음식 문화의 중심에 자리하는 식품이기 때문이다. 최형섭(Lim, Lee, Choi, Oh, & Jeon, 2017)이 「김치냉장고의 탄생과 한국적인 것의 기술 이데올로기」에서 밝혔듯이 “김치는 한국인의 정체성에서 핵심에 놓여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식품”이다. 이 때문에 그는 김치냉장고를 “근본적으로 한국형일 수밖에 없는 테크놀로지”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김치를 매개로 디자인되고 제작된 냉장고는 기본적으로 한국형 냉장고라 할 수 있다. 물론 김치만으로 한국형 냉장고를 정의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음식 이외의 주거 환경이나 생활 방식과의 관계 속에서도 고유한 냉장고 모델이 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김치가 아니더라도 한국 고유의 주거 환경이나 생활 방식이 한국형 냉장고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본 논문에서는 두 경우에 해당되는 냉장고 제품을 모두 한국형 냉장고로 정의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한국형 제품 관련 연구로는 오창섭(Oh, 2015)의 「90년대 한국형 가전제품의 풍경」과 박해천(Park, 2019)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국내 가전 업체의 디자인 전략 연구」가 있다. 두 연구는 사회문화적 차원과 기업 전략의 차원에서 한국형을 다루고 있어 한국형 가전제품 현상의 일반적인 내용과 맥락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지만, 한국형 냉장고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다. 냉장고에 한정해 한국형 제품을 다룬 연구로는 1995년 『마케팅 연구』에 실린 조관수, 황창규, 서성무(Jo, Hwang, & Seo, 1995)의 「금성사 김장독 냉장고」와 2021년 오창섭(Oh, 2021)의 「80년대 초 한국형 냉장고의 출현과 등장 배경」이 있다. 조관수 등의 연구는 마케팅 차원에서 금성사의 김장독 냉장고만을 분석하고 있어 디자인의 맥락에서 한국형 냉장고의 내용과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오창섭의 연구도 80년대 초 한국형 냉장고의 등장과 그 배경에 초점을 두고 있어 이후 올림픽 시기와 90년대로 이어지는 한국형 냉장고의 변화 과정을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 논문은 한국형 제품이 번성했던 올림픽 시기를 기준으로 전후 약 10여 년 동안(1984~1995) 출현한 대표적 한국형 냉장고들을 고찰함으로써 해당 시기 한국형 냉장고의 내용과 흐름, 특징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논문은 앞에서 제시한 한국형 냉장고 정의를 토대로 대표적인 한국형 냉장고들을 추출하고, 주제에 따라 4개로 구분하여 관련 내용을 고찰하였다. 이들 4개의 주제는 본 논문의 2장에서 5장에 이르는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각 장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2장에서는 1984년의 김치냉장고 출현과 배경을 다루었고, 3장에서는 1988년에 등장한 별도의 김치 보관실을 갖춘 제품들을 다루었다. 4장에서는 올림픽 이후부터 9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 동안 포화 상태에 다다른 냉장고 시장에서 판매 확대를 위한 제조사들의 노력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고찰했다. 5장에서는 1993년 김치냉장고와 1995년 이후 딤채로 대표되는 김치 전용 냉장고의 출현을 다루었다. 2장에서 5장까지는 시간 순으로 배열되었다. 그러나 각 장이 다루는 시간적 길이는 균등하지 않다. 이는 대표적인 한국형 냉장고들이 일정한 주기로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본 연구가 주제를 토대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논문은 최초의 김치냉장고가 출현한 1984년부터 딤채가 생산된 1995년까지의 기간을 시간적 범위로 취하고 있다. 그런데 논의 전개에 있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그 이전, 혹은 이후 시기의 내용도 다루었다. 연구에는 몇 가지 방법이 복합적으로 사용되었다. 우선 관련 문헌을 고찰한 후, 일간지와 잡지에 등장하는 냉장고 광고와 기사를 도상학적 해석과 담론분석의 방법을 통해 분석했다. 그리고 비평적 서술의 방법을 통해 분석된 내용을 해석하고 구조화함으로써 연구가 목적하는 결과를 도출하고자 했다.


2. 김치냉장고의 출현 (1984)

한국 최초의 냉장고는 1965년 금성사가 생산한 ‘금성 눈표 냉장고’ GR-120모델로 알려져 있다. 국산 냉장고가 판매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한동안 냉장고는 귀한 물건이었다. 『매일경제』(“The Wave of Luxury,” 1968)에 따르면 60년대 말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던 냉장고의 수는 5만 대였는데, 600가구당 1대꼴의 보급률이었다. 이는 당시 가구당 1.3대였던 미국이나 가구당 1대였던 일본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다. 냉장고는 고가였다. 경제적 이유로 냉장고를 사용할 수 없었던 서민들은 아이스박스와 같은 제품을 대용품으로 사용했다. 『동아일보』(“Refrigerator substitute ice box,” 1969)에 “아쉬운 대로 얼음만 사 넣으면 식품 보관이 어렵지 않은 아이스박스는 음식점은 물론 일반 가정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등장할 정도로 아이스박스는 인기 있는 제품이었다. 60년대 말 서울 시내에 인공 얼음을 유통하는 18개의 제빙회사가 있었다는 『매일경제』(“Ice,” 1967)의 기사 내용도 아이스박스를 사용하는 가정이 많았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일부 아이스박스 제품은 냉장고와 유사한 형태를 취하기도 했다. 얼음 냉장고로 불렸던 이런 아이스박스는 나무와 철판으로 제작되었는데, 녹이 스는 문제 때문에 플라스틱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문이 하나 달린 제품도 있었고, 위아래 문이 2개 달린 제품도 있었다. 이 경우 위 칸에는 얼음이 자리했고 식품은 아래 칸에 보관되었다.

