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of Design Research
[ Article ]
Archives of Design Research - Vol. 27, No. 1, pp.159-173
ISSN: 1226-8046 (Print) 2288-298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Feb 2014
Received 28 Feb 2013 Revised 16 Apr 2013 Accepted 04 Sep 2013
DOI: https://doi.org/10.15187/adr.2014.02.109.1.159

The Characteristics of Magazine Cover Design in Korea’s Early Modern Era

JoHyun Shin
Design Studies, Graduate School of Techno Design, Kookmin University
한국의 근대초기 잡지 표지 디자인의 특성


This journal was supported by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Grant Funded by the Korean Government(MEST)
이 학술지는 2013년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출판되었음

Background Korea Design recently have been developing fast. It is important to write the history of design in this situation, for design history is a threshold for design practice. This article researches the characteristics of magazine cover design in Korea’s early modern period. This study could provide a arguable perspective on Korean contemporary graphic design through looking back its starting point.

Method The characteristic aspects of the magazines which published from 1876 to 1910 in Korea were categorized and analyzed through their various significances focused on cover and contents pages. The analysing main elements are sign, symbols, illustration, typography, page layout and colors. These elements were researched under the relation of their formation, and its social and cultural meaning.

Results The particular points of magazine cover design in Korea’s early modern period are as follows; Firstly, decoration and symbolic visual elements were used along with illustration. Secondly, diverse Chinese typographies were shown especially around the title. Thirdly, professional design perception seemed to emerge even though it was rare. Fourth, magazine design played a part in differentiating the readers’ identities. Fifth, generally red and green were used often for the cover and contents pages. The enlightenment movement which was asked under the oppression of colonial period can be said to be basic factors for shaping the substance of the magazine design of this era.

Conclusion The starting point of Korean magazine design is effected by the periodical circumstance, the restraint of colonial situation. It exposed strong nationalistic tendency. This perspective suggest a controversial perspective on Korean graphic design.

초록

연구배경 이 논문은 한국 근대초기 가장 새로운 매체인 잡지에 대한 연구로 1876년 개항부터 1910년까지 발간된 잡지 41종의 표지를 증심으로 목차 제호 등 그 디자인 특성을 범주화하고, 그것이 지니는 의미를 해석하였다. 이 연구는 디자인의 영역과 결과물이 다양하게 발전하는 현 시점에서 디자인 행위에 대한 성찰과 비평적 의식을 제고하고 한국 현대 디자인의 시각성을 규정한 원류를 찾아보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연구방법 근대 초기의 사회적 상황과 출판 인쇄 상황을 살펴 본 후 잡지의 표지, 목차 페이지의 특성을 도출하는 귀납적인 연구 방식을 사용하였다. 잡지의 구성 요소 중 타이포 그래피, 일러스트레이션의 상징성, 지면 레이아웃, 색채 등 디자인 요소를 분석하되, 이것이 지닌 문화사회적 연관성을 유추하여 해석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연구결과 이 시기 잡지 디자인의 특성은 다섯 개로 도출되었다. 첫째 장식, 상징물, 일러스트레이션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상징물로는 주로 태극, 한반도 지도 형상, 꽃 등이 사용되었다 둘째 제호를 중심으로 한자의 타이포 그래피적 다양성이 전개되었고, 셋째 <소년>이나 <조양보> 등과 같이 전문적인 디자인 의식을 보여주는 잡지가 등장하였다. 넷째 장식이나 상징 등을 차별적 사용하는 단초가 보이기 시작하며, 이는 독자층의 정체성을 차별화하는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 색채 사용에 있어 녹색과 빨간색을 주로 사용했다.

결론 한국 잡지 디자인의 출발 지형을 결정한 요소는 당시 잡지가 추구하던 계몽과 교육, 애국에 대한 강조였으며, 그래픽적 조형행위는 이를 형상화하는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민족 이데올로기가 도상의 상징성이나 제호의 크기 등을 통해 즉물적으로 형상화된 경향이 강한 것이다. 이런 이념적 특성이 강하게 드러났음에도, 이 당시 잡지의 표지나 목차 디자인은 다양한 시각성을 도입하면서 각각 뚜렷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Keywords:

Early Modern Era, Magazine Design, Decoration, Enlightenment, 근대 초기, 잡지 디자인, 계몽, 장식성, 전문성

1. 서론 : 연구의 배경 및 목적

한국의 디자인은 다양한 결과물을 산출하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팽창하는 디자인 행위의 저변에서 이를 조망하면서 디자인 행위의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는 역사 연구는 빈약한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 연구는 한국 근대초기 잡지 디자인의 특성을 분석하여 한국 그래픽 디자인 역사 기록의 단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근대 초기는 1876년의 개항부터 1910년 한일합병까지의 시기로, 잡지는 이때 새롭게 도입되어 해외 지식의 수용과 시대인식을 형성하면서 근대성의 일상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매체였다. 이 연구에서는 근대 초기의 잡지 표지와 목차페이지를 중심으로 그들의 시각성에 드러나는 특성을 범주화한 귀납적 연구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 연구는 새로이 형성되던 근대성이 시각정보 디자인을 통해 일상에 내재화되어가는 방식에 대한 연구이며 동시에 한국의 현대 디자인의 시각적 원형 탐색작업과도 맞닿아 있다. 또한 통시적 방식의 한국 그래픽 디자인 역사 서술의 단초를 제안하면서 그 당시 역사적 현상에 대한 논점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2. 근대초기의 사회문화 및 출판 상황

개항은 조선 사회에 생활양식의 변화와 더불어 일본의 침탈에 대한 보편적 저항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이 중 지식인을 중심으로 전개 되었던 개화사상은 새로운 문물과 지식을 이 땅에 전수하여 깨인 사상이나 힘을 바탕으로 국권강화를 꾀하고자 한 사상이었다. 개화란 “개물성무(開物盛務)하며 화민성속(化民成俗)”(한국근대사학회, 2012,p.89) 이라는 표현을 쓴 황성신문 1989년 9월 23일자 논설에서 처음 등장한 말로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백성을 교화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러한 개화사상은 출판을 통해 가장 활발히 이루어졌다.

근대 이전 조선의 서적 출판은 주로 목판으로 이루어졌으며 후기에는 민간 출판업자가 상업적 목적으로 펴낸 방각본 소설을 비롯하여, 목판본 천주교 서적, 동학의 경전 발행이 활발하여 대중적 출판의 맹아가 마련되었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인쇄소는 1883년 8월 대한제국 정부가 일본인 인쇄 기술자를 초청해서 설립된 박문국이며, 여기서 그해 10월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를 인쇄하였다.

근대적 지식에 대한 활발한 요구는 민간자본, 종교출판사, 정부주도 등의 다각적인 출판주체를 양산시켰으며 이는 그 간의 관에 의한 지식독점 체제를 무너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1890년대 이후 1910년까지 민영출판사는 30여개에 달했다. (고정일, 2012) 이런 흐름 속에서 근대적 인식체계를 확산시키고 민족의 독립을 강화하는 사상, 새로운 생활 방식의 교육, 일상의 사소한 일까지 보도하는 근대초기 매체계 (media-sphere)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매체계는 목판, 석판, 활판 등의 다양한 인쇄 방식이 양산한 신문, 잡지, 교과서, 전문지, 문학서, 친목회 회보, 종교서적, 엽서, 우표, 상표, 포스터, 광고, 초등학교 수신서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들 근대 매체는 그 당시 확장되던 서구적 근대성을 시각성을 통해서나마 균질적으로 수용케 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다양한 근대기 매체 중 신학문과 개화기의 계몽적 지식을 가장 많이 반복적으로 전달해 준 것이 잡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잡지는“국권만회를 위한 잡지요, 자유와 민권옹호, 신장을 위한 계몽적, 구국적 잡지였고 대부분이 강의식이거나 교과서식 잡지”(조남현, 2012, p.25)였다. 이런 특성에도 불구하고 잡지는 관이나 민간사립학교 출판 자본이 감당하지 못한 선진적이고 수준 높은 지식담론을 개진했으며, 그간의 통합적인 학문 체계를 분과 학문의 전문적인 지식 체제로 바꾸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구장율, 2012) 근대초기 국내의 한국인 발행 잡지는 종교잡지, 학술지, 학회지, 친목회회보를 합하여 41종, 일본을 비롯하여 미주지역, 하와이 등에서 한국인이 발간한 잡지는 17종, 국내의 선교사들이 주로 발행한 종교잡지 8종, 일본인이 발행한 10종의 잡지가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한국에서 한국인이 발행한 잡지 41종을 연구대상으로 하였으며, 최초의 잡지 3종은 개별 항목으로 제시하였다.