단열재로 발포 플라스틱을 활용한 아이스박스 제품도 이때부터 사용되었다. 1970년 5월 18일 『경향신문』 (“Hawaiian kimchi ice box,” 1970)에 등장했던 태서화학공업사의 스티로폼 아이스박스는 그중 하나였다. 해당 제품의 광고를 보면 냉장고가 있는 가정에서도 김치 냄새가 나지 않게 보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에 실을 수 있어 언제 어디서나 시원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을 제품의 특징으로 소개했다. 이를 통해 아이스박스에 보관했던 주된 식품 중 하나가 김치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김치는 한국인의 식탁에서 중요한 식품이다. 식탁에서 비중이 크다 보니 김치의 보관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김치 보관 기간을 늘리려는 노력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땅을 파서 묻어놓은 김장독에 김치를 보관하는 전통도 그러한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이 방법은 도시 가정에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본격화된 산업화의 영향으로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은 그러한 문제를 심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양의 김치를 한꺼번에 만드는 한국 전통의 김장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그에 따라 김장독을 사용하는 문화도 한동안 지속되었다. 마당이 있는 도시 가정에서는 김장독을 전통적인 방법을 활용해 보관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에서는 베란다 같은 공간에 놓고 사용했다.

냉장고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얼음 냉장고는 점차 사라졌지만, 아이스박스는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음식 보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며 진화해 갔다. 그런 문제 중 하나가 김치 보관이었다. 한일 스텐레스의 다목적 김치독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작된 진화된 아이스박스 제품이었다. 이 제품은 플라스틱으로 된 외통과 스테인리스스틸로 된 내통 사이에 단열재를 두어 김치 보관을 돕도록 디자인된 원통형의 보관 용기였다. 『매일경제』(“Hanil Stainless's multi-purpose Kimchi-dok,” 1982)에 실린 광고(Figure 1)를 보면 “아직도 김치를 불편하고 비위생적인 재래식 오지독에 담고 계세요?”라는 표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해당 제품이 재래식 김장독과 경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름이 김치독인 것도, 제품의 형태가 원통형인 것도 재래식 김장독과 경쟁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광고의 설명 부분을 보면 “김치독은 특수단열재를 사용하여 보온과 보랭이 함께 되므로 오지독처럼 땅속에 묻을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여기서도 전통 김장독을 비교 대상으로 설정한 후 그보다 편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발코니, 베란다 등 아무 곳에나 놓아두시면 됩니다.”라는 설명 역시 해당 제품이 아파트와 같은 도시 가정의 김치 보관을 염두하고 제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Figure 1

Hanil Stainless's multi-purpose Kimchi-dok advertisement (1982)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주거 공간이 아파트로 바뀜에 따라 김치 보관은 점차 ‘한일 스텐레스 김치독’과 같은 새로운 제품의 몫이 되었다. 물론 80년대에도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의 경우 베란다에 재래의 김장독을 놓고 사용하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80년대 초에 이미 2가구당 1대 이상의 보급률을 나타낼 정도로 냉장고 보급이 빠르게 확대되었지만, 냉장고 보급의 확대가 전통 김장독이나 김치 보관을 위한 아이스박스 제품을 대체한 것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 둘은 다른 기능을 하는 제품이었다. 재래식 김장독이나 아이스박스 제품은 다량의 김치를 숙성시키며 보관했고, 냉장고는 김장독이나 아이스박스 제품에서 꺼낸 소량의 김치를 보관하는 역할을 했다.

냉장고에 보관할 때 김치는 일정한 크기의 통에 보관되었다. 그런데 김치가 얼기도 하고, 냉장고 안의 다른 음식에 김치 냄새가 배는 문제가 발생했다. 80년대 냉장고 개발의 한 축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주로 사용되었던 방식은 별도의 밀폐 용기를 두는 방식이었다. 1983년 금성사에서 출시한 ‘금성 전천후 냉장고’의 가장 아래 칸에 야채실과 별도로 김치 케이스를 둔 것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1984년 초 금성사는 45L 용량의 ‘금성 김치 냉장고’ GR-063 모델을 출시했다. 이 냉장고는 기존 냉장고와 달리 김치만을 보관하는 제품으로, 스테인리스스틸을 내장재로 사용해 김칫국물이 흘러도 녹슬지 않도록 제작되었다. 『조선일보』(“The birth,” 1984) 광고(Figure 2)에 등장하는 “냉장고에서 풍기던 퀘퀘한 냄새도 없애고”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제품 개발의 핵심 목표는 일반 냉장고에 김치 냄새가 배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금성사와 거의 같은 시기에 대우전자 역시 유사한 냉장고를 ‘대우 김치 냉장고’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동아일보』(“Daewoo Kimchi refrigerator,” 1984) 광고(Figure 3)에 따르면 온도 조절범위가 영상 1~10°C였던 ‘금성 김치 냉장고’와 달리 ‘대우 김치 냉장고’는 영상 8°C에서 영하 20°C까지 조절 가능했다. 그 때문에 대우전자는 냉동고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광고했다. 이 냉장고의 용량은 18L였는데 금성사의 것보다 작았다. 대우전자 역시 “일반 냉장고 안의 김치 냄새가 말끔히 사라져 다른 음식에 김치 냄새가 배지 않습니다”라고 광고함으로써 김치 보관에 있어 냄새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음을 보여주었다.