3. 한국 최초의 잡지

발간지와 발간 주체 등의 기준으로 볼 때 한국 최초의 잡지는 코리안 리포지토리, 친목회회보, 대조선 독립협회 회보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Figure 1, 2

Korean Repository

Figure 3

Bulletin of Social Gathering

Figure 4

The Chosun

<코리안 리포지토리>는 1892년 미국인 올링거 목사 부부가 발행한 월간 영어잡지이다. 표지에는 영어로 제목과 발간 연도 등이 표기되어 있으며, 목차 페이지에는 전체 화면에 테를 두르고, 사각귀퉁이에 아르누보 형식의 식물 장식이 그려져 있다. Figure 1, 2)

<친목회회보>는 일본에 관비로 유학을 간 113명의 조선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1896년에 발행한 잡지이다. (Figure 3) 한자 종서의 제목 뒤에 세계지도를 배경으로 넣었다. 그 당시 보기 드물게 표지에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들어 간 것이 특징으로 세계 지도는 이들의 개방된 세계에 대한 관심과 유학생들로서의 그들 스스로의 위치에 대한 자각이 반영된 이미지로 해석할 수 있다.

<대 조선 독립협회 회보>는 1896년 11월에 독립협회가 창간, 반월간으로 1898년까지 발행했다. (Figure 4) 표지에는 대문자만으로 표현된 영문제목 아래로 좌우 양편에 한문과 영문 제목이 정확히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또한 한글은 띄어쓰기를 하면서 평체를 사용하여 강한 느낌을 형상화 했다. 이와 같이 한국의 최초라고 말해지는 세 개의 잡지 표지는 전통적인 책자인 한적의 표지에 제목만 쓰던 관습을 계승한 점이 드러나며 동시에 여기에 장식적 문양이 첨가되는 디자인으로 점차 변화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4. 한국 근대 초기잡지 디자인의 특성과 경향

본 장에서는 한국의 근대 초기 잡지 41종 잡지의 표지와 목차를 분석하였다. 표지나 목차의 문양, 타이포 그라피, 일러스트레이션, 색채 등 그래픽 디자인 요소들을 살펴보면서 이들의 특성을 범주화 하는 귀납적 연구 방식을 사용하였다.

4.1. 장식성과 일러스트레이션의 등장

Figure 5, 6

Gadeung Magazine Cover

Figure 7

Contents of Gadeung Magazine

Figure 8

Great Generals of Korea, Novel

(1)일러스트레이션의 사용 - 가정잡지

<가정잡지>는 서울 상동교회 청년학원에 의해 32쪽으로 발간된 순 국문 여성지로 주시경·양기탁 등이 필진이었고 해외 특파원도 있었다. 1906년 8월호의 표지에는 가정을 배경으로 동양화풍의 삽화가 그려져 있고, “맹자가 어머니를 속이지 아니한 일”이라는 문장이 있으며, 제목을 사선으로 배치했다. (Figure 5) 표지에 테두리를 두르는 것은 그 당시의 유행하던 디자인이었지만, 이 잡지의 테두리는 장식성이 강하고 다른 것에 비해 두껍게 과장되어 있다. 1908년 8월의 표지에서 볼 수 있듯이 가정 잡지의 표지는 연속해서 교훈적인 내용을 자세한 삽화로 보여주었다. (Figure 6)

한국에서 삽화는 신라시대에 불경의 내용이나 교의를 알기 쉽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사경변상도 (寫經變相圖)에서 처음 출발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인 1007년도에 들어서 판화로 제작되었다. 이후 조선 중기에 백성들에게 많이 배포한 <부모은중경> 을 비롯하여 대중을 교화하는 수단으로 많이 확산되었으며, 조선후기에는 의학이나 농학 등의 실학저서 출간이 활발해 지면서 목판삽화의 범주가 다양해졌다. 또한 한글로 쓰인 서민소설이 유행하여 소설 내용과 관련된 삽화가 삽입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삽화) 이와 같이 삽화는 대중적인 교육을 목표로 내지에 내용 해설을 위해 주로 사용되었으며 표지에 사용된 예는 없었다. 개화기에 들어서서 교과서의 삽화를 기점으로 새로운 매체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었으며, 표지화는 1906년에서 1910년대 초기에 출판된 신소설류를 통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여, 단행본 표지에 삽화가 등장하기도 했다. (홍선표, 2009) 이범진은 황성신문의 기고문에서 신문에서의 삽화의 역할을 “외국의 강토나 기계, 인물 등을 약화하는 것은 우매한 지아비나 부인일지라도 한번 보고서 그 방향과 형상을 알 수 있다”(홍선표, 2009, p.84) 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그 당시의 우매한 남자들과 부인들처럼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보조 수단으로 삽화가 사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삽화가 들어간 디자인은 같은 해인 1907년에 “국민들의 마음과 뜻이 번쩍 뜨이는 작품을 내겠다.”(고정일, 2012,p.88)는 의지로 회동서관에서 발행한 <해동명장전>(Figure 8) 과 대조를 이룬다. 이 책은 조선인을 교육하고 기개를 높이겠다는 뜻을 표명하고 있는데 세로 쓰기의 한자로 되어있다. 이러한 대조는 한글, 가로쓰기, 장식의 과다함 등이 여성의 성 정체성을 정립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2) 태극

Figure 8

Taegeuk Society Magazine

Figure 9

Neojajinam

Figure 10

Kongsoo SocietyMagazine

Figure 11

Great Unite News

이 시기 빈번하게 사용된 시각 상징물로 태극을 들 수 있다. 1906년 관서 지방의 동경 유학생들 모임인 태극학회에 발간된 학회지인 <태극학보>의 경우 태극기를 묶는 타슬이 장식적 요소이면서 동시에 묶음 즉 결합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태극기의 깃대를 사선으로 배치한 것을 통해 제호에 위용을 더함과 동시에 강하고 역동적인 구도를 지향했음을 알 수 있다. (Figure 8) 1908년에 여자 교육회에 의해 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에 의한 여성 잡지라고 할 수 있는 <녀자지남>의 표지는 태극을 중앙에 넣고 그 안에 월보라고 표기했으며, 아르누보 양식의 두꺼운 식물 문양으로 표지 전체를 두른 배치로, 역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잡지의 특성을 보인다. (Figure 9) 1917년 동경에서 창간된 공수학회의 기관지인 <공수학보>의 표지 역시 장식적 테두리를 초록색으로 두른 후 안쪽에 건곤이감을 배치했다. 제호를 묶은 박스 하단에는 태극이 조그맣게 장식되어 있으며 위에는 꽃이 활짝 핀 나뭇가지를 넣어 공수학회의 번영과 애국성을 형상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Figure 10) 이외 <대동보>의 표지에서도 태극이 사용되고 있으며, 건곤이감의 사괘 주위를 작은 꽃 패턴의 사각형으로 감싸고 있다. (Figure 11) 이외에 <대한유학생회 학보>,<대한흥학보>둥의 잡지들 또한 태극 장식과 지면 구성, 제호 타이포에 있어서 유사점을 보이면서 잡지가 지닌 민족적 이념, 계몽성을 태극을 통해 전면적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3) 한반도 지도 형상