Figure 2

Goldstar Kimchi Refrigerator GR-063 Model advertisement (1984)

Figure 3

Daewoo Kimchi Refrigerator advertisement (1984)

그런데 금성사와 대우전자의 김치냉장고 제품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기능적인 맥락에서 볼 때, 둘은 재래식 김장독이나 김치 보관을 위한 아이스박스 제품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제품이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절약이 사회적 이슈였기 때문에 전력 소모에 대한 비용 부담을 감수하면서 이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김치냉장고를 일반 냉장고 대신 사용할 수도 없었다. 크기도 작고, 기능도 일반 냉장고보다 불완전하기 때문이었다. 김치냉장고는 일반 냉장고의 보조 용도일 수밖에 없었는데, 냉장고를 2개 사용하는 것은 당시만 해도 공간상으로나 경제적으로 일반 가정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사용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아서인지 후속 모델은 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금성사와 대우전자의 김치냉장고는 김치 보관을 위해 ‘김치냉장고’라는 이름으로 출현한 최초의 냉장고라는 점에서, 그리고 90년대 중반 김치냉장고의


3. 별도의 김치 보관실을 갖춘 냉장고 (1988)

1988년에 접어들어 김치가 다시 냉장고에 있어 이슈로 떠올랐다. 1989년 시장개방이 예고되면서 한국형 제품 개발 붐이 불기 시작한 게 주된 배경이었다. 1988년 3월, 금성사는 3도어 방식의 ‘금성 싱싱 냉장고’를 “김치 싱싱고 탄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광고를 내보냈다(“Goldstar 88 Kimchi Fresh Refrigerator,” 1988). 그런데 3칸으로 구성된 이런 형식의 냉장고는 그보다 2년 전인 1986년 3월에 ‘금성 전천후 냉장고(240L급 GR-243AF 모델)’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시되었다. 이 제품에서 싱싱고라고 불렸던 가운데 칸은 냉장실로도 사용할 수 있고 냉동실로도 사용할 수 있는 가변적 공간이었다. 그래서 1986년 광고(“The Goldstar Fresh Refrigerator,”1986)의 초점은 계절에 따라, 혹은 필요에 따라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는 데 맞춰져 있었다. ‘금성 싱싱 냉장고’가 아니라 ‘금성 전천후 냉장고’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금성사는 별도의 싱싱고가 식품을 싱싱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광고에서 그 칸을 바닷속 풍경으로 채웠을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생선의 이미지를 제품 옆에 배치했다.

Figure 4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988년에 크기를 290L급으로 키워 출시한 ‘금성 싱싱 냉장고’ GR-293CF 모델 광고에서도 싱싱고를 냉장실로도 사용할 수 있고 냉동실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그 내용의 비중은 크게 줄어들었다. 대신 “김치는 싱싱고에 냉장실은 훨씬 넓게 김치 싱싱고 탄생!”이라는 광고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치를 싱싱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싱싱고의 기능 역시 김치 보관에 맞춰져 있었다. 광고를 보면 전용 김치통이 자리하고 있는 싱싱고의 모습이 녹색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짙은 청색 점선으로 말풍선을 만들어 그 안에 김치가 담긴 전용 김치통의 이미지를 전통 김장독 이미지를 배경으로 크게 배치했다. 이러한 도상은 싱싱고가 전통 김장독처럼 김치를 맛있게 보관한다는 의미를 발산하고 있다. 실제로 설명 부분의 “김치맛이 기막히게 좋아집니다”라든지, “사시사철 싱싱한 김치맛을 오래오래!”라는 표현을 통해 그러한 내용을 구체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제품은 싱싱고가 별도로 자리하고 있어 다른 음식들에 김치 냄새가 배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1987년 6월호 『월간디자인』(Hong, 1987)에 제품을 디자인한 홍정표의 “금성 싱싱 냉장고 개발과정”이라는 글이 소개되었는데, 시장조사 분석 내용을 보면 김치 냄새의 문제 해결이 개발과정에서 중요한 이슈였음을 알 수 있다.

Figure 4

Goldstar Fresh Refrigerator GR-293CF Model advertisement (1988)

1988년 무렵은 김치칸을 별도로 만드는 게 냉장고 개발에 있어 유행이었다. Figure 5의 ‘대우 IC 냉장고 투투’ 390L급 FR-390A 모델의 경우도 냉동실과 냉장실 사이에 해동실과 함께 김치실을 별도로 두고 있었다. 광고(“Daewoo IC refrigerator 22,” 1988)에서는 독립 김치실을 소개하면서 “김치 냄새 안녕, 신 김치도 안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같은 해에 금성사가 김치 보관 용도로 싱싱고를 소개하면서 보여주었던 문제의식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금성사의 싱싱고와 대우전자의 독립 김치실은 1984년 두 회사가 각각 출시한 김치냉장고를 일반 냉장고에 편입한 모습을 하고 있다. 당시 상황과 문화를 고려할 때 별도의 김치냉장고보다는 일반 냉장고에 김치실을 별도로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Figure 5

Daewoo IC Refrigerator 22 FR-390A Model advertisement (1988)

Figure 6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988년 삼성전자는 ‘삼성 특선 냉장고 점보’ 460L급 SR-461A 모델을 광고(“Samsung Special Refrigerator Jumbo,” 1988)하면서 “우리 식생활에 알맞은 한국형 대용량”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당시 ‘한국형’이라는 표현은 경쟁사를 의식한 수사적인 의미가 강했다. 사실 해당 모델은 광고가 나가기 한 해 전인 1987년 10월에 출시된 제품으로, 출시 당시에는 ‘한국형’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광고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커가면 냉장고도 함께 커져야죠”, “이건 우리 집 슈퍼마켓이로군”, “이 정도 냉장고라면 대가족 잔치도 거뜬해요” 같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1987년 광고(“Samsung Special Refrigerator Jumbo Birth,” 1987)에서는 460L라는 큰 용량이 강조되었을 뿐이다. ‘삼성 특선 냉장고’는 1986년에 출시되었다. 하지만 이때에는 ‘점보’라는 표현이 이름에 없었다. 1987년 제품 이름에 ‘점보’라는 표현을 추가한 것은 대용량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Figure 6

Samsung Special Refrigerator Jumbo SR-321AS Model advertisement (1988)

그런데 ‘삼성 특선 냉장고 점보’ 광고의 하단을 보면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의 냉장고 4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 왼쪽에서 2번째에 자리한 320L급 SR-321AS 모델의 경우 ‘대우 IC 냉장고 투투’ 390L급 FR-390A 모델이나 ‘금성 싱싱 냉장고’ 290L급 GR-293CF 모델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칸(특선실)을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삼성전자 역시 유사한 제품을 생산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 제품을 크게 광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삼성전자가 이때부터 ‘한국형’이라는 표현을 냉장고에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1988년에 접어들어 삼성전자가 자사의 냉장고를 ‘한국형’이라는 표현으로 광고한 데에는 김치의 영향이 컸다. 일간지 광고에는 삼성 대형 냉장고의 특징을 3가지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 식생활에 알맞은 한국형 대용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대가족 한 달분 김치도 거뜬히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을 첫 번째 특징으로 들었다. 이는 김치가 한국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한 이유임을 보여준다.

5월에 이르러 삼성전자는 ‘삼성 특선 냉장고’ 270L급 SR-271A 모델을 ‘삼성 특선 냉장고 88’로 소개했다. 이름에 달린 ‘88’은 올림픽이 열리는 해임을 반영한 표현이었다. “김치 싱싱고 탄생”이라는 표현으로 광고를 내보냈던 ‘금성 싱싱 냉장고’ 역시 당시에 “금성 88 싱싱 냉장고”라는 방식으로 ‘88’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삼성 특선 냉장고’ 270L급 SR-271A 모델은 2도어 방식이었다. 하지만 냉장실 상단에 다목적 특선실이 있어 필요에 따라 김치 보관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생선을 보관하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는 금성사의 싱싱고와 대우전자의 독립 김치실에 해당하는 기능을 하는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4. 시장 포화기의 판매 확장을 위한 노력들 (1989~1993)

올림픽이 있었던 1988년 국내 냉장고 보급률은 가구당 1대꼴로 포화상태였다. 냉장고를 만들어 파는 기업들은 가정에서 냉장고를 구매해야 하는 새로운 이유를 제공해야 했다. 즉, 기존 냉장고를 교체하거나 추가로 구매해야 할 이유를 제시해야 했다는 말이다. 그러한 노력은 디자인과 기술, 크기라는 3갈래로 진행되었다.

디자인의 차원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이라고 한다면 냉장고의 패션화 경향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우선 가전제품이 전통적으로 취해 왔던 흰색에서 벗어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1989년 금성사는 외관 색상이 검정인 ‘금성 싱싱 냉장고 액센트’ 300L급 GR-303AD 모델을 출시했다. 검정 냉장고의 등장은 위생적 제품임을 환기하기 위해 사용되던 흰색이 88올림픽을 전후한 시점에 이르러 지루하고 개성 없는 색으로 이해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같은 해 대우전자 역시 검은색 냉장고를 출시했다. 이때 대우전자가 선보인 ‘대우 IC 냉장고 투투’는 검정뿐만 아니라 흰색, 아몬드색, 자주색, 핑크색 등 9가지 색상으로 만들어졌다. Figure 7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대우전자는 광고에서 기능을 내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가전제품도 주문생산 시대”, “대우 냉장고는 주부 여러분이 디자이너”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디자인만 골라주면 원하는 대로 맞춰주는 주문생산을 개시한다고 광고했다. 이것은 기능적 차원에서 냉장고를 정의해 왔던 기존의 움직임과 다른 것이었다. 즉, 음식을 보관하는 기능보다는 조화로운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개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표현 매체로 냉장고를 이해하는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광고는 다양한 색상의 제품 이미지와 함께 그것이 자리한 실제 주방 이미지를 함께 보여줌으로써 ‘대우 IC 냉장고 투투’의 패션성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주부는 단순히 소비자가 아니라 창조적 디자이너로 호명되고 있다.

Figure 7

Daewoo IC refrigerator 22 advertisement (1989)

90년대 접어들어서는 첨단 기술이 냉장고의 이슈로 부상했다. 1990년 삼성전자는 ‘삼성 크린 냉장고’ 284L급 SR-28A 모델과 375L급 SR-38A 모델을 5단 칸칸 냉각방식을 채택한 제품으로 홍보했다. 이에 대우전자는 ‘대우 냉장고 셀프’ 410L급 FRB-41BAH 모델을 인공지능 센서에 의해 작동하는 냉장고라고 광고했다. 1992년에는 살균과 탈취가 냉장고의 핵심 화두였다. 금성사는 ‘금성 싱싱 냉장고 그린그린’ 457L급 GR46-2AT 모델을 원적외선을 활용해 살균 탈취 기술이 적용된 제품으로 홍보했다. 삼성전자도 ‘삼성 바이오 냉장고 청’ 420L급 SR-4230 모델을 자외선을 이용한 세계 최초 살균 탈취 냉장고로 광고했다. 이렇듯 90년대 초에는 냉각방식이나 위생기능 향상을 위한 첨단 기술의 활용이 두드러졌다.