Figure 12

Great Korea Self-Empowering Magazine

Figure 13

Monthly Education Magazine

Figure 14

Great Korea Society News

Figure 15

Tongin Society Magazine

Figure 16

Kuwoonmong, Novel

<대한자강회월보>는 정치단체인 대한자강회가 1906년부터 1907년까지 발행하면서, 대한정신과 자강주의, 자주독립 등의 내용을 실었다. (Figure 12) 표지는 녹색 바탕에 붉은색으로 한반도를 넣은 후 그 속에 제호를 백색으로 뽑아 배치하였다. “표면 홍색은 우리의 대한지도이며 삼면의 청색은 영해 표시오 그 중에 대한자강회 월보 칠자를 대서하였으니, 이는 당당한 조국영역을 표시하여 국민 된 자 대한 이 칠자의 정신을 항상 잃지 않게 하고자 하는 특색” (조남현, 2012, p.40) 이라는 제 3호의 설명을 통해 한반도 모양의 형상을 사용한 의도를 밝히고 있다. 표지 제호는 자형의 힘과 상징성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는데, 대(大)자의 경우 사람이 우뚝 서있는 형상이며, 강(强) 자의 경우 반도의 중앙부분에 위치하면서 활궁(弓)의 획이 기운차게 흘러내리면서 제호가 한반도 전체를 메우고 있다. 이는 “大韓自强” 즉 스스로 강하고자 하는 당시 애국 계몽 운동가들의 의지를 서체와 그 크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디자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외에 최초의 교육 잡지로 남궁억이 1908년에 발간한 <교육월보> (Figure 13), 대한 자강회의 후신인 대한협회가 만든 <대한협회회보> (Figure 14), <동인학보>(Figure 15)에도 한반도의 지도 형상이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근대초기 잡지에 많이 사용된 태극, 한반도 형상의 지도 등은 그 당시 잡지가 추구하던 계몽성과 민족성의 상징적 대리물로서 없어진 국권에 대한 울분의 대응체, 즉 파토스적 형상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문양이 시대적 정서의 대리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단순히 시각적 쾌감을 추구하는 의도로 쓰여 진 아르누보 스타일의 테두리, 꽃이나 선박, 동식물 문양, 그 외의 문양 등이 등장하는 특성도 드러난다. 이런 문양은 단지 출판물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닌 그 당시의 공예품이나 자수 등에서도 등장하던 것들이었다. 여기서 사용된 장식적 문양의 사용 경향은 그 당시 유럽이나 구미에서 유행하던 영국의 빅토리아 양식과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필립 멕스(Philip Meggs)는 “감상주의, 노스탤지어, 그리고 이상화된 미의 기준이 어린이, 젊은 처녀, 강아지, 꽃의 이미지로 구현되었다“ (필립 B. 멕스, 1985) 라고 빅토리아 시기의 그래픽 이미지를 규정지었는데 이와 같은 시대적 조류를 근거로 볼 때 조선의 근대잡지에 광범위하게 등장한 장식 문양은 이러한 서구 스타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시대 대중들에게 더 광범위하게 읽혀진 방각본 소설 중 <구운몽> 에서는 사찰문양을 이용한 장식이 보인다. 특히 우측 하단의 비늘문은 그 당시 지도에서도 많이 사용되던 대중적 문양이었다. (Figure 16) 이는 일반 대중들이 읽는 텍스트에는 내용과 부합된 상징물, 당시 조선에 널리 퍼져있던 보편적인 시각물이 장식 겸 상징 요소로 사용된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학회지 등의 표지 구성 양식이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그 당시 서로 간의 디자인 모방을 통해 시각장을 형성해 나간 결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 시기 그래픽 디자인 역할에 대한 전문가적인 의식은 없었다는 잠정적 결론을 제시하게 한다. 즉 디자인 과정에서 대상잡지 내용을 해독한 후 그에 대한 시각성을 제시하여, 그 잡지의 정체성을 표명한다는 의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해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동질적이고 집합적인 표상의 구축”(김영찬, 2006,p.16)이라는 근대적 시각장의 특성이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다.

4.2. 타이포 그래피의 다양성 발현

이들 잡지의 제호는 조선시대의 책 표지에 쓰이던 붓글씨체의 변형으로, 대부분 그 당시 유명 서예가에게서 받아서 사용했다.

1906년 발행되어 최남선의 소년 발행에 모태가 되었으며 이인직이 활동한 잡지로 유명한 <소년 한반도>의 경우, 한자 제목을 강렬한 획과 약자(略字)로 중앙에 종서로 배치함으로써 소년 한반도의 강인함을 의도했다. (Figure 16) 목차 페이지에는 상단에 종서 한 줄로 근대 분과학문의 분야를 차례로 배치했다. (Figure 17)

Figure 16, 17

Boy Korea Peninsula, Cover and Contents

Figure 18

West Friends Society

Figure 19

Midnight Thunder

Figure 20

Bosung Middle School News

Figure 21

Mathematics Society Magazine

<서우>는 평안남북도, 황해도 출신의 지식인이 주가 된 서북학회에서 1906년 발행한 학회지로 표지는 초록색 바탕에 빨간색의 얇은 테를 두르고, 제호를 흰색으로 하여 부각시켰다. 강한 붓글씨체와 녹색, 빨간색의 대비는 그 당시 발간된 여러 잡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성의 하나이다. (Figure 18) <야뢰>는 말 그대로 ‘밤의 벼락’이라는 뜻에서 나타나듯이 발행자 오영근이 ‘우뢰처럼 빠르고, 강한 신천지’(문화재청, 2010, p.188)를 고대하면서 1907년 창간한 종합지 이다. 제호는 한문 전서체의 변형 혹은 새로 제작한 서체로 볼 수 있으나, 자체에 사용된 곡선이 주는 형상성 때문에 발행자가 스스로 천명한 ‘강하고, 큰 소리를 내는 한반도의 기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Figure 19)

이외에 1910년에 발행된 <보중친목회보>는 1906년 설립된 보성 중학교의 교지로 우리나라 학교 교지의 효시로 간주되고 있다. 이 회보의 표지는 한문 보중(普中) 두 글자를 종서로 확대하여 잡지의 테두리로 형상화한 후 한자의 글자 안에 보중친목회보의 제호를 넣어 타이포그래피의 가능성을 극대화한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다. (Figure 20) 또한 1905년에 창간된 <수리학잡지>는 아치 모양으로 배열된 제호의 형상성뿐 만 아니라 길이가 다른 종서 2단 체계를 통해 레이아웃의 색다른 추구를 보이고 있다. (Figure 21)

이들 잡지의 표지는 문자의 형상성만으로 잡지의 성격을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타이포그래피가 지닌 힘을 사용한 디자인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또한 타이포그래피적 다양성과 실험성을 보여준다는 뚜렷한 특성을 보인다. 자획의 기하학적 변형과 다양한 자형 등은 잡지의 이념을 확연하게 전달해주고자 하는 디자인 의식을 드러내는 실험적 자형들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조선이 보유하고 있던 전문적 분야로 축적된 서예의 오래된 전통이 새로운 매체에 부응하여 발전하고 성숙할 수 있는 실험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결합은 다양한 서체의 등장과 부침만을 보여줄 뿐 서체의 원형을 만들어서 그것을 반복적으로 이용하려 하지는 않았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또한 모든 잡지에 한자 제호가 사용되면서 그 당시 주시경이 <협성회회보>나 <독립신문>을 통해 실험한 (박암종, 1995) 것과 같은 한글의 사용과 변형에 대한 시도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은 한글을 천시한 시대적 한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4.3. 전문적인 디자인 의식의 맹아 표출

Figure 22

Magazine Boy Cover

Figure 23

Magazine Boy Contents

Figure 24

Explanation on the Contents of Magazine Boy

Figure 25

Catholic Bible

Figure 26

Morning Sun

<소년>은 최남선이 1908년에서 1911년까지 발행한 종합잡지로 발행일인 11월 1일을 ‘잡지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으며, 우리 나라의 최초의 근대시인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실린 잡지로 유명하다.

창간호의 표지를 보면 제호 ‘소년’을 월계수의 푸른 잎이 둘러싸고 있으며 하단 박스의 중앙에는 태극이 붉은색으로 인쇄되어 있다. (Figure 22) 제호 양쪽에는 잡지 발간의 주된 목적을 실었는데, 붉은 색의 박스 안에 글자의 숫자까지 똑같이 맞춤으로써 시각적으로 정확한 좌우 대칭 구성을 이루고 있다. 녹색의 월계수와 붉은색의 박스, 붉은 태극에서는 보색대비가 주는 발랄함, 건강함이 의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뚜렷한 특징은 승리와 미래 등을 내포하는 월계수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제호 ‘소년’의 의미와 시각성을 증폭시킨 점인데, 이는 일본 유학을 한 최남선이 그곳에서 근대적 도상, 서구의 상징물이 지니는 의미를 숙지하여 제시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목차 페이지의 하단에는 조선의 소반에 나리가 꽂힌 화병이 올라간 이미지가 제시되어 있으며, 장미문양이 네 귀퉁이에 있는 리본 느낌의 장식적인 테두리가 둘러 있다. (Figure 23) 또한 목차 해제 부분에서는 활자의 크기를 달리 사용하여 내용전달에 시각성과 리듬감을 부연한 특징도 보인다. (Figure 24 <소년>은 그 지향하는 바, 대상 ‘소년’에 거는 미래, 기대, 성취 등의 이미지를 시각적인 구도와 상징으로 성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래픽적 구성이 목적으로 하고 있는 “전후 관계에 의해 독특한 의미를 전달하며, 기호의 자리매김을 통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리처드 홀리스, 2009, p.7) 하는데 성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디자인적 의도가 그래픽적으로 실현시키는 미적 쾌감을 통해 잡지의 지향점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호에 서양의 월계수, 즉 이 땅에서는 그 당시 보지도 못했으나 서구에서는 승리와 영광을 뜻하는 상징물이 사용되었다는 점은 한국의 그래픽 디자인의 전문성이 출현하는 지점에서 서구성이 이미 우위를 점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런 문양은 서양의 선교사가 만든 성경책인 <영세대의>표지의 포도 문양과 대비를 이룬다. 표지에는 기독교적 풍요의 상징인 포도 문양이 사용되고, 신에 대한 찬양의 도구로 쓰이는 새가 등장하고 있으나 그 형상성은 조선의 산수화나 화조도에 등장하는 포도형상과 새가 사용되고 있다. (Figure 25) 이 표지는 선교를 위해 대중적으로 친근한 이미지를 사용했으며, 이 땅의 토착 정서에 쉽게 다가가려고 했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의 지식인은 서구의 상징을 사용함으로써 그 시대의 개화사상과 서구 사상에 부응하는 서구적 시각성으로의 전환을 달성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위의 <구운몽>의 예시와 같이 지식인 중심의 잡지에 쓰이기 시작한 서구적 시각문양이 조선의 자생적인 토착 문양과 공존하되, 서서히 그 우위를 점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전통적 시각 상징물이 추방되는 과정은 조선을 지탱하던 정신적 의식과 가치가 폐기되거나 거부되어 가는 과정과 동일한 궤를 밞고 있다.