80년대 후반부터 대형 냉장고 소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1988년 4월 5일 『경향신문』(Jeong, 1988)은 250L 이상 크기 냉장고가 판매량이 1987년에 비해 10~20% 늘었다는 내용을 “가정용 냉장고 대형화 추세”라는 제목으로 내보냈다. 90년대에 접어들어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강화되었다. 1992년 4월 21일 『조선일보』(“People only look,” 1992)는 “TV도 냉장고도 큰 것만 찾는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다루었다. 대형 냉장고의 소비가 확대되면서 제조사들도 대형 냉장고 생산과 홍보에 열을 올렸다.

대형 냉장고의 소비 확대는 생활 수준의 향상과 그에 따른 소비문화의 변화에 기인한 현상이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의 임금이 급속히 상승했다. 구체적으로 87년 10.1%, 88년 15.5%, 89년 21.1%의 상승률을 나타냈다(Ahn, 1995). 이러한 추세는 90년대 초반에도 이어졌다. 그에 따라 90년 18.8%, 91년 17.5%의 임금상승률을 보이게 된다(“Wage increase,” 1992). 노동자가 곧 소비자인 산업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노동자의 임금 상승은 소비자의 소비력 증가를 의미한다. 늘어난 소비력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믿는 이들의 수를 증가시켰다. 중산층을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신광영(Shin, 2004)이 밝히고 있듯이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고, 자기 소유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자가용을 타고 출퇴근하는 이들이 당시에 중산층으로 불렸다.

자신의 정체성을 중산층으로 규정한 이들은 경제적, 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고유한 생활문화를 발전시켰다. 주말이면 자가용을 이용해 일주일 동안 생활에 필요한 식료품을 구매해 냉장고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중산층의 문화는 대형 냉장고의 소비를 촉진했다. 중산층 문화에서 여가는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가족들과 교외에 있는 가든식 식당에서 외식하는 문화도 그중 하나였다. 그들은 때가 되면 국내외 명승지를 찾아 떠나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는 당시 자동차 시가잭을 활용해 내용물을 차갑게 보관하는 아이스박스 형태의 냉장고를 등장시킨 배경이었다. 1993년 한양 프랜티가 출시한 ‘휴대용 냉장고’가 바로 그러한 제품이었다. 『매일경제』(“Hanyang Frenty's Portable Refrigerator,” 1993)에 실린 광고에서 이 제품은 전기를 사용하는 냉장고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아이스박스가 아닙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5. 한국형 제품의 유행과 김치냉장고 (1993~1995)

80년대 말부터 한국형 가전제품 개발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당시는 1989년에 1차, 1991년에 2차 유통 시장 개방이 이루어지면서 국내 시장 상실에 대한 기업들의 위기의식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태였다. 바로 이러한 위기감이 한국형 제품 개발을 자극했다. 세탁기는 물론이고 밥솥, 청소기, 식기세척기, 전자레인지 등 여러 제품이 ‘한국형’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되어 팔려나갔다. 1992년 9월 19일 자 『한겨레신문』(“Only ‘Korean-Style’ home appliances,” 1992)은 당시 분위기를 “가전제품 ‘한국형’이라야 팔린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다루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가전제품 이름 앞에 한국형이란 수식어가 안 붙은 게 드물 정도”의 상황이 펼쳐졌다.

냉장고도 이러한 상황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1993년 1월 27일, 『경향신문』(“Kimchi refrigerator,” 1993)은 ‘김치냉장고 나왔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금성사가 김장독 냉장고를 상품화했고, 삼성전자는 김치냉장고를 시판에 들어갔다고 소개했다. 당시 탱크주의를 표방한 대우전자는 신선 보관 기능을 강조하며 김치를 매개로 한 경쟁에 다소 다른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경향신문』 기사는 김치 냉장고 개발붐을 ‘김치 전쟁’으로 표현하면서, “최근 들어 신규 수요가 줄면서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냉장고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가전 업체들의 전략” 차원의 현상으로 설명했다. 가구당 냉장고 보급이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은 혁신적인 신제품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인식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 신제품 전략으로서 한국형 제품들이 유행했고, 냉장고 영역에서도 자연스럽게 한국 식문화의 대표 아이템인 김치를 주목하게 된 것이었다.

1992년 9월 삼성전자는 150L와 550L 용량의 김치냉장고 2개 모델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The first refrigerator,” 1992). 1993년 1월에 시판되기 시작한 ‘김치냉장고’ 150L급 SR-1570 모델(Figure 8)은 김치 보관만을 기능으로 하는 제품이었는데, 사람마다 다른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김치의 익힘 정도와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냉장고는 냉동실과 냉장실로 구성된 기존의 일반 냉장고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1993년 1월 일간지에 등장한 광고를 보면 아래 칸이 반쯤 열린 냉장고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그 속에 가득 채워진 다양한 김치들을 제외한다면 이 냉장고가 김치 보관을 위한 특별한 제품임을 연상할 수 있는 형태적 단서는 없었다.

Figure 8

Samsung Kimchi Refrigerator 150L Class SR-1570 Model advertisement (1993)

1993년 3월 2일 자 『매일경제』(“Samsung 10% Energy Saving,” 1993)는 삼성전자가 557L 용량의 김치 냉장고 SR-F5670 모델을 상품화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1992년 ‘한국전자전’에서 공개되었던 2개의 모델 중 대용량 김치냉장고 모델이 상품화된 것이었다. 1993년 5월 7일 자 『조선일보』(“The birth of Korea’s first,” 1993)에 등장한 해당 제품의 광고(Figure 9)를 보면 SR-F5670 모델은 크게 4칸으로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로부터 냉동실, 냉장실, 김치칸, 야채칸의 순이었는데, 크기는 냉장실이 가장 크고 김치칸이 가장 작았다. 냉장고 문은 총 6개였는데, 냉동실과 냉장실은 각각 2개의 문이 양쪽으로 펼쳐 열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야채칸은 서랍식 문으로 되어 있었다. 김치칸 문은 위에서 아래로 펼쳐지는 구조였는데, 열었을 때 문의 내면이 김치칸 바닥 면과 높이가 같아지도록 디자인되어 있어 안에 있는 김치통을 꺼낼 때 어려움이 없도록 했다. 이 제품은 1992년에 소개될 때와는 달리 ‘삼성 바이오 냉장고 칸칸’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칸마다 온도를 달리한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었다. 별도의 김치칸은 입맛에 따라 3단계로 김치를 익혀주는 기능이 있었는데, 이는 당시 김치 관련 냉장고의 개발 흐름을 반영한 것이었다.

Figure 9

Samsung Bio refrigerator Kankan advertisement (1993)

금성사 역시 1993년 1월 김치 전용실을 갖춘 김장독 냉장고 GR49-2CK 모델을 출시했다. 1993년 1월 17일 『동아일보』 광고(“A new history,” 1993)에서 금성사는 냉장고 개발 역사를 열거하며 “보관만 하는 냉장고가 아닙니다. 이제 맛까지 내는 혁신적인 냉장고, 금성 김장독 냉장고를 만나십시오.”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Figure 10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2월에 내보낸 광고(“The refrigerator makes Kimchi,” 1993)에서는 “냉장고가 김장김치를 만든다.”라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카피를 사용했다. 금성사의 ‘금성 싱싱 냉장고 김장독’은 김치 전용실을 냉장실 안에 마련해 원적외선 세라믹 재질로 제작한 김장독을 둘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또한 숙성도를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해 사용자에 따라 다른 입맛에 맞추려고 했다. 광고에서 “냉장고가 김장김치를 만든다!”라는 카피를 사용한 것은 김치를 단순히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맛있게 만드는 제품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 냉장고는 소비자로부터 큰 관심과 호응을 얻었고, 그에 힘입어 금성사는 4년 만에 냉장고 시장 점유율 1위에 다시 올라섰다(“Advanced understanding of consumer needs,” 1993).

Figure 10

Goldstar Kimjang-dok refrigerator GR49-2CK model advertisement (1993)

‘금성 싱싱 냉장고 김장독’은 사용자의 희망에 따라 풋 맛, 김장 맛, 익은 맛을 골라 숙성시킬 수 있도록 한 제품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능은 삼성전자의 김치 냉장고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크기와 디자인 정도였다. 용량이 150L인 삼성 김치냉장고 SR-1570 모델은 기능상 일반 냉장고와 함께 사용해야 하는 제품이었다. 냉장고 시장이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제품 개발의 방향은 당시 시점에서 일정 부분 합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제품은 기존 냉장고의 모습, 그것도 평범한 작은 냉장고의 모습을 취하고 있어서 추가로 냉장고를 구매할 수 있는 계층의 관심을 끄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더욱이 일반 냉장고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광고는 김치 전용 냉장고라는 제품의 성격을 약하게 만들어 포지션을 애매하게 만들었다. 구매자의 입장에서 볼 때, 김치 마니아가 아닌 이상 외형적으로 평범해 보이는 이 제품을 추가로 구입하기보다는 대형화 추세에 맞춰 김치 보관실이 있는 대형 냉장고를 구매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기존 냉장고에 추가로 이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제품만 사용하기에는 크기가 너무 작았고 기능도 한정적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당시 상황에서는 김치칸을 별도로 두고 있었던 557L 용량의 김치냉장고 SR-F5670 모델이 경쟁력을 가진 제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제품은 ‘삼성 바이오 냉장고 칸칸’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홍보 과정에 김치를 만든다는 점을 강조했던 ‘금성 싱싱 냉장고 김장독’과 달리 김치보다는 다목적 기능을 강조했다. 이로 인해 한국형 붐에 따라 김치맛을 매개로 펼쳐졌던 당시 시장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170만 원이라는 고가의 가격도 소비층을 제한적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냉장고는 크기에 있어서나 형태에 있어서 한국형 냉장고의 변화 흐름이 반영된 의미 있는 제품이었다.

‘금성 싱싱 냉장고 김장독’은 기와의 곡선을 활용한 디자인을 통해 기존 냉장고와의 적절한 차별화를 이루어냄으로써 인기를 끌었다. 104만 원이라는 가격은 상대적으로 합리적이었고, 480L라는 용량 역시 당시 대형화 추세를 반영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로 받아들여졌다. 1993년 8월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이 주관한 우수디자인대상에서 금성사 디자인종합연구소 안규성, 박성규가 디자인한 이 냉장고는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시장에서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1993년 12월 한국능률협회가 선정한 히트상품 선정되기도 했다.