이외에 전문적 디자인 감각을 보여주는 잡지로는 1906년 종합지로 발간된 <조양보>를 들 수 있다. ‘아침 햇살’ 제호의 상징성을 위해 붉은 색 바탕 처리를 한 후 흰색으로 제목을 쓴 기법, 잡지의 내용을 표지에 인쇄한 방식은 새로운 시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제호의 위치가 그 당시 대부분의 잡지의 제호 위치인 중앙이 아닌 오른쪽 상단에 위치했다는 면에서 특성이 드러나며 이런 디자인을 통해 잡지 <조양보>의 정체성을 형성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Figure 26)

4.4. 독자의 정체성 차별화에 기여

잡지가 설정한 주 독자들의 성별, 연령, 사상, 역할 등에 따라 그 정체성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재현하는 방식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에는 언문이라 하여 홀대를 받던 한글제목이 사용되고,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다고 여겨지던 삽화를 쓰거나 과다한 장식성이 부여되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위에서 살펴 본 <가정잡지>의 경우도 과다하게 두꺼운 테두리선의 장식이 사용되었으며, <녀자지남>(Figure 9) 의 경우에도 잡지의 테두리선이 두껍고 장식적인 면이 강조되어 있다. 이와는 대비되게 <소년>에는 승리를 상징하는 월계수가 사용되고,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던 학회지나 월보에서는 주로 한반도의 형상, 태극 등이 사용되거나 제호만을 사용했다. <서우>, <대동학회월보>, <장학보>, <서북학회월보> 등에서도 테두리가 보이나 그 선이 가늘거나 혹은 간단한 장식적 테두리가 사용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근대적 인식과 관념은 당대에 태동되던 다양한 사회상과 결합되면서 특정 기표로 형상화되어 독자들의 정체성을 정착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화의 기술은 재현이 없었다면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무관심하게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사회적 경계와 차별을 확연히 인식”(아드리언 포티, 2004, p.118) 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앞으로 이와 같은 특성이 더욱 증폭되며 전개될 잡지 발흥시대의 도입부 역할을 했다.

4.5. 색채 사용의 특성 표출

근대 초기의 잡지 표지에는 바탕이나 제호에 붉은색과 녹색이 많이 사용되었다. <야뢰>는 녹색 바탕에 붉을 색으로 제호를 사용하였으며, <교육월보>는 붉은색에 백색으로 제호를 뽑았다. 이외에 <소년>의 표지에서 월계수는 초록색으로 태극은 빨강으로 되어 있으며, <조양>에는 짙은 붉은 색 박스 바탕에 선명한 백색의 제호가 사용되었다, 이외에 <동인학보>, <소년 한반도>, <대한협회회보> 등에도 녹색과 빨강이 사용되었다.

빨강과 초록의 동시 사용은 색채 심리적으로 볼 때 보색대비 효과인 발랄하고 긍정적인 심리를 자극한다. 이런 시각으로 볼 때 청록과 빨강의 사용은 그 당시 한국사회의 무기력한 감성을 극복하려는 무의식적인 의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국의 전통적인 색채의식인 녹의홍상, 청사초롱 등 일상에서 청록을 많이 사용하는 관습, 청백리 사상 등 우리의 전통적 색채 사상이나 관습이 작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서구적 상징물이나 형상성은 전통적인 시각성을 밀어내면서 우위를 점해가는 과정이었으나, 색채는 형상보다 좀 더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요소라는 시각에서 볼 때, 일상에서 관습화 되어 있던 색채들이 좀 더 긴 생명력을 보이며 주로 사용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이성적인 판단이 더욱 많이 작용하는 도상이나 상징의 사용에는 서구적 기표가 우위를 점해가기 시작했으나, 컬러는 아직까지 전통적인 관습적 색을 많이 사용했다는 잠정적 결론은 제시할 수 있다. 이외에 그 당시 보편적으로 생산되던 분홍색 갱지가 간지나 목차지로 사용되어 표지 색채와 대응을 이루며 컬러 인쇄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5. 결론 및 제언