냉장고가 김치를 단순히 보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숙성시키며 맛을 낸다는 개념은 2년 후인 1995년 ‘만도 위니아 딤채’ DS 531 모델(Figure 11)로 이어졌다. 김진경(Kang, H., Kim, M., Kim, Y., Kim, J., Park, H., Oh, C., & Choi, K., 2009)에 따르면 냉방기를 주로 생산하던 만도는 “프랑스에는 와인 냉장고, 일본에는 생선 냉장고가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는 우리의 고유한 음식 문화인 김치를 위한 냉장고가 없을까”라는 문제의식 속에 1991년부터 김치냉장고 개발에 들어가 딤채라는 제품을 만들어내었다. 딤채는 150L 용량의 ‘삼성 김치냉장고’ SR-1570 모델과 마찬가지로 김치만을 위한 냉장고였다. 그런데 1993년의 ‘삼성 김치냉장고’와 달리 ‘만도 위니아 딤채’는 김치냉장고의 개념을 재정의함으로써 형태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일반 냉장고와의 차별화를 이루어냈다. 출시 직후부터 딤채는 큰 인기를 끌었다. 90년대 후반에 이르러 김치냉장고라고 하면 딤채 스타일의 냉장고를 의미하게 되었다. 딤채가 인기를 끌자 유사한 디자인의 제품들이 다양한 이름을 달고 쏟아졌다. 홍황의 김치 숙성고, 삼천정공의 김치마을, 캐리어의 담그미, 신한전기의 김치냉장고 똑순이, 카슨전자의 김치나라, 청호나이스의 김치 나이스, 삼성전자의 김칫독 등이 그것이었다.

Figure 11

Mando Winia Dimchae DS 531 Model advertisement (1995)

딤채는 일반 냉장고처럼 수시로 문을 여닫으며 사용하는 제품이 아니었다. 다량의 식품을 일정 기간 보관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요리하거나 일반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으로 저장이 강조되는 제품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1993년의 삼성 김치냉장고 150L급 SR-1570 모델과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기능적으로 딤채는 김치냉장고 SR-1570 모델과 달리 전통 김장독의 역할을 하는 제품이었다. 이러한 면에서 딤채는 오히려 1984년에 출시된 ‘금성 김치 냉장고’와 ‘대우 김치 냉장고’의 계보를 잇는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10여 년 전에는 주목을 못 받았던 제품이 10여 년이 지난 1995년에 이르러 인기를 끈 데에는 한국형 제품의 유행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산층의 확대와 달라진 소비 환경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광고에서는 김치를 앞세웠지만, 사실 사용과정에서 딤채는 김치만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지 않았다. 육류나 야채류 등도 보관할 수 있는 기능과 용량이었고, 바로 그래서 이 제품은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딤채는 대형할인매장과 자동차, 30평대 이상의 아파트와 하나의 세트를 이루는 제품이었다. 딤채의 등장으로 아파트에 살면서 자가용으로 대형 할인 매장을 방문해 다량의 식료품을 구매한 후 보관하며 소비하는 중산층의 삶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동안 팽창하던 이러한 중산층의 삶의 방식은 1997년 말 발생한 IMF 외환위기 이후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IMF 이후 소비는 양극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 한 흐름이 2000년을 넘어서면서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로 구체화되었는데, 1997년에 출시된 삼성전자의 양문형 냉장고 지펠은 그 시작을 알리는 제품이었다.


6. 결론

본 논문은 최초의 김치 냉장고가 출현한 1984년부터 만도 위니아의 딤채가 출현한 1995년까지 약 10여 년 동안 대표적인 한국형 냉장고의 특징을 고찰함으로써 한국형 냉장고의 내용과 흐름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한국형 제품은 한국 고유의 사회, 문화, 경제적 맥락 속에서 등장했는데, 냉장고의 경우는 주로 한국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김치와의 관계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이 형성되었다. 물론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주거 환경과 생활 방식의 변화,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업의 차별화 전략 역시 한국형 냉장고를 출현시킨 중요한 요인이었다. 올림픽 전후 10여 년간 출현한 대표적인 한국형 냉장고들과 그 내용을 보면 Table 1과 같다.

Representative Korean-style refrigerators that appeared in the 10 years before and after the Olympics

연구를 통해 밝혀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81년 최초의 한국형 냉장고가 출현할 당시 냉장고는 2가구당 1대꼴의 보급률을 나타냈다.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그는 문화는 여전했고, 그에 따라 재래 김장독이나 특수 제작된 아이스박스 제품이 보관 용도로 인기를 끌었다. 1984년에 출현한 금성사와 대우전자의 ‘김치냉장고’는 아이스박스 형태를 응용한 최초의 김치냉장고로,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 등 도시 가정의 김치 보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별도의 냉장고를 통한 김치 보관은 공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당시에는 부담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후속 모델은 출시되지 못했다.

둘째, 1988년 기존 냉장고에 별도의 김치 보관실을 갖춘 3단 김치냉장고가 금성사와 대우전자에 의해 등장했다. 이들 제품은 1984년의 김치냉장고를 기존 냉장고에 추가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김치 냄새가 다른 음식에 배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했지만 재래 김장독이나 특수 제작된 아이스박스 제품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이 시기 삼성전자는 별도의 김치 보관실을 두기보다는 기존 냉장실 안에 별도의 김치 저장 공간을 두는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었다.

셋째, 80년대 말에 이르러 냉장고 보급률이 가구당 1대꼴을 넘어서면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가정에서 새롭게 냉장고를 구매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해야 했다. 그 방향은 디자인과 기술, 크기라는 3갈래로 진행되었다. 이때 등장한 다양한 색상의 냉장고는 개성과 취향이 강조되는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냉각방식이나 자외선, 적외선 등을 활용한 살균과 탈취가 강조되는 제품도 등장했다.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대형 냉장고에 대한 소비도 꾸준히 늘어 이 시기에 냉장고는 대형화 경향을 뚜렷하게 나타냈다. 이는 80년대 말 경제적 호황으로 인해 본격화된 중산층 문화와 관련된 현상이었는데, 여가를 중시하는 중산층 문화는 자동차용 냉장고와 같은 새로운 제품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넷째, 1993년 한국형 제품의 유행에 따라 다시 한 번 김치냉장고가 등장하였는데, 이 시기 김치냉장고의 특징은 냉장고가 김치를 단순히 보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숙성시키며 맛을 낸다는 개념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만도는 1995년 위니아 딤채를 출시했는데, 이 제품은 1984년 김치냉장고의 맥락에 자리하는 제품으로, 김치맛과 저장에 특화된 제품이었다. 재래 김장독이나 특수 제작된 아이스박스 제품을 대체했던 딤채는 대형 할인 매장과 자동차, 아파트 생활과 세트를 이루는 제품이었다. 딤채는 다양한 유사 제품들을 등장시키면서 이후 김치냉장고의 전형적 형태로 자리 잡았다.

결론적으로 한국형 냉장고는 주로 김치를 매개로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김치의 보관, 냄새, 맛은 핵심 이슈였다. 김치를 중심으로 한 한국형 냉장고는 냄새와 보관의 이슈에서 점차 저장과 맛의 이슈로 옮겨갔다. 한국형 냉장고는 딤채를 정점으로 사그라드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한국형’이 기본적으로 과도기적인 제품 형태이기 때문이었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 확산과 그에 따른 소비 양극화 현상은 냉장고의 이슈를 프리미엄으로 이동시켰는데, 한국형 김치 냉장고의 경험은 고유한 프리미엄 디자인 제품을 개발하는 데 토대가 되었다.

Acknowledgments

This paper was written as part of Konkuk University's research support program for its faculty on sabbatical leave in 2020.

Notes

Citation: Oh, C. S. (2022). The Development Process of Korean-Style Refrigerators: 1984~1995. Archives of Design Research, 35(1), 367-387.

Copyright :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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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Figure 1
Hanil Stainless's multi-purpose Kimchi-dok advertisement (1982)

Figure 2

Figure 2
Goldstar Kimchi Refrigerator GR-063 Model advertisement (1984)

Figure 3

Figure 3
Daewoo Kimchi Refrigerator advertisement (1984)

Figure 4

Figure 4
Goldstar Fresh Refrigerator GR-293CF Model advertisement (1988)

Figure 5

Figure 5
Daewoo IC Refrigerator 22 FR-390A Model advertisement (1988)

Figure 6

Figure 6
Samsung Special Refrigerator Jumbo SR-321AS Model advertisement (1988)

Figure 7

Figure 7
Daewoo IC refrigerator 22 advertisement (1989)

Figure 8

Figure 8
Samsung Kimchi Refrigerator 150L Class SR-1570 Model advertisement (1993)

Figure 9

Figure 9
Samsung Bio refrigerator Kankan advertisement (1993)

Figure 10

Figure 10
Goldstar Kimjang-dok refrigerator GR49-2CK model advertisement (1993)

Figure 11

Figure 11
Mando Winia Dimchae DS 531 Model advertisement (1995)

Table 1

Representative Korean-style refrigerators that appeared in the 10 years before and after the Olympics

주제 주요 제품 제품의 특징 유형 촛점 제조사
김치냉장고의
탄생
금성 김치냉장고 (84) 최초의 김치냉장고
냉장 기능 중심
아이스박스
형태 탑도어
냄새,
저장
금성사
대우 김치냉장고 (84) 최초의 김치냉장고
냉동 기능 포함
아이스박스
형태 탑도어
냄새,
저장
대우전자
별도의
김치 보관실을
갖춘 냉장고
금성 싱싱 냉장고 (88) 별도의 김치 보관용 ‘싱싱고’를 갖춤 3단 3도어 냄새,
보관
금성사
대우 IC 냉장고 투투 (88) 별도의 김치 보관용 ‘김치실’을 갖춤 3단 4도어 냄새,
보관
대우전자
시장 포화기의
판매 확장을
위한 노력들
대우 IC 냉장고 투투 (89) 검정색, 흰색, 아몬드색, 자주색, 핑크색
등 다양한 컬러, 주문생산
2단 2도어 색상 대우전자
삼성바이오냉장고 청 (92) 자외선 살균 탈취 2단 2도어 위생 삼성전자
휴대용 냉장고 (93) 시가잭을 활용하는 자동차용 냉장고 아이스박스
형태
휴대 한양
프랜티
한국형 제품의
유행과
김치냉장고
삼성 김치냉장고
(SR-1570, 93)
김치의 익힘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김치 보관 전용 모델
2단 2도어 냄새,
보관, 맛
삼성전자
삼성 바이오 냉장고 칸칸
(SR-F5670, 93)
김치의 익힘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김치칸’이 있는 4단 제품
4단 6도어 냄새,
보관, 맛
삼성전자
금성 싱싱 냉장고 김장독
(93)
냉장실에 김치의 익힘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김장독 내장, 우수디자인대상
대통령상 수상, 1993년 히트상품
2단 2도어 보관, 맛 금성사
만도 위니아 딤채(95) 김치 전용 냉장고, 다목적 저장 가능,
이후 김치냉장고의 전형으로 자리 잡음
아이스박스
형태의
확장 탑도어
맛, 저장 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