위에서 살펴 본 대로 근대 초기 한국의 잡지의 표지 디자인은 한국 시각 디자인사에 몇 가지 뚜렷한 특성을 제공하고 있다. 즉 그 특성으로는 조선시기의 깊은 전통을 지닌 서예가 한자 타이포 그래피적인 변형을 거치면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점, 새로운 근대 매체에 이념적 상징물인 태극, 지도 등의 도안이 사용이나 이외에 장식성의 도입경과를 보여준다는 점, 도상이나 편집을 통해 독자층의 정체성 형성을 꾀했다는 점, 컬러 인쇄가 시작되던 시기 전통적인 색채 사용이 빈번하게 드러났다는 점 등이며, <소년>이나 <조양> 등 극소수의 잡지에서는 전문적 디자인적 의식의 맹아를 확인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구에서의 근대는 그 시대성을 놓고 예술가, 건축가, 교육자, 사업가들이 시대적 특성과 본질에 대해 고민하면서 조형을 통한 민주적 사회의 수립, 혹은 새로운 인공조형 행위를 통한 유토피아적 사회를 꿈꾸던 시기였다. 이들 중 디자이너는 근대라고 하는 특정 시점이 선사한 문명사적 변화의 요체를 조형 행위를 통해 수행하고자 하는 뚜렷한 지향점을 갖고 디자인을 실천한 아방가르드적인 특성을 강하게 보인다. 이렇게 시대성과 조형성의 결부를 지향한 실천 행위를 전문적 디자인 행위라는 시각 하에서 볼 때 한국의 초기 잡지 디자인은 문명 변환기로 근대성에 대응되는 창의적 실험보다는 자주 의식과 민족 이데올로기의 선전, 계몽의 기치를 실현하기 위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서의 역할 만을 수행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즉 한국의 근대초기 잡지는 지식의 전달과 새로운 이념을 설파하는, 내용적으로는 새로운 매체였으나, <소년>과 <조양보>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겠다는 전문가적인 의식이 발현된 디자인을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의 근대초기 잡지의 표지에 드러난 특성에 대한 이런 잠정적 결론은 이후 매체계가 비약적으로 확장되는 20년대 이후의 연구를 통해 더욱 뚜렷하게 규정될 것이다. 본 연구가 제안한 근대초기 잡지 디자인의 특성은 향후 근대 매체계에 대한 근대성의 규명 연구 결과와 결부되면서, 한국 시각 디자인 역사에 논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Acknowledgments

This work was done by the Fund of 2011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Notes

Citation: Jo, H. (2014). The Characteristics of Magazine Cover Design in Korea’s Early Modern Era. Archives of Design Research, 27 (1), 159-173.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educational and non-commercial use,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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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2

Figure 1, 2
Korean Repository

Figure 3

Figure 3
Bulletin of Social Gathering

Figure 4

Figure 4
The Chosun

Figure 5, 6

Figure 5, 6
Gadeung Magazine Cover

Figure 7

Figure 7
Contents of Gadeung Magazine

Figure 8

Figure 8
Great Generals of Korea, Novel

Figure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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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geuk Society Magazine

Figure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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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jajinam

Figure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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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gsoo SocietyMagazine

Figure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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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Unite News

Figure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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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Korea Self-Empowering Magazine

Figure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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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Education Magazine

Figure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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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Korea Society News

Figure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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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in Society Magazine

Figure 16

Figure 16
Kuwoonmong, Novel

Figure 16, 17

Figure 16, 17
Boy Korea Peninsula, Cover and Contents

Figure 18

Figure 18
West Friends Society

Figure 19

Figure 19
Midnight Thunder

Figure 20

Figure 20
Bosung Middle School News

Figure 21

Figure 21
Mathematics Society Magazine

Figure 22

Figure 22
Magazine Boy Cover

Figure 23

Figure 23
Magazine Boy Contents

Figure 24

Figure 24
Explanation on the Contents of Magazine Boy

Figure 25

Figure 25
Catholic Bible

Figure 26

Figure 26
Morning Sun